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 대학살에 이견 > 퍼온글

본문 바로가기

System Club 시스템클럽

퍼온글 목록

남경 대학살에 이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답과오답 작성일20-01-29 08:14 조회486회 댓글0건

본문


조갑제닷컴 최신정보파일에 27일 게시된 글('한국 기자... 수준 이하')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잘 읽고 공감합니다만... 남경학살에 대한 설명을 부탁합니다.> 

 

이른바 '남경대학살'이라는 것은, 1937년에 일본군이 당시 중국의 수도 남경에서 수십만명의 

중국인을 학살했다고 하는 사건이다. 독일 나치에 의한 '유대인학살'에 대해서는 오늘날 

이를 부인하는 異論이 전혀 없는 상태지만, 이러한 ' 남경대학살' 件과 관련해서는 異論이 

제법 존재한다. 다만, 韓國人들에게는 이러한 異論이 그다지 소개되지 않았던 관계로, 韓國人

들은 일방적으로 中國側의 주장만을 진실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철석같이 믿는 상태다. 
 

 

이러한 불균형(편향)은 아마도, 韓國人에게 무의식적으로 잠재된 고질적 '中國事大'에 따른 

현상일 것이다. 다시 말해, 오늘날 많은 韓國人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中國의 시각(中

國의 입장)에 상당히 치우쳐 생각하고 판단내리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오

늘날 많은 한국인들은 무의식적으로 中國을 편드는 성향이 아주 강하며 그 원인은 뿌리깊은 

中國事大 DNA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현실에서, 조금이나마 균형감각을 회복하는 차원에서, 이른바 '남경대학살'이라는 

것에 대한 異論을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

 

 

'남경대학살'이라는 허구(虛構)


모리 야스키(森靖喜, 76세)

오카야마(岡山)県 사학협회장(私學協會長),
학교법인 모리(森)교육학원 이사장

중국이 '남경대학살(南京大虐殺)'이라는 것을 유네스코
기록문화재로 신청했고, 유네스코는 이것을 정식으로
등록결정했다. 아직 채택 안되었지만, 日本軍이 중국
과 한국의 여성 20만 명을 성노예로 강제연행했다는
'종군 위안부' 件이 향후 재추진될 가능성도 크다.


1937년 8월, 중국 상해(上海)의 합법적 공동조계(共同
租界) 지역에 거주하던 日本人을 향해, 장개석 군대는 
10개 사단 20만 명이 넘는 병력을 동원해 공격
해왔다. 소수였던 日本海軍 소속의 육전대(陸戰隊)
만으로는 일본인을 보호할 수 없게 되어, 日本 정부는 
2개 사단을 파견하여 지나사변(支那事變)이 발발하게
되었다. 


격전(激戰) 끝에 중국군은 후퇴를 거듭하게 되었고 장
개석과 그의 부인 송미령(宋美齡) 및 남경(南京)
방위사령관 당생지(唐生智) 등 간부는 10만 명의
병사를 남겨놓고 야음을 이용해 남경(南京)으로부터
도망했다. 日本軍은 혼란에 빠진 남경시(南京市)를
점령하고 치안을 회복했는데, 그 때 남경에 사는 일
반시민 20~30만 명을 학살했다는 것이 이른바 '南京
大虐殺' 사건이다.


1945년 패전후, 美점령군은 히로시마, 나가사키
(長崎)에 대한 원폭투하(국제법 위반)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 이상으로 日本軍을 악독한 것으로 만들어놓
고자 '남경대학살'이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1948년
11월, 동경재판(東京裁判)의 판결문으로 "日本병사는
술에 취해 일체의 규율도 없이 살인, 강간, 약탈, 방화
를 일삼으며 움직이는 모든 사람을 사살했기 때문에
도로는 시체로 가득했다. 그 수는 20만 명이다"라는
것이 낭독되었다. 하지만, 전후 日本人 모두는 이러
한 판결문을 '거짓'으로 알고 있었고, 중국조차도 문
제시하지 않았다.


그런데, 1971년 아사히(朝日)신문의 혼다 가쓰이치(本
田勝一)라는 기자가 '중국 여행'(中國の旅)이라는 연재
물을 아사히 신문에 게재하면서 사태가 촉발되었다.
20만 명이 학살되어 큰 길은 시체가 산(山)을 이루었
다며 日本軍이 잔인했다고 연재했다. 그리고 이를 통
해 많은 日本人들 사이에는 '日本軍=잔악', '중국을 침
략했다'는 이미지가 정착되었다.


