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졸라와 지만원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System Club 시스템클럽

자유게시판 목록

에밀 졸라와 지만원

페이지 정보

작성자 애린 작성일15-02-24 15:10 조회2,568회 댓글2건

본문

드레퓌스 사건(1894~1906)
    드레퓌스 사건(프랑스어: L'affaire Dreyfus)은 19세기 후반의 수년 동안 프랑스를 양분했던 정치적 추문 사건이다.

사건의 전말
프랑스 육군의 포병대위였던 유대인 알프레드 드레퓌스는 1894년 소령인 페르디낭 에스테라지(프랑스어: Ferdinand Walsin Esterhazy)라는 간첩이 쓴 문건으로 인하여 반역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강제로 불명예 전역된 뒤, 프랑스령 기아나의 악마섬으로 유배당한다.

드레퓌스는 잘못된 증거 자료에 기초를 둔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사실 드레퓌스는 무죄였다.(정보 유출에 사용된 문건에서 발견된 암호명 'D'. 이에 따라 유태계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를 그 이름의 첫글자가 암호와 일치한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지목했다.)
유대인에 대한 편견이 드레퓌스를 간첩으로 몰고간 것이다. 당시 고급 장교들은 그들의 실수를 덮으려고 사실을 은폐했으며, 반유대적인 가톨릭교회와 보수주의 언론들도 드레퓌스 사건을 침소봉대하여 유대인들을 비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 뒤, 조르쥬 피카르 중령이 우연한 기회에 진짜 간첩 에스테라지를 적발하게 되었다. 그는 참모본부 정보국에서 일하면서 또다른 간첩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레퓌스는 무죄이며, 진범은 에스테라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따라 그는 참모본부 상부에 이 사실을 알리며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진범은 무죄로 풀려나고 피카르는 군사기밀 누설죄로 체포된다. 그의 무죄 주장도 묵살되었음은 물론이다.

그 때 증거자료를 몰래 복사해서 실어 낸 어느 한 신문에 의해 드레퓌스 사건이 세상에 공개된다. 하지만 가장 곤란한 상대는 진범인 에스테라지 본인이었다. 그는 이런저런 거짓말을 늘어놓고 다녔고, 놀랍게도 참모본부는 그의 거짓말을 눈감아주었다.

에밀 졸라의 용기
 <<가난하고, 버림 받은 자들의 생을 이해하고, 대변했던 작가 에밀 졸라>>
1898.1.13 간첩 누명을 쓴 유대인 군인이 무죄라고 신문에서 폭로하다
“대통령 각하, 저는 진실을 말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정식으로 재판을 담당한 사법부가 만천하에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제가 진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제 의무는 말을 하는 겁니다. 저는 역사의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공범자가 된다면, 앞으로 제가 보낼 밤들은 유령이 가득한 밤이 될 겁니다.
가장 잔혹한고문으로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속죄하고 있는 저 무고한 사람의 유령이 가득한 밤 말이지요. 대통령 각하, 정직하게 살아온 한 시민으로서 솟구치는 분노와 더불어 온몸으로 제가 이 진실을 외치는 것은 바로 당신을 향해서입니다. 저는 명예로운 당신이 진실을 알고도 외면하지는 않았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에밀 졸라가 1898년 1월 13일 <로로르(여명)>지에 발표한 격문 ‘나는 고발한다!’의 일부다. 졸라는 이 격문을 통해 독일 간첩누명을 쓰고 투옥됐던 유대인 드레퓌스 대위가 무죄임을 격정적으로 밝히고 있다.
유대인 군인 드레퓌스는 죄가 없다고 "나는 고발한다."
졸라는 이틀 전인 1월 11일, 분노에 찬 심정으로
격문 ‘나는 고발한다!’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1898년1월13일자 <로로르>지 1면에 공개 선언문을 발표하다 
 드레퓌스 사건 에서 진짜 간첩임이 뒤늦게 드러난 에스테라지 소령이 무죄 석방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드레퓌스가 억울하다고 주장하며, 물증까지 내놓았던 피카르 중령까지 이날 투옥됐다.
프랑스 군부는 드레퓌스가 무죄임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들의 실수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판단해, 이렇게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격분한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를 순식간에 썼다.
처음에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란 제목으로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로로르>지의 편집장 클레망소가 ‘나는 고발한다!’로 바꿀 것을 권했다. 1면에 ‘나는 고발한다!’를 실은 <로로르>는 몇 시간 만에 30만부가 팔려나갔다. 이후 아나톨 프랑스, 에밀 뒤르켐, 마르셀 프루스트, 클로드 모네 등 예술가 과학자 교수들이 드레퓌스 사건 재심 청원서에 서명했다. 드레퓌스 재심 운동은 다시 활화산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란 격문을 발표하기 전에도, 후에도 많은 고난을 겪어야 했다. 그는 드레퓌스 사건 관련 글들을 처음에는 당대 최고 신문이었던 <르 피가로>를 통해 발표했다. 그러나 이 신문의 보수적인 독자들은 구독 해지 운동을 펼치며 신문사에 압력을 가했다. 결국 신문사 편집진은 에밀 졸라의 글을 실을 수 없다고 했다. 졸라는 더 이상 신문에 글을 싣지 않고 팸플릿으로 제작하여 판매를 시작했다. ‘청년들에게 보내는 편지’ ‘프랑스에 보내는 편지’ 등이 그가 직접 제작해서 판매한 팸플릿용 글이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 내 글을 싣겠노라고 용기 있게 나서는 신문 매체가 전무한데다가 나 역시 절대적 자유를 원했기 때문에, 나는 일련의 팸플릿을 제작해서 캠페인을 어어 나갈 계획을 세웠다.”

