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차일드가(Rothschild)-세계정부수립의 핵심 배후세력 > 퍼온글

본문 바로가기

System Club 시스템클럽

퍼온글 목록

로스차일드가(Rothschild)-세계정부수립의 핵심 배후세력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명탄 작성일11-09-18 16:39 조회18,874회 댓글1건

본문

 

 



▲ 영국 버킹엄셔에 위치한 로스차일드가 저택.1874~1889년 건축되었음

"내게 통화 공급권을 통제할수 있는 권한을 달라.그러면 누가
법률을 만들든 상관없다."


로스차일드 가문(Rothschild)의 시조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
한 말입니다.현재 세계 금융을 움직이는 핵심세력이자 록펠러가와
함께 세계 단일정부 수립을 목표로 '빌더버그 그룹'을 비롯한 각종
단체들을 배후에서 움직이는 이 가문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지요.

로스차일드하면 사람들은 '유대계 재벌'을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시온 의정서도 떠올립니다.그리고 이것을 근거로 유대인들이 세계
지배를 목적으로 이러한 일들을 꾸민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만..
이건 중세 유럽에서 부터 써왔던 아주 오래된 수법에 불과합니다.

히틀러는 자신의 책 나의 투쟁(
Mein Kampt)에서 시온 의정서를
언급하였고,유대인 대학살의 근거로써 이것을 철저히 이용합니다.
히틀러는 '일루미나티'였습니다.현재 세계정부 수립세력과 같은
편이라는 말이고 그것이 유대인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란 말이죠.

일루미나티는 인종차별주의자들 입니다. 아이들은 포로수용소
놀이를 하면서 자라고, 유대인은 그들에게 '증오의 대상'입니다.
유대인들이 일루미나티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려면,희생 제사때
스스로 유대인임을 부정하고 배신하는 맹세를 해야만 합니다.

20세기초에 이미 시온의정서가 거짓이라는 많은 증거가 폭로되었
으며 증인들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2차 대전 전까지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시온 의정서는 고의적으로 퍼뜨려졌고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정당화하는데 온 유럽의 암묵적 동의를 이끌어 냈습니다.

전직 예수회 사제와 일루미나티들은 증언에서 세계 단일정부수립
을 위해 자행하는 일들의 모든 책임을 유대인에게 돌리고 자신들
의 실제를 숨기기 위해서 일부러 공개한 것이라 밝히고 있습니다.
'시온의정서'가 일루미나티의 활동 내용과 같은 이유를 알수있죠.

로스차일드 가문(Rothschild)은 의외로 사람들에게 생소합니다.
금융업을 기본으로 석유,다이아몬드,금,우라늄,레저산업,백화점
을 비롯해 최고급 프랑스 와인에 이르기까지 우리 생활 곳곳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물론 잘 드러나지 않은채로 말이죠.

그 중에서도 미국 FRB(연방준비은행)과 각 나라의 중앙은행들이
그들의 소유이며,화폐발행권을 쥐고 있어서 화폐를 발행하거나
채권을 매입할때 그 나라 국민들의 세금으로 천문학적인 이자를
벌어들이고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 FRB(연방준비은행)의 생성 과정과 역할,소유주 관련 글과
일루미나티이자 마인드컨트롤 담당자였던 Svali의 증언들 그리고
경제저격수 관련 동영상 링크합니다.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미국 중앙은행 FRB- 국제 금융세력의 개인 사설은행
일루미나티 Svali 증언 2가지 모음-마인드컨트롤 담당자


경제 저격수와 세계정부 필수 동영상 모음,자료,서적
 
............................................................................................................................................

18세기 이후 약 250년간 '유럽과 전세계의 돈'을 장악해 왔던 로스차일드가.
나폴레옹전쟁,워털루전쟁,미국 남북전쟁,러일전쟁,제1차 세계대전,제2차 세계대전,모든 전쟁을 비롯해 수에즈운하 건설,산업혁명, 각국 중앙은행 설립에 이르기까지 로스차일드가는 인류 역사의 주요 사건과 전쟁에 개입해 왔습니다.

전쟁시 양쪽 정부에 모두 돈을 빌려주어 더 많은 돈을 버는 수법으로 유명했던 그들에 대해 당시 유럽에서는 '로스차일드가의 지원이 없으면 유럽의 어떤 왕도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는 말이 떠돌았고, 이미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던
나탄 로스차일드는 자신이 전쟁과 평화의 중재자라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M.A. 로스차일드의 부인이자 그의 다섯 아들의 어머니였던 '구틀 슈내퍼'는
세상을 뜨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내 아들들이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면, 전쟁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도 없어질 것이다.'

각국 왕가와 밀접한 관계를 멪으며 전쟁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은 그들은 유럽
국가들의 재정까지 마음대로 움직했으며, 막대한 부를 통해 유럽 경제를 움켜쥔 후에는 미국에도 손을 뻗치기 시작합니다.'야콥 시프'라는 청년을 로스차일드가의 대리인으로 보내어 미국경제도 모두 자신들이 장악합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은행가 JP모건, 절강의 카네기, 철도의 해리먼, 석유의 록펠러 등은 모두 로스차일드의 자금을 받아서 사업을 하고 거부가 된 사람들입니다.뿐만 아니라 1913년 미국 연방준비은행(FRB)을 설립하도록 함으로써 미국의 화폐발행권까지 손에 넣게 되며,그 결과 막대한 이자를 벌어들이게 됩니다.

그들은 유럽국가들의 식민지정책에도 돈을 지원하여. 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광산,석탄 및 각종 지하자원등을 개발하여 부를 축적했고 1917년 러시아의 공산혁명에도 돈을 대 마지막 남은 유럽의 독립 왕조까지 결국 무너뜨립니다.

또한 영국정부의 수에즈운하 주식 매입자금을 공급하여 식민지 기반을 조성하고, 당시 오일로드 확보를 위해 영국이 점령했던 팔레스타인에 대해서는 ‘벨푸어 선언’ 즉.영국이 팔레스타인 땅을 유대인에게 양도하여 유대국가를 건설하도록 한 약속을 통해서 향후 이스라엘 독립의 단초를 제공하도록 합니다.

