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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tv, 제258화, 김대중-임동원-김동신 3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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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06-02 21:21 조회3,7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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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8, 김대중-임동원-김동신 3역적

 https://www.youtube.com/watch?v=ITa5j_xfCK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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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이 31민경욱 전 의원 주장은 제2의 지만원 괴담 같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만원이 5·18 때 광주에 북한 특수부대가 내려와서 주도했다는 괴담을 퍼트렸는데 자유한국당 시절 몇몇 의원이 동조해서 당이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민 전 의원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는 정도를 넘어서 괴담이라고 지적했다

 

자료1. [중앙일보] 2018.03.03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대북 특사로 아주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 .“만약 30년 전에 주사파 활동했던 것 가지고 문제 삼는다면 그건 구태 정치다. 임종석은 30년 전 주사파였지 지금은 아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2410875

 

자료2. 한겨레 2018.5,24.

하태경 임종석 주사파 아니야...종북몰이 사라져야: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에 대한 이념 논란에 대해 제가 아는 임종석은 더 이상 주사파가 아니다고 말했다. 하 의원은 24CPBC라디오 열린 세상 오늘! 김성덕입니다에 나와 임 실장과 안희정 충남지사를 언급하면서 과거에 주사파였던 사람이 굉장히 많다(하지만) 임종석은 더 이상 주사파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www.hani.co.kr/arti/politics/polibar/795991.html

 

 전향 주사파 하태경·최홍재·홍진표의 도발선언(2017.7)

 

1. 문재인 정부를 주사파정부라 공격하는 자들이 우리의 적이다.

2. 종북몰이 하는 극우세력을 소멸시켜야 한다.

3. 우리는 민주열사를 추모한다.

4. 대한민국에 종북세력은 소멸되고 없다.

5. 실체가 없는 것을 대상으로 종북몰이 하는 것은 극우의 궤멸을 자초하는 코미디다.

6. 좌파와 종북은 다르다. 좌파는 훌륭한 이념이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802203.html#csidx3902833997feec09b9bf95edd524551 

 

  한번 주사파는 영원한 주사파, 전향은 기만 작전술 

 

2012.5.12.자 블루투데이 보도에 의하면 2012.1.28. 주사파 출신 정치인들의 모임 새로운 모색에서 주사파 출신 열우당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수십만의 국민이 참여해 선출한 국회의원을 주사파(主思派)로 매도한 것은 국민주권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국민이 선택한 정부와 국회의원을 근거도 없이 주사파로 매도한 행위는 국민과 정부를 이간시키고 체제전복을 도모하는 반국가적 내란선동 예비음모행위이다는 발언을 했다.

http://www.blue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600

 

 

 

  (북한과의 내통행위)---

 

임동원은 국회에서의 아무런 합의 없이 "현정부 통일정책은 '남북연합"이라고 밝혔습니다(1999.03.11 조선일보). 그의 이론은 적화통일을 위한 위장 이론입니다. 그가 토해낸 이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법적인 통일은 일단 집어치우고 '사실상의 통일' 상태를 이룩할 것이다. 사실상의 통일이란 무엇인가? 김정일을 적으로 보지 말고 그를 의심하지도 말며 그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면서 그의 환심을 사야 화해상태를 지속할 수 있다. 화해-교류가 통일의 키워드이다. 받을 것을 생각하지 말고 우선 퍼주어야 한다. 김정일에 대한 국민의 저항감을 없애야만 '고려민주연합국'이라는 연합국가가 탄생될 수 있다. 김정일에 대한 국민적 저항감을 없애고 그를 훌륭한 지도자라고 생각해야 어느 날 갑자기 남북연합이 선포되더라도 국민은 놀라지 않을 것이다".

 

임동원은 민화협, 한총련, 범민련 등 좌익 단체와 한 통속이며 그들과 함께 팀을 이루어 내통을 했습니다. 한총련과 범민련은 법원에서 판결 난 좌익들입니다. 민화협은 2001. "평양 8·15 민족통일대축전 행사"를 주도한 단체로 만경대(김일성 생가) 참관 시 방명록에 만경대정신 이어 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 “노동자계급 앞장서 조국의 자주적 통일 앞당기자등의 글을 남겨 사상적으로 문제가 많은 집단입니다. 과거 시국사범으로 구속됐다가 석방된 함운경(85년 미문화사건), 김성만-양동화(85년 구미유학생사건), 황인욱(92년 중부지역당사건) 씨 등도 들어있습니다. 민화협 위원장인 김영대씨는 사회민주당 위원장이기도 합니다.

