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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경복궁 방화는 누가 했는가에 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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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집정관 작성일10-06-04 20:45 조회6,193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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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istory21.org/zb41/view.php?id=discuss2008&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desc&no=1

글쓴이: 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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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란때 경복궁 방화는 누가 했나?


인터넷에는 임진왜란 시기의 실록기록이 엉터리라는 주장이 퍼져 있습니다. 궁궐연구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한 연구자가 자신의 저서에 그렇게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실록 기사에서는 궁궐에 백성들이 불을 질렀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궁궐박사라는 분이 쓴 <조선궁궐이야기>에는 이 기록을 부인하고 일본군이 불을 질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궁궐박사의 권위에 힘입어 엉뚱한 주장이 진실인양 유포되고 있어서 사실관계를 바로 잡고자 합니다.


1. 실록은 과연 날조되었나?

과연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은 일부의 주장대로 날조된 것일까요?  
민중들이 궁궐을 불질렀다는 주장은 일제때 처음나온 잘못된 것일까요?

결론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일본군이 서울에 입성하면서 보았다는 화려한 궁궐은 존재하지 않은 허구였던 것입니다.
왜 이런 엉터리 주장이 나오게 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어디서 엉터리 주장은 시작되었나?

궁궐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신 어느 분(홍순민박사)의 글입니다.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휘하의 장수 오오제키大關의 전기 《조선정벌기》의 한 대목이다. 5월 3일에 입성한 그는 경복궁을 처음 본 소감을 적어놓았는데, 그에 따르면 적어도 5월 3일까지 경복궁은 건재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궁전은 텅 비었고 사대문은 제멋대로 열려 있었다. 그제야 전각을 자세히 살펴보니 궁궐은 구름 위에 솟아있고 누대는 찬란한 빛을 발하여 그 아름다운 모습은 진나라 궁전의 장려함을 방불케 하더라. … 후궁에는 화장품 향기가 감돌고 산호의 대상에는 화려한 거울이 덧없이 남아 있었다. … 건물마다 문이 열려 있고 궁문 지키는 자 없으니 어디를 보아도 처량하기 짝이 없다….>  -  우리궁궐이야기 중에서 (홍순민교수)


만약 이 일본측 기록이 진실이라면,
분명히 경복궁이 백성들의 손에 불탔다는 선조수정실록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매우 심각한 일이 될 것입니다.

이제 조선의<선조수정실록>과 일본의<조선정벌기>는 어차피 둘중에 하나가 엉터리로 판명이 나야할 상황입니다.


3. '조선정벌기'는 전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大關定祐의 <조선정벌기>는 명백히 1662년에서 1665년에 나온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만약 대관정우가 소서행장의 부하장수가 맞고 1592년에 한양에 입성했다면 너무 늦게 책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만약 그가 한양에 왔을때 30세였다면 90세가 넘어서 책을 펴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분명한 확인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조선정벌기> 대정5년(1916)판의 서문에는 저자의 집필동기를 저자가 31세에 풍신수길의 묘인 안국사에 갔다가 아무도 찾지않고 황폐화된 것에 비분강개해 풍신수길의 공을 높이기 위해 책을 지은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무언가 시대가 맞지 않습니다.

홍순민박사가 자신의 책에서 말하고 있는
"왜군의 선봉대로 가장 먼저 한양에 입성했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휘하의 장수 오오제키大關의 전기 《조선정벌기》"라는 구절은  
아무런 근거없는 주장일 뿐입니다.

즉 저자인 오오제키는 임진왜란 시기에 소서행장의 선봉장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또한 <조선정벌기>는 어떤 장수의 전기가 전혀 아닙니다.
어떤 장수의 전기가 아니라 임진왜란 이전부터 풍신수길이 어떻게 했고,
임진왜란은 어떻게 되었으며
그뒤에는 어떻게 되었는가를 말하고 있는 책입니다.
전기가 아니죠..

