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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기록유산 관련 UNESCO에 보내는 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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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1-05-14 17:50 조회23,8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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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ar Mr. Davidson L. HEPBURN, The President of UNESCO

 

광주사태에 대한 자료들을 귀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하는 데 대해 반대하는 청원의 뜻을 전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5.18 광주사태’에 대해 지난 8년 동안 연구하여 그 결과물을 총 2,000여 쪽에 달하는 출판물로 세상에 내놓은 분석학자입니다. 이러한 자격으로 저는 대한민국 국회의원 김영진의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일방적인 등재노력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 드리고자 합니다. 


광주사태는 1980년 5월 18일에 시작하여 5월 27일에 종결된 충돌의 역사입니다. 충돌에는 2개의 당사자가 존재합니다. 하나는  대한민국이고 다른 하나는 광주 시위대입니다. 광주 시위대는 주로 광주 시민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시위대의 80%는 광주사회에서 소외되어 살아온 무직자, 떠돌이, 구두닦이, 껌팔이, 넝마주이 등 최하층 계급입니다. 이는 광주시민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김영진 의원은 광주지역 일부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며, 충돌의 두 당사자 중에서 한쪽 당사자를 대표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등재청원을 주도할 객관적 입장에 있지 아니합니다. 또한 그가 귀 기관에 제출한 5.18 자료들은 시위대 즉 반란군에 유리한 것들만 제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귀 기관이 충돌의 두 당사자 중 한 당사자들이 제출하는 자료만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다면 이는 귀 기관의 권위와 명예에 상당한 손상을 입힐 것으로 감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충돌의 한쪽 당사자가 아닌 객관적 입장에서 지난 8년 동안 5.18역사를 연구했고, 그 결과를 2,000쪽 이상의 출판물로 발행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자격으로 말씀 드린다면 김영진이 주도하는 기록물들은 진실과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며 주요한 부분들이 왜곡돼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귀하께서 저처럼 객관적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의견 및 연구 결과물을 반드시 살펴주시기를 강력하게 요청합니다.

1994년부터 1995년까지 대한민국 검찰은 5.18의 진실에 대해 1년 동안 수사를 했고, 1995년 7월 18일 그 결과물을 216쪽에 달하는 보고서로 작성하였고, 이 보고서는 비밀로 검찰 창고에 보관돼 있다가 2005년에야 비로소 일반인들에 공개되었습니다. 특히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김영진 의원 측이 제출한 자료들에 합법성(Legitimacy)을 인정하려면 바로 이 검찰보고서와 비교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제가 감히 확신하건데 김영진 등이 귀 기관에 제출한 자료들은 검찰의 5.18수사결과 보고서 내용들에 배치되거나 양립하지 않는(Incompatable) 자료들일 것입니다. 


광주사건은 1980년에 발생하였습니다. 광주 폭동을 배후에서 기획한 인물들, 현장에서 폭동을 지휘한 사람들에 대한 검찰 수사와 판결은 1980년에 이루어졌고, 당시 대법원에 의해 광주사건은 북한과 내통한 반란사건인 것으로 종결되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참으로 희한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외국이 알면 매우 부끄러운 사건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일사부재리원칙이 규정돼 있습니다. 세계의 대부분의 국가들도 그러할 것입니다.


