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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4월 3일에 무슨 일이 발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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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1-03-21 19:40 조회14,8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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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4월 3일에 무슨 일이 발생했나?


                                   북한  논문이 밝힌 4월 3일


4월 3일 새벽 행동개시 시각이 다가왔다. 이 시각 각 면단위로 편성된 인민자위대는 산, 들, 동굴, 밀림에서 전투태세를 갖추고 행동개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새벽 2시 한나산의 령봉을 비롯한 각지에서 신호총소리와 홰불이 일제히 타오르자 제주도의 애국적 인민들은 손에 무장을 들고 원쑤 격멸에로 총궐기 하였다.이에 대하여 ‘제주도 지’ ‘상’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사건 하루 전인 1948년 4월 2일 각 읍, 면 단위로 마을 가까운 동굴과 야산에 집결, 무기를 지급받았던 ‘무장자위대’란 이름의 재산폭도들은 ...4월 3일 새벽 2시 한나산 정상을 비롯한 전도의 산악고지에서 일제히 봉화 올리는 것을 신호로 무력봉기를 했다.”


4.3봉기가 개시된데 대하여 ‘로동신문’에는 다음과 갈이 씌어 있다.


“1948년 4월 3일 절해의 고도 제주도에서 정의의 홰불은 올랐다. 새벽 2시를 기하여 제주도인민들은 뼈에 사무친 원한을 폭발시켜 직접 손에 무기를 들고 반동의 거점인 도내 경찰지서를 일제히 습격 하였다.”(1949. 4. 3)


무장대들은 은밀하고 대담한 기습작전으로 적들에게 무리죽음(주: 집단사살)을 주었다. 봉기자들은 수십 개의 무장습격조를 편성한 후 한개 습격조에 한개 습격대상을

담당시키는 원칙에 기초하여 동일한 시간에 일제히 통일적 행동을 개시하여 적을 치고 신속히 퇴각하는 전술을 적응하였다. 이것은 적을 분산된 상태 에서 각개 격파함으로써 적이 다른 곳에 있는 력량을 집중하며 기동반격 할 수 있는 틈을 주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남원면 남원경찰지서에 돌입한 90여명의 무장대는 총과 도끼, 몽둥이 등을 가지고

2명의 악질 경찰을 처단하고 2명에게 중상을 입혔고 여러 정의 무기를 탈취한 후 지서 건물을 완전히 불태워버리었다.


애월면 구엄 경찰치서를 습격 한 100여명의 대 부대 는 4-5개 조로 나누어 반역자들의 집을 습격하며 놈들을 처단하고 집에 불을 질러 인민의 원한을 풀어주었다.


한림면 한림려관에 ‘서북청년회’ 테로단원 7명이 숙박하고 있는 것을 안, 한 애국청년은 단신 칼을 품고 기습하여 15분 내에 7명 전부를 살해하였다(로동신문 1949. 4. 3).


무장자위대는 조천, 함덕, 삼양. 외도, 한림, 저지, 고산, 애월, 성산,안덕, 중문, 대청, 무릉 등 14개 경찰지서, 출장소와 제주, 서귀경찰서를 비롯한 경찰, ‘서청’의 숙사와 교형리들의 앞잡이들이 둥지를 틀고 있던 ‘국민회’, ‘독촉 국민회’, ‘대동청년단’의 반동무리들과 악질관공리의 집, 행정기관들을 기습파괴 하였으며 많은 경찰, 관공리 등 반동들을 체포하여 현지 인민재판에서 처단하였다. 그들은 이날전투에서 경찰지서 2개소를 불태웠으며 경관11명, 테로단 11명, 악질반동 10여명을 처단하였다.


그리고 경관 4명 반동분자 5명에게 중상을 입혔고 미국제 카빙총과 많은 탄약을 로획하였다.(로동신문 1948년 8.29) 이것은 첫 무장봉기에서 철저히 무장한 적과 싸워서 얻은 제주도인민들의 거대한 승리였다.


이 첫 봉기에는 500여명의 인민무장자위대들을 선두로 하고 로동자, 농민, 사무원, 어민, 해녀, 목동들과 학생 등 3,000여명이 참가하였으며 그 가운데는 칠순의 백발로인과 애어린 소년들도 있었다.


