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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에 왔던 북한 특수군, 6년만에 입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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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갈공명 작성일15-12-19 22:48 조회1,9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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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에 왔던 북한특수군, 6년만에 입 열다 (전문) - 2
왜그러지? | 2012-09-01 05:37:14 조회 1889 | 추천 5 | 다운로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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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남한으로 침투하던 때의 상황을 자세히 이야기 해주세요.
  
   
대답: 5월 19일 오후 4시경에 대양리에서 갱생 트럭 6대에 직속 부대 50명 인원이 나누어 타고 떠났어. 우리가 도착한 곳이 내가 그때 듣기로는 황해남도 장연군 장산곶 바닷가 인데 어슬 어슬 한때니까 아마도 저녁9시 경이 된 것 같더라. 바다 쪽으로 보니까 부두에 배가 2척이 있더라.
     
대장이 조별로 배에 오르라면서 오르는 순서대로 갑판 밑에 다 내려가라고 지시해서 모두 갑판 밑에 내려갔다. 복도가 가운데 있고 양 옆으로 침실처럼 되어 있더라.
     
조장들이 먼저 침실 점검을 하고 쉬라고 하면서 하는 말이 이제부터는 군복을 벗고 각자에게 있는 사민 복을 입으시오! 라는 것 이었다. 조장은 조 성원들에게 자리를 잡아주고는 갑판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다 배에서 내리라는 명령이 떨어져 바다에 뛰어 들어 보니 물이 가슴높이 까지 차오르는 것이었다. 30m 정도 되게 기슭으로 바다 물을 가르며 나와 사방을 둘러보니 무인 지경 같아 보였어. 그날이 21일 새벽 2시경으로 기억이 난다. 우리가 배를 타서 2일간 바다에 있던 것이다.
     



질문: 남한에 내려오면서 탔던 배가 어떤 배였는지 좀 말해주세요?
    
 
대답: 우리가 탔던 배는 일반 남한의 고기 배와 꼭 같아. 길이가 20m쯤 되었을 거야. 여느 때는 일반 배처럼 고기잡이를 하는데 추진기가 4개 달린 배야. 상황이 발생하면 추진기 4개가 다 가동하는데 비행기처럼 속도가 빠르고 자체 폭파하게 되어 있어. 하루 종일 갑판 밑에서 있으려니까 낮이 가는지 밤이 가는지 모르겠더라.
     



질문: 그 때 바닷가에 내렸을 때 인상적이라든가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어요?
     

대답: 캄캄하니까 잘 모르겠던데 바다 주변에 울퉁, 불퉁한 바위가 많던 것이 지금도 기억이나. 바다 주변에서 올라와 2명~3명씩 2시간 정도 은폐해 있었는데 대장이 조장들을 부르더란 말이야. 그 때 나는 대장 호위를 맡았으니까 대장 옆에 얼마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니까 알 수 있었는데 사람 몇 명이 대장한테 와서 자기들이 남한에서 이룩한 성과 부분을 보고 하는 것 같더라. 그 들의 말을 들으니 무기고를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하였다는 것과 함께 트럭, 장갑차들을 노획하였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후에 생각해 보니까 그 사람들이 남한 쪽에서 마중 나온 길 안내자들인 것 같아.
     
한참 대장이랑 조장들이랑 무슨 토의를 하는지 있다가 조장이 우리한테 와서 ‘모여, 이제부터 조원들은 전투행동으로 넘어간다, 여기는 남조선이니 우리가 목표물에 도착할 때까지 최대한 조심히 행군한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전투행동이라고 할 때는 북한에서 강습 받기는 행군도중 노상에서 만나는 그 누구라도 없애 버리게 되어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무조건 처리해버리라(죽여서 땅에 묻어버리라)는 것이 지휘부의 명령이다. 행적이 밀고 될까봐 그러는 거야. 그때야 내가 남조선이라는데 왔다는 것을 알았어. 조장이 남조선에 왔다니까 갑자기 긴장해지더라....”
     



질문: 광주에는 언제 들어갔어요?
    
 
대답: 우리가 모여 있던 장소를 출발한 시간이 밤 2시경 됬어. 출발! 명령이 떨어져서 행군했는데 가면서 보니까 대 도로를 지나가고 과일밭, 야산들을 지나가던 생각이 나. 우리 조는 대장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으니까 대장하고 직속 부대가 함께 출발하였는데 각 조별로 움직였다.
     
