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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김익렬의 미스테리(6)4.28평화회담(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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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바람 작성일11-03-27 21:02 조회12,5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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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익렬 중령

2. 김익렬의 4.3

3. 김익렬의 난투극

4. 김익렬 난투극의 비밀

5. 김익렬의 기고(寄稿)와 유고(遺稿)

6. ‘4.28 평화회담’은 없었다.

7. ‘평화회담’이 아니라 ‘면담’이었다

8. 붉은 9연대

9. ‘평화’에 속은 대가(代價)

 


6. ‘4.28 평화회담’은 없었다.


 김익렬은 김달삼과 직접 대좌했던 협상의 주인공이었고, 당시 4.3의 실정이나 진압 상황에 대해서 직접 목격했던 주인공이었기에 그가 남긴 기록은 중요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유고는 편향적이고 정직하지 못할뿐더러 왜곡과 거짓으로 가득 차 있는 문서이다. 김익렬의 왜곡과 거짓은 후대에 여러 저서에서 인용되며 퍼져나가 4.3의 진상 자체를 왜곡과 거짓의 골짜기로 끌어가는 견인차가 되었다. 김익렬의 유고는 4.3의 진실을 좌편향으로 끌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4.3 진상보고서에서도 유고는 진실을 뒤집는 도구로서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따라서 김익렬의 유고는 차후에라도 전문가들에 의해 철저히 검증을 받을 필요가 있고 철저히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의 유고에 나오는 김달삼과의 협상에 관한 기록들은 여러 문제점들을 품고 있다. 협상 당시의 상황을 기고와 유고를 놓고 비교해보면 같은 사건을 기록한 것인데도 육하원칙은 서로 어긋난다. 마치 다른 장면을 묘사해 놓은 두 편의 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김익렬의 유고에서 확실한 것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다만 가장 확실한 것은 김익렬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고는 김달삼과의 협상 후 한 달여 만에 작성된 것으로 기고와 유고의 정확성 면에서는 기고가 정확할 확률이 높다. 기고를 쓴 후 30여 년이 지나서 김익렬은 유고를 썼다. 유고에서는 기고에 나왔던 사건이 전혀 다른 사건인 것처럼 협상이 서술되고 있다. 이것은 김익렬의 희미한 기억력의 탓이거나 김익렬의 고의적인 의도, 둘 중 하나의 결과임이 명백하다.

 

 김익렬은 김달삼을 두 번 만났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인민유격대의 ‘투쟁보고서’1)에는 4월 하순에 이르기까지 전후 2회에 걸쳐 김익렬과 ‘면담’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두 번의 ‘면담’이 김익렬과 김달삼의 직접 대좌인지 아니면 부하들끼리의 의견 절충의 접촉까지 포함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기고에는 ‘광목잠뱅이에 밀짚모자를 쓴’ 김달삼의 부하가 부대를 방문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것도 면담일 수는 있다.

 

 기고와 유고의 상이점이 김달삼과의 두 번의 접촉을 바탕으로 씌어진 것 때문이라고 인정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기고와 유고에서 김익렬은 공통적으로 김달삼을 만나면서 유서를 썼고 김달삼과의 첫 대면임을 전제로 하고 있는 상태에서 김달삼과의 단 한 번의 만남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으로든 김익렬은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을 피할 길은 없다.

 

 김익렬은 김달삼을 만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만나러 가면서는 유서를 쓰고, 협상 후에는 가족을 인질로 내놓으려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또한 신빙성이 적다. 남로당 대정면당을 지냈던 이운방의 증언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그래도 그 때까지는 문 소위(문상길 중위)가, 그 때는 “문 소위, 문 소위” 하더구먼. 마을 사람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좋았어. 이 문 소위도 말타고 거닥거닥 와서 유유히 말 매어놓고 김달삼 집에 며칠 머무르다 가기도 했어.2)