'南京事件'은 日本 교과서에까지 등장하게 되었지만, 
남경사건은 '허구(虛構)'다. 당시 남경(南京)에는 다
수(多數)의 외국인도 살고 있었는데, 그들의 증
언이
나 실제 남경에 입성한 日本병사들의 증언을 통해 
아사히의 기사가 허위(虛僞)라는 것이 분명해지고
허위 
기사에 대한 비판이 계속 높아지자 혼다(本田)
기자는 
"중국측 시각에서 썼다"며 "중국 현지 안내인
으로 소개
받은 공산당 소속 인물이 증언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 
썼을 뿐이다"라며 변명했다. 남경학회
(南京學會)소속
의 히가시나카노 슈도(東中野修道)
아세아대학 교수 
등의 노력을 통해 남경사건(南京
事件)은 완전한 '허구
(虛構)'로 현재 증명(証明)되
었다.


남경대학살(南京大虐殺)을 거론하며 日本을 규탄하
는 
서적類는 많이 존재하는데, 그 중 대표格은 중국
계 미
국인 '아이리스 창'이 지은 '레이프 오브 남경'
(1997년 
미국 베스트셀러)이라는 책이다. 그런데,
'남경사건 
증거사진을 검증한다'는 제목의 책(草思
社 2005年)
을 쓴 히가시나카노 슈도(東中野修道)
교수가, 3년
이라는 시간을 쏟아부으며 분석에 매달
린 결과 '아
이리스 창'이 사용한(인용한) 사진 등
남경관련 사진 
143매 전부는 통용(通用)사진이 아
니라 "전부가 위작
(僞物)"이라고 입증(立証)해냈다.   
이번 유네스코 결정은 '거짓'을 동원해 일본을 폄하
하는 것으로, 기록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는
이다. 총과 칼로 싸우는 것만이 전쟁이 아니다.
중국
은 역사戰, 선전선동戰을 지속 전개하고 있다.
여기
에는 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남경사건' 퍼뜨린 호주記者는 국민당선전 기관원
 2015. 4. 16. 산케이(産經)신문

'남경사건'(1937년)을 세계에 퍼뜨려, 동경군사 재판에도
영향을 
끼친 <전쟁이란 무엇인가(What War Means)>
(1938년 출판)의 著
者인'헤럴드 팀펄리'가 日中전쟁 발발
이후인 1939년 중국 국민당 
선전기관의 영국지부에서 책
임자로 근무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사료(史料)가 타이베
이(台北)市에 있는 국민당 당사관(党史館)에
서 발견되었
다. 국민당의 선전(프로파간다)공작에 관련된 '팀펄
리'의
세부적인 실태가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확인된 사료명은 <중앙선전부 半年 중심공작 계획>이다.
1939년 
3월~8월의 당중앙 선전부의 활동방침을 기록한
것으로서 표지에 
'秘密'(비밀)이라는 압인이 찍혀있다. 자
료는, 선전부의 하부조직
인 '국제선전처 영국지부(런던)'
의 책임자 TOP으로 '팀펄리'를 거
론하고 있다.  

 
'책임자'는 팀펄리를 포함해 미국 및 유럽인 3명, 중국인
2명으로 
도합 5명이고, 공작원 수는 40여명으로 나온다.
공작목적은, 영국 
정부와 의회로 하여금 對中 차관(자금)
을 제공하고 항일(抗日) 전
쟁에 대한 지원을 하게 하며,
영국 식민지에서 日本제품 불매 운
동을 전개토록 하는
것이었다. 

 
사료는 팀펄리의 공작내용과 관련하여,
(1)영국 정부 요인과 국회의원을 면담하여, 중국의 항전
및 건국
의 참뜻을 전달한다.
(2)5월에 영국 각지에서 강연한다.
(3)6월에 訪美하여 강연한다.
(4)전문서적 1권을 집필한다.
등의 내용으로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이보다 앞선 1937년에 팀펄리가 중국 국민당측으로부터
매달 1천 
달러의 활동비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도, 산케이
(産經)신문이 입수
한 미국 코넬대 도서관 소장의 사료(史
料)로 확인되었다. 