나중에 그 배경을 설명 드리겠지만 1980년대로부터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는 친북 공산주의자들이 득세해왔습니다. 군사정권으로 비난받던 전두환 및 노태우 정권이 부정한 방법으로 비자금을 모았던 사실이 들통 나면서부터 대한민국 국민의 거의 모두가 군사정권을 비난하면서 이들은 감옥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자들은 비자금 문제만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이 기회를 이용하여 광주사태에 대한 기존의 판결, 즉 1980년의 대법원 판결을 뒤집고 새로운 판결을 내렸습니다. 과거의 충신이 역적이 되고, 과거의 역적이 충신이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검찰의 수사결과는 1980년의 결과와 1995년의 결과가 똑 같습니다. 오직 다른 것은 같은 수사결과를 놓고 1980년의 대법원과 1997년의 대법원이 정반대의 해석을 즉 판결을 한 것입니다. 우익이 정권을 잡았을 때에 작성된 역사가 좌익이 정권을 잡았을 때 180도 뒤집힌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역사쓰기는 좌익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김영진 의원이 제출하는 기록물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재조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존경스러운 귀 기관의 품위가 김영진 의원 등으로 인해 손상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잠시 저를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1942년생으로 1966년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대위 시절에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44개월간 전투작전을 수행했고, 대위-중령 시절에는 캘리포니에 몬터레이(Monterey)에 위치한 미해군대학원(U.S. Naval Postgraduate School)에서 경영학 석사와 응용수학(Operations Research) 박사를 했고, 국방부 산하에 설립돼 있는 국방연구원(Korea Institute of Defense Analysis)에서 시니어 연구위원으로 8년간 근무하다가 육군 대령으로 예편함과 동시에 위 연구소를 나와 미해군대학원에 가서 3년 동안 교수를 했습니다. 그 후 10년 동안은 프리랜서로 칼럼을 쓰고, 군사문제 및 사회정책에 대한 분석가로서 많은 방송들에 출연하면서 제 전문성을 가지고 사회에 기여해 왔습니다.


하지만 매우 불행하게도 제 운명은 김대중이 집권하면서부터 획기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세계에 알려진 바와는 반대로 한국사회에서는 공산주의자로 알려진 김대중이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는 이변이 발생했습니다. 김대중은 5.18의 대부이고, 남한 공산주의자들의 대부입니다. 그가 대통령직을 남한의 적인 북한을 위해 남용하면서부터 저는 국가존망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꼈고 그래서 저는 반공운동을 위한 NGO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광주사태는 과거의 한국 근대사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역사적 사실들과 함께 진주목걸이처럼 연결된 역사의 한 포인트입니다. 따라서 허락하신다면(With your permission) 광주사태를 쉽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이해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 드리고자 합니다.


                                            한국현대사의 요약


귀하께서 아시다시피 한반도는 1945년, 일본이 벌인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에 패하면서 일본으로부터 독립되었지만 독립하자마자 남북으로 분단되었습니다.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습니다. 일본의 패색이 짙어졌습니다. 이에 간교한 소련은 8월 8일에 대일선전포고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일본으로부터 북방 4개 섬(Kuril Islands)을 탈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을 위성국으로 만든 다음, 남한까지 흡수하기 위해 갖가지 폭동을 지휘하였습니다.


1917년 러시아에서는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함에 따라 공산주의가 전 세계에 수출되었습니다. 남한과 일본에서도 예외 없이 공산주의가 확산되었습니다. 남한에서는 1921년부터 지식인들을 선두로 본격적인 공산주의자들이 양성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1945년 당시 제주도 섬의 인구는 28만이었습니다. 그 80%가 북한 김일성과 소련의 스탈린을 영웅으로 생각하며 공산화통일을 지지하였습니다. 북한 인공기를 들고 다녔으며, 스탈인 대원수 만세를 부르며, 경찰과 애국자들과 교회목사들를 학살했습니다. 


1945년 해방 이전부터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암암리에 양성된 남한 내의 공산주의자들은 해방과 동시에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왔습니다. 1945년 9월 8일,  미군이 서울에 진주하여 군정을 시작했지만, 이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행정과 치안 등을 유지하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는 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해방 후 상당한 기간에 걸쳐 남한의 행정과 치안은 사실상 붉은 완장을 찬 공산주의자들이 담당했습니다.


미군정에 이어 이승만 초대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을 거치면서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하여 의법처리하긴 했지만 인구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공산주의자들을 모두 색출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뿌리 깊게 양성된 공산주의자들이 있는데다가, 설상가상으로 한국사회에는 골수 공산당으로 알려진 김대중 및 노무현이 10년 동안 국가를 통치해 왔습니다. 한국사회의 요직들과 인프라에 공산주의자들이 대거 포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한국의 여러 지역 가운데 공산주의 성향이 가장 두드러진 곳은 김영진 의원의 출신지역인 광주 및 전라남도입니다. 1945년 직후에는 제주도가 공산주의 지역으로 회자됐고, 지금은 전라도가 공산주의 지역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김영진 의원이 속한 민주당은 90% 이상 전라도 출신들로 구성돼 있으며 이 정당은 북한의 에이전트라 할 만큼 미국을 미워하고 대한민국을 미워하는 반면 북한 정권의 편을 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남한에서 모든 것을 누리면서 북한에 충성하는 사람들입니다.


