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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진상조사 주동자들의 거짓 꼼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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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1-04-01 19:53 조회16,1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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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진상조사 주동자들의 거짓 꼼수들


1998.11.23. 김대중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주4.3은 공산당의 폭동으로 일어났지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으니 진실을 밝혀 누명을 밝혀줘야 한다'


이 내용은 그 다음 날인 24일자 한라일보에 보도됐다.


위 김대중의 발언은 4.3사건의 성격을 매우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고, 필자를 포함한 수많은 애국국민들의 의견과 정확히 일치하고, 최근 과거사위가 정의한 바의 “4.3은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모반적 반란”이라는 표현과도 일치한다.


그런데 인터넷에 압도적으로 떠도는 글들에는 김대중의 했던 말의 후반부만 들어 있다.    


"제주 4·3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으니 진실을 밝혀 누명을 벗겨줘야 한다."


고건과 박원순 등이 주도한 정부보고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는 4.3사건의 시작을 1947년 3.1사건으로 설정했다. 3.1절 기념행사를 거행하기 위해 제주경찰서 인근 광장에 운집한 3만여 명의 도민에 경찰이 발포를 하여 6명이 사망하게 된 데에서 분노를 느낀 도민들이 무장대를 만들어 인권을 지키기 위해 저항한 정당한 항쟁으로 몰고 가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4.3사건의 시작은 여기가 아니었다. 3.1사건 이전에 좌익들에 의해 저질러진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으며 이러한 사건은 단순한 폭력사건이 아니라 적기가와 인항가를 부르고 인민공화국 만세를 부르고 인공기를 흔들며 오랫 동안 한라산 속에서 훈련을 했고, 야체이카(세포) 조직들을 설치하여 제주도 주민의 80%를 좌경화시켜놓고 단정 단선을 저지하기 위해 역량을 강화했다.


1946년 1월 15일에는 각 읍면 단위로 신탁통치 반대 군중대회를 가졌다. 그 직후 중안에서 신탁통치찬성 쪽으로 방향을 바꾸자 제주도 공산주의자들 역시 찬탁으로 급선회했다. 1946년 9월 22일, 제주도 인민위원회(위원장 오대진)가 결성되었고, 12월 9일에는 조선공산당 제주도위원회(위원장 김정노), 1947년 2월 12일에는 남노당 제주도위원회(위원장 안세훈). 2월 23일에는 민민전 제주도위원회(안세훈 현호경, 이일선 등)를 결성했다. 1947년 3.1사건 이전에 이미 제주도에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선동과 조직화와 시위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3.1사건은 남로당이 계획한 의도적인 도전행위

1947년 2월 26일(수), 제주 신보에는 “각종 사회단체 참가코, ‘민전’ 성대히 결성-의장단에 안세훈씨 외 2씨 추대-”라는 제하의 기사가 있다. 안세훈이 등단하여 ‘3천만 동포가 모스코바 3상의 결정의 실천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요지의 연설을 했다. 명예의장에 스탈린 수장, 박헌영, 김일성, 허헌, 김원봉, 우영준을 추대하고. 이어서 광주시 남로당 결성대회에 격려메시지를 보낼 것, 박헌영의 체포령 취소와 투옥된 열사들을 즉시 석방할 것, 일체의 배급권을 인민의 손에 넘길 것. 요구조건을 불승인하면 지방선거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등의 내용을 담긴 서한을 하지 중장에게 보낼 것을 결의했다.


1947년 2월 17일에는 “3.1절 기념투쟁 제주도위원회”가 결성되어 위원장 안세훈 등 당간부, 사회단체, 지방유지 등 30여 명으로 위원을 선정했다. 남로당 제주도당은 남로당 중앙당 및 전남도당으로부터 받은 “3.1기념 투쟁에 관한 지령문”을 읍,면, 직장, 공장, 세포 앞으로 하달했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3.1투쟁의 취지: “작년 9월의 철도파업으로 시작된 전국산업의 대파업과 10.1대구 인민항쟁으로 시작된 남조선의 대항쟁은 계속되고 있다.      