이에 대하여 미국인 죤 메릴은 자기의 저서 ‘제주도반란’에서 “4월 3일 반란군의 주력은 500명 정도‥‥ 게릴라들이 하산하자 약 3.000명의 주민들이 가세했다.”고 썼다. (‘사회와 사상’ 서울한길사. 1989년 10월호 366페지).


원쑤들을 일시에 족쳐버린 제주도의 거리와 마을들은 기쁨과 감격으로 들끓었으며 승리자들의 기세는 승천하였다. 각지에서 “매국단선단정을 절대 반대한다!”, “유엔 림시조선위원단은 철거하라!”, “미제의 주구를 타도하라!”, “조선통일 만세!” 등의 구호를 들고 원쑤들의 죄행을 규탄하는 성토대회와 군중시위를 벌리었으며 인민대회들에서는 군중심판에 회부된 악질반동들을 처벌하였다.


이날 놈들이 받은 타격에 대해서 제주도 경무부장이란자는 다음과 같이 비명을 질렀다.


“이제 피해상황을 찾아보면 경찰지서 습격 11개소, 테로 11건, 경찰관피습 2건, 경찰관 사망 4명, 부상 7명, 행방불명 4명, 경찰관 가족사망 1명, 관공리 사망 1명, 부상 2명, 량민(앞잡이-인용자) 사망 8명, 부상 30명, 전화절단 4개소, 방화 경찰관서 3개소, 량민가옥 6개소, 도로교통파괴 9개소 등이다.(동아일보 1948. 4. 7).


봉기자들은 원쑤들에 대한 공격에서 얻은 성과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4월 4일에 다시 폭동을 일으켜 11개의 경찰지서를 습격파괴하고 여러 명의 경찰과 반동놈들을 처단하였다.


이에 대하여 재남조선군사령부 정보참모부 보고서(략칭 G-2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4월 3일에 발생한 폭동으로 인해 경찰 사망 4, 부상 5, 행불 3, 우익사망 4, 부상 16, 행불 4, 미국제 카빙총 6정, 일본제 소총 1정, 탄약 119발 로획 당함”


                                   대검찰청 좌익사건 실록이 밝힌 4월 3일


1948년 3월말, 폭동사건의 괴수 김달삼과 조봉구 등이 국방경비대 내 공산두목 문상길 중위와 내통하여 일으킨 폭동사건으로 4월 3일 오전 2시를 기해 제주도 전역에 폭동을 일으켜 14개 지서를 습격방화했다. 문상길은 감언이설로 국방경비대원들을 유인하여 완전무장 후 트럭 3대에 분승시켜 제주 경찰감찰청 및 제주경찰서를 기습점령 함으로써 일거에 제주도를 점령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러한 흉계는 오직 주동자들만 알았다. 도민 30만명 중 8할이 적색마수에 걸려들었다.


이러한 계획으로 실제 김달삼은 14개 지서를 모조리 습격하는 반면 수많은 애국자들을 함부로 살상하고 방화, 약탈, 파괴 등 온갖 만행을 자행하였고, 온 주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날의 피해 및 전과는 다음과 같다.


1) 제주경찰서 관내 

 * 화북지서: 지서 전소, 경관 1명 전사, 사환 1명 피살

 * 신엄지서: 양민 피살 5명, 부상 27, 민가 전소 4동, 적 사살 23명

 * 외도지서: 경관 전사 1

 * 함덕지서: 경관 납치 2

 * 삼양지서: 폭도 20명이 기습했으나 피해 없음

2) 서귀포경찰서 관내

 * 남원지서: 경관 전사 1

3) 모슬포 경찰서 관내

 *한림지서: 경관전사 1, 부상1, 양민피살 1. 부상 1

4) 성산포 경찰서 관내

 * 세화지서: 경관 부상 6


피해 합계를 해보면 경찰관 전사 5, 납치 2, 부상 7명이고, 양민학살 6명 부상 28, 지서사환 살해 1명이고 전과는 적사살 23명이다.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가 밝힌 4월 3일


4.3사건의 성격 개요는 전과 같고 피해는 다음과 같이 정리돼 있다. 제주도 15개 지서 중 14개 지서가 기습을 받아 불에 타거나 파괴되었다. 경찰관 13명이 사살당하고 민가 4채가 전소됐다. 수많은 우익인사들이 포함된 숙청대상자 명단을 가지고 그들의 거주처를 습격하여 미처 피하지 못한 우익들과 그 가족들을 학살했다. 


