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반론에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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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3-06-03 13:08 조회11,69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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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반론에 답한다
저는 최근 몇 차례에 걸쳐 1998년 6월에 조갑제가 월간조선의 편집장이었다는 글을 게시하였다. 그리고 황장엽과 김덕홍이 ‘광주에의 북한개입’ 사실을 증언한 김용삼의 기사를 국정원과 함께 땅에 묻은 사람들이 국정원과 조갑제라는 추론을 내린 바 있다.
조갑제는 이런 글들을 읽고 2013.6.3.에 “용서할 수 없는 지만원氏의 게으름”이라는 제하에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는 1991년 3월호부터 月刊朝鮮(월간조선·조선일보 출판국 소속) 편집장으로 근무하다가 1996년 9월호를 만든 뒤, 미국 하버드 대학의 니만 펠로우 과정 硏修(연수)를 위하여 渡美(도미)하였다. 하버드에서 10개월간 공부한 뒤 1997년 여름에 귀국, 조선일보 출판국 편집위원으로 일하다가, 1998년 8월호부터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복귀하였다.”
1998년 6월에는 월간조선 편집장이 ‘서희건’이라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조갑제가 미국에 가 있는 동안 그리고 귀국하여 조선일보에서 근무하던 약 2년 동안 조갑제의 빈자리를 서희건이라는 사람이 임시로 메워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1998년 7월호를 발간할 당시의 편집장이 조갑제라 하였는데 조갑제 해명에 의하면 그 다음 달인 8월호부터 조갑제가 편집장을 했다고 해명한다. 아슬아슬한 차이다. 이런 해명을 근거로 하여 조갑제는 필자가 확인도 해보지 않고 명예훼손적인 글을 썼다고 주장한다.
만일 조갑제의 해명이 사실이라면 국정원과 역사적 사실을 묻어버리기로 약속한 사람은 서희건이거나 김용삼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조갑제에 대해 사과를 해야 마땅할 것이다. 필자는 언제나 필자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버티지않고 즉시 사과를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필자에게는 할 말이 있다. 조갑제는 필자를 공격하기 이전에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도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갑제닷컴의 최상단에는 “기자 조갑제”라는 자작 이력서가 있다.
1971년 부산 국제신보 수습기자
1981년 월간 마당 편집장-취재부장
1983년 朝鮮日報 月刊朝鮮 기자
1991년~2000년 12월 31일 月刊朝鮮 편집장(출판국)
2001년 1월 3일 月刊朝鮮의 독립법인化에 따라 편집장 겸 대표이사
2005년 4월1일 조갑제닷컴 대표
위 굵은 글씨의 이력서는 조갑제가 스스로 작성한 것이다, 자기가 작성해 놓은 이력서를 이제 와서 부정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그리고 중요한 의혹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1. 월간조선은 그의 자작 이력서 대로 15년동안 조갑제가 명목상 또는 사실상 월간조선을 지배했다.
조갑제는 월간조선을 1991년부터 10년 동안 편집장으로 다스려왔고, 그 후 5년 동안 월간조선의 사장을 했다. 조선일보가 김대중으로부터 탄압을 받던 시기에, 누군가가 유독 월간조선을 조선일보와 분리시켜 조갑제를 사장으로 임명했다. 이는 그야말로 경천동지 차원의 엄청난 특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월간조선은 조갑제의 왕국이었다. 조갑제는 1997년 여름에 하버드에서 돌아와 그의 자리를 임시로 지켜주었던 대타 ‘서희건’이 2년의 임기를 채우는 동안 임시로 “조선일보 출판국 편집위원”이라는 자리에서 대타의 임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역사사실을 은닉하기로 합의 했던 그 시기에 월간조선 운영의 내막을 잘 아는 국정원은 과연 누구를 상대로 은닉음모를 벌였을까?
2. 조갑제가 밝혀야 할 것이 있다. 조갑제는 최근 “이명박 시대의 국정원 고위간부가 북한군의 광주개입은 허위라 말해주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며칠 전 李明博 정부의 국가정보원에서 고위직으로 근무하였던 한 인사는 “북한군이 광주사태에 개입하였다는 주장을 검증한 적이 있는데, 북한군이 온 적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우리는 김용삼 기자의 증언을 믿고 황장엽과 김덕홍의 증언을 믿는다. 그리고 12년 동안의 문헌들을 통해 연구를 한 결과 황장엽-김덕홍의 증언과 일치하는 결론을 냈다. 미국의 김대령 박사도 그의 다큐멘터리 역사책 4권을 통해 이를 증명했다.
이명박 시대의 국정원 인사는 무슨 근거로 이와 같은 주장을 했는지 우리는 조갑제를 통해 그 근거를 제시할 것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조갑제는 남을 설득시킬 수 있는 아무런 근거도 없으면서 1980년 5월 23일 광주에 들어갔을 때 북한군처럼 생긴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주요 근거로 하여 북한군 개입설을 부정하고 다녔다. 비유적으로 표현 하자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부정하면서, 광주 패들과 빨갱이 패들은 조갑제를 앞에 내세워 5.18을 변호한 것이다. 5월 23일은 사실상 북한특수군의 임무가 끝나고 산으로 피신하여 북의 철수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날이었다. 그날 조갑제가 본 것은 그냥 껍데기였지 본질이 아니었다.
역사에 관한 엄중한 사실에 대한 것이니 만큼 조갑제는 국정원의 그 인사가 누구인지 밝혀야 할 것이다.
조갑제의글 :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51540&C_CC=AZ
2013.6.3.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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