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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존립문제 ‘5.18의 진실’에 관해 TV끝장토론 하라!!!(비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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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전원 작성일12-05-16 18:25 조회11,2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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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존립문제 ‘5.18의 진실’에 관해 TV끝장토론 하라!!!

 

똑 같은 5.18 광주사태”를  1980년의 재판부는 ‘김대중이 일으킨 내란음모’였다고 판시한 반면 1997 김영삼대통령 시기의 역사바로세우기 재판부는 헌법에서 명시한 일사부재리의 원칙 마저 무시하고 다시  재판하여 ‘5.18은 민주화운동’이었으므로 광주시위대를 조기에 진압한 전두환 신군부의 행위가 내란‘ 이라고 판결했다.

 

그리고 10년후인 2006. 12. 20 노무현 좌파정권시절 탈북군인단체인 자유북한군인연합’은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놀라운 사실을 발표하였는바, 5.18 지금까지 우리가 이해한 광주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한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김일성이 기획하고 북한의 최정예 특수공작군 1개 대대병력 600명을 광주로 남파시킨 가운데 남한의 김대중과 야합하여 일으킨 적화통일을 위한 무장폭동 내란사건이었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2009 10월 국내 최고의 애국보수논객이자 군사평론가인 지만원박사는 3년에 걸친 재판기록을 정밀조사 끝에 장장 4권으로 이루어진 수사기록으로 본 다큐멘터리 역사책 12.12 5.18 을 발간하여 제반 5.18관련 의문점과 불합리성을 제기하였으며, 자유북한군인연합’ 또한 동년 12월 탈북자 36명의 생생한 증언을 수록한 440쪽의 수기집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을 책자로 발간함으로써 4년전 기자회견 내용을 보다 구체적이고 실감있게 증빙하였다.

 

이듬해인 2010 8월 지만원박사는 남북한에서 발간한 제반 5.18관련 간행물과 영상자료까지 망라하고 이를 종합 분석하고 총정리 집대성한 “솔로몬 앞에선 5.18” 책자를 발간하였다.

 

이같이 5.18에 대한 의혹과 비판이 일어나자 광주 5.18단체들은 2009 7월 정작 최초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는 ‘자유북한군인연합’은 놔두고서 지만원박사 만을 ‘5.18은 폭동이며 북한 특수부대의 공작이라는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회손’ 죄의 명목으로 기소하였는바 이 재판은 3년간 15차에 걸친 공판 끝에 2011. 1. 19 1심에서 무죄로 판결됨으로써 5.18이 북한 특수군부대 공작으로 이루어진 폭동일 가능성을 대한민국의 법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이제 5.18의 진실, 5.18이 순수한 민주화운동(전자)이었는지 아니면 북한이 기획하고 특수군부대 600명을 광주에 침투시킨 가운데 자행된 적화통일을 위한 무장폭동 내란음모사건(후자)이었는지의 여부를 하루빨리 전 국민 앞에 확실히 규명하고 이에 따른 법적 후속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에 후자 임이 판명 날 경우 지금부터 32년 전인 1980 5월 이후로 대한민국에 잔류한 북한특수공작군들 과 이들과 공모하여 무장폭동 반란을 획책하였던 남한 내 종북 빨갱이들이 지금도 계속하여 적화통일을 위하여 한미동맹 훼손공작을 비롯하여 반정부폭력시위나 후방교란 등 남침교두보 구축을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 예견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2002 6월 효순이-미순이 사건, 2005 7월 인천 맥아더동상 철거 시도, 2006 5월 평택 미군기지이전반대 쇠파이프 죽창시위, 2008 5월부터 100일간 지속된 미국산 쇠고기수입반대 촛불난동시위를 비롯하여 현재까지도 진행형인 한미 FTA반대투쟁과 제주 해군기지건설반대투쟁 등 제반 반정부 및 반미 폭력난동시위등이 북한의 지령에 따라 상기한 5.18 잔류 특수군과 종북 빨갱이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가 하는 강한 의혹을 떨칠 수 없다.