목적지에 도착하였다고 하여 보니 도시 주변에 있는 야산이었는데 가까이 보이는 건물은 그리 높지 않은 2층, 3층 건물들과 땅, 집들이 보이더라. 멀리 보이는 데는 고층건물들이 어렴풋이 보이던 것이 생각난다. 그 때 조장이 ‘여기가 남조선 광주라는 곳인데 지금 광주에서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우리의 임무는 전투를 지원하기 위하여 왔다.’ 는 내용으로 말하더라.
     
식사는 이미 배에서 있던 물에다 건 쌀을 물에 불 구어 밥을 만든 것을 가지고 떠나 도착하여 아침을 먹었다. 식사를 끝내고 나니까 조장이 2~3명씩 조별로 은폐하라는 거야. 우린 은폐해 있으면서 배에서 내릴 때 물에 젖었던 복장 정리를 다시 했다. 조장은 우리에게 임무를 주고 대장에게 갔는지 보이지 않더라. 그 때 내 생각인데 우리 조가 은폐하고 있는 기간 조장들하고 대장이 정황을 요해하고 작전토의를 하느라고해서인지 다음날인 23일 오전 10시경까지 나타나지 않더라. 조장이 오전 10시경에 ‘조 전체 모이라’ 라고 하더니 ‘이제부터 전투에 진입한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은폐했던 곳을 떠나 도시 가운데로 들어갔어. 오후 4시까지 2~3명씩 조를 무어 시내를 한번 돌았는데 지금 기어나는 것은 큰 건물 주변에 모래주머니로 쌓아놓은 바리케이트가 있었어. 바리케이트 위에는 총들이 보였고 기관총이 있더라.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바리케이트 주변에 일반 시민들도 있고 특히는 얼룩얼룩한 개구리 복장을 한 사람들이 많이 있던 것이 기억에 잊혀 지지 않는다.
     
그 때 나는 ‘이 건물이 봉기군 지휘부가 있는 건물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이 들더라. 우리 대장이 그 건물에 거의 도착하니까 안에서 3명의 머리를 장발 기른 시민 복장차림의 사람들이 뛰어 나와 대장을 맞이하여 안으로 함께 들어가더라. 마중 나온 사람들은 이미 대장을 알고 있더라.
 


   
질문: 대장이랑 그 안에 들어가 누구랑 만나고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대답: 우리는 대장의 호위를 맞은 사람들인데 조장이 가면 가고 서라면 서는 역할밖에 못해. 조장 조가 대장하고 건물 안으로 같이 들어갔었어. 우린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면서 있었다.대장이 밖에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대장이랑 밖으로 나와 조장이 ‘철수하라’고 해서 광주시가 내려다보이는 야산에 올라왔는데 전날 있었던 산이 아니고 다른 지점이더라.
     
저녁 4시경에 조장이 오라고해서 한 장소에 가니 ‘오늘 수고하는데 빵이나 먹으라’ 며 음식 꾸러미를 우리에게 주길래 난생처음 빵이랑 한국음식을 먹어 봤다.
     
우리야 한 달 치면 거의 전투식량으로 살던 사람들인데 어쩌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게 잊혀 지지 않는다.
     
철수해서 산에 있을 때 대장한테 여러 명의 사람들이 찾아 왔었는데 내 보기에는 이미 전에 파견된 북한군인들 같은 느낌 이었어. 무슨 작전토의 같은 것을 오래 했는데 말투도 그렇고...우리 조는 은폐한 상태에서 밤을 보내고 25일 다음날 오전 10시 경에 시내 쪽에 있는 도로에 나갔던 생각이 난다. 그 때 보니까 광주 쪽으로 들어오는 도로에 바리케이트를 쌓아놓았는데 그 위에 총들을 기대놓았더구나. 대장이 바리켓트 쪽으로 다가가서 그쪽에 있는 사람들하고 악수하면서 무슨 말을 주고받던 일이 눈에 선하다.
     
바리켓트 300m 정도 넘어로 보니까 남조선 국군병사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는데 길옆에 군용트럭이 한 줄로 길게 서있는 것이 보이더라, 우리 대장이 다른 곳으로 다니면서 사람들을 여러 번 만났는데 가는 곳 마다 바리켓트를 쌓아놓고 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국군병사들하고 대치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훗날 생각해 보니까 대장이 다니면서 작전 지휘를 하는 것 같아.
     
