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민 진정서(광주 폭력에서 구해주십시오)-상 > 최근글

본문 바로가기

System Club 시스템클럽

최근글 목록

대국민 진정서(광주 폭력에서 구해주십시오)-상

페이지 정보

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01-06 12:04 조회1,202회 댓글0건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본문

            대국민 진정서(광주 폭력에서 구해주십시오)-상 

 

수신: 대한민국국민

진정인 지만원

피신청인

1. 재단법인 5.18기념재단 대표자 이사 이철우

광주 서구 내방로 152 (쌍촌동, 5.18기념문화관)

2. 사단법원 5.18민주유공자유족회 대표자 이사 이영훈

상동

3. 사단법인 5.18구속부상회 대표자 이사 문흥식

광주 서구 치평동 1268(5.18기념문화관)

4. 사단법인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대표자 이사 김이종

광주 서구 내발로 152(쌍촌동, 5.18기념문화관)

5. 광주지방법원

광주 동구 준법로 7-12

6. 광주고등법원

광주 동구 준법로 7-12

 

진정 요지

 

대한민국 위에 군림하는 4개의 5월단체와 광주법원에 의해 기해지는 권력 남용이 진정인의 기본권 침해를 넘어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를 호소할 데가 없어 좌절하다가 한 때는 국가인권위원회에 호소하기로 마음먹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인권위원회가 좌익 일색으로 구성되었다고 하기에 하는 수 없이 국민 제위께 답답함을 진정하고자 합니다.

 

진정인의 약력

 

진정인은 194211월 생으로 육군사관학교를 22기로 졸업한 후 소위-대위 시절 44개월 동안 베트남전 전투요원으로 참전하였고, 인헌무공훈장과 고엽제 관련 상이6급 유공자가 되었습니다.

 

소령 시절인 1975년에는 미국 해군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중령 시절에는 또 다시 미 해군대학원에 가서 시스템관련 응용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http://www.systemclub.co.kr/bbs/board.php?bo_table=31&wr_id=1

 

1980년에는 중앙정보부에 근무했고, 1981년부터는 국방연구원에서 6년 동안 연구를 하였습니다. 1987년 대령으로 예편한 후 모교인 미 해군대학원에 가서 3년 동안 교수생활을 한 후 프리랜서로 저술, 강연, 방송 활동을 하다가 1998년 김대중의 햇볕정책에 놀라 그 후부터 현재까지 20여 년 동안 반공활동을 해오고 있는 사람입니다.

 

공인된 연구역량

 

진정인은 육사에서 이과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미 해군대학원에서는 문과분야인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시스템분석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박사과정에서는 수학공식 2개와 수학정리 6, 해군 함정이 작전을 나갈 때 창고에 적재해야 할 수리부속 적정량을 계산하는 알고리즘을 창조했습니다. 연구능력에 대한 훈련을 비교적 많이 받은 사람으로서 1981년부터 6년 동안은 국방연구원에서 연구를 수행-지휘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1987년부터 3년 동안은 미 해군대학원 교수생활도 했습니다. 교수생활을 하던 중 6개월에 걸쳐 미국 국방성 근무도 하였습니다. 진정인은 이러한 학력과 연구경력을 가진 학자로 2002년부터 현재까지 20년 동안에 걸쳐 국가차원의 공익과제인 5.18연구에 일신을 바쳐왔고, 연구결과를 4,000여 쪽에 달하는 10개의 역사서에 담아놓았습니다. 불과 3년 동안의 박사과정을 통해 수학공식과 수학정리(Mathematical Theorem)를 내놓았듯이 저는 20년의 연구결과 [북한군 개입] 학설(Historical Theory)을 내놓았습니다.   

책 10권.PNG

 

5.18역사를 연구하게 된 동기와 저술한 역사책 10

 

진정인은 지역감정이 없는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도곡리 267번지 산골에서 화전민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강원도출생.PNG

 

