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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사람들, 김대중 노무현 빨갱이로 음해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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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의성 작성일10-03-10 02:00 조회5,594회 댓글18건

본문

http://cafe.naver.com/kocoree
여기 사람들과 투쟁하시지요
북한 기술로 미국도 핵으로 이기고 세계정복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고
생각하는것도 딱 80년대 운동권입니다

댓글목록

zephyr님의 댓글

zephyr 작성일

김대중, 노무현은  빨갱이가 맞지요.

달마님의 댓글

달마 댓글의 댓글 작성일

얘네들이 빨갱이라 부르면 왜 질색을 할까....?
뭔가 빨갱이 짓하다 들킨 사람들 처럼....

흐훗님의 댓글

흐훗 작성일

다시보는 노무현의 업적 
 
2009-05-25 19:31:33

미상
 

1. 화성남침 땅굴을 덮어버렸습니다.

2. 김대중 보다 더 김정일에게 국민의 피를 바쳤습니다.(세금) 핵자금, 미사일자금

3. 김정일의 치하에서 죽어가는 북한의 국민을 조롱했습니다.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의 주권전당"이라  사기 쳤습니다.

4. 4대악법을 통과 시켰습니다.

5. 한미연합사를 파괴했습니다.

6. 미8군을 철수시켰습니다.

  휴전선의 인계철선을 없애버렸습니다.

7. 전작권을 회수하여 사실상 한미동맹파괴와 김정일에게 나라를 바침

8. 한강의 대남간첩침투 철책선을 철거 했습니다.

  대전차 장애믈 지상.지하 철거

9. 미군이 담당하던 10대 전쟁 수행임무를 무력화 회수했습니다.

10. 제주해볍의 북괴군함 통과를 허용하여 유사시 미군의 보급로를 차단했습니다.

11. 육군의 전력의 핵심인 병장을 없애버렸습니다.

12. 우리의 전통가족법인 호주제를 폐지했습니다.

13. 태극기를 내리고 정체불명의 한반도기를 올렸습니다.

14. 북괴공작원이 국민에게 폭력을 휘둘러도 방관했습니다. 그리고 사과했습니다.

15. 김정일에게 알현하고 세금을 퍼다부었습니다. 김영삼증언

16. NNL무력화를 시도했습니다. 불발

17. 전자개표조작으로 대통령당선 

18. 10.4반역 적화선언을 했습니다.

 

"김정일을 위한 일이라면 모든것 다 깽판쳐도 좋다"

 

기억나는것 대강 적었는데 또 없나요?




나라사랑
       
2009-05-25 20:59 

아래의 내 댓글을 쓰신 그건이란 사람이 참고할 내용입니다.
노통이 왜 나쁜 대통이었는지 말입니다. 

 
나라사랑
       
2009-05-25 21:09 


19. 용산의 미군기지는 침략의 상징,
  한미 연합사 땅 28만 평을 달라니까 거부
  미 팔군 사령부는 하와이로 간다는데...

20.주적개념 없앰

21.한총련 합법화

22.국가채무를 150조에서 300조로 만듬(김대중으로부터 떠안은 부분도 있음)

23.이상한 단체들을 마구 만들어 마구 지원

24. 반미면 어때?

25.군복무 단축으로 군사력 약화

26.아프카니스탄에서 테러리스트에 굴복해서 철수해서
  테러리스트에게 돈을 주어서 도운 꼴

27. 애국 시민을 마구 잡아들임
  더 할 수도 있으나 이하는 생략합니다

장학포님의 댓글

장학포 작성일

윤의성님은 ,  개대중,놈무현이가  얼마나 더 빨갱이 짖을 해야 빨갱이라 하겠소?????

흐훗님의 댓글

흐훗 작성일

Name   
  팔공산 
 
 
Subject 
  김대중의 업적과 노무현-김대중정권의 반국가행위목록(퍼옴)
 
 
국민 피 빨아먹는 국민연금,
서민생계 위협하는 고가 의료보험,
비정규직 만든 대통령,
국민은행,외환은행,쌍용차등 민족기업 다팔아먹고 바이코리아,
뇌물먹고 감방신세 세아들 홍삼트리오,
뇌물전과자 아들 줄줄이 전라도에서 국회위원 당선되고,
북에 돈 뿌려 노벨상 받고,
카드깡, 신용불량, 강원랜드, 가족 동반자살 역대 최고정권,
김돼중과 세아들의 천문학적인 비자금,
광주사태후 노태우장군에게 현금 20억 받아먹고도 행동하는 양심,
행방불명된 공적자금이 70조원
뉴욕에 친인척 이름으로 사 놓은 7개의 빌딩
아빠아빠~ 울부짓는 김대중의 숨겨논 딸,
< 김대중 - 도요다 다이쥬 >

노무현-김대중 정권의 反국가행위 목록
2008.09.07 01:59 | 생각과사고 | potter1456
http://kr.blog.yahoo.com/potter1456/5979

대한민국 헌법무시, 法治파괴, 정통성 거부, 군사적 利敵행위
 
조갑제 대표 


盧武鉉씨가 대통령으로 재직중 추진한 정책과 보여온 言動은, 國憲과 國基의 수호라는 대통령의 헌법상 의무를 배신하고, 국가의 主敵 김정일 정권의 대한민국 전복 공작에 적극적으로 동조해왔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는 대한민국을 主敵으로, 동맹국을 장애물로, 主敵을 同志로 간주했음이 확실하다.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되는 좌경적 이념을 가졌던 그가 지난 5년간 수행했던 反헌법적-反국가적 정책과 언동은 다음과 같다.
 
  1. 대한민국 헌법과 法治에 대한 정면 도전(7건)
 
  헌법질서의 수호가 第一임무인 대통령의 헌법파괴는 대통령이 범할 수 있는 가장 큰 범죄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특히 國體와 관련되는 헌법의 심장 제1, 3, 4조를 집중적으로 위반했다.
 
  가. 反국가단체를 상대로 하여 赤化로 가는 연방제-연합제 혼합방식의 통일방안을 추진했다. 그가 주장하는 연합제는 헌법 테두리내의 남북연합이 아니라 헌법을 위반한 국가연합이다. 이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해선 안 된다는 헌법의 명령을 무시한 행위이다.
  나. 북한을 反국가단체로 규정한 헌법에 근거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폐기하여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헌법정신과 國體를 모독했다.
  다. 국가위원회가, 확정판결을 받아 주범이 死刑집행된 공산혁명기도 사건의 범인들을 민주화운동가로 인정하여 국민세금으로 보상, 기념하고 있는데도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司法제도를 훼손하고 法治를 파괴하였다.
  라. 자신의 지지 세력인 친북좌익 단체의 무장폭동에 대해서 軍警이 법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로 방해했다. 좌익들의 평택무장폭동 때는 군인이 방패만 갖고 나가도록 하여 좌익무장폭도들로부터 군인이 얻어맞고 도망 다니게 했다. 불법폭력시위를 엄정 진압한 경찰청장을 물러나게 했다. 그가 임명한 국무총리가 불법적인 좌익무장폭동과 경찰의 합법적 진압을 同格으로 놓고서 兩非論을 펴도 이를 방치했다.
  마. 헌법개정 사안인 수도이전, 즉 遷都를 신행정수도로 포장하여 국민들을 속이려다가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위헌결정이 나자, 이를 포기하지 않고 수도를 분할하는 행정복합도시로 변형시켜 추진함으로써 국가 정통성의 상징인 수도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국가운영의 효율성을 약화시켰다.
  바. 자신과 측근들의 부패혐의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자 대통령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했다. 대통령의 재신임을 국민투표에 묻는 것은 違憲인데도 이를 강행하려다가 국회의 탄핵의결을 당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이 행위를 헌법위반으로 규정하고 경고조치했으나 그 뒤에도 盧 대통령은 반성 없이 헌법위반 행위를 계속하였다.
  사. 공개연설에서 대한민국 헌법을 ‘그놈’, 보수적 국민들을 ‘별놈’이라고 모욕했다.
 
 
  2. 대한민국의 정통성 대한 공격과 反국가단체 수괴에 대한 굴종(7건)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국가이자 민족사의 정통국가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이다. 이 정체성은 언론자유, 선거의 자유, 사유재산권의 보장에 의하여 유지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정통성과 정체성을 총체적으로 무시하고 훼손했다.
 
  가. 헌법은 좌파이념을 不許함에도 그는 공개적으로 자신을 ‘좌파’라고 말했다. 좌경적 역사관과 세계관이 그대로 정책에 반영되었다.
  나. 그는 기회만 있으면 合法정통국가 대한민국의 建國을 ‘분열정권의 수립’이라고 매도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대한민국 현대사의 위대한 업적을 ‘正義가 패배한 역사’라고 모독했다. 기념식 연설 등에서 단 한번도 공산세력과 맞서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자유민주 체제를 지켜냈고 '한강의 기적'을 만든 이승만, 박정희, 그리고 국군에 대하여 긍정적 평가를 하지 않았다.
  다. 전교조의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 교육을 알고도 막지 않았다.
  라. 이승만, 박정희를 욕하면서 反국가단체의 수괴인 김일성 김정일을 한번도 비판하지 않고 굴종적 자세로 일관했다.
  마. 애국단체가 반역깃발인 인공기를 태운 데 대해서 북한정권이 사과를 요구하자 대통령이 대신 나서서 사과했다.
  바. 盧정권은, 2005년 8월 친북좌익 세력과 경찰이 서울시내에서 태극기 게양을 방해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비호하여 태극기가 금지된 지역을 만들었다. 체육행사, 남북행사장에서 예사로 태극기를 내리고 좌익깃발인 한반도기를 올리도록 했다.
  사. 反국가단체의 수괴인 김정일이 2000년의 6.15 선언을 전혀 지키지 않았음에도 이의 무효를 선언하지 않고 또 다시 평양으로 그를 찾아가서 만났다.
 
 
  3. 군사적 利敵행위(11건)
 
  노무현 대통령이 가졌던 좌경 사상에 충실한 그는 대한민국에 대해선 적대적이고 主敵인 북한정권에 대해서는 우호적이었다. 이런 반역적 사상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북한정권이 핵실험을 한 시점을 택하여 절대 다수 국민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對北억지력의 핵심인 韓美연합사 해체 계획을 확정했다. NLL을 가로지르는 海域에 북한정권과 공동어로 구역과 평화 수역을 설치키로 합의함으로써 사실상 서해 방어의 최일선을 무너뜨리려 한다.
  가. 휴전선상의 對北방송을 중단시켜 김정일의 골치덩어리를 제거하고 북한군인들의 외부 정보源을 없애버렸다.
  나. 서해의 휴전선 NLL을 침범한 북한 함정에 발포한 軍의 지휘부를 문책하였다.
  다. 일방적 減軍을 선언하고 사병 복무기간을 단축했다.
  라. 北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對北퍼주기를 계속하여 김정일의 核무장과 군사력 증강을 지원했다.
  마. 김정일이 核실험을 한 뒤에도 對北제재를 하지 않고 남북한이 약속했던 한반도 비핵화 선언의 무효를 선언하지 않았다.
  바. 김정일이 核실험을 했는데도 韓美연합사 해체 계획을 강행했다.
  사. 김정일 눈치를 봐가면서 군사훈련을 축소했다.
  아. 북한정권의 군사력을 유지 강화하는 데 쓰이는 북한의 달러위조 등 국제범죄에 대해 미국이 단속에 나서자 이에 협조하지 않고 사실상 방해했다.
  자. 군대를 '인생 썩히는 곳', 군 원로를 '거덜먹 거리는 사람들'이라고 매도하여 군대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차. 그는 NLL을 무너뜨리려는 북한을 옹호하기 위하여 NLL을 우리가 일방적으로 그은 것이라고 거짓말했다.
  파.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을 위한 노력을 일체 하지 않았다.
 
  4. 간첩과 공산주의자 비호(4건)
 
  좌경적 사상에 충실했던 노무현은 전향했다는 증거가 없는 김일성-김정일 추종자들을 청와대 등 국가사령탑에 배치하여 간첩을 적극적으로 비호했다.
 
  가. 청와대 비서실엔 전향 여부가 불투명한 김일성-김정일 추종자들(주사파) 출신들이 요직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었다.
  나. 북한의 비밀 노동당원 송두율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서 선처하라는 압력을 행사했다.
  다. 반성하지도 않은 재범 간첩 閔모를 사면복권시키고 석방하였을 뿐 아니라 북한을 방문하도록 허용했다.
  라. 북한의 對南적화공작에 동조하는 민노당에 대하여 위헌정당 해산을 헌법재판소에 신청하지 않았다.
 
 
  5. 10. 4 선언의 17개 문제 조항
 
  1. 김정일은 노무현 대통령의 동조하에 反헌법적-反국가적 사기문서인 6.15 선언의 유효성을 재확인하였다. 한국 대통령의 협조하에 한국을 계속해서 이 반역면허증으로 옭아매어놓기로 하는 데 성공했다.
  2. 김정일은 노무현씨로 하여금 6.15 선언의 소위 ‘우리민족끼리’ 원칙을 재확인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한국 대통령이란 자가 反국가단체인 김정일 정권과 손잡고 反美노선을 추구하는 데 동의한다는 含意의 약속을 한 것이다.
  3. 盧, 金은 6.15 반역선언을 한국의 영구적 노예문서로 만들기 위하여 이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자는 합의를 했다(이상 1항).
 
  4. 盧 대통령은, 남북관계의 신뢰를 위해서 사상과 제도를 문제 삼지 말고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기로 약속함으로써 북한정권의 인권탄압,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를 한국이 거론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한 셈이다. 그런 약속을 한 그 순간에도 북한정권은 反한나라당 선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남북한 통일은 사상과 제도의 통일을 의미함에도 사상과 제도의 일치를 위한 노력을 포기하겠다는 것은 통일을 거부하고 분단고착으로 가자는 의미가 된다.
  5. ‘통일을 위한 제도적, 법률적 정비’라는 합의는 보안법 폐지를 겨냥한 것이다(이상 2항).
 
  6. ‘남과 북은 서로 적대시하지 않고’라고 한 것은 핵무장한 북한정권을 한국이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의미로서 이는 사실상 김정일의 핵무장을 허용하겠다는 뜻이고 주한미군과 韓美동맹의 존립 근거를 허무는 합의이다. 韓美동맹은 한국과 미국이 북한정권을 공동의 敵으로 본다는 점을 유일한 존립 근거로 삼고 있다. 따라서 남침 피해자이자 北核의 가장 큰 위협을 받고 있는 남한이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韓美동맹은 존립근거를 상실하고 주한미군은 철수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맺어지지 않은 휴전상황에서 南과 北이 적대시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환상인데, 북한정권은 이런 신기루를 만들어놓고 核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주한미군 철수와 보안법 폐지를 주장할 것이다.
  7. 서해상의 공동어로水域 및 평화수역 추진: 이는 필연적으로 수도권 방어의 최일선인 서해의 휴전선 NLL에 구멍을 내든지 허물 것이다(이상 3항).
 