실제 이스라엘 건국시에 로스차일드가에서는 막대한 자금을 건국자금으로 지원하기도 하였으며,현재까지도 많은 돈을 대고 있고 정보조직 '모사드'를 개인조직처럼 활용하고 있기도 합니다.물론 이스라엘의 독립은 세계정부 수립과정 에서 미리 계획된 '치명적인 분쟁'을 위한 필요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역사

현재의 로스차일드 가를 만든 장본인은 메이어 암셸 바우어(Mayer Amschel Bauer)입니다. 그는 1744년에 독일 프랑크 푸르트의 유대인 거주지역인 게토
에서 태어났습니다. 골동품업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가게 앞에 붉은 방패(rot schild 독일어로 로트쉴트, rot 붉은색, schild 방패)를 내걸었습니다.

후에 메이어 암셸 바우어는 자신의 성씨를 아버지 골동품 가게의 이름을 따서
로스차일드(Rothschild)라고 바꾸게 됩니다. 메이어는 어린 시절부터 두뇌가
명석하였으며 아버지에 의해 여러 교육을 받게 됩니다. 특히 상업적인 부분에
대해서 많은 교육을 받고 실제 아버지를 도와 가게에서 일하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몇년 후 사망하자 마이어는 13살의 나이에 오펜하이머 가문 은행에
견습생으로 들어가게 됩니다.얼마지 않아 정식 직원이 된 그는 당시의 새로운
금융 시스템에 눈을 뜨게 됩니다. 20세가 되어 프랑크 푸르트로 돌아온 그는
아버지처럼 옛날 화폐를 취급하는 골동품점과 대부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희귀 금화등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진 프리드리히 대왕의 아들 '빌헬름 황태자'
에게 금화등을 싸게 공급하며 인연을 맺게 되고,1769년에는 왕실의 정식 대리인인 어용상인이 됩니다.

또한 화폐 수집상뿐만 아니라 환전상도 겸했던 메이어는 빌헬름의 런던에서
보내오는 환어음을 현금화하는 사업을 시작하였으며,당시 왕실의 재정과 함께 국제적인 자금조달,그리고 비밀자금
관리에도 깊이 개입하고 있었습니다.

황태자가 빌헬름 9세로 즉위한지 얼마되지 않아, 나폴레옹이 독일을 침공하자 빌헬름 왕은 덴마크로 망명하면서 메이어에게 300만 달러의 돈을 맡기게 되고
메이어 암셸 로스차일드는 이 돈을 다섯 아들에게 주어 유럽의 주요 국가들에
파견, 나눠준 사업자금을 발판으로 시장을 개척하며 사업을 하도록 했습니다.



암셸 로스차일드 Amschel Mayer Rothschild (1773–1855): Frankfurt
살로몬 로스차일드 Salomon Mayer Rothschild (1774–1855): Vienna
나탄 로스차일드 Nathan Mayer Rothschild (1777–1836): London
카를 로스차일드 Calmann Mayer Rothschild (1788–1855): Naples
야곱 로스차일드 Jakob Mayer Rothschild (1792–1868): Paris


메이어 암셸 로스차일드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습니다. 빌헬름 왕의 자금을
받은 그는 장남 암셸을 프랑크 푸르트에 남게 하고, 살로몬을 오스트리아 빈에 삼남 나탄(네이선)을 영국 런던,카를을 이탈리아 나폴리,야곱(제임스)를 프랑스로 보내게 됩니다.

그의 다섯 아들들은 유럽의 전역에 은행을 설립하고, 협력하며 유럽의 금융기관으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그들은 통신과 마차들을 비롯해 각종 수송수단들을 이용하여 나라간 '정보 네트웍'을 만든 다음 사업에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1806년 나폴레옹이 영국에 대륙 봉쇄령을 내리자 유럽의 공산품 가격은 폭등했는데, 값싸고 품질이 좋은 영국 상품을 살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영국으로
진출한 나탄(네이선)은 프랑스에 있는 동생 야콥(제임스)와 손잡고 밀수형태로 영국 상품을 유럽에 파는 사업을 통해서 많은 돈을 벌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프랑스로 진격하려던 영국 웰링턴 장군의 군대가 군비부족으로
곤경을 처하게 된 것을 알고는,빌헬름 왕이 맡긴 돈 300만 달러와 자신이 영국과의 밀수로 벌어들인 돈을 합해서 동인도 회사의 금을 사들입니다. 금값은 치
솟았고 결국 영국 정부는 어쩔수 없이 비싼 가격에 황금을 매입하게 됩니다.

나탄(네이선)은 거기에다 자신이 판 금의 수송까지 제안하며 수수료를 챙기게
됩니다.
동생 제임스를 통해 프랑스 정부에 공식 통지하게 한후,프랑스군이 봉쇄하고 있던 길로 금을 운송하고 금화로 환전했습니다.그리고 로스차일드가의 운반 통로를 통해 스페인의 영국군 월링턴 장군에게로 전달했습니다.

이후
나탄(네이선)은 영국 로스차일드 은행을 세우고 금융사업에 뛰어들게 됩니다. 1815년 6월 벨기에 워털루에서 벌인 전투에서 영국군이, 엘바섬에서 돌아온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게 승리한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한 그는.. 곧바로
주식거래소로 향합니다. 그리고 영국 채권
통해 큰 재산을 벌어들입니다.

이미 그의 정보력과 재력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그의 움직임을 주의깊게 보게
됩니다.전쟁에서 지면 국채가격이 폭락하기 때문입니다. 나탄(네이선)은 거래소로 가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영국 국채를 모두 팔아 치웁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영국이 전쟁에서 패한 줄'로 알고 정신없이 국채를 팔기 시작합니다.

시장은 일시에 패닉 상태에 빠지고 영국 국채는 헐값이 됩니다.이틈을 노려서
나탄(네이선) 로스차일드는 싼 값에 국채를 모두 다시 사들이고, 영국의 승전보가 전해진 후에 폭등한 영국 국채를 되팔아 엄청난 차익을 얻게 됩니다.

