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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일본, 동시대 양국의 영웅들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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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9-10-20 20:28 조회1,2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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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대 양국의 위인들

 

일제 36년 동안, 일본과 조선은 점령국과 피점령국의 관계였다. 빨갱이들은 이 관계를 부당한 것이었다고 선전한다. 하지만 당시의 조선은 미국이 일본에 넘겨준 전리품이었다. 조선을 전리품으로 주고받은 미국과 일본이 문제였는가? 아니면 존재감조차 없었던 조선이 문제였는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선조보다 위대했다. 이등 박문은 고종이나 순종보다 위대했다. 개화를 주창했던 조선의 선각자들은 거의가 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하생들이었다. 동시대를 살면서 일본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위인이 되었고, 조선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위인이 되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의 위인들은 고개가 끄덕여 지는 인물들인 반면, 조선의 위인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소품들이다. 조선의 영웅들은 대부분 나이가 어린데다 한 순간에 사용된 물리력 말고는 이렇다 할 내공이 없다. 양국의 위인들을 비교해 보는 것도 역사를 바라보는 한 단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이등 박문, 18411909): 일본제국 (Empire of Great Japan)은 고종시대인 186813일부터 194753일 일본국 헌법이 발효되기 전까지 79년 동안만 존재했던 천황체제였다. 조선을 접수한 사령관은 이토 히로부미, 그는 18851222일 일본제국 초대 내각총리가 되었고, 그 후로도 제5.7.10대 총리를 역임했다.  영국 런던 대학교(Univ. of London)에 유학하여 화학을 공부하였으며, 훗날 미국 예일 대학교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1886년에는 여성의 학교입학을 허용하고, 여성대학을 설립했으며, 1889년부터 3년 동안에는 일본헌법 제정을 주도했다. 그리고 1909 1026 하얼빈 역에서 당시 30세의 안중근이 쏜 총탄 3발을 맞고 20여 분 만에 사망했다.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 그는 일본 개화에 물꼬를 튼 일본 위인이다. 처음에는 일본만 개화할 것이 아니라 이웃인 조선과 중국과 함께 개화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조선과 중국이 개화파들을 탄압하는 바람에 실망으로 돌아섰다. 신문사를 만들고 게이오 대학도 설립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영영사전으로부터 영어단어의 뜻을 소화한 다음 영어단어를 한자단어로 전환한 것이다. 이는 엄청난 대업이었기 때문에 서양학자들에게 불가사의한 노력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 한자단어 집은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한 파이프라인 역할을 했다. 따라서 이 한자단어 사전은 일본에게만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조선과 중국에도 같은 역할을 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한글단어는 이 한자단어에 한글글자로 토를 단 것에 불과하다. 그는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유길준, 윤치호, 서재필, 서광범의 스승이자 한국 개화파의 열렬한 스폰서였고, 독립신문 창간을 위해 모금까지 해주었다. 사형에 처할 개화파 젊은이들을 30명 이상 숨겨주고 돌보았으며 김옥균에 대해서는 10년 이상 보호해주었다. 일본 최고액 권 1만 엔 권에는 1984년 이후 그의 초상이 인쇄돼 왔다. 2024년부터는 그 자리에 아래 시부사와 에이이치초상이 인쇄된다.

 

사부사와 에이이치(1840~1931): 서양기업인들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주판만 들었다. 하지만 일본 기업인들은 한 손에는 공자의 도덕을, 다른 한 손에는 주판을 든다. 이것이 바로 사부사와 에이이치의 가르침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일본에서 일본식 자본주의 모델을 설정한 인물로 존경받아왔다. 그는 조선 땅에 철로를 깔았다. 국책은행을 설립하여 엽전 대신 지폐를 만들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1894~1989): 그는 일본과 서양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린다.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정신을 완성한 경영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먼저 사원에게 도덕심과 능력을 길러주었고, 그 능력으로 제품을 생산했다. 그가 남긴 말 중 가장 유명한 말이 있다. “마쓰시타 전기는 사람을 만드는 곳이며, 아울러 상품도 만드는 회사다

 

안중근(1879~1910):  그의 가문은 황해도 토호였다. 그의 부친 안태훈은 산채에 사병을 거느릴 정도로 정치적이었고 그 정치성향은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개화파에 가까웠다. 1894년 전봉준이 동학농민의 란을 일으켰고, 그 농민란은 흥선대원군과 접선되어 있었다. 그는 동학란을 평정하기 위해 재산을 풀어 사병을 더 많이 모아가지고 토벌에 나섰고 안중군도 17세의 나이로 이 토벌작전에 참전했다. 안중근부다 3살 더 많은 김구는 황해도 지역의 동학란 선봉장으로 나섰다가 안태훈 진영에 패하였지만 그 후 한동안 안태훈의 식객 노릇을 했다.

