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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이 광주에서 수행한 5.18 작전(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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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6-07-10 14:28 조회4,1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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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군이 광주에서 수행한 5.18 작전 (요약)

 

1980년 5월 17일 자정, 김대중과 함께 내란을 음모했던 24명이 전격 체포됐다. 김대중의 내란음모를 실행하기로 돼 있던 광주시민들도 체포됐다. 40일 이상 전국의 학생시위를 주도했던 주모자들도 전격 체포됐다. 1980.5.17. 국무회의는 기존의 계엄령보다 매우 강화된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 업그레이드 된 계엄령에 따라 5월 18일, 새벽 2시를 기해 전국 136개 국가시설을 보호하고 31개 주요 대학을 점령하기 위해 25,000명의 계엄군이 배치됐다. 대부분의 공수부대들은 서울의 주요 대학들에 진주했고, 광주는 위험지역이 아닌 곳으로 분류돼 전북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제7공수여단 소속의 2개 대대(800명)만 뽑아 전남대와 조선대에 각각 1개 대대(400명)씩 주둔시켰다. 공수부대는 총을 등 뒤에 걸고 실탄은 일체 지급되지 않은 상태에서 폭도들과 육박전을 치렀다.  

5월 18일(일) 오전 9시경, 북한특수부대 250-300명이 학생으로 위장해 전남대에 주둔중인 제33대대 공수부대원들(400명)에 돌멩이를 던져 7명이 부상을 입고 얼굴 등에 피를 흘렸다. 해방 직후부터의 대한민국 역사는 끝없이 전개되는 북한의 대남공작과 이에 대한 진압작전으로 구성돼 있다. 이 모든 역사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언제나 경찰과 군을 먼저 공격했고, 이에 대한 반작용이 발생하면 이를 유언비어로 만들어 무고한 국민들이 파쇼정부에 의해 공격당했다고 선전했다.  

5.18 폭동도 예외가 아니었다. 공격은 광주 대학생으로 위장한 250-300명의 북한군이 먼저 했는데, 지금까지 한국에는 공수부대가 광주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기 때문에 시민들이 무기고를 털어 항전하였다고 거꾸로 선전해왔다, 그러나 모든 팩트들은 서울지방검찰청과 국방부검찰부가 14개월 동안 조사해서 발표한 1995년 7월 18일 내놓은 수사보고서(216쪽)에 들어 있다. 그런데도 광주사람들과 한국 내의 공산주의자들은 그 보고서까지도 부정하고, 북한당국이 지어낸 유언비어들만 사실이라고 선동하고 있다. 거짓말도 100번 하면 참말이 된다는 레닌의 가르침이 현실화되고 있는 곳이 바로 광주와 전라남도다.  

공수부대 요원들에 돌멩이 세례를 가한 250여 명의 북한군은 번화가로 나가 파출소를 보는 대로 불태우고 파괴했다. 파출소에 불을 태우는 목적은 1차적으로 광주의 천대받는 도시빈민들, 껌팔이, 구두닦이, 양아치, 구두공, 목공, 석공 등 평소 경찰들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은 10-20대들의 마음을 사서 그들을 부나비로 활용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모여든 광주 시민들을 향해 북한군은 수많은 유언비어들을 뿌렸다. “환각제를 먹은 공수부대가 무고한 광주학생들을 무자비하게 때린다”, “경상도 군인들만 뽑아 편성한 공수부대가 전라도 주민 70%를 죽여도 좋다는 전두환 명령을 받고 남자고 여자고 마구 살해하고 있다”, “여성을 발가벗기고 유방을 도려내고 임산부의 배를 갈랐다”는 등의 해괴한 유언비어들이었다. 이에 격노한 광주시민들이 광주의 번화가로 몰려들어 위장한 대학생들 즉 북한특수군에 합세했다.  

오후 5시부터 공수부대들은 3-4명씩 주요 길목에 배치하여 폭도들을 향해 순진하게도 해산하라고 독려했지만 북한군은 그들을 면전에서 조롱하고 공격했다. 이로부터 양측은 감정차원에서 육박전을 벌였다. 북한군에 합세한 20대들도 많이 맞았지만 공수부대원들도 많이 맞았다. 지쳐버린 공수부대가 주둔지로 복귀하면서 이날의 충돌은 마감됐다.  