 이 증언에서 보면 김익렬의 부하 문상길은 4.3 이전부터 김달삼과는 상당한 친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문상길은 박진경 연대장의 암살범으로 김익렬이가 애국자로 묘사하던 부하였다. 문상길이가 김달삼의 집에서 며칠씩 머무르다 갈 정도였다면 4.3 이전부터 문상길은 김달삼과 상당한 친분이 있었고 교감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김익렬이가 문상길을 통해서 김달삼을 만나는 데에는 별다른 노력이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유고에서 언급되는, 김달삼을 만나기 위한 김익렬의 노력이나 유서, 가족의 인질 등에 관한 내용도 과장 되었거나 김익렬의 창작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시 육군에는 ‘3대포’가 있었는데, 대포는 김익렬 대령이고 중포는 육사2기 출신의 홍모 소령, 소포는 육사3기 출신의 신 모소령이었다.3)

 ‘대포’라는 뜻은 의젓하게 표현하면 언변이 능하다는 뜻이고 대충 표현하면 ‘말빨’이 좋다는 뜻이다. 좀 더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구라’나 ‘뻥’이 세다는 뜻이다. 미스테리한 김익렬의 진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김익렬의 진술에 김익렬의 ‘대포’가 작용했다고 의심하거나 김익렬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조건이 선행되어져야 가능하다.

 

 김익렬 유고에서의 가장 큰 문제점은 4가지의 왜곡이다. 협상 날짜, 전투중지 기한, 김달삼의 요구조건, 회담보고 후의 상황, 등 유고에서 왜곡되어져 지금까지 진실로 믿어졌던 이 4가지 오류는 후대에 4.3의 진실을 오도하고 4.3의 진상 규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조건들이다.


-협상 날짜

 협상 날짜는 지금까지 4월 28일로 알려져 왔다. ‘4.28 평화회담’이라는 명칭도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기고와 유고에서 공통적으로 4월 28일이라는 날짜는 등장하지 않는다. ‘4.28평화회담’이라는 이름은 순전히 허구였다. 4.28이라는 숫자도 김익렬의 ‘대포’에서 나온 정체불명의 숫자였지만 평화회담이라는 것도 김익렬의 ‘대포’였다.

 

 유고에 등장하는 ‘휴전 4일째 되는 5월 1일’이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본다면 유고에서의 협상 날짜는 4월 27일이다. 기고에서는 4월 30일이라는 정확한 표현이 등장한다. 확정적 표현으로 보거나, 기고가 협상 후 한 달여 만에 쓴 것이라는 사실로 비추어 봤을 때 협상 날짜는 4월 30일이 정확한 날짜임에 틀림이 없다. 한겨레신문 기사에서도 ‘<국제신문> 기사는 김 연대장이 협상 3개월여4) 뒤에 직접 쓴 기고문이어서 상당한 신빙성을 주고 있다’고 적고 있다.

 

 4월 28일이라는 날짜는 장창국의 저서인 ‘육사 졸업생’에 등장한다. 이 저서에 수록된 4.3에 관한 부분은 김익렬의 유고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육사 졸업생’ 초판이 나왔던 1984년에는 김익렬의 유고가 발표되지 않을 때였으므로, 장창국은 김익렬에게서 유고의 원고를 제공받았거나 자료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유고에만 나오는 협상 장면이 장창국의 저서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즉 4.28이라는 날짜는 김익렬에게서 받아 장창국이 발표한 것이다.

 

 4월 28일이라는 숫자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협상에서 전투중지 기한을 72시간으로, 5일 후의 전투부터는 배신행위로 간주한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이를 근거로 후대의 좌익들은 4.28에서 3일 후에 벌어진 5월 1일의 오라리 사건과 5월 3일의 전투를 들어 경찰이 고의적으로 평화회담 약속을 깨었다고 주장했다. 이 협상파기 논리는 좌익 측이 경찰과 우익 측을 공격하는 최고 최대의 무기였다. 이 논리를 이어받아 4.3 진상보고서에도 오라리 사건과 5월 3일의 공격 때문에 ‘협상은 깨어졌고 이후 제주4.3사건은 걷잡을 수 없는 유혈충돌로 치닫게 되었다’5)고 쓰고 있다.

 

 4.3의 유혈은 협상파기 때문에 벌어졌으며, 협상파기의 주범은 경찰과 우익이고, 그래서 4.3의 원흉은 대한민국이라는, 이 공식은 지금 현재 거의 일반적인 ‘상식’으로 통할 정도이고, 이 공식을 만들어내는 원재료가 바로 4.28회담이었다.

