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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가서 받은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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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1-10-02 21:11 조회16,6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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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가서 받은 충격!


내게는 대략 4개 정도의 고향이 있다. 6살부터 13살까지 불과 7년 동안 살았던 구둔이 제1의 고향이다. 해방 후 70년이 되도록 개발의 손톱자국이 나 있지 않은 원시의 고향 구둔, 구둔의 중심은 중앙선이 흐르는 구둔역일 것이다. 최근 달마(경기병)님이 강원도 인제에서 4-5시간 동안 손수 구둔을 찾아가, 하루 종일 촬영해서 자유게시판에 동영상을 올렸다. 검색 창에서 구둔역을 치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려서 산보라도 하고 싶은 원시의 고향이 아마 이 곳일 것이다.

그 다음의 내 고향은 서울과 수도권일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긴 삶을 살았다. 그 다음은 베트남에서의 44개월, 그리고 미국에서의 9년이다. 꿈을 꾸면 이 네 개 정도의 고향의 모습이 한 번쯤은 나타났을 것이지만, 꿈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배경은 언제나 어릴 때 뛰어놀던 구둔의 모습이다. 그제 밤에도 기차역과 철로, 그리고 높은 철로로부터 동네로 내려가는 언덕길이 나타났다. 그 곳이 내 무의식 속에 심어준 것들이 그만큼 깊었을 것이다.

고향에는 부모님 산소를 포함해 여러 산소들이 있다. 오늘도 산소에 들렸다가 개울을 건넜다. 중앙선 열차가 달리는 언덕길 아래에서 과수원과 농장을 하는 옛 이웃이었던 집을 찾았다. 반색을 하시는 70대 후반의 아주머니, 마침 그 댁에는 이웃의 또 다른 70대 후반, '내일 모레면 80'이라는 아주머니가 와 계셨다. 필자보다 8세 정도 위였다. 필자가 10살 때 18살 되었던 처녀였던 모양이다.

그 아주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아이구, 반가워라, 어쩌면 얼굴이 어릴 때하고 똑 같지~ 정말 그대로네~ 학교에 다녔지, 다닐 때 옷을 꿰매 입고 다녔잖아, 혼자였어, 옷을 이리저리 꿰매입고 다닌 학생이 이 학생 하나뿐이었다구, 그런데 이렇게 어엿하게 잘 사는 걸 보니 참으로 보기 좋구먼!”

사실 나는 그 아주머니의 얼굴을 모른다. 구둔에서도 개울 건너 높은 고래산 밑에 3집이 나란히 살았는데 우리 집과 과수원집과 지금의 그 아주머니 댁이었다 한다. 10대 전후의 나이로 옷을 누더기처럼 기워 입고 늙은 엄마 품속을 맴돌던 나는 한창 숙성했던 처녀요 새댁 신분이었던 그 아주머니를 기억할 리 없다. 당시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은 풀들이 우거져 있어 뱀들이 심심치 않게 지나다니고 있어 길만 보고 다녔지, 이리저리 경관을 살피고 다닐 때가 아니었다. 이러하기에 빨래를 빠는 누나들과 처녀들과 새댁들을 바라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여러분, 돌아가세요~ 내일 또 만나요!” 선생님의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지금쯤 감자 밭에서 김을 매고 있을 엄마에게 달려가 축 늘어진 젖’을 한시라도 빨리 만지고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 오직 달리고 또 달렸을 그런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동네 어른들의 얼굴들을 아주 조금만 안다. 그야말로 옛 시절 나름의 마마보이였던 것이다.

오늘 그 처녀, 그 새댁이었던 아주머니를 우연히 만났다. 첫마디가 얼굴이 그대로라 단번에 알아보았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의 말은 옷을 기워 입고 학교 다닌 사람은 이 학생뿐이었다는 말이었다.

사실 나는 당시 누더기 옷을 입고 다녔다. 이를 보다 못해 새로 시집 온 큰 형수님은 군에서 나온 두꺼운 담요로 옷을 지어 그야말로 신사 옷을 입혀서 학교에 보냈다. 사람들은 나를 ‘담요학생’이라 불렀다. 큰 형수가 담요로 지어주신 옷이라 너무 따뜻했다.

그래도 오늘의 그 아주머니는 차마 ‘누더기 옷’이라 표현은 하지 않았다. 단지 이렇게 말했다. “기워 입은 옷을 입고 다녔지, 기워 입은 옷을 입고 학교에 다닌 학생은 이 학생 뿐이었어” 난생 처음 이 이야기를 들은 집사람은 눈에서 연실 눈물을 흠쳤다. 생전에 처음 들어 본 이야기였기 때문이라 했다.