에밀 졸라를 압박한 프랑스 정보, 징역형에 훈장 박탈까지
졸라는 당대 최고 인기 작가이자 대문호로 칭송 받았지만 ‘나는 고발한다!’를 발표한 뒤 엄청난 고난 속으로 밀려 들어갔다. 이 글은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상당히 퍼져있던 프랑스 사회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런 대중들의 심리를 반영한 듯 프랑스 의회는 서둘러 졸라를 기소하기로 결정했다. 1898년 7월 베르사유 중죄재판소는 졸라에게 징역 1년에 벌금 3천 프랑을 선고했다. 그리고 선고 당일 졸라는 영국 런던으로 망명을 떠났다. 선고 며칠 후 프랑스 정부는 그의 레지옹 도뇌르 수훈자 자격도 박탈했다. 이후 1899년 6월 졸라는 영국에서 돌아왔으나, 불과 3년 뒤인 1902년 9월 30일 가스 중독 사고로 사망했다. 드레퓌스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 ‘진실’을 쓰기 시작했지만 끝내지 못한 채였다.
드레퓌스는 졸라가 사망한지 4년이 더 지난 1906년 7월 13일 복권됐다.

이 밖에도 여러 지식인과 신문사 르 피가로 등이 에스테라지 범인설을 주장했지만 대부분 언론들은 반유대주의 감정 때문에 '드레퓌스는 죽어라'는 등의 폭언을 일삼았다.

드레퓌스가 악마섬에서 유배되어 있는 동안 프랑스에는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드레퓌스파와 그렇지 않은 반유대주의를 주장하는 반(反)드레퓌스파로 완전히 양분되었다.
유대인들은 간첩으로 몰리기까지 하자 테오도르 헤르츨을 중심으로 하느님이 약속했다는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을 건국하겠다는 시오니즘운동을 시작한다.

에밀 졸라를 비롯하여 아나톨 프랑스, 앙리 푸앵카레, 장 조레스 등등의 수많은 진보적인 지식인들의 프랑스 군부와 정부에 대한 비판, 세계 언론과 외교적인 부담이 가중되었고, 1898년 8월, 앙리 중령이 면도칼로 목을 찔러 자살하자 드레퓌스는 재심을 받지만, 군사법원에서는 10년형으로 형량만 감했을 뿐 유죄판결을 뒤집지는 않았다.