5월 19-20일 양일간은 공수부대가 중과부적으로 매타작을 당하고 농락당하는 시간으로 일관했다. 19일, 오전까지 공수부대는 3-4명 단위로 골목골목에 흩어져 있다가 매타작만 당하자 대대 단위로 집결했다. 발 빠른 북한군은 즉시 대형 버스와 트럭을 지그재그 궤적으로 몰아 공수부대를 향해 돌진케 했다. 여기에 동원된 소모품들은 모두 광주사람들이었다. 5월 20일에는 경찰 4명이 돌진하는 폭도 버스에 깔려 사망했다. 공수부대와 경찰은 이 지그재그 돌진 차량에 노이로제가 걸려 있었다.  

이 이틀 동안 MBC 및 KBS 방송국이 불에 타고 세무서가 불탔다. 경상도 번호판을 단 수 많은 차량이 소각되고 탑승했던 경상도 주민들이 몰매를 맞아 즉사하는 일들이 비일비재였다. 5월 20일 밤에는 광주역 앞 넓은 공간에 집결한 제3공수여단 5개 대대 모두가 포위되어 몰살당할 뻔했지만, 어려운 과정을 통해 지급된 실탄으로 공포를 쏘고 최루탄을 발사하면서 포위망을 가까스로 뚫고 전남대로 철수했다. 그리고 이 5개 대대는 20일 밤 내내 전남대에 갇혀 유린당할 뻔했다.  

전남대에서 5개 대대의 공수부대(2,000명)를 압박하던 북한군은 5월 21일이 되자, 세기의 걸작이라 할 만한 특공작전을 벌였다. 이스라엘의 엔테베 작전보다 더 컸고 더 정교했고 과감했다. 5월 21일의 작전은 위에서 설명되었기에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5월 22일부터 도청에는 이른바 광주 유지들로 구성된 시민수습위원회가 있었지만 이들은 시민군본부로 위장한 북한군의 삼엄한 통제를 받고 있었다. 넥타이를 매고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했다. 유지들이 모이자, 이들은 “싸우자”는 파와 “총기부터 반납하자”는 파로 갈라져 하루 종일 싸우기만 했다. 무기를 탈취한 학생집단을 찾았지만 정체를 숨겨야 한다는 지상명령을 받고 온 북한군들이 나타날 리 없었다. 반면 그 시간 북한군은 복면을 쓰고 광주시 거리를 활보하면서 투쟁을 선동하기도 했고, 황장엽처럼 남한 당국의 스파이로 보이는 사람들을 찾아내 숙청하는 일을 했다.  

계엄군이 퇴각한 광주시는 한국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북한의 해방구가 되었다. 북한집단은 도청 지역에 모아 놓은 시체의 관을 독점하고, 광주인들처럼 보이도록 위장한 남녀노소의 북한침투단을 이용하여 한국을 모략하기 위한 사진들을 찍었다. 5월 23일에는 북한군이 독일 기자 힌츠페터를 데려와 각가지 무대를 만들어 놓고 이를 촬영하여 세계에 방영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주력 전투부대원 대부분을 잃은 북한 지휘부는 계엄군이 광주를 재탈환하기 전인 5월 24일 오전 서둘러 안개처럼 사라졌다. 그 마지막 철수를 끝까지 옹호한 광수는 제1광수였다 

이들과는 전혀 별도로 문제심(현 3성장군)이 이끄는 50명 팀이 있었다. 이 팀은 5월 19일 북한을 떠나 5월 23일부터 광주 뒷산에 은거하면서 상황을 점검한 후, 5월 27일 새벽에 광주를 떠났다. 지리산이 포함된 소백산맥을 거쳐 경상북도 문경 지역을 거쳐 태백산맥을 타고 1주일간의 행군을 하여 6월 4일 휴전선에 도착했다. 가는 도중 문경지역의 산에서 산나물을 캐는 처녀가 자기들의 모습을 보았다는 것을 의심한 북한군은 그 처녀를 무자비하게 죽이고 암매장 했다. 이는 실제로 그 침투조에 소속됐던 탈북자 가명 김명국의 증언이다. 그 탈북자는 지금 국정원이 마련해준 국영기업에 취직해 있고, 서울 인근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이 50명의 침투조는 사진에 찍히지 않은 관계로 여기에 합산되지 않았다.  

