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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태에 대한 끝장토론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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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일 작성일10-01-21 10:38 조회1,868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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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아님, "그는 친구들과 점심식사 뒤 집으로 돌아오던 중 공수부대의 눈에 띄어 무차별 구타당했다" 이것은 사실성립이 불가능한 주장입니다.  공수부대는 5월 21일 저녁 때 비로서 시위진압에 동원되었습니다.  김경철군이 낮에 구타당하였다면 둘 중 하나입니다.  지금도 광주에서 종종 폭행사건이 일어나고 있지요?  만약 그런 평상시 폭행 사건이 아니라면 시위대에 맞은 것입니다.

"19일 03:00에 사망했다."라고 찍고서도 난독증이 있으셨던가요?  19일은 18일이 아닙니다.

"돌로 찍었으니 의학적으로 사흘 후 죽었을 거라고 주장하셨는데"라고 반론하셨는데, 저는 여러 시민군과 기자들의 증언을 그대로 인용하여 시위대가 공수부대원을 돌로 쳐 죽였다고 말한 것입니다. 아래에도 조선일보 서청원 기자가 5월 19일 송고한 기사가 캡쳐되어 있습니다.   

http://study21.org/518/capture/5-19report.jpg

시위대 경험과 시위대 관점으로는 시위대가 공수부대원 머리를 돌로 쳐 죽였습니다.  시위대는 그렇게 알고 있었으며, 시민군들이 그렇게 증언합니다.  그러나 제가 관찰할 때 의학적 사망시간과 날자가 다릅니다.  우리는 그의 이름을 모릅니다.  단지, 5월 20일 정관철 중사의 죽음에 이어 21일부터 군인들이 또 죽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그를 죽였다는 시민군 증언이 사실이라면 그의 의학적 사망 시간은 5월 22일경으로 추정됩니다.  그가 광주천변 현장에서 즉사했다는 것은 시민군 관점이고, 저는 관전자들의 이해를 위해 그가 현장 즉사한 것은 아니라는 첨언을 한 것입니다.

이데아님이 "도청 앞 집단발포가 있었던 21일에만 52명의 총상사망자를 기록하여"라고 하셨습니다.  첫번째 사망원인은 그날 시민군이 교도소를 습격하여 발생한 것입니다.  두번째 사망원인은 총성이 울렸을 때 도청광장에서 시민들이 일시에 한꺼번에 몰려나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고 밟혔기 때문입니다.  세번째 사망원인은 시민군 총기 오발 사고였습니다.  네번째 원인은 더 이상 피할 곳 없이 사방으로 포위되어 있는 군인들을 향하여 시민군이 장갑차와 버스 등을 타고 돌진했기 때문입니다.  간밤에도 순경 4명이 버스를 피하지 못하다가 어떻게 깔려죽었는지 본 그들이었습니다. 

이데아님이 "또한, 5.18 기념재단에 문의해보니 [범시민민주투쟁위원회 학생혁명위원회]라는 조직은 실체가 없는 유령조직이며"라고 하신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객관적인 사실에 공감할 때 보다 가깝게 진실로 접근할 수 있으니까요.  더구나, 복면부대의 정체에 대하여 다음 기회에 더욱 구체적으로 파고들어 보시겠다니 무척 기대됩니다.  이데아님의 다음 반론이 무척 기대되면서 오늘 제가 먼저 복면부대의 정체에 조금 파고들어 보겠습니다.

복면부대의 정체는 대자보 작성자의 정체와 맞물려 있습니다.  복면부대의 문제는 우리가 그 정체를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광주사태 선동 대자보의 문제 역시 우리가 그 작성자들의 정체를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저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이데아님도 모릅니다.  그래서 님이 마침내 "또한, 5.18 기념재단에 문의해보니 [범시민민주투쟁위원회 학생혁명위원회]라는 조직은 실체가 없는 유령조직이며..."라고 하신 것입니다.