막내인 제임스 로스차일드 역시 비슷한 형태로 '프랑스 국채'를 사들여서 폭락
시키고 되사는 방법으로, 자신의 지위상승은 물론 재산도 함께 불리게 됩니다.
이후 이들 형제들은 왕실과의 관계,산업혁명과 식민지개척 이권사업을 통해서
재산을 증식해 갔으며 유럽에서 그들의 경제 장악력도 커져갔습니다.

전쟁을 통해서 양쪽에 돈을 빌려주어 부를 축척한 그들은 그러한 수법을 계속
되풀이하며, 세계를 뒤흔든 거의 모든 전쟁에 개입하여 재산을 늘려 갔습니다.또한 화폐발행과 중앙은행 설립을 통해서 국민의 세금으로 천문학적인 이자를 벌어들이며, 각 국가를 그들의 '영원한' 채무국 상태로 몰아갔습니다.

로스차일드와 조지 소로스

거기에 인위적인 경제위기와 세계 대공황등을 일으켜 앞서 영국의 '국채매입'
과 비슷한 형태로 헐값이 된 기업과 자산을 인수하고 주식,채권등을 매입하므로써 자신들의 부를 축척해 나갔습니다. IMF나 세계은행처럼 브랜트우즈 협정에 의해 만들어진 기관의 고금리 대출과 이들의 역할 또한 물론 중요했습니다.
1997년 하반기 아시아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때에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수상은 아시아 경제위기의 주역으로 '조지 소로스'를 꼽았습니다. 금융파생상품 헤지펀드 등을 앞세워 세계 금융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그는 태국 바트화를 폭락
시켜 당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금융위기를 일으킨 장본인 입니다.

아시아 각국의 통화가치가 급격히 떨어져 환율이 급등하고,외국 자본 유출이
한꺼번에 일어나면서 한국은 당시 결국 IMF의 구제금융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특히 소로스는 이 방면으로 아주 유명합니다.
1992년 그의 퀸덤 펀드는 영국 파운드화에 대대적인 매도를 하며 런던 외환시장을 공격했습니다. 파운드화는 폭락했고,소로스는 10억달러를 벌었습니다.

1993년에는 프랑스 프랑화, 벨기에 프랑스화, 덴마크 크로네화 등 유럽 전역의 중앙은행들을 상대로 환투기 공세를 전개해서 독일 마르크화에 대해 폭락하게함으로써 2차 유럽통화 위기를 발발시켰습니다. 전년에 영국은행으로부터 벌어들인 액수보다 더 많은 11억 달러를 벌어드리게 됩니다.

1995년엔 일본은행과 엔화를 공격해 일본정부에 엄청난 환손실을 입게하고는
'일본정부의 금리인하'라는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일본에서는 당시 '요카이','검은 유대 마피아'란 별명이 붙었고 영국에서는 '파운드화를 망가뜨린 악마의 손', '갱'이라는 원색적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소로스의 배후에 '로스차일드 가문'이 있습니다.그는 나폴레옹 전쟁이후로 줄곧 사용되어 온 시장조작 전략(?)을 실행하는 대리인에 불과합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산

현재 로스차일드가의 재산은 베일 속에 감춰져 있으며 제대로 된 접근 자체도
불가능합니다. 미국 FRB(연방준비은행)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중앙은행들은
그들의 소유이고, 국채나 화폐발행으로 인한 이자 수입은 천문학적입니다.

그외에도 로스차일드 가문은 금융업을 기본으로 석유, 다이아몬드, 금, 우라늄, 레저산업, 백화점 등의 분야에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런던의 로스차일드 은행은 잉글랜드 은행의 대리점으로서 '국제 금가격'을 결정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최고급 포도주 가운데 하나인 보르도의 샤토 무통, 샤토 라피트 등을 생산하는 포도원도 이 가문이 소유하고 있으며, 이 와인의 라벨에선 지금도 가문의 표식인 다섯 개의 화살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2007년 3월 8일 뉴욕타임스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차기 후계자로 영국 지부의
4대 후계자인 제이콥 로스차일드의 아들 '나탄(너대니얼) 로스차일드' 회장이
떠올랐다고 보도했습니다. 헤지펀드 운영업체인 아티커스캐피털 공동 회장인
그는 과거 어느 후계자보다도 많은 부를 소유할것이라고 신문은 전망했습니다

로스차일드라는 가문이 빌게이츠나 워렌버핏,'포브스의 100대부자' 리스트에
있는 CEO들에 비해, 일반인들에게 덜 알려지고 생소한 느낌을 주고 있다거나
마치 비중없거나 쇠락한 가문처럼 비춰지고 있는 것은 철저한 전략입니다.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뉴 월드 오더’.. 주요 국가 대통령들이 TV 인터뷰에서
입만 열면 말하는 신세계질서와 세계 정부수립을 위해서 유럽 각국의 왕실과
각 나라 대통령과 정치인, 로스차일드와 록펠러를 비롯한 국제 금융세력들은
매스컴을 차단한 채 인류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한 비밀화의를 합니다.

매년 1년에 한번씩 절대로 비밀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하고 참석하는
'빌더버그 회의'를 통해 향후 세계지배 전략과 세계 단일국가 수립을 위한
계획을 논의합니다.그 외에 삼각위원회,CFR 등을 각종 기구와 UN을 비롯한
IMF,세계은행등 세계정부수립 단체들의 맨 위에 로스차일드가가 있습니다.

미국 CFR이 16년간 연구하여 나온 '세계통합전략'에서 그들은 세계를 10개로
구분하여 각 분야별로 책임 국가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교육질서'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교육을 과도하게 칭찬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또한 빌더버그 그룹 회원이며 프리메이슨입니다.

더이상 음모론..이라는 말도 안되는 '음모'에 엮이지 마십시요.
소설이나 영화처럼 픽션(fiction)임을 의도하여 일부러 퍼뜨린 말이지만
이 상황이 심각한 논픽션이라는 것을 이쯤되면 모두 다 알수 있습니다.

