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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의 방송, 번외편 - 정정 그리고 부연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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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머스 작성일22-06-02 21:03 조회1,043회 댓글1건

본문

이동욱 기자의 현대사로서의 5.18 : 번외편 - 정정 그리고 부연 설명

https://youtu.be/tzv43UDwfGo


 

2022. 05. 27, 이승만TV

 

0:00

[음악]

 

0:16

사실과 자유를 사랑하는 이승만TV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동욱 기잡니다. 오늘도 이동욱 기자의 현대사로서의 5.18, 그러나 오늘은 번외편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정정 그리고 부연 설명’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는데요. 지만원씨의 고소 고발에 관한 답변서가 부제입니다.

 

지만원씨와 시스템클럽에 조직되어 있는 5.18역사학회라는 곳에서 단체로 소송을 제기하겠다 하면서 그 사이트에 올라가 있는 고소 고발장을 이렇게 유심히 들여다 보다가 제대로 답변을 해드려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특별히 만들어 보았습니다.

 

1:04

먼저 고소 및 고발장입니다. 피고소/고발인 1이 이동욱. 제가 되구요. 두번째가 이제 송선태. 지금 현재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이제 계시는 분이죠. 세번째는 차복환. 이 분은 이제 그 김군이라고 하는 페퍼포그 위에 전투경찰의 복장을 하고, 또 자동소총을 이렇게 거치하고 있었던 그 사진의 주인공, 그게 실존 인물이 저 사람이 나다 하고 최근에 나타났는데 그분이 바로 이제 차복환씹니다. 또 마지막으로는 이승만학당 교장선생님 이영훈 선생님도 또 이제 고소 고발 대상으로 삼아버렸네요.

 

1:52

그래서 이거 뭐 저로 인해서 여러분들께 이제 민폐를 끼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제 부분에 대한 문제 제기하는 부분만큼은 확실하게 짚어 보겠다 하면서 다루어 보는 시간을 갖게 됐습니다.

고발인은 누구냐 하면은 5.18연구회라고 해서 현재까지 뭐 5.18연구소 자료 그리고 뭐 통일부 문헌 20여만 쪽을 수집 분석해온 역사 연구자들입니다 라고 이야기를 하시는 거죠.

 

2:22

이 분들이 이제 고소 고발을 하면서 송선태 위원장은 제척사유에 해당자에 되는 자니까 고발한다 뭐 이런 뜻이고, 차복환씨는 또 그런 그 송선태 위원장과 공모해 가지고 지만원씨의 신용을 추락시켰다. 뭐 이런 내용이고..

 

그리고 이영훈 선생은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로부터 어떤 공금을 지원받는 댓가로 이 참 말도 안 되는 흠 근데 뭐 하여간 그러면서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시설을 이동욱에게 10회에 걸쳐 사용하도록 방송서비스를 제공하였고 뭐.. 이런..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동욱은 그 방송서비스를 악용하여 허위사실을 방송하여 지만원 등의 명예와 신용을 훼손하였습니다. 이겁니다.

 

3:13

근데 이제 허위사실이 뭐냐? 이동욱이 이영훈의 방송시설을 이용하여 고의적으로 유포시킨 3개의 허위 사실이 있다. 이겁니다. 첫째는 지만원에 대한 허위사실 공표 1, 3월12일자 제1부6편의 류영선에 관한 부분, 두번째는 4월8일자 1부9편의 계엄사 인용부분, 세번째는 3월12일자 1부6편의 청주유골에 관한 부분, 이 3개가 전부 다 이제 고의적으로 유포시켰다 허위사실로.. 해서 이제 그래서 지만원씨가 이제 문제제기를 한 겁니다.

 

3:52

이런 걸 가지고 처음부터 막 바로 이렇게 법정으로 끌고 가는게 아니고, 아 이건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봤을 때 이건 이거다 라고 하면서 반대 의견 표명을 하는 학문적 의견 표명을 해서 서로간의 사실관계를 두고 예의를 갖춰 가면서 논의를 하고 그러다가 나중에 합의가 되면 새로운 사실로 모두가 이제 전진해 가는 거죠. 그죠?

그런데 이제 지금 현재는 그런 부분은 전혀 없고, 고소 고발로 이제 법정으로 그리고 끌고 들어가는 그런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4:28

어쨌든 저에 해당하는 그 세 가지 문제에 대한 답변은 일단은 해야 되는 거죠.

허위사실 공표 1에 대해서, 이동욱은 지만원이 류영선에 대한 사실을 왜곡해서 책에 써서 발표함으로써 그 가족의 정신적 피해를 줬다고 방송했다. 근데 이건 허위다 하면서 이제.. 저 노란색이 이제 제가 멘트한 부분입니다.

 

4:54

류낙진은 광주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이건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실제 류낙진의 동생 류영선은 그 하루 전날 5월21일 조카를 찾으러 나섰다가 그날 오후 1시에 도청 앞에서 인제 계엄군과 시민과의 대치상태가 임계점에 다달아서 계엄군들에 의한 집단발포가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때 그 집단발포 당시에 날아온 유탄에 맞아 가지고 두부 총상으로 기독교병원으로 옮겨진 후 5월21일날 돌아가신 거예요.

 

5:26

그러면서 이제 또다른 데 보면 군부가 왜곡한 거죠. 이거는.. 이렇게 제가 이야기 하죠. 다시 지만원에 의해서 반복 왜곡이 또 되는 겁니다. 저 류영선씨의 가족들은 지만원씨가 저런 내용을 책에다가 또 써가지고 세상에 또 유포할 때는 얼마나 가슴이 아프시겠습니까 라고 제가 이야길 한 겁니다. 이 부분을 가지고 이제 지만원씨는 저한테 지적을 하셨죠.

 

5:51

먼저 이제 앞부분에 보면, 무기수 류낙진의 동생이었던 류영선씨가 5월21일날 돌아가셨다라고 제가 이제 단정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게 두부 총상으로 기독병원으로 옮겨진 후에 5일21일날 돌아가셨는데 그 이후에 계엄군 쪽에서 이제 그 사태 이후에 수사를 하면서 류영선은 5월23일경 교도소 습격을 하다가 피격되어서 사망한 걸로 수사기록에 그렇게 정리를 해버려요. 그래서 이제 그 왜곡으로 알려진 거죠.

 

6:28

그래 가지고 저 가족들이 그걸 뭐 10년 넘게 교도소 습격자의 가족으로 해서 요시찰 대상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어쨌든 그런 게 있었습니다. 거기에 관해서 제가 이제 그 다음 멘트로서 군부가 왜곡한 거다. 이로 인해서 이제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냐 뭐 그런 얘기를 제가 한 겁니다.

