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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청와대 습격사건 1·21 사태의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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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초병 작성일22-12-02 11:10 조회3,379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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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베트남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파병된 한국군의 전투력에 고전하던 같은 사회주의 북베트남의 호찌민이 김일성에게도 파병을 요청했지만 앞서 언급한 상황 때문에 김일성은 거절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파병을 통한 경제적, 군사적 이득을 취할 수 있었기에 병력을 더 증강해 거의 30만 가까이 파병하게 되었고 더이상은 이 사태를 좌시할 수 없는데다, 한국군의 병력이 빠지는 것이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김일성이 태도를 바꾸어 직접 파병은 무리지만, 남한이 더이상 베트남에 전투부대를 파병하지 못하게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16] 그 약속에 따라 68년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김일성이 북베트남을 돕기 위해 한국을 행한 강도높은 안보도발을 시작했고, 그 시작으로 청와대 침투 계획 즉 1.21사태를 주도한다.

대침투작전은 6군단과 1, 25, 26사단 등 16개 부대 1만 9186명이 참가해 그해 1월 20일부터 2월 3일까지 계속됐다. 무장공비 28명을 사살하고 1명(김신조)을 생포했으나(2명은 월북 추정), 아군도 31명(민간인 5명 포함)이 전사하고 51명이 부상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김유송 상좌 (고참 중령급)

2000년 탈북 1968년 1월 대한민국 충성서약서를 작성하고, 김일성에게 충성해 접근할 만큼 출세하라고 살려 보낸 임태영 상장, 우명훈 중장 기사화

 

김신조 침투조, 목 없는 시신 알고보니…충격 | 중앙일보 (joongang.co.kr) 

 

1967년 말 중앙정보부 강인덕 대북분석과장이 1968년 초부터 대규모 무장공비 침투가 예상된다는 보고서에 박정희 대통령 침투에 밑줄 2번 그었.

 

1.21 사태를 계기로 북한 군부에 휴민트를 심어 남한 정부에 협조자들을 육성 김일성 부자를 제거 군부실세 그 들과 협상 남북통일 전략으로 보인다.

 

1968. 1. 21 사태 비화 휴민트 (Humint) 공작

 

기획 : 박정희 대통령 육사 2

 

작전사령관 : 6군단장 육군중장 이세호 육사 2

 

중앙정보부 대북공작국장 : 이철희 육사 2

 

* 1946년 12월 육사 2기 임관 (단기 3개월 과정 수료)

 

작전참모 : 6군단 본부 편의공작대 교관 육군소위 柳春熙  1966년 임관 갑종(甲種)간부 205기

 

기간 : 1967.12.1~1968.2.28 3개월 방첩부대 신분증 발급, 최상급 부대 편의공작대 120명 직접 교육

* 박정희 대통령 특명 수행을 육군대령이 맡아야 하는데 소대장을 시켜 3개월간 아주 힘들었다고 교관 증언.

* 방첩부대 신분증이 발급되고, 박정희 대통령 특명 수행을 위해 편의공작대 병력 120명을 직접 교육하고

  당시 6군단 본부에서 柳소위 한테는 대령들도 함부로 못했다고 교관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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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 66-12495

柳 소위 66년 임관, 군번 : 12495 방첩부대 신분증 증명사진으로 사용, 1967년 12월 1일 발급

육군 중위 계급으로 퇴역하다 보니 장교 자력 표에 예전 모습의 구겨진 증명사진이 붙어있어 가져왔습니다.

예전 갑종장교의 임관시에 부여 받은 다섯자리 군번을 전두환 대령이 육사의 정통성을 지킨다는 이유로 여섯자리 군번 변경을 육군본부에 건의해 변경이 되었는데, 1969년 갑종간부 1기생이 대령에 머물러 힘이 없었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현실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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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년대 軍 특무부대원 ‘마패’ 가지고 다녔다

입력 2006.04.16. 오후 3:42

[쿠키 정치] 1950년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육군 특무부대 및 방첩부대원들이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찼던 마패와 유사한 ‘공무집행용 메달’을 가지고 다녔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군 기무사령부는 16일 인터넷 홈피(www.dsc.mil.kr)에 마련된 사이버 역사관에 기무부대 전신인 특무부대 및 방첩부대원들이 사용했던 메달 사진을 56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 코너에는 특무부대 창설 때부터 최신 기무부대의 모습,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보안 사령관을 비롯한 역대 사령관 사진 등 80여 장이 올라있다.