 
 




▲ 메이어 암셸 마이어의 다섯 아들들과 자손들..2010년에 데이비드 로스차일드가
회장자리에 있던 영국 투자은행 'NM 로스차일드&선스'-각국 정부나 왕실,부호들의
돈을 250년동안 은밀하게 관리해서 '비밀의 화원'이라고 불리던 곳에 로스차일드가
의 일원이 아닌, 외부인 니겔 히긴스가 회장으로 추대되면서 화제가 되었었습니다.

하지만 니겔 히긴스의 역할은 내부 조직강화 및 관리에 그치고, 실질적 고객관리는
여전히 데이비드 로스차일드가 맡는 형태입니다.그의 아들 알렉산더 로스차일드가
2008년 NM로스차일드에 입사한 상태로 데이비드가 CEO자리를 물려주려고 하자
'시간을 더 달라'며 고사하였고,후계 공백이 생길것을 대비 회장을 지명한것입니다.




▲ 메이어 암셸 로스차일드 이후 로스차일드(Rothschild) 가문의 전체 가계도





Philippine Mathilde Camille de Rothschild (1933~)
사토 무통 로스차일드 와인(Château Mouton Rothschild)의 소유주




Eric Alain Robert David de Rothschild (1940~)
파리 올리앙스(Paris-Orléans)와 샤토 라피트 로쉴드 와인(Château
Lafite-Rothschild)을 이끌고 있음




David René James de Rothschild (1942~)
Rothschilds Continuation Holdings의 회장.




Benjamin Edmond Maurice de Rothschild (1963~)
Edmond Rothschild의 아들. Edmond de Rothschild Group의 회장




Nathaniel Philip Victor James de Rothschild (1971~)
Jacob Rothschild의 아들.로스차일드가의 후계자, JNR Limited의 회장




David Mayer de Rothschild (1978~)
Evelyn Rothschild의 아들.환경단체 Adventure Ecology 설립,환경운동가




Alexandre Guy Francesco de Rothschild (1982~)
David Rothschild의 아들.아버지가 회장으로 있던 NM로스차일드&선스 근무
 

 
............................................................................................................................................

로스차일드가(家)의 붉은 방패



▲ Rothschild shop ' Two-headed eagle red shield'

1743년 프랑크 푸르트에 골동품 가게를 연 '메이어 암셸 로스차일드'의
아버지가 그의 문앞에 사인으로 걸어 놓았던 붉은 방패(
red shield)입니다.
로스차일드가 이후 자신의 성씨에 사용하기도 했던 것으로 붉은 방패에는
'두개의 머리'를 가진 독수리 즉,로만 이글이 그 가운데 그려져 있었습니다.

머리가 두개 달린 위 독수리는 과거 '비잔틴 제국'의 상징으로 사용되었고
오늘날 이것은 러시아의 국가 문장(Coat of Arms)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 Double Headed Eagle Byzantine Empire Coat Of Arms
'비잔틴 제국'이 사용했던 두개의 머리가 달린 독수리 문장




▲ Russian Coat of Arms
현재 러시아의 국가 문장으로 사용되는 모습




▲ emblem for Scottish Rite Freemasonry
Scottish Rite 프리메이슨 엠블럼으로 사용되는 그림


로스차일드가의 문장(Coat of Arms)



▲ Rothschild Coat of Arms

로스차일드가의 공식 문장(Coat of Arms)입니다.
좌우에 사자와 유니콘이 방패를 들고 있고 맨 위쪽에는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있습니다.방패의 화살을 손에 쥐고 있는 한쪽 팔이 대각선의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고 중앙에는 작은 방패가 또한 그려져 있습니다.




▲ Prince Charles Coat of Arms

위 그림은 영국 찰스 황태자의 공식 문장입니다. 방패,투구,투구장식
투구 깃, 모토가 쓰여진 리본등 모든 장식이 갖춰진 문장 형태입니다.
방패 그림의 좌우에는, 왕관을 쓴 사자와 유니콘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중앙 방패와 사자와 유니콘의 목에는 3개의 짧은 리본을 가로
줄 아래에 늘어뜨린 흰 리본들이 있습니다.그리고 사자의 발아래에는
'타조깃털 3개'가 유니콘의 발 아래에는 '붉은 용'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맨 아래 리본에 적혀 있는 글자는"'Ich Dien"인데, 독일어로
그 의미는 "I Serve"입니다.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검은 방패에 안에
금빛의 15개의 동전이 있는 문장은 콘월 공작의 문장입니다.




▲ Queen Elizabeth II Coat of Arms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문장입니다.영국 찰스 황태자의 문장과
거의 비슷합니다.중앙에 방패를 둘러싼 벨트에는 가터 훈장의 내용이
쓰여있습니다.'Hon Y Soit Qui Mal Y Pense'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그 의미는 프랑스어로 '악(惡)을 생각하는 자에게 수치를'이라는 뜻으로
에드워드 3세가 창시하여 가터 기사단에 수여했던 훈장의 내용입니다.
훈장수여는 가터기사단(Kights of the Garter)의 일원이 된다는 것인데,
실제 훈장엔 블루 벨벳리본에 금실로 위의 문자가 수놓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맨 아래의 리본에 적힌 글자는 "Dieu et Mon Droit"입니다.
역시 프랑스어인데 그 뜻은 "신과 나의 권리" 입니다.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



▲ Coat of Arms of The City of London

영국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의 공식 문장입니다.
방패, 투구, 투구장식, 투구 깃, 모토가 쓰여진 리본등의 모든 장식들이
갖춰진 완전문장 형태입니다.방패 양쪽에는 용 두 마리가 있고 가운데
레드 크로스(red crosses)가 그려진 방패를 함께 들고 있습니다.

맨 아래 리본에 쓰여진 글자는 라틴어로 'Domine dirige nos'입니다.
그 뜻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신이여, 우리를 인도하소서' 란 내용입니다.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은 런던 내에 있는 금융중심지를 말합니다.
잉글랜드 은행을 비롯해 많은 금융기관이 밀집해 했으며 자본시장, 상품시장,
보험시장 등이 모두 집중되어 있습니다. 1.12 제곱마일(2.90 ㎢) 정도의 좁은
지역으로 런던타워~성바오로 성당까지,테임즈강~ 런던 월까지 지역입니다.

