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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히로시마원폭 생존사례(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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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솔향기 작성일18-01-04 10:38 조회7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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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原爆 맞고도 구사일생으로 살아

 1945년 8월 6일 일요일, 쾌청한 날씨라 생도 중 절반 이상이 외출허가를 받았다. 나도 동기들과 함께 히로시마 시내로 나가기 위해 시모기온 기차역으로 나가던 중 문득 비누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비누는 구하기 힘든 생필품이라 민가에 갖다주면 환대를 받기에 번거로웠지만 발길을 돌려 부대로 돌아갔다.
  
  비누를 챙겨서 나오는 순간, “펑”하는 소리에 무의식 중 부복자세를 취했다. 온 천지가 노란색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정신을 가다듬고 본능적으로 건물 밖으로 달려나와 개인호에 뛰어들어가는 순간, 이번에는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와 함께 내가 막 뛰어나온 막사의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연기와 먼지가 건물 주위로 자욱했다. 사람들은 “히로시마에 공중어뢰(空中魚雷)가 투하됐다”고 했다. ‘원자탄’이란 말은 사흘 정도 지나서야 나왔다. 35만 시민의 3분의 1인 14만명이 죽었다. 히로시마로 외출 나간 동기생들도 전원 돌아오지 못했다. 머리카락 한 올도 다치지 않고 멀쩡한 사람은 나뿐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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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전 주월한국군 2대 사령관의  조선일보  개인 수기입니다.

 

⊙ 일본 육군항공대 교육받다 히로시마에서 原爆 목격… 육사 2기생으로 建軍에 참여
⊙ 제주 9연대 부대대장으로 남로당계 부하 文相吉에게 여러 차례 죽을 고비 넘겨
⊙ 5·16 맞아 28사단장으로 全軍에서 유일하게 朴正熙 부의장에게 지지 서신 보내
⊙ 주월한국군사령관으로 월남전서 1100여 회의 대대급 이상 대부대 작전 펼쳐… 당시의 실전경험이
    오늘날 국방력 강화의 자산돼.

 

사람들은 나를 두고 “30세의 나이에 별을 달아 23년 동안 장성(將星)으로 있으면서 군 최고위직인 참모총장까지 오르는 등 화려한 군 생활을 했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러나 군 생활은 내게 안락하고 영광스런 기억들로만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다. 포연(砲煙)의 만신창이가 된 국토를 누볐던 시간들, 베트남의 자유를 위해 병사들과 뒹굴며 지휘하던 시간들은 민족과 국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이제 나이 구십을 바라보면서 그런 인생 행로가 하느님의 명령이었음을 깨닫는다.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마다 신의 은총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히로시마 원폭(原爆)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6·25 직전 옹진(甕津) 사태로 가족학살을 면했다. 특히 제주 4·3사건 당시 부하 문상길 중위에 의해 몇 차례나 살해당할 뻔했고, 6·25 전쟁 중 7사단 정보참모로 홀로 남하하다 좌익들에 붙들려 살해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신고합니다. 주월군은 대통령 명에 의해 사상 최초의 해외파견군으로서 1964년 9월 육군 제1이동외과병원을 파견한 이래, 건설지원단(비둘기부대),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 수도사단(맹호부대), 제9사단(백마부대), 제100군수사령부(십자성부대), 해군수송전대(백구부대) 및 공군지원단(은마부대) 등 7개 주요부대 연 병력 31만2853명으로 월남공화국에 대한 평정지원 임무를 완수하고 1973년 3월 14일 사령관 육군중장 이세호 이하 최종 파월군이 개선 귀국하였기에 삼가 신고합니다.”
  
  이어 열병식이 이어졌다. 뒷좌석에 박 대통령과 유재흥(劉載興) 국방장관이 섰고, 나는 앞좌석에 탑승해 손잡이를 잡았다. 열병차가 움직이자 객석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나는 뒷자리에 대통령이 계시다는 생각에 경직된 자세로 손잡이만 움켜잡고 있었다. 그때 박 대통령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여보, 이 장군. 저 군중은 지금 나를 향해 환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주인공인 이 장군을 환영하는 것이니 이 장군이 먼저 힘껏 손을 흔들어 답례를 하시오!”
  