 

6:52

그런데 이제 지만원씨께서는 이동욱 방송내용이 허위인 경우 하면서 류영선 사망을 설명하는 공적 문서를 제시했고, 류영선 사망에 대한 류영선의 형수의 증언을 또 제시합니다. 이 형수의 증언은 한번 우리가 저 참고 삼아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26일 아침 전남대학교에 다니던 삼촌 류영선의 친구가 같이 시내 나가자고 데리러 왔다. 아침에 나간 삼촌에게서 오후3시쯤 되어야 전화가 왔다. 막둥이를 YWCA 앞으로 보내라고 하면서 같이 있던 사람들 준다며 담배 한보루 보내달라고 했다. 그래서 막둥이를 급히 보냈다. 막둥이가 YWCA에 가서 삼촌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뭔가 쓰고 있더라 라고 했다. 막둥이를 본 삼촌이 오늘 전투가 있을지 모르니 집에 들어가기 힘들 것 같다. 그리 알고 너도 오늘은 절대 시내에 나오지 마라, 빨리 집으로 가라고 했다고 한다.’ 이게 이제 그 류영선 형수의 증언입니다.

 

7:56

이 증언으로 인해서 알리바이가 이제 다시 정리가 되어 가는데 나중에.. 류영선은 실제로 26일날 오후부터 도청 앞에서 무장시위대와 함께 하는 거죠. 그러면은 21일날 기독병원에서 두부 총상으로 뭐 들어온 사람 하고는 사실은 다른 사람이에요. 그게 다른지 안 다른지 모른 채로 한동안 이제 업치락 뒤치락 한 겁니다.

이런데 이제 지만원씨는 소결론에 사실 왜곡했다. 이동욱은 류영선이 5월21일 13시30분경 도청 앞에서 계엄군과 시민군간 집단발포시 유탄에 의해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 류영선은 5월27일 YWCA에서 계엄군의 투항권고를 거부하다가 총상으로 사망했습니다 라고 지만원씨는 이 사건에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 저도 이제 다시 보게 된 거죠.

 

8:55

그래서 지만원에 대한 허위사실 공표 1에 대한 저의 답변은요. 100% 이 부분은 지만원씨 지적이 맞습니다.

제가 이 부분을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서 거의 한 5일 가까이 헤맸습니다. 왜 어려웠나? 동명이인이 등장이 되요. 류영선.. 유영선 한글로 똑같이 등장하고 또 이 사건을 계엄군이 또 왜곡을 해 버려요. 그래서 21일 사망으로 보이는 사건이 23일 사망처럼 또 보이게 되요.

 

그 다음에 그 왜곡에만 주목한 언론과, 과거 2007년 국방부과거사위원회의 그 조사 조차도 실제 류영선이 언제 사망했는지에 대한 부분보다는 계엄군 측이 일부러 왜곡했다 하는 그 부분에만 주목해서 조사를 하는 바람에 많은 언론도 지금까지도 지금 인터넷에서 조차도 5월21일 류영선 사망으로 등장하는 거죠. 거기에 이제 저도 속은 겁니다.

 

근데 이 부분은 지만원씨 측이 이렇게 지적하지 않았으면 아마 저도 모르고 넘어갔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 이번에 제가 이렇게 바로 잡게 된 기회가 된.. 생겨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설명해드리겠습니다.

 

10:14

류영선 62년생.. 이거 저 때면 고등학생이고, 장성 사람 유영선은 21일 기독병원으로 실려가 두부 총상 환자로 세미 코마로 판정받고, 입원 중에 23일 깨어나 제 발로 걸어 나갔습니다. 두부 총상 환자가 사실은 아니었어요.

세월이 지나서 확인이 된 건데.. 저 당시에 기독병원에 있는 기록에는 두부 총상으로 돼 버렸어요. 그리고 세미 코마요. 그러면 머리에 총맞고.. 세미코마면 뭡니까. 혼수상태죠. 그죠? 코마 라는 건 의식불명인데 그럼 왔다 갔다 하는 그런 상황.. 그러면 누가 봐도 이제 이 서류만 가지고는 아 이 분은 이제 여기서 돌아가셨겠구나 라고 판단을 했을 거에요.

 

10:59

거기에서 또 이제 미스가 또 생기는 겁니다. 자 퇴원 수속 없이 나가 버려서 그는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자기 혼자 그냥 건너가 버렸어. 그러니 여기 거의 뭐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졌으니까 다들 죽었다고 생각을 했을 거 같에요.

 

11:17

언론과 5.18 연구자들은 이런 류영선을 류낙진의 동생으로 보고 사망으로 간주 했었습니다. 병원기록의 일부만을 본 경우에는 21일.. 이제 투약 기록을 쭉 훌터 갖고 보면 23일까지 투약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21일날 사망한 걸로, 어떤 사람은 23일날 사망한 걸로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버들 류씨를 대개는 유씨로 표현하고 있어 가지고 유영선.. 류영선 뭐 뒤죽박죽 되어 있었죠.

 

그런데 5.18항쟁기간 중인 27일에도 같은 이름의 사망자가 또 나옵니다. 광주지검의 5월28일자 5.18관련 사망자 검시내용에 따르면요. 류영선이 5월 27일 YWCA 부근에서 M16 소총에 의한 안두부 관통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그러니깐 21일과 27일에 두 사람 동명이인이 있었던 겁니다.

 

12:14

이런 상황에서 5.18 직후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3처에서 광주사태 전말보고를 작성하면서 이렇게 씁니다. 류영선은 죽음을 광주교도소 습격기도 중 피격되어 사망했다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겁니다. 실제 그런 거냐? 그건 아니었다는 거죠. 그를 무기수 류낙진의 동생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이런 스토리를 만들어 간 거죠.

 

12:42

이게 제가 이제 조사해 가면서 찾은 건데.. 제목을 보면은요, 광주교도소 습격 기도 사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1980년 8월 무렵에 작성된 것 같은데, 이게 지금 계엄군이 그 당시에 교도소 습격 사건과 관계된 수사기록, 수사자료로 유일한 거죠. 개요는 신애덕은 당시 광주교도소에 복역중인 남편이죠. 간첩 류낙진 52세, 무기수의 처로서 5.18광주 소요 사태가 발생하자 이 시점에서 시동생 류영선에게 시위에 가담하여 교도소를 습격하고 복역중인 남편 류낙진을 구출하도록 선동하여 동인이 시위 군중과 함께 교도소를 습격하다가 총상으로 사망했다고 이렇게 정리를 해버렸어요.

 

6.25전후에 신애덕씨 나름대로 여성으로서 굉장히 이제 활달하게 여러 일에 참여하고 하면서 노조도 만들고, 그로 인해서 또 옥살이도 한 6개월 하고, 그리고 나서 전쟁 전에 뭐 거의 빨치산이 되어 가고, 류낙진씨도 마찬가지고 그랬다가 이제 나중에 두 분이 같이 사는 거예요. 류낙진씨가 그 옥살이를 하고, 신애덕씨는 이제 총상을 입고 군경의 총상을 입고 부상당하고 하면서 아주 뭐 파란만장한 현대사의 굴곡을 거친 거죠.