뉴욕의 월가와 함께 시티 오브 런던은 '세계금융의 중심지'입니다.중앙은행인
영국은행과 증권거래소,왕립어음교환소등을 포함, 각국의 금융회사 본사들과
지사가 밀집되어 있습니다.약 1평방 마일 면적으로 스퀘어마일로도 불립니다.




▲ Coat of Arms of The City of London

실제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의 공식 문장이 부착되어
거리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는 사진으로, 측면에서 본 모습입니다.




▲ Coat of Arms of The City of London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의 공식 문장을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많은 건물에서 문장을 볼수 있습니다.가운데 방패 안에 있는
흰 바탕에 레드 크로스는 시티 오브 런던의 'flag' 모양이기도 합니다.


로스차일드가(家) 다섯개의 화살



▲ 역시 로스차일드 가문의 문장(紋章).

다섯 개의 화살은 이후 유럽 각지로 흩어져 은행을 차린,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의 다섯 아들을 의미합니다. 화살을 한 데 묶은 것은 '함께
뭉치면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 LCF Rothschild Group insignia.

LCF 로스차일드 그룹 휘장.LCF 로스차일드 그룹은 1953년 프랑스 로스차일드
'Edmond de Rothschild'가 세운 회사로 주로 PB부분을 담당하는 뱅킹 그룹으로 본사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고, 프랑스 파리,룩셈부르크에도 위치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회사명을 'Edmond de Rothschild Group'로 바뀌었습니다.




▲ Edmond de Rothschild Group Logo
현재 Edmond 로스차일드 그룹의 로고




▲ Edmond de Rothschild Group Logo enlargement
현재 Edmond 로스차일드 그룹의 로고를 확대한 모습


로스차일드가(家)의 와이너리-샤토 무통 로쉴드



▲ Château Mouton Rothschild logo

'샤토 무통 로쉴드'의 로고.샤토 무통 로쉴드는 네이선 로스차일드의 아들
나다니엘 로스차일드가 만든 와인 제조업체입니다. 같은 이름의 와인또한
프랑스 보르도 1등급 와인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국내외에서 유명합니다.

<떼루아>라는 한국 드라마에서..주인공 김주혁이 프랑스로 직접 찾아갔었던
그 와인의 실제 모델이 된 것이, 바로 샤토 무통 로쉴드1945년산 와인입니다.

프랑스의 제임스 로스차일드 역시 '샤토 라피트 로쉴드'라는 보드도 1등급으로
분류되는 포도주와 양조장을 매입하게 되는데 현재는 프랑스 로스차일드 금융
그룹이 소유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적포도주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샤토 무통 로쉴드'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오퍼스 원(Opus One), 칠레에서
콘차이토로와 알마비바를 생산하면서 전세계로 와인 사업을 확장나갔습니다.
프랑스 로스차일드의 '샤토 라피트 로쉴드' 역시 칠레에서 로스바스코스, 아르헨티나에서 보데가스 카로를 생산하며 와인 사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현재 로스차일드(Rothschild) 가문이 생산하는 모든 와인들은 메이어의 다섯
아들을 상징하는 다섯 개의 화살을 로고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샤토 무통 로쉴드'의 와인 레이블(label)



▲ 1973 피카소(Picasso)가 그린 '샤토 무통 로쉴드' 레이블

1973년에 파블로 피카소가 그렸던 와인 레이블 그림입니다.세계적인 화가인
피카소,샤갈,달리,앤디 워홀,후안 미로등은 모두 '샤토 무통 로쉴드'의 레이블
에 자신의 그림을 그렸습니다.이 레이블 때문에 와인 가격에도 영향을 받으며,
샤토 무통 로쉴드의 와인 그림 레이블 자체도 수집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발표 '샤토 무통 로쉴드' 레이블(label)



▲ Chinese Artist Xu Lei the label for the 2008 vintage

2010년 11월에 발표된 '2008년 와인 레이블'의 디자인은 중국인 화가가
맡았습니다.슈레이(Xu Lei)라는 중국 현대 미술가로서 샤토 무통 로쉴드의
레이블에 회사의 상징 동물인 양과 블루톤의 색감을 넣어서 표현했습니다.

무통 로쉴드의 경우, 레이블 디자인을 발표한 2010년 11월 중순 이후 열흘
만에 2008년 산 와인 가격이 34%나 올라, 병 당 약 6000파운드(약 1070만원)
선에 거래되었으며 샤토 라피트 로쉴드는 1만 파운드(1700만원)었습니다.




▲ Bernar Venet the label for the 2007 vintage

2010년 1월에 공개한 '2007년 빈티지 와인 레이블'. 디자인은 프랑스의
미술가인 베르나르 브네다(Bernar Venet)가 습니다.그는 현재 프랑스에서
주목 받고 있는데 라벨에 자신의 대표작 '철로 그린 거대한 곡선'의 드로잉을
넣었습니다.개념주의 미술가인 그는 철 조각의 마술사로 불리고 있습니다.




▲ Lucian Freud the label for the 2006 vintage

2009년 2월 에 공개된 '2006년 빈티지 와인 레이블'. 세계적 심리학자인
프로이드의 손자인 루시앙 프로이드(Lucian Freud)가 직접 디자인했습니다.
그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Benefits Supervisor Sleeping' 이란 누드화가 3360만 달러에 팔리는 등 생존 화가중에 그림값이 가장 비싼 화가입니다.

 
............................................................................................................................................
<실제 '화폐전쟁' 책 내용 中 에서 부분 발췌>

로스차일드의 첫 번째 뭉칫돈



메이어 암셀 바우어(Mayer Amschel Bauer)는 1744년 2월 2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지역에서 태어났다.그의 아버지 암셀 모세 바우어(Amschel Moses Bauer)는 유럽 일대를 떠도는 골동품상이자 대금업자였다. 메이어가 태어나자 모세는 프랑크푸르트에 정착하기로 결심한다.