얼마 전 북한은 이른바 천안함 폭침이라는 테러사건을 저질렀습니다. 남한 영해에 잠수함을 보내 매복케 하여 지나가는 미니 구축함, 즉 천안함에 테러를 가한 것입니다.  미국, 영국, 스웨덴, 호주 등에서 파견된 25명의 전문가들과 한국의 전문가들이 사고현장과 반쪽씩으로 갈라진 천안함을 2개월 동안 조사하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북한이 천암함에 대한 어뢰 공격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김영진 의원이 속해 있는 민주당은 이를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선전과 선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김영진이요 이것이 그가 속한 민주당인 것입니다.          


대한민국 역사는 북한의 끊임없는 공격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해방된지 만 1년만인 1946년 9월과 10월에는 소련의 지휘와 자금지원으로 두 개의 커대한 소요가 발생했습니다. 9월에는 전국적 규모의 총파업이 발생하여 국가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10월에는 대구에서 시작된 폭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사회가 요동을 쳤습니다. 남한은 살 곳이 못된다는 정서를 온 국민에 주입시키려는 폭력선동이었습니다.

당시의 역사기록에 의하면 이는 소련의 대남공작임이 틀림없는데도 불구하고 남한의 공산주의자들은 이를 소련이나 북한과 전혀 연결이 없는 사건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미군정이 당시 남한 주민들을 경제적으로 어렵게 만들고 학대하기 때문에 이에 항거하여 일어난 정당한 저항이라고 선전해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1995년 중앙일보가 소련의 자료를 입수한 결과 소련이 이 두 개 소요에 각각 일본 돈 200만엔 및 300만엔을 지원했다는 내용이 폭로되었습니다. 이처럼 공산주의자들은 공산폭동을 정당한 민주화운동이라고 기록하여 인터넷 등을 통해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저지른 잘못을 남에게 덮어씌워 모함-모략하는 것이 바로  공산주의자들의 DNA인 것입니다.


해방이전에서부터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제주도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이 무장 유격대를 조직하여 거대한 한라산에 주둔했습니다. 일본군이 버리고 간 무기로 무장을 하였고, 무장 지도자인 인민군 사령관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1948년 4월 3일을 기해 정면으로 미군과 경찰과 한국군에게 기습공격을 가했습니다. 그러부터 1957년 4월 2일에 이르기까지 무려 10년간이나 전투행위를 하면서 무고한 주민들을 학살했습니다.

공비를 토벌하는 과정에 수많은 경찰과 군인들이 투입되었고, 충돌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때로는 정당하게 때로는 억울하게 희생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라남도 여수에 주둔한 제14연대가 제주도 증원 차 떠나는 순간 군내부에 침투한 공산주의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이웃 순천시까지 점령하여 천명에 이르는 경찰과 애국자들을 학살하였습니다.


이것이 한국이 겪은 공산주의자들의 만행이었습니다.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은 이런 제주도 반란사건을 민주화운동이요 통일운동이라고 정당화합니다. 미군과 대한민국이 국민을 탄압하는 반면 스탈린과 김일성은 북한을 민주주의 국가로 세웠기 때문에 그들의 살길은 북한에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제주 항쟁은 미국과 대한민국을 타도하기 위해 나선 정당한 저항이요 투쟁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광주 사건 역시 제주도 사건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대한민국을 적으로 규정하고 일으킨 폭동이요 반란이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제주도 사태와 광주사태는 쌍둥이입니다. 단지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제주도 반란에는 김달삼, 이덕구와 같은 기라성 같은 폭동 및 게릴라전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지도자들은 지금 북한 평양의 ‘애국열사릉’에 1m 높이의 흰 대리석 묘비와 함께 안치돼 있습니다.