 

혹자는 만일 후자임이 드러날 경우 광주시민들의 명예가 실추되지 않겠느냐는 걱정을 할 수도 있겠으나,  지키는 사람이 10명이 있어도 도둑 한 명 못 잡는다 라는 속담도 있드시 악랄한 거짓 선동과 중상모략에 관한 한 세계 제일인 북한이 치밀한 계획과 사전준비 하에 광주 내 극히 소수 추종세력의 도움을 얻어 극비리에 추진하였던 공작을 절대 다수의 순진한 광주시민들이 속아 넘어간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므로 광주시민들을 속인 북한과 남한 내 소수의 그 추종세력이 쳐죽일 놈들이지 속임을 당한 대다수의 광주시민들의 명예는 결코 추락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제부터라고도 5.18을 통해 164명의 민간인 사망자 발생되었고 총상 사망자의 무려 70%가 계엄군이 소지하지 않았던 총기에 의해 그것도 대부분 등 뒤로부터 총을 맞아 숨졌으며 수많은 광주 부녀자들과 임산부를 칼로 난자한 만행 등을 저지른 북한 특수군인과 이들을 도운 남한 내 빨갱이 공모자들을 색출하는데 적극 협력함으로써 애국 광주시민으로서의 명예를 회복하고 드높일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앞서 언급한 5.18의 진실을 확실히 규명하고 국민 모두가 하루빨리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필자는 “5.18의 진실에 관한 TV 끝장토론” 을 제안코자 한다.

 

토론 참여자로서는 전자, 5.18이 순수한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하는 측을 대표하는 5.18단체들과 좌우옹호논객 (유명 보수논객 모씨는 자신이 기자로서 5.18 당시 취재하였으나 직접 보지 못했으므로 북한특수군이 절대로 오지 않았으니 믿지 말라고 주장하였는바 동일 모씨도 포함 가능)  이 참여하는 한편 후자, 5.18이 북한 주도하에 남한종북세력과의 공모 하에 발생한 내란음모사건임을 주장하는 자유북한군인연합과 지만원박사 등이 토론에 임할 수 있을 것이며, 주요 토론의제로는 하기 지만원박사의 최근글인 5.18의 진실 [요약] 을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 비전원

 

 

 

 

 

작성일 : 12-05-11 18:06 

5.18의 진실 [요약]     

 글쓴이 : 지만원    

  

                                                              

                                5.18의 진실(요약)

 

 

5월 18(일요일) 새벽에는 이미 휴교령이 내려져 있었고, 이 휴교령은 헌법기관이 내린 정당한 명령이었다. 전남대와 조선대에 공수부대가 1개 대대씩 들어가 있었던 것은 평소에 계획돼 있었던 부대배치 계획에 의해 자동적으로 배치된 것이며, 2개 대대 규모는 다른 지역들에 비해 형편없이 적은 상징적인 규모에 불과했다. 2개 대대를 내보낸 것은 순전히 계엄사 작전계통과 계엄사령관 사이에서 취해진 조치였고, 여기에 전두환이나 정호용 등이 개입한 증거는 없으며 그렇게 될 수 있는 성격의 것도 아니었다. 계엄군의 배치는 합법적인 것이었으며 배치된 계엄군의 지위야말로 헌법기관이었다.

 

 

하지만 일요일 아침 9시경, 광주의 대학생들은 헌법기관이 내린 명령을 위반했다. 200여명의 대학생들이 전남대 도서관에 간다는 이유를 내걸고 학교에 진입하려 하자 정문에 이미 배치돼 있던 공수 7여단 병력 20여명이 이들에게 귀가를 종용했다. 확성기를 가지고 귀가를 종용한 계엄군의 행동은 정당한 임무수행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은 국가의 명령에 불복하고 가방에 숨겨온 돌멩이를 꺼내 계엄군에 던져 부상을 입혔다. 계엄군 병사의 얼굴에서 피가 낭자하게 흘렀다. 도서관에 가겠다는 학생들이 가방에 돌을 숨겨 올 수는 없는 것이었다. 5.18측은 계엄군이 먼저 학생들을 공격했다고 주장해 왔고, 세상도 그렇게 알고 있지만, 수사기록에는 분명히 학생시위대가 먼저 계엄군을 공격한 것으로 밝혀져 있다. 계엄군이 쫓아가자 학생시위대는 금남로와 충장로 쪽으로 몰려가 유언비어를 퍼트리면서 수많은 시민을 결집시켜 파출소를 파괴 방화하고 경찰관들을 폭행했다. 이는 각본이 있는 행동이었다.

 

 

공수부대가 경상도 군인들만 뽑아‘화려한 휴가’라는 암호명으로 전라도 사람 70%를 죽이러 왔다는 종류의 유언비어를 비롯하여 경상도 군인들이 대검을 가지고 전라도 여인의 가슴을 도려내고 머리 껍질을 벗겨 매달아 놓았다는 식의 유언비어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될 때마다 증폭되어 나돌았고, 이에 광주 시민들은 공수부대에 대해 적개심을 품고 거리로 뛰어나왔다.

