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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쓴 4.3사건-5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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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1-03-07 19:08 조회1,5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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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쓴 4.3사건-5


붉은 글자로 쓰인 내용들을 보십시오. 5.18유언비어와 100% 닮았습니다. 스테코프 비망록에는 1946년 당시 북한에 진주한 소군정 최고 사령관 스티코프 대장의 비망록을 입수하여 보도했습니다. 스티코프-김일성-박헌영으로 이어지는 지휘선을 유지하면서 이들은 1946년 남한사회 전체를 혼란에 빠트렸습니다. 9월 총파업과 10월 대구폭동을 직접 지휘했습니다. 이 두 사건에 대해 각 200만엔과 300만엔을 지원했습니다. 남한에서의 폭동들이 소련의 지휘를 받는 김일성-박헌영이 주도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제주 4.3사건 역시 김일성-박헌영-김달삼을 지휘선으로 하는 국가전복을 위한 폭동이었습니다.


                   5. 제주도인민의 4.3봉기를 탄압말살하기

                                           위한 미제와 괴뢰도당의 책동


       
 1) 4.3봉기를 말살하기 위한 미제의 교활한 음모책동


미제침략자들은 남조선을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하여 미쳐 날뛰면서 남조선의 애국적 인민들을 마구 탄압, 학살하기 위한 온갖 모략을 꾸미었다. 놈들이 만들어놓은 식민지통치기구 자체가 여기에 철저히 리용되게 되었다. 미군정청은 이 모략책동에서 주동적인 작용을 하였다. 미군정은 남조선인민들의 대중투쟁을 탄압하는 것과 함께 4.3봉기 ‘초토화 작전’의 직접적 조직자였고 지휘자였다.

4.3봉기가 개시되자 미군정은 1단계 조치로 1,700명의 본토 경찰병력을 제주도로 이동시키는 것을 승인함으로써 이 문제를 ‘경찰작전’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사태가 진정되기는커녕 더욱 확대될 기미를 보이자 미군정 우두머리들은 심각성을 인식하고 제주도를 직접 방문하기 시작하였고 이른바 ‘적극적인대책’을 세웠다.


“4.3봉기가 터진 열흘 후쯤 미군정 경찰고문관 레스터 코퍼닝이 현지에 내려와 치안상태를 점검하였다. 4월 20일경에는 남조선주둔 미군사고문단의 초대 단장이였던

로버트 준장이 제주도에 파견되었다. 그는 대규모 증원부대를 미군상륙함정으로 수송배치하고 토벌전을 지휘하였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미군 방첩대도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하였다.”(사회와 사상 1990년 1월호, 382~383페지)

미극동군사령부 5월 13일부 ‘정부요약보고서’에는 “섬의 봉쇄를 위해 2척의 구축함과 게릴라들에게 위압을 주기 위해 전투기를 도내 상공에 보내달라고 요청하였다. 다음날 미군함 크레이그)호가 제주도해역에 파견되여 반란군에게 밀반입되는 무기수송로를 차단하기 위해 북부해안을 봉쇄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로동신문에서는 “미군당국은 극비밀에 군함으로 정예경관부대를 련일 파견하고 있는데 그 수는 4천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1948.5.23)고 전하였다.


미군 군부대 CIC도 4월말부터 제주도 4.3봉기를 진압말살하기 위한 활동을 본격적으로 개시하였다.


미제침략자들이 얼마나 교활한 놈들이며 인민학살 괴수인가 하는 것은 놈들의 통치기구 에서 하수인으로 복무하던 국방경비대 전 9련대장 김익렬의 유고 ‘4.3의 진실’과 정창국의 ‘륙사졸업생’, 9련대 정보주임 리윤학의 증언 등을 통해서 그 일단을 찾아 볼 수 있다.