  8.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고 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완전히 북한의 함정에 빠져 北核문제를 미국의 核문제로 轉嫁하는 데 동조한 대목이다. ‘한반도 핵문제’란 용어는 북한식이다. 지금 문제가 된 것은 北核문제이지 한반도의 핵문제가 아니다.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 핵문제’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核을 쓰지 말고 도입, 보유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 위하여 만든 용어이다. 이는 핵무장을 하지 않고 핵무장을 한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한국이 기댈 수밖에 없는 미국의 핵우산 제공을 트집 잡기 위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이 판 함정에 빠졌던지, 평소 소신대로인지 모르겠지만 남북한이 손잡고 미국을 공격하기로 합의한 셈이다.
  9.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하기로 한다면서 6. 25 終戰선언의 전제조건이어야 할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 그리고 남침 시인 및 사과 배상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멋대로 김정일에게 역사적 면죄부를 준 셈이다.
  10. 김정일이 한국을 배제하는 줄도 모르고 終戰선언을 위한 3자 회담에 합의(이상 4항).
 
  11. ‘경제협력사업을 공리공영과 有無相通의 원칙에서’ 발전시켜 나간다는 말은 가진 것이 없는 북한정권이 가진 것이 많은 남한을 有無相通의 정신에서 뜯어먹겠다는 뜻이다. 有無相通은 경제원리나 상호주의에 반대되는 말이다.
  12.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水域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것은 남한 정부가 북한에 대해서 특구도 만들어주고 북한 배가 NLL을 뚫고 해주항을 출입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뜻이다. 단순한 북방한계선을 복잡한 面으로 만들어 공동관리하면 반드시 분쟁이 생긴다. 남북간 군사충돌이 일어나면 핵무장한 북한군의 보복위협에 걸려 한국이 우수한 재래식 무기를 갖고도 제대로 대응할 수 없게 된다.
  13. ‘개성-신의주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를 공동으로 이용하기 위해 改補修 문제를 협의·추진해 가기로 하였다’고 함으로써 한국 경제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북한 고속도로를 개보수하는 데 우리가 국민세금을 쓰도록 만들어놓았다.
  14.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를 건설한다고 했는데 비용의 거의 전부를 한국이 유무상통 정신에서 부담해야 할 것이다(이상 5항).
 
  15. ‘남과 북은 2008년 북경 올림픽경기대회에 남북응원단이 경의선 열차를 처음으로 이용하여 참가하기로 하였다’고 했는데 비행기를 타고 김포에서 북경으로 가는 데는 1시간 반도 안 걸린다. 경의선으로 만주를 거쳐 북경까지 가는 데는 이틀 이상 걸릴 것이다. 이런 고통스러운 생쇼에 들어가는 돈도 한국이 부담하게 될 것이다(6항).
 
  16. ‘남과 북은 자연재해를 비롯하여 재난이 발생하는 경우 동포애와 인도주의, 상부상조의 원칙에 따라 적극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했는데 김정일의 실정으로 발생한 북한의 자연재해 피해 復舊를 남한 보고 하라는 뜻이다(7항).
 
  17.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이익과 해외 동포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말은 한국에 대한 공작원 침투의 기지 역할을 해오면서 일본인 납북의 하수인 역할을 했던 反국가단체 조총련이 온갖 못된 짓으로 일본 정부와 국민들로부터 압박을 받는 데 대해서 한국을 끌어들여 공동대처한다는 뜻이다.
 
 
  요약: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의 對南적화전략에 적극적으로, 구체적으로, 총체적으로, 철저하게 동조하였다. 적화전략문서인 6.15 반역선언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는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서는 경고조차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미국의 核, 그리고 한국방어에 필수적인 核우산을 문제 삼으려는 북한의 전략에 동조했다. 핵무장한 戰犯집단 북한정권을 적대시하지 않기로 함으로써 韓美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논리의 틀을 만들었다. 終戰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때 6.25 남침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는 암시도 들어 있다. NLL과 보안법을 허물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북한인권 탄압, 강제수용소,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를 거론할 수 있는 문을 폐쇄했다. 그러면서 對南공작기지인 조총련을 소위 민족공조 차원에서 지원해주는 길을 열었다.
  북한정권이 당당하게 한국으로부터 金品을 뜯어갈 수 있도록 有無相通의 원칙이란 新造語를 개발했다. 북한의 고속도로 개보수, 자연재해 복구, 조선단지 건설을 한국이 해준다고 약속했다. 이런 퍼주기를 평화니 협력이니 하는 말로써 위장했다.
  학살집단에 대해 대한민국의 안방을 활짝 열어놓은 盧씨가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핵폐기에 대한 구체적 다짐도, 북한인권 향상에 대한 약속도 얻지 못했고, 단 한 사람의 납북자 및 국군포로 송환도 이뤄내지 못했다. 그래놓고 잘했다고 자랑하고 어용 언론이 이를 거의 무비판적으로 선전해주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학살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건배사를 했고 수령독재기관인 최고인민회의 의사당이 人民主權의 전당이며, 인민의 행복을 만들어내는 곳이라고 방명록에 썼다. 월스트리트저널이 근년에 ‘김정일이 청와대에 있어도 이보다 더 잘할 순 없다’고 보도했던 일이 생각난다. 쌀과 비료, 돈뿐 아니라 국가의 체면도, 안보도, 동맹도, 정체성도 마구 갖다바친 회담이고 선언이다.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으려면 10. 4 선언 관련자들에 대한 국가반역 혐의의 고발과 수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지구 끝까지, 관련자들이 죽을 때까지 집요하게 조사하여 진상을 드러내어야 대한민국이 再生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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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大中 정권하 50대 반역적 사건 목록
 
 
  50개 사례로 본 金大中의 반역적 범죄행위 혐의
  -대한민국엔 불리하고 민족반역자·主敵에겐 유리한 그 행동의 일관성 연구-
 
  趙甲濟 月刊朝鮮 편집장
 
 
  근본적 도전행위
 
  金大中 대통령과 그의 정권이 지난 5년간에 걸쳐 일관되게 추진해온 對北·對內 정책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대한민국을 대한민국이게 만드는 제도와 가치와 원칙에 대한 근본적 도전행위가 그것이다. 대한민국은 反共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을 딛고 선 나라이다. 이 이념은 헌법으로 구체화되어 있다. 우리 헌법은 「북한정권을 국가로 인정해서는 안된다」, 「통일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북한체제를 평화적으로 흡수하는 것이다」고 우리에게 강제하고 있다.
  이런 명령에 따라 국군은 북한정권과 그 군대를 主敵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북한정권의 연방제 통일방안에 찬동하는 행위자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해왔다.
  金大中 정부는 남북 頂上회담을 전후하여 냉전구조 해체란 깃발을 내걸었다. 세계적인 냉전은 공산권의 붕괴로 종식되었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냉전도 金正日 정권의 붕괴로써만 해체될 수 있다. 金大中 세력(정부·여당·외곽조직)은 그러나 냉전구조 해체를 외치면서 북한정권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포기한 정도가 아니라 현금 지원으로 그들을 강화시키고 이 主敵의 지령을 받아 대한민국을 전복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친북좌익 세력, 즉 內敵에 대한 단속과 수사를 완화했으며 정권의 일부 외곽단체는 이들 세력을 사실상 지원하기도 했다.
  金大中 정권은 또 「북한정권=主敵論」등 한국의 안보구조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핵심요소를 없애려는 이상한 정책도 계속해왔다. 냉전구조 해체를 명분으로 삼아 대한민국 해체를 하려고 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金大中 정권은 9.11 테러 이후 金正日 정권이 코너로 몰리자 테러집단인 북한정권과 함게 反테러 선언을 기획하는 한편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발언에 대해서 맹렬히 반대하고 일부 친여, 어용언론과 단체들은 反美운동을 응원함으로써 워싱턴 일각에서는 「반미운동 뒤에는 김대중이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金大中 정권은 또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국가이념을 지키려고 애써온 국군, 조선일보, 동아일보, 黃長燁 등 애국세력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압력과 공격을 가해옴으로써(때로는 김정일 정권과 친북좌익 세력이 이런 공세에 합세하였다) 「金大中은 金正日과 깊게 결탁하여 대한민국과 미국을 배신하고 金正日과 운명을 같이하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黃長燁 미공개 논문)을 부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主敵과 內敵을 강화시키고 대한민국 수호 세력과 한미동맹관계를 약화시킨 金大中 정권의 對北 정책 및 이와 연계된 對內 정책은 국가의 안보와 통합성에 큰 악영향을 끼쳤다.
 
  노벨상과 金正日의 인질화
 
  金大中 대통령은 노벨상을 받을 목적으로 남북 頂上 회담을 개최하기 위해 현대그룹을 앞세우고 국정원을 돈세탁-뇌물전달 심부름꾼으로 삼아 적어도 5억 달러를 金正日 정권에게 건네주었다는 의혹이 거의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 돈은 金正日의 비자금으로 들어가 핵무기 개발 등 군사력 증강, 對南공작에 쓰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더 큰 문제는 이 불법 비자금을 金大中 정권이 金正日에게 건네줌으로써 主敵에게 우리의 최고사령관이 약점 잡힌 형국이 되었다는 점이다. 金大中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金正日의 눈치를 보면서 그가 싫어할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 黃長燁씨의 기본권을 침해해가면서 그의 언론자유와 여행자유를 한사코 막은 것도 金正日에게 약점을 잡힌 대한민국의 지도부가 알아서 기었든지 지시성 부탁을 받은 때문이 아닌가 한다.
  국가지도부가 主敵의 수괴에게 약점이 잡힌 상태에서 실시된 對北, 對美 정책은 거의 전부가 국가이익을 敵에게 양보, 양도하는 형국이었다. 金大中 세력은 金正日에 대해서는 굴종하면서 우방인 미국의 부시 행정부에 대해서는 동맹관계의 의리와 신뢰를 배신하였다. 金正日이 핵공갈로써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데도 金大中 정부는 사실상 북한 편을 들고 미국을 공격하였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적의 수괴에게 굽히고 들어가니 국군, 검찰, 국정원, 어용언론도 적의 영향권안으로 끌려들었다. 군의 지휘부조차도 敵의 도발 징후를 축소시켰고 민족반역자를 主敵이라 부르는 자유도 제한당했다. 검찰은 金大中 정권 세력이 金正日 비자금으로 5억 달러 이상을 보낸 사건을 수사도 하지 못하고 있다. 국정원은 金正日에게 비자금을 보내는 심부름꾼으로 전락하면서 「金正日위원장께서 서울을 방문하시면···」식의 발표문을 낼 정도로 타락했다. 방송사 등 어용언론은 反美·親北선동에 앞장섰다.
  요약하면 지난 5년간 반역은 내어놓고, 애국은 숨어서 해야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헌법정신은 흐려지고 헌법 수호기관은 용기를 잃고 있다. 이런 모든 사실은 赤化의 초기 증상을 드러내고 있다.
  검찰 국정원 등 헌법수호기관이 그 임무를 포기한 상태에서는 애국-자유세력, 즉 대다수 국민들이 직접 자신의 의사를 행동으로 표현하는 수밖에 없다. 투표는 물론이고 시위, 항의, 고발, 고소를 통해서 아직도 反김정일과 愛國이 다수 국민들의 여론임을 세계 앞에서 나타내지 않으면 소수 김정일 똘마니들에게 한국의 여론이 소매치기 당하게 되었다.
  金大中 정권하에서 일어난 반역적 사례들을 정리하여 소개하는 것은 이 사실을 근거로 반역세력을 고발하고 공격하며 고립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반역세력이 감옥에 가든지 대한민국이 문을 닫든지 兩者擇一이다.
 
 
  *金大中 정권하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
 
  가. 군사적 利敵 행위 혐의 : 먼저 북한군에겐 이롭고 우리 군에겐 불리하게 만든(때로는 치명적인) 事例들을 소개한다.
 