1950년 특무부대 창설 때부터 1967년 12월까지 사용됐던 이 메달의 전면에는 ‘육군 특무부대’,‘육군 방첩부대’라는 글자가, 뒷면에는 K.A CIC(Korea Army Counter Intelligence Corps의 약자)라는 영자가 새겨져 있다. 특히 K.A CIC라는 글자 밑에는 ‘본 메달 소지자는 시기 장소를 불문하고 행동의 제한을 받지 않음’이란 문구를 덧붙였다. 이 메달은 당시 이 부대원들의 위세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물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무사 관계자는 “당시 특무부대원으로서 소속감과 자부심을 심어주고 업무 수행에 편의를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신분증 대용으로 메달을 가지고 다니도록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라고 전했다. 이 메달은 특무부대의 명칭이 방첩부대로 바뀐 뒤인 1967년 12월 1일 증명사진이 붙은 신분증을 부대원들에게 발급하면서부터 사라졌다.국민일보 쿠키뉴스 이동재 편집위원 djlee@kmib.co.kr

<갓 구워낸 바삭바삭한 뉴스 ⓒ 국민일보 쿠키뉴스(www.kuki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참고자료 무장공비 침투 무기

이들이 장비한 습격용 무기는 기관단총(PPS) 31정(1인당 1정씩 휴대), 실탄 9,300발(1인당 300발씩 휴대), TT권총 31정(전원 휴대), 대전차용 수류탄 252발(1인당 8발씩 휴대), 방어용 수류탄 252발(1인당 8발씩 휴대), 단도 31정(전원 휴대)이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21사태(一二一事態))]

 

교전 #1

1968년 1월 24일 경기도 양주 노고산 아군 벙커 안에 은신한 3명의 공비들을 무리하게 생포하려다 6·25 전쟁 참전하신 1사단 15연대장(육군대령)이 전사하고 수색 중대장소대장도 적탄에 맞아 전사해 전멸 상태였고, 독 안에 든 공비를 진압하는데 아군 희생도 컸고 작전 실패였다.

교전 #2

1968년 1월 24일 경기도 포천 1110공병여단 뒤 언덕에서 공비 잔당들을 추격하던 갑종(甲種)간부 193기 강희덕 중위 전사하고 공비들은 도주했는데, 교관과 알고 지내던 사이였고 1년 선배였다.

교전 #3

경기도 파주군 삼봉산 공비들이 나무꾼 우씨 형제를 풀어준 초리골

'68년 1월 19일 야간 무장공비 출현이 접수되어 편의공작대 121명이 삼봉산에 파견나와 침투로를 파악했다.

교관이 지형지물을 이용 엄폐물 구축 120명을 매복시켜 이날부터 잠한숨 못자는 시간이 계속되고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상황이었다.

매복 작전 중에 교관이 예상한 대로 공비 31명의 작전실패를 확인하고, 야음을 틈타 몰래 복귀하려던 3인조 방차대(후미 감시조)가 사정권에 걸려들었다.

영하 20도까지 하강하는 강추위에 사람 허벅지까지 눈이 쌓여 있어무장공비 3명도 도주하기가 쉽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3인조 공비가 기관총을 난사하면서 저항한다 해도 편의공작대 121명은 이미 엄폐물이 있었고, 조준사격으로 실탄 121발이 공비들을 향해 날아가 사살해 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교관이 편의공작대 120명 직접 교육 M1 소총으로 무장해, 3인조 방차대를 포위섬멸해 소련제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공비들을 무장해제 시키고, 생포된 3명의 팔, 다리를 포승줄로 결박시켜 호송차에 태운다.

훗날 교관도 당시 상황이 아찔해 "육군대령 전사 비보에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었다"고 깊은 한숨을 여러 번 내쉬셨고생포 과정이 쉽지 않았음을 암시했다. 

교관이 3개월간 직접 교육한 대로 편의공작대 120명이 믿고 따라줘서, 3인조 공비를 제압하면서 120명이 부상자가 없는 것은 교관의 자부심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뜻이 그러하시니 공비 3명을 경기도 포천 6군단 본부로 압송 편의공작대 교관이 1주일간 잠한숨 못자고, 대한민국 충성서약서를 임태영 소위, 우명훈 소위에게 받아내, 가슴에 들게 하고 사진 촬영해 버린다.

작전종료 후 교관은 당시 임시대위 편제가 있던 시절, 임관 1년 7개월 만에 1110 야전공병여단 (6공병여단 전신) 126 공병대대 중대장 보직 받고 120명을 지휘하게 됩니다.

작전사령관도 본인의 육사졸업 장래 희망 설문조사에서 해외 원정군 사령관이라고 적었다는데

1969년 5월 1일 2대 주월남 한국군 사령관에 내정되고, 인사 배경에 1.21 사태 원만한 처리가 주효했다고 회고록에 심경이 담겨있습니다.

