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 내용 요약 > 최근글

본문 바로가기

System Club 시스템클럽

최근글 목록

[5.18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 내용 요약

페이지 정보

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11-28 21:56 조회967회 댓글0건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본문

             항소이유서 증188로 표시된

       [5.18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 내용 요약

 

2019.2.8.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14:00~18:00까지 4시간 동안 발표된 발제문입니다. 스스로를 5.18민주화유공자라고 밝힌 국회의원 설훈, 민병두, 최경환이 이 발제문 내용이 허위사실이고 그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고소를 했습니다. 하지만 영등포 경찰서는 2019.12.30. 위 발제내용이 [의견]에 해당하며 고소인들은 [집단표시에 의한 명예훼손] 판례에 의해 고소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의견으로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송치하였습니다. 하지만 남부지방검찰청은 이에 대해 아직 아무런 처분조치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1122.PNG

 

아래는 [5.18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 내용의 요약입니다.

 

1(7~10):피고인의 5.18연구는 두 가지 분야로 이루어져 왔다. 2002년부터 201410월까지는 문헌연구, 201555일부터 현재까지는 노숙자담요가 제공한 영상분석을 토대로 하는 영상연구로 이루어져 왔다.

 

2(10~112):5.18연구가 왜 중요한가? 5.18마패만 들면 헌법도 대통령도 제압된다. 5.18을 등에 업은 민주화세력의 무소불위의 독재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는 5.18이 사악한 정치목적에 악용되고 있음을 뜻한다. 이는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3(11~41) 5.18 일지: 5.18은 정부와 폭동세력 사이에 발생한 10일 동안의 충돌사건이다. 위 발제문의 11~41쪽에는 이 10일 동안의 폭동-진압 상황이 요약돼 있다.

 

518(): 학생으로 위장한 폭도250여명이 책가방에 돌멩이를 숨겨가지고 전남대 정문을 지키고 있던 공수대원 20명에게 도서관에 가겠다고 시비를 걸면서 투석하여 분노 유발시킨 후 금남로로 달려가 차량과 파출소를 파괴하고 불을 질러 검은 연기가 나게 하여 사람들을 모이게 한 후 광주시민이 수십 명 죽었다,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씨를 말리러 왔다, 계엄군이 여성들을 발가벗기고 희롱하였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살포했다.. 이날 7공수 여단 2개 대대는 광주지역 사단장 정웅 소장의 작전지휘를 받았으며, 오후 4시경, 정웅은 36개 길목에 계엄군을 배치하여 그 안에 들어 있는 젊은이를 모두 체포해 31사단 헌벙대로 넘기라 명령했다. 2명의 대대장은 길목 당 4~5명씩 배치해 젊은이들을 체포하려 했다. 중과부적인 상황에서 병사들은 곤봉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519~20: 이 양일간 엄군이 수적 열세에 몰려 시민군으로부터 매타작을 당했다. 수적 우위를 차지한 시위대는 대형 버스와 트럭을 지그재그 궤적으로 몰아 계엄군을 향해 돌진했고, 계엄군은 이리저리 피하면서 차온다는 소리에 노이로제 공황상태로 내몰렸다. 불타는 드럼통을 계엄군을 향해 굴리고, 경상도 차량만 보면 탑승자들을 집단 구타해 살해했다. 520일에는 공수부대 5개 대대(1,500)가 전남대와 시청에서 수만 명 시위대에 포위되어 몰살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했고, 521일 오후 5시에는 구사일생으로 시 외곽으로 탈주하기에 이르렀다. 공수부대가 곤봉을 사용한 것은 오직 518일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뿐이었다.

