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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 파고든 영원한 기생충, 공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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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1-04-15 15:30 조회15,3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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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에 파고든 영원한 기생충, 공산주의!


                               1. 해방 이전의 공산주의 확산 


1017년 10월 볼셰비키 혁명이후 공산주의는 ‘무산계급의 천국’이라는 달콤한 감언이설로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에 확산됐고, 스스로를 양심적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지식인들이 현실적 본질은 구경조차 하지 못한 채, 공산주의 선전과 선동에 넘어가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미국과 일본 정부는 각기의 사회에 파고든 공산주의자들을 사냥하기 위해 실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1920-50년대에만 해도 미국 경찰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공산주의자들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개 끌듯 질질 끌고 나가 차에 태웠다.


문맹율이 90%였던 시절,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논할 수 있고, 공산주의를 선전할 만한 용기를 가져야 지식인이라는 생각이 팽패했다. 그리고 이들의 색다른 소리에 대부분의 국민들이 현혹됐고, 색다른 소리를 내는 붉은 전염병자들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따름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공산주의가 진보한 사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진보’라고 불렀다. 공산주의를 적극적으로 선전하는 데 앞장 선 사람들은 일본 유학생들, 그들은 작은 마을들을 찾아다니면서 강연을 했고, 선교사들에 대항했으며, 종교는 미신이라고 외쳤다.


일본 경찰의 감시망을 뚫고 가장 성공적으로 국내에 침투한 밀사는 김재봉, 그는 안동출신으로 블라디보스토크로부터 한국 내 공산당 결성의 밀명을 받고 한국에 잠입했다. 그는 조선공산당 창당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조봉암과 협력했다. 조선공산당 창당의 배후인물이 김재봉과 조봉암이었던 것이다. 김재봉(1890-1944년)은 대구계성학교를 졸업했고, 1922년 11월,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입당한 후 1923년 조선일보 기자가 되었고, 현직 조선일보 기자 신분으로 1924년 04월, 조선노농총동맹과 조선청년총동맹을 결성한데 이어 1925년 4월 조선공산당의 초대 책임비서를 지냈다. 2003년 10월 31일, 제주도에 날아가 4.3역사를 뒤집어 놓은 노무현은 2005년, 이 빨갱이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했다.


1925년 4월 17일 서울 중심가에 있는 유명한 중국음식점 아서원에서 김재봉의 주재로 비밀 발기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조선일보사와 동아일보사 그리고 그 밖의 언론기관에 침투해 있던 이르쿠츠크파(필자주: 1919년 당시 고려공산당은 상하이의 고려공산당과 연해주 이르크츠크의 고려공산당으로 양립)의 박헌영, 조봉암, 김단치, 임원근, 김재봉, 신일객, 신석우, 홍회식, 구연흠, 어수갑 등이 등장했다. 그리고 다음날은 4월 18일에 당명을 ‘조선공산당’으로 정했다. 이것이 한국 내 최초의 공산당인 제1차 ‘조선공산당’이었으며, 이 조선공산당은 후에 탄압을 받아 여러 차례 와해 재건을 거듭했다.


제1차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에서 김재봉이 책임비서(당비서)로 선출되었고, 조선공산청년회의 책임비서에는 과거에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의 상해 공산청년회 비서였던 박헌영이 선출되었다. 이어서 중앙집행위원회의 위원들로 구성된 6개의 기구가 발족됐다. 조직부장에 조동우, 선전부장에 김찬, 인사부장에 김약수, 노농부장에 정운해, 정치부장에 유진희, 조사부장에 주종건이었다. 그리고 코민테른은 조선공산당을 유일한 코민테른(Communist International, 1919년 모스크바에서 창립한 국제공산당, 30개국의 35개 공산당) 한국지부로 승인했다. 이때부터 한국 내의 공산주의 운동은 코민테른의 직접지도하에 들어갔다. 소련 공산당의 지휘를 받게 된 것이다. 