  나는 송구스러웠지만 대통령의 명령 아닌 명령을 받고 열병이 끝날 때까지 힘차게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열병이 끝나자 박 대통령은 베트남전에 참가한 모든 부대의 부대기에 표창 리본을 달아주었고, 나는 8년여 동안 베트남의 정글 속에서 땀과 전진(戰塵)으로 때묻은 ‘주월한국군사령부기’를 대통령께 반납했다.

 

1944년 개성 송도중학을 졸업하고 집에서 머물고 있던 나는 일본 육군항공대 특별간부후보생 모집 소식을 들었다. 서울 용산에 있는 일본군사령부에서 시험을 치렀다. 내가 구태여 일본군을 선택한 이유는 아버지가 일본의 요시찰 인물로 끊임없이 조사를 받는 것이 싫어서였다. 며칠 초조하게 기다리니 합격통보서가 날라왔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일본 동경의 수의과대학 시험을 보러 갈 것이니 여비나 보태달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1944년 4월 일본 시즈오카현 하마마츠(濱松)의 육군항공대로 갔다. 중(重)폭격기 요원들을 육성하는 제7교육항공대 간부후보생으로 입대한 것이다.
  
  입대 즉시 교육대에서 유언장을 작성했다. 입고 갔던 옷가지 등은 소포로 고향집에 송달됐다. 대학 입학시험을 위해 도일한 아들 소식을 기다리던 어머니는 자살공격을 감행하는 ‘도코다이(특공대)’에 들어간 자식의 ‘유품’을 보고 식음을 전폐했고, 매일 눈물의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하마마츠의 비행학교는 중폭격기 발진기지를 학교로 위장해 활용하고 있었다. 지상훈련을 끝내고 비행훈련을 받아야 할 과정이 되었으나 연습용 비행기마저 실전에 투입돼 있었다.
  
  미군 폭격기들의 본토 폭격이 날로 심해지자 우리 부대는 시마네현 마쓰에(松江)로 옮겼다가 다시 히로시마시에서 북쪽으로 약 20km 떨어진 시모기온(下祇園)의 항공기 부품 정비공장으로 이전했다.
  
  1945년 8월 6일 일요일, 쾌청한 날씨라 생도 중 절반 이상이 외출허가를 받았다. 나도 동기들과 함께 히로시마 시내로 나가기 위해 시모기온 기차역으로 나가던 중 문득 비누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비누는 구하기 힘든 생필품이라 민가에 갖다주면 환대를 받기에 번거로웠지만 발길을 돌려 부대로 돌아갔다.
  
  비누를 챙겨서 나오는 순간, “펑”하는 소리에 무의식 중 부복자세를 취했다. 온 천지가 노란색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정신을 가다듬고 본능적으로 건물 밖으로 달려나와 개인호에 뛰어들어가는 순간, 이번에는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와 함께 내가 막 뛰어나온 막사의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연기와 먼지가 건물 주위로 자욱했다. 사람들은 “히로시마에 공중어뢰(空中魚雷)가 투하됐다”고 했다. ‘원자탄’이란 말은 사흘 정도 지나서야 나왔다. 35만 시민의 3분의 1인 14만명이 죽었다. 히로시마로 외출 나간 동기생들도 전원 돌아오지 못했다. 머리카락 한 올도 다치지 않고 멀쩡한 사람은 나뿐인 듯했다.
  
  
 

1946년 12월 14일 육사 2기생 193명의 졸업사진. 육사 2기생은 대통령을 포함 장관 4명, 국회의원 3명, 합참의장 3명, 참모총장 1명 등을 배출했다. 원 안은 이세호 소위의 임관 사진.