4.3봉기발발당시 모슬포 주둔 국방경비대‘ 9련대와 군정경찰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갈등이 빚어져 점점 확대되었다. 경비대는 구성상 근로인민의 자재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인민무장봉기를 류혈로 탄압하는 것을 달가와 하지 않고 현지경찰의 지원요청을 묵살하였다. 반면에 경찰 측은 이에 대해서 불만을 품었다. 또한 미군정은 경찰을 중시하면서 경비대와 경찰에 대한 보급수준에서 현저한 차이를 두었다. 경찰은 경비대란 자기들을 보조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인정했고 경비대쪽에서는 자신들이 보조적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이러한 갈등은 국방경비대 9련대장과 무장대측사이의 협상을 둘러싸고 격화되다가 5월 5일 련대장 김익렬과 경무부장 조병옥 놈의 정면충돌로 폭발하고 그것은 미군정장관 딘이란 놈이 김익렬을 해임시킴으로써 경찰 쪽에 유리하게 기울어지게 되었다. 경찰의 지원요청에 응하지 않던 9련대는 무장대지휘부와 접촉하면서 주민들이 더 이상 다치지 않도록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데 목적을 두고 무장대 측과 평화협상을 가지고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3가지 조건에 합의 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한 미군정은 교활한 방법으로 이를 파탄시키기 위 한 음모를 꾸미었다. 미군정은 먼저 이 협상을 파탄시키기 위한 류언비어를 나돌리며 그들 사이에 리간을 조성시켰다. 이러한 때에 미군정장관 딘놈이 극비밀리에 제주도에 나타나 5월 1일 '오라리 방화사건'을 조작하고 그것을 무장대측이 평화협상을 먼저 파탄시키려고 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교활한 연극을 꾸미었다.


또한 방화사건 직후에 경찰기동대와 함께 오라리현장에 도착한 동아일보 특파원이란 자는 미국 놈의 각본에 따라 현지답사기라는 것을 발표함으로써 미제의 본색을 교묘하게 가리우려고 획책하였다. 교활한 미제침략자 딘놈은 평화협상을 파탄시키고는 제주도 인민에 대한 살육만행을 감행하기 시작하였다.

미제는 제주도인민항쟁에 대한 초토화 작전을 벌리기 위하여 교활하고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국방경비대 전 9련대장 김익렬은 자기의 유고 '4.3의 진실'에서 그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였다.


"나는 이 무렵 또 다른 고통스러운 시련을 당하고 있었다. 제주도 군정장관 맨스필드 대령은 미군 고위층의 명령이라며 제주읍 내에 있는 미군 CIC에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이 와있다고 지시했다. 지시한 시간에 가보았더니 군정장관 딘의 정치고문이라는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국제정세와 남조선의 장래문제 등을 소상히 설명하고 나서 제주도 폭동이 빠른 시일 내에 진압되지 않으면 미국의 립장이 난처해지고 남조선의 독립에도 유해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일을 신속하게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초토작전이라고 강조하고 이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나는 군인의 태도는 단호하고 명료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으므로 한마디로 '노'라고 대답했다. 내가 초토작전을 감행하여 임무를 완료한 후 민족주의자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남조선에서 살기 어렵게 된다면 나의 가족과 친척을 데리고 미국에 이민 가 살도록 해준다고도 했다. 미국은 황금만 있으면 모든 행복을 다 누릴 수 있는 곳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미국생활을 소개하는 각종 잡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5만 딸라를 주겠다고 줬다가 또 10만 딸라를 주겠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얼마나 필요하냐고 마치 어린아이 달래듯 하는 것이였다 요점은 민족반역자노릇을 하고 10만 딸라를 챙기고 미국으로 도망가라는 것이였다."(사회와 사상 1990년 1월호 388페지)


또한 군정장관 딘 놈은 5.3기습사건을 도발하여 '초토화 작전'의 구실을 더욱 교묘하게 조작하였다. 이에 대하여 정창국의 쓴 '륙사졸업생'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더 큰 사건이 5괼 3일에 발생했다. 하오 3시쯤  '반도' 200여명이 하산하여 제주비행장에 설치한 수용소에 귀순해오겠다 하여 9련대 병사 7명과 미군사병 2명이 미고문관 드루스 중위 인솔 하에 호송해오는데 무장대가 카빙총과 중기관총을 란사한 것이다. 귀순자 일부가 죽고 생존자는 다시 산으로 도망쳤다. 미군들이 반격해 무장대 5명을 사살했다. 부상된 무장대를 드루스 중위가 데려다 치료해주고 알아보았더니 그들은 제주경찰서(서장 문용재 )소속 이라는 것이였다."