 
국제선전처 처장인 '증허백'(曾虛白)은 <전쟁이란 무엇인
가(What 
War Means)>라는 책과 관련하여, <돈을 써서,
팀펄리에게 부탁해 
책을 쓰게 하고 발간했다>고 자서전에
서 밝혔다. 이번에 밝혀진 
사료는 '남경사건'을 둘러싼 논
쟁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호주태생인 팀펄리는 '남경사건' 당시, 영국紙 '맨체스터
가디언'의 
상해(上海)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남경(南京)에
있었던 미국, 유럽
인의 수기 등을 참고로 舊日本軍에 의한
남경점령을 "고발"했다. 팀
펄리는 국제선전처의 '고문'(顧
問)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남경전투 참가자 증언

舊일본군이 1937년 12월 중국의 남경(南京)을 공략한 후,
그곳 城內에 주둔한 前해군 제12항공대 3등항공 병조(兵
曹, 하사관) '하라다 가나메'(原田要, 98세, 나가노市 거주)
씨는,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말했다.


<도저히 전쟁중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남경(南京)
은 평온하다는 인상이었다>


1937년 12월10일부터 시작된 총공격에서, '하라다'(原田)
씨는 95式 함상전투기 조종간을 잡고, 남경城 南東 광화문
(光華門)을 공략하는 육군을 지원했다. 양쪽 날개에 각 60
킬로그램의 폭탄을 매달고 몇 번이나 남경城을 공격했다.


<남경城壁에 폭탄을 명중시킴과 동시에 敵兵을 향해 기총
소사를 했습니다>


함락후 城內 비행장에 착륙한 '하라다'(原田)씨의 눈에 들
어온 것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주민들 모습이었다. 노점
이 늘어서 있고, 주민들은 日本兵을 상대로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하라다(原田)씨는 거기서 돼지를 한 마리 샀다.  


<다리를 한데 묶은 새끼 돼지를 사서, 동료들과 함께 먹었
습니다>


城 밖에 있었던 중국 국민당 창시자 손문(孫文)의 묘지 '중
산능'(中山陵)을 찾아 참배하기도 했다. 

 
<공략戰이 본격 개시되자, 城內에 남았던 주민들은, 서양
인들로 구성된 '국제위원회'(國際委員會)가 설치한 非무
중립지대 '안전구'(安全區)로 모두 도망갔었지만, 날이
으면서 평온함을 되찾았다>고 '하라다'(原田)씨는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2007년 12월 
도쿄(東京)에서 열린
<남경함락 70주년 국민집회, 참전
용사가 말하는 '남경사
건'의 진상>에 출석한 前장병들도 
비슷한 증언을 하고 있
다. 

 
<입성하고 나서 2~3일 후, 주민들 모습이 보이기 시작해,
손목시계 수리를 위해 시계방에 갔다>
- 1937년 12월16일 
입성한 前육군 제16사단 소위, '이나
가키 기요시'(稻垣淸)


<노점에서 日本兵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었다. 구두
수리점, 이발소 등이 있었다. 노점에서 인감(印鑑) 도장
을 팠다. 城內는 아주 평온했다>
- 1937년 12월20일경 城
內 모습을 진술한 前육군 제9
사단 보병 제36연대 오장
(伍長, 하사) '곤도 헤이타부'
(近藤平太夫)

중국측이 주장하는 <30만명 대학살>이 정말로 사실이
되려면, 당시 城內는 가는 곳곳마다 처참한 살륙이 행해
져야 하는데, 前장병들의 증언 내용은 너무나도 동떨어
져 있다. <국민집회 모임>에서 '곤도'(近藤)씨는 남경
에서 팠던 인감(印鑑) 도장을 꺼내 들어 보여주며 이
게 강조했다. 

 
<주민들이 평온한 상태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
매일 무수한 사람들이 학살되었다니 있을 수 
없는 이야
기입니다>

'하라다'(原田)씨는, 영식(零式,제로센) 함상전투기 

일럿으로서, 미국 하와이 진주만 공습과 미드웨이 
해전
에도 참가했다. '하라다'(原田)씨는, <전쟁은, 내
가 敵
을 먼저 쓰러뜨리지 않으면 내가 당하고 마는 
극한상태
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남경공략戰 이후, 그곳 주민들에게 평온한 생활이 다시
돌아오게 된 한편으로, < 편의병(便衣兵)>의 존재가  

위협으로 부상했다. <편의병(便衣兵)>은 민간인으로
위장한 병사를 지칭한다. 그들은, 비무장지대인 안전구
(安全區)로 무기들을 반입한 채 잠복하고 있다가 은밀
하게 출현하여 日本兵들을 습격했다. '하라다'(原田)씨
는, <편의병(便衣兵)은 게릴라입니다. 당시 이들은 은
하게 다가와 日本兵을 공격했습니다>라고 말한다. 