그 날 (25일) 저녁 5시경에 조장이 우리를 모이라고 하더니 전투정황을 설명해 주더라. 조장이 하는 말이 ‘우리 쪽(북한군)이 손실이 많다. 이제부터 어려운 싸움이 되겠는데 목숨 바칠 각오를 가져라’고 말 하더라.’ 그러면서 ‘지금 형편을 보니 우리가 살아 돌아 갈 수도 있고 잘못하면 여기서 싸우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광주 봉기자들의 대열에서 동요가 일어나고 싸움을 포기하고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점점 상황이 불리하게 되어 가고 있는데 함께 움직이지 못하고 흩어 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자기 맡은 임무대로 하여야 한다. 우리는 북한에 두고 온 부모, 형제들을 생각해서라도 잡히거나 변절자가 되지 말자.’ 는 식으로 오래 말하더라.
     
그러면서 말하기를 ‘우리 조는 대장의 호위를 맡았으니까 싸움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조들은 싸움에서 많이 희생 되었다.’ ‘우리가 다 죽더라도 대장만은 지켜야 한다. 대장이 잘못되면 우리도 다 잘못된다.’ 며 마지막 유언 같은 말을 남기는 작별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조장이 하는 말이 우리의 행동은 2단계 넘어간다고 하였다.
     



질문: 1단계는 무엇이고 2단계는 무슨 말이에요?
 
   
대답: 1단계는 한마디로 시위군중하고 협력하여 광주 봉기를 남한전체에 확대하는 것이고 2단계는 무장투쟁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2단계라는 말을 해석하면 남조선에 제 2전선을 형성하여 북한에서 밀고 내려오는 기본부대와 협동작전을 하여 남조선을 통일하는 것이라고 조장이 말하더라. 그 날도 조장이 어디서 가져왔는지 이 밥에 고기반찬이랑 먹던 생각이 난다. 유별나게 맛있던 반찬은 고등어 같은 반찬이야. 정말 맛있게 먹었어.
     
그 때 대장의 옆에서 각지에 파견되었던 조장들이 보고 하는 말을 들으니 무기고를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하였다는 것과 함께 트럭, 장갑차들을 노획하였다는 성과 보고를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때 광주 쪽의 상공에서는 헬리콥터가 여러 번 순회 하면서 봉기군들을 향해 투항하라는 식의 방송을 하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26일과 27일 새벽2시 까지는 있던 장소에서 머물면서 조장의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조장이 숨이 차게 뛰어 와서 하는 말이 ‘긴급기동을 하여야 한다.’ 며 출발명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 때 조장이 하는 말이 ‘이제부터 경산 산줄기를 따라 들어가야 한다.’ 며 하던 말이 생각난다. 행군도중에 부조장이 ‘이제부터 우리는 유격전을 벌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조가 목적지에 도착하여 보니 아침6시경이었는데 무기를 휴대한 사람들이 우리가 있는 곳을 지나 산속으로 들어가고 뒤에서는 총소리가 자지러지게 나는 것이었다. 대장이 산으로 들어오는 봉기군을 마지막까지 맞이하여야 한다면서 있다나니까 국군이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총격전이 벌어지게 되었어.
     
그 때 우리 쪽에서 국군을 먼저 발견하였는데 우리가 위치한 200미터 정도 되는 곳에서 봉기군을 포위하려 들어오던 특전사 부대원들이 수십명 정도 되게 불의에 나타나자 조장이 사격명령을 내렸다. ‘사격하라’ 소리와 함께 요란한 총성이 산골짜기를 메웠어.나도 그때 3명의 국군을 쐈는데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 때 쓰러진 국군 병사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속해있던 부조장이 책임진 6명(엄호조)은 국군과 그냥 총격전을 벌이며 견제하였고 조장이 데리고 있는 6명이 대장을 호위하여 산속으로 들어갔다. 5분후에 우리도 골짜기로 철수하였다. 우리가 철수하면서 보니 산 아래 쪽에서는 총소리가 자지러지게 나는 것을 보니 시후에 조장이 말하는 것을 보니 ‘우리 조와 맞다들었던 국군이 11공수 특전사부대’ 라고 하는 것이었다. ‘특전사가 공중으로 광주시내 중심에 투입되어 봉기자들을 진압하는 바람에 실패하였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광주 봉기가 실패하게 된 원인은 시위대가 자체 해산되면서부터 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대장이 있는 데까지 산으로 올라가는데 시위 봉기자들이 총을 버리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다른 조들과 만나게 되어 물어보니 ‘자기네들은 싸움을 포기하고 내려가겠다.’며 간다는 것이었다. 한 쪽에서는 북한과 무전연락을 하며 다음 지시를 기다리면서 산으로 들어갔어. 우리는 대장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산 아래에서는 총소리가 그냥 나고 있더라. 대장이 돌아와 행군명령을 내렸는데 시간을 물어보니 저녁9시 경이었다. 그 날이 1980년 5월 27일이야.
     
