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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특수군과 광주’ 문제, 방어가 미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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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1-05-19 16:58 조회18,3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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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특수군과 광주’ 문제, 방어가 미숙하다!


최근 ‘5.18광주에 북한특수군이 내려와 국가와 광주시민 사이의 이간을 위한 특수작전을 수행하고 갔다’는 결론들이 언론과 인터넷에 모처럼 뜨고 있습니다. 일단은 좋은 현상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우리의 이런 주장에 대해 언론들이나 네티즌들은 ‘근거를 대라’ 이렇게 반격들을 했습니다. 물론 시간상의 제약이 따르기는 했지만 우리 측에서는 이에 대해 충분히 설득력 있는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김진철 목사님 등 우리 측에서 내놓은 ‘근거’는 오직 하나 자유북한군인연합의 기자회견과 그들의 증언집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만을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좌익뿐만 아니라 우익들의 대부분이 수긍하지 않아왔습니다. “그것들은 카더라’ 통신이 아니냐, 물적 증거가 없지 않느냐?” 이렇게 반박해 왔던 것입니다.


만일 제가 탈북자들의 기자회견 내용과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만 법정에 내놓으면서 “이 두 개의 자료를 살펴주십시오. 5.18광주에 북한특수군이 왔다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변론을 폈다면 아마도 저는 지금 1심에서 패했을 것입니다.


저는 법정에 ‘솔로몬 앞에 선 5.18’ 책의 내용을 변론서 형식으로 바꾸어 제출했습니다. 이 책에서 저는 탈북자들의 기자회견과 증언집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안전계수용으로 살짝 터치만 했습니다. ‘카더라 통신 정도로 비판받는 탈북자들의 증언들'을 비중 있게 다루면 솔로몬 책이 가볍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솔로몬 책에서 저는 수사기록, 통일부 자료, 북한 간행물, 북한이 발간한 2권의 5.18역사책, 북한이 만든 5.18영화 등을 비중 있게 분석했고, 탈북자들의 증언들은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는 보조수단 정도로 가볍게 다루었습니다.

따라서 북한특수군이 광주에 왔었다는 근거들 중 가장 큰 것으로 탈북자들의 증언을 들이댄다면 이는 제 노력과 ‘솔로몬’ 책을 산산조각으로 만드는 일이 될 것이며, 5.18의 거짓에 대항하기 위해 모처럼 마련된 토대를 근본적으로 허무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점 아주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북한특수군이 600명이라는 이슈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많이 왔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숫자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 600명이라고 하는 데에는 세 가지가 일치하긴 합니다.


1) 연고대생 300명씩 600명이 왔다는 5.18측의 주장이 있었습니다.


2) 계엄군 상황일지에 나타난 300명씩의 600명, 즉 300명은 ‘극비에 해당하는 20사단 톨게이트 통과시간’을 알아가지고 매복해 있다가 지휘부를 공격하여 지휘용 지프차 14대를 탈취한 후 아시아자동차로 직행했고, 또 다른 300명은 대형 버스 5대를 타고 9시에 아시아 자동차로 가서 도합 600명이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374대를 탈취하여 무기고로 달려가 12시부터 16시 사이에 무기 5.400여 정을 탈취한 사실이 수사기록에 나타나 있습니다.


3) 그리고 탈북자들의 진술이 있습니다.


이렇게 3가지가 일치하긴 합니다만 600명이라는 숫자는 크게 내 세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솔직히 이 600명이 북한 특수군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손석희는 "그 많은 병력이 어떻게 광주로 왔느냐, 왔다면 당시의 군과 정보기관들은 책임을 져야 하는것 아니냐?"  이렇게 추궁했습니다.

광주에 북한 특수군 600명이 오는 것은 그들에게는 식은 죽 먹기입니다.  저는 이 분야에에서는 매우 깊이 있는 전문가입니다. 짧은 기간에도 600명이 올 수 있지만 당시 김일성은 1979년 10월의 부마사태에도 특수군을 보냈고, 80년 4월 21일에 시작된 사북탄광에도 보냈으며, 광주사태를 위해 많은 특수군을 잠수함, 땅굴, 어선을 가장한 모선과 자선들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마사태를 위해 내려온 병력, 사북탄광소요를 위해 내려온 병력이 목포에 와서 대기하고 있다가 광주반란을 위해 내려온 병력과 합쳤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런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의사결정인 것입니다.  

