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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장관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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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스터korea 작성일15-09-28 00:51 조회2,289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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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장관에게 바란다

 

 

= 지금의 안보태세, 35년 전과 어떻게 달라졌나? =

 

 

35년 전, 5.18 당시엔 간첩들이 남한을 제집 드나들듯 하였다. 또한 대규모 북한의 원정대(약 700여명 추산)가 남한(광주)을 접수하러 왔었다. 그들 중에 살아서 돌아간 광수를 찾은 것이 9월 24일 현재 182명이나 된다. 그것을 여지껏 모르고 있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닌가? 그 정도로 안보에 큰 구멍이 뚫렸었다. 해상과 육상은 물론 지하 땅굴까지도---!

 

그 당시 안보관련자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실(fect)이다. 그것을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자유북한군인연합>의 증언 사례를 가지고 증명해 보이겠다.

 

 

1. 육상침투/증언 5

 

"광주사태 때 전쟁이 날 뻔 했다. 김일성의 지시로 본격적으로 밀고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런 시점에서 광주사태는 중요했고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당시 인민군대는 광주와 남조선의 전역에서 신호가 오면 즉시 무력을 동원하여 전쟁을 하려고 계획했었다. 그러나 당시 전두환 군부가 우리의 활동에 대해서는 눈치를 못 채고 있었지만 공수부대들을 진압군으로 대거 투입하는 바람에 무장폭동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문제가 생각외로 불가능해 졌다. 남조선으로 드나들 수 있는 루트는 해상뿐만이 아니라 육지 쪽으로도 정교하게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고가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광주에서 대학생들의 소요가 일어나기 이전부터 우리 쪽에서 남조선에 나가서 활동하는 특수부대 사람들이 꽤나 많이 있었다고 보면 된다. 남조선에 침투하여 단기 소부대작전을 하던 사람들은 게릴라전의 전문가들이라고 말할 수 있고 광주에서 장갑차를 탈취하고 무기고를 습격한 것은 남조선 시민들이 아니라 다 우리가 한 일이었다." :

  또한 그는 광주사태가 일어나기 훨씬 전에 북한군 특수부대인 60,61,62저격 여단에서 상당수의 소부대들이 남조선에 파견되어 있었고, 61저격여단의 소부대를 인솔한 사람은 대대장 이봉원이라고 까지 구체적으로 증언하였다. (필자 주 : 나는 여기서 약100여 명의 특수군이 파견됐으리라 예상해 본다.) 광주사건에 남파되었다가 사망한 사람들의 비석은 강원도 김화(북한군 5군단 지역) 인근에 안치되어 있고, 61저격여단의 소부대를 책임지고 남파되었던 대대장 이봉원은 광주사건 이후 북한으로 귀대하여 김일성으로부터 공화국영웅칭호와 함께 '일당백'이라는 별도의 칭호를 받았으며< 태천 군관학교> 소장으로 승진했다고 하였다.

 

"1980년도 남한에 침투한 공작요원 40명 이상이 근무한 부대를 알고 있다. 황해남도 신천군에 있는 정찰국 71, 72대대다. 판정경기를 통해 각 특수전부대별 80년도 남한침투에서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은 자가 40명이었다. 조별 부대별로 작성된 '전투기록장'을 보았다. 본인이 근무한 정찰국 70대대에서 1개조 3명이 침투했으며, 이들은 본인의 상급 장교로 본인과 함께 훈련을 했다." -영등포구 이 모씨(45세)-

 

 

2. 해상침투/증언 1

 