이러한 교묘한 조작극으로 '국방경비대'와 인민무장대의 평화협상을 파탄시킨 딘놈은 제주도에서 이른바 수뇌회의를 소집하고 극악한 반동두목 조병옥을 시켜 김익렬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파면시키는 연극을 꾸며 내고는 반동들을 내세워 제주도인민항쟁을 탄압말살하기 위한 초토화 작전에로 내몰았으며 그것을 무력으로는 뒷받침 해주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미국의 어용 사가 죤메릴 이란 자까지 자기의 책 ‘제주반란’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가 섬으로 떠나기에 앞서 딘에게서 최소한의 무력을 사용해 반란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개인적으로 받았다.”


제주도인민학살의 괴수인 딘은 폭군으로 알려진 브라운이란 자를 제주지역 미군사령관으로 파견하여 현지에서 진압작전을 지휘 통솔하는 최고지휘권을 행사하도록 하였다.


조선일보(1948년 6월 6일)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미군정당국은 상공에는 미군정철기가 날으고 제1선에는 전투를 지휘하는 미군의 짚이 질주하고 있으며 해양에는 근해를 경계하는 미군함의 검은 연기가 그칠 사이 없이 휘날리면서 경비대와 경찰을 동원하고 있다.”


모든 사실은 미제침략자들이야말로 제주도인민의 반미구국투쟁을 탄압하고 인민을 학살한 장본인이며 그를 총괄한 괴수였으며 우리 인민의 철천지원쑤라는 것을 똑똑히 말하여 주고 있다.


                
2) 봉기한 인민들에 대한 미제와 괴뢰도당의 학살만행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남조선 주둔 미군사령부와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은 미군의 대부대와 무장경찰을 동원하여 봉기한 제주도인민들을 잔인무도하게 학살하였습니다.”(김일성저작집 4권. 377페지)


미제국주의자들과 그 앞잡이들은 무력항쟁이 세차게 벌어진 제주도를 빨치산 토벌작전의 시험장으로 선택하고 거기에 중무장한 대병력을 상륙시켜 력사에서 보기 드문 철저한 진멸정책을 실시하여 온 섬을 불바다, 피바다 속에 잠기게 하였다.  미제는 제주도인민들의 반미구국투쟁을 압살하기 위하여 미국식 장비를 갖춘 해안경비대와 국방경비대 대군을 제주도에 주둔시키고 악질적인 친미분자들로 반인민적 테로단을 재편성하여 배치하였다.


제주도인민의 영용한 4.3무장 항전이 개시되자 살인깡패들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이는 한편 해안을 봉쇄하고 계엄령을 선포하였으며 잔인한 방법으로 인민들을 닥치는 대로 체포투옥 학살하였다. 놈들이 제주도인민을 학살하기 위해 적용한 고문방법은 인류력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몸서리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우리 조국 남해의 아름다운 제주도는 살륙의 수라장으로 화하고 온 섬은 피의 바다에 잠기었다.


5.10 단선날이 박두하자 원쑤들은 전도에 특별비상경계령을 내리고 종전의 수십 배에 달하는 무력을 동원하여 대토벌군을 조작(주: 조직)하였다. 1948년 5월 중순부터 놈들의 대규모 토벌작전이 진행되어 이르는 곳마다에서 엄청난 파괴와 피비린내 나는 살륙만행이 감행되었다. 학살만행의 총지휘자 괴뢰경무부장 조병욱 놈은 “대한민국을 위해서는 제주도 전토에 휘발유를 뿌려 거기에 불을 놓아 30만 도민을 한꺼번에 소멸케 하여야 한다”고 웨치면서 그 계획을 실천에 옮김으로써 만고에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다. 그리하여 날마다 증설된 류치장은 피검자로 차고 넘쳤고 감금장에는 신음소리가 처절하였으며 골목과 산야에는 피살자의 시체들이 쌓여졌다.