 

 

1999.4.6, 임동원이 '주한미군 지위변경발언을 했습니다. 그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까지 열어 "주한미군 지위변경 문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는 발언을 했습니다. 이는 곧 실수라고 정정됐지만 그 여파는 상당했습니다. 북한은 99420일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4자회담에서는 미군 철수 문제가 기본 의제로 돼야 하며 이것을 떠난 4자회담은 필요 없다"고 논평했고, 그 후의 4자 회담에서도 "쭈빗쭈빗해 하던 종전의 태도"와는 달리 기세 좋게 주한미군 철수를 들고 나왔습니다. 이들의 실수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의도된 실수"였습니다(1999. 4.10 영남일보).

 

임동원은 희한한 말로 북한을 옹호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식적으로는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은 대내용일 뿐이다. 본심은 주한미군의 주둔을 인정하고 있다". 그는 이 말을 거짓으로 했을지 모르지만 결국 자신이 김정일과 내통하는 사이라는 것을 노출시킨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과 귓속말을 주고받는 모습을 여러 번 보여주었습니다(2001.12.02 월간조선).

 

1999.5.25-28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이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임동원은 페리조정관을 통해 그의 햇볕정책을 미국정책으로 받아들일 것을 강력하게 설득했습니다. 결국 페리조정관의 대북정책은 울부라이트 미국무장관의 방북과 클린턴의 임기직전 방북 의지까지 이끌어냈습니다. 이 때 일본에서는 김대중이 돈을 필요로 하는 클린턴에게 거금을 주었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1999.12월 임동원은 연하장에 "국정원은 통일의 횃불이 될 것을 굳게 다짐한다"(99.12.27 중앙일보)는 글을 썼습니다. 국정원이 통일부가 하는 일을 빼앗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비밀접선을 공식행사로 전환시켰습니다. 2000. 3. 9일 베를린 선언을 기획했습니다. "도로, 항만 철도, 전력, 통신 등 북한의 사회간접자본의 확충 등 더 많은 것을 북한에 주기 위해서는 민간차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많은 것을 주려면 정부가 나서서 드러내놓고 주어야만 한다. 그러려면 김대중을 만나주어야 한다"는 제스처였습니다,. 이는 김정일과 짜고 치는 게임이었습니다. 2000.6.13일부터 3일간의 방문은 김정일과의 접선을 위한 공식행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차안에서 김대중과 김정일은 단둘이 90분 간을 보냈습니다. 나머지 행사들은 들러리였습니다.

 

이를 모의하기 위해 2000,4.8, 임동원은 베이징에 가서 남북정상회담에 합의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는 뉴스는 4월 총선 3일 전에 나왔습니다. 표를 의식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선물을 김대중에 주는 대가로 김정일은 30억 달러를 받았다는 설이 언론가에 파다했습니다.

 

원래 방문은 6.12일로 결정했었는데 아무런 이유 없이 하루가 지연됐습니다. 김정일에게 입금시켜 줄 돈이 계좌착오로 제 날짜에 입금되지 않아서라 했습니다.

 

2000. 8.5-13일간, 46개 언론사 사장단을 방북시켜 김정일 팬으로 만들고 대부분의 언론을 친북 세력화 했습니다.

 

2,000. 9. 263명의 비전향 장기수를 아무런 대가 없이 영웅으로 만들어 북송했습니다.

 

2000.9.11-14간 일국의 스파이 기관장이 북한 김용순 비서를 밀착 수행하면서 밀담을 나누었습니다. 김용순으로부터 이끌어냈다는 장관급 회담, 이산가족 상봉은 그 후 실현되지 못했습니다(2000.10.28 동아일보). 결국 34일간의 밀착 동행과 신라호텔에서 이루어진 5시간 동안의 비밀회담은 통일전략에 관한 것일 수 있습니다. 이는 다음 사실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정빈 외교통상부 장관이 미국을 방문하고 귀국한 다음날인 2001. 02. 11일 임동원이 몰래 그리고 아주 급하게 미국에 날아갔습니다(2001.2.14 세계일보). 2001.3월 김정일 답방을 잡아놓고 미국에 일방적으로 통고하러 갔던 것입니다. 미국이 이에 대노하였습니다. 그래서 임동원은 국정원장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결국 9.12일 신라호텔에서 김용순과 5시간 동안 만났던 것은 바로 김정일의 서울답방으로 적화통일을 이룩해 보려는 수작이었을 것입니다. 이는 2000.9.14일자 대한매일에 의해 확인됐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내년 봄 서울 답방이 추진된다. 김용순과 임동원이 9.12일 신라호텔에서 만찬회동을 갖고 이같이 합의했다".