단, 선고 후 대통령이 사면해서 감옥에서는 풀려나왔지만 복권은 되지 않았다. 그 후로도 지식인들의 끈질긴 요구에 의해 1904년에 재심이 청구되었고 1906년에 드레퓌스의 무죄가 선고되어 모든 혐의를 벗고, 복권도 되어 육군에 복직했다. 그 이후 소령으로 승진함은 물론, 레지옹 도뇌르 훈장까지 받게 된다. 제1차 세계 대전에도 참전하고 진급도 하고 일반 군인들처럼 생활하다가 1935년에 지병으로 별세했다.


예수회의 조작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날 당시 프랑스 육군 사관학교 생도들은 가톨릭 예수회 교단이 운영하는 예비학교 과정을 거쳐야 했다. 드레퓌스 사건이 발생하자 참모본부에 속한 이들의 대부분은 예수회 교단과 결탁해 공화국을 흔들고 있었다. 이와 같은 배경으로 비요장군(당시 국방장관)은 참모본부를 예수회파(Jesuitiere)라는 이름으로 지칭했다. 또한 드레퓌스 지지파들도 경멸적인 의미로 그들을 그렇게 불렀다.  이에 에밀 졸라는 유명한 <나는 고발한다>를 쓰기 전 1898년 1월 7일 <<프랑스에 보내는 편지>>라는 팜플렛을 통해 "프랑스여 그대는 교회가 지배하던 과거로 되돌아 가려고 하는가"라며 통탄했다.

또 드레퓌스 사건을 최초로 보도한 신문은 예수회가 자금을 지원한 <라 리브르 빠롤>지였고 바일리 신부가 창간한<라 크로와>등 여타 가톨릭 계열 신문들이 앞장서서 드레퓌스의 유죄를 주장했고 반유태인 정서를 날마다 되풀이했다. 이 <라 리브르 빠롤>지의 발행인 에두아르 드뤼몽에게 자금을 대준 사람이 예수회의 뒤락(Du Lac) 신부였다. 그는 또 당시 국회 내의 충실한 가톨릭 교회 옹호자 드문(de Mun)백작과 참모본부의 총참모장 드 브와데프르의 고해신부이기도 했다.

가톨릭 연구가 에드몽 파리는 "대부분의 성직자와 주교는 드레퓌스의 범죄를 확신하고 있다"고 부르게레트는 기록하였으며, 게오르그 소렐 또한 이렇게 공언하였다. "드레퓌스 사건으로 사회 전체가 분열된 반면 가톨릭계는 철저하게 일치하여 재조사에 반대하였다.
교회의 모든 정치력이 드레퓌스 사건에 집중되었다."며 예수회가 만든 신문과 가톨릭 교회와 예수회가 주축이 된 군부가 한통속이 되어 드레퓌스 사건을 조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예수회의 기관지 <씨빌타 카톨리카>에 '유태인 드레퓌스라는 제하의 기사로 다음과 같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명확히 표명하였다. "유태인들은 프랑스 공화국을 장악하고 프랑스적이기보다는 히브리적인 나라로 이끌어왔다. 유태인들은 어느 곳에서나 반역을 도모하는 스파이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 유태인은 프랑스 뿐만 아니라 독일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이태리에서도 추방되어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과거의 위대한 평화를 재건하게 되고, 제국은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게 될 것이다."

에드몽 파리는 조셉 레이나크(Joseph Reinach)의 말을 인용해 이 사건을 이렇게 결론내린다 "보다시피 이 흉악한 사건은 이 예수회 회원들의 음모이다. 사실 드레퓌스 사건은 하나의 구실에 지나지 않으며 진정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도 인정하듯이 사회적인 우상들과 1789년 대혁명 정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댓글목록

湖島님의 댓글

湖島 작성일

그렇다.
우리에겐 프랑스와 같은 지성이 없다.
당대, 불령 기아나- 악마의 섬에 보내야 할 인물 있다!