손석희는 '그러면 그 600명이 겨우 공수부대 10여명 밖에 죽이지 못했느냐' 이렇게 무식한 질문을 했습니다. 군사작전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질문입니다. 그들이 광주에 온 것은 시민을 흥분시키고, 시가작전이라는 특수작전을 기획하고 연출하려 온 것이지 공수부대와 싸우려 온 것이 아닙니다. 이는 탈북자들도 증언하지 않았습니까? 만일 그들이 공수부대와 드러내놓고 싸웠다면 광주는 그야말로 묵사발이 됐을 것이며, 김일성은 한미연합군에게 군사적 공격의 빌미를 주었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아래의 요지를 가지고 북한특수군이 광주에 왔다고 주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광주반란 작전을 북한이 주도했다고 보는 이유


1. 북한 노동당 소속의 출판사들이 1982년 및 1985년에 2개의 5.18역사책을 썼습니다. 여기에 있는 자료들과 2005년에 처음 공개된 검찰수사자료를 대조해보면 중요한 사실들과 통계가 일치합니다. 하다못해 공수부대를 향해 지그재그로 돌진하던 대형 버스가 광전교통 ‘전남5아3706’이라는 번호판을 달고 있는 것까지 일치하며 시위군중 속에서나 알 수 있는 구체적인 폭동행위들을 기록해놓았습니다. 이는 광주의 수많은 곳에서 전개되는 상황들을 북한 사람들이 와서 기록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 북한은 해마다 5월이 되면 여러 날에 걸쳐 그리고 전국에 걸쳐 5.18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행사를 합니다. 당정의 초고위급이 주도합니다. 그리고 북한의 5.18역사책에는 5.18이 대남공작 역사상 최고봉의 결정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해마다 5월이면 남한 내에 있는 공산주의자들이 광주로 내려가 광주거리를 붉게 물들입니다. 미군을 몰아내자, 파쇼정권을 타도하자. 우리끼리 자주민족통일 하자는 구호들을 외치고, 현수막을 걸고, 붉은 피켓을 들고 행진합니다. 5.18이 북한의 역사인 것입니다. 


3. 1989년 김일성은 황석영과 윤이상을 북으로 불러 북한의 5.18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를 제작하여 1991년 개봉했습니다. 황석영은 시나리오를 윤이상은 음악을 깔았습니다. 김일성은 황석영에게 25만 달러를 주었고, 윤이상에게는 15층짜리 “윤이상음악당”을 지어주었습니다. 5.18이 그의 업적이 아니라면 이렇게 엄청난 노력과 돈을 김일성 자신이 투자할 수는 없습니다.


4. 북한의 최고인 것, 이를테면 프레스, 탱크, 공장, 작업반, 천리마운동 등에는 ‘5.18’이라는 이름이 하사됩니다. “5.18청년호” “5.18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 “5.18땅크” “5.18누에고치반”  등입니다. 5.18은 북한이 만든 북한의 역사인 것입니다. 5.18을 놓고 북한은 북한이 이룩한 최고봉의 대남작전이었다고 주장하고, 남한은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코미디가 여기 한반도에 말고 어디 또 있겠습니까? 5.18은 솔로몬 왕 앞에서 놓인 어린 아기인 것입니다. 


5. 무기고는 일반 시민들에게 비밀로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1980년 5월 21일 오전 8시, 잘 훈련된 300명의 시위대가 군사작전 비밀인 20사단 이동계획을 탐지해가지고 20사단 지휘부가 통과하는 지점에 매복해 있다가 지휘차량 14대를 빼앗아 방위산업업체인 아시아자동차공장에 갔고, 또 다른 300명이 9시에 합세하여 370여대의 군용트럭과 4대의 장갑차를 탈취하여 가지고 전라남도에 산재한 17개 시군에 숨어있는 44개의 무기기고를 불과 4시간 만에 털어 5,400여 정의 화기를 탈취하였습니다. 이는 절대로 일반 시민들이 즉흥적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탈북자들은 북한특수군이 여러 달 전에 내려와 무기고 위치를 모두 파악했다는 상세한 진술을 출판물을 통해 발표했습니다.   