광주사태 선동 대자보 작성자의 정체에 관해 우리는 단지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대상물인 5.18성명서들 및 시민군 증언과 탈북군인들의 증언에 의지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데아님에 따르면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6_2007.html 에 있는 성명서는 이제 5.18 기념재단에서 흑색선전 삐라로 간주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5월 16일 정동년이 낭독한 또 하나의 흑색선전 삐라가 있습니다.

1950냔 5월 16일 도청광장에서 5·16화형식이 거행되고, 전남대 공대 4년 정동년이 "결전에 임하는 우리의 결의"라는 성명서를 낭독했습니다.  5월 15일 작성되어 5월 16일 정동년이 낭독한 성명문 전문이 여기 있습니다: "결전에 임하는 우리의 결의"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6_1126.html .

 http://study21.org/518/capture/5-16daejabo.jpg

사실 이때가 학생들이 전두환이란 이름을 처음 듣는 순간이고, 국민은 6월에 비로서 전두환이란 이름을 듣게 됩니다.  도대체 "민중이 승리하는 그날까지 우리의 뜨거운 피를 이 산하에 뿌릴 것을 분명히 밝혀두면서"라는 문구가 어떻게 평화시위 성명으로 해석될 수 있는가요?  이 말은 유혈투쟁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전남대 학생회장 박관현과 총무 양강섭은 유혈투쟁을 반대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이 유혈투쟁 선언문의 작성 주체였을리 만무합니다.  전남대학교총학생회는 이 성명서 작성의 주체가 아니었다는 근거를 아래 명시하겠습니다.  물론 정동년이 작성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지 낭독하였을 뿐입니다.

광주사태 성명서들에는 짝이 있습니다.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6_2007.html 성명서를 프락치가 작성했으며, 그 프락치가 보안대였다는 주장을 님은 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데, 그 경우 "결전에 임하는 우리의 결의"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6_1126.html 성명서를 5월 16일 정동년이 낭독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실 것인가의 문제에 봉착하실 것입니다.

  먼저 정동년이 5·16화형식 직후 낭독한 성명서는 전남대생들이 주장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로서 아래 단락을 인용합니다.

<「이원적 집정부제」 「중대선거구제」의 구상이 바로 그것으로 유신잔당의 주축인 군부를 정치권에서 독립시킨 후,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하여 국회에서 단일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는 정당의 난립으로 내각이 불안정하게 되면 독립된 군부가 정권을 탈취하려는 형태의 “이원적 집정부제”를 꾸미고 있는 것이다. >

  그런데, 1980년 봄에 이원적 집정부제라는 것은 없었어요.  그 실체가 없는 유언비어였습니다.  김대중이 퍼뜨린 유언비어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전남대 학생회 성명서에서 그런 유언비어 용어가 등장하는가요?  이원적 집정부제라는 것이 있었어야 그에 대한 항쟁 이유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없었어요.  그것은 재작년의 광우 유언비어보다도 훨씬 더 근거가 없는 유언비어였습니다.  1980년 봄 운동권 머리를 세뇌시킨 유언비어였으나, 전혀 이원적 집정부제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광우사태 때 광우 유언비어가 무엇에 필요했나요?  그건 이명박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한 시위선동용이었습니다.  이원적 집정부제 유언비어도 최규하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한 시위선동용이었습니다.  시위 선동 명분을 위해 그런 유언비어들을 조작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유언비어의 목적은 유혈폭동 선동이었습니다.  이원적 집정부제라는 것이 그 실체가 없는 유언비어였을진대 정동년이 낭독한 성명서 역시 흑색선전삐라에 불과했습니다.  정동년이 낭독한 성명서는 "결전에 임하는 우리의 결의"로 시작하여 "민중이 승리하는 그날까지 우리의 뜨거운 피를 이 산하에 뿌릴 것을 분명히 밝혀두면서"라는 말로 끝납니다.  그런 극단적인 표현이 사용된 성명서가 낭독된지 사흘 만에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6_2007.html 대자보가 등장하였던 거예요.  
 

  흑색선전삐라들이 유혈투쟁을 강조했듯이 복면부대 역시 유혈투쟁을 강조했습니다.  복면부대의 모습은 이러합니다. 



