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떠난 공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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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2-04-17 01:39 조회16,56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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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떠난 공터에서
공터에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 공터에는 큰 나무가 있었습니다. 희망의 대화와 아늑한 대화들이 샘물 솟듯 솟았습니다. 어느 날 세찬 바람이 불었습니다. 대화를 나누고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던 선남선녀들이 고약한 바람을 이기지 못해 나무 밑을 떠났습니다.
큰 나무는 허전하고 서운했습니다. 큰 나무가 바람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 나무를 필요로 하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아름다운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자태와 아름다운 목소리는 거의가 다 가식이었습니다(fabricated).
나무는 작은 바람과 작은 회오리에 놀라 떠나는 사람이 싫었습니다. 멀리에서 나무를 바라보며 ‘저 나무 흔들린다’ ‘저 나무 쓸쓸하겠다.’ 평론하는 사람들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했습니다. 고민을 했더니 물을 빨아올리는 엔진의 기운이 소진됐습니다. 그 순간부터 큰 나무는 삶의 의욕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노병의 그 나무’는 금방 죽지 않았습니다. 벌어진 싸움에 패하면 더 이상 ‘ 노병’이 아닙니다. 물리적으로 영원한 노병은 없습니다. 오직 정신적으로만 ‘영원한 노병’이 있을 뿐입니다. 그게 ‘모두가 떠난 공터’인 것입니다. 모두를 떠내 보낸 후의 공터를 지키는 영원한 노병? 그 노병의 가슴에 오늘, 아주 깊은 멍이 들었습니다.
선남선녀들이 담배 재를 가지고 노병을 지졌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가시 돋친 말들로 많은 못을 박았습니다. 이런 아픔을 겪고도 느티나무는 아직도 서 있습니다. 똥을 싸지르고 떠난 놈, 설사를 하고 내 뺀 놈, 온갖 성질 자랑을 하고 떠난 놈, 음담패설을 하고 떠난 놈, 여성 사냥 왔다가 뺨맞고 떠난 놈, 모두를 지켜봅니다.
떠나는 사람, 오는 사람, 다 사연이 있습니다. 나무는 말합니다. “오는 사람 어찌 막을 것이며, 가는 사람 어찌 막을 것인가?”
그래도 나무는 질서를 다시 잡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 것입니다!!
2012.4.17.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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