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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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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1-01 21:56 조회2,0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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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프로필

 

1) 김대중의 출생

 

김대중은 1926년생으로 되어 있지만 1924년생이라는 주장들이 많다. 그의 고장에 살던 동년배의 어른들은 김대중이 돼지띠(1924)라 말한다. 점을 보러 갈 때는 늘 진실을 말한다는 것이다, 소위 김대중의 출생비밀에는 생년월일과 아버지의 성씨에 대해서도 불분명하다는 의혹들이 있다. 1980.5.18일자 경향신문에 나타난 출생비밀은 아래와 같다.

 

김대중의 생모는 장노도(7159일 사망), 1911년 제갈성조와 결혼했다가 사별했고, 1920년에 윤창언의 셋째 첩으로 입적했으나 역시 사별했다. 그 후 본 남편 제갈성조의 친형인 시숙 제갈성복의 도움으로 주점을 경영하다가 김대중을 임신한 상태에서, 전남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에 사는 김운식의 첩으로 들어가 19241116일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서 김대중을 낳았다. 김대중의 호는 바로 후광리의 그 후광이다. 김대중은 김운식의 서자로 자라면서 국민학교와 목포상업을 졸업한 후 일본인이 운영하는 해운회사에 취직하여 일하다가 해방을 맞자 그 해운회사를 일본인으로부터 인수했다. 이때 그는 22세였다.

 

2) 청년기

 

한편으로는 해운업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신민당(후에 남로당에 합병)과 민주애국청년동맹, 전국노동평의회 등 "극렬 좌익정당과 단체"에서 활동했고 "남로당" 목포시 당청년부장으로 파출소를 공격하는 등 공산계 파괴활동에 참가했다. 27세 때, 6·25가 발발하여 목포가 공산군 수중에 들어가자 목포시 인민위원회 결성에 참여하여 부역 행위를 관리했다. 인민군이 퇴각한 후, 남로당 섭외부장 겸 민주주의 민족전선 부위원장 유재식에게 활동자금을 제공했다는 죄목으로 전남도경에 검거됐었다. 한편 50-56년 사이의 목포해운회사를 경영하던 중 선원봉급과 배를 판돈 15천만원을 횡령하여 도주했다.

 

1956, 33세가 된 김대중은 이 일로 해운회사 부사장인 나상수로부터 고발당해 강원도로 피신한 후 민주당에 입당했다. 19596, 36세가 된 김대중은 강원도 인제 지구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하자 빚을 지고 생활고에 허덕였다. 이때의 김대중의 처는 차용수(차영애), 차영식 목사의 여동생이다. 그녀는 빚에 시달리고 계까지 깨지는 바람에 세상을 비관하고 음독자살을 했다. 참고로 차영식 목사는 1995년 경 필자에게 여러 차례 찾아왔었다.

 

3) 정치 사기꾼 시절

 

19596, 36세가 된 김대중은 인제 지구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바로 이 때 또 다른 횡령사건이 발각된다. 선거기간 중 투개표 입회원이었던 문수룡(文壽龍)이라는 사람이 돌연 급사하자, 민주당에서는 문수룡을 순직으로서 처우하고, 당중앙간부가 조의금 30만원을 모아 김대중씨를 통해 유족에게 건네주도록 했다. 그런데 김대중씨가 이중 12만원만을 유족에게 건넸을 뿐 나머지 18만원을 착복했다. 이 사실을 안 당시 민주당원 김재동, 백응기 등 네 명이 김대중씨의 파렴치한 횡령행위를 비난하고 민주당에서 탈당해 버렸다.

 

김대중씨의 조의금 착복사실이 널리 당내에 전해지자, 당내는 물론 선거구 전체의 비난이 집중됐다. 궁지에 몰린 김대중씨는 반대로 탈당한 김재동, 백응기 등 네 명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고발당한 네 명은 김대중씨를 횡령과 무고(허위신고)로 대항, 고소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했지만 그 후 사건은 유야무야로 끝났다 한다.