 

안태훈 부자는 사재를 털어 일본을 도왔다. 학교를 두 개나 지을 돈을 일제에 기증했고, 정봉준의 민란을 토벌하는 데 적극 나서서 많은 공을 세웠다. 일제에 기부도 하고 일제가 원하는 민란진압에도 앞장섰다면 일제 편에 선 사람이다. 그런데 왜 이등 박문을 저격했을까? 19091026, 당시 30세였던 안중근은 하얼빈 역전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이등 박문 저격한 후 일본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사형이 언도되어 1910.3.26. 관동주 류순 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처형됐다.

 

도대체 안중근은 왜 그랬을까? 안중근은 법정에서 이등박문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표했다고 한다. 이등박문이 1907년 고종의 7남이자 황태자였던 이은을 일본에 유학시킨 장본인이었고, 그가 직접 이은 교육의 책임자 역할을 해 준 데 대한 감사함이었다 한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통해 일본이 동양의 평화를 지킨 것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메이지 천황이 조선의 독립을 도모했고, 평화 유지에 힘쓴 것도 잘 이해했다고 한다. 그런데 무엇이 그를 저격자로 내몰았는가? 그가 법정에서 진술했다는 표현들을 보면 그는 메이지 천황에 대해 그리고 일본국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과론적 차원에서 보면 그가 1909년 이등박문을 저격한 행위로 인해 1910년의 한일병합이 촉진됐다. 한일병합을 저지시키기 위해 그를 살해했다면 그는 어리석은 짓을 했다. 첫째로는 한일병합을 반대한 이등박문을 살해한 것이 어리석은 행위였고, 둘째로는 이등박문을 살해함으로써 이미 기울어진 순종이 일본에 대해 면목 없어 했고, 그것이 한일병합에 마침표 역할을 했다. 안중근으로 인해 한일병합이 촉진됐고, 한일병합이 조선개화의 대문을 활짝 열어 제켰던 것이다. 결국 안중근은 장님 문고리 잡는 식으로 조선의 개화를 촉진시킨 불쏘시개가 된 것이다. 영웅이 아니라 개화를 촉진시킨 불쏘시개라 표현하는 이유는 영웅이 되기에는 내공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 자료들을 보면 그의 부친은 수구파로부터 탄압을 받아 이리 저리 이사를 다녔고, 안중근 역시 청소년 시절에 이리 저리 떠밀려 다녔다. 한문을 여러 해 동안 배우다가 따분함을 느낀 그는 방향을 선회하여 말 타고 사냥하는 것을 즐겼다한다. 진남포와 평양 등을 다니면서 석탄상회를 경영했지만 실패했고, 그 후부터 의병대에 가담하여 강원도에까지 떠돌아다니며 소규모 일본군과 전투를 했지만 나이 30이 되도록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190910, 모 신문사로부터 이등박문의 이동계획을 입수한 후 바로 이거다하는 식으로 거사에 뛰어들었다 한다. 여기까지를 보면 김구의 족적과 별로 다르지 않고, 김구의 성향과 별로 다르지 않다. 정치판에 떠돌아다니다 한 건 잡으면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되듯이 안중군 역시 반일주의가 가공해낸 영웅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반박정희주의가 전태일을 영웅으로 가공해 냈듯이.

 

한일병합에 반대했다면 이토 암살은 절대로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토 암살은 한일병합을 자초했다. 그로 인해 조선반도는 일본의 국토가 되었고, 조선인은 일본국적을 가진 일본인이 되었다. 일본은 동양을 얕보는 미국과 서양세계를 향해 보란 듯이 국가의 명예를 걸고 조선의 위생, 인프라, 산업, 교육을 수직 상승시켰고, 조선의 독자성을 인정해 한글을 보급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안중근이 그런 길을 열어 준 것이다.

 

지금 문재인 세력은 제2의 안중근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단지 다른 것은 안중군은 발전이 꽉 막힌 조선을 개화시키는 불쏘시개가 됐지만 문재인은 잘나가는 한국을 멸망시키는 역할을 적극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인 대부분이 안중근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 더 보태고 싶은 말이 있다. 이 나라에는 내공 없는 어린 존재들만 영웅이 되고, 위인이 되고, 열사가 돼 있다는 사실에 대해 눈을 뜨라 경고하고 싶은 것이다.