다른 조들과 헤어지고 우리는 대장과 함께 13명의 인원으로 산봉우리 아래쪽으로 가로질러 가면서 타고 나갔었다. 주민가옥에는 절대 들어갈 수 없었으므로 먹고 자는 것은 행군 도중에 잠깐 1~2시간씩 풀숲에 은폐하여 쪽잠을 자곤 하였다. 5월 30일 날 새벽에 우리조가 ‘문경고개’ 근처에서 행군할 때이다. 다른 방향으로 나갔던 부조장이 책임진 조가 돌아왔어.
     
아침밥을 먹을 때 조장이 지도를 보는 곳으로 부조장이 다가와 ‘01번 동지, 우리가 민가에 너무 가까이에서 행군하지 않습니까?’ ‘아니야, 정확히 우린 8부 능선을 따라 가고 있어.’ ‘그런데 산에 웬 여자 아이가 있습니까?’ ... ...그래 처리해 버렸습니다. ‘그래? 잘 했어, 행군하면서 최대한 주의하라. 남한 거마리들에게 발각되면 끝장이야.’ (8부 능선이란? : 산 높이를 10등분 하였을 때 8등분에 해당하는 높이를 말한다. 남한 거마리 들이란? : 한국 국군 수색대를 보고 하는 말이다.)
     
휴전선에 도착한 때가 저녁 11시경이라고 생각된다. 그 때야 나는 우리가 휴전선에 와있다는 것과 북한으로 철수해서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체 조장의 지시대로만 움직이고 말을 절대 물어보거나 말을 할 수가 없었으므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도착하여 2시간 정도 기다리니 무력부 정찰국 소속 대원들과 3조 성원들 몇 명이 우리 조와 합류하였다. 휴전선 지뢰밭과 철조망은 정찰국 성원들이 앞서나가면서 해제하여 길을 개척하였다. 휴전선을 넘어서 보니 6월 5일 아침 9시 경이었는데 지역을 알아보니 북한 강원도 판교군 지하리라는 것이었다.
     
한참 걸어서 가고 있는데 난데없이 떨어져 터지면서 우리 부조장(한광호)과 조원(017번)이 포탄에 맞아 즉사하였다. 사방에서 마구 포탄이 터지 길래 우리는 남한 국군의 포위에 든 것으로 알았었다. 대장이 명령하기를 모여 있으면 포탄에 맞아 다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시체도 못 건지니 분산해서 은폐하라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대장이 말하는 것을 보니 분명히 북한에 들어왔는데 뭐가 잘못된 것 같다며 쌍안경을 들고 사방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대장이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치자 저 멀리서 대여섯 명의 군인들이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오는 군관들을 보니 인민군 상좌, 대좌 등 고급 군관들이었다. 대장과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우리조가 북한 지하리에 있는 무력부포사격장에 들어와 있었고 그날 운이 없게도 북한군에서 새로 개발한 152mm 박격포 성능사격을 하는 날이라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다친 사람이 없는가 찾아보니 부조장과 조원이 폭탄 파편에 맞아 죽어 있었다.
     
우리가 남한 국군 복을 입은 것을 보더니 북한 포사격장 책임자되는 사람이 우리 대장과 무슨 토의를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부조장과 조원의 시체를 가지고 부대까지 가려고 했는데 위에서 지시가 떨어졌다면서 이곳에 묻으라고 한다면서 시체들을 가지고 어디론가 떠나갔다. 대장은 떠날 때 정찰국 대원들과 함께 갔었다. 그 때부터 우리는 대장과 헤어져 더는 호위 사업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도 정신없이 돌아치다가 대장이 떠나고 대열이 정돈 돼서야 내 다리가 쏘고 아파나 바지를 올리고 보니 무릎에서 피가 흐르는 것이었다. 조장이 와서 보더니 군용단도로 상처 난 곳을 후벼 냈는데 무릎에서 파편 조각이 나오는 것이었다. 조장은 우리가 가지고 다니던 휴대용 비상약품에서 외상 살균약을 상처에 쏟아 부어놓고 붕대를 동여매는 것이었다. 그 날 조원모두 휴식을 하였는데 휴식장소 주변에 묘지가 많던 것이 기억에 선하다.
     