 

1960, 37가 된 김대중은 서자로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것이 불리함을 알고 4남매를 거느리고 있는 의부 김운식과 그의 본처 김순례에게 호적상 이혼을 강요한 다음 그의 생모 장여인을 본처로 입적시켜 자신을 김운식의 차남으로 조작해 강원도 인제군 북면 원통리로 분가, 전적했다.

 

1960729, 419혁명으로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대중은 강원도 인제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7명의 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419혁명으로 쓰러진 자유당의 이름을 내걸고 선전한 전형산씨가 김대중을 누르고 당선됐다. 이 때 김대중은 상대방 후보를 모략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기지를 발휘했다.

 

자신의 선거참모를 자파 당원으로 하여금 구타하게 한 후, 상대당원이 테러를 했다고 역선전을 하기도 했고, 자신의 선거운동원에게 상대방의 완장을 두르게 하고 고무신을 배급, 유권자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상대당원을 가장하여 유권자들에게 회식이 있다고 초청하는 허위선전을 해 상대방후보에 대한 반감과 불신감을 갖게 했으며, 김대중의 사인을 받아오는 자에게는 돈을 주게 하여 자신의 인기를 조작하기도 했다.

 

이렇게 했는데도 낙선 당하자 김대중은 4백 명의 데모대를 조직, 군청개표소에 난입, 투표한 22개중 15개를 강탈한 후 전씨의 사퇴를 강요하는 연좌데모를 벌였다. 그 후 민주당 정권이 전씨를 공민권제한 대상자로 만들어 의원자격을 박탈하자 김대중은 19615월의 보궐선거에서 일방적으로 당선됐다. 민주당 국회의원이 된 김대중은 19617월부터 민주당 선전부장이 됐다. 이때에도 김대중은 또 다른 횡령사건을 저질렀다. 선전부장으로서 학원공작을 구실로 조달한 선거 자금 37백만 원 중 770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되어 검찰에 송치됐다. 196210, 39세가 된 김대중은 이희호씨와 결혼했다. 김대중은 국회의원시절에 처 이희호를 비서관으로 등록, 해외여행에 동반하기도 했다. 인터넷을 보면 계훈제는 김대중보다 3년 연상이었고, 이희호(1922)보다 1년 연상인 나이로 좌익활동을 하면서 이희호와의 러브스토리를 쌓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4) 김대중의 반정부 활동

 

197149세가 된 김대중은 대통령후보 유세도중 자기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도중에 당했던 교통사고를 박대통령 측이 저지른 암살음모라고 뒤집어 씌웠다. 김대중의 집안에 폭발물을 설치해 폭발시켜놓고 공화당에서 자신을 암살하려 했다고 주장한 적도 있었다. 7대의원 당시에는 8대 국회의원 당 공천을 해준다고 속여 박종태로부터 5백만원, 김세종으로부터 3850만원, 이원형으로부터 1백만원 등 4450만원을 사취했던 기록도 있다. 그 후에도 국회의원이란 직위를 악용, 호남제분, 동아건설, 대한농산, 삼양수산 대표들로부터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아낸 사실도 밝혀졌다.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에 패하자 그는 신병 치료차 일본으로 건너갔다. 1971, 도쿄 플라자 호텔에서 김병식 부주석으로부터 20만달러를 받았다는 기록도 있다. 197210월 유신 계엄령이 선포됐고, 선포됐고 국회가 해산됐다. 이에 김대중은 일본과 미국을 왕래하며 한국에 대한 경제원조와 군사원조의 중단, 망명정부수립, 김일성 정권과의 접촉시도 등 반국가적 행위를 감행했다.

 

19734월에는 미국 하버드대 코헨 교수에게 한국의 박정권을 타도하기 위해서 미국이 대한 군사원조를 중단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도록 미의회 지도자에게 압력을 넣어달라고 호소했다. 또한 미국에서 북한을 방문한 친북괴 분자들을 만나 반국가 단체인 한민통을 조직했다. 이 시기에 그는 자민당 출신이면서도 좌파의원인 우스노미야 의원 등 일본 국회의원들의 지원을 받는 한편 반국가 단체로 규정된 "한민통"을 조직하여 의장으로 앉는 등 일본을 무대로 반정부 운동을 벌였다.

