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과 우익들의 역사의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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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1-04-25 23:20 조회19,81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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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과 우익들의 역사의식에 대하여
지금 현재 제작돼 있는 역사교과서는 대부분 북한과 김일성을 추켜세우고, 대한민국과 이승만을 비하하는 좌익사관으로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이 이런 역사교과서를 고교 필수과목으로 지정한다고 합니다. 이명박은 역사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돈이나 벌던 사람이 무슨 역사공부를 했겠으며 무슨 역사의식이 있겠습니까?
역사를 모르는 사람의 머리는 먼저 점령하는 사람이 임자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이명박의 머리를 먼저 점령했더군요. 민족문제연구소는 빨갱이들의 집합소입니다. 그 연구소장이 임헌영이고, 임헌영은 이재오가 남민전으로 포섭한 인물로 이재오의 글쟁이 노릇이나 하던 꼬붕이었습니다. 이명박은 이재오의 로봇이고, 이재오는 임헌영의 로봇이니 역사가 이렇듯 오뉴월 개천렵 하듯이 더럽게 찢어진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한데 뭉쳐, 애국지사요 독립유공자인 19명과 어울러 박정희를 친일파로 단죄했습니다. 19명이 보유하고 있던 훈장을 박탈하라고 대통령에 건의했고, 이명박은 이 빨갱이의 건의대로 애국자요 독립운동가들의 훈장을 대거 박탈했습니다. 이런 개념 없는 사람이 대통령을 하니 국가의 체신이 말이 아닙니다.
4월에는 홍역이 있었습니다. 이인수 박사와 4.19 빨갱이들 사이의 몸싸움이 있었습니다. 이승만의 아들은 물론 이승만 기념사업 하는 사람들에서 영혼이 날아가 버렸고 그래서 이승만 명예회복에 대한 전략이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빨갱이 인간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다니요. 이런 정신나간 사람들이 무슨 수로 이승만을 구해냅니까?
4.19가 무엇입니까? 민주혁명이라 했습니까? 무엇을 혁명했는데요? 좋게 말하면 3.15부정선거에 저항한 데모이고, 나쁘게 말하면 간첩의 특수공작인 선동에 놀아난 폭력행사였습니다. 4.19는 1960년의 산물입니다. 1946년에는 전국적 9월 총파업과 10월 전국적 폭동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명백한 스티코프 소련군정 사령관의 지시에 의해 발생했습니다. 9월 총파업에는 200만엔을, 10월 폭동엔 300만엔을 지원했고, 이를 수행한 자들은 남한 빨갱이들이요 이를 연출한 사람들은 훈련된 고정 간첩입니다.
4.19를 고정간접이 배후조종했다는 증언은 두 사람이 했습니다, 한 사람은 신현확 전총리이고, 다른 한 사람은 검거된 고장간첩 이석입니다. 그리고 4.19정신을 지킨다는 이른바 ‘4월혁명회’는 새빨간 빨갱이들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고건과 류근일은 한총련의 원조인 ‘일진회’를 조직한 사람들이고 이 일진회가 4.19를 지휘했다는 것은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책에도 나와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1946년의 9월 총파업, 10월 폭동, 1948년의 4.3살인폭동사건, 1960년의 4.19, 1980년의 5.18사건은 대남공작의 패러다임 상 모두 빨갱이들이 북한과 내통하여 일으킨 반국가 폭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련의 대남적화통일 공작 역사들 중 어느 것은 북한이 일으킨 폭동이고 어느 것은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단지 연구가 없는 일반 국민들이 이리 저리 휘둘리기 때문에 혼돈이 발생한 것입니다.
국민이 얼마나 휘둘리는지는 4.3 역사를 뒤집는 모습에서 아주 잘 나타나 있습니다. 5.18에 대한 역사는 1990년대에 뒤집었습니다. 1990년대는 빨간색을 푸르다 해도 먹혀드는 민주화 시대요, 논리와 상식이 통하지 않는 광란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4.3의 역사는 지금 이 시간에 국민들이 모르는 사이에 뒤집혀지고 있습니다. 저들은 소리를 내고 있지만 국민이 무관심하기 때문에 소리 없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우익 인사들이 저들에 맞서 싸우다가 법정에서 줄줄이 패하고 있습니다. 애국심은 좋았지만 세부 연구와 전략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4.3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세부 사항들에 대해서는 저보다 더 많이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러나 역사를 쓰는 것에는 전략과 지혜와 패러다임이 필요합니다.
저는 4.3역사에 대해 이미 80% 정도는 파악했다고 생각합니다. 4.3역사는 제주도 역사입니다. 하지만 제주도 역사만 쓰면 4.3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는 북의 전반적인 대남공작역사의 일환으로 4.3역사를 쓸 것입니다. 4.3역사를 좌경화된 시각으로 쓴 책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 많은 책들이 다 잘 팔릴까요?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좌경화된 역사책들을 씁니다. 어디로부터 인지는 몰라도 격려와 지원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좌익에는 돈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익은 어떻습니까? 5.18역사를 누가 썼습니까? 저는 감옥의 담벽 위에서 서커스를 하면서 5.18책들을 썼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감옥에 가나 안 가나 하고 지켜보았습니다. 참으로 서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책이 나왔는데도 몸들을 사립니다. 5.18단체들은 벌써 이 책으로 인해 주눅이 들어있는데도 말입니다.
‘솔로몬 앞에 선 5.18’은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북한자료들을 찾아 3만리, 손톱이 흙을 파서 피가 날 정도로 상해가지고 쓴 책이었으며, 그 책의 덕분으로 1심에서 승리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책은 불과 3,000부 나가고 3,000부가 제가 일하는 비좁은 사무실에 가득 쌓여 있습니다.
이제는 그 쌓인 책들이 보기 싫습니다. 이렇게 멸시당하는 역사책을 다시는 쓰지 않겠다 생각을 하면서도 저는 거의 생태적으로 또 4.3의 역사를 씁니다.
2011.4.25.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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