중앙집행위원회의 위원이 아니었던 박헌영은 당의 보조적 청년조직인 고려공산청년회를 이끌었다. 고려공산청년회의 발기모임은 1925년 4월 18일 서울 훈정동에 있는 박헌영의 집에서 열렸다. 고려공산청년회의 제1차 집행위원회는 박헌영을 청년회의 의장으로 선출하고 집행위원회의 위원들을 6개의 요직에 배치했다. 이 회의에서 박헌영은 조봉암을 콤소몰(Komsomol)에 파견할 대표로 선출했고, 조봉암은 1925년 4월 말 즉시 모스크바로 떠났다. 조봉암은 박헌영과 협력하여 그해 10월, 21명의 한국 학생들을 동방공산대학에 보내는 데 성공했다.


조선공산당 창립 수일 후 고려공산청년회의 선전부장 신철수는 청년회 당원 수명을 이끌고 대중운동을 위한 전조선노동자대회에서 적기를 흔들고 “조선공산당 만세!”를 외쳤다가 즉각 체포되었다. 이어서 이른바 ‘신의주사건’이 터졌다. 1925년 11월 22일, 서울에서 상해로 파견된 두 명의 당원이 신의주에서 일본인 경찰 간부와 그 일행인 변호사들을 심하게 때려눕히고 소매 안에서 적기를 꺼내 흔들며 “한국 공산주의 만세!”라고 외쳤다. 이들은 곧 체포되었고, 이들로부터 박헌영이 상해의 여운형에게 보내는 편지가 발각되었다.


이에 따라 대규모의 수사가 행해졌으며, 그 결과 중앙집행위원회 위원들인 김재봉, 김약수, 주종건, 임원근을 포함한 30여 명의 주요 공산주의자들이 체포되었다. 이때 체포를 면한 간부들이 있었다. 조동우와 조봉암은 모스크바에 사절로 나가 있었고, 김찬, 김단야, 최원택 등은 상해로 도주했다. 김재봉은 첫 소탕에서는 잡히지 않았지만 1925년 12월 19일에 체포되었다. 이른바 제1차 조선공산당의 결성 및 와해의 역사인 것이다.


위와 같은 국제공산주의 물결에 따라 일본과 만주 러시아 등에 나가 있던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하여 서클에 가담하고 스스로 세포(러시아 말로 야체이카)가 되어 서울과 자기 고향을 오가며 공산주의를 확산시켰다. 1921년 1월 27일에는 맑스-레닌사상을 신봉하는 ‘서울청년회’가 결정되었고, 1925년 4월 17일에는 박헌영 주도로 제1차 조선공산당이 결성되었다 와해됐다.


1926년 12월 6일, 제3차로 조선공산당이 재건되었지만 이 역시 1928년 전국에 걸친 검거선풍으로 와해되었다. 1928년 2월 27일, 제4차 조선공산당이 재건되었지만 그 해 4-8월 사이에 진행된 검거선풍으로 또 와해됐다. 이처럼 공산주의는 1920년대에 서울을 중심으로 들어왔고, 이는 여지없이 제주도를 포함한 각 지방에도 파급 확산되었지만 일본 경찰의 집요한 추적과 탄압을 받아 1932년 이후 지하로 숨어들었다. 이들은 야학 등 각종 위장행위를 통해 지하에서 여운형과 박헌영을 중심인물로 띄우면서 1930년대의 남한 사회를 붉게 물들였다.


이러한 바람은 제주도에도 여지없이 불었다. 1921년 1월 27일 서울에서 M.L사상 단체인 ‘서울청년회’를 탄생시킨 주역 중의 한 사람인 김명식은 제주도 조천 출신으로 와세다 대학 출신이었다. 이로부터 2개월여 후인 4월, 주제도에서 서울로 유학하여 공부하던 김택수, 김민화, 홍양명, 한상호, 송종현, 등이 위 김명식의 지시를 받고 제주도로 귀향하여 ‘서울청년회’의 제주도 버전으로 ‘반역자 구락부’를 결성했다.


그리고 이 ‘반역자구락부’는 1925년 5월 11일 ‘제주신인회’로 탈바꿈했다. 당시 서울의 보성전문, 경성고보, 휘문고보 등에 재학 및 졸업생이었던 고경흠, 김시용, 강창보, 김정노 등이 귀향하여 오대진, 윤석원, 송종현 등을 포섭하여 반역자구락부를 ‘제주신인회’로 업그레이드시켰지만 불과 며칠 만에 곧바로 일본경찰에 발각되어 핵심간부들이 금고 5월에 처해지면서 와해되었다. 1926년 8월 서울에서 제3차공산당이 와해된 지 1년만인 1927년 8월, 제주도에서는 ‘제3차조선공산당제주야체이카’가 결성됐다. 야체이키란 세포를 뜻하는 러시아말이다.