놈들의 학살만행은 1948년 4월말에 이어 5월 달에 와서 더욱 잔인하게 감행되였다. 5월 중순 한림면 상명리에 기어든 원쑤놈들은 20여명의 무고한 인민들을 집단 학살하였으며 하귀리에서는 200여명의 인민들을 끌어다 악착한 방법으로 학살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그리고 적들은 저지리 일대에서 600여호의 민가를 일순간에 불사르고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만행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6월 상순에 놈들은 남원면의 9개 리 인민들을 수많이 잡아다가 걸상에 달어놓고 가죽이 터지도록 때린 다음 끓는 물에 고추가루를 타서 입과 코로 퍼붓는 야수적 교문을 가하여 즉사시키거나 혼수상태에 빠지게 하고는 다시 끌고 가다가 도중에 사살하고 산골짜기에 내버렸다. 살인악당들은 그 후 여러 명의 애국적 인민들을 구좌면 종달리와 성산면 시흥리 중간지점에 끌어다가 목과 사지를 자르고 배를 갈라 5장 6부를 헤쳐내서 탕치는 정상인간의 사고를 가지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잔인한 행동을 감행하였다. 하도공회당에서는 아무런 죄도 없는 한 청년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살해한 다음 생식기까지 잘라내고는 너털웃음을 짓는 야수그대로의 본색을 드러내었다.


놈들의 학살만행은 7월에도 계속되었다. 이달 초순에 애월면에 주둔한 토벌대 놈들은 애월리와 그 린접 부락 인민 80여 명을 비행장에 한 줄로 세워놓고 모조리 총살하였다. 이와 거의 같은 시기 산지항 시장터에서는 애국자 15명을 총살한 후 몸에 돌을 매달아 바다에 던지었다.


괴뢰군 14련대의 무장폭동 후 살인광들의 학살만행은 절정에 달하였다. 10월 하순 애월면 고내리에 기여든 살인마들은 부락사람들을 큰길에 강제로 모이게 하고는 100여명을 한 줄로 세워놓고 일제사격으로 무참히 집단학살 하였다. 애월리에 기여든 놈들은 부락사람들을 강제로 모이게 하고 애국자 40여명을 가려내여 ‘총으로 죽이는 것보다 배, 가슴. 머리, 눈들을 대창으로 찌르고 또 찌르고 손발을 자르고 목을 베고 온몸을 토막토막 잘라야 한다‘고 지껄이면서 그대로 악착하게 학살하였다.


1948년 11월 상순 놈들은 애월면 납읍에서 청년 27명을 암굴 속에 몰아넣고 입구를 돌과 흙으로 막아 질식시켜 죽이었으며 모슬포에서는 50여 명의 무고한 농어민들을 대정면 동일리 진개동 산옆 넓은 밭에 실어다 한 줄로 벌려 세워 달리게 하고는 마치 꿩사냥군이 사격 연습하듯이 카빙총으로 모조리 사살하였다.


이 시기 원쑤놈들은 리호리 주민들 모두를 리 오른쪽 큰 밭에 강제로 모이게 하고는 애국청년 수십 명을 추려내어 옷을 벗기고 곤봉, 총탁, 구두 발로 때리고 차는 등 폭행을 가하여 반죽음을 만든 다음 학살하였다. 그 후 또다시 이 리를 포위하고 애국적 인민 300여명을 비행장에 끌고 가서 구뎅이를 파게한 다음 그 앞에 몰아세우고 기관총으로 사격하여 집단사살하고 채 죽지 않은 사람은 그대로 생매장하는 인간도살 행위를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놈들은 그 후 의귀, 수망, 한남, 봉흥 등 지역을 모두 불태워버리었는데 봉홍 지역을 불태울 때는 늙은이 내외가 살고 있는 집에 문을 닫아걸고 불을 질러 두 늙은이를 불태워 죽이였다. 구좌면 송당리에서는 부락사람들이 이놈들의 소개 책동을 거부하고 빨치산을 협력했다는 구실 밑에 30분 이내에 피하지 않으면 총살한다고 위협한 후 인민들이 이리저리 피한 다음에는 집 재산들을 략탈하고 그들에게 기관총을 란사하여 학살하였으며 농가에 휘발유를 뿌려 전체 부락을 불태우고 수십 명을 태워죽이었다.


11월 중순에 유격대의 모슬포 습격전을 방조하였다는 리유로 그곳의 죄 없는 인민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다가 전신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때린 다음 그중 6명은 쇠꼬챙이를 달구어 손톱 발톱을 빼고 이마에 못을 박는 등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악착한 고문 끝에 우편국 앞 로상에서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행하였다.