 

2000. 10. 9-14일 사이에 노동당 창건 55주년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임동원은 여기에 좌익 인사들을 대거 보냈으며 한완상은 축사까지 했습니다.

 

  (영토까지 내주려 했다)

 

2001. 6.2-6.7, 북한의 대형 선박들이 제주영해 및 NLL을 유린했을 때, 임동원은 3가지 특혜를 북한에 주려했습니다.

 

(1) 이번 통과에 대해서는 6.15정신으로 수용한다. (2) 제주해협 통항권을 북한에게도 개방한다 (3) 앞으로 북한이 사전 통보만 해주면 NLL을 언제든 통과할 수 있게 한다.

 

이와는 달리 UNC사령관은 북한에게 "귀측은 한국영토를 침범했다. 강력히 경고한다"는 메시지를 6.2일 밤 230분에 보냈습니다. 임동원은 영해를 북한에 내주자 했고, 8군사령관은 북한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 우리 영토를 지켜주었습니다.

 

 (이적 단체와 한 통속)

 

2001. 8. 15-21간 이적단체인 범민련을 창구로 사용하여 평양과 거래했습니다. 평양에서 열린 적화통일 행사에 337명을 날치기식으로 보냈습니다. 안보회의(NSC)가 북한의 악용을 우려해 방북 불허방침을 정했고, 통일부도 그 방침을 따르기로 했는데 임동원 혼자서 날치기로 보낸 것입니다. 이 중 100여명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습니다.

 

이들은 연방제 통일 운동에 눈물을 흘리고 찬양했습니다. 만경대(김일성 생가) 참관 시 방명록에 만경대정신 이어 받아 통일 위업 이룩하자”,“노동자계급 앞장서 조국의 자주적 통일 앞당기자등의 글을 남겼습니다. 백두산 밀영을 방문했을 때, 한 여성은 방명록에 백두산 정기를 타고나신 장군님이시라 훌륭한 장군님이 되신 것 같습니다라는 글을 남겼으며, 일부 인사들은 김일성 주석을 찬양하는 내용의 한별을 우러러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임동원은 국회해임건의안에 의해 쫓겨났지만 1주일만인 9.11일에 장관급 특보에 기용됐습니다. 김정일의 지시일 것입니다. 임동원은 북한에 이산가족이 많습니다. 이산가족을 인질로 김정일이 어떤 협박을 할 것인지 안 봐도 누구나 압니다. 그는 자신이 살기 위해 나라를 충분히 내줄 수 있습니다.

 

 (안보 허물기)

 

임동원은 200012월말까지 휴전선 지뢰를 무조건 제거하라 했습니다. 열흘 묶던 나그네 하루가 급한 식으로 시간을 닥달했습니다. 군은 105억원 어치의 지뢰제거 장비를 공수해왔지만 별로 사용되지 못하고 고철로 방치했습니다. 그리고 지뢰는 병사들의 손으로 제거됐습니다.

 

임동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의심하지 말자. 의심하면 될 일도 안 된다"(2002. 4. 8일 기자회견)고 말했습니다. 임동원은 적을 의심해야만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적을 의심할 위치에 있으면서 의심하지 말라고 설교하는 사람은 수상한 사람입니다.

 

그는 김정일과 5시간 면담한 후 돌아와 국방부에 압력을 넣어 주적개념을 땅에 묻게 했습니다. 이에 따라 또 다른 빨개이 김동신이 지휘하는 국방부는 2002. 5. 24, 국방백서 발간 무기한 연기했습니다(2002.5.25 조선, 중앙, 문화). 분명한 주적을 앞에 두고 있으면서 그 주적의 반응이 두려워 주적이라고 표기조차 못하게 하는 그가 과연 이 나라 사람입니까?