주월남 한국군 사령관 보직은 육군대장으로 가는 자리였습니다.

 

6군단 작전참모 육군대령 전제현 (예비역 육군소장) 31명 침투 김신조 외에는 없다고 진술.

송추 국민학교에서 1주일 날밤 새워 예하 3개 사단 작전에만 관여해 목이 없는 무장공비에 대해 알지 못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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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50年 史에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의 하나라고 언론사에서 선정한 장면입니다.

 

1968년 1.21 사태 6군단 전술기지(CPX) 송추 국민학교

좌측 6군단장 육군중장 이세호 1.21사태 작전사령관, 우측 사살된 무장공비 대조 중인 김신조氏

작전사령관이 미소를 짓는 모습이 6군단 본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전향한 임태영과 우명훈의 교육이 끝나고 전후의 상황으로 보입니다.

방첩부대장 육사 8기 윤필용 준장은 TV 생방송에 김신조 공개로 일선 20사단장으로 전보 조치되었고 사실상 좌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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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군단장 시절인 1968년 1박정희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1·21 사태에 대해 작전을 숙의하고 있다. (가운데)  출처 : 이세호 대장 회고록

좌측부터 박종규 경호실장, 1군사령관 서종철이세호 사령관(중간), 박정희 대통령이후락 비서실장

작전사령관이 청와대 세 차례 들어가 작전을 숙의했는데 그중에 한 장면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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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좌측 김계원 육군참모총장 (이세호 대장 회고록에는 잘라내기, 10.26 사태 영향으로 추정)

전현직 장성 출신들이 서있고 작전과 관계가 없어 보이는 대령 예편의 박종규 경호실장이 좌석에 앉아 작전을 참관하고 있다.

이세호씨가 사단장 시절 밑에 있던 부하였지만 5.16에 적극 가담해 경호실장으로 위상이 올라갔고, 지지선언한 6군단장은 쪼그리고 있는 자세가 비교가 됩니다.

육사 2기 정보부장이 육군 준장 사단장 시절 차 경호실장은 8년이나 어린 대위 계급이었습니다.

10.26 사태 당시 육군중장 예편의 김 정보부장이 중령 예편의 차 경호실장을 거만하게 볼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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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년 박정희 대통령 6군단 시찰, 출처 : 대통령 기록관

산야가 눈으로 덮여 있는 겨울, 6군단 본부 연병장 헬기 착륙

선친의 증언이 "박 대통령이 부대에 한 번 오셨는데, 너무 높은 분이라 악수는 못해봤다" 라는 기억이 떠올라 사진을 가져왔고, 계급이 제일 낮은 분이 6군단장입니다.

1968124일 전향한 무장공비쪽으로 안내하는 앞줄 좌측 이세호 6군단장, 우측 박정희 대통령

뒤쪽으로 김계원 육군총장, 박종규 경호실장, 서종철 1군사령관, 1.21사태로 물러난 김성은 국방장관, 이후락 비서실장 등장인물만 봐도 1.21사태로 보입니다.

이세호 군단장, 서종철 1군사령관 실내 대기상태에서 점퍼를 입을 겨를도 없이 바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국군이 무장공비 31명과 교전중이라 안전을 고려해 의전차량 보다는 헬기를 이용했고이북 정찰국장 김정태의 의심을 피하려면 빠른 귀환이 시급했기에 서둘러 오신 것으로 보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남로당 간부(29)로 활동하다 적발되어 사형선고 경험도 하셨고소령시절 정보장교, 대령시절 정보학교장 경력이 있는 분이라 창군 이래 유례가 없는 역침투 공작 발상은 박 대통령 외에는 없어 보입니다

박 대통령이 잠복 기간, 접선 방법 교육이 끝나고 전향한 임태영우명훈 소위에게 귀환해서 김일성에게 접근할 만큼 출세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교육 시키는 장면은 사진과 비디오 촬영하고 북으로 돌아가서 접선에 응하지 않을 경우 약점을 잡기 위해 정보기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정보 공개를 요청해 보았지만 응할 수 없다는 답변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등장하는 다음 장면의 사진과 영상 필름이 통째로 사라져 단서만 있을뿐 선친의 군복 입은 전성기 시절 모습은 아쉽게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박 대통령 특명으로 전향한 무장공비를 호송차에 태우고 검문소에 방첩부대 신분증을 보여주면 경비병들이 달려나와 경례를 했다는 증언도 있었고, 호송차에 누가 타고 있는지 알려고 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968125일 밤 전방 지뢰지대를 개척한 약속된 안전 루트를 이용 휴민트 임태영 소위, 우명훈 소위를 공포탄을 쏘며 추격전을 벌여 적군 GP로 살려 보낸다.