 

14:14

그러다가 이제 저 분들이 마음잡고서 결혼해 가지고 살다가 류낙진씨가 60년대에 홀연히 사라졌다가 나타나곤 했는데, 그때 이제 월북을 해가지고 남한에서 지하당 구축을 했던 그 통혁당의 하부선으로 이제 활동을 했던 모양이에요. 그랬다가 경찰에 이제 다 꼬리가 잡히죠. 그래서 저 분은 이제 무기수로 광주교도소에 인제 복역중이었어요.

 

14:41

그러면서도 세월의 굴곡들마다 조심조심 살려고 애를 썼겠지만 또 광주 5.18 상황이 벌어지면서 저 가족들이 또 휘말려 들어가는 겁니다. 어쨌든 그랬습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3공수여단이 광주교도소에 주둔했던 5월21일 저녁 24일부터 24일 정오까지의 시간대에 총격전이 한 대여섯번 있었어요.

 

15:08

근데 이 류영선은 이 기간중에 교도소 습격 기도중 사망한 셈이 되어버린 겁니다. 저렇게 정리를 하니까.. 이것이 만약에 사실이라면 계엄사 수사기록에 의해서 무기수 류낙진의 처 신애덕이 사주를 했고, 그래서 시동생 류영선이 시위를 참여를 했고 그로 인해서 교도소 습격 중에 사망했다. 에 스토리가 좀 늘어지는 거죠.

 

그래서 계엄군들은 또 이제 그 신군부는 이거야말로 이제 5.18 자체가 불량배와 불순분자들에 의한 난동으로 규정하고 계속해서 수사를 해 간 겁니다.

 

근데, 2,699명을 체포 조사해서 단 1명의 불순분자도 찾아내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이제 그 5.18진영에서는 진영 나름대로 화가 단단히 나는 거죠. 그 갈등이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그 갈등 속에서 이제 북한군이 등장하는 겁니다. 어쨌든 진행해 보겠습니다.

 

16:15

80년 5월27일 진압작전 중에 YWCA에서 사망한 같은 이름의 사망자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었습니다. 10살 차이가 나는 두 사망자의 한글 이름은 류영선이지만, 한자 이름은 한쪽은 길 영자이고, 또 다른 쪽은 꽃뿌리 영자입니다.

반면, 동일한 한글 이름과 동일한 사인이 겹쳐졌지요. 한쪽은 두부 총상, 한쪽은 안두부 총상으로 이제 서류에 나온다 말이죠. 광주교도소의 무기수로 수감된 형 류낙진의 동생, 간첩의 동생이다. 대공 혐의점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 다 이제 그런 식으로도 보게 된 거죠. 그러니까 더 혼란이 이제 막 생긴 거예요.

 

17:00

류낙진의 부인 신애덕은 대학생으로 이제 운동권으로 활동했던 딸이 예비검속 때 5월17일날 밤에 형사들에게 끌려간 뒤 소식이 없어요. 그러니까 불안해서 삼촌이었던 류영선으로 하여금 매일 나가서 이 류영선의 조카.. 좀 찾게 하죠.

 

그러니까 류영선은 5월 26일까지 늘 집안을 드나 들었습니다. 교도소 습격하고 그런 게 아니고.. 그러다가 26일날 친구들과 함께 도청에 나갔다가 절박한 상황을 보고, 그래서 시민군에 합류했다가 27일 새벽에 계엄군에 의해서 피격당한 겁니다.

 

그 이후 류낙진의 부인 신애덕과 음 그 자녀들은 오랫동안 경찰 감시를 받아야 했고, 또 광주교도소 습격자의 가족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런 억울함과 같은신애덕씨가 증언록을 남겨 놓았는데 그 내용은 지만원씨가 발췌한 내용과 같은 겁니다. 아까 앞에서 제가 읽어 들인 그 부분입니다.

 

17:59

자.. 그런데 1988년 되면요. 국회에서 5.18청문회가 인제 드디어 열리죠. 그 열리는 과정 속에서 5.18 부상자 추가 신고기간이 만들어졌어요. 그게 알려질 때 당시 5.18 당시의 기독병원에서 세미 코마 상태로 있었던 유영선씨가 홀연히 나타나 가지고, 8월30일자로 추가 부상자 신고를 합니다. 그 죽었다고 알려진 사람이 나타난 거예요. 그가 접수한 신고내용에 따르면 당시 정황은 이렇습니다.

 

18:36

상기자 유영선은 당시 광주숭의실고 3년에 재학중 백운동에서 시위군중과 합세, 차를 타고 목포 방면으로 가다가 교통사고로 실신, 기독병원에서 입원치료 받았다. 그러니까 이게 그 두부 총상이 아니고, 사실은 차가 굴러 버린 거예요. 운전 조금 할 줄 안다는 사람마다 다들 이제 영웅심이니 또는 뭐 어떤 정의감이니 불타서 나가지고 핸들을 잡았을 때니까 그러다가 운전미숙으로 개골창에 처박고 그러면서 그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다치는 가운데 유영선은 기절해 버린 겁니다. 저 당시에 총상 환자가 많이 생기거든요.

그래 이제 의식이 없다, 머리에 피가 있다. 따라서 두부 총상이다, 뭐 이런 식으로 기독병원에서 기록하지 않았을까 추정이 됩니다.

 

19:30

5월23일 깨어나서 걸어 나와 가지고, 사태가 끝난 5월27일날 자기 집인 장성으로 귀가중에 광주신역 앞에서 계엄군에게 총과 발로 구타당하여 상무대로 이송되고, 그 계엄군 입장에서 아 이건 시위대였구나 하고 이제 저렇게 잡은 거겠죠. 그러고는 그 해 7월3일까지 조사받고 훈방되어서 자가치료 했다.

 

19:57

현재 통증이 심하다 하는 이런 이제 호소하는 신청서를 냅니다. 계엄사의 주장처럼 유영선이 광주교도소 습격 기도 중에 피격되어 사망한 것인지, 아니면 27일날 도청 부근 YWCA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아 사망한 것인지가 이제 관건이 됐어요.

특히 이제 88년 8월에 생존자 유영선이 딱 등장하고 나니까 계엄사가 교도소 습격 기도설로 만들어 놨던 유영선은 그래서 죽었다 했던 그 스토리가 완전히 깨지기 시작한 거죠.

이 사건의 2007년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발간한 12.12, 5.17, 5.18 사건 조사결과보고서 118 쪽에서도 보안사령부 광주교도소 습격 기도 사건 이라는 제목으로 다루고 있는 바, 계엄사의 조작을 밝히는 거는 성공했는데 완전한 진실 규명에는 실패한 걸로 저는 판단합니다. 왜냐?

 

20:57

당시 위원회에서는 5월21일자 광주기독병원의 진료기록에 등장하는 두부 총상과 세미 코마에만 집중해서 5월27일 YWCA의 부근에서의 M16 총상으로 안두부 관통상으로 사망한 사실을 아에 거들떠보지도 않고 중요하게 다루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류영선이 광주교도소 습격에 연루된 것처럼 꾸미기 위해서 사망일자를 27일로 조작했다고 잘못 지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걸 이번에 인제 제대로 좀 바로 잡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 것처럼 5월21일 입원했던 유영선은 생존했고.. 그죠?