  광복 후 일본에서 목선에 의지해 천신만고 끝에 귀국한 나는 신학교를 나와 부친의 뒤를 이을 것인가, 아니면 샐러리맨이 될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다. 아버지(김기연·金基淵)는 연희전문 문과, 일본 간사이(關西)대학 신학과와 미국 텍사스주 감리교대학(SMU)을 졸업한 목회자였다.
  
  부친은 뜻밖에도 내게 “윔스(Weems) 중령을 찾아가 보라”고 말했다. 윔스 중령은 아버지의 미국 유학을 주선했던 윔스 목사의 아들이었다. 나는 중앙청으로 갔다. 윔스 중령은 반갑게 일본 항공대 생활에 대해 질문한 다음, “남의 나라 군대생활도 했는데, 곧 독립국가가 되는 한국의 창군 멤버가 되는 게 얼마나 자랑스럽고 명예스러운 일인가”라며 “조선국방경비대총사령관 원용덕(元容德) 소령을 찾아가라”고 했다.
  
  원 사령관은 “내가 신원보증을 할 것이니 다가오는 9월에 육사 2기생으로 입학하라”고 했다. 다시는 군인의 길을 걷지 않겠다고 했던 결심을 바꿨다.

 

부대원 40여 명 탈영해 대정지서 습격
  

제주도 9연대 부대대장 시절의 이세호. 앞줄 맨 왼쪽이 이세호 대위, 두 사람 건너 김익렬 연대장, 심흥선 대위, 문상길 중위.

  1948년 4월 3일 오전 4시 한라산 정상에서 봉화를 올리는 것을 신호로 남로당은 무장봉기를 시작했다. 조병옥(趙炳玉) 내무부장관, 군정장관 딘(W. F. Dean) 장군, 경비대총사령관 송호성, 김익렬 9연대장 등이 모여 공비소탕작전에 경비대가 참가할 것을 결의했다. 48년 5월 초 박진경 중령이 9연대장으로 부임해 공비토벌 작전에 본격 시동을 걸게 됐다. 당시 나는 모슬포에서 9연대장 대리 겸 부대대장으로 잔류병력을 지휘하고 있었다. 48년 5월 20일 오전 5시 비상나팔 소리가 적막을 깨트리며 울려 퍼졌다.
  
  연병장으로 달려갔을 때 주번사령 문상길 중위가 “큰일 났습니다. 간밤에 연대병력 약 40명이 탄약고를 부수고 보관 중인 무기와 탄약을 절취해 탈영했다고 합니다. 주번사령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보고를 드립니다”라고 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그때 느닷없이 요란한 총소리가 대정마을 쪽에서 들려왔다. 탈영병들이 경찰서를 습격하는 총성이었다. 침착하게 총성의 근원지를 파악하도록 했다. 보고를 받고 보니, 우리 연대 탈영병들이 대정마을 지서를 습격해 경찰관 전원을 사살하고, 한라산 방향으로 도주했다는 것이다.
  
  제주 토벌사령관에게 이러한 사실을 보고하려 했으나, 탈영병들은 용의주도하게도 전화선마저 모두 절단해 버렸다. 주번사령 문상길 중위에게 “부재중 더 이상의 사고가 나지 않도록 당부한다”는 말을 남기고 부랴부랴 발동선을 타고 제주읍 토벌사령부로 향했다.
  
  박진경 토벌사령관에게 전말을 보고했다. 박 사령관은 “이 대위, 충격이 얼마나 컸겠는가. 귀관이 지휘하는 9연대는 제주도 병사들이 많으니까 당분간 토벌작전에 9연대 투입을 보류하고 별도 명령이 있을 때까지 장병들 신상과 동태파악에 최선을 다하게”라고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귀대 후 문 중위에게 박 사령관의 지시사항을 소상히 전해 주었다.
  
  드디어 우리 연대도 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라산 중턱에서 어승생악 동굴을 수색하게 됐다. 이 동굴은 공비들의 보급창고였다. 동굴 내부에 들어가자 재봉틀, 식료품, 의약품, 의복 등 엄청난 양의 무기와 보급품이 쏟아져 나왔다. 이에 박진경 사령관은 “9연대는 제주국민학교로 이동해 휴식하는 포상을 내리고 차기 작전을 준비하라”고 격려했다.
  