 

197388, 그는 도쿄 팔레스 호텔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납치되어 129시간 만에 서울로 압송됐다. 이에 대해 박정권은 국내 야당 지지자들의 강한 반발과 주권 침해라는 일본의 비난에 직면했지만 미국의 주선으로 일본 정부와 막후접촉을 벌여 주일 한국대사관 1등 서기관 김동운을 해임하고, 김대중의 해외체류 중 언행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하고, 김종필 총리의 방일 사과 등으로 마무리됐다. 이로써 이 사건은 86일 만에 정치적으로 매듭 됐다.

 

5) 김대중의 내란 음모의 시절

 

197412, 가택연금 중에 있던 김대중은 재야단체인 민주회복국민회의에 참여해 재야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19763·1절 기념미사에서 윤보선·함석헌·문익환·김승훈 등 재야인사들과 함께 민주주의, 경제입국 구상 재검토, 민족통일 등을 주장하는 '3·1민주구국선언'(일명 명동사건)을 발표해 대통령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어 징역 5, 자격정지 5년을 확정 받아 진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의 투옥에 대한 국내외의 비판이 고조되자 박대통령은 197812월 그를 형집행정지로 석방한 후 가택연금으로 전환시켰다. 가택연금 상태에서도 그는 197931'민주주의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약칭 국민연합’)을 결성해 윤보선·함석헌등과 함께 공동의장을 맡으며 재야활동을 계속했다.

 

197910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측근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살해되면서 유신체제가 붕괴되자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은 동년 12월에 그를 가택연금에서 해제했다. 이어서 최규하 권한대행은 19802, 그를 사면복권시켜 주었다.

 

1980년 초 '서울의 봄' 시기에 그는 김영삼·김종필 등과 함께 가벼운 몸으로 정치활동의 전면에 나섰고, 학원소요사태를 배후 주동하고, 학원소요의 위력을 과시하면서 최규하 정권의 즉각 퇴진을 압박하다가 517일 자정의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를 불러왔다.

 

이로 인해 그는 26명의 정치인들과 함께 체포, 수감되어 광주소요 기간을 감옥에서 보냈다. 9월에 그는 계엄사령부 군법회의에서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을 주동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19811월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그를 즉각 사형시키자는 여론과 재야파들의 끈질긴 구명운동이 한동안 팽팽히 맞섰다. 그러나 전두환은 1980년 레이건 대통령을 만난다는 조건으로 198212, 그를 석방했다. 그 뒤 미국으로 건너간 김대중은 한국인권문제연구소를 열어 해외에서 활동하다 1985년 제12대 총선을 앞두고 귀국했다.

 

<1980. 5, 김대중 자필 진술조서>

 

대중은 80517일 체포되어 수사 받는 과정에서 520일과 5252차례에 걸쳐 자술서를 썼다.

 

1. 19459월경 건국준비위원회(이하 건준)목포지부의 선전부장으로 참가했음.

 

2. 19459월경 결성된 목포청년동맹에 가입했음.

 

3.. 1945년 말경에 좌우합작을 기치로 출범한 신민당(당수: 좌익 백남운)에 가입, 목포지부조직부장을 맡았음.

 

4. 해방 당시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형편이었으므로, 좌익분자와도 같이 일하게 되고, 공산주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음.

 

5. 1949년 친구의 형이 찾아와 서울 가는 여비를 부탁해 도와주었는데, 후일 그가 좌익활동혐의로 체포되었음.

 

6. 6.25때에는 인민군을 피해 본인의 선박에 근무하는 박동련이라는 선장집에 숨어있다가 2일 만에 발각되어 정치보위부에 체포되었음.