 그리고 4.28회담은 차차 미화되고 윤색되어져 김익렬을 ‘평화의 화신’으로 만들었다. 박진경 동상을 무너뜨리고 대신 김익렬 동상을 세우자는 좌익 측의 주장도 4.28평화회담이라는 것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어쩔 것인가. 원래의 기고에서는 전투중지 기한을 조약일로부터 7일간으로 한다고 되어있다. 4월 28일은 가공의 숫자였고 3일 간의 전투중지 기한도 믿을 수 없는 유고에서 변질된 숫자였다.

 

 4.28평화회담으로 대한민국을 매도하던 좌익단체들과 4.3진상위원회는 필히 여기에 대답해야 할 것이다. 조약을 위반했다고 우익 측을 공격하는 좌익 자료들은 4.28이라는 기준에서 파생된 논리들이다. 그러나 4.28은 존재하지도 않는 허깨비였고, 이 허깨비를 바탕으로 좌익들은 신기루의 강을 만들고 허상의 산을 만들었다. 이 허구를 바탕으로 한 4.3진상보고서도 ‘소설’을 쓴 셈이 되었고, 어느 소설가는 김익렬의 유고를 소재로 소설까지 썼다고 하니 말 그대로 소설이라는 소설을 쓴 셈이 되었다.


-전투중지 기한

 김익렬은 유고를 쓰면서 기고에서 썼던 협상 날짜를 30일에서 27일 혹은 28일로 바꾸고, 전투중지 시한은 7일에서 72시간으로 바꾸었다. 바꾸어진 숫자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경찰에서 조기 진압을 주장했던 이유는 5.10제헌선거 전까지 사태를 종결하려는 목적이었다. 반대로 인민해방군 측의 목표는 제헌선거 전까지 세력을 보존하여 선거 직전에 화력을 집중시켜 선거를 방해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4월 30일에서 7일 간이라는 전투중지 기한은 선거의 직전까지 휴전한다는 뜻이었다.

 

 7일 간의 기한이 지난 후 휴전이 깨진다면 인민해방군에게는 상당히 이롭고 경비대 측에는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이런 휴전은 진압 측에게는 쓸모가 없는 휴전이었고  휴전할 의미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김익렬은 나중에야 이 7일 간의 의미를 깨달았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유고를 쓰면서는 협상 날짜를 27일로 기한은 72시간으로 앞당겼을 것으로 보여 진다. 자기가 했던 협상의 가치를 높이고, 자기가 범했던 오류를 숨기기 위하여 첨삭을 가한 것이다.


-김달삼의 요구조건

 협상에서 김달삼의 요구 조건 중에 기고에는 있으면서 유고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있다. 김익렬은 유고에서 아주 중요한 하나를 빼버렸다. 바로 ‘단정반대(單政反對)’라는 김달삼의 요구 조건이다.

 김익렬은 4.3을 ‘관(官)의 압정에 견디다 못한 민(民)이 최후에 들고 일어난 민중폭동’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그 억압받는 민(民)이 대한민국의 제헌선거까지 반대하고 나섰다는 것은 우스운 모양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김익렬은 김달삼이가 ‘단정반대’를 조건으로 내걸었다는 사실을 유고에서는 아예 삭제해 버렸다. 그럼으로 김익렬은 인민해방군의 본색을 어느 정도 은폐시키고, 자기가 했던 협상의 색깔을 희석시켜 어느 정도 합리화할 수 있으리라 계산한 것이었다.

 

 기고에서 유고까지 30여 년의 세월 동안 김익렬의 변질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이 대목이다. 기고 당시에는 김익렬은 제주인민해방군을 반란군으로 인식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유고를 쓸 당시에는 이 인식을 버렸고 4.3반란을 4.3항쟁으로 변모시키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김익렬의 진술에서 ‘단정반대’의 유무는 김익렬의 색깔을 보여주는 리트머스이고, 김익렬의 인생항로에서 색깔의 변천사를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민주화의 물결로 좌경화 시대가 열리면서 김익렬은 그 분위기에 탑승하여 자기의 책임도 면책 받으면서, 이왕이면 4.3의 피해 발생 책임자에서 4.3의 구세주로 변신을 꿈꿨는지도 모른다. 지금으로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김익렬은 80년 좌경화의 조류에 따라 변절하였던가, 아니면 김달삼과 면담 시절부터 숨겨왔던 그의 정체성을 80년대에 드러냈던가,  둘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회담보고 후의 상황