"1970년대 중반에 평안북도 정주, 동림 일대에 남조선 종심에 대한 작전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정예특수부대인 일명 자살부대라고도 불리던 '당원사단'이라는 최정예부대를 새롭게 만들었다. 그는 13살이 되던 해인 1966년 가을에 자살부대나 다름없는 국가보위부 소속 첩보훈련소에 모집되어갔다. 그가 간 곳은 서해 바닷가의 어느 이름 없는 섬이었고 그곳에서 그는 백여 명의 같은 또래 어린 동료들과 함께 고된 훈련을 받았다. 그곳에는 아직도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채 극비에 은폐되어 있는 생체실험장도 있다고 한다. 정신훈련교육은 처음부터 조국을 위해서는 필요하면 부모와 처자식도 죽여야 하고 친구도 무조건 죽여야 된다는 내용이었다. 생전처음 보는 코가 큰 사람들이 와서 미국말을 가르치고 일본에서 납치되어 온 사람들과 남조선에서 온 사람들이 각기 자기나라의 말들을 어린 훈련병들에게 체계적으로 교육시켰다"

 

  "일체 외부와는 접촉할 수 없는 무인도에서 11년 동안의 훈련을 마치고 1977년 여름에 새롭게 배치되어간 부대는 함경남도 덕성군의 아찔한 골짜기에 주둔해 있는 '534'라고 하는 특수부대였다. 대위의 군사칭호를 달고 타격대장으로 임명되어간 그는 날아가는 까마귀도 단도 한번 날려서 떨어뜨린다는 유명한 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사살당할 때까지 근 2년 동안 대원들에게 살인적인 훈련을 가르쳤다"(P73)

 

 "그들을 태운 잠수함은 바다 밑으로 깊숙이 잠수하여 마양도 해군기지를 출발하였다. 3일째 되던 날 안내요원이 나타나서 지금 잠수함의 위치가 남조선 전라도 쪽의 해상이라고 전달해 주었다. 안내요원이 들고 온 지휘부의 명령서에는 소부대 인원들을 지휘하여 남조선의 후방에 침투해서 현지에서 차후명령을 전달받고 수행하라는 임무였다. 지역은 전라남도 일대이고 육지에 상륙하여 도착장소까지의 안내과정은 별도의 인원들이 맡아서 수행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11명의 침투요원들은 잠수함에서 내리기 전에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해서 최후의 한명이 남을 때까지 목숨을 바치며 적들의 손에 잡히면 무조건 자폭을 한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하였다고 한다. 잠수함에서 하선하여 남쪽의 안내원을 따라 도착한 곳은 목포라는 해안가 도시의 작은 상점가게 안방이었다. 침투인원들은 그곳에서 7명의 현지 북한요원들을 만났고 그들을 통해서 앞으로 전라도 지역에서 계획하고 있는 작전내용과 이를 위한 사전준비 작업이 무엇인지에 대한 임무사항을 전달받았다. 먼저 내러 온 7명의 북한요원들은 부마항쟁을 배후조종하기 위해서 파견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처음으로 착수한 일은 무장폭동을 준비하는데 관건인 무기를 확보하기 위한 사업이었다. 북한의 원래 계획 날자는 1980년 3월경이었다고 한다. 안창식을 비롯한 18명은 여러 개의 소조로 분산되어 북한의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조직들이 사전에 확보해 놓은 무기고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3개월여 동안 전라도 전 지역에 대한 정찰을 이 잡듯이 샅샅이 진행하였다고 한다. 2월말을 넘기면서 전라도 지역에 포진되어 있는 무기고들에 대한 사전파악과 요해사업(상황판단)이 성과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광주를 비롯한 전라도 지역에 포진되어 있는 숨은 지하조직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침투조 인원들이 직접 목격한 일이지만 그들의 조직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질적으로 짜여있는 북한의 당 조직과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체계적인 조직구성과 집단화된 규율을 가지고 있었고 정신적인 무장상태나 각오 정도에서도 북한의 조선노동당원들의 수준 이상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지휘부 형태로 사용하는 공간에도 김일성의 초상화는 물론 김정일의 초상화까지 걸려있었고, 김일성선집이라든가 김정일의 주체철학 등 북한에서나 볼 수 있는 사회주의 내용의 북한용 정치서적들이 대거 비치되어 있어 마치도 북한 땅에 있는 어느 박사의 사무실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북한은 5.18사건을 배후에서 계획하면서 두 가지 목적을 노렸다고 한다. 하나는 남조선사회를 북한체제가 합법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국가전복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전라도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믿음직하고 충실한 친북정권 수립이었다"