                                   제민일보 특별취재반이 밝힌 4월 3일


1994년에 발간된 “대하실록 제주민중운동사 4.3은 말한다”의 40쪽에는 4월 3일의 통계가 아래와 같이 나타나 있다,


경찰관 사망 4, 동부상 8, 동 행방불명 2, 우익일반인 사망 8, 동 부상 19, 무장대 사망 3, 생포 1, 지서 전소 1, 민간가옥 전소 4채


지역별 통계는 다음과 같다.


* 화북: 경찰 사망 1, 일반인 사망 2, 지서 전소

* 신엄 . 구엄: 경찰 부상 1, 일반인 사망 5, 동부상 10여명, 무장대 사망 2, 민가 방화 4채

* 남원: 경찰 사망1, 일반인 사망 1, 동 부상 2

* 한림: 경찰 사망1, 동부상 2, 일반인 부상 6, 무장대 생포 1

* 외도: 경창 사망 1

* 함덕: 경찰 행불 2

* 세화: 경찰 부상 2

* 대정: 경찰 부상 1. 민간 부상 1

* 조천: 경찰 부상 2, 무장대 사망 1 


                                         정부보고서가 밝힌 4월 3일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라는 정부보고서 “III 제주4.3사건 전개과정”에는 아래와 같은 취지의 사건의 성격이 기록돼 있다.


“제주도 주민은 경찰과 서청의 횡포에 시달렸다. 무장대는 이에 맞서기 위해 형성되었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몇 걸음 더 나아가 단선단정의 반대와 반미투쟁이라는 정치적 지향점을 분명하게 했다. 5.10단선을 통해 38선 이남에 반공국가를 형상하려는 미군정 및 이를 따르는 우익세력과 한판 승부의 싸움이 예고돼 있었으며 이 싸움이 4.3사건인 것이다”     


한마디로 한반도 분열세력에 맞서 싸우는 통일세력이라는 뜻이다. 소문대로 고건이 서명한 정부보고서는 좌파들이 만든 보고서 초안이라는 위 “4.3은 말한다”와 100% 일치한다. 아래 총괄통계가 위 “4.3은 말한다”의 통계와 다른 것은 실질내용이 다른 것이 아니라 (조천: 경찰 부상 2, 무장대 사망 1) 통계를 실수로 통째 누락시킨 것으로 판단된다. ‘대정면’ 까지를 보면 두 개의 자료는 정확히 일치한다. 이만큼 정부보고서는 “4.3은 말한다”를 그대로 베껴 쓴 것이며, 그 베껴쓰는 것조차 제대로 다 베껴쓰지 못하고 중요한 통계를 통째로 누락했다.  


경찰관 사망 4, 동부상 6, 동 행방불명 2, 우익일반인 사망 8, 동 부상 19, 무장대 사망 3, 생포 1, 지서 전소 1, 민간가옥 전소 4채


지역별 통계는 다음과 같다.


* 화북: 경찰 사망 1, 일반인 사망 2, 지서 전소

* 신엄 . 구엄: 경찰 부상 1, 일반인 사망 5, 동부상 10여명, 무장대 사망 2, 민가 방화 4채

* 남원: 경찰 사망1, 일반인 사망 1, 동 부상 2

* 한림: 경찰 사망1, 동부상 2, 일반인 부상 6, 무장대 생포 1

* 외도: 경찰 사망 1

* 함덕: 경찰 행불 2

* 세화: 경찰 부상 2

* 대정: 경찰 부상 1. 민간 부상 1


한가지 특기할 것은 정부부고서는 당시 제주도에 24개의 지서가 있었다며 그 중 불과 50%에 해당하는 12개 지서만 공격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어느 통계를 보아도 제주도에 24개 지서가 있었다는 통계는 찾지 못했다. 심지어는 유격대 사령관이 직접 작성한 상황일지에도 제주도 전체에 14개 지서가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정부 보고서만 이상한 것이다. 