5월27일 등장하는 류영선이 바로 안두부 총상으로 사망한 겁니다. 그가 바로 광주교도소에 무기수로 수감중이던 류낙진의 동생이었던 거죠.

 

21:50

자 이처럼 계엄사의 광주교도소 습격 기도설은 조작으로 판명된 거죠. 그런데 동명이인의 류영선에 관한 정확한 정리는 근래까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이번에 지만원씨의 지적으로 알게 됐습니다. 아까 설명했던 광주교도소 습격 기도 사건의 그 계엄사, 보안사령부, 합수본부의 기록.. 이 기록도 사실은 허위였죠. 그죠?

 

음.. 마찬가지로 한겨레신문. 예를 들어서, 2017년 4월4일자 또 2020년 5월 22일자 5.18관련 기사에도 류영선의 사망일시를 5월21일 혹은 5월23일로 적시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기사들이 언급하는 유영선은 생존하고 있고, 그래서 바로 잡아야 되는 거죠. 예컨데, 2017년 4월4일자. 이거 역시 마찬가지로 류영선씨가 어 머 5월 23일 교도소를 습격한 것으로 왜곡했다. 그러나 류영선은 5월21일 전남도청 앞 발포 때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기독교병원으로 의식불명 상태로 옮겼다가 사망했다. 아니죠. 그죠? 아닌 게 이번엔 인제 완전히 밝혀진 겁니다.이거 허위죠. 바로 잡아야 됩니다.

 

또 한겨레 2020년 5월22일자 신문.. 제목도 보면 도청앞 총상인데 교도소 습격하다 사망으로 중단했다. 이것도 이제 잘못 본 거에요. 저 사진을 보면 저게 바로 실제 류영선입니다. 5월27일 사망한 분일 것 같아요. 허위죠. 그죠?

또 있습니다.

 

23:34

이게 그 유영선의 세미 코마라고 이렇게 적혀 있는 병원 진료기록붑니다. 지금 5.18기록관에서 제공한 자룐데, 이게 유영선씨의 상태가 반 혼수로 적혀있는 광주기독병원 진료기록부 그러니까 이.. 이 자료 자체도 어 류낙진의 동생 류영선으로 간주하고 5.18기록관에서 보존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게 다 이제 지금 혼란되어 있고, 뒤죽박죽 되어 있는 겁니다. 거의 42년 동안.. 동명이인인 거죠.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하는 겁니다.

 

자 이런 문제들을 이제 지만원씨의 도움으로 저의 실수를 바로 잡게 되니까 정말 이런 부분은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래서 이제 우리 모두가 5.18의 진실에 또 한걸음 다가설 수 있게 됐지요.

 

24:29

또한 지만원씨의 지적처럼 류영선씨를 지만원씨가 언급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없어요. 오히려 류영선씨의 형 그 류낙진씨와 그의 외손녀 문근영 양의 거액기부와 관련된 소송 사건이 세간에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제가 거기서 착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 부분도 제가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근데 이 지만원씨가 고소 고발장을 통해서 재생그 중에 이런 부분은 좀 걸리는 부분이 있어요. 예컨대 이런 겁니다. 반체제 활동으로 5.18 당시 광주교도소에 감금되었던 류영선은 했는데 실제로 류영선은 반체제 활동으로 광주교도소에 감금된 바가 없죠. 그 형이 감금된 것이죠. 그죠?

또 그 국가안전기획부 자료의 류영선이 23세 회사원, 총상 사망 이것도 사실 이유가 다른 안기부 자료 뭐 계엄사 자료, 보안사 자료 이런 것들이 다 어떤 기관의 권위를 가지고 항상 조심하셔야 되는 건데 이런 부분도 우리는 좀 살펴 봐야 된다 라는 걸 말씀 드리겠습니다.

자 이렇게 해서 첫 번째 문제를 이제 답변해 드렸습니다.

 

25:48

두번째 입니다. 지만원의 대한 허위사실 공표 2, 어떤 거냐면.. 이겁니다.

줄친 부분을 한번 말씀 드려볼께요. ‘광주 관련한 군자료를 다 볼 수 있어서 열어 보면 당연히 저런 사실이 없죠. 이거 완전 허위죠. 더군다나 159 페이지에서 160 페이지 표시했으니 여러분 꼭 확인해 보기 바랍니다. 왜곡이고 조작입니다.’

 

26:12

이게 뭐냐면 그 솔로몬 앞에 선 5.18 이라는 책.. 그 책에 있는 부분입니다. 밑에는 이제 이동욱의 위 주장이 허위인 이유 해가지고 지만원씨 주장인데 제가 뭐 읽어 드리겠습니다.

위 화면에 기재된 내용은 82년 3월15일 육군본부가 발행한 계엄사 “10.26사태와 국난극복”의 157쪽 상단부로부터 6행에서 8행 부분에 실제로 기재돼 있는 내용이고, 고소인 지만원은 이를 그대로 책, 솔로몬 앞에 선 5.18에 인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동욱은 시청자가 희귀본인 계엄사라는 두꺼운 책을 구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는 사실을 악용하여.. 뭐 저는 악용한 적이 없는데요.. 하여간.. 계엄사 책에는 이런 내용이 없는데 지만원이 마치 그런 내용이 있는 것처럼 허위 사실을 지어내 책 솔로몬 앞에 선 5.18에 기재 이를 법정의 증거자료로 제출했다며 자극적인 번개 영상을 동원하여 모략하였습니다.

 

아래는 계엄사 157쪽을 스캐닝한 자룝니다. 이를테면 산 사람을 세워놓고 간을 도려가는 행위와 유사한 범행입니다. 이렇게 표현하셨네요. 어쨌든 뭐 이런 오해가 발생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좀 해봅니다. 저는..

 

27:33

답변드리겠습니다.

첫번째, 이 부분은 PPT로 한정된 시간에 맞춰서 제가 주요 내용을 요약해서 설명하는 과정에 오해가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언제 제가 지적한 부분은요, 지만원씨가 쓴 솔로몬 앞에 선 5.18 160쪽에 인용한 계엄사의 한 부분에 관한 것인데, 이 솔로몬 앞에 선 5.18은 2010년 8월10일 초판이 나왔습니다만 이미 7개월여 전인 1월15일자로 지만원씨는 국정원장으로부터 탈북자들의 5.18 북한 특수군 침투 주장은 사실무근이고, 탈북자들은 조사한 기관원들의 협박도 없었다는 통지까지 받은 상태.. 그 지만원씨는 저 당시의 5.18 북한특수군이 광주에 왔다는 거는 허위라는 걸 본인이 알고서 저 책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28:27

그런데 그러니까 이제 이에 국정원장의 그런 통보 조차도 아랑곳 않고 그해 여름에 솔로몬 앞에 선 5.18을 출간하죠. 그러면서 탈북자들의 주장과 이를 입증하는 자료로 계엄사 등의 특정 부분만을 오려 내서 붙여요. 그래가지고 이른바 악마의 편집을 하고 있고, 저는 이 부분을 지적한 겁니다.