조선공산당전남도당 김재명의 지시를 받은 제주야체이카 대표인 송종현이 제주도로 와서 위 강창보, 한상호, 김택수, 윤석원, 김정노 오대진을 비롯하여 신재흥, 이익우, 김한정 등을 이끌고 ‘제3차조선공산당제주야체이카’를 결성했지만, 이 역시 며칠 견지지 못하고 주동자들이 체포, 서울로 압송되어 징역 1-3년의 형에 처해지면서 와해됐다.

1928년 2월 27일, 서울에서 재건되었던 ‘제4차 조선공산당’이 그해 8월에 검거선풍으로 와해됐다. 그 후 만3년이 지난 1931년 5월 16일, 제주도에서는 ‘제4차조선공산당야체이카’가 재건됐다. ‘제3차조선공산당야체이카’ 멤버들이 형기를 마치고 귀환한 후 강창보가 중심이 되고, 멤버들을 전부다 대폭 확대하여 전도적 규모의 ‘제4차조선공산당야체이카’를 결성하여 운동을 전개했지만, 불과 8개월 만인 1931년 1월 구좌면 하도리의 해녀시위사건으로 배후 조직이 탄로나 그해 3월 전도에 걸쳐 100여 명이 체포되어 광주지법 목포지청에서 길게는 5년 짧게는 6월의 징역형에 처해졌다. 형기를 맞추고 나온 이들에게는 “요주의인물‘로 분류되어 계속된 감사를 받았고, 그 결과 이들은 지하로 숨어들었다.


하도리 해녀시위사건이란 해녀들이 캐낸 어류들에 대해 해녀조합측이 싼 값에 후리치면서 이를 시정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 데에서 발생했다. 해녀조합에서 정한 지정 판매일인 1월 12일은 제주도사 겸 제주도 해녀어업조합의 조합장이었던 다구치[田口禎熹]가 새로 부임한 뒤 순시하러 구좌면을 통과하는 날인 동시에 세화리 장날이었다. 이에 구좌면 하도리·세화리·종달리·연평리, 정의면(현 성산읍) 오조리·시흥리 등의 해녀들이 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하고, 이 기회에 제주도사에게 요구 조건을 제시하기로 결의했다.


1월 12일 장날이 되자 세화경찰관 주재소 동쪽 네거리에 종달리·오조리 해녀 300여 명과 하도리 해녀 300여 명, 세화리 해녀 40여 명 등 640여 명이 일시에 모여들었다. 해녀들은 호미와 빗창을 휘두르면서 만세를 외치며 세화장으로 향했다. 해녀들은 세화장에 모여든 군중들과 더불어 집회를 열고, 각 마을 해녀 대표들이 항쟁의 의지를 다지는 연설을 차례로 하였다.


시위대에 놀란 제주도사 일행은 구좌면 순시를 포기하고 돌아가려 했다. 그러자 시위대가 차에 탄 제주도사를 에워싸면서 호미와 빗창을 들고 “우리들의 요구에 칼로써 대응하면 우리는 죽음으로써 대응한다”라고 외치며 달려들었다. 사태가 험악해지자 제주도사는 해녀들과의 대화에 응하기로 하였다. 이에 해녀 측에서는 지정 판매 반대, 해녀조합비 면제, 제주도사의 조합장 겸직 반대, 일본 상인 배척 등의 항일적 성격의 요구 조건을 내걸고 직접 제주도사와 담판을 벌였다. 마침내 해녀들은 5일 이내에 자신들의 요구 조건을 해결해 주겠다는 제주도사의 약속을 받아냈지만 일경은 그 배후에 야체이카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후 일경은 전국적으로 공산당에 대한 검거작업을 진행했다. 지상 활동으로서는 일경의 눈을 속일 수 없다고 판단한 공산당 당원들은 일제히 지하로 파고들어 야학 등 위장활동을 통해 그들의 조직을 암암리에 넓혀가고 있다가 해방을 맞게 되었다.  

  

2011.4.15.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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