5.18 소요가 발생했을 때에는 미국에서 논문을 쓰고 있었습니다. 어느 모로 보나 5.18 사건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출입국.PNG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198010월 입국하면서 곧바로 당시 중앙정보부 지휘부의 특별보좌관으로 보직되었습니다. 거기에서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말들을 많이 들었고, 5.18은 김대중이 배후 조종한 내란음모 사건이라는 보고서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베트남에서 게릴라전을 44개월 동안이나 수행했던 저는 광주에서 발생한 폭력 내용들이 정확히 게릴라 활동에 해당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98년 김대중과 임동원이 추진한 햇볕정책과 금강산 사업, 기업을 닦달하여 북한을 도와주게 한 행위, 물자 퍼주기, 20006월을 장식한 남북정상회담의 진면목을 주의 깊게 관찰하였습니다. 2002년 하반기에 발생한 노동자 운동, 마늘파동에 관련한 농민시위 등을 보면서 2002년의 대선이 제대로 치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공익적 염려를 하게 되었고, 그 염려의 뜻을 6하 원칙에 의해 동아일보 등에 의견광고의 형태로 기재하였습니다. 3,500자에 해당하는 광고문 중에는 35자에 해당하는 한 문장이 있었습니다. 마늘폭동이 제25.18폭동으로 진전될 수 있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5.18의 성격을 간단히 약술했습니다. “5.18은 소수의 불순분자들과 북한특수군이 야합하여 순수한 광주시민을 선동해 일으킨 폭동이라는 구절이었습니다(4). 5월단체들이 저를 고소하였습니다. “북한군 개입표현이 5월 단체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변호인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서울로 이송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4조와 제15조를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광주지검은 이에 대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수사관과 경찰 4명을 안양소재의 제 주거지로 보냈습니다. 이들은 가족들이 울부짖는 앞에서 저의 팔을 뒤로 꺾어 뒷수갑을 채워 차에 밀어 넣었습니다.

 

6시간의 압송도중 린치와 폭력을 쉴 새 없이 당했고, 415호 검사실에 도착해서도 수갑을 뒤로 채인 채 욕설과 구타 협박에 시달리며 2시간 동안 더 조사를 받았습니다. 광주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그 위에 존재하는 생지옥이었습니다. 징역 10월을 선고받았습니다(4). 피고인은 직감했습니다. ‘5.18에 무슨 검은 사연이 있을 것이다.’ 피고인에 연구 의지가 생겼습니다. 10년이든 20년이든 진실을 밝혀낼 것이라는 사명감이 생긴 것입니다. 전두환 측 변호인으로부터 수사기록을 빌렸습니다.

수사기록.PNG

 

18만 쪽에 해당한다는 수사기록들을 가지고 2,1704부작 [수사기록으로 본 12.125.18]에 압축해 놓는데에만 만5년이 걸렸습니다. 이후 최근까지 5.18역사서 10권을 발간하였습니다. 이들 중 5월단체가 소송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첫 4부작, 5.18영상고발, 무등산의 진달래입니다.

 

진정인이 발행한 총 10권의 5.18역사 저작물에 실린 주요 내용들

 

1. 4부작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8] (2008)

1234.PNG

110.26과 12의 시대적 배경살육 현장대통령 비서실 상황차 속의 상황, B-2벙커 상황국방부 청사 상황전두환의 등장김재규 연행과정김재규의 시해동기정승화의 이상 행보정승화의 수사방해김재규-정승화의 군벌 인맥정승화 연행계회한남동의 총소리김진영의 공관출동대통령 재가과정노재현 장관의 기행, 12.12에 대한 신현확의 증언노재현의 신문 내용장세동과 허화평 진술육본 상황갈라진 군벌장태완의 난동, 12.12.의 마감과 결산민주화세력의 천하검찰의 역사 평가구속당하는 전두환헌법재판소의 위헌행진헌법소원, 5.18특별법 제정특별법의 위헌성검찰의 기소행진재판과정판사들이 다시 쓴 5.18역사 등이 수록돼 있습니다이런 내용들은 역사물의 내용이지 5월단체들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한 내용들이 아닙니다.

 

1권의 첫 부분은 10.26과 12.12입니다난삽하게 흩어진 수사기록들을 시간대별로 정리하는 이 작업은 몰입의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제대로 쓸 수 없는 작업이었습니다. 5.18에 대해서는 상황일지를 잘 요약하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10.26과 12.12는 고도의 분석력을 요했습니다광주의 명예를 훼손시키려면 무엇 때문에 이런 어려운 과업을 수행하겠습니까?