다음날인 6월 6일 우리조원들은 부조장과 조원이 잘못 되어 모두 밥도 먹지 않고 정신 상태가 좋지 않아 인차 부대로 출발을 하지 못하였다. 오전 10시경에 출발하여 산속의 냇물이 흐르는 곳에서 모여 앉아 휴전선 너머 들어와서 첫 식사를 하였다. 그 때 내 다리의 무릎 상처가 부어오르고 송곳으로 찌르는 듯 아파나서 행군을 더 할 수 없게 되자 조장이 조원을 데리고 어디론가 다녀오더니 나에게 북한군 군복을 가지고 와서 입히는 것이었다. 그 날이 6월 9일 북한 사리원시에서 한참 떨어진 주변으로 생각된다.
     
조장이 가지고온 군복을 입어보니 소매가 등을 덮을 정도로 커 보이는 것이었다. 우리 조원들은 나를 보며 치료를 받으려 병원에 가야 한다며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산에서 내려와 보니 이미 전에 갱생 차(병원 차)가 도착하여 있었다. 조장이 차를 가지고 온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것을 보니 평안북도 선천 전상자병원에서 왔다고 소개하는 것이었다.
     
나와 헤어지면서 ‘평양에 올라가 전투임무 수행보고를 하고 꼭 시간을 내서 병원에 찾아가겠으니 가서 치료를 잘 받으라’ 고 하는 것이었다. 그해 10월30일 태천 군관학교 가는 날까지 병원 치료를 받았다.
     
광주봉기의 북한군 침투 총화는 6월 15일 김일성과 김정일의 직접적인 참석 하에 평양에서 하였다고 한다. 남한에 침투되었다 전사한 사람 모두에게는 공화국 영웅 칭호가 수여되었다. 분견대 대장 2명은 조선인민군 교도지도국(특수전 사령부)작전부에 승급 배치하였다고 한다. 김일성은 소좌급인 분견대장들에게는 대좌의 군사칭호를 수여하였다고 한다. 조장들은 7명이 살아 돌아 왔는데 각 군단부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상위급 군사칭호를 상좌로 승격시켜 배속하였다고 한다. 조장들 7명 모두 공화국 영웅 칭호를 수여 받았다고 한다.
     
이들 중에는 이미 전에 남한에서의 전투 공로로 하여 공화국영웅들이였는데 2중 3중 공화국영웅칭호를 받은 사람들이 여러 명이 되었다. 나는 이 모든 사실을 후에 병원에 찾아온 조장에서 듣게 되었다. 10월 9일경 나에게 중앙당 연락소 정치위원과 조장이 병원에 찾아 왔었다. 병원에 찾아온 조장을 보니 상좌의 계급장을 달고 있는 것이었다. 3중 공화국 영웅칭호를 받은 것이다.
     
정치위원이 그 때 나에게 하는 말이 광주봉기 참가로 하여 1010군부대가 인명손실이 크고 해산 명령을 하여 다른 곳에 있는 대남연락소들에 배속 되었다는 것이다. 전투 총화에서 김일성은 ‘평화 시기에 금싸라기처럼 귀중한 혁명동지들을 잃을 수 없다. 국가에서 수많은 투자를 하여 키운 귀중한 동지들이 희생된 것은 국가의 커다란 손실이다. 앞으로는 평화 시기에 남한에 침투하여 전투를 하지 않는 방향에서 하라.’ 며 명령을 하였다고 정치위원이 말하는 것이었다.
     
그 때 정치위원이 하는 말이 ‘내일 병원에서 행사가 있으니 참가하라’는 것이었다.
     
정치위원과 조장이 도착하는 날 나는 병원의 입원호실에서 청소 밀대로 방바닥을 청소 하고 있었다. 조장이 나에게 ‘치료는 어떻게 받고 있어?’라며 물어 보길래, ‘구급치료만 받은 상태입니다.’ 라고 대답하자 ‘뭐? 그게 정말이야?’ 라며 나의 다리에 감겨진 붕대를 풀고 자세히 보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병원 문을 열고 어디론가 나가는 것이었다. 그 날 우리 조장은 내가 아직까지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병원 초급당 비서를 찾아가 권총을 꺼내 그이 가슴팍에 겨누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데 10일이 지나도록 치료를 해주지 않고 밀대 청소를 시키고 있어?’라며 야단을 쳤다는 것이다.
     