12월에 들어와서 놈들의 살인 만행은 더욱 대규모적으로 악착하게 감행되었다.   이 달 초순 안덕면 상천부락 피난민 20여명은 살인마들에게 붙잡혀 무참히 학살당하였다. 이때 놈들은 젖먹이 어린것을 업고 산으로 피난하는 녀인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애기가 등에서 떨어지자 죽창으로 그의 온몸을 찌르고 또 죽이는 야수적 만행을 감행하였다. 놈들은 대정면 하호리에서 수많은 주민들을 가마 속에 집어넣고 배에 실어다 먼 바다에 나가 집단적으로 수장하는 만행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적들의 이러한 집단적인 학살만행은 대정, 서공, 도평, 외도, 내도, 안덕, 서광, 동관 등 이르는 곳마다에서 악착하게 감행되였다. 특히 놈들은 12월 중순 리호리에서 부락민 전체를 끌어내어 두 패로 갈라 세우고 서로 때리게 하고는 때리지 않는 사람은 공산주의자라고 하면서 장터에서 학살하였다. 또한 원쑤들은 도두리, 리호리와 그 주변부락 사람 약1,500여 명을 큰길 오른쪽에 끌어다 구뎅이를 파게하고는 몇 조로 묶어 구뎅이 앞에 세우고 기관총사격으로 쏴 죽이는 대살륙만행을 감행하였다. 그들의 시체는 산더미처럼 선혈은 내를 이루었다.


이리하여 1948년 말까지 수많은 애국적인민이 학살되고 200여개의 부락이 소각되었다. 1949년에 들어와서 놈들의 학살만행은 더욱 악랄하게 감행되었다. 이해 2월초에만도 놈들은 남원면 남원, 위미, 의귀 등 등 리들에서의 400여명 대 학살만행 과 조촌면 북촌리에서의 대중적 학살만행 그리고 구좌면 평대리에서 임신부를 끌어다 국부에 막대기를 찌르고 아랫배를 잘라 태아를 꺼내서 조리를 하는 등 야수적 만행들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이 시기 살인악당들의 인간살륙만행은 이밖에도 이르는 곳마다에서 감행되어 수많은 인민들을 학살하였다. 놈들의 살인 만행으로 하여 빚어진 손실은 1961년 4월 조선민주법률가협회를 비롯한 8개 단체가 폭로한 “전 세계에 고함”이라는 데서 밝힌 것처럼 남해의 아름다운 섬 제주도에서는 1948년부터 1950년 사이에 총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7만여 명이 학살당하였다.(제주도인민들의 4.3무장투쟁사 자료집 266페지).


당시 전체 도 169개 리 중 80%인 130개리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리하여 세상에 알려진 아름다운 섬인 제주도는 조국과 인민을 위해 몸 바쳐 싸운 애국적 인민들과 평화적 주민들의 선혈로 물들게 되었다. 놈들의 학살만행에 대해서는 남조선사가들까지도 인정하고 그에 대하여 실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4.3항쟁 기간 중 젊은 남자라는 리유만으로 빨갱이로 몰려죽은 사람이 부지기수이며 해안에서 4km이내 지역은 초토화된 것은 물론이고 토벌대가 휩쓸고 간 룡당리, 오라리, 도두리, 봉흥리, 토산리, 북촌리 등은 생존자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파괴했다"(한국일보 1988.4.6)


“많은 민간인들이 빨갱이로 몰려 무고하게 희생된 원인은 토벌대의 무차별한 진압작전에 있었다. 해방 후 정부수립을 전후에 발생한 4.3폭동은 제주도와 제주도민이 치른 대가치고는 너무나 엄청난 것이어서 한세대 이상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 아픔의 상처는 제주도민의 가슴속에 응어리져 있다” (사상문화 1988. 4.24)


제주도 애국적 인민들의 투쟁은 아직 응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오늘도 제주도인민들은 미제의 식민지통치를 끝장내고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실현하기위한 투쟁을 계속 힘차게 벌려 나가고 있다.



2011.3.7.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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