 

먼저 지만원씨가 사용한 편집 방식을 알아보기 위해서 사례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이 책 솔로몬 앞에 선 5.18의 서두에는 북한에서 광주인민봉기 30돌 기념 평양시 보고회를 열었다고 보도하는 2010년 5월17일자 연합뉴스를 인용합니다. 사실이죠. 사실 그대로 인용합니다.

 

29:10

그리고는 통일부 정보분석실에 주간 북한동향 거기에 나오는 한 부분을 또 인용합니다. 그러고는 5.18은 분명한 북한의 역사다 라고 단정하죠. 그리고 이어서 이런 사진.. 여러 사진자료와 함께 아래와 같은 설명을 붙여 갑니다. 이에 더해서 북한에서 최고인 것에는 5.18칭호가 부여된다고 한다.

 

29:33

탈북자들의 증언집에 의하면, 북한에서 가장 큰 1만톤 프레스의 5.18청년호, 그 다음에 영예의 5.18 청년직장, 5.18 식품가공 공장, 5.18고치 뭐 청년 작업반, 뭐 5.18무사고 정시견인 초과운동 등 북한의 최고의 것에는 5.18을 명예와 영광의 상징으로 부여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호칭들 중 필자가 통일부 자료와 사진으로 찾아낸 것은 5.18 청년호와 5.18 무사고 정시견인 초과운동 2개 뿐이다. 우선 이 두 개의 증거와 통일부 주간 동향분석 자료만 보더라도 김일성은 5.18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제가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보면요, 보수진영의 4~50대 이상은 이 내용을 거의 외우다시피 하면서 믿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진짜 많아요.

 

30:33

근데, 지만원씨는 사실 2개를 내놓고, 그 다음에 하나의 카테고리를 만들죠. 5.18 은 분명히 북한의 역사다. 자꾸 사람들이 믿게 되는 거에요. 이게 이제 이른바 심리적으로 깨스라이팅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해놓고 나서 그 뒤에 가 이제 정말로 조작된 얘긴데 북한에서 최고인 것에는 5.18칭호가 부여된다. 조작된 거 거든요.

지만원씨는 이런 주장을 사실상 인용하면서 아래 캡처 화면처럼 사진과 함께 북한의 광주5.18 각별하게 기념한다고 설명해 가는 겁니다.

 

바로 이런 거죠. 518청년호 1호와 2호, 해놓고.. 사진 붙여놓고 프레스에 보면 이제 5.18 청년호 했고 그 세로 붙여 놓은 게 있어요. 그게 광주 5.18이냐 아니냐 그게 사람들이 생각을 못해요. 광주 5.18로 무의식 중에 받아들이는 거죠.

또 있습니다. 518 무사고 정시견인 초과운동 저게 일종의 수송에 관한 얘긴데 저게 광주5.18하고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어쨌든 그러나 저렇게 붙여 놓은 겁니다.

 

31:43

그런데 조사결과 5.18청년호와 5.18무사고 정시견인 초과운동은 광주5.18민주화운동과 전혀 무관한 겁니다. 노동신문을 인용해 볼께요. 노동신문을 찾아보니까 5.18 청년호의 경우는 91년 10월22일자 노동신문에 84년 5월18일 룡성의 노동계급을 찾으셔서 큰 프레스를 만드는 거는 나라의 위력을 시위하는 척도라고 친애하는 김정일 동지께서 말씀하셨다.

84년 5월18일이에요. 저 날 김정일이가 방문했기 때문에 저 프레스 이름을 5.18 청년호로 붙인 겁니다. 저 신문에 나오죠. 그죠? 또 이것은 10월22일자 신문인데 91년.. 거기도 마찬가지로 84년 5월18일 김정일은 룡성의 노동계급을 찾으시어 하면서 쭉 나가요.

 

32:33

그러니 1980년 5.18 광주 5.18하고는 전혀 상관 없죠. 사실 상관 없죠. 왜? 대한민국의 5.18은 자유민주화운동으로 간 거고, 북한은 자유민주하고는 완전 상극이죠. 어떻게 북한이 거기에 밥숟가락을 얹겠습니까? 5.18청년호 관련 노동신문 보도 2000년 6월4일 여기도 마찬가지로 84년 5월18일이 나오는 겁니다. 예 이거죠, 그죠?

 

33:04

80년 5월18일 1만톤 프레스.. 결론 뭡니까? 84년 5월18일 김정일이 천리마 룡성 제강연합기업소를 방문한 기념으로서 1만톤 프레스를 5.18청년호라고 이름 붙인 거예요. 광주5.18하고는 저거 하고는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두번째 무사고 정시견인 초과운동의 경우 이 5.18 어디서 나왔냐? 당 중앙위 제5기 제18차 전원회의 여기서 5.18이 나온 겁니다. 그때가 언제냐? 79년 6월14일부터 15일까지 열린 그 전원회의.. 이때부터 무려 뭐 아홉 달 뒤에 남조선 광주에서 5.18이 터질테니 이름을 5.18로 하자 할리는 없지 않습니까?

어쨌든 그렇죠.

 

33:52

5.18 무사고 정시견인 초과운동 관련 노동신문 보도도 7월28일.. 요 겁니다. 요 신문입니다. 요 신문 날짜를 보면은 이렇게 나오죠. 79년 7월28일 토요일자 신문.. 저기에 5.18무사고 정시견인 초과운동이 나요죠. 결론이 뭐냐? 5.18무사고 정시 견인 초과운동은 낙후된 북한의 수송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진행된 당중앙위 제5기 18차 전원회의에서 결정된 겁니다.

우리의 광주 5.18 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죠. 그런데 이걸 뻐젓이 상관이 있는 것처럼 이렇게 만들어 가는 책입니다.

 

34:29

따라서 광주 5.18 민주화운동과는 전혀 무관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 지만원 씨는 이런 기술 방식처럼 일부의 사실만을 편취해서 거짓과 뒤섞는 방식으로 이 책 전반에 걸쳐서 이런 기술들이 적용되고 있는 거에요. 계엄사 인용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만원씨가 지적하고 있는 부분을 그의 책 160쪽에 등장하는 계엄사의 자룐데요. 이 계엄사는 역사책입니다. 일종의 역사책이죠. 역사죠. 5.18 이후 군부가 82년에 한번 만들어요.

그리고 나서 88년 국회청문회가 열리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이제 5.18에 관한 여러 가지 사실들이 막 여기저기서 등장하니까 부랴부랴 국방부에서 계엄사를 다시 만들어요.

 

35:17

2권의 계엄사가 있죠. 그죠? 이 자료 중에서 양쪽 다 공통적인 거 뭐냐면 어쨌든 5.18은 불량배와 불순분자들의 폭동으로 이제 틀을 만드는 거에요. 그래서 밑의 줄을 보면은 이 자료는 5.18을 불량배와 불순분자들의 폭동으로 인식하고 그들과 전투를 벌였던 군부의 입장을 나중에 정당화 해야 된다 말이에요. 너무 심한 피해가 났으니까.. 그래서 이제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고 있었어요.