선천 무력부전상자 병원에는 군사임무 수행 중 사고로 다쳐 팔, 다리가 끊어진 사람이 차고 넘쳤으니 나의 경력내용을 모르는 병원에서는 그럴 만도 한 일이었다.
     
훈련에서 요구성이 강하고 일단 성이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이나 대원들을 무척 사랑하고 인정이 많은 사람이다.
     
위의 이야기는 훗날 담당 간호원에게서 들어 알게 되었다. 다음날인 20일 아침 9시 경에 간호원이 2명이 담가 대를 들고 들어와서 앉으라는 것이었다. 당가에 앉아 병원회관으로 들어가니 전상자병원 직원들과 환자들 모두 모여 있는 것이었다. 나는 좌석 맨 앞자리에 담가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 주석단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니 병원 원장과 초급당 비서, 우리 조장과 연락소 정치위원 등 여러 명이 나와 앉는 것이었다.
     
회의 시작을 알리는 것과 함께 사회자가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감사문을 전달하는 모임을 시작하겠습니다.’ ‘당중앙위원회 위임에 의하여 조선인민군 1010군부대 정치위원동지가 보고를 하겠습니다.’ 이어 정치위원이 주석단에 나오더니 ‘조선인민군 1010군부대 전투원 김명국 동지는 앞으로 나오시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당가에 들리어 주석단으로 나갔다. 정치위원이 ‘조선인민군 1010군부대 전투원 김명국 동지는 1980년 5월 전투공로로 하여 조선로동당에 입당하였음을 선포합니다.’ 라며 조선로동당 당원증을 수여하였다.
     
당원증을 수여받고 내려가는 줄 알고 당가에 돌아앉는데 그냥 앉아있으라는 것이었다. 정치위원이 이어 ‘김명국 동지는 같은 전투공로로 하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기훈장1급, 자기 목숨을 바쳐 지휘관을 보위한 업적으로 하여 국기훈장1급을 수여합니다.’ 라며 국기훈장2개를 나의 앞 가슴왼쪽에 달아주는 것이었다. 그 때 땅과 하늘이 다 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날 모임이 끝나고 담가에 들리어 병동으로 들어가 보니 원래 내가 입원하고 있던 호실이 아닌 독방에 침대1개만 놓여있고 갖가지 시설이 잘 갖추어진 고급스러운 호실로 옮겨주는 것이었다. 조장과 정치위원이 그날 밤 나와 잠을 함께 잤다. 정치위원이 나에게 ‘1010군부대가 해산한 조건에서 병원 퇴원 후 집으로 가겠는가? 아니면 군사복무를 계속 하겠는가?’ 라고 묻는 것이었다.
     
집으로 가겠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대학으로 가는 것을 의미하는 소리인 것이다.
     
나는 그때 정치위원에게 ‘군관이 되고 싶습니다.’ 라고 하자 정치위원은 나에게 ‘9월 아니면 10월에 다시 오겠으니 병 차도를 보고 군관학교에 보내주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훗날 10월 27일 이라고 생각되는데 정치위원이 나를 데리러 온 것이 아니라 태천군관학교(특수전 사령부 군관학교) 당위원회에서 군사칭호가 중좌인 사람이 나를 데리러 왔었다. 병원에서 태천군관학교에 떠나기 전 성대한 환송모임을 조직하여 주었다. 하여 나의 일생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태천군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훗날 나는 ‘태천군관학교’에서 1년간 공부하다가 다리부상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교육과정을 소화하기가 힘들어 훈련강도가 낮은 강건 종합군관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2년 후 북한군 교도지도국산하에서 지휘관으로 군사복무를 하게 되었다. 그 후 나는 군사훈련과정에 허리와 손이 심하게 다쳐 손가락을 절단하는데 까지 이르러 더는 군사복무를 할 수 없었으므로 군대에서 제대되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질문: 북한 군부에서 5.18광주사건에 참가하였다가 사망한 군인들에 대한 묘비를 세웠다고 하던데 사실인지 말씀해 주세요.
     