그들은 북으로 돌아가서 김일성에게 인민 영웅칭호를 받고 출셋길에 오르게 됩니다.

 

 

 1968 1 19일 야간 파주군 탄현면 초리골 거주 나무꾼 우씨 형제 신고 접수에 체포 작전으로 파견나가 1 25일까지 1주일간 잠 한숨 못 잤다고 회고하셨는데, 이세호 씨가 2대 월남 사령관 보직과 대장 진급 욕심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육군대령이 해야 할 공작을 육군소위가 하다 보니 전향이 어려워 시간을 끌다 보니 근무 태만 견책의 징계를 주고 닦달을 많이 한 것으로 보입니다.

1110 공병여단 뒤에서 강희덕 중위의 전사 소식에 화도 나고 시간이 촉박해 작두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 당시 받은 징계는 1982년 대통령령으로 사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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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께서 육군 준장시절 6군단 부군단장으로 근무 인연이 있었습니다.

교관은 계급 차이가 많이나서 박정희 대통령과 악수도 못해보시고, 대신 엄지손가락을 세워 

호칭을 "소위 6군단 최고야!" 

격려해주시고 가셨다는 교관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선친의 짧았던 군 생활에 자부심으로 기억된 작전이었고육군 소위가 3개월간 치밀하게 준비한 작전에 김일성이 속았으니 웃음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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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영 상장 ★★★ 인민무력부 경보병 지도 총국장 (게릴라 사령관) 6만명 지도, (인민무력부 우리 국방부에 해당)

우명훈 중장 ★★ 총참모부 경보병 제2전투 훈련국장 (게릴라 훈련국장) 3만명 지도

이상일 소장 ★ 64저격여단장 (우명훈의 처남)

 

선친이 울진삼척 지구 무장 공비 120명 침투 분탕질에 대한 응징 보복으로 수도육군 병원에 후송되면서 마지막이 되었는데 월남 사령관으로 떠난 이세호 중장을 원망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육사 출신이었다면 적군 지역에서 피포 되면 자결할 수밖에 없는 사지로 보냈겠나!

 

편의공작대 교관이 생활고와 건강 회복이 안되어 정보기관 근무를 포기하고, 퇴역 17년 만인 1987년 상이군인이 되었습니다.

20년이 지나 1988년 알고 지냈던 갑종간부 193기 공병 강희덕 중위 묘역과 악수도 못하고 헤어진 박정희 대통령 묘소를 찾았습니다.

임태영 장군, 우명훈 장군이 김일성 부자를 제거해 버리고, 우리 민족의 염원 남북통일은 박정희 대통령과 한마음 이었습니다.

 

특수임무 전담 지원제인 첩보부대가 있는데 굳이 6군단 126공병대대 중대장이 나서야 했는지 월남사령관 자리를 낙점 받기 위한 과도한 충성 경쟁으로 보인다.

선친이 특수임무 후유증으로 투병 생활을 하면서 국가안전기획부 공작원들과의 접선 공작은 엄두도 못 냈습니다.

김정일이 남북 정상회담 조건으로 남한에 협조하고 있는 북측 내통자들 자료를 요구해 정보기관에서 명단을 넘겨주었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임태영우명훈에게 탈출 신호를 보냈어야 했는데 정상회담 희생양이 되어 아쉬움만 남는다.

선친이 군에서 채명신 사령관을 만났어야 했는데 별세 하시기전에 이세호씨를 원망하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선친이 임태영 장군과 우명훈 장군의 비밀을 그들의 처형을  원하지 않기에 발설하지 못한 심정이 이해가 되었고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 20.4평 배정받아 영면에 들어가셨습니다.

1968년과 1969년 공적이 두 건이나 되는데 국방부의 선친에 대한 평가는 1969년 복무중 공상 군인으로 기록돼 아쉽고 정보기관에서 관련 자료들을 공개 거부해 명예회복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놨습니다. 

 

제1충혼당 2층에 이장 되신 박종규 경호실장, 3층에 윤필용 육군소장이 영면하고 계셨습니다.

댓글목록

보초병님의 댓글

보초병 작성일

한 때는 월간 박정희도 만들어 보고, 박정희 바로 알리기 국민모임 김동주 대표와 청년국장으로 활동했었는데 요즘은 바빠서 손을 놓고 있습니다.
지만원 박사님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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