 

 김대중-이동원-김동신(2001~2002) 악의 트리오

https://www.youtube.com/watch?v=ITa5j_xfCK4&t=18s

 

김동신은 6.25때에도 군내에 간첩이 없다고 단언하면서 필자를 고소했다가 취하

 

"군번 1번의 외길 인생 이형근 회고록"(중앙일보사) 55-57쪽에 군수뇌부에 숨어있는 간첩을 의심하는 10대 불가사이가 기록돼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6.25전쟁 전후에 나타난 10대 불가사이를 지적함으로써 향후 국가방위를 위한 교훈으로 삼고 싶다. 그것은 군사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다. 나는 6.25 초전의 전후 사정을 종합 판단할 때 군 내외에서 좌익분자들이 긴밀하게 합작, 국군의 작전을 오도했다고 확신한다. 그러면 통적(通敵) 분자가 과연 누구냐? 나로서는 수상하다고 느껴온 사람이 있지만 심증만 갖고 꼭 집어 거명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들 가운데는 죽은 사람도 있지만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누군가가 확증을 제시할 것으로 믿으며 바로 이런 증언이야말로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도 긴요한 일이라 믿는다. 풀려야 할 가칭 10대 미스터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일선 부대의 적정보고를 군 수뇌부에서 묵살 내지 무시했다는 점이다.

 

둘째, 6.25가 발발하기 불과 2주일 전, 중앙 요직을 포함한 전후방 사단장과 연대장급의 대대적인 교류와 이동이 단행되었다. 모두가 지형과 병사에 익숙 치 못한 상태에서 전쟁을 맞았다

 

셋째, 전후방 부대의 대대적인 교대다. 6.13-6.20일에 걸친 전후방부대 이동 역시 가장 부적절한 조치였다.

 

넷째, 6.11부터 발령됐던 비상경계령이 6.240시에 해제됐다.

 

다섯째, 이런 위기 상황에서 육본은 비상경계 해제와 더불어 전 장병의 2분의1(50%)에게 휴가를 주어 외출과 외박을 시켰다.

 

여섯째, 육군 장교클럽 댄스 파티다. 장교들은 6.25일 새벽까지 술과 댄스를 즐겼다.

 

일곱째, 적의 남침 직후 우리 병력을 서울 북방에 축차 투입해 장병들의 희생을 강요했다.

 

여덟째, 적의 공세로 국군이 퇴각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6.25-27일 우리 방송 은 국군이 반격, 북진중이라고 허위방송함으로써 군부는 물론 국민들까지 상황판단을 그르치게 했다.

 

아홉째, 한강의 조기 폭파다. 병력과 군수물자가 한강 이북에 있는데도 서둘러 폭파했다.

 

열번째, 공병감 최창식 대령의 조기 사형집행이다. 최대령은 육군참모총장의 명령에 복종, 폭파했을 뿐인데 이에 책임을 지고 1950.9.21일 비밀리에 처형됐다.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김동신은 군번 1번 이형근 대장의 회고록을 "호국영령들의 넋을 모독하는 글"이라고 말했습니다.

 

2. 기무사가 1년여에 걸쳐 '좌익세력의 대군침투 실상'이라는 자료를 작성했습니다. 군내 좌익 세력이 1,000명이 넘고, 청와대와 권력 핵심부까지 김정일 추종세력이 있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강창성 의원 국정감사). 조성태 장관은 이 보고서를 전군 지휘관들에게 배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김동신 장관은 그 자료를 작성한 기무사 대공처장(염준장)을 해외출장 중인 2001.6.30일에 갑자기 전역시켰습니다"(월간조선 2001.8월호 심층취재 특종). 일용직도 아닌 장군, 더구나 간첩 잡는 일에 열심이었던 장군을 비상시기도 아닌데 해외출장 중에 갑자기 전역시킨 일은 분명한 좌익행위입니다.

 

3. 김동신이 합참 작전본부장(전대간첩본부장)이었을 때 그는 적을 가둔 포위망을 풀게 해서 3명의 적을 포위망에서 풀어주었습니다. 풀려난 간첩은 수명의 민간인을 죽이고 표일병을 죽이고 기무사 대령을 사살한 후 달아났습니다. 작전 상황을 세부에 이르기까지 신문에 발표하고 TV등에 생방송 했습니다. 세계에서 이런 예는 없습니다. 알아서 빠져나가라는 것이었습니다.