대답: 사실이야. 북한 군부는 광주 사건에 침투하였다가 사망한 군인들의 이름이 적힌 묘비를 북한평안남도 평원군 원하리에 세웠다. 일반적으로 묘비라는 것은 <죽은 사람의 이름과 죽은 날자, 죽은 원인> 적혀 있지 않나. 묘에 묻힌 사람이 없으니까 이름이나 날자, 원인 같은 것을 밝히지 않았다.
     
평원군 원하리에 적혀있는 묘비에는 사람의 시신이 없고 5.18광주 사건 때 남한에서 침투하였다가 남한 군인들과 전투에서 싸우다 죽어 북한으로 돌아오지 못하였으니까 이름만 적어 기념비처럼 세운 묘비야. 묘비에는 이름만 적혀 있고 ‘...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 전사들을 조국은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라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다. 일반 사람들은 평원군 원하리에 있는 묘비가 무엇 때문에 죽은 군인들의 묘지인지 모르고 있어.
     



질문: 남한의 검찰과 경찰조사 기록 자료를 보면 경찰이 4명, 군인이 23명, 민간인이 166명이 광주사건당시 죽은 것으로 확인 됬어요. 신원 미 확인자가 12명이라고 조사기록에 나와 있어요. 북한에서 200명 정도에서 내려왔다 살아 돌아간 인원이 17명밖에 안된다고 하였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어디에 갔다고 생각하세요?
     

대답: 나는 지휘관이 아니니까 그 내용은 잘 몰라. 대장을 호위하는 전투성원으로 조장이 지시를 주면 그것만 수행하였기 때문에 그 내용은 알 수가 없는 거야. 김일성이나 김정일은 5.18광주사건에 북한군을 침투시킨 조직자이니까 알겠지. 대남연락소 내부 규정에는 전우가 죽으면 흔적을 없애려고 땅에다 묻어 버려. 마지막 남는 사람은 붙잡히게 되면 자폭하게 되어 있어. 만약 전우가 부상당해 대오의 행군에 지장을 준다고 생각되면 죽여서 땅에 묻어버린다.
     
옷 속에 여러 가지 유형의 작은 물체를 항상 가지고 다니는데 고성능 폭약 3킬로 그람이 터지는 위력과 맞먹는다. 광주사태가 진압되면서 우리 부대는 모두 갈라졌는데 혹시 남한의 산속이나 도시 속에 숨어 있다가 훗날 북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면 남한에 이미 전에 알고 있던 조직선과 연계하여 해외로 탈출했을 수도 있다. 혹시 남한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신분을 세탁하고 사회 각 분야에 잠복하여 지금도 간첩행위를 하고 있을지 몰라. ...
     
------------------------------------
     
이원명의 맺는말
     
북한 김일성의 명령을 받고 남파되어 1980년 5월 광주사태에 참가한 조선로동당 중앙당 연락소 전투원의 증언을 이것으로 끝마친다. 필자는 인터뷰한 글을 마감하며 해방 후 대한민국의 잘못된 과거사를 바로 잡아 올바른 국가관과 정체성을 세워주길 국민들에게 부탁드린다.
 
   
5.18광주 사태 당시 북한군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난 국군 장병들과 시민들, 경찰들에게, 또한 이 나라를 지키고 있는 국군 장병들과 애국적인 국민들에게 이 글을 삼가 드린다.
  
   

2012.7.22. 지만원





미국은 광주시민군 연합국이며, 광주시민군과 힘을 합쳐 전두환을 공격하기 위해 항공모함 두 척을 보내 주었다는 황당한 내용의 유언비어 대자보 사건은 
광주사태에서 아주 굵직한 사건이지만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조차 감추는 사실이므로 대부분의 한국 국민들은 그런 대자보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다. 
그런데 그 대자보 원문이 북한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대자보 성명서 작성자가 누구인지까지 북한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5월 26일 ≪민주투쟁위원회≫는 엄숙한 시각을 앞두고 ≪나라와 민주주의와 우리를 낳아준 고향의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총궐기하자≫는 호소문을 
≪민주회보≫에 실었다. 호소문의 내용은 간단하였다. 하지만 그 심도는 매우 깊었다. 
≪…시민 여러분! 오늘 광주시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있다. 미제7함대소속의 항공모함 2척이 부산항에 정박. 
계속되는 전두환일파의 무모한 만행은 내외로부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게 하고있다. 전두환의 멸망은 멀지않았다고 확신한다. 
시민여러분! 우리 80만 시민이 일치단결하는 것은 승리를 앞당기는 것이다. 
후대들에게도 떳떳한 민주사회를 위해 최후까지 싸우자≫ (조선로동당출판사 1985, 101-102).