"우리궁궐이야기"는 이 부분에서 완전 잘못된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조선정벌기'는 문학작품, 즉 소설이었다.

또하나,
<조선정벌기>는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堀杏庵이 지은 것이고 하나는 大關定祐가 지은 것입니다.

여기서 堀杏庵의 <조선정벌기>에 대한 평을 보겠습니다.

"조선에 관해서는 우월의식을 강하게 드러내기 위해 왜곡된 기사로 일관하고 있다...."
    - 비교한국연구 제10권 "임진왜란관련 한일 역사서사문학의 성격 - 설성경 외"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궁궐박사라는 분이 인용한 大關定祐의 <조선정벌기>입니다.
학자들의 평을 보겠습니다.

"오제키(大關)의 <조선정벌기>는 호리교안(堀杏庵)의 <조선정벌기> 등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문학화를 진전시켰음을 작자 오제키가 이 책의 말미에서 밝히고 있다. .. 자신이 <조선정벌기>를 통하여 새로운 모습의 창작을 도모한 것에 대해 적극 비호하는 언설을 덧붙이고 있다." - 비교한국연구 제10권... 참조



5. 문학작품 '조선정벌기'를 사료로 인용하다.

혹시 홍순민박사가 다른 전기를 오오제키의 <조선정벌기>와 착각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오제키의 조선정벌기 원문>

"是れこそ 殿閣 を熟と見るに, 城闕雲に聳え, 樓臺玉を瑩め其綺麗なる有樣, 秦宮の壯麗を摸し" - '일본군세 조선의 도읍에 공격해들어가다' 부분

<홍순민박사의 우리궁궐이야기>

"그제야 전각을 자세히 살펴보니, 궁궐은 구름위에 솟아있고 누대는 찬란한 빛을 발하여 그 아름다운 모습은 진궁의 장려함을 방불케하더라."

글자 한자 틀리지 않고 그대로 번역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문학작품(소설)에 불과한 오오제키의 <조선정벌기>를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저자가 일본 원문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내용을 가지고 '경복궁은 민중들이 방화로 불타지 않았다'는 증거로 삼고 있었던 것입니다.


6. 일본측 소설은 조선의 실록보다 신빙성이 크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홍순민 박사는 이런 일본측 문학작품인 <조선정벌기>을 인용하면서

"조선측 자료보다 신빙성이 크다."

라고 말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요?
일본측 소설은 믿을만하고 실록은 신빙성이 없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실록에서 매우 자세히 묘사한 '분노한 백성이 불을 질렀다'는 가슴아픈 기록을 모두 거짓말로 치부해 버린 것입니다.

역사는 자신의 치부마저 거울처럼 투명하게 투영해야 합니다.
역사의 일차적인 목적은 감계기능이기 때문이죠.

조선시대의 역사가들조차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역사의 대의를 실천했는데
이를 후손들이 근거도 없이 감히 왜곡이라 주장하고 있는 셈입니다.


7. 곳곳에 잘못된 전제

<조선궁궐이야기>의 곳곳에 사실과 다른 기록이 산재해 있습니다.

"..가토오부대가 서울에 들어온 때는 이튿날인 5월 4일 오전이었다....가토오부대의 종군승 제타쿠(是琢)는 종군기 <조선일기>에 그가 처음 서울에 들어와서 청기와로 이은 궁궐의 모습을 보고 경탄하였던 경험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또 다른 종군승 덴케이의 서정일기에는 5월7일자에 금중에 들어가니 궁전은 모두 초토로 변해있었다...."

그래서 <조선궁궐이야기>는
"궁궐은 5월 4일에서 7일 사이 어느때 불에 타서 파괴되었음을 알수 있다" 라고 단정짓습니다.