 

  "소부대작전에서 특이한 것은 죽은 시체도 적에게 내어주지 않는 것이 엄격한 원칙이고 각기 자기 분야에특수하게 부여된 임무에만 충실하고 작전내용에 대해서는 마지막까지 비밀을 사수하는 것이 기본적인 룰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안창식을 비롯한 일행 18명은 교전중에 총상을 입고 사망한 대원을 병원까지 쫒아가 그 시신을 사진 찍던 남한 측 여자 정보요원을 추적하여 살해하고 그 시신을 빼돌렸다"

 

  "안창식은 교전 중에 무릎 바로 아래에 관통상을 입고 광주폭동이 끝나기 2~3일 전쯤 목포의 아지트로 이동해서 치료를 받다가 14명의 대원들과 함께 그해 7월 중순경에 강원도 동해안으로 이동하였고 북한에서 내려온 잠수함을 타고 철수하였다고 한다. 안창식을 포함한 11명 중에 한 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부마폭동에 참여했던 7명 중에 3명은 행방불명이 되어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광주에 파견되어 내려왔다가 행방불명이 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북한정권으로부터 영웅칭호가 배려되지 않았고, 국기훈장 1급만 가족들에게 수여하였다고 한다"

 

 

3. 해상과 육상침투/증언 5, 10

 

한편, 또 다른 지휘관은 개성에서 잠수함으로 서해안(인천?)까지 와서 서울의 삼각산까지 도보로 6시간 20분 만에 침투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광주사건에 참가하였던 '534와 신천복수여단' 등 부대들은 그때 당시에 북한군 특수부대들 중에서 가장 악명이 높았고 능력이 신비할 정도로 인정받는 최정예 게릴라 부대이기도 하였다고 밝혔다.(증언 5)

 

내가 창고장에게 광주사건 때 남조선에 나갔다가 왔느냐고 묻자 그는 나를 보고 그렇다고 머리를 끄덕이면서 그 해의 자기 생일을 예상치 않게 남조선에 나가서 쇠었다는 말까지 하였다. 그는 안주머니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다니는 수첩 만하게 생긴 새빨간 표지의 공화국영웅증서를 꺼내서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자랑하듯 보여주었다.

 

창고장은 북한에서 1970년대 말에 극비밀리에 조직한 특수부대인 당원사단 출신이었다. 그들 조는 1980년 3월 말경에 남조선으로 침투할 임무를 부여받고 한 달 정도의 가상훈련을 집중적으로 받은 다음 1980년 4월 말경에 잠수함으로 남포항을 출발해 서해안(인천?)에 상륙하여 서울시내로 침투하였다. 그의 일행은 총 12명이었다. 그들이 가장 집중적으로 받은 훈련은 '자폭훈련'이었다. 부득이한 경우에 적들에게 잡힐상황이 조성되었거나 잡히면 신분을 노출시키지 말고 무조건 자폭해서 시체도 남기지 말라는 것이 첫 번째 임무사항이라 하였다. 그들이 은신한 아지트는 2층으로 지어진 단독주택(빌라?) 지하방이었다. 그 집의 주인은 고정간첩이었다.

 

창고장 일행은 광주 인근지역에 있는 군수풍고장을 습격해서 장갑차와 군용트럭들을 탈취할 때 북한에서 파견되어 나간 알 만한 사람들의 얼굴들을 적지 않게 보았으나 적후활동에서 지켜야 할 엄격한 준수사항이 있는 관계로 서로 침묵 속에 무언의 대화만 나누었다고 한다. 탈취한  장갑차는 특수부대요원들의 몫이었고 군용트럭들도 일부는 북한요원들이 사용하면서 대부분은 시민군에게 나누어주었다.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불의의 기습을 받아 신의주출신 무남독자 외아들이 복부에 총상을 당했다. 각자가 휴대하고 있던 수류탄을 목숨 시퍼렇게 붙어있는 전우의 목에 매달아 놓고 현장을 탈출하였다. 무남독자 외아들은 북한의 잔인한 '당과 수령'을 위해서 뼈 조각 하나도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26살 젊은 나이에 남조선 땅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고장 일행은 백령도로 건너가서 며칠 동안 잠복해 있다가  대남연락소 소속 잠수정에 의해서 남조선을 빠져나갔다고 하였다.(증언 10)