  1. 金正日 비자금으로 5억 달러 이상 불법 송금 의혹: 남북 頂上 회담을 돈으로 샀다는 의혹의 중심이다. 이 돈은 대한민국에 대한 적의 공격능력을 증강시키는 쪽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외환죄의 利敵罪를 구성할 가능성이 있다.
  2. 영해침범에 굴욕적 대응 : 2001년5월 북한 선박이 우리 영해를 침범해도 우리 해군 함정은 경고 사격도 없이 『나가달라』고 사정했고 이런 군의 대응에 대해 金대통령은 『적절한 것이었다』고 칭찬했다. 같은 시기 북한군은 실수로 북방한계선을 넘은 우리 어선에 조준사격을 가했다.
  3. 남침 함정에도 먼저 쏘면 안된다 : 金대통령은 우리 해군에 대해 북방한계선을 지키되 먼저 쏘면 안 된다고 구체적으로 지시함으로써 현장 지휘관들의 신축적인 대응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런 지시는 적에게 선제공격을 당하지 않고도 越線 남침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줌으로써 그들의 모험을 결과적으로 고무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 결과는 2002년 6월29일 불법 越線한 북한 함정에게 우리 고속정이 경고사격도 하지 않고 경고방송을 하기 위해서 측면을 드러내놓고 접근했다가 선제 기습을 허용하여 격침되는 사태로 나타났다. 악당과 결투하러 가는 보안관에게 『꼭 이겨야 한다. 그러나 먼저 쏘면 안된다』라고 지시한 사람은 과연 누구 편인가.
  4. 월남 참전이 죄인가 : 국군과 국민이 자랑해온 월남 참전에 대해 베트남 국가주석에게 金대통령이 사과했다. 대다수 국민과 군인들은 월남 참전이, 자유진영의 편에 섬으로써 駐韓 미군의 감축을 막아 우리 안보를 튼튼히 하고 여러 가지 경제적 이득을 올린 민족사상 최초의 해외진출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5. 전쟁 범죄자를 主敵이라 불러선 안된다? : 金大中 세력은 국군이 북한군을 主敵이라 公稱(공칭)하지 못하도록 여러 각도의 압력을 군 지휘부에 넣었다. 북한군으로부터 끊임없이 기습을 당해온 국군이 그런 북한군을 主敵이라 부를 자유가 없다면 그런 군대는 彼我구분 기능이 마비된 폭력집단으로 전락한다. 군대와 폭력집단의 차이는 군대가 확고한 가치관에 기초한 피아구분 기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가치관과 피아식별능력에 기초한 武力이기 때문에 폭력과 구분되는 것이다. 어머니를 죽인 살인범에게 『당신은 우리 집안의 적이요』라고 불러서는 안된다고 자녀들에게 시키는 아버지가 있다면 그 아들 딸들은 어버지를 어떻게 보겠는가.
  6. 공산폭동 진압 국군 卑下 : 金大中 정권이 主導하여 통과시킨 제주 4·3 사건 특별법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공산폭동을 진압한 우리 국군의 역할을 격하시키는 분위기가 조장되고 있다.
  7. 간첩북송 : 남파 간첩과 빨치산 출신자들을 北送시켜주면서 在北 국군 포로와 탈북자들의 송환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8. 러시아 편들고 미국에 반대 : 金大中 대통령은 2001년 초 푸틴과 서울에서 정상회담을 하면서 러시아의 ABM(탄도미사일 방어망 건설 금지 조약) 강화 정책에 동조함으로써 군사동맹국 미국이 추진하는 미사일 방어망(MD : Missile Defense) 정책에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9. 「악의 축」옹호: 부시가 악마적 정권인 金正日을 향해서 「악의 축」이라고 부르자 여당이 들고 일어나 동맹국 정부를 비난함으로써 사실상 韓美의 共敵이자 인류의 公敵을 두둔하였다.
  10. 韓美 연합훈련 축소 : 북한정권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명분하에서 韓美 연합훈련을 축소시켰다. 같은 기간 북한정권은 사상최대 규모의 훈련을 실시했고 병력의 前進 배치를 강화했음에도 金大中 정부는 이를 국민들에게 제때에 알리지 않았다.
  11. 主敵에게 국민세금으로 군자금 제공 : 금강산 관광사업으로 북한측에 들어가는 현금이 무기 구입 등 군사력의 강화에 轉用되고 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國庫 보조까지 해가면서 국민 세금으로써 사실상 對北 군사적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12. 금강산 댐 건설에 침묵 : 金大中 정부 및 그 지지 세력은 우리 군과 국민들의 생활 및 안전에 매우 중요한, 금강산 댐 건설에 의한 북한강 상류 차단 및 不實 공사로 인한 붕괴 위험에 대해서 언론의 폭로 이전에는 북한측에 공식적인 항의나 요구를 하지 않았다. 금강산 댐 붕괴 위험에 대해서도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언론 보도 뒤에도 아무런 실효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13. 속은 것인가, 속인 것인가 : 金大中 대통령은 6·15 남북정상회담 직후 여러 차례 이 회담의 2대 업적을 자랑했다. 金正日과 전쟁을 안하기로 합의했다는 것, 그리고 金正日이 주한미군은 통일 이후까지 주둔해도 좋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이었다. 그 후 金正日은 서해에서 기습 도발했으며 주한미군 철수를 계속 주장하고 있다. 그는 작년 푸틴과 회담을 마치고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서도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했다. 林東源 당시 통일부 장관은 국회에서 『金正日이 통일 이후까지 주둔해도 좋다고 한 주한미군은 지금과 같은 성격이 아니라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자세를 버린 일종의 평화유지군이다』는 취지의 증언을 하여 金大中 대통령의 발언을 사실상의 과장보고로 만들었다. 이로써 金大中 대통령이 왜곡 또는 허위 보고를 한 것이든지 金正日에게 속은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 되었다. 金大中 대통령은 이같은 의문 제기에 대해서 해명조차 하지 않고 있다. 당연히 우리 국민들은 속인 것인가, 속은 것인가라고 대통령에게 질문할 권한이 있다.
  14. 핵공갈과 美北 중재: 金正日이 유엔과 미국 및 한국과의 약속을 다 깨고 불법적인 핵무기 개발을 하고 있고 이 무기가 한민족을 겨냥하고 있음이 확실한데도 金大中 정권은 당당하게 대응하지 않고 미국과 북한에서 중재를 하겠다느니,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결하겠다느니 하는 虛言을 되풀이하였다. 金大中씨가 보낸 특사는 金正日을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왔고 盧武鉉씨가 보낸 對美 특사는 부시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피해자인 한국정부가 가해자와 동맹국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려고 한 이 조치는 한미동맹 관계의 정신을 위반한 것이었다.
  15. 反美 운동 방치: 여중생 사망 사건 이후 金大中 정부는 反美 운동이 미군철수 요구로 악화되는 것을 방치했다. 대통령과 정부 당국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국민들에게 여중생 사망 사건의 경과와 미군의 노력을 정확히 설명하고 자제를 당부할 수 있었는데도 하지 않았다.
 
 
  對南 기습능력을 강화시켜주다
 
  이상 사례를 분석해보면 세 가지 의도성 또는 방향성이 드러난다.
  첫째, 북한군의 對南 공격력을 강화시키는 것들이다. 金正日의 호주머니로 군자금을 대준 것, 불법적으로 영해나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主敵의 선박에 대해서 대통령이 나서서 먼저 쏘지 말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내려 현장 지휘관의 재량권을 제약한 것, 금강산 赤字 관광의 보전을 명분으로 하여 우리 세금을 主敵의 對南 군사력 강화에 바치고 있는 것, 서로 전쟁을 안하기로 했다든지 金正日이 駐韓미군의 계속 주둔에 동의했다는 믿을 수 없는 말을 대통령이 확산시켜 對敵 경계심을 약화시킨 사례들은 결과적으로 북한군의 기습을 용이하게 하는 반면 우리의 방어를 약화시킨 것들이다.
  둘째, 국군의 존립근거와 士氣를 약화시켰다. 국군이 자랑으로 삼고 있는 월남전 파병에 대해서 대통령이 나서서 당시의 敵國 원수에게 사과하고, 국군의 제주도 공산 폭동 진압 행위를 문제삼고, 6·25 기습남침을 벌였던 민족반역 집단이자 戰犯 집단인 북한정권과 군에 대해서 최대 피해자인 국군이 主敵이라고 부르지 못하도록 하는 압력을 측근들이 행사하고 在北 국군포로들을 외면한 것들이 그런 사례들이다.
  셋째, 駐韓미군에 대한 대통령의 이상한 발언, 부시의 「악의 축」발언에 대해 여당이 미국을 거세게 비판하고 나옴으로써 사실상 金正日 편을 든 점, 러시아 편을 들어 동맹국의 가장 중요한 국방 전략을 결과적으로 반대한 사실들은 韓美 군사 동맹관계를 약화시켰다. 金大中 지지 세력의 일부가 反美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서 크나큰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위의 사례들은 金大中 대통령의 어떤 입장을 반영하는 것인가. 이는 애국인가, 반역인가, 아니면 남북간에 중립인가.
  「민족사의 정통성과 삶의 양식을 놓고 싸우는 타협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이 남북 무장대치 상황의 본질이다. 먹느냐 먹히느냐의 대결에서 중립은 없다. 더구나 남쪽의 대통령이 이 대치상황에서 중립에 서려고 한다면 이는 안정환이 한국-이탈리아戰에서 중립에 서는 것과 같다. 공직자가 대한민국과 북한정권의 대결에서, 즉 민족사의 정통과 이단의 대결에서 중립을 선택한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利敵 또는 親異端 행위로 연결될 수 있다. 평화를 명분으로 하여 남북간에 중립지대를 만든 것이 외국인들에게 좋게 보여 金대통령으로 하여금 노벨 평화상을 받게 했을지는 모른다. 그 평화상 덕분에 악당의 힘이 더욱 세어지고 善人들의 고통과 불안이 깊어지며 연장되고 있다면 한국인들과는 상관 없는 賞이 된다. 金대통령이 그 賞을 받기 위해, 또 받은 이후 수상자로서의 체면에 연연하면서 金正日과 상대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안전과 이익을 약화시킨 점이 인정된다.
 
  나. 대한민국의 헌법·애국심 등 핵심 가치관에 대한 총공격
 
  金大中 세력(정권·여당·외곽조직)은 대한민국의 핵심 가치관(민족사적 정통성에 대한 확신·헌법·애국심 등)에 대한 도전·비판·공격을 일관되게 계속했다. 같은 기간 이 세력은 金正日 정권에 대하여 본질적인 비판을 전혀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金正日의 입장을 도와주거나 해명해주고 강화해주는 정책도 폈다. 국민의 가장 큰 교사인 대통령의 이런 언동은 국민들의 國家觀이나 공민윤리를 혼란에 빠뜨렸다. 金大中 대통령 때문에 무엇이 惡이고 善인지를 가르쳐야 하는, 자녀 및 후세 교육이 어려운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대통령과 그 지지세력이 대한민국에 공격적이고 金正日에게 굴종적(또는 우호적)이었다는 이 對照는 黃長燁씨 같은 전문가들 눈에 「金大中과 金正日의 결탁관계」로 비쳐지기도 했다. 지난 5년은 대한민국에 대한 金大中의 도전과 金大中에 대한 대한민국의 응전 과정이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관련 사례를 소개한다.
 
  16. 보안법의 근본적 개정 추진 : 金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의 근본적 개정을 추진했다. 개정 취지의 핵심은 우리 헌법이 강제하고 있는 부분, 즉 대한민국은 북한을 反국가단체로 봐야 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金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이 있으면 남북교류가 불가능하다는 허위의 논리를 구사하면서 북한정권을 反국가단체로 보는 현재의 보안법은 문제가 있다고 언급했다. 보안법은 정상적인 남북교류를 저해하지 않는다. 다만 비정상적인 남북교류, 즉 간첩·공작·반역적 남북 교류를 저지하려는 법이다. 우리가 북한정권을 反國家단체가 아닌 국가로 인정하면 한반도에 2개 주권국가를 허용함으로써 분단을 영구화하는 것이 되며 대한민국을 민족사적 정통국가 반열에서 제외하는 것이 된다. 이는 정통과 이단을 동등하게 보려는 反역사적, 反국가적, 反통일적 시각이다.
  17. 태극기 대신 한반도기 : 부산 아시안 게임과 시드니 올림픽 입장식에서 태극기가 퇴각하고 정체불명의 한반도기가 등장했다.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통정부의 國旗를 헌법상 반란집단의 叛旗와 동격으로 취급하여 태극기와 인공기를 같이 물리고 정체불명기를 들기로 한 것은 민족의 이름으로 국가의 존엄성과 정통성을 파괴한 것이다.
  18. 방화치사범을 민주화 운동가로 인정 : 대통령 및 총리 직속의 위원회는 盧泰愚·金泳三 민주 정부 때 발생한 불법 시위·불법 조직·좌익행동·방화치사상 등 범죄의 주모자들을 민주화 운동가로 인정했다. 특히 총리 직속의 위원회가 1989년 부산 동의대에서 진압경찰관들에게 화염병을 던져 경찰관 7명을 불에 태워 죽게 했던 방화치사범들을 민주화 운동가로 인정한 것은 반역정부나 혁명정부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19. 불법 장려 : 金大中 대통령은 2000년 총선 때 非정부 단체의 불법 낙선 운동을 비호하였다. 낙선운동의 대상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자는 빠졌다.
  20. 외교관의 납북어부 외면 : 1970년에 납북된 어부가 28년만에 탈출하여 在外 공관을 찾아가 구원을 호소하자 金大中 정권하의 외교관은 『당신 세금 냈어요? 왜 국가를 괴롭히려고 그래요』라고 문전박대했다. 이 어부는 민간인에 의해 구출되어 귀환했고 국민 보호 의무를 포기한 외교관은 처벌당하지도 않았다. 최근 월 스트리트 저널은 배를 빌어 탈출하려고 했던 탈북동포들이 중국 공안에 체포된 것은 한국측 공무원이 정보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했다.
  21. 金正日에게 극존칭 : 국정원은 공식 발표문에서 「金正日 위원장께서 서울을 방문하시며」라는 극존칭을 썼다. 防諜기관이 자기 나라 국가원수한테도 쓰지 않은 존칭을 간첩 두목한테 쓴 것이다.
  22. 巨惡을 미화 : 金大中 대통령은 300만의 동포들 죽음에 책임이 있는, 민족반역자이자 전쟁범죄자인 金正日에 대해 「효성이 있고 견식이 있는 지도자」로서 「노벨평화상을 함께 받지 못해 아쉽다」는 취지의 발언을 함으로써 한반도의 巨惡을 미화, 한국인의 공중도덕을 어지럽혔다.
  23. 적화통일방안 상당 부분 수용 : 金大中 대통령은 6·15 선언 제2항에서 金正日의 對南 赤化 전략인 연방제(낮은 단계 연방제)에 대해서 「남측 통일방안(연합제)과 공통성이 있으므로 그 방향으로 통일을 논의해가기로 하였다」고 하여 결과적으로 북한정권측의 對南 적화 공작을 상당 부분 수용하였다. 金大中 대통령이 말한 연합제는 대한민국 공식 통일방안의 연합제가 아니라 국민과 국회로부터 허가를 받지 않은 자신의 私的인 무허가 통일방안의 연합제이므로 이 행위는 무허가 공무집행이자 「현대판 역모」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다(李東馥-李長春 기고문. 「아직도 태극기는 위날리고 있는가」. 2002년 月刊朝鮮 출판).
  24. 6·25 남침은 조상 책임 : 金大中 대통령은 6·15 회담 이후에는 6·25 남침전쟁의 책임이 金日成에게 있다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 남침 책임을 조상과 日帝, 그리고 미국과 소련에게 전가하는 論法을 구사하였다.
  25. 「유감」을 「사과」라고 왜곡 : 2002년 6월29일 서해 기습에 대해 북한측 차관보급 관리가 「유감」이라 표현한 것을 金대통령은 「사과」라고 해석하여 받아들였다. 그 며칠 뒤 북한당국은 서해 도발이 「한국의 강경파가 미국의 對北 적대정책에 따라 일으킨 계획적 도발」이란 요지의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유감」이 「사과」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上記 사례들의 공통점은 金大中 대통령이, 대한민국은 민족사를 대표하는 정통국가이며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국가라는 점에 대해서 확신이 없거나 약함을 보여준다. 우리 헌법은 북한정권을 절대로 국가로 인정해선 안되고 反國家단체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강제하고 있다. 金대통령이 가진 조국에 대한 확신의 부족은 국가 헌법 법률의 권위를 가볍게 보거나 主敵을 상대하면서 조국의 핵심 가치관을 포기하는 행동으로 연결되고 있다. 金대통령은 또 金正日이 본질적으로 테러리스트, 전쟁범죄자, 민족반역자란 도덕적이고 사실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대화상대자로서의 역할만 중시하여 그를 미화하는 데 앞장섬으로써 한국인들에게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게 하는 교육적 역효과를 가져왔다.
 