6. 신원미상의 시체 12구가 지금도 5.18묘지에 묻혀 있다는 사실입니다. 5.18단체들은 그 후 6구의 시체에 대해 신원을 밝혔다 주장하지만 이는 그들만의 주장입니다. 이 12구의 시체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는 심증을 갖게 합니다.  


7. 5.18에서 총격으로 사망한 광주시민 중에 69%가 시민군이 쏜 총기에 사망했습니다. 사망한 민간 및 신원 불상자 166명 중 총상으로 사망한 사람은 116명, 이 중 계엄군이 보유한 M-16소총으로 사망한 사람은 36명뿐이고 나머지 80명은 모두 카빈, M-1, AR자동소총, LMG, 공기소총 등 무기고에서 탈취된 총들에 의해 사망했습니다. 대체 누가 광주시민들 80명씩이나 무기고에서 탈취한 무기로 총격을 가해 사망하게 했겠습니까? 탈북자들은 북한군이 광주시민들을 분노하게 만들기 위해 쏘았다고 증언합니다.


7. 2개 연대에 해당하는 무기와 다이너마이트, 수류탄 등으로 무장한 폭도들은 정부군을 상대로 하여 싸웠습니다. 수많은 정부 소유의 공공기관들과 방송국들 그리고 경찰서와 파출소들을 보는 대로 태우고 파괴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민주화운동이라 하겠습니까? 이런 내용을 귀 기관에 기록유산으로 등재한다는 것은 세기적인 범죄행위가 될 것이며 많은 세계인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8.
무장 시위대가 광주교도소를 습격한 사실입니다. 5월 21일에는 충격적인 교도소 습격 사건이 무장시위대에 의해 6차례나 저질러졌습니다. 광주교도소에는 당시에 간첩 및 좌익수가 170명 복역 중이었고, 총 복역수가 2,700명이었습니다. 이를 놓고 어찌 민주화 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까?  


9. 5.18을 배후조종한 핵심들이 다 공산주의자들입니다. 윤기권, 김대중, 문익환, 서경원 등입니다. 윤기권은 5.18당시 18세로서 5.18에서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5월18일 첫날 그는 누구의 도움을 받았는지 경찰 15명을 인질로 잡았습니다. 이런 공로에 의해 그는 민주화 보상법으로 2억 원이라는 높은 보상금을 받았고, 1991년 3월 월북하여 김일성 수령의 품 안에 안겼습니다. 한국 사람들 중에 윤기권의 공로를 파악한 사람은 없습니다. 북한 특수군이 윤기권과 함께 있었기에 윤기권의 공로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10. 미국의 헤일티지재단이 광주반란에 대한 보고서(SOUTH KOREA'S KWANGJU INCIDENT-REVISITED)를 냈습니다. 누군가가 광주시민들을 자극하는 유언비어들을 유포했고, 이에 폭도(Riots)들이 들고 일어나 총으로 무장하여 정부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지만, 정부군은 끝까지 시민들의 생명을 보호려고 정상 이상의 자제와 배려를 기울였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저는 그 헤리티지 보고서가 주요한 이슈들에 대해 가장 객관적이고도 정확한 묘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11. 광주에 나돈 유언비어는 북한이 제조하였습니다. 5.18당시 광주에 나돈 4대 유언비어가 있습니다. 1) “공수대에게 환각제를 먹였다” 2)“여학생을 발가벗긴 채 세워놓고 칼로 유방을 도려내어 죽였다”3)“임산부의 배를 찔러 태아를 꺼냈다.” 4)“공수부대들은 젊은 놈은 모조리 죽여라, 광주시민 70%는 죽어도 좋다는 명령을 받았다”


위 유언비어는 모두 날조된 악의의 유언비어이며 이는 광주시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심리적 환각제였습니다. 5.18단체는 이 유언비어들을 광주시민이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광주시민들이 만들어 유포했다고 한다면 5.18은 더 이상 도덕적 근거를 상실하게 되고 민주화로 불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 책들과 간행물 그리고 북한의 5.18연화 ‘님을 위핸 교향시’에는 이런 유언비어들이 매우 자세하게 기록돼 있었을 뿐만 아니라 1980년대의 대학가를 붉게 물들인 ‘찢어진 깃발’의 발원지가 바로 북한임이 극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필자가 이를 발견해 내기까지 전문가들은 찢어진 깃발의 발원지가 북한일 것이라고 막연히 추측만 했었습니다.