 

 

4. 땅굴침투/증언 11

 

내가 살던 고향에는 내가 가장 친하게 '형'이라고 부르던 김형철(광수)이라고 불리는 이상친구 형이 한 명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1980년 5.18광주사건 때 남조선에 직접 내려왔던 사람이다. 그는 광주현장에 직접 참가해서 싸운 사람이 아니고 광주폭동을 전국적으로 확대시키려 했던 북한의 의도에 따라 싸움이 한창일 때 지원작전을 위해서 도중에 파견되었던 사람이다. 광주에 들어갈 사람들은 광주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이미 광주에 투입됐다는 것이었다.

 

그들 23명 일행은 진압군과 시민군이 가장 치열하게 교전을 벌이던 날(5/21) 강원도 철원 쪽에서 땅굴로 내려왔다고하였다. 남쪽 갱도 입구에서 그들을 마중한 사람은 두 늙은 내외라고 하였다. 위치는 한밤중이라 알수 없었지만, 충남(?)의 주위가 한산한 농촌마을이었다 한다. 그들은 여러 개 조로 분산해서 전라북도 지역으로 출발하였다고 한다. 그들의 일차 타격목표는 전라북도 지역에 있는 군사시설 및 정부기관들이라고 하였다. 임무 대상이 코앞에 있었지만 상부의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도중에 발걸음을 돌리게 되었다 한다.

 

한 번은 무기고에서 탈취한 무기를 나눠주는 과정에서 실수로 20대 중반의 여성에게 정체가 노출될 뻔한 위허만 일을 당한 적이 있었다. "이 쌍간나새끼 괴뢰군 새끼들 몰려오는데 총안잡고 뭐하고 서 있니?" "아저씨 광주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오셨나요?" 그는 무기를 나눠주다 말고 그 여자의 뒤를 쫒아가 그녀와 그녀의 남자친구를 총으로 감쪽같이 죽여버렸다. 그는 자신의 정체가 노출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아래는 내 친구의 처삼촌 얘기다>

그는 격파왕 조우재의 선배였다. 쇠 젓가락을 30미터 거리에 있는 대추나무 위에 앉은 까치를 향해 뿌려 던졌는데 까치가 정확하게 맞아서 땅바다게 떨어지는 것이었다. 가히 '일당백'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놀랄만한 기질이었고 훈련된 솜씨였다.

 

소부대작전으로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전투원들은 적진에서의 공작 중에 정체가 탄로 나거나 아군을 알아보늣 사람과 마주치면 인정사정 보지 말고 가차 없이 사살해야 하는 것이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의 공작 임무상 원칙의 하나라고 특수부문에서 복무한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5. 위장 재일교포 첩보원(증언 8, 14)

 

북한은 해방 이후부터 언제나 대남작전에 사용해 왔듯이 치밀하게 계산된 군사적 목적을 바탕으로 조작과 파괴 ,군중혼란과 혼선을 통한 이간질을 교묘하게 적용하여 세상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공산주의에 대한 방어장치가 없는 젊은 대학생들과 청년들을 돌격대로 내세워서 반정부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무장폭동의 방법으로 남한사회의 민주국가를 전복시키며 김대중을 위수로 하는 친북정권을 만드는데그 목적이 있다.

 

나의 외숙모는 15살에 당 기관에서 나온 두 명의 낯선 사람에게 훈련소로 끌려가 일본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전문적으로 일본말과 그들의 생활습성에 대해서만 교육받으면서 전문적인 일본담당 첩보원으로 길들여졌다. 훈련소에서 여성간첩 한 명을 키워내는 품은 남성 10명을 키워내는 것과 맞먹는 비용이 들어갈 정도로 그만큼 댓가가 크다고 하였다.