 

필자가 이를 법정에서 문제삼자 김동신은 강릉 간첩 포위작전을 매우 성공적인 작전이라고 주장합니다. 25명 중 25명 모두를 사살 및 생포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작전은 996.9.18-11.07까지 51일만에 종결되었습니다. 무장간첩은 26명이었고, 사살/생포는 25, 1명을 놓쳤습니다. 이는 국방부가 당시에 발표했던 공식 기록입니다. 13명 사살, 11명 자살, 1명 생포 1명 도주였습니다. 반면 우리측 피해도 많았습니다, 대령 및 대위 2. 하사관 1, 사병 4명이 사망했고, 17명이 부상했습니다. 민간인 사망자도 여러 명 있었습니다. 이게 성공적인 작전?

 

군 작전에 대한 가장 큰 비판은 포위망을 풀어준 데 대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8군단장(이호승)은 간첩 3명을 잡기 위한 포위망을 좁혀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김동신이 나타나 8군단장에게 포위망을 무조건 풀어주라 강압적으로 간섭했습니다. 서로 심한 말다툼까지 했습니다.

 

1) 조선일보(1996. 10:10):

* 10월 초 군은 돌연 합참 지시(당시 김동신 작전본부장)로 포위망을 풀고 수색병력을 훨씬 북쪽으로 재배치했다. 강릉 일원의 포위망이 풀렸다. 109일 민간인 3명이 강릉 일원 즉 포위망이 쳐져있던 지역에서 사살되었다.

 

3명의 간첩이 들어있었던 포위망을 풀어준 것입니다.

 

2) 중앙일보(1996. 11-11):

* 작전은 함참의 지휘로 이뤄졌다

* 작전실패의 쟁점은 강릉 칠성산 일대의 포위망 해체건이다. 군은 잔당일 102일 포위망 내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병력을 북쪽으로 빼냈다. 잔당들에게 도주로를 열어준 셈이다.

* 잔당 2명이 남긴 수첩에는 포위망을 푸는 틈을 이용하여 칠성산을 벗어나 오대산에서 민간인 3명을 사살했다.

유병현

3) 동아일보(1996. 11-8):

*103일 이후 잔당은 학교에서도 잤다. 용평 스키장, 민가침입, 3군단 사령부 찰영했다. 포위망이 풀려 가능했던 일이다.

 

4) 중앙일보(1996. 11-8):

* 무장공비 2명에서 나온 수첩은 한국군의 소탕작전이 얼마나 엉성하고 착오투성이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49일간의 이들의 도주행각을 보면 26명 중 25명이를 소탕한 게 우연이었을 뿐, 작전이 주효해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해 해주고 있다.

 

5) 조선일보(1996. 12.09):

* 국방위가 "합참이 일선부대에 작전실패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 여야 의원이 특검 보고를 듣고 "침투조 안내조장인 유림을 생포할 수 있었음에도 사살하게 된 경위와 표종욱 일병의 수색작업에 대한 해명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 우리 군 포대장이 안내조장인 간첩 유림과 2m 지점에서 5분간이나 대화했다면 간첩이 권총을 배들 의사가 없었다는 것"인데 왜 사살했느냐?

 

4. "김동신 국방장관은 지난 811일 국방부 국.실장 회의를 주재하면서, 앞으로 군에서 북한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를 호칭하거나 표기할 경우 반드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통일하도록 지시했습니다. 바로 김동신 장관이 '북괴'라는 용어를 군으로부터 완전히 폐기처분한 주역인 것입니다"(한겨레 2001.8.13). 이런 장관 밑에서 군의 그 누가 감히 '북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군의 총수가 김정일을 대통령 이상의 극진한 존칭으로 부르라고 명령하는데 그 어느 군인이 김정일을 함부로 대할 수 있겠습니까?