 
  다. 김정일에 굴종, 국가와 국민의 자존심 훼손
 
  金大中 대통령·정권·세력은 金正日에게 굴종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 국민들의 자존심을 훼손하였다.
 
  26. 북한정권의 억지를 받아들여 張忠植 총재 해임 : 북한정권이 張忠植 韓赤 총재의 月刊朝鮮 인터뷰 기사 내용을 트집잡아 그의 해임을 요구하자 金大中 정부는 이 억지를 수용하는 모습으로 張忠植 총재를 경질했다.
  27. 黃長燁 訪美 불허 : 金正日이 싫어하는 黃長燁씨의 訪美를 불법적으로 저지하고 그의 활동을 제약하였다. 金正日이 좋아하는 친북좌익 세력들은 상당한 활동의 자유를 누렸다.
  28. 일본인 납치범 북송 : 일본인 납치범인 거물 간첩 辛光洙를 북송시켜주면서 일본인 피납자의 生死 확인도 송환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29. 태극기 압수 : 2002년 9월7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남북축구시합 때 주최측은 공권력의 방임 아래서 입장객으로부터 태극기를 압수하고 정체불명의 한반도기를 권유했다. 이는 金正日 정권측의 압력을 우리 주최측이 받아들인 때문이었다고 한다.
  30. 北의 하급관리와 동격이 된 한국측 장관 : 우리의 장관급 인사가 북한의 하급 관리와 동등한 자격으로 회담하는 관례가 지속되고 있다.
  31. 좌익 발호 방치 : 金大中 세력(정권·여당·외곽단체 및 지지세력)은 金正日과 그를 추종하는 남한내 좌익세력에 대해 헌법의 명령대로 적대적 태도를 취하여야 할 의무를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방관적(또는 우호적) 태도를 취하여 그들의 발호를 허용하였다. 金大中 정권하의 공권력은 좌익수사를 소극적으로 하는 한편 한민족과 함께 애환을 같이 해오면서 체제를 지키고 강화해왔던 조선·동아 두 民族紙를 탄압했다. 두 민족지에 대한 세무조사는 金正日정권과 국내 좌파의 적극적인 응원하에서 이뤄졌다. 金日成으로부터 돈을 받고 간첩질을 했다가 징역을 살고나온 金大中 총재의 평민당 전 의원은 국회의원으로도 출마하고 反美운동도 벌이고 있다.
 
  위와 같은 행동들은 국민들 눈에 金大中 정부를 비겁한 모습으로 비치게 하였다. 한편 金正日을 비판·견제해온 黃長燁, 朝鮮-東亞日報, 야당, 공안기관 출신들에 대한 金大中 정권 및 그 원호세력의 집중견제와 공격은 많은 국민들 사이에 「비겁한 자의 오만, 또는 金正日 편들어 대한민국 중심 세력 때리기」라는 의혹을 강하게 심었다. 자기 나라와 국민에 대해선 가혹하고 主敵에 대해선 굴욕적인 모습을 보인 대통령 때문에 국민들은 정말 자존심이 상했다. 이성적인 자존심은 독립성과 자주성의 근본이므로 국민들이 자존심이 상했다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불행이자 國力의 저하이다.
 
  라. 金正日의 대변자 自任
  金大中 대통령·정권·세력은 金正日의 대변자 또는 심부름꾼역을 自任한 듯한 행동을 보였다. 다섯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32. 서해도발 축소 : 2002년 6월29일 서해 도발 사태가 나자 金大中 정부는 계획적인 도발을 우발적인 도발이라며, 金正日의 책임을 의도적으로 축소시키는 해석을 내리고 미국에 대해서 예정된 對北 특사 파견의 이행을 촉구하였다.
  33.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 로비 : 아웅산 테러, 대한항공 테러의 직접 지령자인 金正日이 테러에 대해 인정·사과·책임자 처벌을 하나도 하지 않고 있는 마당에 金大中 정부가 나서서 미국에 대해 북한정권을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제외시켜달라고 부탁하였다고 한다.
  34. 테러집단과 反테러 선언 추진 : 9·11 테러 직후 정부는 북한정권과 함께 反테러 선언을 하려고 했으나 북측의 거부로 실패했다.
  35. 부시 비판하며 金正日 변호 : 金大中 측근들은 金正日이 약속을 어기고 한국 정부와의 대화에 나서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金正日에게 문책하려 하지 않고 부시 행정부의 對北 강경 정책 때문이란 억지 논리를 만들어 확산시켰다.
  34. 전쟁하자는 거냐? : 金大中 세력은 서해 도발 같은 무력 기습에 대해 국내 여론이 강력한 응징을 주장하면 『그렇다면 전쟁하자는 이야기냐』는 식의 선동적 논리로써 북한정권의 입장과 자신들의 굴종을 옹호하였다. 전쟁 이외에도 局地的 응징과 경제제재 등 수많은 평화적 방법이 있다는 것을 무시한 막말들이 정권측 인사들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전쟁을 그토록 증오한다면 북한군이 남침할 때 전쟁을 하기 싫다고 항복하겠다는 것이냐』고 질문해야 한다.
 
  민족사의 정통국가를 대표하는 金大中 대통령이 민족반역·이단 집단의 수괴에게 보여준 이런 굴욕적인 모습은 수많은 한국인에게 참을 수 없는 모멸감과 분노를 가져다 주었다. 대통령은 국가의 권위와 국민들의 자존심을 지켜내야 할 책무를 지고 있다. 그런 책무를 던져버리고 굴욕과 굴종을 자원한 모습에서 국민들의 金正日에 대한 분노는 金大中 대통령에 대한 경멸로 바뀌었고 이는 민주당에 대한 거부감으로 나타났다. 국민들의 국가적 자존심은 主敵에 대한 정의감 및 적대감과 함께 중요한 안보 자산이다.
 
  마. 왜곡과 허위와 과장
 
  金大中 대통령·정권·세력들은 對北 지원이나 對北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사실을 과장·왜곡·거짓말을 거듭했다.
 
  37. 북한특수론 : 金대통령은 2000년 초에 중동 特需를 능가하는 북한 特需가 올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오일 머니가 쌓이고 있던 1970년대의 중동과 수백만 명이 굶어죽은 북한을 동등하게 비교한 과장이었다.
  38. 개성공단 : 『개성 공단에서 1년 내에 생산품이 나온다』
  39. 鐵의 실크로드 : 京義線 연결에 의한 鐵(철)의 실크로드 구상은 정부와 언론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재임 기간중에는 성사되지 않을 것이고 경제성도 의문이다.
  40. 韓日 정상회담 발표문도 믿을 수 없다면? : 金大中 대통령은 모리 일본 수상과 회담한 이후 대변인을 통해서 「일본이 북한과 修交하기 전에 對北 지원을 하기로 했다」는 식으로 발표했으나 그런 합의는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위와 같은 허위·과장·왜곡 사태가 발생한 원인은 金正日이 워낙 거짓말을 밥먹듯이하는 데다가 金大中대통령과 측근들이 그 金正日의 말을 믿었다가 속는가 하면 자신들의 희망사항까지 보태어 과장을 거듭한 때문일 것이다. 사기꾼의 대변자는 자동적으로 사기꾼이 된다.
 
  바. 대통령이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이유
 
  金大中 정부는 국가와 국민, 그리고 헌법이 그들에게 강제한 의무를 태만히 하고 있다. 반드시 해야 할 그 무엇을 안하고 있는 이유를 들여다보는 것도 金大中의 진실을 아는 한 방법이다.
 
  41. 고무찬양 방치 : 金正日 정권을 고무 찬양하는 표현물이 범람하고 있음에도 수사를 하지 않아 국가보안법의 상당 부분을 死文化시켰다.
  42. 主敵에게 주는 뇌물 방치 : 訪北 인사와 단체들이 뇌물을 주고 북한에 들어가 金日成 동상과 유해 앞에서 절하는 행동을 방치하고 있다. 우리의 금품을 받아달라면서 主敵에게 뇌물을 바치는 정신병적인 짓이 화해 협력이란 말 뒤에서 벌어지고 있다.
  43. 간첩수사 저조 : 간첩 검거 실적이 저조하다. 공안기관이 간첩수사도 집권층의 눈치를 봐가면서 해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44. 남침기념행사 축소 : 6·25 남침 50주년 행사를 축소시켰다.
  45. 좌익인사 訪北 허용 : 黃長燁의 訪美는 막고, 좌익인사들의 평양 방문을 막지 않아 2001년의 8·15 방북단 소동 같은 일이 벌어졌다.
  46. 북한 인권문제 침묵 : 국내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예민한 관심을 보이는 金大中 대통령은 탈북자, 在北 국군포로 및 납북자 송환, 북한 內 강제수용소 등 북한 인권 문제를 제대로 제기한 적이 없다.
 
  최근에 발생한 사건들을 추가한다.
 
  47. 정부 산하 단체인 정신문화연구원은 우리 대법원이 「在日 북괴 공작 지도원」이라고 확정 판단한 오사카 經法大 부학장 吳淸達의 방한을 추진하고 이 대학과 협력하면서 세계 한국학 학술대회를 추진하였다.
  48. 국군 정보부대장 韓哲鏞 소장은 6·29 서해 도발 첩보를 올렸으나 햇볕정책의 영향을 받은 국군 수뇌부에서 단순 침범으로 평가하도록 하라고 지시하여 사전에 대비하지 못했다고 폭로했다. 국방부 조사 결과 韓 소장의 주장에 과장은 있으나 정확한 정보 보고를 저해하는 작용이 있었음을 인정하였다. 햇볕정책이 對北 정보활동에까지 영향을 끼쳐 북한군의 도발에 효과적으로 대비하는 것을 막았으며, 金大中 대통령이 강조한 교전지침은 우리 해군의 손발을 묶었고, 도발로 고속정이 격침되고 6명의 병사가 죽은 이후에도 김대중 정부는 이 사건을 우발적인 것으로 축소하려고 했으며 책임자 문책 등 對北 요구사항도 관철시키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한심한 사태의 가장 중요한 책임자는 金大中 대통령이다. 이런 인과관계를 무슨 단어로 설명할 것인가. 실수?, 오판?, 반역? 역모?
  49. 김대중 정권과 현대 그룹의 유착: 鄭周永-鄭夢憲 부자가 김정일에게 접근하여 벌인 금강산 사업 등 對北 사업은 金大中 정권의 비호 아래에서 적자를 무릅쓰고 계속되었다. 정부는 유독 현대 소속의 부실 회사들(현대아산, 현대 하이닉스, 현대 건설)에 대하여 금융지원을 많이 해주었다. 이것이 김대중-현대-김정일 삼각 커넥션의 결과라면 우리 정치가 극복하려고 했던 정경유착은 단순히 부패문제를 넘어 반역적인 을 띠게 된다.
  만약 김대중 대통령이 군사비로 쓰일 것을 예견하고도 이 자금을 金正日에게 주었다면 外患罪상의 일반이적죄를 범한 것이 된다. 이 죄에 대한 법정형량은 3년 이상 무기징역까지이다.
  50. 핵개발에 평화적 해결 천명: 김정일 정권이 미국의 對北 특사에게 불법적인 비밀 핵개발을 하고 있다고 실토하여 제네바 협정을 사실상 무효화한 데 대하여 金大中 정부가 내어놓은 대응이란 것이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생존에 사활적인 의미가 있는 主敵의 핵무기 개발에 대하여 군사력, 외교력을 총동원하고 對北 지원을 중단하는 등의 강경책을 써도 저지될까말까한 일인데 한가하에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니 이는 김정일 정권에 대하여 「안심하라」는 신호가 아닌가. 전쟁불사로 나오는 적에게는 전쟁을 각오해야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역사의 일반원리가 아닌가.
 
 
  대한민국에 대한 존중심과 애정의 결여
 
  金大中 정부는 지난 5년간 金正日이 싫어할 일은 하지 않고 그가 좋아할 일만 찾아서 해왔다면 과연 과장인가. 黃長燁, 조선-동아일보, 국군 등 북한이 싫어하는 남한內 애국세력에 대해서 金大中 세력이 보여온 공격적·적대적 자세와 친북 좌파세력에 대한 관용적 자세는 무엇을 뜻하는가.
 
  이상 열거한 50개 사례는 일관된 공통점을 갖고 있다. 金正日정권에게 이롭고 대한민국에는 불리한 결과를 내고야말 정책과 조치란 점이다.
  金大中 대통령의 上記 정책에서는 대한민국에 대한 존중, 애정, 자부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上記 정책에선 金正日 정권에 대한 분노와 정의감 및 북한주민에 대한 동정심이 보이지 않는다. 유태인의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잔인한 자를 동정하는 자는 동정받아야 할 자에게 잔인하다」
  남북무장·이념 대치상황에서 대한민국 사람이 조국에 대한 확신과 존중의 마음이 결여되고 그런 마음이 金正日 정권에 대한 적대감·분노·정의감의 不在와 결합될 때는 親北 또는 중립의 좌표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중립지대가 존재할 수 없는 남북대결 구도에서 한국인이 중립적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金日成 父子 정권에 유리한 행동을 결과할 가능성 또한 매우 높다는 말이다. 金大中 대통령의 행동 양태-대한민국에 대해서는 무심하거나 비판적이고 金正日 정권에게는 굴종적이거나 우호적인 것의 비밀은 무엇인가.
 
  무덤의 평화, 노예의 평화
 
  이런 모든 수상한 현상의 진원지는 金大中 대통령이다.
  金大中씨의 생애를 연구하면 상기 50개 정책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일관성이 발견된다. 金大中씨의 일관성, 즉 대한민국과 북한주민들에 대해서는 냉담하고 북한정권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그의 對北觀과 국가관은 그가 20대 초반에 좌익 행동대원이었다는 점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젊었을 때 가졌던 이념적 세계관은 나중에 그 사람이 설사 轉向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세계관에 찌꺼기로 남아 있게 된다.
  金大中씨의 경우, 張勉 정부 시절을 빼고는 줄곧 歷代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감시당하고 납치당했으며 구속당하고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 내용을 살펴보건대 억울한 면도 있으나 좌경 모험에서 온 처벌인 경우도 있다. 이런 金大中씨에 대해서 역대 북한정권은 우호적인 응원을 보냈고 포섭 대상으로 삼아 공작한 증거도 있다.
  金大中씨로서는 대한민국 역대 정부에 대해 反感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이런 감정은 대한민국이란 국가에 대한 反感 내지 냉담함으로 轉移(전이)되었을 개연성이 있다.
  좌익 경험에 뿌리를 둔 金大中씨의 일관된 對北觀은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권력에 의지하여 上記 50개 항목이 제시하는 바와 같은 정책과 현상들로 실천되었다.
  그의 좌파적 세계관, 對北観은 하나의 가치관 내지 신념으로 정착되었다. 여기에다가 노벨상을 받겠다는 오랜 집착이 결합되었다. 욕심과 이념이 한덩어리로 되어 그의 행동을 지배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국익과 헌법과 원칙은 크게 망가졌다.
 