북한도서는 위의 대자보 성명서 작성자가 <민주투쟁위원회>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과연 80만 광주시민 중에서 이 성명서 작성자가 <민주투쟁위원회>였으며, 
<민주투쟁위원회>는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 하부조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가 과연 몇 명이나 되는가? 
그러나 북한은 알고 있었다. 북한이 광주사태에 대하여 광주시민들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는 북한정권에 충성하는 조직임을 북한은 잘 알고 있기에 
북한 논리에서 볼 때에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가 북한세력의 조종을 받으며 주도한 광주사태는 북한 역사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북한이 무엇 때문에 지금도 해마다 5?18을 성대하게 기념하는가? 그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5월 22일 오후 3시에 시작된 궐기대회가 바로 서울서 왔다는 대학생 시민군 5 백 명 환영식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광주시민으로서 동아일보 광주주재기자였던 김영택이 현장 목격하고 취재하여 "5.18 광주민중항쟁" 등 그의 여러 5.18 도서들에 수록한 사실입니다.
이것은 확인이 된 사실입니다.


5.18측에서 확인을 못한 것은 서울에서 대학생 시민군 6 백 명이 왔다는 전옥주의 가두 방송에 대한 것입니다. 
전옥주는 담양 쪽에서 3 백 명, 목포 쪽에서 3 백 명이 온다고 가두 방송하였는데, 훗날 그 가두방송에 대한 질문을 받자 
누가 쪽지를 주는 대로 방송했을 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목포 쪽에서 김대중 계열의 별동대가 온 것은 사실이고, 탈북자들도 북한군 1개조가 목포에서 광주로 침투하였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1980년 3월 28일자 동아일보는 일본 統一日報(통일일보)를 인용하여 "북한은 한국의 정치적 불안정을 틈타 금년봄에 대량의 무장간첩을 남파, 
지방도시의 방송국을 점령하는등 본격적인 남파게릴라 활동을 벌일 계획으로 있으며..."라고 보도한다. 


북한의 광주사태 개입 사실을 증언하는 탈북군인들의 기자 회견은 2006년 12월에 처음 있었지만 북한 개입설이 그때 처음 보도된 것이 아니라, 
26년 9개월 전에, 즉 광주사태가 발생하기 오십 일 전에 이미 일본 및 한국 언론에 보도되었었다. 
여기서 우리는 북한 개입이 불가능하였다고 주장하는 조갑제 기자의 주장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가정에 기초함을 본다. 
조 기자는 광주사태가 일어나자마자 북한이 개입을 결정해도 대대 병력을 남파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계산하면 개입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즉, 북한이 1980년 5월 18일 오후에 개입을 결정하였다고 하더라도 21일에 광주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그런 조기자의 근본적으로 잘못된 가정과 달리 북한은 5월 18일 오후 혹은 그 이후에 광주사태 개입을 고려하였던 것이 아니라, 
50일 전에 이미 광주 일원에서 무장봉기를 일으킬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북한군이 승선한 무장간첩선이 침투 도중 해군 고속정에 발각되어 격침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엄청나게 큰 사건이었음에도 김대중의 명동YWCA 연설에 묻혀 1980년 3월 26일자 경향신문에만 짤막하게 실렸다. 
그때 여론의 관심이 온통 3김씨 중 누가 5공화국 대선 후보가 되느냐에 쏠려 있었고, 이 중대 사건이 경향신문에만 보도되고, 그나마 사진 한 장조차 실리지 않았다. 


북한군 수송선이 포항 앞바다에서 침몰한 사건은 세월호 침몰 사건 못지 않게 중대 사건이었다. 
만약 그때 해군과 공군이 북한군 수송선을 격침시키지 못했더라면 우리나라가 절대 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될 뻔하였다. 
북한군이 3월 23일 한강 수중으로 침투한 사건에 이어 북한군 수송선이 포항 앞바다에 출현한 사건에 대한 그때 최규하 대통령만 관심을 가지고 국민에게 경각심을 
호소하였다. 








오씨팔은 무장반란이다.
오씨팔은 사변이다.
오씨팔은 여적사변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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