                          유격대 사령관의 극비 상황일지에 나타난 4월 3일


위와 같이 그 중요하다는 4월 3일의 통계마저 자료원에 따라 매우 다른 것이다. 그러면 실지로 4.3사건을 주도한 유격대사령관이 기록한 통계를 보자. 이덕구는 김달삼에 이어 공식명칭 ‘제주인민유격대사령관’이 되었고, 1949년 6월 7일, 경찰에 의해 사살됐다. 이때 그의 직속부하인 '양생돌'의 주머니로부터 극비 메모인 “제주도인민유격대투쟁보고서”가 발견되었으며 이 극비 보고서는 1948년 3월 15일부터 7월 24일까지 무려 4개월 10일간에 이르는 투쟁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했다. 그 중 4월 3일 상황일지만 아래에 정리한다.

               
이하 공비가 쓴 4월 3일의 상황

4월 3일 오전 2시-4시를 기하여 8․15 해방 이후 제주도 초유의 무장반격 투쟁을 전개했다. 제주도 반동의 아성인 제주읍, 성내(제주읍내) 특히 감찰청(監察廳)과 제1구서(第1區署) 분쇄를 국경(국방경비대)에 담당시키기로 하고, 이를 위해 성내에 20명의 학생 특무원을 연락병으로써 침입시키고 나머지 14개 지서에 400명을 배치하였으나 국경이 투쟁에 참가하지 않아 거점 분쇄는 실패했고, 계획된 14개 지서 중 12개 지서를 습격하는 데 성공했다.


국경이 무장투쟁에 불참한 사유는 이러했다. 국경 프락치를 만나러 갔던바 프락치 2명은 영창에 수감 중이었으므로 하는 수 없이 횡적으로 문상길 소위를 만나 본 결과 국경에는 문소위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 직속의 정통 조직과 고승옥 하사관을 중심으로 하는 제주 출신 프락치 등 이중 세포로 되어 있었다.


고승옥으로부터 앞으로 있을 무장 투쟁에 경비대를 동원하여 참가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문상길 소위는 중앙으로부터 지시가 없어서 거절하였다는 대답이었다. 직접 재삼재사 동참을 요청하여 보았으나 여전히 중앙 지시가 없다고 거절하여 결국 국경 동원은 불가능하였고 따라서 거점 분쇄도 실패하였다.


습격한 지서는 12개, 외도 구엄 애월 한림 대정 남원 성산 세화 함덕 조천 삼양 화북이었고, 투쟁에 참가한 유격대 인력은 350명이었다.


전과는 다음과 같다. 경관 사망자 10명, 경관 부상자 4명, 경관가족 사망 3명, 경관 포로 1명, 반동 사망자 4명, 반동 부상자 3명, 반동가족 사망 3명, 반동가족 부상 1명, 반동 포로 4명, 서청 사망자 7명, 반동가옥 소각 2호(戶). 노획품으로는 군도 1 정, 카빈소총 7 정, 44식소총 1정, 공기총 1정이었다.


이를 지역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주읍의 4월 3일


화북지서에서는 경관 5명을 상대로 아부대 14명이 99식 소총 1정, 다이너마이트 4발, 휘발유탄 4발 나머지는 창을 가지고 4개 부대로 편성하여 습격했다. 처음에 전선 2개소를 절단하고 수류탄 1발 투척한 결과, 지서 내의 램프에 불이 붙어 지서가 전소했다. 경관 1명이 도주하고, 급사(주: 심부름하는 급사) 1명이 즉사했다. 1개 분대는 경관 사택을 습격하여 경관 부부를 살해하고 카빈소총 1정을 압수했고, 1개 분대는 경관 사택을 습격하여 수류탄을 투척한 결과 경관 1명이 부상했다.


외도지서에서는 경관 6명을 상대로 아부대 14명이 99식 소총 1정, 다이너마이트 3발, 휘발유탄 3발. 나머지는 창으로 습격하여 경관 1명을 숙청하고 즉시 퇴각했다. 돌아오던 중 노형리 부근에서 적 기동대와 부딪쳤으나 약 5분간 접전한 후 이를 격퇴시켰다.


유격대의 사망자수는 4명.


                                                  애월면의 4월 3일


4월 3일 오전 2시, 구엄, 애월 양개 지서를 습격했다. 구엄지서에서는 개(경관) 9명을 상대로 아 부대 120명이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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