5월 24일 오후, 북한군이 떠난 도청은 비로소 광주사람들의 소유가 되었다. 이때부터 전남도청에 들어온 광주시민들은 개념 없는 10대의 어린 학생들과 20대 막노동자들이었다. 이들 역시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뉘어져 2일 내내 말싸움만 했다. 그리고 25일 밤중, 복학생인 김종배와 26세의 트럭운전수 박남선, 19세의 구두공 윤석루 등이 이끄는 20대의 강경파가 온건파를 총으로 위협하여 내쫓고 계엄군을 향해 “결사항전”을 선포했다. 이들이 지금 5.18 최고의 영웅으로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엄청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1997년 대법원의 판결은 참으로 위험 무쌍한 코미디였다.  

이 기간(5.25-26)에도 도청에 나타난 대학생은 불과 3명이었다. 도청을 점령한 20대들이 “결사항전”을 선포하자 바짝 긴장했던 계엄당국은 5월 27일 새벽시간에 도청지역을 점령하는 작전을 계획했다. 그리고 계엄 군법회의에서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주동자들은 5월 26일 하루 도청의 통제권을 장악하고 난동을 부렸던 자들로 10여명에 불과했다. 이들은 지금까지도 5월 21일의 빛나는 작전을 마치 자기들이 수행한 것이라고 국민을 속여 개국공신에 해당하는 금전 및 복지 혜택을 받고 있으며 전쟁 유공자보다 더 높은 연금을 받고 있다. 

개념 없는 20대 도시근로자들이 도청 건물에서 서로 싸우던 5월 25일과 26일 양일동안, 계엄군은 다이너마이트 조립 전문가 1명을 도청으로 보내 온건파 학생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2,100발의 다이너마이트폭탄을 해체했다. 이 폭탄이 해체되지 않았더라면 5월 27일의 광주시 재진입 작전은 계획되지 못했을 것이다. 폭도들은 이 폭탄에 불을 질러 광주시 전체를 날려버리겠다고 정부 당국을 협박하고 있었다.  

5월 27일 새벽, 한국군의 작전비밀은 대책 없이 새나갔다, 그래서 광주작전을 현장에서 지휘하던 지역계엄사령관은 작전시간을 여러 번 변경하여 간첩들을 교란했다, 이날의 광주시 탈환적전에는 공수부대 전부(4,000명)를 작전에 사용한 것이 아니라 350명 정도만 사용했다. 외과적 수술을 하듯 점 공격을 하였기에 이 작전에서 사실당한 광주시민은 불과 17명에 불과했다. 그 90%가 개념 없는 10-20대였다. 이날 아침 05시 19분경 소준열 중장은 주영복 국방장관에게 작전종료를 보고했고, 05시23분에는 국방장관이 최규하 대통령에게 광주시가 수복되었음을 보고하였다.  

이로써 김일성이 주도한 침략작전, 김대중의 추종자들이 동참한 여적사건은 종결되었지만, 대한민국과 세계는 감쪽같이 속아 왔다. 그리고 북한군이 이룩한 작전성과는 5월 25-26일 동안 도청에 들어가 무모하게 결사항전을 선포해 군법회의에서 중죄를 선고받은 풋내기들의 공로로 왜곡되었다. 여기에 폭동기간 중 당국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는 사람들, 뺨을 맞고 왔다는 사람들이 끼어들어 5.18유공자가 되었다, 폭동에 앞선 광주사람들은 제1심 재판에서 유죄를 받은 사람은 불과 283명, 신원이 광주사람인 것으로 확인된 사망자 154명, 계 437명이다. 그런데 폭동의 유공자가 해마다 늘어나 지금은 5,700명이나 된다. 국가를 파괴한 폭도들과 사이비 희생자들이 대한민국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호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간첩이 지휘한다는 평을 듣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이 왜 유공자가 되었는지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공적서’를 절대 비밀로 취급하고 있다. 아마도 5.700명에 대한 공적서가 노출되면 정부는 대대적인 국민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폭동 10일 동안 북한군은 광주시민들을 등 뒤에서 총으로 쏘았고, 몽둥이 등으로 사살했다. 그리고 이를 공수부대 소행으로 뒤집어 씌웠다. 하지만 시민들이 죽은 장소를 일일이 살펴보면 이들 대부분은 공수부대가 없는 지역들에서 사망했다. 10일 간의 폭동기간 중 총상으로 사망한 시민은 116명, 이들 중 75%에 해당하는 85명이 이른바 ‘시민군’(북한군)이 소지한 카빈 총 등에 의해 사망했다. 당시 공수부대는 M16 소총만 휴대하고 있었다, 이것이 광주민주화운동의 본색인 것이다.

 

2016.7.10.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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