 

 

광주시위대는 경상도 사람들을 집단으로 구타하여 살해했고, 경상도 차량들을 보면 불태워 버렸고, 경상도 사람이 운영하는 상점을 불태워 버렸다. 하지만 이때까지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는 7여단이었고, 7여단의 주둔지는 전북 금마로 여단 병력의 40%는 호남출신이었다. 유언비어는 모두가 거짓이었고, 그 제작 진원지는 북한이었다.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책과 정기간행물들에 그 괴담들이 실려져 있었다. 1980년대 대학가를 물들인 ‘찢어진 깃발’의 진원지도 북한이었다(솔로몬 앞에 선 5.18, 171-177). 모두가 광주시민들에 내재해있는 경상도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을 증폭시키려고 제작된 고도의 심리전 전술로 작성-유포된 것들이었다.

 

 

유언비어에 자극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여기에 더해 평소에 사회를 뒤집어보고 싶었던 구두닦이 넝마주이 등으로 대표되는 소외계층들이 시위대에 합류하면서 시위대의 규모는 삽시간에 배수 단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파출소들이 수도 없이 파괴-방화되고 경찰들이 매 맞고 인질로 잡히는 등 경찰력은 단 두 시간 만에 속절없이 무너졌고, 이에 다급해진 전남경찰과 전남도지사는 계엄군의 개입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5 18일 경찰관 15명을 인질로 잡은 바 있는 당시 19세의 윤기권은 그 공로로 2억원의 보상금을 탄 후 1991년 간첩의 안내에 의해 북으로 갔다.

 

 

계엄군은 시내로 나가 길목을 지키면서 시위대에게 해산을 종용했을 뿐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공수부대를 상대로 화염병을 던지고 옥상에 올라가 역기와 화분을 머리위로 던진 존재는 시위대였고, 시위대의 지나친 폭력이 계엄군의 반적용을 유도한 것이다. 시위대의 요구는 김대중 석방, 최규하 정부의 즉각 퇴진, 계엄령 해제 등이었다. 이러 요구는 김대중이 이끄는 국민연합의 요구였고, 이 요구는 헌법기관인 대통령과 내각을 일거에 전복하려는 요구들이었다. 광주는 그야말로 폭력, 방화, 살인이 난무하는 광란의 도시로 변했다.

 

 

거리가 무차별적으로 파괴되고 방화되어 광주시의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5 18일부터 5 21일까지는 시위대가 계엄군을 상대로 수많은 곳들에서 동시다발적인 살육전을 벌였고, 수십 개의 파출소, 도청의 6개 부속건물, 세무서, MBC, KBS 등 공공건물에 대한 무차별한 파괴와 방화 작전이 수행됐다. 계엄군이 교외로 나간 5 22일 새벽부터는 시위대가 점령한 광주시와 시위대가 점령한 17개 시군을 연결하기 위한 공격과 6회에 걸친 교도소 공격이 주를 이루었다. 광주교도소에는 간첩 및 좌익수가 170명 있었고, 총 복역수가 2,700여명이었다. 당시 북한은 광주에 있는 수개의 고정 간첩망에게 광주교도소를 습격하여 “해방”시키라는 지령을 계속 내리고 있었다. 시민군은 복면을 쓰고 APC를 앞세워 총 6차례의 공격을 시도했고, 쌍방 간에는 정규 전투와 다름없는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여기에서 쌍방 피해가 가장 많이 발생했으며, 폭도 사망자만도 28명으로 집계됐다.

 

 

광주시위의 폭력과 과열성은 5 19일 밤부터 5 21일 오후 5시까지에 절정을 이루었다. 광범위하게 널려진 파출소들을 동시다발적으로 파괴, 방화하고 계엄군을 조롱하면서 감정을 유발하고, 불타는 휘발유 드럼통을 ‘정렬해 있는 계엄군’을 향해 굴리고, 장갑차, 군용차, 대형 화물차, 버스를 기발한 방법들로 계엄군을 향해 돌진시켰다. 돌진차량 운전수를 잡아보니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나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지라며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협박했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공격들은 총알보다 더 공포스러운 살인공격이었고, 도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지휘한 지도부가 기록에는 없다. 이러한 공격들이 과연 지도부 없이 시민들이 알아서 한 행동일까? 광주시에는 5 22일에야 비로소 광주유지들로 구성된 ‘시민수습대책위원회’라는 것이 등장하여 무기 회수를 주도했고, 이에 병행하여 김창길(22세 대학생)이라는 온건파가 주도하는 ‘학생대책위원회’라는 것이 만들어 졌으나 이후 3일간 이들 간에는 무기반납을 놓고 벌이는 강온파 간의 대립이 연속됐다.