    

3.1기념투쟁의 목표: 근로인민의 생활 확보, 삼상회의 결정에 따른 조선의 완전한 독립, 미군정과 기회주의자들에게 속지 말고 남로당에 충성할 것


투쟁방침: 각 지휘자 및 자위대는 반 및 직장 별로 전원 동원시켜 지정된 장소와 시간에 집합시킬 것


투쟁표어: 애국투사 즉시 석방하라, 최고지도자 박헌영 선생 체포령을 즉각 철회하라, 정권을 즉시 인민위원회로 넘겨라, 진보적 노동법을 즉시 실시하라, 학원의 민주화를 보장하라, 근로 인민은 남조선로동당 깃발 밑으로, 남녀평등 법을 즉시 실시하라.


이러한 움직임을 감지한 경찰 강인수 청장은 2월 23일, 안세훈 등 투쟁위원 5명을 경찰청으로 초치하여 “3.1절 기념행사에 대한 미군정 당국의 방침이 있다. 행사는 각 직장, 읍면, 리 단위로 하되 반드시 허가를 맡아서 하고 시위는 못하게 되어 있으니 질서 있고 평온하게 해주기 바란다”는 요지의 당부를 했다. 그런데도 안세훈은 대규모 시위 준비를 계속했다.


이에 미군정장관 스타우드는 2월 38일 자신의 사무실로 안세훈 등을 초치하는 한편, 경찰청장 강인수, 경찰고문 비드린치, 제주경찰서장 강동호 등을 부른 자리에서 안세훈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내일3.1절 기념행사에 조천, 애월, 한림등지의 군중들을 제주읍내로 집결시켜 과격한 시위를 감행할 것이라는 정보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사회 질서가 혼란케될 우려가 있으니 읍내 시위는 절대 안되며 대중을 동원하여 행사를 치러는 것이 불가피하면 제주읍내를 벗어나 다호부락 북쪽인 서비행장에서 치러주기를 바란다.“


이에 안세훈은 일언지하에 이를 거절하였다. 그리고 3월 1일이 되었다.


3월1일, 남로당 제주도당은 서쪽으로부터 동쪽에 이르기까지 수천 명씩의 군중을 제주읍으로 동원했다.  9시 경, 제주북국민학교였다. 장소에 비해 군중이 너무 많아 넘쳐난 군중은 이조 때 관헌이었던 관덕정 앞 광장 즉 제주경찰서 앞 광장에까지 가득 메웠다. 3만 명 정도 되었다고 하고 5만이었다고도 한다. 지금처럼 경찰 집계 다르고 주최 측 집계가 달랐던 것이다.


관덕정은 제주경찰서와 이웃해 있고, 제주북국민학교와의 거리는 직선으로 50-60m에 불과했다.  9시가 좀 넘자 제주도당위원장 안세훈이 참모 및 당원들을 인솔하고  제주 북국민학교에 나타났다. 군중들은 이곳으로 집결하기 전에 각기 각 지역에서 미리 모여 지역별 행사를 개최했다. 오현중학교에서도 행사가 있었고, 다른 지역에서도 사전 행사가 있었다.


제주도민(김하영)의 수기에 의하면 화북초등학교에서도 사전 행사가 있었다. 일본에서 건너온 양지명이라는 초등학교 ‘자원봉사 교사’의 인솔 하에 옛 음조의 애국가, 적기가,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부르고, 조선독립만세, 김일성장군 만세, 신탁통치 결사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고 열기를 고조시킨 다음에 관덕정으로 집결했다 한다.  


제주도 남노당은 북국민학교에 설치된 무대에서 중앙당으로부터 지시된 표어의 내용들이 담긴 삐라를 뿌리고 군중을 선동하여 흥분시켰다. 군중 속에서도 옳소 옳소 하는 소리가 나게 하여 군중무드를 더욱 고조시켰다. ‘인민공화국 수립만세’라는 만세삼창이 끝나자 군중들은 4-5명씩 한 손으로는 어깨동무를 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앞 사람의 허리띠를 붙잡고 ‘왔샤 왔샤’ 구령소리를 내면서 행진하기 시작했다.


                                대나무로 경찰이 탄 말의 항문을 찔러


교문을 나서서 대오는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한 행렬은 경찰서를 향해, 다른 행렬은 감찰청을 향해 노도와 같이 진격하였다. 경찰서가 유린되고 제주 경찰청의 전신인 감찰청이 위험에 빠졌다고 판단한 경찰은 이를 해산하기 위해 기마경찰대를 다급하게 내보냈다.