제주도의 인민군 규모는 통상 500명 선을 유지했습니다. 이렇게 적은 병력을 가지고 ‘치고 빠지는 식의 게릴라 전’을 수행하는 데에도 기라성 같은 지휘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광주 반란 작전에는 지도자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광주사태에는 수만 명의 시위대가 동원되어 시가지의 수많은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공수부대를 압도하는 작전을 벌였습니다. 제주도 반란과는 그 규모가 천지 차이입니다. 그리고 공수부대를 시위 3일 만에 시외로 추방시키는 불가사의한 전과를 이룩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광주에는 이렇다 할 지휘자가 없습니다.


일사불란하게 전개된 대규모의 광주폭동 작전이 과연 지휘자 없이 즉흥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폭동 작전일 수는 없습니다. 일제 시에 전주 등 전라도에서 발생한 동학반란 작전에도 전봉준 등 우뚝 솟은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거대한 광주 반란 작전에는 지휘자가 전혀 없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당시 서점원이었던 윤상원을 반란군의 지도자라 하지만 그의 업적과 존재는 매우 미미했습니다. 광주의  거리를 그렸다는 영화 ‘화려한 휴가’는 공수부대 대령출신을 시민군 대장으로 각색했지만 그는 당시 26세의 골재채취운전수였던 박남선이라는 청년입니다.


저는 군사문제에 정통한 군사평론가입니다. 광주반란과 같은 거대하고도 치밀하게 기획된 작전에는 반드시 기획-연출-현장지휘-현장기록을 담당하는 전문가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반란 기술자 집단은 한국에 없습니다. 오직 북한에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북한당국이 발간한 5.18역사책들과 통일부 자료 그리고 검찰의 수사자료들을 총 망라하여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광주에는 북한 특수군이 왔다는 강력한 소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공산주의자들은 광주시민을 희생시킨 존재가 공수부대라고 주장해왔고 공수부대와 아울러 미국과 대한민국을 증오해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희생자 160여 명 중 그 대부분은 북한특수군에 의해 저질러졌다고 확신합니다. 이에 대한 증명과정은 “솔로몬 앞에 선 5.18”이라는 제 저서에 논리적으로 객관적 증거들에 의해 기술돼 있습니다. 책 제목을 ‘솔로몬 앞에 선 5.18’로 정한 이유는 아래에서 설명드리겠습니다.


한 가지 또 난해한 현상이 있습니다. 5.18을 민주화의 성역으로 가꾸어 온 사람들은 광주시민들의 160여명에 이르는 광주의 희생이 공수부대에 의해 발생했다고 해야 5.18의 명예가 존중되고, 북한 특수군에 의해 발생했다고 하면 5.18의 명예가 손상된다고 주장합니다. 참고로 5.18 묘지를 소유하고 있는 5.18단체들은 제가 쓴 2,000 쪽 분량의 책이 5·18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를 했지만 이 재판의 제1심은 저에게 승리를 선고했습니다. 아래의 결말 부분에서는 제가 어째서 광주반란이 북한 특수군에 의해 기획되고 연출-현장지휘-현장기록 되었는지 그 이유들을 간략하게 기술하고자 합니다.


                        광주반란 작전을 북한이 주도했다고 보는 이유


1. 북한 노동당 소속의 출판사들이 1982년 및 1985년에 2개의 5.18역사책을 썼습니다. 여기에 있는 자료들과 2005년에 처음 공개된 검찰수사자료를 대조해보면 중요한 사실들과 통계가 일치합니다. 하다못해 공수부대를 향해 지그재그로 돌진하던 대형 버스가 광전교통 ‘전남5아3706’이라는 번호판을 달고 있는 것까지 일치하며 시위군중 속에서나 알 수 있는 구체적인 폭동행위들을 기록해놓았습니다. 이는 광주의 수많은 곳에서 전개되는 상황들을 북한 사람들이 와서 기록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 북한은 해마다 5월이 되면 여러 날에 걸쳐 그리고 전국에 걸쳐 5.18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행사를 합니다. 당정의 초고위급이 주도합니다. 그리고 북한의 5.18역사책에는 5.18이 대남공작 역사상 최고봉의 결정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해마다 5월이면 남한 내에 있는 공산주의자들이 광주로 내려가 광주거리를 붉게 물들입니다. 미군을 몰아내자, 파쇼정권을 타도하자. 우리끼리 자주민족통일 하자는 구호들을 외치고, 현수막을 걸고, 붉은 피켓을 들고 행진합니다. 5.18이 북한의 역사인 것입니다. 