  쉬고 있던 중 문상길 중위가 느닷없이 찾아와 “일신상의 사정이 있으니 다른 부대로 전출시켜 달라”고 했다. 나는 “얼토당토않은 소리 그만하라”며 일언지하에 그의 청을 가로막았다. 며칠 후 문 중위는 다시 나를 찾아왔다. “몸이 아파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시 그의 입원을 허가했다.
  
  6월 28일 공비토벌에 여념이 없던 박진경 중령은 대령으로 진급했다. 그는 진급 축하연을 마치고 제주농업학교 내 연대장실 야전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새벽에 느닷없이 “탕, 탕, 탕” 하는 총소리가 들려왔다. 사령관방 안에 참혹한 사태가 벌어져 있었다.
  
  이를 목격한 부대원이 내게 “큰일 났습니다. 오늘 새벽 박진경 사령관이 사령관실 침상에 누운 상태에서 괴한의 총격을 받아 무참히 살해당하셨습니다”라고 전했다. 얼마 후 더 놀라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김종평 정보참모는 “9연대 문상길 중위를 조사하라”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했다. 주민 신고로 문 중위를 박 사령관 살해 배후로 체포했다.
  
  
  “박진경을 사살하라” 지령
  

7사단 정보참모 시절의 이세호 소령(앞줄 가운데). 1949년 8월 15일 촬영했다.

  그를 내 손으로 때려죽여도 배신감을 털어버릴 수 없을 것 같았다. 헌병대장 이풍우 대위에게 “진상을 알고 싶다”고 했다. 헌병대장 입회하에 문 중위를 면회했다.
  
  두 손은 수갑, 팔은 굵은 동아줄에 묶이고, 양발도 차꼬(족쇄)가 채워져 끌려나오는 문 중위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어 측은한 생각까지 들었다. “어떻게 된 거야?”, “뵐 면목이 없습니다.”
  
  그는 사건의 전모를 털어놓았다. 문 중위는 자신이 주번사령일 때 남로당의 지시를 받아 우리 중대 병사 41명을 탈영시켜 대정지서를 습격하도록 했으며, 9연대의 전화선 일체도 그가 절단했다고 했다. 특히 자신이 주번사령으로 있을 때 일에 대해 질책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차없이 방아쇠를 당기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내가 사령부를 다녀왔을 때 토벌사령관이 우리 부대에 대한 책임 추궁과 이에 따른 문책이 있게 되면 부대대장인 나를 사살하고 9연대 전체를 이끌고 한라산으로 도주할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문 중위는 내가 ‘어승생악’ 공비보급창을 급습해 큰 전공을 올렸을 때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권총을 빼들고 나를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인간적 유대 때문에 권총을 겨눌 수 없었다고 했다. 차라리 나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부대 전속을 자원했고, 나의 반대에 부딪히자 결국 병원 입원을 자청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공비소탕에 적극적인 박진경 사령관을 살해하라는 지령을 받고 입원 상태에서 암살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 남로당 당원이며 경비대원인 양희진 일병에게 취침 중인 박 사령관을 암살하라고 시켰다는 내용을 털어놨다.
  
  문 중위의 약혼녀는 서귀포 남로당 총책의 딸로, 그녀는 아버지의 영향 아래 남로당 당원으로서 문상길 중위에게 접근해 약혼했던 것이었다. 문 중위는 정식으로 재판에 회부돼 사형을 언도받고 수색(水色)에서 총살형을 당했다. 
  
  나는 맞선을 보기 위해 10일간의 휴가를 얻어 서울로 나왔다가 제주로 돌아가기 전, 서울 경비대 총사령부 정문 입구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낯선 중령을 만났다. 그는 총사령부 최영희 인사국장이었다. 그가 요직 중의 요직인 인사국 보임과장 자리를 제안했다. 4·3사건으로 지칠 대로 지친 데다..........

 

- 이하 생략 -

월간조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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