돌박님의 댓글

돌박 작성일

정의의  김홍신 작가가  대한의 에밀 졸라가 된다면.......
이문열 작가 ?
전원책 시인/평론가  ?
제발 누구라도 나서 주시길........

자유게시판 목록

Total 33,908건 1066 페이지
자유게시판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1958 세월호 유가족 팔자 고쳤네! 댓글(2) 만세반석 2015-04-01 7733 56
1957 광주 5.18단체의 영원한 딜레마 경기병 2015-04-01 1771 43
1956 5.18광주폭동 팩트논쟁 댓글(11) 신생 2015-04-01 2140 45
1955 앞으로 한반도에 있을 5대 사건 - 제2의 건국이 코앞… 하나님의칼 2015-04-01 1891 42
1954 중2 수준인 많은 사람들의 5.18에 대한 이해 댓글(2) 경기병 2015-04-01 1998 25
1953 5.18 증거...북괴의 국보 1 호 리모콘... 路上 2015-04-01 2064 64
1952 북한의 대남 모략영화 주제곡 '님을 위한 행진곡' 다시… 지만원 2015-04-01 3193 41
1951 광주일보사가 쓴 다이너마이트 이야기 지만원 2015-04-01 2107 59
1950 시스템클럽에서 반론해야할 광주 5.18 팩트 논쟁(5) 댓글(17) 현산 2015-04-01 2413 12
1949 시스템클럽에서 반론해야할 광주 5.18 팩트 논쟁(4) 댓글(7) 현산 2015-04-01 2413 11
1948 시스템클럽에서 반론해야할 광주 5.18 팩트 논쟁(3) 댓글(5) 현산 2015-04-01 2281 11
1947 시스템클럽에서 반론해야할 광주 5.18 팩트 논쟁(2) 댓글(5) 현산 2015-04-01 2557 11
1946 5.18은 거리로 나가야 한다 댓글(1) 이재진 2015-04-01 1932 58
1945 <<<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 유돌 2015-04-01 2065 18
1944 5.18 진실 알리기 <대구경북 지역모임>을 시작합니다… 댓글(2) 유람가세 2015-04-01 1881 53
1943 5.18의 진실을... 댓글(5) Long 2015-04-01 2083 39
1942 [5.18 진실] 전단지 배포를 목적으로 하는 지역 모… 댓글(5) 유람가세 2015-04-01 1988 41
1941 이완구의 비리 척결은 막간 쇼 경기병 2015-04-01 1916 38
1940 박근혜는 정치를 포기하려 하시는가? 부패와의 전쟁은 실… 하나님의칼 2015-03-31 2716 18
1939 < 나이지리아의 개표 시스템 : 투표소 개표 > 이재진 2015-03-31 2087 15
1938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종북좌익의 뿌리 5.18세력 (5) 이상진 2015-03-31 2090 22
1937 박사님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오뚜기 2015-03-31 1852 50
1936 민들레 씨앗처럼 Egreen 2015-03-31 1853 38
1935 5.18역사의 진실, 대국민보고회(제2차) 부산 행사 댓글(1) 웅비4해 2015-03-31 1901 37
1934 재인재인 문재인아! 사라지면 안되겠니? 댓글(2) 최성령 2015-03-31 2168 27
1933 노무현의 발톱 끝에도 못따라가는 머저리 대통령 ! 댓글(2) 노숙자담요 2015-03-31 2393 71
1932 박근혜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의 나라인지를 입증해야 댓글(3) 현산 2015-03-31 1921 55
1931 광주, 전라도는 북한과의 전쟁에 이적행위를 해서는 안 … 경기병 2015-03-31 2035 57
1930 '멘델의 유전 법칙' 인정되는데 16년 경과! 댓글(1) inf247661 2015-03-31 3570 22
1929 5.18의 진실을 가로막는것 댓글(2) 일조풍월 2015-03-31 1994 50
게시물 검색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 대표자 : 지만원 | Tel : 02-595-2563 | Fax : 02-595-2594
E-mail : j-m-y8282@hanmail.net / jmw327@gmail.com
Copyright ©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All rights reserved.  [ 관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