3. 1989년 김일성은 황석영과 윤이상을 북으로 불러 북한의 5.18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를 제작하여 1991년 개봉했습니다. 황석영은 시나리오를 윤이상은 음악을 깔았습니다. 김일성은 황석영에게 25만 달러를 주었고, 윤이상에게는 15층짜리 “윤이상음악당”을 지어주었습니다. 5.18이 그의 업적이 아니라면 이렇게 엄청난 노력과 돈을 김일성 자신이 투자할 수는 없습니다.


4. 북한의 최고인 것, 이를테면 프레스, 탱크, 공장, 작업반, 천리마운동 등에는 ‘5.18’이라는 이름이 하사됩니다. “5.18청년호” “5.18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 “5.18땅크” “5.18누에고치반”  등입니다. 5.18은 북한이 만든 북한의 역사인 것입니다. 5.18을 놓고 북한은 북한이 이룩한 최고봉의 대남작전이었다고 주장하고, 남한은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코미디가 여기 한반도에 말고 어디 또 있겠습니까? 5.18은 솔로몬 왕 앞에서 놓여진 어린 아기인 것입니다. 


5. 무기고는 일반 시민들에게 비밀로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1980년 5월 21일 오전 8시, 잘 훈련된 300명의 시위대가 군사작전 비밀인 20사단 이동계획을 탐지해가지고 20사단 지휘부가 통과하는 지점에 매복해 있다가 지휘차량 14대를 빼앗아 방위산업업체인 아시아자동차공장에 갔고, 또 다른 300명이 9시에 합세하여 370여대의 군용트럭과 4대의 장갑차를 탈취하여 가지고 전라남도에 산재한 17개 시군에 숨어있는 44개의 무기기고를 불과 4시간 만에 털어 5,400여 정의 화기를 탈취하였습니다. 이는 절대로 일반 시민들이 즉흥적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탈북자들은 북한특수군이 여러 달 전에 내려와 무기고 위치를 모두 파악했다는 상세한 진술을 출판물을 통해 발표했습니다.   


6. 신원미상의 시체 12구가 지금도 5.18묘지에 묻혀 있다는 사실입니다. 5.18단체들은 그 후 6구의 시체에 대해 신원을 밝혔다 주장하지만 이는 그들만의 주장입니다. 이 12구의 시체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는 심증을 갖게 합니다.  


7. 5.18에서 총격으로 사망한 광주시민 중에 69%가 시민군이 쏜 총기에 사망했습니다. 사망한 민간 및 신원 불상자 166명 중 총상으로 사망한 사람은 116명, 이 중 계엄군이 보유한 M-16소총으로 사망한 사람은 36명뿐이고 나머지 80명은 모두 카빈, M-1, AR자동소총, LMG, 공기소총 등 무기고에서 탈취된 총들에 의해 사망했습니다. 대체 누가 광주시민들 80명씩이나 무기고에서 탈취한 무기로 총격을 가해 사망하게 했겠습니까? 탈북자들은 북한군이 광주시민들을 분노하게 만들기 위해 쏘았다고 증언합니다.


7. 2개 연대에 해당하는 무기와 다이너마이트, 수류탄 등으로 무장한 폭도들은 정부군을 상대로 하여 싸웠습니다. 수많은 정부 소유의 공공기관들과 방송국들 그리고 경찰서와 파출소들을 보는 대로 태우고 파괴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민주화운동이라 하겠습니까? 이런 내용을 귀 기관에 기록유산으로 등재한다는 것은 세기적인 범죄행위가 될 것이며 많은 세계인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8.
무장 시위대가 광주교도소를 습격한 사실입니다. 5월 21일에는 충격적인 교도소 습격 사건이 무장시위대에 의해 6차례나 저질러졌습니다. 광주교도소에는 당시에 간첩 및 좌익수가 170명 복역 중이었고, 총 복역수가 2,700명이었습니다. 이를 놓고 어찌 민주화 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까?  