12. 5.18의 목표는 ‘민족자주통일’(적화통일)로 명시돼 있습니다. 1985년 당시 전남사회운동협의회 대표였던 전계량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풀빛, 1985.5)을 냈습니다(증44). 책의 내용은 황석영의 “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을 그대로 전재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5.18이 반미-반정부-자주민족통일을 위한 해방전쟁이라는 요지기 들어 있고, 5월 22일부터 26일까지를 해방기간이라고 정의했으며, 광주가 해방구였다고 정의했습니다. “그것은 해방이었다 . . 시민들 자신의 도시 광주는 모든 좌절, 압박, 부자유, 반민주, 분단 등등의 쇠사슬과 질곡으로부터 주체적으로 놓여난 해방지구가 되었다.”


13. 북한의 5.18 진영에서 발간한 ‘사망자 사진’과 북한이 발간한 ‘사망한 사진’이 정확히 일치합니다. 1987년 9월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발간한 사진 책자가 있습니다. 제목은 “오월 그날이 오면”입니다(1987년). 1990년 평양의‘한민전평양대표부’가 발간한 사진 책자가 있습니다. 제목은 “아! 광주여!”(1990년). 위 두 사진 책에는 5.18광주에서 죽은 시체들 중 얼굴이 가장 비참하게 으깨진 시체들의 사진들이 수록돼 있습니다. 그런데 남쪽 책의 사진들과 북쪽 책의 사진들이 모두 똑같습니다. 북한과 5.18단체들이 자료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인 것입니다.


14. 5.18광주에 북한이 운용하는 종합상황실이 있었습니다. 북한 조선노동당출판사가 1985년에 발간한 “광주의 분노”라는 제목의 단행본이 있습니다. 북한책이  5.18에 대해 내린 정의는 ‘광주봉기는 민족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이었고, <광주민주국>을 세우는 데까지 성공했으며, 광주의 영웅들이 세운 위훈을 교훈으로 기려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한 마디로 미국을 몰아내고 민족끼리 통일을 이루기 위한 투쟁이라는 것입니다. “영웅적 광주인민들의 봉기는 바로 자주성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의 한 고리였다.” “민주정권의 싹 <광주민주국>을 일떠세울 수 있게 하였다.” “비록 그들의 육신은 죽었어도 그들이 이룩한 영웅적인 위훈만은 민족사에 불멸의 문자로 기록되어 영원히 빛날 것이다.”