 

5. 2001.6. 211:43분에 14,000톤급의 초 마머드급 청진2호가 울산 앞 바다에서 발견됐고 이어서 7,000톤급과 4,000톤급이 제주해협을 유린하고 있을때 김동신 장관은 430분부터 골프를 쳤습니다(중앙일보 52001.6.23). 해군에는 이미 무력 사용을 하지 못하도록 조치한 것입니다. 현장지휘관에게는 "UN사 자동교전규칙이 주어져 있습니다. 적이 나타나면 위에 보고하지 않고서도 선조치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해군 현지 지휘관이 자동교전규칙을 적용하지 않고 31시간동안 적함에 농락 당했습니다. 대응을 하지 말고 정중히 모시라는 명령이 없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번 작전은 군이 독자적으로 수행한 게 아니라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수행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2001.7.12일 군 2성 장군에 의해 드러났습니다. 이는 곧 군에게 50년간 부여해왔던 자동교전규칙(SOP; Standing Operation Procedure)을 박탈당했다는 걸 의미합니다.

 

전쟁을 일일이 대통령에게까지 보고해서 한다면 그 전쟁은 초장에 집니다. 전쟁은 시간과의 전쟁입니다. 작전 예규라는 것은 그런 개념에 따라 위에 보고하지도 말고 눈감고 따르라는 자동교전 절차입니다. 이런 현장 작전권을 대통령이 빼앗아 갔다는 사실은 매우 중시해야 할 위험한 "대통령의 월권"입니다. 다음은 2001.6.14, 조선일보에 기고한 필자의 글입니다.

 

"북한 상선들과의 교신록 전문이 밝혀졌다. 두드러진 것은 62일 오후 1245분부터 63일 오전 930분까지 무려 21시간에 걸쳐 이뤄진 청진2호와 우리 해군 수원함과의 교신 내용이다. 이 교신 내용엔 현재 우리 군이 처해있는 처지와 심리상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참담함 그 자체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해군함정은 상부에 보고하기 전에 무조건 경고·정선·검색한 후 경우에 따라 나포해야 한다. 이는 연합사 자동 교전규칙이자, 우리 해군의 권한이다. 그러나 교신록에서 나타난 한국 해군 장교들의 말은 너무나 위축돼 있었다. 북한 함정에 바짝 접근해야 할 해군함이 오히려 5회에 걸쳐 북 선박에게 우리 함정과 너무 가까이 붙어 항해하고 있으니 2km이상 떨어져 항해해 주십시오. 위험합니다라는 부탁을 했다. “홍도해협은 우리 영해이니 제주남방으로 돌아가시오를 무려 23회에 걸쳐 간구했다. 이에 대해 북 선박은 김정일 장군이 지켜보고 계시다”, “6·15때 결정됐고, 공화국이 그어준 항로라서 변경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잘랐다. 물론 우리 해군도 상부의 지시를 받아 움직였겠지만, 북 선박과 교신하는 어투에 주눅이 들어있다. “하시길 권고합니다” “안전에 문제가 있습니다” “협조바랍니다” “지켜주시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됩니다”, “귀선의 입장은 알겠습니다는 등. 마치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심지어 북 선박이 우리 해군·해경함에 도발하지 말라고 나오는데도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해경함이 북 대홍단호에 대해 검색하게 해달라고 사정하는 것은 희극에 가깝다. “남측의 검색 의사를 (북측) 본사에 연락해 허락을 받아달라고 두 번이나 사정하다, 거절당하자 “(북 선박) 선장님 권한으로 방문을 허락해달라고 통사정하고 있다. NLL, 흑산도해협, 제주해협을 잇는 그 넓은 영해를 마음대로 휘젓고 다닌 북한선박은 큰소리 떵떵치고, 우리 해군 함정들은 농락당하면서 저들을 안내했다. 이번에 우리 군이 보여준 사정하고 매달리는 모습은 19996월 연평사태와는 너무도 딴판이어서 논라울 정도다. 이번 교신록은 군이 본분을 잊고 눈치집단화 했다는 한 증거가 될 것 같다".

 

국민의 자존심을 꺾고 군을 적군 앞에 무릎 꿇게 한 용서할 수 없는 좌익행위입니다.

 

6. 영해를 떼어내 북한에 주자고 했습니다.

 

자기 부하들을 적군 앞에 무릎꿇게 한 것도 용서할 수 없는 좌익행위이지만 영해가 너무 넓어 주체할 수 없으니 일부를 떼어 북한에 내어주자는 연구를 시키다가 언론의 질타를 받고 물러섰습니다. 이런 좌익이 우리의 국방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겨놓고도 국민은 태연합니다.

