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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 內外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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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athfinder12 작성일22-09-07 00:42 조회90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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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 內外의 생활

 

(여러 사이트에서 수집한 것을 요약 정리 하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식사  

 

소탈한 성격의 李承晩(이승만) 대통령은 보통 나물 두 가지에 국 한 가지로 식사를 했다고 한다.

"저녁 식사 때면 낮에 먹던 반찬 갖고 오라고 말하셨어요. 손님을 초대 했을 때 외에는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지 않았어요. 생활하시는 게 일반 서민들하고 하나도 다르지 않았어요. 오히려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궁핍하게 살았어요."

 

귀빈에게 국산차 대접

 

프란체스카는 경무대 손님들에게 커피보다는 건강에 좋은 국산차를 대접했다. 여름에는 시원한 오미자차, 겨울에는 따끈한 모과차와 유자차를 내놓았다. 모과차와 유자차는 특히 외국 귀빈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모과차 만드는 법과 불고기 양념하는 법을 배워갔다.

 

술없는 경무대 파티

 

이승만 대통령은 젊어서 한때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시도 짓고 즐겼는데 구국운동하면서 "나라위해 중요한 일할 때 술 마시다 실수하면 안된다"고 술을 끊었다고 한다. 경무대에서 손님을 초대할 때도 술을 대접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술없는 경무대 파티에 익숙한 외국분들은 초대받으면 미리 한잔씩하고 오는 분도 있었다고 한다. 경비 절약을 위해 술을 뺀 경무대 초대연은 나름대로 외국 귀빈들에게 독특한 인상을 준 모양이었다.  각기 보는 인상을 다르지만 지금도 워싱턴의 친한파 명사들이 모이면 <구두쇠 대통령>을 위해 자기들끼리 모여 건배를 했던 옛추억과 그 시절 얘기를 나눈다고 다울링 대사 부인이 나에게 말해 주었다. 

 

(프란체스카 여사의 회고)

 

 

이승만 대통령의 장수법

 

『웃음을 잃지 않았고 질투나 노여움, 분노의 감정을 갖지 않았다. 남편은 유머가 풍부해 늘 주변을 즐겁게 하였으며 모함하고 중상하는 자들에게도 늘 관대했다. 나에게도 항상 용서하고 잊어버리라고 타일렀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진 것이 건강을 가져왔다.

「독립 미치광이 노인」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확고한 신념과 사명감을 갖고 굽히는 일 없이 일했다. 늘 젊은이처럼 활기에 차서 일했다.
 
그는 언제나 배우는 자세를 견지했다. 80이 넘은 후에도 새로운 영어단어를 손바닥에 써가지고 외우기도 했다. 남편이 건강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민족의 소원인 남북통일을 기어이 이룩해야겠다는 굳건한 의지와 신념을 갖고 불철주야 일하며 노력한 데 있다.

 

할 일 없이 처져 있는 노인들과 달리 목표를 갖고 살았기 때문이다.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질 때 사람은 노력하게 되고 마음과 몸의 건강도 지켜지게 마련이다. 사람은 흙을 밟으며 흙냄새를 맡아야 건강하게 오래 산다며 항상 우리나라의 나무와 흙을 사랑하고 자연을 벗하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일평생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생활을 계속한 것도 건강의 비결이다』

 

깍쟁이 사모님을 싫어한 양노인

 

어느날 밤 11시가 다 되어 주방에서 떠드는 소리가 나서 가보니 양씨가 술에 취해 <자선파티>를 열고 있었다.  "소금 조금", "간장 조금" 하고 내 흉내를 내면서 웃는 소리가 났다. 가정부가 걱정이 되는지 "사모님에게 들키면 어떡하려고 이러세요" 하자  "내 빽이 대통령인데 <깍쟁이 사모님이 어쩌겠어>"하며 큰 소리를 쳤다.
(...)

대통령과 달리 나는 양노인이 별로 탐탁치 않았다. 그는 나를 "깍쟁이 사모님"이라고 했고 모든 면에서 절제하고 아끼는 경무대에서 술을 자주 마셨다. 평소엔 조용했지만 술만 마시면 주벽이 있어서 밤늦게 주방으로 직원들을 모아들여 냉장고의 식료품을 꺼내어 자기 마음대로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주었다. 나는 무척 신경이 쓰였다.
(...) 