 

근데 북한의 위협설을 참 검증하기 힘든 군사첩보에 의하면 하고 이제 쓰다가도 마지막에 가면 북괴의 남침기도는 결국 실기하고 말았다 라고 써요. 왜 실제로 남침한 적은 없거든요. 그 군이 알잖아요. 자기들이 그 당시 안보 전체를 책임지고 있었으니까.. 그 이런 표현은 계엄사 1, 계엄사 2에 다 나오는 겁니다.

 

36:21

자, 그런데 지만원씨는 북괴의 남침 기도는 결국 실기하고 말았다 하는 요 부분을 싹 빼요. 그리고 검증되지 않은 북한을 위협설만을 사실처럼 인용해 갑니다.

 

이게 이제 계엄사 1입니다. 계엄사 1은 노란색 칠한 부분은 지만원씨가 고대로 이제 인용한 겁니다. 그런데 고 내용 뒤에 그 내용의 결과를 설명하는 북괴의 남침기도는 결국 실기하고 말았지만 그 당시에는 실로 6.25 재연의 민족적 비극 전야 바로 그것이었다 하는 그 부분은 빼버렸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되냐? 북괴의 남침 기도는 결국 실기하고 말았지만 그 당시는 민족적 비극이야 말.. 비극 전야 바로 그것이었다.

 

37:04

무슨 뜻이에요. 북한 침투는 없었다는 얘기잖습니까? 그런데 요걸 싹 빼고 앞부분만 오려둔 거에요. 어 제가 이거 가지고 이제 지적을 한 건데 지만원씨는 나 그 그대로 옮겼다. 옮겼는데 왜 조작이라고 비난하냐 뭐 이런 거겠죠. 그죠?

 

지만원씨는 앞부분만.. 계엄사에는 당시 정보기관에서 입수한 첩보에 의하면 북괴가 9개조의 비정규전 부대를 투입함과 동시에 남침을 감행하기로 결정하고 광주사태가 악화일로에 있으니 더욱 전국적으로 확대되기를 기다리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한다는 내용이 있다. 딱 요기까지에요. 그러나 실기해서 뭐 안 내려와도.. 요 내용은 없는 거예요.

 

37:51

그러면보면 어떤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까? 남침 준비를 하고, 기회를 노리고 있구나 여기까지만 이제 보기 전달되고 우 믿게 되는 거죠. 그 다음에 이어서는 계엄사 114쪽이라며 유사내용을 또 인용해요.

 

38:07

근데 이 지만원씨가 인용하는 요 계엄사 414쪽에 실상은요. 자 유심히 이제 들여다보고 찾아봤더니 두개를 합친 겁니다. 82년도판 계엄사1, 그리고 90 년도판 계엄사2, 이 2개를 합쳐 가지고 뒤섞었습니다. 북한의 위협을 과장한 부분.. 그래서 이제 북한의 위협을 있다고 이제 보는 거에요.

요게 이제 계엄사 1입니다. 1에 있는 114 페이지.. 고 부분하고, 계엄사 2, 계엄사 2에서 90년대는 이제 전쟁준비 상태 강화해 가지고 북한의 동향을 저렇게 일시별로 쭉 써 내려갔어요. 이걸 가지고 이제 지만원씨는 양쪽을 결합해서 기술합니다.

 

38:55

그래 가지고 이렇게 소개합니다. 79년 10월27일 전투에 전투태세 강화 폭풍5호를 지시했고, 저 실제로 거기에 기록에 있어요. 10월29일에 동구 방문중인 오극렬 참모총장 일행이 급거 귀환해서 군사회의를 소집했고, 12월18일에는 군단 전원회의 했고, 전군에 통일 대비한 무장을 강화하라고 했고.. 조 단어는 없어요. 사상에 철저한 김일성의 지시는 있는데 통일에 대비한 무장을 강화하라 저 말은 없다는 말이죠. 그런데 6.25가 뭡니까? 남조선 통일을 위한, 이제 한반도 통일을 위한 북한 인민군의 남침이었잖아요. 그게 딱 떠오르게 되는 거죠. 어쨌든 그런 식으로 해가지고 만들어 갑니다.

 

그리고 이어서 탈북자의 진술이라며 거짓 증언을 저 뒤에다가 연결해요.

그 탈북자들이 뭐라 그러냐? 그때 비상이 걸렸는데 남침준비를 하고 뭐 어디에 모이고 이런 이야기를 막 하는 거예요.

 

39:52

그래서 무비판적으로 이 내용들 쭉 읽어 가면 아 광주에 북한특수군이 왔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겁니다. 이걸 이제 구성도로 만들어보면 이런 거죠. 이 계엄사1에서 나오는.. 남침만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남침 기도는 기회를 놓쳤다, 실기했다. 이 계엄사에 나오지 않습니까?

이걸 지만원씨는 옮기면서 밑에 거는 빼고 남침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요거만 이제 가져간 거에요.

그 다음에 계엄사, 보안사 계엄사2 이걸 합쳐 가지고 그래서 좀 강조 좀 해서 전군에 통일 대비 무장강화를 지시했다. 요 남침준비 하라는 얘기 아니에요. 그죠? 그래서 또 탈북자 이야기, 황석영 이야기, 간첩 이창용 이야기, 간첩 이창용은 5월23일날 서울에서 거동 수상자로 신고되어 갖고 잡힙니다.

 

40:47

저 사람은 5월11일날 북한에서 연락선을 타고 그 침투선을 타고 내려와 가지고 5.18무렵에 목포로 상륙을 했는데 광주사태가 터지는 지 모르고 온 거에요.  5월11일날 내려올 때 8일 뒤에 일주일 뒤에 광주사태가 터질 거라고 어떻게 압니까.

광주사태 하고 전혀 상관이 없는 간첩이 광주사태 기간 동안에 체포가 됩니다. 체포가 되니까 그 당시 언론이 만들었는지 언론을 조정한 군부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도처에서 5.18에 선동하기 위해서 임무를 가지고 내려온 간첩처럼 보도가 되요.

 

41:29

그 실지는 나중에 이제 조사해보니 그거 다 거짓말이고 아니었던 거죠. 그 간첩 이창용 등등을 또 지만원씨 여기다 또 집어 넣는 거에요. 계엄사에 있는 거 사실 그대로 옮겼어요. 다만 몇 개 빼고, 몇 군데만 고치고 이런 식으로 해놓고 나열을 쫙 하면 제목은 5.18광주에 북한 특수군이 왔다 라는 제목이 딱 떨어지게 되 버립니다.

실제로 저 제목은 이 한 5페이지에 걸쳐 있는 이 내용의 서두에 붙어 있는 제목이 되는 거죠. 그럼 이건 조작이고. 왜곡이죠. 이렇게 하면 안되죠. 그죠?

 

42:06

그런 의미에서 제가 지적을 한 겁니다. 저자 지만원씨가 계엄사 한 부분만을 옮기거나 변형시켜서 독자로 하여금 잘못된 판단을 하도록 없는 내용을 사실적으로 조작하고 있음을 지적한 겁니다.