그런데 제타쿠(是琢)에 대해 일본사이트를 검토한 결과 이상한 것이 나옵니다.
泰長院是琢 (?~?)
 佐賀泰長院住職。文禄元年四月二十三日、朝鮮に渡海。五月七日、釜山に着く。
엉뚱하게도 제타쿠는 5월 4일 서울에서 불타지 않은 궁궐을 본것이 아니라 5월7일 부산에 도착합니다.

혹시 태장원시탁이 제타쿠가 아닌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습니다. 동일인입니다.

泰長院文書
(5)是琢の日記

문화재로 지정된 태장원문서 속에는 시탁의 일기가 들어있습니다.
제타쿠는 태장원의 3대주지였습니다.
그리고 나베시마의 군을 따라 조선으로 왔던 것입니다.
제타쿠가 한반도로 건너온 것은 임진년 5월7일, 그날 처음으로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따라서 <조선궁궐이야기>의 궁궐방화시점 추정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임이 분명한 것이죠..
따라서 일본의 기록을 바탕으로 선조수정실록의 방화기록을 거짓이라 단정한 것은 잘못입니다.  



8. '조선궁궐이야기' 수정바랍니다.

이제 홍순민박사의 '조선궁궐이야기'를 토대로 유포되고 있는 잘못된 논리,

즉 선조수정실록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주장과
민중방화설이 일본이 퍼트렸다는 이상한 주장은 폐기되어야 합니다.

저자는 조선궁궐이야기를 회수하시고 사실과 어긋난 부분을 삭제수정하기를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임진왜란때 조선의 궁궐을 민중이 방화했다는 실록기록은 거짓'이며 '이런 주장은 일제가 퍼트렸다'는 잘못된 상식도 바로 잡혀야 합니다.  



-실록기록

<도성의 궁성(宮省)에 불이 났다. 거가가 떠나려 할 즈음 도성 안의 간악한 백성이 먼저 내탕고(內帑庫)에 들어가 보물(寶物)을 다투어 가졌는데, 이윽고 거가가 떠나자 난민(亂民)이 크게 일어나 먼저 장례원(掌隷院)과 형조(刑曹)를 불태웠으니 이는 두 곳의 관서에 공사 노비(公私奴婢)의 문적(文籍)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궁성의 창고를 크게 노략하고 인하여 불을 질러 흔적을 없앴다. 경복궁(景福宮)·창덕궁(昌德宮)·창경궁(昌慶宮)의 세 궁궐이 일시에 모두 타버렸는데, 창경궁은 바로 순회 세자빈(順懷世子嬪)의 찬궁(欑宮)이 있는 곳이었다. 역대의 보완(寶玩)과 문무루(文武樓)·홍문관에 간직해 둔 서적(書籍), 춘추관의 각조 실록(各朝實錄), 다른 창고에 보관된 전조(前朝)의 사초(史草),【《고려사(高麗史)》를 수찬할 때의 초고(草稿)이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모두 남김없이 타버렸고 내외 창고와 각 관서에 보관된 것도 모두 도둑을 맞아 먼저 불탔다. 임해군의 집과 병조 판서 홍여순(洪汝諄)의 집도 불에 탔는데, 이 두 집은 평상시 많은 재물을 모았다고 소문이 났기 때문이었다. 유도 대장(留都大將)이 몇 사람을 참(斬)하여 군중을 경계시켰으나 난민(亂民)이 떼로 일어나서 금지할 수가 없었다.> - 선조수정실록 25년 4월기록

댓글목록

엽기정권님의 댓글

엽기정권 작성일

음,,
그렇군요. 잘못알았군요.


그런대 선조실록에는 없고 수정실록에만 있는 모양인데,
수정실록은 사료가 없어서 인조때 야사등에서 채집한 자료도 많이 활용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조작이란 말들도 있으나, 그렇다고 조작이란 증거도 없고(정치적인 의도는 있다고 하는데, 문외한이 말해서 뭐합니까,,) 실록과 수정실록을 모두 보는게 좋다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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