 

"오늘 아침에 발생한 사건에 대하여 사죄드립니다. --생략--

며느리가 될 마화숙 동무(간첩 또는 광수?)는 우리 조국이 가장 사랑하는 전사이며 어버이 수령님의 충직한 딸입니다."

 

외숙모는 결혼하고 한 달만에 평양으로 올라가 1978년에 대성무역상사 일본지사에 편입되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녀는 1981년 일본에서 귀국할 때까지 남조선에 일본인 신분으로 세 번 정도를 직접 다녀왔으며 조총련과 연계하여 남조선의 지하조직들에 일본으로부터 자금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했다.(증언 8) 

 

5.18광주사태 당시에는 북한군 전 부대가 전쟁상태에 돌입해 있었고 우리부대도 진지에 나가서 전투식량으로 끼니를 떼우면서 신발도 못 벗고 대기상태에 있었다.

 

북한에는 광주사태에 참가했다가 돌아가서 공화국영웅칭호를 받은 사람들이 많이 생존해 있고, 제가 살던 곳에는 광주에서 죽고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영웅묘지가 있다. 현재 함경북도 청진시 천마산 마루에는 대남작전에 참가하다가 사망한 전투영웅들의 묘지가 있다. 묘지 비문에는 '여기에 누워 있는 동지들은 1980년 5월, 남조선에 파견되어 남조선 혁명과 조국통일을 위해서 영웅적으로 싸우다가 산화하였다'는 식으로 내용이 적혀 있다. 

 

노동지도원의 동생은 일본에서 제일교포 신분으로 남조선의 남쪽에 있는 지방대학에 유학생으로 위장침투해서 공부를 하면서 북한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증언 14)

 

 

#. 50명 이상 침투조

 

5.18남파되었던 김명국 동영상 (채널A 탕탕평평)

 

50명의 일행을 이끌고 광주에 침투했던, 침투조 대장(문제심)을 수행했던 사람(가명 김명국)이 탈북하여 현재 수도권에 살고 있음.

 

 

국방장관, 당신은 '광수' 이야기를 들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꿀먹은 벙어리모냥 함구하고 있는가? 무릇 사나이라면 왔소, 갔소가 분명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나이 답게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앞으로 철저히 보완해서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해야 할 것이 아닌가? 국무총리를 만나던지, 아니면 목숨 내놓고 직을 걸고 대통령께 진언을 하던지, 또는 국무회의를 요청하던지 자기의 보관을 피력해야 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5.18 당시엔 대규모 북한원정대가 광주에 왔다 갔어도 모를 정도로 보안이 뻥 뚫렸었다. 다시 말해서 휴전선 일대와 해안선 일대에 저들의 길이 열려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남지역 18개 시-군에 포진한 44개의 무기고가 5월 21일 12시부터 16시까지 불과 4시간만에 모두 털렸다는 사실이다. 이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팩트다. 무기고 하나에 대략 14~15명씩 침입한 것이다.

 

그렇다면 35년이 지난 지금의 안보상황은 어떻게 변했을까? 국방부 장관은 잘 훈련된 병사들을 1개 분대씩 침투조를 조직해서 한 날 같은 시간에 휴전선 일대와 해안선 일대 그리고 전국에 있는 무기고를 시-도별로 10개씩 뽑아서 모의침투훈련을 실시해 보기 바란다. 그래야 우리의 안보 현주소를 알 것 아닌가? 단, 그 과정에 인사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연에 예방교육을 철저히 시켜야 할 것이다.

 

= 한 번 실수는 병가지 상사라 했다. 과거의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실패는 거듭될 수밖에 없다 = 

 

 

2015. 9. 28.

댓글목록

오뚜기님의 댓글

오뚜기 작성일

전국민 이 알아야 하고
관료들을 명심해서 보아야 내용입니다
즉시
수사하고 현장을 확인하고 철저히 대비해야 합니다
나라를 지키는 좋은글 너무 감사하고 계속해서 지도 바랍니다
가슴속에 넣어 숨질때까지 반공전선에서 싸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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