 

"국방부가 북방한계선(NLL)이 서해 42.5마일, 동해 218마일이나 돼서 NLL사수가 어렵기 때문에 NLL 수역을 '절대사수구역', '경비구역', '공해권'으로 3분하여 공해권 해역에 들어오는 상선에 대해서는 '침범'이 아닌 '통과'로 인정하겠다고 하니 참으로 한심하다"(조선일보 사설 2001.6.17).

 

7. 주적개념과 국방백서 발간을 포기했습니다.

 

주적개념을 국방백서에 넣을 수 없어서 해마다 발간해 오던 국방백서 발간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발표했습니다(2002.5.24 일간지). 북한이 주적인지 아닌지는 휴전선이 말해줍니다. 국방장관이 김정일이 무서워 북한을 주적이라고 백서에 조차 감히 표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는 "북한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를 호칭하거나 표기할 경우 반드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통일하도록 지시할 만큼 김정일에 극진한 존칭을 사용하도록 강요하는 김동신 장관이 어찌 언감생심 북한을 주적이라고 표기를 하겠습니까?

 

8. "2000.8.22일 김동신 장관이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으로 갈 때에 임진각에까지 가서 꽃다발을 건넸습니다"(민원 회신에서도 본인 인정)

 

9. 국방일보가 2001.3.22일자 9면에 북한의 피바다를 크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습니다. 북한의 피바다를 극찬한 국방일보에 대해 기무사가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기초자료 조사에 착수하다가 군수뇌 분위기에 눌려 수사를 그만 두었습니다(주간조선 2001. 4.25). 김동신 장관의 분위기에 눌려 간첩 잡는 일이 중단된 것입니다. 앞서에서도 김동신은 군에는 에나 지금이나 간첩이 없다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

 

여론이 빗발치자 국방홍보원장이 교체됐다. 김동신 장관은 국방위에서 "문제의 기사는 예술작품을 통해 김일성부자의 우상화에 치중하고 있는 북한의 실상을 알리자는 취지에서 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주간조선 2001. 4.25)

 

10. 조선일보는 "여순반란 사건에서 좌익 반란군을 정당화 및 미화시킨 영화 "애기섬" 제작에 군이 트럭, 헬기, 소총, 군복 등을 지원했다해서, 김동신 장관을 책임지고 물러나라" 했습니다(2조선일보 001.9.18)

 

11. "최근 김남국 예비역 대령이 964월 총선을 앞두고 '북풍사건'을 조작하는 데 김동신 전 총장이 관여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동신 전총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강력히 부인했습니다"(조선일보 2000.6. 16).

 

19964, 김동신은 중장으로 비정규전과 평시작전을 총괄하는 합참작전 본부장이었습니다. 바로 몇 달 후인 9월에 김동신은 강릉 작전에서 무조건 포위망을 풀라해서 간첩 3명을 풀어준 바 있습니다. 김남국 대령의 주장은 실로 엄청난 명예훼손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김남국 대령에겐 소송을 하지 못하고 앉아서 당했습니다.

 

12. "한총련이 긴급수배전단 일제히 살포했습니다. 수배자 명단은 김영삼, 이회창, 조성태, 김용갑이었습니다. 조성태 전장관은 '주적개념을 유지하는 주한미군의 졸병'으로 표현됐습니다"(월간조선 2001. 2.21). 주적개념이 확실한 조성태 장관이 뚜렷한 이유 없이 갈렸습니다. 그리고 임기 말 막바지에 김동신이 들어와 친북 작전을 노골적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13. "주적개념을 확실히 밝힌 조성태 장관은 재임기간 내내 북으로부터 반통일 세력이라는 흑색선전을 당했지만, 김동신 장관에 대해서는 흑색선전이 별로 없습니다"(월간조선 8월호 심층취재 특종)

 

14. 지난 61일 철원에서 새로운 땅굴을 발굴하여 제보했지만 그는 조사해보지도 않고 땅굴이 아니라고 일축했습니다(강원일보/강원도민일보. 2001. 6. 1)

 

 김대중-임동원-김동신이 적을 위해 만든 교전규칙

 

 

 

서해 NLL을 해상의 화약고라 부른다. 1999615일 발발한 연평해전은 우리 해군의 화려한 완승으로 끝났다. 벼르던 북측은 3년 뒤인 2002629일 서해교전을 일으켰다. 우리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했다. 일방적인 참패였다. 국가를 지키다 장엄하고 비참하게 생명을 바친 용사들을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는 적대시하고 괄시했다. 6.29는 쌍방교전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우리가 당한 테러였다.