나는 깍쟁이란 말을 듣기는 했지만 무슨 뜻인지 그때까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나는 대통령에게 양씨가 나더러 깍쟁이라는데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살림 잘하는 알뜰한 부인네를 칭찬하는 말"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얼마 후에 나는 그말이 좋은 뜻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

한번은 술에 취한 양씨가 성경책을 베고 코를 골다 나에게 들켰다. 나는 대통령을 모시고 와서 보여주었다.  남편은 상보를 접어 양씨에게 받쳐주고 성경을 빼내며 "참 좋은 사람이야. 술을 마시고도 성경을 보더라니"하며 빙긋이 웃었다. 대통령과 요리사가 아닌 노인네끼리의 따듯한 우정을 그 순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프란체스카 여사의 회고)

 

하와이에서의 생활

 

하와이에서도 프란체스카는 남편을 돌보면서 방문객들을 맞고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편지와 답장을 보내는 등 비서역할을 충실히 했다. 헤리스 목사, 밴플리트 장군, 화이트 장군 등 많은 사람들이 李대통령을 만나고 돌아갔다.

오스트리아의 프란체스카 집안에서 200달러씩 생활비를 보내주었으며 커다란 종이상자 두 개분의 옷을 부쳐주었다. 그녀는 이 종이상자를 개조해 옷장으로 썼고 그 종이옷장은 지금 이화장 전시관에 보존되어 있다.

 

귀국 불가 통보와 서거

 

시간이 지나면 비행기 여행조차 불가능해진다는 李대통령 주치의의 판정에 따라 1962년 3월17일, 부부는 귀국을 결정했다. 출발 사흘 전부터 보행이 불편하여 휠체어에 의지하게 되었으나 李대통령은 섭섭해 하는 교포들에게 『우리 모두 서울 가서 만나세』라며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출발 당일 간단한 아침식사를 끝낸 뒤 외출복을 입고 소파에 앉아 있을 때 金世源(김세원) 총영사가 찾아왔다. 본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총영사가 귀국을 만류하자 조용히 듣고 있던 李承晩 대통령의 눈이 발갛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누가 정부 일을 하든지 정말 잘해가기 바라오』
  
1990년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프란체스카는 『혁명정부에서 대통령의 귀국을 만류, 87세의 노인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게다가 朴正熙 대통령이 일국의 건국 대통령을 외국 병원의 무료병동에서 돌아가시게 한 것은 유감천만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병상에 누워서도 李대통령은 고국으로 돌아갈 생각만 하였다. 존슨 여사가 『소원이 무엇이지요』 하고 물으면 『한국으로 돌아갈 여비요』 하고 답했다. 李仁秀씨는 언제 돌아가실지 모를 아버지를 한국으로 모시는 일이 시급하다는 생각에서 1963년부터 국내를 오가며 李承晩 대통령을 국립묘지에 안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당시 분위기로 봐서는 힘든 일이었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고 도움을 받아 1965년 1월에 국립묘지에 안장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지관을 데리고 가서 자리까지 결정했다. 李대통령은 그런 준비가 마무리된 그해 7월19일에 서거했다. 李仁秀 박사는 李承晩 대통령이 국민에게 남긴 유언을 소개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신약성경 갈라디아서 5장 1절 말씀을 자주 하시면서 국민들께 남기는 유언이라고 하셨어요. 다시 나라를 잃고 침략을 당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경제적, 문화적 침략에 대비해 정체성을 해칠 노예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프란체스카는 『한국에 갔을 때 朴正熙 대통령이 여생을 한국에서 편안히 지내라고 말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육영수 여사의 우아한 모습과 친절을 잊을 수 없으며 남편의 묘를 훌륭하게 조성해 준 정부와 국민에게 감사한다』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 오스트리아는 중립국이기 때문에 공산국가와의 왕래가 많으니 주의를 기울이라고 당부했다. 프란체스카는 집주소와 전화번호를 묻는 柳대사에게 난처한 빛을 보였다. 고향 빈으로 돌아온 이후 북한 청년 두 명에게 가는 곳마다 미행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경찰간부인 친척이 한국인과 일체 접촉을 하지 말라는 주의를 주었다고 말했다.
  
 

프란체스카 여사의 절약

 

1976년에 금성사에서 에어컨을 기증하자 프란체스카 여사는 전력난이 심한데 에어컨을 사용할 입장이 아니라며 돌려보냈다. 금성사에서 다시 작은 선풍기를 보냈는데 아주 더울 때 겨우 한두 번 트는 것이 고작이었다. 

 

1958년에 최초로 생산된 국산 모직으로 만든 옷을 34년 동안이나 입었으며 1904년에 산 타자기로 남편의 독립운동과 한국 외교를 돕고 죽을 때까지 사용했다. 프란체스카의 옷은 어느 것 하나 깁지 않은 것이 없으며 속옷과 스타킹까지 기워 신었다. 손자들의 체육복을 몇 번이나 기운데다 아랫단을 여러 번 내는 바람에 손자들이 창피하다며 학교 가기 싫어했을 정도이다.

 

경무대에서도 옷을 꿰매 입는 건 여전했는데 어느 날 대통령이 方在玉씨에게 이렇게 하소연을 했다.