 김익렬이가 유고에서 은폐를 시도한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또 있다. ‘회담 보고 후의 상황’에 관한 것이다. 기고에서는 ‘나의 의견은 통과를 보지 못하고 그날 밤부터 총공격은 개시되었고 반란군도 상당한 기세로 대전하여 왔다’고 되어 있다. 김익렬의 협상은 상부로부터 인준을 받지 못했고 전투는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고에서는 이렇게 변신한다. ‘나의 요청에 의하여 전 경찰은 지서만 수비 방어하고 외부에서의 행동을 일절 중지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제주도는 총소리가 그치고 평온을 되찾았다’라고 하고 있다. 김익렬은 유고에서 자기 협상은 채택되었고 그래서 평화가 찾아왔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김익렬의 왜곡 중에 가장 악랄한 왜곡이 바로 이 부분이다. 기고에서는 전쟁을, 유고에서는 평화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익렬은 똑같은 상황을 기술하면서 전쟁과 평화로, 협상 결렬과 협상 채택으로, 극과 극을 달리는 상반된 상황을 기술하고 있다. 이 부분은 김익렬 왜곡의 하이라이트이고 가장 김익렬다운 왜곡이라 할 수 있다.

 후대의 남한 좌익들이 4.3에 대해 대한민국과 우익진영을 매도할 수 있었던 근거는 여기에서, 바로 김익렬의 ‘회담 후 상황’의 왜곡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김익렬은 평화를 주창하고 성사시켰는데 폭력적 정권이 일부러 강경진압을 감행하여 희생자를 양산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폭도들과 사이에 성사된 회담은 없었다. 이 생각은 폭도 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폭도 측의 입장에서도 ‘평화회담’이라는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다.

 

  김익렬의 ‘평화’에 대한 왜곡은 유고에 등장하는 다음 주장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당시 천하가 알다시피 민족적으로나 제주도민에 대하여 무죄하다. 오히려 도민들을 구출하려다 갖은 박해를 당한 사람이다.” 기고에서 출발하여 한 세대를 거치면서 유고에까지 이르자 김익렬은 비로소 구세주, 박해자의 모습으로 변신하고 있다. 김익렬의 유고에서의 수많은 창작들은 바로 이것을 위함이었을까. 그러나 김익렬은 자기가 썼던 기고가 언젠가 세상에 머리를 내밀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햇볕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은 ‘구세주 김익렬’이 아니라 ‘김익렬의 이중성’이라는 것을 김익렬은 저승에서라도 보고 있을까.

 

 기고에서 구축한 김익렬의 알리바이는 유고에서 김익렬 스스로가 뒤집었다. 진술번복과 알리바이의 부재는 회담 자체의 실존에까지 의문을 던지게 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만약 ‘투쟁보고서’에 나온 기록대로 김익렬과 김달삼이 두 번 만난 것이 맞다면, 김익렬은 왜 한 번의 만남으로 거짓말을 해야 했을까. 그리고 또 한 번의 만남으로 기록하면서 쓴 두 번의 기록에는 시간과 장소, 인원, 면담 내용 등 중요한 요소들은 들어맞는 것이 하나도 없다. 참으로 괴이하고 황당한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첫걸음으로는 김익렬의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김익렬은 정상적이라는 기반 위에서는 진실은 안개 속에서 영원히 헤매야 하고, 모든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것은 세상만사가 아니라 김익렬 하나라면 세상만사의 톱니바퀴는 돌아가기 시작한다.


 

1) 제주도인민유격대투쟁보고서
2) 제주4.3연구소 이제사 말햄수다1. 200쪽
3) 박정인 국방일보 그때그이야기 김익렬 대령과 육군 3대포
4) 기고는 협상 한 달여 후인 6월에 작성됐고 3개월 후에 발표됐다. 발표 시기와 작성 시기를 혼동한 듯하다.
5) 제주4.3사건진상보고서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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