 

22권은 순전히 5.18 상황을 정리한 책입니다.10.26 직후의 안보상황재야세력의 방해 속에 출범한 최규하 정부김대중 주도의 선동시국학생시위의 폭력화 행진학생폭력의 실체노동폭력의 실체최규하 정부의 대응군부의 대응보안사의 대응북한의 남침 정보전군지휘관회의광주로 몰려든 먹구름광수사태 10일 간의 날짜별 상황정리, 5.18주동자들은 어디에계엄사 발표문 등입니다2권은 5.18 10일간의 상황을 정리한 책입니다.

 

35.18을 보는 시각들이 정리돼 있습니다과격시위냐 과잉진압이냐계엄군과 시위대 중 누가 광주를 더 사랑했나진압군 측 사람들의 진술반진압군 사람들의 진술정호용의 공판 진술이희성의 공판 진술광주소요 10일의 결산영화 화려한 휴가’, 오보의 전성시대미 헤리테지재단 보고서이정로(백태웅)의 기고문끝나지 않은 모략전간첩 배후 조종 없는 소요는 없다김일성 비밀교시민주화의 실체북한군 출신들의 증언, 5.18과 4.3의 유사성 등입니다.

 

미헤리티지 재단 보고서여기에는 한국사회에 광주 피해가 과장돼 있지만 한국군은 최후까지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요지가 기재돼 있습니다.

 

이정로(본명 백태웅)이 월간 노동해방문학 19895월호 특집에 기고한 글의 일부는 5월 세력의 5.18관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광주의 노동자와 민중은 아세아자동차에서 장갑차를 몰고 나오고 파출소의 무기고를 덮쳐 캐리버50을 꺼내오고화순탄광에서 다이너마이트를 끌어다 싣고 왔다권력의 총구가 민중의 가슴팍을 겨누고대검에 찔린 민중의 배에서 창자가 꾸럭꾸럭 허리 아래로 흘러내릴 때 민중의 뼈저린 자각은 저항의 총구에 불을 붙였다마찬가지로 오늘날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선 권력이 화해할 수 없는 적대적 존재라는 깨음에 신나를 몸에 끼얹고 활활 타오르는 노동자에게도 광주의 경험은 다시 살아나야 한다농약을 들이마시고 절명하는 농민들에게도 광주의 희망은 부활해야 한다이것이 우리가 광주봉기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뜯어고치고 알짜배기 혁명의 교훈을 찾아내야 하는 이유이다. . ”

무장을 통하여 권력을 탈취하고자 하는 시도낡은 권력을 깨뜨리고 새로운 권력을 수립하고자 하는 광주민중의 영웅적 투쟁의지를 살려야 한다. '무장봉기'라는 규정은 광주민중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총체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유일한 명칭이다광주 민중은 민주주의를 위한 '압력'을 넣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도'하기 위해서 총을 들었다그것은 '시민항쟁'의 차원을 넘어서서 '반란'이요 '혁명'이며, '주권탈취'의 한판 싸움이었다광주의 민중은 '비굴한 타협'이 아니라해방을 위한 '총공격'의 신명나는 한판을 벌였다그것은 '실패한 무장봉기'였다만약 광주지역의 승리가 전남 전체지역의 승리로 그리고 나아가 전국적 승리로 되었다면 위대한 민족민주혁명의 성취로 이어졌을 것이다그 처절하게 참혹한 실패를 정확하게 배우고 새로운 혁명의 첫걸음을 열기 위해서도 우리는 광주를 '무장봉기의 도시', 권력을 일시적으로나마 민중이 직접 소유한 소중한 경험을 가진 '혁명의 도시'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4김대중의 내란음모사건김대중의 일생역사뒤집기의 시동주요쟁점들검찰이 본 5.18, 검찰의 법적 판단수사결과에 대한 언론보도검찰의 관심법화려한 법리논쟁대법원 판단의 요지와 쟁점기막힌 정호용의 죄, 5공의 배신자들허화평의 항변공수부대 장병들의 증언방송작가가 바라본 재판현장, 5.18은 성역인가주요쟁점들에 대한 필자의 생각황당한 판결들재판이 무효라고 생각하는 이유 등입니다.

 

2.2부작 상하 [수사기록으로 본 다큐멘터리 역사책 압축본 12.12와 5.18](2009)

223.PNG

이 책들은 4부작을 요약한 책입니다하권의 제128쪽부터 238쪽에는 탈북자들의 5.18수기들이 실려 있습니다.