어릴 때부터 총명한 메이어를 위해 그의 아버지는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돈과 대출에 관한 상업적 지식도 체계적으로 가르쳤다. 몇 년 후 아버지가 죽자 메이어는 겨우 열세 살의 나이로 친척들의 격려를 받으며 하노버로 가서 오펜하이머 가문의 은행 수습생으로 일했다.

오펜하이머(Oppenheimer)가문
세계 최고의 다이아몬드 업체 드비어스를 설립해 100년 동안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는 가문

메이어는 뛰어난 감각과 부지런함으로 은행의 온갖 전문 기능을 빠르게 습득했다. 7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는 마치 해면이 물을 빨아들이듯 영국에서 전해진 각종 금융업의
기상천외한 부분까지 모두 소화했다. 탁월한 업무 능력을 인정받은 메이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식 직원이 되었다.

은행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배경이 탄탄한 고객들과 친분 관계를 쌓았다.
그 중에는 훗날 그의 운명을 바꿔줄 에스토르프 장군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메이어는 정부와 국왕을 상대로 대출해주는 것이 개인을 상대로 한 대출보다 훨씬 수익도 크고 안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출 금액이 많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정부의 세금 수입을 담보로 잡을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었다. 영국에서 들어온 낯선 금융 이념은 메이어에게 완전히 새로운 충격이었다.

몇 년 후, 젊은 메이어는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 아버지의 대부업을 계승한다. 그는 자신의 성씨를 로스차일드(Rothschild : 독일어로 ‘rot’는 ‘붉은색’, ‘schild’는 ‘방패’를 의미함)로 바꾸었다. 그는 에스토르프 장군도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왔으며 윌리엄 왕자를 보필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 관계를 잘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메이어를 다시 만난 에스토르프 장군은 몹시 기뻐했다. 장군 본인도 화폐 수집가였다. 메이어는 집안 대대로 골동품상을 해왔으므로 이 분야라면 훤했다. 고대의 화폐를 화제로 이야기할라치면 장군은 얼굴이 상기되어 듣곤 했다. 더 신나는 일은 메이어가 희귀한 금화를 장군에게 아주 싼 가격으로 팔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으며, 에스토르프 장군은 메이어를 진정한 친구로 생각했다. 메이어는 왕실 사람들과도 얼굴을 익히면서 관계를 쌓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에스토르프 장군의 소개로 윌리엄 왕자를 알현했다. 왕자도 금화 수집가였기 때문에 메이어는 에스토르프 장군에게 하던 식으로 왕자의 환심을 살 수 있었다.

메이어가 희귀한 금화를 싼 가격으로 계속 공급해주자, 윌리엄 왕자는 고마운 마음에
자기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했다. 이때다 싶은 메이어가 왕실의 정식 대리인이 되게 해달라고 청했고, 마침내 그의 뜻은 이루어졌다.

1769년 9월 21일, 메이어는 자신의 명패에 왕실의 엠블럼을 새기고 그 곁에 ‘M.A.로스차일드, 윌리엄 왕자 전하의 지정 대리인’이라고 써 넣었다. 그때부터 메이어의 신용은 더 좋아지고, 사업은 날이 갈수록 번창했다.

역사적으로 윌리엄 왕자는 부를 축적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18세기 유럽에서는
‘평화 수호’라는 명목으로 다른 나라에 군대를 빌려주는 ‘용병’이 성행했다. 윌리엄 왕자는 유럽의 왕실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특히 영국 왕실과 곧잘 사업을 벌였다.

빚이 많은 영국 정부는 외국에서 돈을 벌어들이려고 늘 용병을 파견했다. 그런데 영국
병력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에 윌리엄 왕자와 의기투합한 것이다. 훗날 미국에서 독립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워싱턴 측이 상대해야 할 독일 병사 수가 영국 병사보다 많을 정도였다.



헬름 9세- 윌리암 왕자

윌리엄 왕자는 이 사업을 통해 유럽 왕실 사상 최고로 많은 2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윌리엄 왕자를 가리켜 ‘유럽에서 가장 냉혹한 대부업자’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윌리엄 왕자의 측근이 된 메이어는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해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얼마 후 프랑스혁명(1789~1799년)이 일어났는데, 그 영향은 점차 주변 군주제 국가에까지 미쳤다. 이에 윌리엄 왕자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혁명이 독일에도 영향을
미쳐 폭도에게 재산을 약탈당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왕자의 우려와는 다르게 메이어는 프랑스혁명을 반겼다. 사회가 불안해질수록
그의 금화 유통량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혁명의 창끝이 신성로마제국을 겨누자, 독일과 영국의 무역 중단으로 수입품 가격이 폭등했다. 그러자 메이어는 영국에서 물건을 들여다 독일에 판매함으로써 거액의 차익을 챙겼다.

메이어는 유대 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지도층 인물이었다. 매주 토요일 밤, 교회의 예배가 끝난 후 메이어는 유대인 학자들을 그의 집에 초대해 밤늦도록 포도주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었다.메이어는 “함께 기도하는 가족은 단결이 잘된다.”라는 말을 남겼다.

로스차일드 가문으로 하여금 그토록 정복욕과 권력욕에 집착하게 만든 힘은 과연 무엇일까?

1800년에 이르러 로스차일드 가문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제일가는 유대인 갑부가 되어
있었다. 메이어는 그 해에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수여하는 ‘제국 왕실 대리인’ 칭호를 부여 받기도 했다. 이 칭호 덕분에 그는 제국의 각 지역을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었으며, 유대인들에게 부과되는 각종 세금을 면제받았다.

그의 회사 직원들은 무기를 소지할 수도 있었다.1803년에는 메이어와 윌리엄 왕자의
관계를 더 돈독케 하는 계기가 있었다. 그 내용인즉 윌리엄 왕자의 사촌형 중 덴마크 국왕이 있었는데, 그가 윌리엄 왕자에게 돈을 빌리고자 했다. 윌리엄 왕자는 자신의 재산이 노출될까봐 빌려주기를 꺼렸다.