5.18이 ‘자주성’을 위한 투쟁 즉 미국과 미국의 앞잡이인 남조선 괴뢰정권으로부터 독립하여 민족끼리 통일하기 위한 투쟁이었다는 것입니다. 5.18이 민족사에 길이 남을 빛나는 교훈적 사건이라는 것은 5.18이 북한에 그만큼 소중한 자산이며, 앞으로도 그런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는 전5.18유족회장 전계량의 표현인“민족자주통일은  . .그 싸움의 대상에 대한 절절한 분노와 확고한 인식이 더해져 가면서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는 표현과도 맥을 같이하며, 황석영의 머리말의 끝부분에서 황석영의 표현인 “그렇다. 5월은 끝난 게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다. 광주의 5월은 비극적 참사가 아니라 전민족이 환희의 광장으로 나서는 출발점이며, 우리는 그 5월을 기념비나 신화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신화의 지평 위에 새로운 행동의 실천을 뿌리 내려야 하며, 그런 뒤에야 죽인 이들의 피에 값하게 될 것이다.”는 내용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15. 북한자료들이 남한 정보기관들의 자료보다 더 자세하고 더 구체적입니다. 북한 자료에는 “격노한 80만”(주: 당시 광주인구 80만)이라는 중간제목 아래 광주사태의 상황이 날자 별로 요약돼 있으며 이는 한국의 검찰보고서와도 대체로 일치하며, 계엄군에 대한 모략내용은 1982년도에 북한에서 발간된 대남공작역사책 및 1985년에 황석영이 내놓은 책 ‘광주5월 민중항쟁의 기록’ 내용과 거의 일치합니다. “<광주민주국>의 출현”부분에서는 우리 경찰, 군, 국정원, 검찰의 보고서보다 더 상세합니다. 북한이 그 시기(1982,1985)에 이렇게 자세한 정보들을 어떻게 알았는가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16. 5.18광주에 북한이 운용하는 종합상황실이 있었습니다. 치안본부 자료와 안기부 및 군 자료를 포개서 종합해야 간신히 광주상황들의 윤곽이 잡힙니다. 이렇게 종합한 것이 검찰보고서이며, 검찰보고서와 북한자료들을 비교해보면 북한자료가 얼마나 자세하고 구체적인지 금방 드러납니다. 결론적으로 광주시위는 누군가에 의해 통제된 조직적인 작전이었다는 뜻이며 그 누군가는 바로 광주상황을 총정리한 북한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광주에서 북한이 운용하는 종합상황실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발간한 책들, 1982년에 발간한 책과 1985년에 발간된 북한 책에 있는 상황정보들은 그보다 10년 후인 1995년에 종합된 안기부 자료보다 더 자세하고 구체적입니다. 광주 전역에 걸쳐 이곳 저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수많은 상황들을 북한이 남한보다 더 빨리, 더 자세히, 더 구체적으로 종합정리했다는 것은 광주에 북괴가 운용하는 종합상황실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17. 대남모략으로 이용하기 아주 좋은 소재는 어린아이들과 여인들 그리고 노인들에 대한 학살 장면입니다. 이 대남 모략 부분에서 황석영 책 내용과 북한 책 내용들이 일치합니다. 두 학생이 시험지에 정답을 써냈다면 설사 의심이 간다 해도 커닝으로 단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 학생이 오답을 썼고, 그 오답들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면 두 학생 사이에는 커닝관계가 성립합니다. 황석영의 모략내용과 북한책들의 모략내용은 모두 허위 날조된 오답입니다. 그런데 이 오답의 내용들이 상호 일치합니다. 따라서 두 존재 사이에는 내통관계가 성립돼 있다는 것이 피고인의 판단입니다.


18. 북한의 대남사업 역사책에는 5.18이 김일성 교시에 따라 남한통일세력이 일으킨 폭동이라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5.18은 물론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책이 있습니다. “주체의 기치에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1982년 3월 20일, 조국통일사, 650쪽 정도)이라는 책입니다. 여기에는 ‘1946년 8월 광주화순탄광로동자들의 투쟁과 하의도 농민폭동의 역사’로부터 ‘광주민중봉기 후 민주와 통일을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에 이르기까지의 남한에서 발생한 투쟁들이 모두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남조선 혁명세력과 민중세력이 일으킨 것이라는 요지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창시하신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은 남조선인민들의 앞길을 밝혀주는 위대한 혁명적 기치”(차례 부분)라는 제목으로 시작하여 남한에서 발생한 ‘빨치산 혁명사건’들에 대한 역사들이 방대하게 기술돼 있습니다.


19.
남한 경찰도 모르는 남한에서의 시위전략이 북한 책(대남사업역사)에 나타나 있습니다. 1980년 5월의 남한시위들에는 군사 전략과 전술차원 이상의 시위전략과 시위전술이 있었다는 것이 증31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시위전략: 증31의 567쪽에는 남한의 시위전략이 기술돼 있습니다. “그들은 교외시위를 위주로 하면서 성토대회, 성명발표, 교내시위와 롱성투쟁 등을 결합하여 투쟁을 중단 없이 벌려나갔으며 시내 중심부를 시위구역으로 설정하고 역량의 집중과 통일행동을 보장함으로써 시위의 정치적 효과를 높였다”. 실제로 당시 학생들은 이런 식으로 시위를 했습니다만 이것이 위와 같은 시위전략에 따른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전략의 요점은 1) 주력시위(주공)는 시내중심부에서 벌이고, 성토대회, 성명발표, 교내시위, 농성투쟁 등을 조공으로 하여 중단 없는 공격을 실시하고 2) 모든 시위대들은 집중과 통일된 행동을 통해 정치적 효과를 높여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정규전과 비정규전을 배합하고, 각종 전투수단들을 배합하라는 북한전략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입니다. 