  金大中씨는 1972~73년 북한정권의 下手기관 한민통 결성과 관련하여 1980년에는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 그가 대통령이 된 후 보여준 정책들은 그런 유죄 선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념을 완전히 바꾸지는 않았음을 示唆(시사)한다.
  위 50개 항목의 성격은 大韓民國의 정통성·정체성·헌법정신 등 우리 체제의 핵심 가치관에 대한 본질적인 도전이다. 우리 헌법이 권력자에 의한 이런 도전까지도 허용할 수 있는 것인지 국민들은 그 헌법체계에 물어볼 의무가 있다.
  간첩이나 반역자가 자유민주주의자로 위장하여 대통령이 되고 그 직권을 악용하여 對北 武力을 무력화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한민국에서는 모든 국민이 다음과 같은 의무와 권리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현직 정치인들이 적과 내통하는지를 감시하는 일.
  서해 사태 이후 미국 대통령부와 한국 청와대의 반응을 비교한 한 사람이 말했다.
  『누가 어느 나라 대통령인가?』
  金正日을 가장 걱정해주는 사람은 金大中 대통령이고 대한민국을 가장 걱정해주는 사람은 부시 대통령이었다는 얘기였다. 金大中 대통령이 한참 나이 어린 金正日을 대하는 태도는 극진하다 못해 가련해보이기도 한다. 살인마에게 가족들을 여러 명 잃은 집안의 家長이 그 집안의 원수인 살인마에게 金大中 대통령처럼 굴욕적으로 대했다고 한다면 그 마을 사람들은 이 家長을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 그가 받은 노벨평화상이 대한민국과 국민들의 굴욕을 딛고 얻은 상이라면 무슨 가치가 있을까. 正義 없는 평화란 무덤의 평화, 노예의 평화가 아니던가. 그가 말하는 평화는 金正日의 장기집권을 보장하는 평화일 뿐 대한민국과 북한동포 7000만에게는 非평화가 아니던가.
 
  민족, 통일, 평화·화해의 이름 아래서
 
  金大中 대통령과 그 세력들은 對北정책에서 金正日에게 유리하고 대한민국에 불리한 조치들을 취하면서 평화, 화해, 협력, 통일, 민족이란 명분을 들고 나와 그 당위성을 설명하곤 했다.
  그들이 내세운 평화를 자세히 따져보면 한반도의 영구 평화가 아니라 金正日 한 사람을 위한 평화이고 나머지 7000만 민족에겐 불안인 경우가 많았다.
  불법 남침한 북한 함정을 향해서는 경고사격을 해야 한다. 불응하면 조준사격을 해야 우리의 평화가 지켜지는데 金大中 세력은 명백한 월선행위에도 선제사격을 못하도록 했기 때문에 우리 국군이 희생됨으로써 金正日의 평화를 지켜주려다가 우리 국군이 평화를 잃어버리는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
  월선하면 경고 없이 사격한다는 원칙을 북한정권에게 미리 알려주었더라면 우리 해군이 헛수고할 것도 없이 아주 효율적으로 북방한계선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경찰관이 모든 범법자들을 1대 1로 따라다녀야 치안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으면 一罰百戒(일벌백계)로 혼을 낸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실천할 때 범법자들이 떨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金大中 세력이 말하는 협력도 마찬가지였다. 금강산 관광사업이 적자를 보면 경제원리에 따라 처리해야 하는데 화해와 협력이란 명분을 내세워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관광객들에게 보조를 해주고, 이 돈은 북한정권에 들어가니 이것은 국고를 털어 主敵의 군자금을 대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런 협력은 쌍방향이 아닌 일방적 퍼주기, 즉 갖다바치기에 다름 아니다. 일종의 뇌물인 것이다. 主敵이 그 뇌물로써 우리를 위협하는 포탄을 산다면 이는 자살적 행위이다.
  金大中 세력이 말하는 화해는 굴종인 경우가 많았다. 화해란 가해자가 사과할 때 피해자가 이를 받아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金正日은 자신이 직접 지령한 대한항공 폭파사건에 대해서 한번도 인정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 金大中 정부는 그럼에도 미국 정부에 대해서 북한정권을 테러지원국가 명단에서 제외시켜주도록 로비를 했다고 한다.
  金正日의 눈에는 이런 일을 알아서 해주는 金大中 정부가 기특하게 보였을 것이지만 미국 입장에선 한심하다 못해 「자존심도 모르는 정부」라고 속으로는 경멸했을 것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아무리 작은 나라라도 원칙과 자존심을 견지할 때 큰 나라가 우습게 대하지 못하는 법이다.
  金大中 세력이 내세워 온 통일이란 것도 속을 들여다보면 영구 분단에 불과하다.
  북한정권과 대화하면서 흡수통일을 하겠다고 공언할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안하겠다는 말을 해서는 헌법정신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 이는 자유통일의 의지를 공개적으로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金大中 정부는 북한 주민이 봉기할 때 우리는 국군을 보내 김정일 정권을 지켜줄 생각인가.
  김대중 개인의 통일방안은 1993년까지는 최종적인 통일조국의 정치이념을 백지로 남겨놓은 애매한 것이었다. 그 이후 정치적 필요에 따라 자유민주주의 방식으로 통일되어야 한다고 공언하기 시작했지만 이런 노선 변경은 전술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은 남북한의 다른 체제를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연방이란 이불을 덮어씌우자는 말장난이다.
  이는 對南 적화통일을 추진하기

흐훗님의 댓글

흐훗 작성일

Name   
  비바람 
 
 
Subject 
  김대중과 함께 오욕의 역사도 흘러가라
 
 

아직은 대한민국의 운이 다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늘이 보우하사 이렇게도 불시에 좌익의 거두 두 사람을 같은 시기에 픽업해 가다니, 김대중의 단골 폭력 선동에 이제 옥황상제도 지겨웠는가 보다, 일평생 선동과 술수로 살아왔던 권모술수의 화신, 저승사자의 야차같은 손아귀 앞에는 이런 권모술수도 소용이 없었는가 보다,


노무현의 죽음에 이어 김대중의 죽음에 대한 언론들의 미화가 눈쌀을 찌푸릴 정도이다, 공과 과를 구분하여 과는 비판해야 한다는 논리로 언론들에 의해 가장 매도를 당했던 정치인이 박정희이다, 공이 과를 덮고도 남았던 박정희에게 비난을 퍼붓던 언론들이 과가 공을 덮고 천지를 덮어도 남을 정도인 김대중에게는 과도한 미사여구를 남발하고 있다,


김대중이 죽었다는 소식에도 어떤 이는 김대중은 믿을 건덕지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기에 눈으로 보기 전에는 사망을 믿지 말라는 우스개를 할 정도로 김대중은 죽어서도 정직을 의심 받는 거짓말의 화신이자 불신의 대명사이다, 그가 대통령을 했다는 사실이 수치가 되어야 대한민국이 정상이다, 김대중의 죽음에 기립박수를 치는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서 빨갱이 세상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기 시작했다, 김대중은 빨갱이로 정치에 입문했다가 빨갱이로 정치를 마친 사람이다, 김대중은 김일성의 돈으로 정치를 시작했고 광주 시민을 선동하여 일으킨 유혈 폭동으로 정치적 기반을 마련했다, 김대중의 일생과 업적은 국민들의 골육을 쌓아올린, 거짓과 선동과 권모술수의 기념비였다,


5.18의 광주에서 잔혹과 공포로 나부끼던 유언비어는 김대중의 작품이었다, 사망자가 발생하기 전부터 김대중의 부하들은 군인들이 시민을 죽인다며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시민들을 선동했다, 김대중은 개인의 정치적 입신양명을 위하여 광주 시민들의 희생을 유도하는 죽음의 천사였다,


그 후부터 정치 구호들은 천박하고 과격한 용어들로 채워졌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에게는 살인마 독재자 친일파라는 딱지가 일반명사로 쓰였고, 정당한 시위진압에도 폭력경찰 살인경찰, 바위에서 뛰어내린 자살에도 살인했다는 표현이 상식으로 쓰였다, 심지어 여배우 입에서도 청산가리를 먹겠다는 표현이 태연스럽게 나오기도 하는 이 모든 것들이 김대중이 남긴 유산이었다,


아들의 아파트 넓다란 베란다에는 지폐로 가득 채워진 박스들, 그리고 유치원에 다니는 숨겨논 딸이 찾아왔을 때 손에 10만원 짜리 수표를 쥐어주며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 등 떠밀며 내보내던 비정한 아빠, 무슨 스릴러 영화의 욕심 많고 비정하고 잔인한 악당같은 모습의 냉혈한이 김대중이었고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다,


대한민국의 언론에 김대중에게 직필을 할 용기를 가진 언론인은 없는가, 아직도 대한민국은 김대중의 잔당들이 패권을 쥐고 있는 좌익의 나라인가, 도대체 언론들이 김대중의 업적으로 꼽는 '남북평화'는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간첩질을 통일운동이라 부르고 빨치산을 애국자로 부르는 대한민국의 미친 언론들이여,


어선을 나포하고 관광객을 사살하고 근로자를 납치하고 핵을 만들어 수시로 불바다 위협을 하는 이런 상황이 '평화'로 보인다면 이것은 필시 대한민국이 죽어가는 증세이다, 이것이야말로 김대중의 업적이다, 김정일에게는 핵을 주고 대한민국의 몸통에는 빨갱이라는 청산가리를 주입하던 죽음의 의사 김대중의 업적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대박 로또는 박정희와 김대중이었다, 대한민국은 박정희라는 로또에 당첨되었고 김대중 로또의 당첨자는 김정일이었다, 김대중이가 미국에서 부시와 회담을 할 때 오죽하면 부시가 김대중을 'this man'으로 호칭했겠는가, 디스맨은 '이 양반' '이 자식' 쯤으로 정상회담용 용어가 될 수 없는 단어이다,


선과 악의 구분이 확실한 카우보이 피를 가진 부시에게 전쟁 중인 적성국에 마구 퍼주는 김대중이가 제 정신으로 보일 리가 없었다, 그것은 김대중을 조롱하는 단어였다, 부시의 뜻은 이런 것이다, 그 미친 놈이 이 양반인가, 악의 축과 벗하고 퍼주는 놈이 요 후레자식인가, 이것은 김대중의 수치였고 대한민국의 수치였다,


대한민국은 달달이 김정일에게 상납하고 조공함으로서 평화를 얻었다, 비겁으로 얻은 평화 그것은 곧 굴종이었다, 김정일에게 대한민국을 통째로 상납한다면 평화와 더불어 통일을 얻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친 언론들이여, 구미가 당기는가, 이런 미친 언론들의 뇌구조도 김대중의 유산이고 비겁과 굴종에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국민성도 김대중의 유산이다,


언론들은 김대중에 대한 무대뽀식 미화를 중단하라, 김정일에 대한 김대중의 조공으로 얻은 평화는 비겁이었다고 이실직고하라, 그리하여 김대중이 저승사자에 체포되는 날 대한민국의 자존심은 웃을 것이니,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김대중의 무덤 앞에 줄을 서라, 그리고 침을 뱉어라,



비바람


 

 

현우 구구절절 옳은말씀.. 추천합니다.  2009/08/19   

crownsnet 정말 비바람님의 글솜씨는 부럽기만 합니다..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십시오.. 글 논리의 전개과정을 배우는 교과서로 삼아야겠습니다..그리고 이글도 강력 추천합니다.  2009/08/19   

이강현 옥황상제님께서 우익인사도 모시고 갔지요!!!!
고 박세직 향군회장님을 모시고 갔잖아요
전 픽업해 갔다는 말씀에 실소를 멈추지 못했었습니다
추천 올려드립니다

흐훗님의 댓글

흐훗 작성일

정용환 
 
 
Subject 
  김대중이 주민등록의 원적지를 없앤이유
 
 
대한민국의 3등 국민은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뽑은 대가를 처절하게 치르게 될 것이다. 아직도 멀었다.

이제는 호적 등본에도 원적이 어디인지 나오지 않는다. 서울/경기의 수도권에 사는 전라도 사람들이 무려 30%이다. 그러나 이 이들의 본적은 전라도가 아니다. 본적을 옮겼기 때문이다. 옛날 같으면 호적 등본을 보고 원적이라도 알 수 있었지만, 이제는 호적 등본에도 원적이 나오지 않는다. 모든 것이 김대중의 업적이다.

전라도 것들은 대한민국의 여론을 조작하며, 영원히 대한민국을 지배하려 할 것이다. 훗날 이 천민(전라도)들로 인해 대한민국이 망하고나면, 그 때 가서야 타 지역 사람들은 정신을 차릴 것이고, 미래는 암담한 현실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다음은 전태일이 불타 죽을 때 뒤에 있던 사람들의 명단이다.

김대중이 왜 주민등록의 본적을 없앴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기준법을 준수하라


(주:진정서의 한 페이지에 가득차게 적혀있다)


주민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쌍문동 208
성명 全泰壹


현주소 서울 용산구 서계동 33의 38호
성명 이민섭


현주소 서울시 성동구 하왕십리 산 14번지 13통 9반
성명 申進哲


현주소 서울시 용산구 서계동 33의 38호 3통
성명 崔鐘寅


현주소 서울시 성동구 하왕십리 890-99호
성명 주현민



본적지를 표시했을 경우........



