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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으로 보는 이순신과 박정희라는 영웅적 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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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세척기 작성일19-09-25 19:42 조회335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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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舜臣(이순신)의 일기를 亂中日記(난중일기)라고 부르게 된 것은 正祖(정조)가 李忠武公全書를 만들도록 한 뒤였다. 편찬자가 亂中日記라고 붙인 것이지 李舜臣이 그렇게 붙인 것은 아니다. 李舜臣은 그의 死後(사후)에 자신의 日記(일기)가 알려지고 국보로까지 지정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日記는 전란속에서 가슴에 쌓아둘 수 없었던 울분, 걱정, 한탄을 기록한 것이지 나중에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려고 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이 일기를 읽을 때 유념해야 할 일이다.

  
   李舜臣은 일기에서 자신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세상에 알려질 일이 없으리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기자와 같은 호기심 많은 사람으로서는 李舜臣의 그런 착각이 무척 다행이다. 솔직한 자기토로에 의해서 드러나는 인간 李舜臣의 裸像(나상)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傳記(전기)작가들의 의해 신격화되고 박제품이 된 근엄하고 딱딱한 李舜臣과 달리 亂中日記속의 李舜臣은 피가 끓고 미움과 사랑이 교차하며 憂國(우국)과 분노가 뒤섞이고 비통함과 집념이 뒤엉키는 격동하고 생동하는 바로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이다. 聖人(성인)도 아니고 聖雄(성웅)도 아니다. 그의 傳記 10권을 읽는 것보다는 亂中日記 한 권을 읽는 것이 그에게 훨씬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다.
  
   超人(초인)이 아닌 病弱(병약)했던 사람: 신경성 위장병을 앓다
  
   正祖 시대 난중일기를 처음 활자판으로 간행할 때 누락시킨 부분이 많은데 주로 조정을 비판하고 元均(원균)에 대해서 험한 이야기를 한 경우이다. 이 누락부분이야말로 李舜臣의 진면목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안팎이 모두 바치는 뇌물의 多少로 죄의 輕重(경중)을 결정한다니, 이러다가는 결말이 어찌 될 지 모르겠다. 이야말로 한 줄기 돈만 있다면 죽은 사람의 넋도 찾아온다는 것인가>(丁酉年 5월21일)
  
   <元(원균)이 온갖 계략을 다 써서 나를 모함하려 하니 이 역시 운수인가. 뇌물짐이 서울로 가는 길을 연잇고 있으며, 그러면서 날이 갈수록 나를 헐뜯으니, 그저 때를 못만난 것이 한스러울 따름이다>(丁酉年 5월8일)
  
   <새벽부터 저녁까지 사무치고 슬픈 마음에 눈물은 엉기어 피가 되건마는 아득한 저 하늘은 어찌 내 사정을 살펴주지 못하는고, 왜 빨리 죽지 않는가>(丁酉年 5월6일)
  
   1998년에 서울대학교 朴惠一(박혜일) 명예교수(원자력 공학)와 崔熙東(최희동) 원자핵공학과 교수, 裵永德(배영덕)-金明燮(김명섭) 원자력연구소 연구원이 같이 쓴 「李舜臣의 일기-親筆草本(친필초본)에서 國譯本(국역본)에 이르기까지」에는 난중일기를 분석하여 李舜臣의 행동을 엿보게 한 대목이 있다.
  
   李舜臣이 자신의 일기에서 몸이 불편하다든지 병에 걸린 것을 언급한 대목이 180여 회에 이른다.
  
   1597년 8월21일자 일기: 「새벽 2시쯤에 곽란이 일어났다. 차게 한 탓인가 하여 소주를 마셔 다스리려 했다가 人事不省(인사불성)에 빠져 거의 구하지 못할 뻔했다. 토하기를 10여 차례나 하고 밤새도록 고통을 겪었다」
  
   8월22일: 「곽란으로 인사불성, 기운이 없고 또 뒤도 보지 못하였다」
  
   8월23일: 「병세가 몹시 위급하여 배에서 거처하기가 불편하고 또 실상 전쟁터도 아니므로 배에서 내려 포구밖에서 묵었다」
  

   이 기사를 본 내과전문의의 소견은 「극심한 신체적 과로와 정신적 압박에서 비롯된 일종의 신경성 위장반응이며 급성 위염의 증상군에 속하는 病狀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난중일기엔 술마신 기록이 140여회나 나온다. 그는 속앓이를 하면서도 술을 즐겨 했다. 나라가 되어 가는 모습에 대한 울분, 고향에 있는 어머니와 아내 걱정, 서로 성격이 맞지 않는 元均에 대한 경멸과 미움, 倭敵(왜적)에 대한 증오, 民草(민초)의 참상에 대한 동정심으로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던 李舜臣은 몸을 돌보지 않고 술로써 시름을 달랬던 것 같다. 토사곽란을 소주로 치료하려고 했을 정도이다.