 

3. [솔로몬 앞에 선 5.18](2010)

351.PNG

2008년 피고인이 발간한 4부작에 대해 5월 단체가 또 고소를 했습니다. 2개의 단독재판부가 재판을 미루거나 회피하여 합의부가 형성됐습니다재판을 받으면서 피고인은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서 실로 많은 북한자료를 접했습니다. 1989년 김일성이 황석영과 윤이상을 북으로 불러 [님을 위한 교향시]라는 5.18영화를 제작한 사실을 처음 알았고많은 네티즌들과 함께 공동 시청하였습니다.

541.PNG

이어서 북한 당국이 발간한 많은 단행본들과 간행물들을 접했습니다이 모든 자료의 내용들이 수시기록과는 전혀 딴판인 반면 광주에서 유통되고 있는 과장내용들과 동일하였습니다피고인은 연구에 신천지를 발견했다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이런 내용들을 증거자료로 제출하기 위해서는 재판부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대외비인 북한 자료들을 반출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달라고 재판부에 간청하였습니다재판부의 도움으로 피고인은 수많은 북한자료를 복사할 수 있었습니다이제까지 많은 국민들에 ”5.18의 바이블로 알려진 [시대를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약칭 넘어 넘어’)라는 책은 그 저자가 황석영이 아니라 북한책들을 모자이크하여 펴낸 저자 없는 책이라는 것도 증명하였고이는 2010.11. 신동아가 재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넘어 넘어]는 1982년 조국통일사가 발행한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과 1885년 노동당출판사가 펴낸 [광주의 분노]를 모자이크한 책이었던 것입니다. [넘어 넘어]는 위 북한 책들에서 공수부대를 모략하는 내용만을 추려서 모자이크한 것이었습니다그러나 위 2권의 북한책들은 광주의 여러 현장에서 발생한 상황들을 소설책처럼 자세하게 묘사했으며이 묘사한 내용들을 읽으면 광주에는 북한 사령부가 와서 게릴라 작전을 수행했다는 점을 금새 알 수 있었습니다피고인이 게릴라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3장이 이 책의 핵심입니다여기에는 광주에 북한 사람 있었다’, ‘광주에 북한 상황실 있었다’, ‘광주에 북한 지휘통제부가 있었다’, ‘5.18은 북한이 기획-연출했다’, ‘광주에 북한특수군 왔다’, ‘유언비어 발상지는 북한이었다’, ‘광주 실황중계방송은 북한 방송이었다’, ‘민주화운동은 적화통일운동’, ‘5.18원동력은 반골정신’, ‘황석영 책과 북한 책은 일란성 쌍둥이’ 등이 담겨 있습니다.

 

4. [5.18최종보고서](2014)

761.PNG

 

이 책에 더 보태진 자료는 ‘5.18기념재단측이 보유한 책 [5.18항쟁 증언자료집]입니다. 5.18을 주도했다는 5.18유공자 최고반열에 속한 이른바 5.18항쟁주역들인 김창길김종배정상용허규정박남선 등이 2002년에 증언한 내용을 전남대학교 출판부가 엮은 책입니다이들의 증언내용은 한마디로 1980년 5월 21일부터 1980년 5월 24일 낮 시간까지 도청을 배타적으로 점령했던 외지인이 떠난 이후에야 서로 얼굴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모여 시민학생수습위원회‘(일명 항쟁본부)를 구성했고이들은 서로 말다툼만 하다가 계엄군에 점령되었다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와 전남 17개 시군을 뒤흔들었던 광주시위를 구성한 사람도 없고지휘자도 없다는 뜻이었습니다수사재판 기록북한기록항쟁지도부 사람들의 증언을 합치니 5.18연구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제1장이며 여기에는 5.18 기간 10일을 3개 기간으로 분류한 것입니다. 5.18~21을 제1단계인 북한특수군의 작전기간, 5.22~25를 제2단계인 광주유지들이 주도한 무기반납 및 협상기간, 5.26~27을 제3단계인 소수의 20대 노동자들이 벌인 객기의 기간으로 성격 규정을 한 것입니다특히 제34~63에는 도저히 광주시민으로 볼 수 없는 주역들이 행한 작전장면을 촬영한 현장들이 있습니다항쟁본부를 형성하여 5.18을 주도했다고 선전하는 5.18유공자들은 모두 제3단계를 주도한 사람들일 뿐이었습니다.