그런 과정에서 아주 이렇게 지금 뭐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걸 갖다가 짧고 정확하게 했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한 점을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참고하시고요.

 

현재까지 입수된 5.18 전후 해서 미국 정부문서.. 저희 위원회에서 한 3,530매를 분석하고 했습니다. 그 속에서 북한군 침투 주장하는 내용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이제 국가간에 군사력을 들여다보는 정보기관에서 과연 어떤 그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나? 우리가 계엄사에서 아까 우리가 소개해 드렸지만 북한이 이러 이러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는 내용들이 막 나오잖아요.

 

43:02

그러나 안 내려왔다 이렇게 갔는데 정말 그런 준비를 하고 있었나? 남침준비 하고 있었나? 미국이 그 당시 갖고 있었던 정보기관의 자료 한번 열어 본 거죠. 여러분 이 조사대상 문서는 미대사관 또 국무부 사이에서 수발된 전문 그리고 CIA와 DIA의 국방정보국하고 중앙정보부의 그 분석자료들.. 이건 뭐 다 훌터 가지고 찾아본 거에요. 찾아봤더니 몇 가지가 있습니다.

 

43:33

밑에 보면은 5.18 민주화운동 기간 중에 북한의 공격의도나 남침이 임박했다는 징후 또는 북한군의 특이동향은 입수되지 않았다. 이게 뭐 전체적인 결론이에요. 사실은..

첫째 한 6가지가 있는데 광주사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성명에는요. 북한의 공격 의도를 나타내는 정보를 입수한 바 없다 하고 딱 때렸어요. 우리 그 당시 국회에서 질의했을 때..

 

또 이런 게 있습니다. 북한이 학생시위의 배후에 있으며 남한에 대한 결정적인 공격의 순간이 다가왔다는 전두환의 발언에 대해서는 위컴 한미사령관이 한 말은 북한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징후는 전혀 없다고 답변하고 있어요.

또 글라이스틴 대사가 이 소문에 대해서 우리 정부에 따르면 북한군의 특이동향은 없으며 남한에 대한 모종의 공격이 임박했다고 믿을 만한 움직임도 없다고 발표를 해 버렸어요. 아무 것도 없는 거예요. 사실은..

 

44:34

또 한국 정부에서 미국측에 북한의 군사행동 억지를 요청한 데 대해서 미국은 북한 감시를 위해서 5월21일날 E-3A 조기 경보기 2대를 극동지역에 파견하고 해군 함대를 한반도 인근에 배치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광주사건 관련해서 북한의 의도 및 관점에 관한 DIA의 보고서입니다. 1980년 5월19일입니다. 학생 시위 및 뒤이은 광주폭동의 와중에 김일성과 오진우 등 북한 지휘부가 비밀회의를 개최했다. 이 전문이 입수됐어요.

그런데 이들은 만약 광주폭동이 전국적인 인민항쟁으로 발전할 경우 계획을 주저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고 합니다.

 

45:23

그러나 한국측은 그 당시 한국 신군부죠. 북한의 이런 공격준비태세를 보여준 특이하거나 현저한 동향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김일성과 오진우가 5월19일날 비밀회의를 개최하면서 만약에 남조선에서 광주에서의 저 혼란이 전국적으로 다 벌어지면 우리 이제 밀고 내려가자 뭐 이런 이야기가 있었지만 거기에 관한 남.. 한국측의 정보입수 내지는 정보확보 요구는 없었다 이거죠. 몰랐다 이거죠.

 

46:00

상공회의소 관계자의 전두환 면담에서 전두환은 사체 22구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는데, 이들 전부가 북한 간첩들일 것이라고 말했음이라고 나옵니다. 이게 이제 두고두고 지금도 이제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하나의 족쇄가 되버렸어요.

 

빨간줄 처져 있는 걸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좀 음미해볼까요?

HE SAID 22 BODIES COULD NOT BE IDENTIFIED

22구의 시신을 확인할 수 없었다.

ALL OF WHOM WIGHT BE NORTH KOREAN IMFILTRATORS.

임필트레이터라 하면요 그 침투공작원이에요. 북한의 대남공작원인 것 같다고 이제 전두환 당시 합수본부장 6월 17일이니까 그죠?

 

46:51

이로 인해서 그 당시 군부 전체가 이렇게 사고를 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고, 조사를 얼마나 뭐 세밀하게 했을까요? 또 전두환 저 양반은 그 당시 뭐 광주에 내려온 적도 없고, 그저 밑에서 조사한 군인들이 그런 보고를 올리니까 저런 상황이 벌어진 것 같에요. 한국의 학생 소요 보고서 CIA보고서에는 통혁당 소리 방송이 민주화투쟁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 촌음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 무기를 손에서 놓지 말 것을 촉구했다 선동방송이죠.

 

그 다음에 80년 5월23일자 한국 정세 보고에는 북한 라디오에서 남한 사람들에게 광주 반체제세력 지원을 고수했다 하는 내용이 있고, 그 다음에 마지막 여섯번째 동아시아 정세 보고서 관련 북한 관련해서 CIA보고서는 저렇게 날짜별로 쭉 나와요.

 

47:48

이 기간 중에 공동경비구역 내의 소규모 교전 이외에는 북한내부 특이동향은 없다 하는 얘깁니다. 결론적으로 뭐냐? 미국의 정보기관의 그 모든 자룔 다 뒤져봐도 80년 5월 당시에 북한에서 남침을 준비하고 비상을 하거나 또는 뭐 특수부대 9개조, 9개팀이 뭐 준비했다 그런 게 없었다는 거죠.

 

48:13

자 세 번째입니다. 세번째 뭐냐면 1부6편에서 제가 말씀드린 청주유골 430구라는 주제의 지만원 연구내용을 제가 왜곡해 가지고 지만원을 황당한 주장을 펴는 존재로 부각시켰습니다.

이로 인해서 지만원의 명예와 신용이 훼손되었습니다 라고 이제 항의하시는 거예요. 명예와 신용은 진실을 얼마나 이제 존중하느냐를 가지고 우리가 고려해야 되지 않을까 싶은데 청주유골 430구가 저게 북한 특수군이라고 하면 과연 신용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건지 좀 전 아직 이해가 잘 안갑니다만 어쨌든 간에 여기 이제 지금 논란이 있기 때문에 제가 그 논란의 답변을 하는 의미에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49:03

집단 가매장된 청주유골 430구는 북한 특수군 유골. 이런 내용에 대해서 태극기 들고 청주유골 430구 행방. 정부가 밝혀라 하면서 저런 시위를 하는 분들이 많이 나오죠. 그죠? 2014년부터 시작되었으니까 벌써 8년째 되는 거죠. 그죠?

저기에 대해서 누군가가 제대로 바로 잡아주는 언론기관도 없고, 정부기관도 별로 없는 것 같고 지금까지 흘러나오면서 책으로, 유튜브 방송으로, 또는 또 다른 매체로 계속 이제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겁니다.