 

521: 이날 600명의 조직화된 시위대가 벌인 행위는 군사작전에서도 세계 최상급의 특공작전이었다. 521일 제20사단 지휘차량 부대는 08:00시에 광주 톨게이트를 통과하도록 계획돼 있었다. 이 이동계획은 극비 중의 극비에 속했다. 그런데 시위대 300명이 이 이동계획을 사전에 입수해 하루 전에 토끼몰이식 장애물을 설치하고 여러 시간 전에 매복해 있다가 20사단 차량부대가 정확히 그 지점을 08:00시에 통과하자 주로 몽둥이와 화염병으로 공격하여 사단장용 지프차 등 14대의 지프차를 탈취하여 인근 군납업체인 아시아자동차 공장으로 갔다. 09, 아시아자동차 공장에는 또 다른 300명이 몰려와 600명이 되었다. 이들 600명은 단 한 차례도 출고되지 않았던 최신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370여대를 탈취하여 그들을 몰고 전남 17개 시군에 위장돼 있던 44개 무기고를 불과 4시간 만에 습격해 5,403정의 총기를 탈취했다. 전남도청에는 TNT를 가지고 2,100발의 폭탄을 조립해놓고 광주시를 히로시마로 만들 수 있다고 협박하였다. 방송국과 세무서, 파출소들을 불태우고 도청과 전남대에 집합해 있는 계업군을 포위 공격하여 계엄군을 시외곽으로 내쫓고 도청을 접수하였으며 이날부터 광주교도소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27~31쪽에는 19개의 현장사진이 소개돼 있다. 2016519, 증인으로 출두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김양래에게 이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지휘체계가 갖추어진 이 사람들이 광주시민이냐고 물었을 때, 김양래는 광주시민이 아니라고 답했다. 전두환이 또다른 군부대에 민간복을 입혀 투입시킨 [전두환 편의대]일 것이라고 답했다.

 

134.PNG

 

522~24:전남도청을 완전 점령한 그룹은 광주시민이 아니라 외지인이었다. ‘수습학생위원회라는 글자가 새겨진 어깨띠를 두른 외지인들이 광주의 똘똘해 보이는 청년들을 연행해가는 사진들이 있다. 이들의 이름은 해남농민활동가 김인태와 학원 교사인 김중식이며 이들은 사망자 명단에 들어 있다.

 

528.PNG

 

 

524~27: 524일 낮까지만 해도 광주시민은 외지인이 점령한 도청(에 들어갈 수 없었다.

 

512.PNG

59‘5.18항쟁증언자료집에는 5.18유공자 최고반열에 속한 ‘5.18항쟁본부핵심 간부들의 증언들이 있다. 이 증언자들은 한결같이 521일 총소리가 나자 자기들은 각자도생하자며 숨어 다녔고, 524일 낮에는 고위 공무원들로 보이는 위엄 있는 사람들이 도청출입을 금지시켜 들어갈 수 없었고, 24일 밤부터 도청에 들어왔다고 증언했다. 도청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었고, 매일 토론을 하지만 싸움질만 했다. 그러다가 5.27. 새벽 점령되었다.

 

912.PNG

267.PNG

4445.PNG

 

 

4, 게릴라 프로필(41~47): 북한 특수군 군인 600, 비군인 900명 정도로 추산, 내국인 광수 13명으로 추정한다는 내용이 있다. 5,18현장을 누빈 600의 존재가 명시된 것은 4개 자료다. 1995. 검찰이 작성한 [5.18광련사건수사결과], 1985. 안기부가 작성한 5.18상황일지, 1982년 북한 조국통일사가 발행한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 595, 1985년 북한 조국출판사가 발행한 [광주의 분노]의 제35쪽에 있다.

179.PNG

 

4561.PNG

 

5, 광수 영상분석 동기와 정확도48~62): 혓바닥광수, 주걱턱광수, 경찰광수, 얼굴만 보아도 무조건 광수얼굴 등으로 소개하였음.

33445.PNG

 

6, 5.18이 북한 역사인 증거 제시(63~69):5.18 때 광주 어린이들이 계엄군 아저씨를 매우 따랐다는 사진, 600명 광수 중 전남 광주사람 전무하다는 사실은 객관성 없는 광주-전남인들이 증명한 것이 아니라 1999년 방송 3사가 객관적으로 증명하였다. 20155.18 30주년 기념행사의 가두행진은 김정일-김대중이 횃불을 맞잡은 초대형 조형물이 상진하고 있다. 김일성이 황석영과 윤이상을 북으로 불러 1989~915.18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를 제작해 해마다 상영하고 있다.


5561.PNG

 

4456.PNG

 

통일부 주간정세보고서들에 의하면 북한은 해마다 전지역의 도, 광역시, , , 도시 단위로 5.18기념행사를 성대하고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