 

 

5월 25일부터는 강경파인 김종배(26세 대학생)가 김창길 위원장을 제치고 학생수습대책위원장이 됐고, 학생수습대책위는 시민군 지휘부가 됐다. 이때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시민군 대장으로 등극한 박남선(26, 골재운반 화물차 운전수)은 시민군 지휘부의 상황실장 자리를 맡았고, 5.18 최고의 영웅이라는 윤상원은 겨우 대변인 자리를 맡았다. 상황 기록들을 보면 5 25일 이전, 윤상원과 박남선의 역할이 눈에 띄지 않는다. 종북 좌익들이 애국가 대신 부르는 노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여기에서의 ‘임’은 김일성이다. 좌파들은 윤상원이 5.18의 꽃이라 했지만 윤상원은 불온서적을 취급한 녹두서점 점원이며 공원들을 상대로 야학을 지도한 30세의 청년에 불과했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시민군 대장으로 윤상원을 내세우지 않고 5 26일에 상황실장으로 임명된 박남선(배우 안성기)을 내세웠다. 영화에서는 박남선을 예비역 공수부대 대령으로 신분을 도용했지만 박남선은 당시 26세의 골재채취화물차 운전병이었다. 공수부대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26세 골재채취운전병에 불과했던 시민군의 상황실장 박남선을 공수부대 대령출신으로 둔갑시키고 7공수여단장 신우식 준장과 동기생인 것으로 묘사한 것은 5.18의 열등의식을 웅변적으로 나타내준 것이다. 아마도 광주시위는 양아치들의 잔치라는 세간의 조롱을 의식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록 겉으로는 나타나있지는 않았지만 광주에는 숨어 있는 지도부가 있었을 것이라는 데 대한 강력한 심증을 갖게 하는 대목들이 있다. 그 중 가장 괄목할만한 것은 44개 무기고의 동시 탈취다. 시위대가 무기고를 탈취했다는 사실에는 ‘불법’이라는 의미가 부여됐을 뿐, 이제까지 그 이상의 의미는 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기고가 탈취된 과정을 보면 여기에는 분명히 지휘부가 있었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일반 시민들은 무기고 옆길로 걸어 다니면서도 무기고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 5 21일 아침 9. 아시아 자동차 업체에 모인 600명은 300여 대의 차량에 시민군을 태워가지고 17개 시군에 널려있는 44개의 무기고를 향해 44개조로 나뉘어 달려갔다. 광주시로부터 100여 키로 떨어진 곳들도 많이 있었다. 12시부터 오후 4시 사이에 넓은 지역에 꼭꼭 숨어 있는 44개 무기고가 털렸다는 것은 위치를 미리 파악한 군사작전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44개 무기고 위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종합정보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는 간첩 말고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무기고 탈취과정은 5.18에 간첩이 개입했다는 심증을 갖게 하는 데 가장 설득력 있는 대목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더욱 기막힌 것은 5 21 08:00, 광주 톨게이트에서 20사단 지휘부를 화염병으로 공격하여 무전기와 공용무기가 탑재된 위엄 있어 보이는 지휘용 지프차 14대를 탈취하자마자 이 지프차들을 모두 몰고 방위산업 업체인 아시아자동차로 직행했다는 점, 그리고 아시아 자동차에서 군용트럭을 탈취해 그 군용트럭을 몰고 무기고로 갔다는 점이다. 14대의 지휘용 지프차는 어마어마한 수량이다. 이를 본 아시아자동차 직원들은 사태가 시위대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여 저항 없이 차량들의 열쇠를 내주었을 것이며, 44개 무기고에서는 지휘용 지프차나 군용트럭을 보고는 역시 사태가 시위대에 유리하게 기울고 있다고 생각하여 무기고 문을 순순히 열어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더러는 위압감에 상부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20사단 지휘부가 몇 시쯤 톨게이트를 지날 것이라는 군 내부의 극비 정보를 알아내 가지고 위와 같은 연속작전을 편 것이다. 이런 작전은 학생들이나 노동자들이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작전은 저들의 입장에서 보면 광주작전의 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600명! 600명이라는 숫자는 매우 중요한 숫자다. 수사기록에도 600명이 나왔고, 광주의 악녀 전옥주의 증언에서도 연고대생 600명이 광주를 해방시키러 온다는 말이 나왔고, 2006 12 20일 ‘자유북한군인연합’의 기자회견에서도 북한특수군 600명이 왔다고 증언한다. 그리고 몸서리쳐지게도 이 600명은 1985년에 발행된 북한의 역사책 ‘광주의 분노’ 34-35쪽에도 나온다.