 

어머니와 아들의 죽음 앞에서
  
   1594년 5월9일 일기: 「비, 비. 종일 빈 정자에 홀로 앉아 있으니 온갖 생각이 가슴을 치밀어 마음이 산란했다. 무슨 말을 하랴, 어떻게 말하랴. 어지럽고 꿈에 취한 듯, 멍청이가 된 것도 같고, 미친 것 같기도 했다」
  
   이처럼 잠못 이루는 밤속에서 읊은 시조가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一聲胡茄(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이다.
  
   달빛 비친 바다를 바라보면서 수심에 잠긴 李舜臣의 모습은 亂中日記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는 걱정이 참으로 많은 사람이었다. 亂中日記 어디를 보아도 느긋한, 유쾌한 李舜臣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 시대의 짐을 몽땅 혼자서 진 모습의 연속이다.
  
   난중일기엔 아산에 모신 어머님에 대한 걱정이 100여회나 등장한다.
   <丁酉 4월13일:잠시 후 종 順花가 배로부터 와서 어머님께서는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뛰쳐나가 가슴을 치고 뛰며 슬퍼하였다. 하늘의 해조차 캄캄하다.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이루 다 어찌 적으랴.
  
   丁酉 4월19일: 일찍이 길을 떠나며, 어머님 靈筵(영연)에 하직을 고하고 목놓아 울었다. 어찌 하랴, 어찌 하랴. 天地간에 나 같은 사정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어서 죽는 것만 같지 못하구나>
  
   李舜臣은 군인을 경멸하는 文民(문민) 지배의 정치질서 속에서 제대로 뜻을 펴보지 못했다. 왜적과 싸우는 戰線(전선)사령관을 모함에 걸어 잡아들이고 고문하는 양반 지도층 인사들의 등살에 그는 心身이 골았다. 그런 가운데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막내아들을 잃었다. 아버지가 죽었을 땐 李舜臣이 억울한 옥중생활에서 풀려나 죄인의 신분으로 白衣從軍(백의종군)중이었기 때문에 문상만 하고 장례식에도 참여하지 못한 채 戰線으로 떠나야 했다. 막내아들(면)의 戰死통지를 받을 때 심경을 李舜臣은 이렇게 적었다.
  
   <1597년 10월14일: 저녁에 천안으로부터 사람이 와서 집안 편지를 전하는데 겉봉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심기가 혼란해졌다. 겉봉을 대강 뜯고 열의 글씨를 보니 바깥 면에 통곡이란 두 자가 쓰여 있어 면이 전사했음을 알고 간담이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목놓아 통곡,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어질지 못하신고. 간담이 타고 찢어지고,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맞거니와 네가 죽고 내가 살아 있으니 이렇게 어긋난 이치가 어디 있으랴. 천지가 어두워지고 캄캄하고 밝은 해조차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남달리 영특하기로 하늘이 이 세상에 놔두지 않는 것이냐. 내가 죄를 지어 앙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내 지금 세상에 살아 있으나, 마침내 어디에 의지할 것이냐. 너를 따라 죽어 지하에서 같이 힘쓰고 같이 울고싶건마는 네 형, 네 누이, 네 어머니가 또한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아직은 참고 연명이야 한다마는 마음은 죽고 형상만 남아 있어 울부짖을 따름이다. 울부짖을 따름이다. 하룻밤 지내기가 1년 같구나. 하룻밤 지내기가 1년 같구나. 이날 밤 10시경 비가 내렸다>
  
   3일 뒤 일기에서 李舜臣은 「내일이 막내아들의 부음을 들은 지 나흘째 되는 날인데 마음껏 통곡해보지도 못했으므로 소금 만드는 사람인 강막지의 집으로 갔다」고 적고 있다.
  
   엄격한 장군
  
   난중일기엔 脫營(탈영)한 군인들을 잡아와서 처형하고 엉터리 보고를 한 군관에게 곤장을 치는가 하면 뇌물을 받고 戰船을 빌어준 군인들을 처벌하는 따위의 벌주는 기록에 110여회나 등장한다. 李舜臣은 결코 자애로운 장군이 아니었다. 아랫사람들의 실수를 엄격하게 다스렸다.
  
   군대를 기피하려는 사람들이 많고 軍需(군수)공급은 제대로 되지 않는 劣惡(열악)한 상황에서 軍紀를 엄정하게 잡아가자니 강력한 體罰(체벌)이 동원되었으리라.
  

   =============================================================


1960년 9월 29일에 쓴 박정희(朴正熙)소장의 글에서는 5·16의 징조가 보인다.