 

2장에는 북한특수군 600명이 5.18을 주도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들이 실려있습니다남한 당국자료에도 북한특수군 600명이라는 숫자가 있고북한 당국 자료에도 600명의 주역들이 광주에 있었다고 기록했습니다. 5.18기념재단 홈페이지에도 외지인 500여명이 광주에 왔었다는 기록이 있고그 유명하다는 광주출신 기자 김영택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3장은 북한의 황장엽 김덕홍을 위시한 탈북자들의 증언이 실려 있고4장에는 광주 5.18단체들의 집요한 사실왜곡과 자료조작 행위들이 나열돼 있습니다5장에는 김영삼이자기가 처한 정치적 궁지를 모면하기 위해 5.18역사를 왜곡한 내용들이 정리돼 있고6장에는 수사결과는 동일한데 판결이 시대에 따라 정반대로 바뀌어졌다는 내용, 5.18관련법 3개가 왜 폐기돼야 하는지에 대한 논리가 전개돼 있습니다7장에는 5.18을 폭력과 억지로 성역화 해왔다는 사실들이 정리돼 있고8장에는 국가역사가 5.18세력에 의해 침탈당하고 있다는 분석이 전개돼 있고9장에는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데 대한 18개의 SMOKING GUN이 정리돼 있습니다.

 

5. [5.18영상고발](2016)

5145.PNG

 

피고인은 [5.18분석 최종보고서]가 5.18연구의 종지부인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그런데 2015.5.5.부터 필명 노숙자담요에 의해 광주현장 사진의 주역 얼굴들이 북한인 얼굴 [광수](광주에 참전했던 북한인)라는 신기한 영상분석이 나오면서 문헌연구에 이어 영상연구가 더 보태지게 되었습니다. 5.18연구는 [5.18최종보고서]까지만 가지고도 북한 특수군 600명이 5.18을 주도한 것으로 결론을 지어졌습니다그런데 여기에 영상연구가 더 보태지면서 5.18연구는 시각적 효과를 더 보탤 수 있었습니다이 책은 A4지 사이즈의 340쪽으로 인쇄된 화보책이며 대부분의 페이지는책의 부제목 “5.18은 북한의 침략이었다가 암시하듯이광주현장의 얼굴이 북한의 얼굴이라는 것을 영상으로 증명하는 데 할애되었습니다책에는 기본적인 설명부분이 있으며 이 부분은 국제사회에 전파할 것을 염두에 두어 국문과 영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차례를 보면 피고인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으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은 사실피고인이 왜 5.18연구에 매달려왔는가에 대한연구 목적화보제작의 목적영상분석의 정확도청주유골의 행방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6.[5.18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2019)

4456.PNG

2019.2.8.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14:00~18:30까지 4시간 30분 동안 발표된 발제문입니다이 책은 국회의원 설훈민병두최경환, 5월단체 등이 고소-고발하였고이에 대해 서울남부지검에서 이 내용은 학문적 공간에 속하는 의견이라며 불구속 처분을 내린 사건이라 조금 자세하게 요약합니다.

 

1(7~10):피고인의 5.18연구는 두 가지 분야로 이루어져 왔다. 2002년부터 2014년 10월까지는 문헌연구, 2005년 5월 5일부터 현재까지는 노숙자담요가 제공한 영상분석을 토대로 하는 영상연구로 이루어져 온 것이다.

 

2(10~112):5.18연구가 왜 중요한가? 5.18마패만 들면 헌법도 대통령도 제압된다. 5.18을 등에 업은 민주화세력의 무소불위의 독재가 현실화되고 있다이는 5.18이 사악한 정치목적에 악용되고 있음을 뜻한다이는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3(11~41) 5.18 일지5.18은 정부와 폭동세력 사이에 발생한 10일 동안의 충돌사건이다위 발제문의 11~41쪽에는 이 10일 동안의 폭동-진압 상황이 요약돼 있다.