기준법을 준수하라


(주:진정서의 한 페이지에 가득차게 적혀있다)



본적 경북 대구시 삼덕동 149
주민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쌍문동 208
성명 全泰壹

본적 전남 화주군 동강면 곡천리 911
현주소 서울 용산구 서계동 33의 38호
성명 이민섭

본적 전남 광산군 명동면 지축리 96
현주소 서울시 성동구 하왕십리 산 14번지 13통 9반
성명 申進哲

본적 전남 영암군 신북면 행정리 53
현주소 서울시 용산구 서계동 33의 38호 3통
성명 崔鐘寅

본적 전남 고흥군 호두면 남촌리
현주소 서울시 성동구 하왕십리 890-99호
성명 주현민


sangu they killed jun taeil. he became victim of sacrifice becouse he was from kyungbuk  2006/06/21   

ZXCVB 그것만봐도 전라도 자신들을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그러면서도 아찍까지.도 ...역사에 부끄러운일을 만들어가고 있읍니다...결국 그런 인간들을 뭐라고해야 합니까...  2006/06/21   

한글말 김대중/노무현이 대한민국을 제도적으로 쌍놈의 나라로 몰고 갑니다. 스스로 쌍놈임을 잘 아는 김/노가 그토록 증오해 왔던 양반들을 제도적으로 없애자는 것입니다.
국제적으로는 배은망덕, 친구와 적을 분간못하고, 국제범죄집단 김정일을 감싸는 정신병자 (屍姦症환자)가 되었습니다.  2006/06/21

흐훗님의 댓글

흐훗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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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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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의 업적
 
 
http://kin.naver.com/db/detail.php?d1id=6&dir_id=604&eid=AOOQOrRT1XtQhMVN0fKAK1+EIIMsPNhc&qb=x9G/z7vzICYgsejBpMDP

김정일과의 내통

1. 일본잡지 문예춘추 2000년 12월호에 실린 김정일의 육성녹음 내용

1)지금 정권을 쥐고 있는 김대중은 야당 시절을 아득히 먼 옛날처럼 잊어버리고 미제의 등에 업혀 반사회주의 책동에 음양으로 혈안이 되어있다.

2)김일성 수령님은 김대중이 민족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애국주의자라고 말씀하셧다. 이런 말씀에 그리고 수령님의 사랑과 배려, 동지적 신뢰에 대해 오늘의 김대중은 배신으로 대답하고 있다.

3) 김대중은 야당 시절 민주화를 외치며 우리들에게 접근했으면서도, 신뢰와 의리를 버리고 반사회주의, 반통일 책동에 광분하고 있다.

4) 김대중을 두목으로 하는 남조선 당국자는 동포와 민족을 위한다는 구실로
"햋볕정책"을 실시하고 있으나 사실은 우리 공화국을 혼란시키려는 기만정책에 불과하다 (1999년 2월)

5) 그도 한때는 민족자주와 미군철수를 주장, 민족주의자임을 자칭했으나 민족의 조엄과 양심을 버리고 악락한 친미, 친일 사대매국 행위에 열을 올리고 있다.(1999년 11월)

2. 2000년 3월 베를린 선언을 기획, 김정일에게 접선 요청 암시. 2000년 6월 13일 및 6월 15일 90분간의 차속에서의 2인 밀담,

3. 국민과 국회의 동의 없이 김정일과 연방제 통일안에 합의 서명. 국가보안법 위반

4. "김정일이 주한미군 주둔을 인정했다."고 발언,

5. 북한의 사상 최대으 전력증강과 훈련 사실을 국민에게 왜면.
"2000년의 전력증강은 과거 5년 치에 해당한다." "지난해의 훈련은 10년이래 최대 규모의 훈련이었다." 라는 연합사령관의 보고내용 은폐.
한국군의 군사 훈련을 모두 축소 생략. 2001년에 대대적으로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준비한 6.25행사 금지

6. 2001년 2월, 미국방문전, 평화선언을 획책했다가 부시에게 저지.
1973년 월맹의 레둑토와 키신저가 파리에서 평화협정을 맺고 노베상을 수상,
2년후인 1975년 월남은 월맹에 멸망. 800~1200만이 학살.

7. 2002년 2월, 김정일 방문이 임박하다며 갑자기 중령급 이상 20% 삭감.



반공전선 와해

1. 북한은 주적이 아니며 전쟁은 없다. 의심할 필요 없다.

2. 주한미군 지위변경, 보안법 개정 또은 철폐 주장, 좌익으로 판명된 인물들에게 면죄부

3. 임동원, 한완상, 이태복 등을 포함한 좌익용공 인사들을 대거 기용

4. 46개 언론사 사장단을 북에 보내 김정일과 술자리를 갖게 하고 그 언론사의 사장들은 국내에서 김정일 찬양론을 펼치게 함

5. 국정원으로 하여금 사회단체를 초청, 김정일 초호화판 생일잔치 비디오를 보여주고 김정일이 식견잇는 지도자이며 매우 합리적인 지도자라 선전

6. 국정원으로 하여금 언론 및 사회단체 간부들에게 전쟁은 없다 교육,
"110만 대군은 남친용이 아니라 일자리가 없어 붙들고 잇을 뿐이다."
"서부전선에 콘크리트 장애물과 지뢰를 설치한 것은 옛날 장군이 바보였기 때문이다."
"고독도로와 철로는 방어하는 우리에게 더 유리하다."
모두 웨곡된 교육

7. 초등학교에 김정일 사진, 사상교육의 기반 흔들

8. 2000년 12월까지 지뢰 제거 명령

9. 타당한 분석과정 없이 경의선을 환상의 실크로드라고 환상을 심어주면서 남침용 길만 열어 주었음. 북으로 가는 통로는 지금도 막혀있음.

10. 2001년 6월, 북한에 제주해협 통항권을 주자고 있고, MLL도 개방, 일부를 북한에게 건네줄 것 시사

11. 현장 지휘관에게 부여된 "UNC 자동교전규칙" 박탈



친북정책으로 넘어간 군자금

1. 러시아에서 받은 돈 14억 7천만 달러를 안받을 테니, 북한에게 받을 돈 50억 달라를 받지 말라고 거래

2. 알게 준돈 5조.

3. 모르게 준돈, 미국이 일부 폭로

2000년도 한해에 4억달러 김정일에게 비밀리에 송금

미의회 조사국(CRS) 2002년 2월 25일 의회에 제출한 한,미 관계보고서"

정부는 1999년과 2000년 어느날까지 현대를 통해 비밀리에 4억달러 북한의 전달
관광대금으로 4억달러 전달. 총 8억달러. 그 중 4억달러는 무기구입에 사용

CIA에서 한국정부에 이 내용을 경고했으나 한국정부 무시.
미국에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빼달라 강력 요구(2002년 3월 27일)

3. 업체들에게 북한 투자 및 지원 강요(6000억원 가량), 대북지원에 나서는 업체에게 세무조사 면제

4. 북한에 50만KW 전기 공급 추진, 미국에 의해 제지

6. 금강산 사업등으로 북한에 보낸 돈

1) 2000년 9월 28일 : 식량지원 60만톤(3,120억원),

2) 6회의 걸쳐 104만톤(4,660억원)

3) 정부가 사용한 남북 협력기금 : 1조 864억원

4) 1999년 한해동안 대기업들이 부담한 준조세 : 업체 당 평균 745억원 이는 기업들이 부담한 국세의 1.2배, 지방세의 20배 규모

5) 1999년 10월 6일 현대가 20인치 칼라 TV 3만대 북송(445만달러:58억원)

6) 1999년 8월 16일 대한제당이 연간 2만톤(60만달러)씩 북한에 제공(31억원)

7) 199년 11월 27일 삼성이 172만 달러를 투자(22억)

8) 2000년 1월 25일 현대아산이 190만달러 상당의 기와공장 설비 반출(25억원)

9) 2000년 2월 8,863평 자리평양실내 체육관 준공(450억원)

10) 평화자동차공장에 금강산 국제그룹이 3억달러 투입(4,000억원)

11) 2000년 3월 7일 삼성전자 평양체육관용 전광판 시스템에 400만달러 투자(52억원)

12) 2000년 3월 22일 삼성이 조선컴퓨터 소프트웨어 지원에 73만달러 부담(10억)

13) 내복 1,000만벌(600억원)

14) 2000년 3월 6일 축협에서 게란 1천만개, 새마을 운동에서 곡물 1,660만톤

15) 2000년 4월 12일 평화의 숲에서 묘목 20만 그루

총계. 2조 3,892억원

16)2002년 4월 23일 한국일보, 비무장지대 내 경의선 공사 2002년 5월 공사 시작 10월 이전에 연결 완료, 5월 중금강산 육로관광을 임시도로 연결 공사에 착수
군사분계선- 개성 12KM 구간 공사에 필요한 레일, 침목 등 기자재 북측에 지원

17) 2002년 4월 22일 한겨레, 문화 일보
군사분게선에서 강릉을 잇는 동해북부선 남쪽구간(127KM) 2009년 완공예정

18) 한겨례 4월 12일, 비료 20만톤 추가 지원

19) 금강산 관광
- 1인, 하루 입산비 100달러, 3일 코스 200달러
- 관광객이 있으나 없으나 연간 50만명이 간것으로 계산하여 비용전달
- 1999년부터 2002년까지 금강산에 간 관광객은 47만명이나 모두 150만명이 간것으로 계산하여 4억 5천만 달러 지급
- 독점사업권 명분으로 9억 4,200만 달러 지급




반공 역사 말살

1. 2000년 10월 1일, 6.25ㄹㄹ "실패한 통일 노력"으로 정의

2. 2001년 8월 23일, 베트남에게 한국군 파병 사과.

3. 여수, 순천, 4.3사건 인물들 통일의 역군으로

4. 16년전, 7명의 경관을 죽이고 11명의 전경에 주상을 입한 동의대 좌익 데모학생을 민주 투사로..

5. 16년전, 과격한 불법노동운동으로 실형을 받은 전교조 교사 1,139명 민주화 투사로.

6. 좌익 대모를 민주화투사로 둔갑 최고 2억원씩 보상. 국가의 부름으로 싸운 고엽제 환자들과 전상자들에겐 약값조차 지불하지 않고 있음

7. 한총련의 명예회복 시도

8. 63명의 간첩을 영웅 취급하여 북송, 국군포로, 강제 납죽자에 대해선 침묵

9. KAL 폭파범 김현희는 극진히 대점, 억울하게 죽은 115명의 유족은 홀대

10. 국군 포로를 이산가족으로 전락

11. 좌경 데모는 보호, 보수 데모는 차단

12. 국정원, 기무사, 경찰의 간첩 잡은 활동을 은밀히 차단



언론의 입막기

1. 46개 언론사들을 북한에 보내 북한의 명예를 손상하는 글을 쓰지 않게 합의

2. 언론에 "햇볕정책"에 악형향을 주는 글을 쓰지 못하게 합의

3. 김정일이 가장 싫어하는 조선일보와 동아 일보 죽이기
국세청 800명 인력의 반인 400명을 풀어 60~90일간 세무조사. 서울방송에 51명,조선일보에 50명, 동아일보에 35명, 중앙일보에 24명.
공정거래위원회도 가담.



거짓말

거짓말도 좋다. 백번을 반복해라. 그러면 참말이 된다. (공산주의자들의 말)

1. 1967년 6월 4일 오후 2시 목포역전 광장에서 한 국회의원 선거 유세
"이 김대중은 돈을 돌보듯 합니다"

2. 1997년 10월 8일 광훈 클럽
"이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 가족은 무재산 가족이 될것입니다. 저희는 대통령이 되면 자식뿐 아니라 형재의 재산까지도 공개를 하고 정말 무소유가 되겠습니다."

3. 2002년 6월 21일 일간지 일동
"국민 여러분, 이 김대중은 이제 고개를 들 수 업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제 가족들이 모두 도둑질을 했습니다. 고개를 둘수 없습니다."

4. 2002년 7월 11일 조선, 중앙
"국민여러분께 한없는 죄송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차남 김홍어씨가 특정범죄가추어벌법 상 알선 수재, 조세포탈 및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되고홍업씨 관력 의혹에 대한 검찰수사 결과에 대한 발표.

검찰은 홍업씨가 기업들로부터 48억을 받았다고 공소. 현대에서 16억. 삼성에서 5억. 이 2업체로부터 매달 5000만원씩 상납. 임동원에게도 때떄로 2,500만원, 신건에게도 1,100만원씩 상납. 홍업씨는 10억원을 아파트 베란다 창고 안에 숨겨 놓고 "부정한 돈은 한푼도 받지 않아다." 라고 거짓말

2002년 6월 11일 오전, 국무회의 가 끝난 직후 이한동 총리가 법무장관에게 한말

" 어른이 매우 섭섭해 하십니다. 어떻게 한집안에서 두 자식을 구속 할 수 있느냐고 하시더군요. 불구속 수사는 도저히 안되는 건가요?"

5. 1997년 10월 8일 광훈클럽
"이 김대중이는 평생동안 거짓말을 한적이 없습니다. 약속을 했다가 못지킨 것과 거짓말은 다른겁니다."

6. 중앙일보 2000년 12월 11일
"이 김대중이 노벨평화상을 받으면 상금(11억 2,22만원)을 국가에 내놓겠습니다.

7. 2001년 12월 10일 조선일보
"노벨 평화상 상금은 아태재단에 넣어두엇다."

8. 2002년 5월 20일 중앙일보, 세게일보, 신동아 6월호
"노벨상금과 그 이자를 평양과학기술대학에 기탁할 것이다. 그들은 6.15기념관을 지을 것이다."

10. 1997년 10월 8일 관훈클럽
"저는 김정일을 대단히 위험한 사람으로보고 있습니다. 저는 김정일에 대해서 조금도 방심하지 않습니다."

- 2000년 2월 9일 도쿄방송
"김정일은 식견있고 합리적인 판단능력을 가진 지도자입니다."
- 2000년 2월 28일 독일 슈피겔지
"김정일 총비서는 실용주의자라고 생각한다."

11. 1997년 10월 8일 관훈클럽
"김정일과 담판하여 노동당 규악을 개정시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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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훗 작성일

입체로 보는 김대중
 
 

                                                  탈북자들이 증언하는 김대중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에서 재판부는 김대중을 민주화의 화신이고, 전두환은 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죄를 범했다며 무기징역을 최종 선고했다. 재판부는 5.18 시위대가 헌법을 수호하려는 준헌법기관인데 전두환과 정호용이 이를 무자비하게 진압했기 때문에 내란죄에 해당하고 그 과정에서 훌륭한 시위자들을 살해했기 때문에 내란목적살인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5.18을 조기에 진압한 것은 전국적으로 확대돼야 할 민주화운동을 탄압한 것이기 때문에 내란이라고 판결했다. 필자는 이런 판검사들이 과연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인지에 대해 의심한다. 과연 역사바로세우기의 판검사들이 옳은 판결을 했는가? 먼저 김대중이 북한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 사람인지를 탈북자들의 증언록을 통해 알아보자. 인용된 자료는 모두‘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에 있다. 