 

 

 

 

휴가를 얻어 남경城 북쪽을 흐르는 장강(長江, 揚子江)
의 
하반(河畔)에 갔을 때, '하라다'(原田)씨는, '편의병'
(便
衣兵)을 처형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육군병사들
이 
트럭에 태워온 중국인 남자 10명 정도를 총검으로
처형
하게 됐다. 체념한 모습의 남자가 있는가 하면, 강
물로 
도망치다가 사살되거나, 울면서 살려달라고 매달
리는 
남자도 있었다.


도쿄(東京)재판에서, 병역연령에 해당하는 중국 남성
약 2만명을 일본측이 기관총으로 살해했다고 되어있
지만, '하라다'(原田)씨는 고개를 갸웃했다. 처형 장
을 목격한 것은 이때 한번 뿐이었기 때문이다. 도
(東京)재판에 출정(出廷)한 前장교 증언에 따르면,
城內에서 포로로 잡은 중국 잔존병은 4000명에 달
했는데, 그 중 절반은 수용소로 보내고, 나머지 절
반은 나중에 석방했다. 무기를 휴대하고 잠입해 있
던 편의병(便衣兵)을 적발하여 군사재판(軍法會議)
을 거쳐 처형하는 일은 있었지만, 이는 국제법에
따른 정당한 대응에 해당한다.  

많은 전투를 경험하고, 여러가지 감정을 가슴에 묻
어 
둔 '하라다'(原田)씨는 지금도 강연 등을 통해 전
쟁의 
비극을 알리고 있다.

<몇 십만명을 대학살했다는 식의 이야기는 말이 안
니다. 만약 정말로 대학살이 있었다면 당시 중국의
주민들이 왜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왔겠습니까?>
라며 종전 후 부상(浮上)한 <남경대학살>이라는 것
을 
'하라다'(原田)씨는 납득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남경대학살'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영국인

2014. 12. 28. 산케이(産經)신문

헨리S 스톡스

1938년 영국출생, 1961년 옥스포드 대학원 졸업후, 英紙
'파이낸셜 타임스'社에 입사하여 1964년에 초대 東京지국
장으로 부임. 이후 英紙 '타임즈' 및 美紙 '뉴욕타임스' 東
京지국장을 역임. 저서 <영국인 기자가 본 연합국 전승史
觀의 허망(虛妄)>(2013년)

○ 왜 '남경대학살'이 사실이 아닌가?
 
● 문헌에 의하면, 당시 남경시내 여기저기서 산발적 폭력
행위는 있었지만, '대학살'이라는 표현을 써서 남경에서 일
어난 일을 말할 정도는 아니다. '학살'이라면 상당히 피비
내 날 정도의 기억이 목격자의 머리 속에 남아 있어야 
데, 오히려 日本軍이 점령하게 되어 치안이 회복됐다.
'학살'
이라는 표현보다는 '사건'이라는 표현이 맞다.


○ 구체적 이유는?
● 원래 국민정부의 장개석과 軍의 간부들은 수도
함락 직전에 적전도망(敵前逃亡)하여, 남경(南京)에서는
전투가 별로 없었다. 중국군인이 군복을 벗고 민간인으로
위장한 '편의병'(便衣兵)이나 '불량포로'(不良捕虜)로 되
어버린 까닭에, 日本軍은 이들을 처단할 수 밖에 없는 상
이 됐다. 이러한 포로에 대한 처단은 국제법에 따라 실
되었고 대량으로 발생했다. 이 사건은 비참한 사건이었
다. 
하지만, 日本軍에 의한 이러한 중국인 처단 수(數)는
중국
정부가 주장하고 일부 식자(識者)들이 동조하는 '만
(萬) 
단위'를 넘어서는 규모는 아니어서, 학살규모 20
명, 30
만명 등은 성립할 수가 없다. 중국의 反日 프로파
간다
(모략선전)인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책임은
1차적으로 
敵前도망한 중국 국민정부에게 있다. 日本軍
에게만 책임
을 뒤집어 씌우는 것은 비도(非道)로서, 
장개석
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 장개석 씨는 <외교는 무형(無形)의 전쟁>이
며 국제정보戰에 힘을 쏟았는데...  
● 국민정부는 전투는 안하고 정보戰에 힘썼다. 국민정
부의 중앙선전부가 美國과 유럽의 언론인들을 대상으로
교묘하게 '대학살'을 날조했다.