 

북한 함정은 구식이고 우리 함정은 신형이다. 북한 함정에 장착된 총포에는 자이로 시스템이 없어 배가 파도에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총 끝이 요동을 친다. 하지만 우리 함정에 장착된 총포는 배가 아무리 흔들려도 총 끝이 목표를 꽉 물고 있다. 이러한 "자이로 조준시스템"200112, 북한 괴선박을 몇 초 이내에 침몰시킨 일본 순시선에도 있었다. 우리 해군 총포의 위력은 이런 순시선이 문제가 아니게 크다. 우리에겐 더 정교한 미사일도 많다. 우리 함정은 북한 함정보다 10노트 이상 더 빠르다. 싸우면 북한 함정은 적수가 되지 않는다.

 

6.29에서 참패한 것은 김대중이 지휘관의 소관사항인 야전작전권을 박탈한 데서 기인했다. 김대중은 "절대로 먼저 쏘지 말라", "쏘려면 청와대에 보고부터 하라"는 기막힌 명령을 내렸다. 여기에 더해 군수뇌는 매우 이상한 "교전규칙"을 만들었다. 그 교전규칙이 어떤 것인지를 음미해보면 당시의 군수뇌는 한국군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적의 포구에 가슴을 정면으로 대주고 처분을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당시 제정됐던 아래의 교전규칙은 기존의 UN사교전규칙을 뒤엎은 것이었다.

 

첫째, 소총 유효사거린인 450m에서 경고방송을 하라는 것이다. 6.29에서 북한이 발사한 85 미리 포의 명중 사거리는 8km나 된다, 450m 앞에까지 다가가서 경고방송을 하라는 것은 아예 얼굴을 갖다 대주라는 것이다.

 

두 번째 규칙은 200m에서 시위기동을 하라는 것이다. 아예 맞아 죽으라는 것이다.

 

세 번째 규칙은 450m에서 차단기동을 하라는 것이다. 적함은 선수를 보이고 있는데 한국 함정은 기다랗게 늘어진 옆구리를 보이며 적의 앞을 가로질러 가라는 것이다. 심장을 적의 총부리에 내주고 한동안 옆걸음을 해서 통과하라는 것이다. 북한의 처분만 바라라는 명령이다.

 

6.29당시에는 바로 이 제3단계 수칙을 수행하다가 비참하게 테러를 당했다. 교전규칙은 처음부터 맞아죽으라고 만든 것이었다. 이런 교전규칙을 만든 사람을 찾아서 응징해야 할 것이다.

 

20006.15, 김대중이 모든 국민에 말했다. "앞으로 전쟁은 없다". 20016월에 김대중은 현지 지휘관의 작전 재량권을 회수하여 손과 발을 묶었다. “교전하기 전에 먼저 보고하라” 20024.3-4.6, 임동원은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북한에 가서 5시간동안 김정일과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했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을 의심하지 말자, 의심하면 될 일도 안 된다". 2002.5.24, 김동신 국방장관이 주적개념을 땅에 묻겠다고 선언했다. 적을 의심해야 할 위치에 있는 세 사람이 국민과 군에게 의심을 풀라고 강조하면서 북한을 적이라 부르지 말라했다. 의심이 없으면 안보도 없다. 이 세사람은 안보를 죽인 것이다.

 

2002.6.30일자 조선일보 3면에는 이런 기사가 있다. "북 경비정이 갑자기 85mm 함포로 불을 뿜었다. 고속정 2척에 타고 있던 장병들은 즉각 "총원 전투배치" 상태로 돌입했다". 모든 장병들이 화해와 평화만 믿고 "전투배치"조차 하지 않은 채 접근했던 것이다. 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저들은 우리 장병을 속이기 위해 6.27일과 28일에도 왔다가 포구를 우리 경비정에 조준하고는 씨익 웃고는 그대로 돌아갔다. 29일에도 포구를 경비정에 조준했다. 장병들은 이번에도 의례히 씨익 웃고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긴장을 풀었을 것이다. 이런 속임수로 저들은 일방적으로 테러를 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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