    

시위전술: 같은 증31의 567쪽에는 또 시위전술이 기록돼 있습니다. “시위에서는 과감한 육박에 의한 경찰저지선의 정면돌파와 경찰의 포위를 역포위로 전환시켜 앞으로 열어나가는 돌파, 분산과 집합, 큰 대열과 작은 대열의 배합, 속도행진에 의한 빠른 기동과 바리케트에 의한 완강한 방어 등으로 주도권을 틀어쥐고 적을 피동에 몰아넣었다. 또한 작은 돌과 큰돌 심지어는 화염병까지 준비하여 적에 대한 타격력을 높였으며 의학대학 학생들로 치료대를 조직하여 부상자에 대한 응급조치를 받게 하는 등 치밀한 준비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시위와 대중선전을 밀접히 결합시키면서 광장과 큰거리에서의 집회에 큰 의의를 부여하는 한편 시민들에게는 <함께 싸우자!>고 호소하는 삐라를 뿌렸고, 공장지대에서는 로동자들에게 확성기로 <함께 나가자!>고 호소하였고, 경찰들에게도 함화를 들이대었다. 이것은 학생들의 투쟁전술에서도 종전의 투쟁에 비하여 큰 진전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돌파’,‘제 역량의 배합’, ‘역포위’‘속도전’, ‘주위선동’이라는 군사용어가 나오며 이는 북한 특유의 전술입니다. 북한의 전략 전술 중 가장 중요한 것은“배합전”이며, 이 전술이 남한 시위에서도 응용되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북한식의‘돌파’작전은 첨입작전으로 대표됩니다. 적의 약한 곳에 최강-대량의 군사력을 투입하여 나무에 쐐기를 박듯이 방어선을 뚫는 공격을 의미합니다. ‘역포위’라는 것은 경찰저지선을 뚫은(돌파한) 시위대가 저지선상에 늘어선 다른 경찰들을 뒤로부터 둘러싸는 전술이며 이는 휴전선에 일렬로 늘어서 있는 우리 군의 방어선을 돌파한 후, 돌파병력에 의해 돌파지점의 양쪽에 늘어서서 정면만을 응시하고 있는 우리 군을 뒤로부터 포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한의 시위에 이런 높은 수준의 전술이 응용되었다는 것은 북한 전문가들이 시위에 깊숙이 개입돼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전국에서는 물론 서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던 1980년 5월의 시위들이 그냥 산발적으로 발생한 시위가 아니라 시위전략과 시위전술을 통달한 검은 ‘시위작전사령부’의 일사불란한 지휘(계획, 명령, 상황파악) 하에 이루어진 작전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하는 대목인 것입니다. 


20. 북한은 광주사태로부터 차후 대남폭동의 성공을 위한 3가지 교훈을 이끌어 냈습니다. 북한이 남한에서 발생한 반정부 폭동 중 가장 최상에 있는 것으로 정의한 5.18, 여기에서 북한이 교훈을 이끌어 냈다는 것은 북한이 차후에도 남한에서 이런 폭동을 기획할 것이며, 기획할 때에는 이 세 가지 교훈을 반영할 것이라는 말이 됩니다. 북한이 어째서 남의 나라인 광주반란 작전의 교훈을 이토록 이끌어 내고, 반란작전의 전술과 전략을 세우는 것인지, 곰곰이 음미해보지 않더라도 광주반란 작전은 북이 기획-연출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교훈1: “광주인민봉기는 새로운 단계의 반파쇼민주화투쟁을 위해서 귀중한 교훈들을 남기었는데 그 교훈은 첫째로, 남조선인민의 해방투쟁의 승리는 반미투쟁과 결합될 때에만 확고한 것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교훈2: “광주인민봉기가 남긴 교훈은 둘째로, 남조선인민의 해방투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청년학생운동과 로동운동과의 결합을 새로운 높은 단계로 심화발전시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교훈3: “광주인민봉기가 남긴 교훈은 셋째로, 남조선인민의 해방투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보다 광범한 대중적 지반 위에서 반파쑈민주역량을 형성하고 그것을 조직화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21. 탈북자들의 증언들이 위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2011.5.19.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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