  그런데 복면부대 등장에 앞서 머리에 수건 두른 무장시민군이 등장했군요. 시민군 문관은 5월 21일의 무기탈취조는 모두 머리에 똑같은 수건을 두르고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아래 그들의 사진이 있으며, 그들이 광주시민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습니다.  광주사태 당시 광주시민이었던 제 친구가 강경파가 온건파에게 총을 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때는 설마 그럴 리가 했는데, 훗날 여러 시민군 증언에서 강경파가 온건파를 향하여 총구를 겨눈 사실이 있음은 확인되더군요.  머리에 수건을 두른 무장시민군과 복면부대는 강경파를 말하며, 무기 반납을 호소한 학생들을 온건파라고 불렀습니다.

http://study21.org/518/photo/gun/who-whom.jpg

광주사태 당시에는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은 유명한 일화였는데, 지금 신세대는 광주사태 당시 강경파와 온건파가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체 광주사태를 논하고 있을 것입니다.  강경파와 온건파의 충돌이 있었음을 아는 이들조차도 전남대 학생들이 강경파와 온건파로 갈라져 있었던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전남대 학생들은 모두 온건파였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정체가 확인된 대다수의 시민군들은 대학생들이 아니라, 고등학생들이었습니다.  고등학생들은 누가 무기를 주면 받았습니다.  그러나 전남대생들은 강경파로부터 즉결 처형의 위협을 받으면서까지 무기 반납을 호소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이것이 사실입니다.

저도 아직 시민군 증언을 다 읽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제가 읽은 시민군 증언은 온통 당시 고등학생 혹은 청소년들 증언들 뿐입니다.  어째서 복면부대 당사자들의 증언이 없는가요?  바로 이 점을 김영택 기자도 이상히 여기고, 님과 저도 이상히 여기는 것입니다.

정동년이 낭독한 성명서 "결전에 임하는 우리의 결의"에서, 유혈투쟁 일으켜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강제로 퇴진시키겠다는 것은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것이요, 그래서 이 성명서 후속판인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 성명서에서 "학생 혁명군, 상무대에서 무기 탈취에 성공!" 명의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즉, 학생 혁명군이란 용어 사용 근거는 정동년이 5월 16일 낭독한 ", 상무대에서 무기 탈취에 성공!" 성명서에 있었던 것입니다.



저 역시 "학생 혁명군, 상무대에서 무기 탈취에 성공!"이 문자적으로 정확한 주장인지 미심쩍어 합니다.  그러나 그 주장이 전혀 허풍이 아니었음을 뒷받침하는 두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김동명 기자는 5월 19일 이미 나주경찰서 무기고에서 무기가 피탈되었다는 사실을 증언하며, 동일 광주 기독방송에서 광주향토사단 96연대 소속 초병이 시위대에 M-16 소총을 피탈당한 사실이 있으니까요.

5월 15일 제작되어 16일 낭독된 "결전에 임하는 우리의 결의" 성명서에서

<민중이 승리하는 그날까지 우리의 뜨거운 피를 이 산하에 뿌릴 것을 분명히 밝혀두면서 우리의 나아갈 길은 영원히 오직 민족을 위한 투쟁임을 재천명하는 바이다.>라고 말하고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6_1126.html ),

범시민민주투쟁위원회 학생혁명위원회로 5월 19일 제작되어 20일 살포된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 성명서가 <특공대를 조직 군무기를 탈취하라!  아! 형제여! 싸우다 죽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6_2007.html .  이데아님은 후자 대자보 작성자와 복면부대는 동일 세력일 것이라고 추정하셨으며, 저 역시 동감입니다.  그러면 복면부대 정체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파고들으실 이데아님의 반론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댓글목록

현산님의 댓글

현산 작성일

국가와 민족을 위한 역사학도님의 헌신과 노고에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때로 우리 대한민국에는  지만원박사님과 역사학도 이 두 분 밖에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역사에 남을 크고 막중한 일을 오직 님 개인의 어깨에 메고 묵묵히 전진하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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