메이어가 이 사실을 알고 왕자에게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즉 왕자가 돈을 내놓되 메이어가 나서서 로스차일드의 명의로 덴마크 국왕에게 대출을 해주고, 이자는 메이어가 공제하는 방식이었다. 왕자는 그럴듯한 아이디어라며 좋아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부를 드러내지 않고도 돈을 빌려줄 수 있는 데다 원금을 떼일 걱정도 없었다.

메이어로서는 꿈에도 그리던 일이었다. 국왕을 상대로 한 대출은 안정적 수익뿐 아니라 명성을 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대출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곧이어 덴마크 왕실에서 신청한 여섯 건의 대출이 메이어를 통해 성사되었다.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은 삽시간에 유명해졌다.

특히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나폴레옹은 정치에 몸담은 후로 윌리엄 왕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윌리엄 왕자는 분명하지 않은 형세에서 섣불리 태도를 정하지 못했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윌리엄 왕자의 가족인 헤스와 캐더를 유럽 통치자 명단에서 빼버리고, 프랑스군을 보내 국경을 위협했다.

이에 윌리엄 왕자는 황급히 덴마크로 망명했다. 떠나기 전에 그는 300만 달러에 달하는 현금을 메이어에게 보관시켰다. 이 돈이 바로 메이어에게 막대한 권력과 재산을 가져다주고 금융제국을 세우게 한 첫 번째 뭉칫돈이다.메이어는 잉글랜드은행보다 더
큰 은행을 설립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윌리엄 왕자에게 거액을 받자마자 그는 행동을 개시했다. 그의 다섯 아들은 마치 다섯
발의 화살처럼 유럽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중요한 다섯 개 지역에 파견되었다. 큰아들
암셀은 프랑크푸르트 본점을 지키고, 둘째 살로몬은 빈으로 보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도록 했다.

셋째 아들 네이선은 영국으로 보내 대국을 주도하도록 했으며, 넷째 칼은 나폴리로 보내 근거지를 세우게 했다. 형제들은 늘 긴밀한 연락을 주고 받았으며, 이들 사이의 연락을 담당한 다섯째 제임스는 파리의 업무를 관장했다.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한 금융제국은 이렇게 막을 열었다.


워털루전투와 로스차일드 가



네이선 로스차일드(Nathan Rothschild)는 로스차일드의 셋째 아들로, 다섯 형제 가운데 식견과 담력이 가장 뛰어났다. 1798년, 그는 아버지로부터 프랑크푸르트에서 영국으로 건너가 로스차일드 가의 은행 업무를 개척하라는 명을 받는다.

네이선은 학식이 깊고 성격이 과감한 은행가였는데, 그의 내면세계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금융에 천부적 소질을 갖춘 네이선은 1815년 신출귀몰한 수단으로 런던에서 손꼽히는 은행의 거두로 성장한다.

네이선의 큰형 암셀 로스차일드는 프랑크푸르트에 로스차일드은행 본점을 창립했다.
로스차일드의 둘째 아들 살로몬은 오스트리아 빈에 지점을 세웠고, 넷째 아들 칼은 이탈리아 나폴리에, 다섯째 아들 제임스는 프랑스 파리에 지점을 세웠다. 이렇게 해서 로스차일드 가문이 세운 은행은 세계 최초의 국제은행 그룹이 되었다.

다섯 형제는 1815년 유럽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이때 유럽에서는 대륙의 운명을 결정할 워털루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만약 나폴레옹이 최후의 승리를 거머쥔다면 프랑스는 의심할 바 없이 유럽의 주인이 되고, 웰링턴 장군이 프랑스군을 무찌르면 영국이 유럽의 형세를 주도할 것이었다.

전쟁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로스차일드 가는 멀리 내다보는 눈으로 필요한 전략 정보를 수집할 정보망을 구축해놓았다. 이 방대한 비밀 정보망은 산업 스파이들로 구성되었다.

유럽 각 나라의 수도와 주요 도시뿐 아니라 중요한 교역과 상업 요지에 파견된 그들은
갖가지 상업과 정치 정보를 수집해 런던, 파리, 프랑크푸르트, 빈, 나폴리를 오가며 전달했다. 이 정보망은 효율과 속도 및 정확성에서 웬만한 정부의 정보 조직보다 훨씬 뛰어났고, 다른 상업적 경쟁자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하여 로스차일드은행은 거의 모든 국제 경쟁에서 뚜렷한 우위를 선점하게 되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마차와 배가 유럽 각지와 해협을 누볐으며, 거리마다 로스차일드은행의 스파이들이 배치되었다. 로스차일드 가는 어마어마한 현금과 채권, 정보를 주무르는 금융가의 큰손으로 군림했다.

그들이 독점한 최신 정보는 순식간에 증권시장과 상품시장으로 전파되었다.
당시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워털루전투의 결과였다.

1815년 6월 18일, 벨기에 브뤼셀 근교에서 전개된 워털루전투는 웰링턴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과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국가의 운명을 걸고 벌이는 한 판 승부였다. 또한
수많은 투자자가 거액을 놓고 벌이는 도박의 대상이기도 했다. 이 도박에서 이기면 천문학적인 돈을 움켜쥐지만, 지는 날에는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될 수도 있었다.

사람들은 이 전쟁의 결과를 궁금해했다.
런던 증권거래소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모두가 초조하게 워털루전투의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영국이 패할 경우 영국의 국채(consols) 가격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승리한다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터였다. 전쟁이 한창일 무렵 로스차일드의 스파이들은 양측 군대 내부에서 최대한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느라 민첩하게 움직였다. 이들 중에는 최신의 전황을 가까운 로스차일드 중계 지점으로 전달하는 사람도 있었다.

저녁이 되어 나폴레옹의 패색이 짙어지자, 로스차일드 측의 정보 전달원은 즉시 브뤼셀로 말을 달려 오스탕드 항에서 배로 갈아탔다. 그가 특별 통행증이 있는 로스차일드 가의 쾌속선에 뛰어올랐을 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다. 이때 영국해협은 풍랑이 무척 거셌다.