나는 그런 누더기 옷을 입고서도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선생님들은 내가 입은 누더기 옷을 보신 것이 아니라 누더기 옷에 대해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는 순진무구한 얼굴을 보셨을 것이다. 얼굴이 정말로 예쁘신 여선생님들도 나를 귀엽다 해주셨고, 무서운 남선생님들도 나를 학예회 연극의 주연을 시켜주셨다.

선생님들이 나를 예뻐해 주시니 나는 내가 ‘누더기 옷’을 입었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괜찮은 학생인줄로만 알았다. 내 반에는 장가를 든 동창생도 있었고, 과년한 처녀들도 있었다. 멋들을 부렸다. 당시에는 20세와 10세가 동기생이었다.

그런데 내 나이 또래의 여학생이 둘 있었다. 광순이와 정순이었다. 나는 이 두 동창생들을 좋아했다. 4학년에서 6학년까지! 그런데 그녀들은 내게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애들의 마음에 들려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내가 4학년 때 전교 1등이 되어 엄청난 모임에서 상을 탔는데도 그 계집아이들은 나를 시큰둥하게 대했다.

그 이유를 오늘에서야 비로소 알았다. ‘누더기 학생’, ‘담요 학생’에다 키도 작고, 옷소매에는 반지르르한 코딱지가 흐르고, 어리고, 거지처럼 가난하고, 집안도 떠돌이고. . . 주제파악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6학년 담임선생님이 10명의 학생들을 이끌고 그가 졸업한 장춘동 소재의 광희중학교 입시시험을 치르게 했다. 10명 중 나 혼자 담요 옷을 입고 갔으니 그 선생님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바보 같이 이를 몰랐다. 시험결과가 학교로 전달됐다. 10명 중 나 혼자만 합격을 한 것이다.

결국 그 서울 소재의 학교에는 형편상 갈 수 없었다. 양평군 지평읍에 있는 지제중학교에 다녔다. 오늘 그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이 다음엔 유명한 서울막걸리를 사올께요?” “아냐, 막걸리는 '지평 막걸리'가 최고야”  일부러 지평읍 ‘하나로마트’에 들려 지평막걸리 4병을 사왔다. 동네 식당에 들려 이사람 저 사람에게 따라주었다. 지평막걸리가 색깔과 맛이 역시 뛰어나다고 했다. 나 역시 그랬다.

“이렇게 서울에서 잘 살고 있으니 참으로 보기 좋구먼~” 그 아주머니는 나를 모른다. 오늘 나에 대해 그 아주머니가 안 것은 2001년형의 낡은 모습의 무소 지프차에서 내린 나와 내 가족의 모습이었다. 나는 물론 집사람도 다 초라한 작업복 차림이었다.

결론적으로 “서울에 가서 잘 살고 있다”는 말은 지프차를 타고 고향의 묻힌 조상들의 산소를 찾아본다는 것이었다. 만일 오늘 내가 이런 저런 자랑을 했다면 나는 그 아주머니를 다시 만났을 때 다시는 오늘과 같이 순수한 대화를 나누지 못할 것이다.

“기워진 옷을 입고 다닌 학생은 여기 이 학생뿐이었지~” 이 말을 귀에 담고 안양에 오기까지 2시간여에 이르는 동안, 아니 그 이후 막국수 식당에서 ‘지평막걸리’를 음미하는 동안에도 그 아주머니의 말이 메아리치고 또 메아리쳤다.

사실 나는 내가 그런 누더기 옷을 입고 다녔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냥 선생님들이 그런 나를 예뻐해 주시니, 그런 내가 예쁜 학생인 줄로만 알았다. 만일 내가 당시에 그 일로 열등의식을 느꼈더라면 나는 아마 많이 비뚫어져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교사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옷을 보지 말고 얼굴을 보아라”

1871년, 독일의 영웅 몰트케 원수가 프랑스를 점령하고 돌아오면서 말했다. “독일의 승리는 나와 군인들의 공이 아니다. 아이들을 훌륭하게 길러준 초등학교 교사들의 공이다.”

그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없으셨다면 나는 지금쯤 세상을 원망하고 가진 사람들을 증오하는 빨갱이가 되었을지 모른다. 노무현처럼 어려서 열등의식을 가졌던  아이들이 주로 빨갱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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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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