1) 북한에서 광주인민봉기에 나갔었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다. 80년도 당시 성인이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거의나 다 알 것이다. 처음에는 누구도 그런 사실에 대해서 잘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씩 사실이 알려지고 영웅들이 많이 생기면서 사회에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도 다 알게 되었다. 광주인민봉기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김대중과 짜고 만든 통일 작품이다. 우리는 확실하게 그렇다고 믿는다. 북한에서 김대중은 혁명가다.(39쪽 하2-8줄) 

2) 다른 탈북자들에게 질문을 던져 봐도 하나같이 나처럼 대답할 것이라고 믿지만 1980년 5월 18일 광주사건 때에 북한군특수부대 요원들이 내려갔었다는 이야기는 북한사회 전체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한국에 온 탈북자들뿐만이 아니라 지금 바로 북한에 가서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어느 누구라도 세워놓고 광주사태에 대해서 들어보거나 아는 내용이 있는 가고 물어보면 보태지도 덜지도 않고 바로 이런 대답이 분명히 나올 것이다. “그때 우리 쪽에서 많이 내려가서 싸우고 왔다는 것은 비밀이 아닌데요.” “우리나라 특수부대 사람들이 참가하지 않았으면 며칠 동안 광주가 해방될 수도 없었고 남조선사람들의 능력으로는 절대로 안 되는 일이지요” “전라남도 광주인민봉기는 조선의 특수부대가 애국투사인 김대중 선생님을 도와주기위해서 내려가서 싸운 것으로 알고 있어요.” “1968년도에 박정희를 죽이러 남조선에 갔다가 죽은 사람들의 영웅묘지도 있고 1980년도에 광주인민봉기에 내려가서 죽은 사람들의 영웅묘지도 조선에 있어요. 내 눈으로 직접 봤는데요.”(165쪽 10줄-166쪽 2줄)

3) 김일성은 광주폭동이 성공해서 전국적인 인민항쟁으로 퍼져나갔다면 남조선괴뢰정권은 무너지고 김대중을 수반으로 하는 새로운 혁명정권이 남조선에 수립될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친 것이 큰 실수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김정일이도 자기의 생일날인 1981년 2월 16일, 광주인민봉기는 수령님께 바치는 나의 선물이었는데 우리의 역량이 너무 적어서 성공하지 못했다고, 수령님을 볼 면목이 없다고 일군들 앞에서 말했습니다.(224쪽6-12줄)

4) 당시만 해도 북한사회에서 김대중의 몸값은 ‘선생님’이라는 칭호와 함께 통일혁명당의 수괴였던 김종태, 차영도 등과 함께 조국통일과 남조선혁명을 위해서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영웅’으로 취급되고 있는 현실이었다. 이 사실만 놓고 보아도 북한이 광주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5.18의 조작을 위하여 고민하고 공을 들였는가를 알 수 있다. 북한사회에서는 광주사태를 마지막까지 남조선통일과 연결시키지 못한 것을 두고 지금까지도 도처에서 후회하는 목소리가 많다. (243쪽 8-16줄)

5) 김대중이의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북한에서는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남조선의 ‘김대중 선생’이라고 하면 통일을 위해서 적후에서 용맹하게 싸우는 투사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저는 남조선에 와서 지금까지 김대중이라는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이나 발언들을 보면서 북한에서 이 사람을 큰 인물로 인정하고 내세워주고 있는 이유가 따로 있었고 과연 의심할 바 없는 확실한 북한 쪽의 사람이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5.18사건이 김대중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김일성이 생전에 정권을 잡고 있을 때나 지금의 김정일 정권에서나 공개적으로 시인하고 있는 것이고 북한사람들 치고 어느 누구에게 물어봐도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해서는 모두가 다 한목소리로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257쪽 하1줄-258쪽 11줄)

6) 광주사태는 보태지도 덜지도 않고 김대중의 친북 조직과 북한정권이 남조선에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정권을 세우기 위해서 조작한 협공작전이라는 것이 그가 확실하게 장담하는 내용이었습니다.(421쪽 하3줄-422쪽 1줄)

                                                        수기집에는 문익환에 대한 증언도 있다. 

“(공화국 영웅 평양사자) 자서전의 내용 중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것은 그가 남조선에 내려와서 대남공작을 시작하면서 진행한 일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그의 아버지 친척들의 이름을 비롯해서 자기가 공작한 대상들의 이름이 개별적으로 적혀있었고 특히 지금까지 내 머리 속에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종교와 관련된 사람들의 명단 속에 있던 죽은 문익환 목사의 이름이었다. 1989년인가 문익환 목사가 평양을 방문해서 김일성과 만났을 때 나는 ‘평양사자’의 자서전에서 보았던 문익환 목사의 이름이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랐던 기억이 있다. 어렴풋이 생각되는 내용이지만 ‘평양사자’가 남파되어 문익환을 만나서 김일성의 친서를 전달하자 그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생의 마감까지 수령님께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를 했다고 하였다.(142쪽 2줄-15줄)

실제로 2006년 9월 8일 한국일보는 평양에서 발행되는 영자지 평양타임스를 인용하여 문익환의 초상이 북한 기념우표에 올라 있고, 우표에는 민족통일상 수상자로 표기돼 있다고 보도했다.

                                                              필자가 본 김대중

1)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어서도 북한에 대해 이른바‘통 크게’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김정일은 1999년 김대중을 협박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선전선동기관인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은 1999년 7월 19일, 김대중역도의 부정부패행위를 고발한다”는 제목으로 먼저 포문을 열었다. A-4지 14쪽 분량으로 실려 있는 한민전의 고발내용을 요약한다.

1982년 김대중은 미국망명 때 전두환에게 정치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서약하고 그 대가로 30만 달러의 돈을 받았다. 92년 대선 직전 그는 노태우로부터 20억 원을 받았다. 전 평민당 창당자금으로 3백억 원을 받았고 6공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문제로 궁지에 몰렸던 노태우에게 그것을 유보한다는 대가로 5백억 원을 받았다. 노태우로부터 모두 1천2백 여억 원을 받았다.

60년대 말 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아먹고 코카콜라를 끌어들이게 하고는 그것이 문제시되자 재빨리 국회에서 업자를 비판해 이에 분격한 업자로부터 멱살을 잡히고 뺨을 얻어맞은 바 있다. 미국에 망명했을 때 김대중은 미국교포들이 광주학살희생자 유족들에게 전해달라고 기탁한 15만 달러와 한국민주화운동에 써달라고 모금해준 수백만 달러를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고 호화판생활을 해 교포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87년부터 청와대 권좌에 오르기 전까지 조성하여 친인척명의로 관리해온 비자금은 8천여억원에 달한다. 집권하자마자 개혁」의 구호를 들고 재벌들과 기업주들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뜯어냈다. 「재벌구조조정」에서 살아남느냐, 죽느냐 하는 기로에서 재벌들은 살아남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저마다 돈뭉치를 들고 청와대로 찾아갔다. H그룹회장은 1백50억 원을 청와대에 상납했다. 이렇게 기업주들로부터 챙긴 검은 돈이 5천억 원이다.

구조조정을 한다는 명분으로 기업체들과 은행을 외국투자가들에게 매각하면서 또한 큰 돈벌이를 하고 있다. 김대중은 미국의 에이에스회사가 한국화학의 발전 사업을 헐값으로 매입할 수 있게 해준 대가로 5백억 원의 사례금을 받았고 한국의 유망 기간산업의 주식을 헐값으로 팔아넘기기로 하고 사례금을 받았다. 소로스에게 단기채권시장을 내주고 서울증권을 헐값으로 매입할 수 있게 해준 대가로 4백억 원의 사례금을 받은 것을 비롯해서 외국투자가들에게 온갖 이권을 보장해준 대가로 지금까지 받아먹은 돈이 2천억 원이다.

1998년 10월, 독도의 영유권을 포기하고 황금어장을 팔아넘기는 것을 골자로 한 한일 간의 어업협정을 발효시키기로 한 대가로 막대한 돈을 받았다.

전두환, 노태우를 잘 보살펴주면서 그들로부터 막대한 돈을 뜯어내고 있다.  비자금문제와 추징금징수를 무마시켜주기로 하고는 그들로부터 각각 2천억 원씩의 사례금을 받았다. 「전 대통령의 예우」를 받을 수 없게 된 전두환에게 외교관여권을 주어 방일행각을 하도록 한 대가로 5백억 원의 사례금을 받았다. 

[금모금운동]이라는 것을 벌여놓고 막대한 돈을 착복하였다. 국민들로부터 수집한 금붙이들 가운데 일반적인 금붙이는 금괴로 만들어 팔고 값비싼 금패물들은 그대로 외국의 보석상들에게 넘겨 돈벌이를 했는데 그 금액은 대략 2억 달러에 이른다.

인사는 곧 돈줄이었다. 김대중의 인사를 통한 돈 사냥은 주로 장남 김홍일을 통해 벌어지고 있다. 김홍일은 애비의 권세를 등에 업고 정치권은 물론 군과 검찰, 경찰의 인사권에까지 개입하여 돈벌이를 톡톡히 하고 있다. 장성별 한 개의 공정가격이 1억 원이라는 것은 공개된 비밀이다. 김대중 부자가 군과 경찰인사를 통해서만 착복한 돈이 6백억 원은 넘는다.

김대중의 여섯째 처남 이성호는 해외여행 알선업체인 「평화관광」을 경영하면서 김대중을 등대고 해외 특혜여행을 미끼로 여행자들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걷어 들이는 한편 유학시절 미국 에리모 대학과 조지 워싱턴대학원에서 친교를 맺었던 인맥들과 짜고 미국현지에 진출한 한국재벌업체들에게 이권을 보장해 준다고 하면서 막대한 돈을 뜯어내 김대중의 금고를 채워주고 있다.

이형택과 이세작 등 처조카들까지 발동해 막대한 비자금을 긁어 들이고 있다. 김대중의 처조카인 동화은행 영업1본부장 이형택은 금융계에 손을 뻗쳐 신탁통치로 인해 생사기로에 놓여있는 은행들과 종금사들을 살려주겠다는 담보로 수백억 원의 비자금을 걷어 들였다.

김대중의 둘째 처남 이경호의 차남인 이세작은 변호사의 간판을 걸고 각종 비리에 걸려든 정계와 재계의 거물들을 살려준 대가로 막대한 돈을 거두어 들였다. 김대중은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소유한 재산이 9억4천만 원인 것으로 신고했고 대선 후의 재산공개 시에는 8억8천만 원으로 6천만 원이 줄어든 것으로 공개했지만 지금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재산은 알려진 것만 해도 1조원이 넘는다.

김대중은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뜯어낸 돈을 스위스와 싱가포르를 비롯한 외국은행들에 있는 자기의 비밀구좌에 입금시켜 놓았는데 그 규모는 10여억 달러에 달한다. 
   
2) 1999년 12월 5일, 북한 부주석 김병식이 김대중에 쓴 편지를 폭로했다. 

                      김대중 선생 귀하.

이번 대선의 큰 사업을 앞두고 분망하실 선생에게 따뜻한 인사를 보냅니다. 그 동안 어려운 길을 걸어온 선생의 오랜 소망과 뜻이 성공의 빛을 보게 된다고 생각 하니 선생과 협력해오던 지난 날이 회억 되면서 감개무량 함을 금할수 없습니다. 선생과 처음으로 상면 하던 때가 엊 그제 같은데 벌써 26년 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요즘 텔레비죤 화면에서 선생의 모습을 볼 때마다 1971년 가을 일본 도꾜 플라쟈 호텔에서 서로 뜨겁게 포옹 하던 때가 생생히 떠오르곤 합니다. 그때는 물론 약소 하였습니다.선생의 민주화 운동을 위해 20만 딸라 밖에 보탬 해 드리지 못한 것 지금도 괴롭게 생각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선생을 오늘의 성공에로 이르도록 돕는데 밑 거름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보람을 찾습니다. 선생이 어느 회합에서 말씀 하셨지만 조국 통일의 앞길에는 의연히 많은 난관이 있습니다.지금에야 말로 이남에서 자주적인 민주 정권이 서야 북과 남이 민족 주체적 힘으로 통일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할 때이라고 간주 합니다. 나는 선생이 대선에서 꼭 승리 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선생과의 상봉을 확약 하면서 옥체 만강 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주체 86 (1997년)12월 5일 평양에서
조선 사회 민주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김병식

3) 이어서 1999년 12월호, 일본 문예춘추지에 김정일이 김대중을 압박하는 육성녹음이 소개됐다. 우리 아버지 수령으로부터 사랑과 배려와 도움을 받고도 배은망덕하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정권을 쥐고 있는 김대중은 야당 시절을 아득히 먼 옛날처럼 잊어버리고 미제의 등에
업혀 반사회주의 책동에 음양으로 혈안이 돼있다".

"김일성 수령님은 김대중이 민족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애국주의자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말
씀에 그리고 수령님의 사랑과 배려, 동지적 신뢰에 대해 오늘의 김대중은 배신으로 대답하
고 있다".

"김대중은 야당 시절 민주화를 외치며 우리들에게 접근했으면서도 신뢰와 의리를 버리고 반
사회주의·반통일 책동에 광분하고 있다".

"김대중을 두목으로 하는 남조선 당국자는 동포와 민족을 위한다는 구실로 ‘태양정책’을
실시하고 있으나 사실은 우리 공화국을 혼란시키려는 기만정책에 불과하다"

"그도 한때는 민족자주와 미군철수를 주장, 민족주의자임을 자칭했으나 민족의 존엄과 양심
을 저버리고 악랄한 친미·친일의 사대매국 행위에 열을 올리고 있다"

4) 같은 시기에 구국전선이라는 노동당 기관잡지가 전단을 통해 김대중이 스위스 은행에 10억 달러를 보관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 책자와 전단은 한국의 휴전선과 해외교포들에게 뿌려졌다. 바라는 요지는 김대중이 김일성 주석의 은혜에 빨리 보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5) 이 연속적인 협박에 당황했을 김대중이 2000년 3월, 갑자기 베를린으로 날아가 접선을 요청했다. 김정일의 입을 빨리 막기 위해서였을 것이다.“이제까지 민간단체를 통해 북한을 도와주었지만 도와준 양이 변변치 못했다. 좀 넉넉하게 도와주려면 아무래도 정부가 앞장서야 할 것 같다. 그러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정상회담을 열자”는 요지의 선언이었다. 김정일은 쾌히 그를 평양으로 불러들여 차안에서 단둘이 55분간 접선을 했다. 색깔로 의심받아온 그가 대열을 이탈해 적장과 단둘이 1시간씩이나 밀담을 나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접선과정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소문과 추측만 무성하다.