2,000프랑의 비용을 치르고서야 위험을 무릅쓰고 해협을 건네주겠다는 선원을 찾을 수 있었다. 정보 전달원이 6월 19일 새벽 영국 포크스턴의 해변에 도착했을 때,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직접 부두까지 나와 맞아주었다. 네이선은 급히 편지 봉투를 뜯고 제목만 대충 훑어보고 나서 즉시 런던의 주식거래소로 달려갔다.

네이선이 빠른 걸음으로 주식거래소로 들어서자 초조하게 전쟁의 결과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숨을 죽였다. 모든 사람의 눈은 네이선의 무심한 듯 전혀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을 주시했다. 네이선은 갑자기 걸음을 늦춰 ‘로스차일드의 기둥’이라고 불리는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그의 얼굴은 마치 석고상처럼 감정의 변화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 거래소를 가득 메우던 소란스러움은 이미 온데간데 없었다.
모두가 네이선의 눈초리에서 뭔가 읽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윽고 네이선이 주변에 있던 로스차일드 가문의 거래원들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거래원들은 묵묵히 거래 창구로 가서 조용히 영국의 국채를 팔아 치우기 시작했다.

홀 안은 술렁거렸다.귓속말로 대화를 주고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쩔 줄 몰라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 있는 사람도 있었다. 수십만 달러어치의 영국 국채가 맹렬한 기세로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국채 가격은 눈깜짝할 새 바닥으로 뚝 떨어졌고,
이에 자극을 받은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국채를 팔아댔다.
그때까지도 네이선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자기 자리에 기대어 있었다.

이때 누군가 외쳤다.
“로스차일드가 알아냈다! 웰링턴이 전쟁에서 패했다!”

이 소리에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놀란 사람들은 앞다투어 투매에 나섰다.
투매 열기는 순식간에 사람들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 모두가 따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값도 안 나가는 영국 국채를 당장 팔아야 조금이라도 손해를 덜 볼 것 같았다.
몇 시간에 걸친 투매 광풍이 휩쓸고 지난 후 영국 국채는 액면가의 5%도 안 되는 휴지 조각으로 변해 있었다.

네이선은 이 모든 과정을 시종일관 태연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그의 눈빛이 한 번 번뜩였다. 오랫동안 훈련받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댓글목록

퍼온글 목록

Total 15,834건 2 페이지
퍼온글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15804 일본 방사능 오염의 현실태 충격고발! 현우 2013-07-18 21467 26
15803 세탁소 옷걸이로 독서대 만들기 퍼옴 조명탄 2011-09-16 21370 12
15802 시모토아 엑시구아 -cymothoa exigua 댓글(2) 유현호 2010-07-15 21158 18
15801 아시아 소사이어티 홀부르크 그리고 김대중 (국제유태자본… 비접 2010-06-20 21110 9
15800 김대중과 이희호/이희호의 전남편??? dreamer 2012-01-09 20992 73
15799 [전격공개] 공포(恐怖)의 북한 '핵(核)추진 잠수함' 라덴삼촌 2010-11-23 20311 16
15798 새누리 김무성..현정은이가 조카 맞습니다. gelotin 2013-05-09 20186 16
15797 북한 함경도 보위총국 요원 어부 돌팔매질에 숨져 댓글(1) 모모 2011-06-30 20105 16
15796 적자타령 ′서울시메트로 9호선′ 평균 연봉 9000만원 한글말 2012-04-23 19965 5
15795 강대국의 이유 - 미군 병사의 장례식 댓글(1) 東素河 2010-09-17 19794 20
15794 이대로 가다간 대한민국은 없어진다. Long 2018-05-20 19694 153
15793 박주신 사진 댓글(3) 비탈로즈 2012-02-24 19431 25
15792 (펌) 노무현 암살 의혹-① 댓글(1) 自强不息 2011-09-15 19373 36
15791 전 육군 헌병감, 신윤희 장군의 ‘12,12’ 때 현장… 댓글(1) 벽파랑 2012-01-17 19041 13
열람중 로스차일드가(Rothschild)-세계정부수립의 핵심 … 댓글(1) 조명탄 2011-09-18 18875 8
15789 통수의 족속들...."전라도 광주의 딸" 이소연 뒷통수… gelotin 2013-09-25 18857 27
15788 ㉿━박정희의 "자주국방"과 "국가안보"에 관한 명언(연… 自强不息 2011-04-12 18787 38
15787 박근혜 학창시절 생활기록부· 성적표보니… 댓글(1) 현우 2012-12-20 18684 14
15786 북한군의 실상(자살특공대. 특수부대 등) 댓글(1) 東素河 2010-11-29 18653 17
15785 세계 최강 미군도 구타와 악폐습이 있었다. 레몬향 2011-07-26 18604 14
15784 1999년 빌더버그 회의 참석자에 김대중과 김영삼 비접 2011-09-13 18584 18
15783 채동욱과 미혼모 주점주인 임여인..... 댓글(1) gelotin 2013-09-25 18503 27
15782 나는 경제저격수 였다(EBS) 조명탄 2011-09-21 18416 9
15781 6.1~6.25 댓글(1) 흐훗 2010-06-25 18315 13
15780 北수용소 28년 김혜숙 씨 "몸 벌집될 때까지 총 쏴 … 현우 2011-07-14 17912 16
15779 6.15회원명단 댓글(1) 흐훗 2010-05-24 17552 17
15778 국내정국은 어지러운데, 캐나다에선 한인 유학생들 섹스파… 댓글(1) 김종오 2010-03-21 17435 13
15777 北서 '오징어 박스'에 전신 마취 된 女 2명 넣어 인… 천제지자 2012-10-21 17297 20
15776 신세계질서 [엔드게임 - 지구 노에화 청사진]| 비접 2010-06-23 17234 15
15775 김구의 나의 소원 전문 댓글(5) 두류인 2010-06-27 17195 11
게시물 검색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 대표자 : 지만원 | Tel : 02-595-2563 | Fax : 02-595-2594
E-mail : j-m-y8282@hanmail.net / jmw327@gmail.com
Copyright ©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All rights reserved.  [ 관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