○ 저서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실체는 '성노예'
가 전혀 아니다. '매춘부'다>라고 썼는데...
● 中國과 韓國은, 日本이 반론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조된 내용의 프로파간다를 계속 반복하고 있으며 美
國과 
유럽 언론들은 이러한 中國과 韓國의 주장에 따르
고 있다. 
'남경'이든 '위안부'든 지금 같은 式이면 日本
은 세계로부
터 계속 규탄 받을 수 밖에 없게 된다. 日本
은 사실관계를 
분명히 하고, 영어로 日本의 입장을 세계
로 발신해 나가야 한다.


○ (당신은) '학살'을 부정하는 서구 저널리스트가 되어
렸다. 비판은 없나?
● 외국특파원 동료나 영국의 지인들로부터 <미쳤다>
<치
졸하다> <역사수정주의자> <우익> 등의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나의 주장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최근
10년간 '기
타무라 미노루'(北村稔) 등 日本학자에 의해
연구가 진행되
어, 중국측 사료(史料)로 보더라도 소위
말하는 '학살'은 없
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조갑토 : 펀드빌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퍼온글 목록

Total 16,395건 533 페이지
퍼온글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435 3대 악법과 전략공천의 부메랑 진리true 2020-01-17 580 6
434 딮-스테이트의 중국자본 노예화 - 문정부 피할길은 없다 진리true 2020-01-18 609 10
433 용서받지 못하는 자-탄핵과 출당을 요구한 유승민 진리true 2020-01-18 589 12
432 비로 바로. 딱 딱 쥑여버리지 않으니깐 이 따위 것이 … inf247661 2020-01-18 648 7
431 빨갱이 신고센터. 댓글(1) 海眼 2020-01-19 781 50
430 이제 곧 사라질 우리의 정예부대들... 댓글(2) 핸섬이 2020-01-20 735 9
429 미국이 세워놓은 한반도 초병국가- 공산화 불가능 근거 진리true 2020-01-20 685 12
428 "조국 파면하라" 서명운동 댓글(1) 海眼 2020-01-20 604 34
427 별정직 공무원, 80세도 응모 가능! _ _ _ 적극 … inf247661 2020-01-21 674 10
426 초등학교에서 정치 동요 가르치네요! 한글말 2020-01-21 648 28
425 <나이, 인종도 바꿔달라...> 한글말 2020-01-22 598 14
424 무-정보국, 비-정보국, 하명-정보국 개편 진리true 2020-01-22 501 4
423 [좋은글](상식) PC(Political Correct… 만세대한민국 2020-01-22 612 6
422 부시센터, 4기 ‘북한자유 장학생’ 모집 한글말 2020-01-23 511 6
421 서로 속인 핵원료 가공/비축전략 - 끝장 보자! 진리true 2020-01-23 573 5
420 어떤 586 애국자의 글 정답과오답 2020-01-24 680 26
419 남산의 부장들 - 김형욱 편 진리true 2020-01-24 601 8
418 우한 폐렴 댓글(1) 신준 2020-01-26 745 17
417 전광훈 목사와 국민혁명당 외 신준 2020-01-26 718 6
416 한국독자 남북경협 발표 = 제 3자 제재대상 재확인 진리true 2020-01-27 505 17
415 세상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정답과오답 2020-01-27 494 9
414 '우한폐렴' 공포의 현장 -신세기TV 한글말 2020-01-28 606 5
413 특종! 추미애의 윤석열 사단 해체, 알고보니 '헛발질'… 댓글(1) 신준 2020-01-28 624 12
412 우한 폐렴, 꼭 알아야 할 반전 팩트 두가지-홍혜걸 박… 신준 2020-01-28 632 8
411 미 CIA 홍석현의 대북행적 박근혜에게 낱낱이 알렸다! 댓글(1) 신준 2020-01-28 663 13
열람중 남경 대학살에 이견 정답과오답 2020-01-29 487 4
409 황교안 신의한수 출연 댓글(1) 알리 2020-01-29 573 5
408 자유 통일당에 바랍니다 댓글(1) 정답과오답 2020-01-29 585 9
407 발 끝으로 서는 사람들 댓글(1) 정답과오답 2020-01-29 568 4
406 디트리히 본회퍼, "어,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우리 … 신준 2020-01-30 602 2
게시물 검색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 대표자 : 지만원 | Tel : 02-595-2563 | Fax : 02-595-2594
E-mail : j-m-y8282@hanmail.net / jmw327@gmail.com
Copyright ©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All rights reserved.  [ 관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