 

5월 18(): 학생으로 위장한 폭도 250여명이 책가방에 돌멩이를 숨겨가지고 전남대 정문을 지키고 있던 공수대원 20명에게 도서관에 가겠다고 시비를 걸면서 투석하여 분노 유발시킨 후 금남로로 달려가 차량과 파출소를 파괴하고 불을 질러 검은 연기가 나게 하여 사람들을 모이게 한 후 광주시민이 수십 명 죽었다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씨를 말리러 왔다계엄군이 여성들을 발가벗기고 희롱하였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살포했다이날 7공수 여단 2개 대대는 광주지역 사단장 정웅 소장의 작전지휘를 받았으며오후 4시경정웅은 36개 길목에 계엄군을 배치하여 그 안에 들어 있는 젊은이를 모두 체포해 31사단 헌병대로 넘기라 명령했다. 2명의 대대장은 길목 당 4~5명씩 배치해 젊은이들을 체포하려 했다중과부적인 상황에서 병사들은 곤봉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5월 19~20이 양일간 엄군이 수적 열세에 몰려 시민군으로부터 매타작을 당했다수적 우위를 차지한 시위대는 대형 버스와 트럭을 지그재그 궤적으로 몰아 계엄군을 향해 돌진했고계엄군은 이리저리 피하면서 차온다는 소리에 노이로제 공황상태로 내몰렸다불타는 드럼통을 계엄군을 향해 굴리고경상도 차량만 보면 탑승자들을 집단 구타해 살해했다. 5월 20일에는 공수부대 5개 대대(각 1,500)가 전남대와 시청에서 수만 명 시위대에 포위되어 몰살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했고, 5월 21일 오후 5시에는 구사일생으로 시 외곽으로 탈주하기에 이르렀다공수부대가 곤봉을 사용한 것은 오직 5월 18일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뿐이었다.

 

5월 21이날 600명의 조직화된 시위대가 벌인 행위는 군사작전에서도 세계 최상급의 특공작전이었다. 5월 21일 제20사단 지휘차량 부대는 08:00시에 광주 톨게이트를 통과하도록 계획돼 있었다이 이동계획은 극비 중의 극비에 속했다그런데 시위대 300명이 이 이동계획을 사전에 입수해 하루 전에 토끼몰이식 장애물을 설치하고 여러 시간 전에 매복해 있다가 20사단 차량부대가 정확히 그 지점을 08:00시에 통과하자 주로 몽둥이와 화염병으로 공격하여 사단장용 지프차 등 14대의 지프차를 탈취하여 인근 군납업체인 아시아자동차 공장으로 갔다. 09아시아자동차 공장에는 또 다른 300명이 몰려와 600명이 되었다이들 600명은 단 한 차례도 출고되지 않았던 최신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370여대를 탈취하여 그들을 몰고 전남 17개 시군에 위장돼 있던 44개 무기고를 불과 4시간 만에 습격해 5,403정의 총기를 탈취했다전남도청에는 TNT를 가지고 2,100발의 폭탄을 조립해놓고 광주시를 히로시마로 만들 수 있다고 협박하였다방송국과 세무서파출소들을 불태우고 도청과 전남대에 집합해 있는 계업군을 포위 공격하여 계엄군을 시외곽으로 내쫓고 도청을 접수하였으며 이날부터 광주교도소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27~31쪽에는 19개의 현장사진이 소개돼 있다. 2018년 10월 12증인으로 출두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김양래에게 이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지휘체계가 갖추어진 이 사람들이 광주시민이냐고 물었을 때김양래는 광주시민이 아니라고 답했다전두환이 또 다른 군부대에 민간복을 입혀 투입시킨 [전두환 편의대]일 것이라고 답했다.

167.PNG

4456.PNG

5월 22~24:전남도청을 완전 점령한 그룹은 광주시민이 아니라 외지인이었다. ‘수습학생위원회라는 글자가 새겨진 어깨띠를 두른 외지인들이 광주의 똘똘해 보이는 청년들을 연행해가는 사진들이 있다이들의 이름은 해남농민활동가 김인태와 학원 교사인 김중식이며 이들은 사망자 명단에 들어 있다.

917.PNG

 

524~275월 24일 낮까지만 해도 광주시민은 외지인이 점령한 도청(에 들어갈 수 없었다.

5613.PNG

59의 ‘5.18항쟁증언자료집에는 5.18유공자 최고반열에 속한 ‘5.18항쟁본부’ 핵심 간부들의 증언들이 있다이 증언자들은 한결같이 5월 21일 총소리가 나자 자기들은 각자도생하자며 숨어 다녔고, 5월 24일 낮에는 고위 공무원들로 보이는 위엄 있는 사람들이 도청출입을 금지시켜 들어갈 수 없었고, 24일 밤부터 도청에 들어왔다고 증언했다도청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었고매일 토론을 하지만 싸움질만 했다그러다가 5.27. 새벽 점령되었다.

4678.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