 

 

“누군가가 군중들 속에서 ”총! !“ 하고 피나게 절규하였다. . .그 총이 없었기 때문에 군중들은 놈들이 순진한 녀학생들의 옷을 벗겨놓고 갖은 희롱을 다하며 지어 젖가슴까지 도려내어 죽이고, 배를 갈라 태를 치는 것을 보고도 저지시키지 못하였다,. 시민들은 드디어 ‘피를 피로 갑자면 총을 들어야 한다’는 구호를 들었으며 무기획득을 위한 투쟁에 떨쳐 나갔다. 5 21, 광주고등학교와 숭일고등학교 학생들이 ‘학도호국단’의 무기고를 들이치고 많은 무기를 탈취하였다. 이것은 광주 인민봉기과정에 봉기군이 처음으로 벌린 무시탈취투쟁이었다. . . .이 때부터 봉기군들은 무기를 획득하기 위해 놈들의 무기고를 본격적으로 들이치기 시작하였다. 폭동군중들은 괴뢰들의 군용차령 공장인 ‘아시아 자동차 공장’을 습격하여 314대의 군용차량을 로획하였으며 그 밖에도 414대의 각종 차량들을 탈취하였다. 봉기군들은 이 로획한 차량들을 타고 다니며 놈들의 무기고들을 들이치고 많은 무기를 로획하였다. 600명으로 구성된 폭동군중의 한 집단은 괴뢰군 제199지원단 제1훈련소의 무기고를 기습하여 숱한 무기를 탈취하였고, 지원동 석산의 독립가옥에 보관되어 있는 많은 폭약과 뢰관들을 빼앗아 내었다.

 

 

일반국민은 무기고에서 무기를 탈취해 경찰과 정부군을 향해 발포한 것이 어떻게 민주화 운동이냐며 의문을 제기하고, 이에 대해 5.18측은 5 21, 13:30분경에 도청 앞에서 군에 의한 집단발포가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당방위로 무기를 탈취하여 계엄군을 향해 발포했다고 항변한다. 과연 무엇이 사실인가? 수사기록을 보면 도청 앞 발포는 9번째 발생했던 자위 즉 정당방위용 발포였다. 그 이전에는 죽음을 눈앞에 둔 지휘관들이 6차례에 거쳐 발포를 했고, 시민군도 1회의 발포를 했다. 5 21일 이전에 이미 시위대에는 26정의 카빈과 7정 이상의 M-16이 있었다. 계엄군이 없는 지역에서 수없이 발생한 사격과 시체들은 이들에 의해 발생했을 것이다.

 

 

가장 치열했다는 5 21, 광주시 일원에서 발생한 총격전에서 사망한 민간인에 대한 통계는 33, 33명의 사망자 중 20명은 자상, 자동차 전복 등 다른 원인에 의해 사망했고, 13명이 총상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총상 13명 중 9명이 카빈총에 의해 사망했고, 4명은 총기불상으로 기록돼 있다. 계엄군은 오직 M-16소총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기타 총상은 계엄군에 의한 총상이 아니라 시위대가 무기고에서 꺼내온 총들이다. 5 19 19세의 나이로 지휘자를 호위하여 광주에 왔다가 돌아가 1급 국기훈장을 받고 탈북해 현제 분당에 살고 있는 정 모씨는 자기가 사용한 카빙총이 북한에서 가져온 것이었다고 증언했다. 총상에 의한 망자 중 70% 이상이 시민군이 소유한 카빈소총 등에 의해 사망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혼란을 이용하여 무고한 시민을 쏘는 불순분자들이 시민군 속에 있었다는 말이 된다. 탈북자들은 한 결 같이 이것이 바로 북한특수군의 소임이었다고 증언한다.

