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5.18이 다가 왔습니다.
이날만 되면 광주로 내려간다고 설레발치는 사람들 많이 있는데 정작 한국 역사의 큰 획을 그은 5.16군사혁명은 죄악시 여기고 5.18은 과대포장하여 기념하는 것을 보면 한국 현대사에 대해 국민들 인식이 잘 못되도 한참 잘 못되었다고 느껴집니다.
광주사태(또는 광주민주화운동), 참으로 말도 많고 명칭에 대해서도 이래저래 말도 많습니다.
필자는 '광주민주화사태' 라고 정의내리고 싶습니다.
순수한 광주시민들이 민주화운동한 것은 사실이고, 불의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시민들을 총으로 쏴 죽이고 난동을 부린 것도 맞는 이야기이기 때문 입니다.
용어에 대해서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잠시 언급하겠습니다.
'광주사태'라고 이야기하면 호남사람들 괜히 흥분합니다.
사실 흥분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광주사태'라는 용어 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국군과 시민군간의 총격전을 뜻하는 용어 입니다.
그 사건을 놓고 이야기 할대에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아니라 '광주사태'라고 말을 해야 정확한 표현이 됩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용어 는 광주시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순수성을 이야기할때 써야 바른 표현이 됩니다.
이 두가지 용어의 정의에 대해 체크 잘 해주시기를 부탁드리며, 오늘의 본문은 '광주사태'에 대한 것입니다.
광주사태대 죽은 사람은 몇명일까요?
초기에는 수만명이 죽었다, 수천명이 죽었다는 유언비언이 나 돌았지만 밝혀진 바(김대중 정부 시절)에 의하면 2백수십명의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많다면 많은 수치이기는 하나 유언비언에 비하면 1/100도 못미치는 결과 입니다.
그 외 "군인이 여자 젓가슴도려냈다", "사람을 죽이고 암매장했다", "경상도 군인이 광주시민들 다 죽인다"등 여러가지 소문이 있었으나 모두다 유언비언으로 밝혀졌습니다.
광주사태때의 사상자에 대해 도표를 통해 쉽게 알아보겠습니다.
◆ 1982년 3월 15일 육군본부에서 발표한 사망자 (189명)
직업
사망자 수
직업
사망자 수
민간인
162명
군인
23명
경찰관
4명
◆ 1995년 서울지검에서 발표한 사망자 (193명)
직업
사망자 수
직업
사망자 수
민간인
166명
군인
23명
경찰관
4명
◆ 2001년에 발표된 사망자 (162명)
사망자별 지업 분포도
직업
사망자 수
직업
사망자 수
근로자
35명
자영업
12명
학생
31명
운수업, 운전기사
12명
무직
23명
서비스직
11명
불명
17명
농업
4명
사무직
13명
공무원, 방위병
각 2명
(박준성님의 글)
- 위의 불명 17명에 대해 계엄사 조사에서는 13명으로 4명의 오차가 있습니다.
◆ 날자별 사망자 통계 (일반시민 및 시민군 포함)
날자
총사망자
M-16
칼빈
타박상
기타총상
기타
19일
2명
2명
20일
7명
1명
2명
4명
21일
61명
30명
16명
15명
타박상중 일부 몇명
22일
29명
16명
5명
3명
차량사 5명
23일
20명
14명
1명
2명
3명
24일
12명
8명
1명
1명
1명
자상 1명
26일
1명
1명
27일
26명
22명
1명
2명
자상 1명
합계
158명
91명
26명
25명
9명
7명
- 22~26일기간동안에는 시 외곽으로 철수하던 계엄군을 시민군이 쫓아가며 교전을 벌여 61명의 억울한 사망자가 발생함
(즉 이기간동안의 사망자의 책임은 계엄군이 아니라 시민군에게 있다고 봐야함)
- 사망자중 13명의 대해서는 신원 확인 불가능
(이 자들에 대해서는 북에서 온 공작원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확인 불가능)
- 칼빈, 기타총상은 시민군의 공격에 의한 사망자임
- 21일부터는 시민군이 계엄군의 M-16을 탈취하여 무장하였기 때문에 21일 이후부터의 M-16에 의한 사망자는 계엄군 뿐만 아니라 시민군에게도 책임이 있음
◆ 정권 및 상황에 따라 변하는 광주사태 사망자 수
댓글목록
지만원님의 댓글
지만원 작성일
12-06-07 15:06
위의 "날자별 사망자 통계" 중 M16 및 기타총상에 대한 통계는 1995년 광주사람들의 주장에 따라 수정된 통계입니다. 제 판단으로는 1985년에 안기부가 작성한 통계는 이와 정 반대입니다. 총상 사망자 중 69%가 무기고 총상입이다. 1983년 육군본부가 작성한 매우 두꺼운 "계엄사"에도 70%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런 통계가 어째서 뒤바뀌었는지에 대해 생각을 한 번 해 보십시오. 역사바로세우기 수사가 진행되자 광주 사람들 사이에는 M16에 맞았다고 해야 보상금이 많아진다는 말이 퍼졌습니다. 1995년 당시의 조사는 유족들의 떼쓰기에 따라 변질됐습니다. 1980년 5월에 땅에 묻혀 뼈만 남아 있고 총상이 없는 상태에서 16년만에 무덤을 일일히 파혜쳐 조사를 한다해도 규명하지 못할 사인에 대해 어떻게 살아있는 유족들의 말만듣고 "1980년에 광주유지, 군, 병원의사, 총상전문가. 유족들이 합동해서 기타총상으로 죽었다 한 결론"을 놓고 16년 후에 다시 M16총상으로 죽었다 뒤 바꿀 수 있는 것입니까? 조선닷컴에 통계를 소개한 분께서는 이 중요한 포인트를 간과하신 것 같습니다. .
500만 야전군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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