 

49:39

여기서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만원씨는 뭘 제가 잘못했냐고 지적을 했냐면 북한 유골 430구와 441구는 전혀 다른 사항입니다 라고 지만원씨 얘기합니다. 저는 441구라고 얘기했거든요.

근데 지만원씨는 청주유골 430구는 2014년 5월13일 청주시 흥덕구 휴암동 축구공원 조성부지에서 발견된 것인데, 제가 이야기하는 441기는 청주시 서원구 산남동 산29-1에 위치했던 유골입니다. 이런 거예요. 청주시의 유골이 400 여구의 유골들이 한 무더기씩 여기서 나오고 또 3년뒤에 또 저 서원구 산남동 에 막 나오고 뭐 이렇게 된 것처럼 지금 말씀하시는 거에요.

 

50:33

네. 저는 저 441구를 어떻게 알게 됐냐 하면은 신문 방송이 아니고 제가 직접 내려갔어요. 그 휴암동 축구공원 조성 부지.. 이미 인제 지금은 이제 공원이 돼 있는데.. 거기 가면 그 체육관리공단이 있고 그 공단 내에 이것과 관계된 사안을 다루는 담당자가 있어요. 만나서 1시간반동안 인터뷰하고 여러 자료들을 받고 많은 정보를 얻어온 거죠.

지만원씨는 시기가 다르고, 장소가 다르고, 날짜가 다르고 유골수가 다른 사안입니다. 청주유골 430구는 입찰공고 없이 무명의 장례업자에게 뭐 한 거고 그죠? 또 441기는 뭐 또 다른 거고 하면서 이제 다르다고 자꾸 이야기 하시는 거에요.

 

51:17

제가 답변드리겠습니다. 지만원씨에 의하면 청주유골 430구 발견되었고 또다시 441구가 발견되었다는 식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북한 특수군의 유골이라는 주장한 부분 거기는 이 고소장의 일말의 언급도 없어요.

그리고 유골 430구와 441구가 서로 다른 시기, 다른 장소에서 발굴된 것이므로 이동욱이가 자신의 명예와 신용이 신용을 추락시켰다. 뭐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거예요.

 

51:48

그런데 자신의 명예와 신용이 추락했을지 몰라도 그 개인적인 것이고, 북한 특수군 유골이 있냐 없냐는 국가적인 겁니다. 어떤 게 더 중요합니까?

북한특수군 유골의 행방. 이게 더 중요한 거 아니에요. 공사를 구분해 본다면 크죠. 공적인 부분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근데 지만원씨는 지금 이게 북한 특수군 유골이 아니면 현대사 왜곡이 되버리는 거에요. 왜곡을 앞장서서 해 오신 거죠. 그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본인은 지금 일말의 언급도 없는 겁니다. 전 그 부분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을 것 같에요.

 

52:30

두번째 북한 특수군의 유골이 주장해온 행위 자체가 스스로의 명예와 신용을 저버린 행위는 아니었는지 그러면서 여전히 인정하고 있지 않아서 저로선 참 안타까운데요. 문제가 된 441기 유골이 어디서 발굴된 것이며, 누구의 주장인 것인지는 청주시청의 공문으로 제가 대신하겠습니다.

저는 청주시 체육관을 방문해서 담당자를 만나서 취재한 다음에 그 공문을 받아서 설명을 듣고 이해했거든요.

 

53:01

그리고 이 방송에서도 이 공문을 기반으로 말씀드렸기 때문에 저는 사실을 기반으로 해서 말씀드렸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공문이 바로 이겁니다. 어디서 발견됐냐 하면 2014년 흥덕지구 축구공원 문화재 정밀발굴 조사시에 발견됐다. 아까 저 지만원씨가 얘기하는 430구 위치하고 똑같지 않습니까?

 

그 다음 볼까요? 주소, 청주시 흥덕구 휴암동 산 65-1번지 바로 그겁니다.

몇 구에요? 441기입니다. 430기가 아니고, 441구에요. 왜 430기냐? 처음에 언론들이 대략 해가지고 430여구로 쓴 거를 430구가 됐다가 그러나 이제 공문은 확실해야 되니까 청주시는 441기 다시 카운트 해가지고 441기로 확정된 거죠. 저는 이렇게 정리를 했습니다.

 

53:59

그래서 오늘까지 인제 지만원씨가 제가 명예훼손 했다 사실이 아닌 걸 이야기했다 하면서 크게 3가지를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 중에서 아 한가지는 제가 잘못한 부분, 저 뿐만 아니고 언론도 그랬고, 뭐 5.18관련한 연구단체도 그랬고,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부분, 그런데 이번에 바로 잡을 수 있어서 참 대단히 고맙게 생각하고요.

나머지 두 부분 계엄사 인용한 부분, 그리고 청주유골 부분, 이런 부분은 저는 또 이제 다른 근거를 갖고 말씀을 드렸니까 지만원씨나 지만원씨 곁에서 같이 5.18역사연구회를 하시는 역사 연구를 하시는 분들이 다시 한번 검토해 보시고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현대사에 대한 합의할 수 있는 사실을 찾아내는데 노력을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55:01

이런 문화, 이런 풍토가 고소고발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학문적인 풍토로서 나는 이런 근거에서 이렇게 생각한다고 이야기할 때, 상대방도 그걸 받아들이면서도 또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영역은 반박하고 이러면서 나가줘야 비로서 대한민국의 인문사회학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고소 고발하고, 허 공격하고, 뭐 뒤에서 또 비난하고 그러면 우려된다.

 

55:33

대한민국의 역사는 그런 과거로부터 이탈한 혁명의 역사 아닙니까? 이제 앞으로는 좀더 젠틀하게, 나이스하게 서로 의견이 다를 때 근거를 제시하면서 상대방 입장도 다시 한번 헤아려 보면서 아무리 많은 비극이 발생한 사건들 조차도 그 분노와 증오의 감정이 좀 가라앉고 나면 차분하게 다시 따져보는 경험과 뭐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56:03

오늘은 번외편으로, 여러분께 지만원씨가 제기하는 문제에 대해서 답변을 할 겸 또 5.18 당시의 특정 부분에 관한 세부적인 영역들을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56:22

다음 시간에는 인제 5.18 후사가 됩니다. 5.18이 끝나고 나서 오늘날까지 이야기를 쭉 할텐데요. 대한민국이 건국한 1948년부터 시작해서 5.18이 일어날 때까지가 32년입니다. 그리고 5.18이 일어나고 나서 오늘날까지가 42년입니다.

우리는 건국할 때부터 5.18까지의 그 시간보다 사실은 5.18 이후 지금까지의 시간이 더 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이 5.18에 대한 소화를 제대로 못 시키고 있습니다. 그 최대한 제가 압축하면서 다음 시간에 여러분과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랜 시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57:12

[음악]

댓글목록

해머스님의 댓글

해머스 작성일

이 글 내용보다 발언하는 모습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동00으로 인해 물려버린 기레기의 억지 웃음.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태도와 억양..
많이 아는 척 하는 위선적인 자세..
무엇인가 쫒기고 있는 불쌍한 쓰레기 인생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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