『대통령께서 내복을 들고 저에게 「재옥아 이 꿰맨 걸 나더러 또 입으라 그런다」하시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으셨던 기억이 나요. 너무나도 알뜰하신 영부인이었죠.』

 

프란체스카 여사는 가뭄이 들었다는 TV뉴스가 나오면 손자들 목욕도 시키지 못하게 했다.  며느리에게 세세한 것까지 가계부에 적게 한 후 15일마다 검사했다. 검사할 때마다 “全국민이 한마음으로 뜻을 모아 근검 절약을 생활화해야 통일을 달성할 수 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曺惠子씨는 어머니가 늘 겨울에 추위에 떨었던 것이 가슴 아프다고 회고했다. “기름값을 아끼려고 겨울이면 비좁은 경비실로 옮겨서 생활하셨어요. 기름을 함부로 때는 것은 달러를 태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하셨죠. 너무 추울 때면 저에게 72도 작전을 하자고 말씀하셨어요. 둘이서 껴안고 있으면 온도가 72도가 된다는 뜻이에요. 

 

"어머니와 가난해서 더 친해졌을 정도예요. 너무 추워서 1985년에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이화장 본관 아래 이층집을 지었어요. 말년에 좀 따뜻하게 지내셔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어머니는 정말 지독하게 절약하신 분이에요. 밥알 하나, 두부 한 모, 콩나물 하나 버리면 큰일이고 식사를 할 때 늘 접시가 깨끗했어요. 평생 돈 한번 마음 놓고 써보지 못하고 가셨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죠.” 

 

[한때 콜터 장군 부부가 마땅히 지낼 곳이 없다 하여 이화장의 방을 빌려주었으나 콜터 부인이 냉동창고라고 혹평을 하면서 다른 곳으로 이사했을 정도로 이화장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

 

22년 동안 미장원에 한번도 가지 않고 머리를 길러 쪽을 졌다. 세제는 반드시 정량만 사용하고 빨래한 물을 모아서 걸레를 빨았으며, 세탁기는 남북통일 되면 사용하라고 해서 曺惠子씨는 1985년이 되어서야 겨우 세탁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경무대 시절 그녀는 천으로 만든 작은 주머니에 헌 양말을 넣어 통통하게 만든 구두 속주머니를 만들어 미국 대사와 미국 상공회의소 부인들에게 선물했다. 구두 모양이 변하지 않도록 구두에 끼워놓으라는 당부와 함께 선물을 하면서 고아와 전쟁미망인들을 도와줄 물품을 요청했던 것이다. 

 

재봉틀과 각종 악기를 지원받아 전쟁미망인과 고아원에 전달했다. 프란체스카는 전쟁 중에 고아원을 찾아다니며 고아들의 머리를 깎아주었는데 나중에 고아 중 한 명이 이화장을 찾아온 일도 있었다. 선물을 싼 끈도 모았다가 엮어서 찻잔 받침을 만들어 선물하기도 했다. 이런 알뜰한 유품들은 현재 이화장에 전시되어 있다. 

 

프란체스카 여사의 81회 생일 잔치는 1천여 명이 모인 가운데 소피텔 앰배서더 호텔에서 열렸다. 프란체스카 여사가 생일 잔치를 하지 않겠다고 하여 국가유공자 가족들을 초청하는 자리로 대신한 축하연이었다.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장수 비결을 묻자 “무엇에든 감사하는 마음이 저의 생활관입니다. 그것이 바로 장수의 비결이지요” 라고 답했다. 프란체스카는 살아생전에 손자들이 장가가는 것을 본 뒤에 죽고 싶다고 했으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1992년 3월19일 타계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자신이 죽거든 틀니를 반드시 끼워주고, 남편이 독립운동할 때 사용했던 태극기와 성경책을 관에 넣어달라고 당부했다. 관 뚜껑은 남편의 친필휘호인 南北統一(남북통일)로 덮어달라고 말했다. 프란체스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무엇이 두려운가』라는 말을 늘 유언처럼 했다고 한다. 

 

 

참고사이트
https://m.blog.naver.com/ohyh45/20118315309, https://archive.ph/XiqK4

 

참고문헌

이화장 이야기(며느리 조혜자 인터뷰, 월간 신동아 7월호, 06)
대사의 일기장(유양수, 수문서관, 88)
이화장의 봄 음식(프란체스카 리, 이화장)
이승만 대통령의 건강[부제: 프란체스카 여사의 살아온 이야기](프란체스카 도너 리, 촛불, 88)

 

댓글목록

한국롬멜님의 댓글

한국롬멜 작성일

눈물이 핑하는 건 비단 저만 그런건 아니겠죠????
그러길 바랍니다.
저도 그 당시에는 천만있으면 구해다가 재봉틀 앞에서 엄마에게 보챈 적이 많았습니다.
내 팬티 좀 만들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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