이들이 군중들 사이에 길을 뚫고 나가자 남노당의 기발한 공작이 이어졌다. 깃대로 사용하던 대나무 막대기를 임영관 순경이 탄 말의 항문을 냅다 찌른 후 말을 마구 때렸다. 갑자기 상처를 입고 매타작을 당한 말은 통제할 수 없이 아픔에 날뛰었다. 이 말이 관덕정 앞에 구경나온 어린이를 건드려 비명을 질렀다. 어른들은 피했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어린 아이가 다친 것이다. 공산당의 술수를 잘 아는 필자의 생각으로는 전문가의 공작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군중들이 들고 일어나 “저놈 죽여라” 함성을 지르며 경찰관에게 일제히 달려들었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경찰은 자위수단으로 총을 발사했다. 그렇지 않아도 경찰서를 향해 새까맣게 몰려오는 군중에 대해 바짝 긴장하고 있던 경찰서 직원들이 이 총소리에 놀라 시위대를 향해 총을 발사했고, 이로 인해 시위군중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공산당의 전문수법인 시체장사 꺼리가 생긴 것이다. 


이상의 상황 전개과정을 보면 제주도에서 벌어진 4.3사건은 단순하게 3.1사건에서 발생한 6명의 희생자로 인해 비로소 발생한 정당한 항쟁일 수는 없다.


                                  4.3사건이란 무엇인가?


인공기를 날리고, 적기가와 인항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부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를 외치는 유격대는 경찰과 군과 우익과 지방유지 및 그 가족들을 학살하고, 군경-우익청년단체들로 이루어진 토벌대는 유격대와 유격대에 협조하는 제주도 인구 80%에 비례하는 수많은 지원병들을 상대로 토벌을 하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이 4.3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무장유격대가 죽인 억울한 사람들이 있었고, 토벌대가 피아식별이 안되어 억울하게 죽인 사람들이 있었으며, 인민군에 호응하여 그들을 도와준 대가로 당시로서는 당연히 살해당했어야 할 골수좌익들이 있었다는 것이 필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규정하는 4.3사건이다. 


이런 4.3 사건의 단초가 과연 1947년 3월 1일, 평화적으로 시위를 한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그 과정에서 6명의 사망자를 낸 데 대한 보복으로 진행되었는가? 경찰에 대한 보복이면 경찰을 쏘아야지 어째서 경찰의 부인과 자식들과 독립운동을 한 훌륭한 목사와 지방 유지와 그 가족을 학살했는가? 그리고 어째서 밤마다 살인행위를 자행했는가?


1947년 2월 남로당이 내린 지령문과 제주도당 지령문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4.3사건은 1946년 공산당 소속의 ‘전평’이 주도한 9월 파업과 10.1 대구폭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4.3사건이다. 이때 소련은 전평에 300만엔 대구 폭동에 200만엔을 지원했다. 그리고 4.3사건의 쌍둥이가 여수-순천의 반란사건이다.


                        여순 반란사건과 4.3사건은 똑같은 성격의 반란


여수-순천의 반란 사건이 9일 천하로 끝난 반면 4.3사건이 1946년부터 1954년까지 9년 동안이니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타도에 비해 의식화된 제주도민이 많아 도민의 상당부분을 인민군 세력으로 확보했고, 한라산이 있었고, 팔로군 출신들로부터 훈련된 인민군 병사들이 있었고 제주도가 멀리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4.3사건과 여순사건은 두 개가 아니라 하나다. 성격이 같은 것이다. 하나는 9일 천하이고, 하나는 9년 천하가 된 것은 제주도 주민들과 한라산이 인민유격대에 그만큼 협조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빨갱이들의 조작수법은 4.3과 5.18에서 동일하게 나타나


빨갱이들은 5.18에 대해서도 똑같이 주장한다. 계엄군이 광주 사람들을 빨갱이라며 무조건 내려와 한 손에는 철심이 박힌 특수 곤봉을 다른 손에는 대검을 들고 패고 찌르면서 피가 강을 이루었는데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인권을 지키기 위해 저항한 것이 5.18이라고 선전해 왔다.


그러나 검찰이 1995년 7월 18일 내놓은 “5.18관련사건 수사결과”에 의하면 5월 18일(일) 전남대 앞에 운집해 있는 250여 명의 학생들에게 20명 정도의 공수대원들이 마이크를 들고 “계엄령이 선포됐으니 학생들은 가정으로 돌아가시오”하는 순간 학생들이 책가방 속에 숨겨온 각이 진 돌멩이들을 던져 7명의 공수대원들이 피를 흘리는 순간부터 시작됐다.        



2011.4.1.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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