9. 5.18을 배후조종한 핵심들이 다 공산주의자들입니다. 윤기권, 김대중, 문익환, 서경원 등입니다. 윤기권은 5.18당시 18세로서 5.18에서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5월18일 첫날 그는 누구의 도움을 받았는지 경찰 15명을 인질로 잡았습니다. 이런 공로에 의해 그는 민주화 보상법으로 2억 원이라는 높은 보상금을 받았고, 1991년 3월 월북하여 김일성 수령의 품 안에 안겼습니다. 한국 사람들 중에 윤기권의 공로를 파악한 사람은 없습니다. 북한 특수군이 윤기권과 함께 있었기에 윤기권의 공로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10. 미국의 헤일티지재단이 광주반란에 대한 보고서(SOUTH KOREA'S KWANGJU INCIDENT-REVISITED)를 냈습니다. 누군가가 광주시민들을 자극하는 유언비어들을 유포했고, 이에 폭도(Riots)들이 들고 일어나 총으로 무장하여 정부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지만, 정부군은 끝까지 시민들의 생명을 보호려고 정상 이상의 자제와 배려를 기울였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저는 그 헤리티지 보고서가 주요한 이슈들에 대해 가장 객관적이고도 정확한 묘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김영진 의원 등이 제출한 기록물들을 이 보고서와도 대조되어 분석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은 중요한 부분만 발췌하여 열거한 것입니다.


                                                     결 론  


1. 5.18 광주 폭동은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반란입니다. 대통령 직속 하에 있는 화해진실위원회 일명 과거사위원회는 2010년 공개적으로 5.18을 민중반란(Popular Revolt)이라고 명백히 규정했습니다.


2. 충돌의 두 당사자 중에서 한쪽 당사자들만의 주장을 듣고 대한민국의 한 중요한 역사를 왜곡하는데 귀 기관이 이용된다는 것은 UN과 대한민국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합니다.        

               

3. 김영진 의원이 제출한 자료는 반드시 대한민국검찰이 낸 216쪽 짜리 “5.18관련사건수사결과보고서”와 대조되어야 할 것입니다. 


4. 김영진 의원이 제출하는 자료를 UNESCO에 등재하는 것은 귀 기관의 명예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 어엿한 국가에서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으려고 끈질기게 노력해온 수많은 애국적 학자들의 앞길을 막는 기막힌 탄압이 아닐 수 없습니다. 


5.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좌익들이 득세하여 역사왜곡의 주도권을 잡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자면 한국에서 올림픽을 처음으로 치른 그 다음 해인, 1989년 5월 3일, 한국의 남부 도시인 부산에 위치한 동의대학교에서 학생들이 데모를 하여 학교를 장악하였습니다. 도서관을 장악한 학생들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들이 진입하자 학생들이 휘발유가 든 화염병을 던져 경찰관 7명을 학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법원은 이들 중 46명에 대해 최소 2년에서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공산주의자의 두목인 당시 대통령 김대중은 2002년에 이들 46명을 ‘민주화유공자’로 등극시켰습니다. 참으로 이상한(Strange) 이런 현상이 이 대한민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귀하께 이런 것을 고려하여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동의대학교 학살사건은 광주 5.18반란사건의 축소판입니다. 이 글을 읽는 귀하께서는 매우 황당하게 느껴지시겠지만 대한민국은 지금 이 희한한 현상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와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회가 미쳤고, 이성이 실종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에서는 이처럼 공산주의자들이 저지른 폭동을 정당화시켜 가는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감히 단언하건데 김영진 의원 등이 달성하려고 하는 것은 국제적 위상을 갖는 귀 기관을 악용하여 대한민국의 역사를 ‘누구도 돌이킬 수 없도록’ 만들기 위한 사악한 술책인 것입니다. 귀 기관에 대한 모독행위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위에 열거된 제 출판물들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귀 기관에 제출돼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귀 기관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 서신은 우선 e-mail로 보내드리지만, 곧 저의 이력서와 학위증  등을 동봉하여 우편으로 보내드리고자 합니다,  



2011.5.1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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