 

7. 정치보위부에서는 "우리 애국자(공산주의자)를 몇 명 밀고해서 죽였느냐?", "

새끼가 아직도 반성못했다", "네가 해군과 거드럭거리고 매일 요정 출입할 때 우리가 너를 얼마나 찢어 죽이고 싶었는지 아느냐"는 등 배신자라고 협박했으나 그 이상의 조사 없이 8월 말경 형무소로 넘어 갔음.

 

8. 본인은 신병치료차 19721011일 일본 도쿄(東京)에 갔다 거기서 유신선포를 맞이했음.

 

9. 그 후 미.일 양국을 왕래하면서 기자회견, 강연, 양국 정치인의 접촉, 한민통의 결성 하고, 유신반대와 민주회복 활동을 전개하다 197388일의 납치사건으로 귀국하게 되었음.

 

10. 19736월부터 해외에서의 반정부 운동을 좀더 조직적이고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미국에 한민통 임시 총본부를 두고 그 산하에 미국지부, 일본지부, 캐나다지부를 두고자 모색했으며, 총본부의장에는 본인이 앉고 미국지부 의장은 안병국 목사, 일본지부 의장에는 김재화, 캐나다지부 의장에는 이상 목사를 내심 지목하고 있었음.

 

<1980. 7, 국가보안법 위반행위 및 내란음모죄: 사형>

 

1980. 7. 31, 검찰은 김대중의 성장 환경, 해방 후의 좌익활동, 한민통의 조직 및 좌익활동, 폭력시위, 광주사태 선동 및 배후조정에 관해 단죄했습니다. 김대중은 일본에서 한민통을 결성하여 북한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아가면서 좌익활동을 했습니다. 한민통은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의 약자입니다. 지금의 민주당도 "국민회의"였습니다. "한민통"은 좌익들로 구성된 조직입니다. 육영수 여사를 저격하고 사살한 문세광이가 한민통 조직의 일원입니다. 그 직후에 들어왔다가 간첩으로 체포된 김정사도 한민통 조직의 일원입니다. 이로 인해 대법원은 한민통을 반국가단체로 규정을 했습니다"(9881118일국회 광주 사태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신경식 의원)

 

조총련이 한민통에 매월 1000만 엔 내지 2000만 엔씩 자금을 공급했습니다, 한민통은 좌익인 광동희가 발행하는 "민족시보"를 기관지로 활용했습니다. 이는 공산당 선전지였습니다. 김대중에 적용된 법조문은 1)형법 제90조 제1, 2, 872)계엄법 제15, 13,계엄포고령 제1조 제13)국가보안법 제1조 제14)반공법 제5조 제15)외국환 관리법 제35, 17조 제16)형법 제37, 38조였습니다.

 

그의 좌익행각은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1. 815해방후 신민당(후에 남로당에 합병)과 민주애국청년동맹, 전국노동평의회등 "극렬좌익정당과 단체"에서 활동했고 "남로당" 목포시 당청년부장으로 공산계 파괴활동의 중추적 분자였다. 이 당시 김대중은 공산독재체제를 위한 적색혁명투쟁에 광분했다.

 

2. 625가 발발, 목포가 공산군 수중에 들어가자 목포시 인민위원회 결성에 참여하여 부역행위를 관리했다.

 

3. 특히 남로당 섭외부장 겸 민주주의 민족전선 부위원장 유재식에게 활동자금을 제공한 죄로 전남도경에 검거됐다.

 

4. 김대중이 의장인 국민연합이 1980. 522일 개최하기로 예정한 민주화 촉진 집회에서 시위를 선동하여 폭력으로 국가기관을 장악하려 했다. (핵심죄목 1: 내란음모죄: 15)

 

5. 김대중은 1972년 도일하여 정치적 망명을 가장하여 한국을 비난,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려했고, "한민통"을 결성하여 반정부 교포들을 규합, 한국정부를 전복시키려했다. 국가보안법제1조 제1호 위반에 해당하는 반국가단체 구성죄를 저지른 것이다(사형).