  

김구(1876~1949): 1893년 동학농민운동에 참가하여 1894년 동학군의 선봉장 노릇을 하다가 김구의 집에서 한동안 식객노릇을 했다. 그는 김자점의 손자다. 김자점은 효종 때 북벌계획을 청나라에 밀고한 죄로 능지처참이라는 가장 혹독한 고문을 받다가 죽었다. 김구는 얼굴이 곰보이며 어릴 때에는 자기를 곰보라 놀리는 동네 아이들에게 부엌에서 식칼을 가지고 나와 협박을 가할 정도로 과격했다. 한때 승려노릇도 했을 만큼 그는 떠돌이 인생이었다. 그 후 친일파를 암살하고, 주요공관을 파괴하고, 독립운동을 한다며 지하에서 군자금을 모집했고, 이봉창, 윤봉길을 거사에 내보내기도 했다. 사사건건 이승만을 질투했고 1948419일에는 북조선으로 넘어가 김일성의 북조선 건국에 협조했다. 이승만이 건국을 한 이후에도 건국사실을 부인하며 사익을 추구하다가 안두희로부터 저격을 당해 사망했다.

 

이봉창(1900~1932): 용산의 문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가게 점원을 거쳐 용산역에서 역무원과 운전 수습생으로 일하다가 일본에 건너가 오사카에서 일본인의 양자가 되었고, 기노시타 쇼조(木下昌藏)라는 일본식 이름도 얻었다. 일본을 좋아하고 일본어도 유창하게 잘 하는 등 일본인이 되고자 노력했지만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승진이 안 되어 일본에 대한 반감을 가졌다고 한다. 결국 그는 김구를 찾아갔고, 폭탄 두 개를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193218, 도쿄 교외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던 히로히토 천황을 겨냥하여 수류탄 1개를 던졌다. 일본 고관대작 두 명이 부상하였으나 히로히토는 온전했다. 도쿄대법원은 1932930일 오전 9시 사형을 선고한 후, 동년 1010일에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처형했다. 32세의 미혼이었다.

 

윤봉길(1908~1932): 중국 상하이에서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채소 장사를 하다가 23세의 나이로 1931년 겨울 김구를 찾아가 독립운동에 몸을 바치고 싶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1932429일 상하이의 홍커우 공원에서 열리는 전승기념 행사에 도시락폭탄을 투척했다. 일본군 간부 여러 명이 죽고 다쳤다. 이로 인해 그는 1932528일 상해파견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321218일 일본 가나자와 육군 구금소로 이감되어 그 다음날 총살형으로 처형됐다. 그의 나이 25세였다.

 

유관순(1902~1920): 1918318일 이화학당 보통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41일 고등과 1학년에 진학했다. 아버지 윤중권은 홍호학교를 세울 정도의 지방유지였다. 228일에는 전교생이 만세를 부르기로 결의했다. 이화학당 학생인 신특실, 노예달 등은 파고다공원에서 벌어진 3·1 만세운동에 직접 참여하였고, 당시 고등과 1학년인 유관순은 서명학, 김복순, 김희자 등과 함께 ‘5인의 결사대를 결성하여 남대문으로 향하는 시위행렬에 합류했다. 신특실, 노예달 등은 검거되었고, 교사 김독실 등은 투옥되었지만 일경에 잡혔던 유관순은 곧바로 석방됐다. 학생들의 시위가 극심해지자 일제는 310일 전국적으로 휴교령을 내렸고, 학교로 갈 수 없게 된 유관순은 13일 기차를 타고 고향인 천안으로 갔다.

 

고향에 돌아온 유관순은 사촌언니 등 연상자들의 지시에 따라 태극기를 만들었다. 191941, 조인원, 유중권, 등과 함께 천안 병천 시장에서 만세시위 즉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 19명이 사망했고, 3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한다. 유관순은 시위대의 전면에 있다가 체포되어 공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 59, 공주지방법원에서 5년형을 언도받고, 항소하여 경성복심법원(고등법원)으로 넘겨져 6303년형을 언도받았다. 1920428일 영친왕의 결혼기념 특사령으로 유관순의 형기도 16개월로 단축되었으나, 딱 부러지게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1920928일 오전 820, 1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위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확실한 기록들이 없어 여러 가지 설들이 존재한다. 어느 정도라도 부풀려졌을 위 기록을 보더라도 18세의 유관순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특별히 독보적으로 부각돼야 할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

 

좌익들은 일본과 이승만, 박정희와 전두환 등을 모략하기 위해 늘 영웅을 만들어 냈다. 김구는 이승만을 격하시키기 위해 만들어 낸 영웅이고, 장준하와 전태일은 박정희를, 윤상원은 전두환을, 유관순은 일본을 격하시키기 위해 만들어 낸 초라한 영웅들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역사인식이다. 이상에서 살폈듯이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중 일본의 위인들과 조선의 위인들 사이에는 모든 면에서 현격한 격차가 확인된다

 

2019.10.20.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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