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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속- 전경 증언록 2편 (솔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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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솔향기 작성일16-06-18 22:07 조회3,405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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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1편에서 계속


살기 위하여 모두 도청을 빠져나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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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지나자 승패는 결정지어진 듯했다. 일부 공수부대는 도청 안으로 들어가 장비를 싸는 등 철수할 준비를 하느라 부산했다. 점점 좁혀오는 시민군의 총성은 공수부대의 M16 총성보다도 더 무섭고 두려움을 주었다. 경찰병력 4천여 명은 몸을 떨며 도청 안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고심하고 있던 중 경찰국장이 혼자서 헬기를 타고 도망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찰의 대장은 도망가고 없는데 우리가 이곳에 남아 죽기밖에 더 하겠냐 싶어 기동대원들도 각자 알아서 해산하고 명령 있을 때까지 은신하도록 암묵적 지시를 받았다. 오로지 살아야 한다는 보호 본능으로 당시 군의 지휘체계는 무너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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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쯤 공수대원들은 철수하기 시작했다. 기동대원들도 시민군의 공격을 피해 도청의 담을 넘어 도망쳤다. 약삭빠른 공수대원들은 숙직실에 들어가 트레이닝이나 사복으로 갈아입고 민간인으로 위장했다. 나는 기동대의 내무반장으로서 경찰국장은 물론 중대장까지 도망가고 없어서 소대장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 보았다. 45세의 소대장은 힐끗 한번 뒤돌아보더니 대답도 않고 부리나케 도망갔다. 그러나 대원들은 줄을 선 채 아무 말 없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지금의 이런 상황에서 살고 봐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고 장비를 챙기도록 지시했다. 모두 개별 행동으로 살아남아 다음에 무사히 만나기를 기약하고 광주가 집인 사람들을 중심으로 2-3명씩 함께 움직이도록 했다.

기동대원들은 장비를 한 곳에 모아두고 도청의 담을 뛰어넘기 시작했다. 나도 도청 뒷담을 넘어 도망갔다. 그러는 와중에 기동대장이 간장독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60세의 비대한 기동대장은 도망가다 간장독에 빠진 것 같았다.

나는 무조건 도청 뒤 민간인 집으로 들어갔다. 대부분 집들은 사람들이 대피하고 비어 있었다. 이미 장농 등은 헤쳐져 내가 입을 만한 옷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상한 바지에 와이셔츠, 여자 트레이닝을 걸치고 함께 있던 졸병 한 명(강원도 고향)은 여자 스웨터를 입고 구두에 가방까지 들고 기막힌 변장으로 골목을 빠져 나왔다.


현재 대성학원 부근으로 나와 보니 도망가는 경찰들 외에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 도로만을 무사히 통과하면 살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와 죽을지도 모르는 긴장된 순간이었다. 어떤 경찰들은 포복으로 도로를 지나가거나 죽을힘을 다해 뛰어가기도 했다. 우리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의외로 시민들이 없었다. 나는 대원 한 명을 데리고 친구집을 거쳐 집까지 도착했다. 죽음의 현장에서 살아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음날부터 나는 자유롭게 시내를 활보할 수 있었다. 군의 위치에서 조금은 벗어나 광주 시민으로서 도청 앞 궐기대회에 동참하기도 하고 상무관에 널려진 시체들을 보기도 했다. 진압과정에서는 보지 못했던 시신들을 직접 보게 되면서 나는 매일 고통스러움을 견디지 못해 밤이면 술을 마셨다.

날이 새기가 무섭게 도청 앞으로 나갔고, 건물 벽에 붙은 대자보, 사진 등을 자세히 보고 상무관에서 시체를 관리하는 광경도 목격했다. 그러한 모든 일들은 나로 하여금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자아냈다.

(중략)

진압을 나갔던 기동대원들도 피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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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새벽이었다. 월산동 부근에서 여자 음성의 '계엄군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하는 방송을 듣고 나는 계엄군이 다시 공격해 온다는 것을 알았다. 라디오를 통해서 도청이 계엄군들에게 탈환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아침 무렵 전 군인들은 부대로 복귀하라는 방송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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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쯤 기동대원들은 모두들 무사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만난 대원들은 그동안 보고 들었던 사실들을 이야기하면서 조금은 안도감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느슨하고 술렁거리는 분위기 속에서 광주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애도해 하기도 했다. 일부 대원들은 상당한 죄의식을 느껴 고민했고, 나 또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는 위로감과 동시에 피해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중략)

그 중의 한 대원은 광주 시민들로부터 피해를 입고 부대로 복귀했다.

그는 경상도 출신으로 경북대를 다니다 기동대로 배치받은 친구였다. 21일 도청에서 공수부대와 경찰들이 철수할 때 그는 증심사 쪽으로 도망을 갔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날(22) 학운동 배고픈다리 부근에서 시민군한테 경상도 말씨와 육군 팬티, 양말 때문에 공수대원으로 오인을 받아 잡혔다고 했다.

기동대 출신의 전경이라고 사정을 했는데도 시민군은 그를 도청으로 인계하였고 도청에서 그는 갖은 수난을 겪고 전남대 모교수의 도움으로 풀려났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경험으로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는 다르게 사고가 바뀌어 있었다. 그는 눈빛부터가 전과 달랐다.

나는 그해 11 13일 제대하였지만 5월의 후유증으로 방황하다 결국 1년간을 휴학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라는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되었고, 극적 경험을 통해 나는 세상을 지배하는 힘의 법칙들이 현실 속에 어떻게 적용되어지는가를 여실히 깨달았다.

시간이 흐르자 점점 마음이 안정되어 안일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현재 대학원을 다니고 있지만 1980 5월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동안의 기동대원들이 겪은 갈등을 통해 5·18은 명백하고 올바르게 밝혀져야 함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끝)

댓글목록

솔향기님의 댓글

솔향기 작성일

혹시 경찰의 존엄성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다면, 지적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그 부분은 즉시 삭제하겠습니다.

Harimawoo님의 댓글

Harimawoo 작성일

내무반장과 함께 탈출한 강원도 출신 졸병
정아무개는 현재 한전에 근무합니다
퇴직여부는 모릅니다
20대때 달리기 잘하던 친구로 기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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