 

6, 동년 8월 귀국, 반국가단체인 한민통 일본본부 구성원들과 통신하면서 1026 사태로 인한 정국불안을 틈타 민주회복을 구실로 반정부의식이 강한 복학생 및 재야인사들에게 활동비를 뿌리며 반정부 조직을 강화했다.

 

7. 박수부대까지 동원, 강연장 분위기를 고조시키면서 강연 모습과 내용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 녹음 테이프, 책자까지 제작하여 학원가 및 추종자들에게 배포, 학생 및 일반 국민들에게 반정부의식을 고취하다가 전남대 복학생 정동년에게 5백만원을 주어 광주사태를 유발시켰다. (핵심죄목 2: 반국가단체 구성죄, 국가보안법 제1조제1: 1980911일 사형구형)

 

8. 1981123일 대법원이 김대중의 상고를 기각하여 사형이 확정되었습니다. 바로 이날 전두환은 김대중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했으며 미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인 33일 징역 20년형으로 또 감형했다.

 

(19881130일 국회청문회에서 밝혀진 사실)

1. "해방 후 1946년까지는 좌익활동을 했고 1947년부터는 완전히 손을 끊었다"(김대중의말).

 

2. 1945825일 좌익단체인 건국준비위원회 목포시지부에 가입하여 활동한 사실이 있다(김대중 시인한 사실이라고 검찰이 증언)

 

3. 목포청년동맹에 가입하여 목포시지부 청년들이 남교동 파출소를 습격한 배후 조종의 혐의로 구속되었다(김대중 시인한 사실이라고 검찰이 증언)

 

4. 당시 좌익정당인 신민당(당수 김두봉, 북한 부주석)에 입당하여 조직부장으로 활동한 사실이 있다(김대중 시인한 사실이라고 검찰이 증언)

 

5. 195097"간첩" 장금성이 남로당 전남 목포시 당위원장 앞으로 제출한 당원등록청원서에 1946616일 김대중씨의 활약상이 나열돼 있다. 여기에는 "민주청년동맹 목포시지부위원회 간부 김대중이 적극 찬동하고 있다", "민청 간부 김대중에서 교양을 받았다"는 대목이 있다(김대중 시인한 사실이라고 검찰이 증언)

 

(북에서 받은 돈)

1, 일본에 있는 동안 간헐적으로 좌익인물들로부터 산만하게 수십-수백만엥씩 받았다는 수사기록은 있으나 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또한 당사자간에 주고받는 돈은 누구도 알 없다.

 

2. 1997, 평양에서 김병식 부주석이 김대중에게 편지를 보냈다. 여기에는 김대중이 197120만달러를 김병식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확실히 기록돼 있다.

북한 부주석 김병식이 1997.15.5.에 평양에서 김대중에 보냈다는 사신이 공개되었다. 1971.에 김대중에 20만 달러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김대중 선생 귀하

 

이번 대선의 큰 사업을 앞두고 분망하실 선생에게 따뜻한 인사를 보냅니다. . . 선생과 처음으로 상면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6년 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요즘 텔레비죤 화면에서 선생의 모습을 볼 때마다 1971년 가을 일본 도꾜 플라쟈 호텔에서 서로 뜨겁게 포옹 하던 때가 생생히 떠오르곤 합니다. 그때는 물론 약소 하였습니다.선생의 민주화 운동을 위해 20만 달러 밖에 보탬 해 드리지 못한 것 지금도 괴롭게 생각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선생을 오늘의 성공에로 이르도록 돕는데 밑거름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보람을 찾습니다. . .지금에야 말로 이남에서 자주적인 민주 정권이 서야 북과 남이 민족 주체적 힘으로 통일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할 때이라고 간주 합니다

 

3. 1999년 김정일 발언록에는 "DJ가 김일성에게 많은 빚을 지고 총애를 받았다" 요지의 글이 있다(일본 문예춘추 12월호).

 

4. 일반에게 노출된 것은 언제나 빙산의 일각이다. 이것 말고도 김대중은 61억엔을 받았다는 설을 포함해 많은 말들이 돌고 있지만 아직은 이를 수사할 조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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