「만사가 이대로만 순환하고 진전이 없다면 명일의 사회는 여하히 될 것인가.
4월혁명에 선혈을 흘리면서 민주주의를 찾으려고 선두에 서서 젊은 청춘을 초개와 같이 버리던 학도들이 또다시 거리에 나와서 생활계몽을 호소하고 기성인들에게 경각을 부르짖었다.
(중략)
정국은 난마와 같이 헝크러지고 걷잡을 수 없이 혼란과 무질서만을 노정하고 국민들의 실망만 커져 가고 있다.
난(亂)하면 악한 놈이 득세한다는 옛말대로 국민들의 원성의 대상이 되었던 자 또다시 거리를 활보하며 세태를 비웃는다.
국민생활의 궁핍, 도의의 타락, 윤리의 문란-이러한 도정을 줄달음친다면 그 다음에 올 것이 무엇일까.
공산당의 밥이 되는 길밖에 더 있겠는가.
동포여! 겨레여!.
우리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4월 혁명정신을 다시 상기하고 젊은 학도들의 조국애의 대정신으로 돌아가자」

5·16 혁명 제18회 기념일이다.
1961년 5월16일 누란의 위기에 직면한 조국을 구하려, 아니 구하겠다는 생각보다는 가만히 앉아서 좌시만을 할 수는 없다는 우국(憂國)의 일념으로 젊은 군인들이 궐기한 것이 5·16 이었다.
뚜렷한 경륜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난마와 같이 헝크러지고 부패·부정·무질서·부조리·정체·무기력, 이러한 단어들이 5·16당시의 우리 사회의 일면을 단적으로 표시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사회악과 부조리를 과감하게 척결하고 우리 사회에 새로운 신풍을 흡입하기 위해서도 5·16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혁명을 단행하고 구(舊)정치인들로부터 전권(全權)을 인수한 혁명정부는 너무나 막중한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무능하고 부패한 민간정부를 전복하고, 구악(舊惡)에 물든 대표적인 인사들을 구속하고 쾌도처럼 산적된 일들을 처리해나가는 혁명정부에 대하여 다수 국민들은 쾌재를 부르고 박수를 보내주기도 했으나 구(舊)정치세력들의 반발과 저항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들은 외세(外勢)를 빌어서 혁명정부를 빨리 종식시키고 다시 자기들이 정권을 장악하겠다는 집념에 차 있었다.
혁명정부의 과감한 개혁이 진행되는 과정에 혁명 주체세력 내부에도 다소의 내분이 없지 않아서 고민을 한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1963년 12월17일 민정 이양을 위한 선거로서 제5대 민선대통령으로 당선된 나의 취임식이 중앙청 광장에서 거행되고 군정은 완전히 민정으로 이양이 되었다.

5·16혁명 18주년을 맞이하여 지나온 18년간을 회고하며 감회가 무량하다.
조국근대화 과업도 이제 결실기에 들어섰다.
l-2-3차 5개년계획이 대체로 순조로이 진행이 되어 우리의 국력도 괄목하리 만큼 크게 신장하였고 공업화도 착착 추진되어 5·16 당시와는 비교하기 어려우리 만큼 나라의 모습이 변모하였다.
남들은 「한국의 기적」이니 한강의 기적이니 하고 우리가 걸어온 도정과 결과에 대하여 찬사를 보내고 있다.

우리 국민들도 이제 민족적인 긍지와 자주정신, 그리고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들이 과거 어느때보다도 고조되어 있다.
자기들 스스로의 피땀으로 이룩된 성과에 대하여 보람과 자랑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70년대초에 시작된 「새마을운동」과 72년 가을에 단행된 10월유신은 우리의 과업을 촉진시키는 데 결정적이고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과업이 열매를 맺을려면 아직도 요원하다.
더욱 분발하고 총화(總和)로써 정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과업수행 도중에 나의 인생의 반려인 내자(內子)를 잃게 된 비운을 겪어야만 했다는 사실은 나로 하여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손실이요 불행이었다

「7년 전을 회고하니 감회가 깊으나 지나간 7년간은 우리나라 역사에 기록될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였다.
일부 반체제인사들은 현 체제에 대하여 집요하게 반발을 하지만 모든 것은 후세에 사가들이 공정히 평가하기를 바랄 뿐」

의심많고 무능한 왕에 시달리는 형편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적군을 싸워야 했던 장군
국가존망의 위기에서 총탄에 쓰러질때까지 공산북한이라는 적과 싸워야 했고 국토개발 경제건설 군비확장 이라는 절대절명한 시대에 언론과 정치를 마음대로 풀어달라는 철부지들 및 적장에 손잡아 국가전복 하려는 자들의 쏟아지는 비난에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는 당당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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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나리라님의 댓글

살아나리라 작성일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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