 

 

사람들은 5 21일 오후 1시 경에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이 시위대를 향해 첫 발포를 했고, 거기에는 발포 명령자가 있을 것이지만 단지 규명이 되지 못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사실과 논리와 군대상식에 기초하지 않은 질 낮은 주장일 뿐이다. 5 21 13시경, 시위군중이 탑승한 장갑차, 대형트럭 등 수십 대의 차량이 10만 군중 전면으로 나오더니 그들 중 한 대의 장갑차가 도청 앞을 지키고 있던 11여단을 향해 돌진하여 병사 1명을 깔아 죽였고, 1명에 중상을 입혔다. 이러한 차량공격이 그 후 세 차례나 더 계속됐다. 동료의 무참한 죽음을 지켜본 병사들은 그야말로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돌진차량을 향해 위협사격을 가했다. 이것이 이른바 도청 앞 발포였다. 이 이외에도 5 21일 아침부터 오후 5 3공수가 전남대를 철수할 때까지에는 6.25 고지쟁탈전을 방불할 만큼의 밀리고 미는 식의 교전과 쌍방 발포들이 있었다. 특전사 10개 대대가 광주시를 철수할 때 철수로 곳곳에 매복하고 있던 무장 시위대가 사격을 가함으로써 광주시에서는 정규군과 정규군 사이에 벌어지는 정도의 교전들이 이어졌다.

 

 

누구를 위와 같은 상황에 투입해 놓는다 해도 생명에 위협을 느낄 것이고, 따라서 누구라도 본능적으로 총을 발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발포를 놓고 5.18측은 발포명령자가 전두환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만일 공수부대 대신 정규군인 20사단을 투입시켰더라면 처음부터 위협사격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공수부대는 과도하리만큼 민심을 다치지 않도록 억제되고 통제되어 왔기 때문에 발포에 대한 자제력이 군으로서는 지나칠 정도로 강했고, 바로 지나친 자제력이 광주 전투를 필요 이상으로 키웠다. 공수대원들은 미국 헤리티지 연구소의 분석가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듯이 끝까지 시민군을 조준하지 않고 위협사격 차원에서 대응했다.

 

 

5월 21일 탈취한 무기는 2개 연대 규모의 것이었다. 카빈, M-1, 기관총 등 5,403 , 소화기탄약 288,680, 수류탄 270, TNT 10여 상자, 수류탄 270여 발, 폭약 2,500여 상자, 뇌관 35만개, 4만여m의 도화선 등이었다. 779대의 차량이 탈취됐고, 이들 779대는 군용으로부터 탈취한 군용차 34, 경찰차 50, 아시아자동차 328, 일반차 367대로 구성됐다. 광주로 상품을 나르는 상인들이 없어지자, 식료품과 생필품이 고갈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간들이 지속되면 광주시민들의 고통은 어떠한 것이 될 것인가? 거기에 일부 무장 시위대들은 시민들을 협박하여 금품을 뜯고 가족 단위로 살해하고 돈을 뜯어가고 방을 빼앗는 등 광주시민들을 불안하게 했다.

 

 

기록을 보면 계엄군은 이러한 광주시민들의 고통을 하루라도 빨리 덜어주기 위해 노심초사했으며 그 결과 527일 새벽 극비의 특공대식 작전을 폈고, 이로써 무법천지 광주에는 다시 치안질서가 확립된 것이다. 이런 극비 정보마저 새어나가는 바람에 탈환작전 시 불필요한 사상자가 발생했다.

 

 

계엄당국이 광주시민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TNT 제거작업 과정에 웅변돼 있다. 시민군은 8톤 트럭 분량의 TNT를 도청 지하실에 저장하고 거기에 뇌관까지 연결해놓았다. 폭발하면 광주시 전체가 초토화되는 그런 분량이었다. 시민군은 이를 폭파하여 목적을 달성하겠다고 협박했지만 계엄군은 목숨을 내놓고 잠입하여 10여 시간에 걸쳐 뇌관을 제거했다. 시민군과 계엄군 중, 누가 광주시민을 더 사랑했는가?

 

 

광주시위대는 헌법기관인 경찰과 계엄군에 폭력을 먼저 행사했고, 헌법기관이 내린 명령에 불복했으며, 과도정부를 전복시키려 했다. 필자가 보기에는 바로 이런 것이 내란행위였던 것이다. 그래서 1980년의 재판부는 5.18을 김대중에 의한 내란음모였다고 판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역사바로세우기 재판부는 광주시위대를 헌법기관에 준하는 존재라 판결했고, 이런 준 헌법기관인 광주시위대를 진압한 계엄군을 국가폭력집단이라고 판결한 것이다. 광주시민에 하루라도 빨리 질서를 찾아주려고 세웠던 조기진압 계획을 놓고 역사바로세우기 재판부는 시위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경우 내란목적에 불리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저지른 신군부의 살인행위이므로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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