하지만 그 접선 이후에 나타난 김대중의 행동은 결코 대한민국 대통령의 행동이 아니라 약점 잡힌 사나이의 허둥대는 행동이었다. 김정일이 앉아라하면 앉고 서라하면 서야 하는 사람으로 비쳤다. 그 후의 남북한간 거래는 거래가 아니라 한쪽 협박하고 다른 한 쪽은 그 협박에 못 이겨 허겁지겁 대국민 명분을 만들어가면서 퍼주기만 하는 약점 잡힌 전주에 불과했다. 이를 어떻게 정상회담이라 볼 수 있으며 대북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필자는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여 2002년 8월 16일, 동아일보와 문화일보에 의견광고로 나갔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5.18이 북한과 연계된 폭동이었다고 한 35자의 문자 하나만 걸어 필자를 광주구치소로 구속시켰다. 위 사실에 대해서는 고소를 하지 못한 것이다. 김대중과 김정일이 차내에서 무슨 내용을 주고 받았을까에 대해서는 소문과 추측만 난무했다. 일본에서 2004년 12월 4일 발간된 책 “김정일 파멸의 날”(출판사: 일신보도. 저자: 미도 히로미찌)은 교보문고에 들어와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읽혔다. 이 책의 188-189쪽에는 2000. 6.15일 남북정상회담 시, 갈 때에 45분, 올 때에 45분, 계 90분간에 걸쳐 김정일과 김대중 단 두 사람이 동승한 차내에서 있었다는 밀담내용이 소개돼 있다. 아래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들이다. 
                                         
미 CIA는 양 김의 차내 밀담 90분간의 내용을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포착하였다. 그 주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김정일은 김대중의 남로당 서류와 1967년부터 김일성이 죽을 때까지 30여 년간 김대중에게 제공한 자금원조에 관한 자료 등을 보여주면서 "이들 자금이 도움이 되었습니까?”이렇게 말했다. 이에 김대중은 잔뜩 주눅이 들어 아래와 같은 말을 하였다. 

1) 생전의 김일성 수령님을 만나 뵙지 못해서 유감입니다.
2) [박통시절) 납치사건에 있어서 여러 모로 힘을 써 주셔서 오늘 날의 제가 있었습니다. 
3) 광주사태로 인해서 사형판결을 받았을 때에도 생명을 구해 주셨습니다.
4) 수령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도 김 총서기님과 협력하며 살고 싶습니다.
5) 남북 평화협정을 조기에 체결하고 싶습니다.
6) 국가보안법을 철폐시키고,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민족을 자주적으로 통일하는데 매진하고 싶습니다.
7) 북조선에 경제재건을 위해서 의욕적으로 협력하겠습니다.
8) 클린턴 미 대통령과 일본 총리를 조속히 평양에 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대중이 그 후 대통령으로서 보여준 행동과 김정일이 4차례에 걸쳐 협박한 내용을 보나 탈북자들의 증언들을 종합해 보면 위 책의 내용은 증거의 존재 여부를 떠나 상당히 합리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2009.11.18.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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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대북 비밀지원 승인, 후회없다"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788   
DJ, "대북 비밀지원 승인, 후회없다"
 
 

DJ, "대북 비밀지원 승인, 후회없다"
연합뉴스 | 입력 2004.06.19 11:54

(서울=연합뉴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1억달러 비밀지원을 대통령으 로서 승인했으며 이를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FT) 인터넷판이 18일 보도했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영어권 신문과 가진 최초의 회견을 통해 "잘 사는 형이 가난한 동생을 찾아갈때 빈손으로 가서는 안된다. 우리는 북한에 1억달러를 지원하 고 싶었지만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FT는 이같은 언급은 이 사건과 관련해 지금까지 나온 김 전대통령의 언급중 가 장 솔직한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앤드루 워드 FT 서울 특파원의 기사를 요약한 것. 『김 전대통령은 정상회담의 대가로 북한에 1억달러를 지원했다는 비판에 대해 "잘 사는 형이 가난한 동생을 찾아갈 때 빈 손으로 가서는 안 된다. 우리는 북한에 1억달러를 지원하고 싶었지만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비밀 지원의 배경을 설명하고 이는 미래를 위한 투자였으며 "내가 대통령으로서 승인한 것이고 이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정상회담이 지속적인 평화를 가져온다면 1억달러는 작은 대가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비판론이 있지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이 현대의 대 북사업과 함께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군사충돌 위험 감소 효과를 낳았으며 정상회 담 이후 문화.경제 교류와 이산가족 상봉, 북한 스포츠팀의 남한 방문, 한국 관광객 들의 북한 여행, 도로 및 철로 재연결, 북한내 한국 산업공단 건설 등으로 이어졌다 고 말했다.

그는 특히 산업공단으로 한국이 얻는 경제적 이득이 1천억달러에 달한다는 전문 가들의 의견을 소개하고 `1천억달러"라는 숫자를 재확인했다. 김 전대통령은 또 미국이 대북 지원 중단이 옳은 방법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 는 것과 관련, 조지 부시 대통령을 직접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이 보다 적극적 인 자세를 취하기를 바란다"는 말로 미국의 정책에 대한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적극적"이라는 단어에 대해 개입과 협상을 뜻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미 국이 소련 및 동유럽과 경제.문화 교류를 한 뒤에 공산주의가 무너진 사실을 예로 들어 고립과 견제가 비생산적임을 강조했다. 김 전대통령은 북한이 미국의 위협을 느끼지 않게 되면 핵활동을 포기할 것으로 믿으며 "북한은 핵무기를 완전히 해체하고 미국은 북한의 안보를 보장하면서 북한이 국제사회로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를 불신하기 때문에 서로 상대방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양측이 동시에 행동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서도 "영리하고 솔직한 사람이며 한국과 세계 문제에 정통해 있다"고 평가해 그를 "혐오한다"고 말한 부시대통령과는 판이한 태도를 보였 다.

그는 김위원장이 끈질긴 개혁가이며 북한을 냉전시대의 태도에서 해방시키기 위 해 끈기있게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대통령은 지난 2년간 북한의 통제경제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단 지 지나치게 빠른 변화를 우려하는 강경파의 견제를 받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김정일 치하의 북한은 덩샤오핑(鄧小平)의 통치 초기 중국과 유사성을 보 이고 있다. 덩은 개혁 과정에서 정권이 흔들려 정부내 보수파의 반대에 부딪힐 것을 우려했다"고 말했다. 김 전대통령은 또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해 경제성장의 공로자라는 평가가 나오 고 있는데 대해 "그의 권위적 정부는 경제성장을 가져왔는지는 몰라도 이는 혹독한 대가를 요구한 불균형한 성장이었다"고 지적하고 "건전하고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서 는 민주주의와 복지, 그리고 인권 존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퇴임시 건강에 관한 각종 루머가 나돌던 것과는 달리 혈색이나 눈매, 목소 리가 모두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 youngnim@yna.co.kr (끝)

흐훗님의 댓글

흐훗 작성일

이제는 나서야 한다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447   
이제는 나서야 한다                       

하는 애국동지 여러분,  50년 전에 우리는 참으로 가난했습니다.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이 새까맣게 우러러 보이는 선진국이었습니다. 북한도 우리보다 2배나 잘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북한보다 14배 더 잘 삽니다. 옛날의 선진국보다 우리가 더 선진국이 됐습니다. 누가 이런 엄청난 기적을 일구어 냈습니까? 바로 우리입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이 나라에 가장 자랑스런 세대입니다. 한국호 최대의 주주는 바로 우리입니다. 그런데 이 어인 일입니까! 잠시 방심하는 사이에 이 배는 희대의 비련아, 타이타닉호처럼 침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침몰되었습니까? 배가 두 동강이 나서 가라앉고 있는데도 승객들은 눈치조차 채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극히 일순간에 바닷물이 들이닥쳐 모든 생명을 무자비하게 훑어갔습니다.

바로 이 침몰의 순간이 우리 한국호에 무서운 속도로 달려옵니다. 희대의 사기꾼, 브로커, 청부업자, 조폭, 친북 세력들이 선장실을 점령해 버렸습니다. 모든 1등실들도 저들이 점령했습니다. 선장에게는 세 아들이 있습니다. 그 아들들이 패거리를 이끌고  우리가 피와 땀으로 일구어 놓은 자산을 마음껏 노략질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저들은 이미 걸레가 되어 버린 이 한국호를 김정일에 바치려고 북으로 북으로 끌고 갑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몇 개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첫째가 국가보안법입니다. 적화통일 활동을 드러내 놓고 하려면 국가보안법이 걸리적거립니다. 그래서 저들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 합니다.

두 번째가 주한미군입니다. 주한미군이 있는 한, 적화통일은 어렵습니다. 2001년 3월, 저들은 기습적으로 김정일을 불러들여 평화선언을 선포함으로써 적화통일의 초석을 놓으려 했습니다. 이러한 음모를 막아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미국의 부시였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주한미군을 내몰자 합니다.

미국을 증오하자며 바람을 일으킵니다. 이번 4월20일자 평양방송이 이들을 독려했습니다. "미국은 조국통일의 기본 장애물이다. 남한의 애국청년들은 반미투쟁의 선봉에 나서라"며 저들을 선동했습니다.

셋째가 언론입니다. 저들의 이적행위와 노략질을 사사건건 폭로하는 신문들을 죽이거나 국영화 하자 합니다.

네 번째가 반공세력입니다. 저들은 우리를 냉전 수구 반통일 반동분자라며 증오합니다. 재벌들의 자산을 나누어 갖자 합니다. 가진자들의 재산을 빼앗아 나누어 갖자 합니다. 농토를 빼앗아 나누어 갖자 합니다. 노동계급이 똘똘 뭉쳐 사회를 장악하자 합니다. 이는 1917년, 러시아 노동계급이 사회를 전복했을 때 사용했던 섬짓한 구호들입니다. 그들은 러시아에서 농토를 빼앗기 위해 1,000만명의 농민을 죽였습니다. 재산만 빼앗는 게 아니라 생명도 무참히 앗아갑니다. 이런 게 바로 좌익입니다.

도대체 우리가 타고 있는 이 배는 지금 어디쯤 끌려 와 있습니까? 

저들이 노략질해간 부채를 우리가 떠 안았습니다. 자자손손 빚을 갚아야 하는신세가 됐습니다. 150조의 공적자금, 또 다른 200여조의 국가채무, 100여조의 연기금을 마구 풀어헤쳐 놓고 그 돈을 노략질했습니다. 우리는 이 노략질에 대해 알아야만 합니다.

저들은 돈을 풀어 가장 먼저 금융기관을 국유화했습니다. 은행에 빚을 진 600여 개의 대기업, 중견기업들을 국유화했습니다. 기존의 공기업이 405개입니다. 중앙정부가 108개, 지방정부가 297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1,000여 개의 대형 기업들이 한 순간에 정부 소유가 됐습니다. 이미 이 나라는 국영공화국이요 사회주의 국가로 변신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경영의 "경"자도 모르는 정치꾼들이 나가 연봉을 170%까지 올리고, 수당을 얼리고, 판공비를 수백 프로씩 올리고, 하청업체 및 조폭들과 야합히여 돈을 털어 갔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공자금을 넣어야 기업이 산다며 떼를 쓰고 있습니다. 공자금을 통제하는 부서도 없습니다. 풀어헤친 공자금은 그의 추종세력에게, 알아서 챙겨가라고 내놓은 돈입니다.

이걸 우리더러 갚으라 강요합니다, 세금을 올리고, 세무행패를 강화하고, 공공요금을 올리고, 거리마다 무인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우리의 주머니를 털어 가는데 혈안이 돼 있는 것입니다. 전기료를 단 한번에 2배나 올렸습니다. 농촌 심야전기 시설비를 40만원에서 170만원으로 대폭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북한에 전기를 준다 합니다. 

기업들이 은행에 담보로 잡혔던 토지와 건물도 정부가 차지했습니다. 정부는 자산관리공사라는 대형 브로커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1,600명이나 됩니다. 이 브로커 기구가 토지와 건물을 헐값으로 인수하여 급매물로 외국에 내놓았습니다.

골드만삭스, 론스타. 리만브라더스, 싱가포르투자청 등 해외 브로커 업체들에 고물가격으로 마구 팔아치웠습니다. 그들은 웬 떡이냐 싶어 이들을 사서 곧바로 다른 외국기업들에 되팔았습니다. 더러는 3배, 더러는 5배의 가격으로 횡재를 했다 합니다. 더욱 기막힌 것은 외국 브로커 업체들이 자기 돈은 10-30%만 대고, 나머지는 국내 은행에서 빌려 가지고 샀다는 사실입니다. 돈을 빌려줘 가면서 외국인들에게 폭리를 준 꼴입니다. 왜 이런 짓을 했겠습니까? 정권에 급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여의도의 60배에 해당하는 금싸라기 땅이 외국인 소유가 됐습니다. 2000년12월27일자 매일경제신문은 "웬만한 빌딩 치고 외국인 손에 넘어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라고 보도했습니다. 이면계약의 존재에 대해서도 밝혔습니다.

강남에서 가장 큰 건물인 "현대 I-타워", 서울시청 옆에 있는 "파이낸셜센터", "벽산빌딩", "아시아나항공", "힐튼호텔", SK 증권, 동양증권, 쌍용증권, 고려증권, 대우증권, 여의도 KTB 빌딩, 은석빌딩, 한효빌딩, 대한방적 빌딩, 금호그룹 신사옥, 광주은행 사옥, "시티타워", "현대중공업빌딩" 등, 서울에서 가장 큰 건물들이 외국인 소유로 넘어갔습니다.

이렇게 팔아 넘긴 돈은 두 동강으로 나뉘어 졌습니다. 공식계약서에 표시된 돈은 은행으로 들어갔고, 이면계약서에 쓰여진 돈은 저들의 주머니로 갔을 것입니다. 공식계약서에 잡힌 돈은 외환보유고로 잡혔습니다. 정부는 툭하면 외환보유고가 늘어났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잘난 외환보유고는 바로 이렇게 헐값에 팔아 넘긴 잔돈이었습니다. 이면계약서에 쓰여진 검은 돈이 더욱 클 수 있습니다.   

애국동지 여러분, 은행 객장을 보십시오. 10년 전부터 은행 객장에 순번대기번호표 시스템이 설치됐습니다. 고질병인줄로만 알았던 무질서가 단번에 시정됐습니다. 이게 바로 "보이지 않는 손"의 위력입니다. 자유시장경제는 이렇듯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시장에 "보이지 않는 손"을 설치할 생각을 하지 않고, 소수의 가신들에게 시퍼런 칼을 쥐어 주었습니다.

개혁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을 내걸고 기업을 도륙질 했습니다. 빅딜이라는 생소한 낱말로 국민을 혼돈시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기업을 마음에 드는 기업에 합쳐 주었습니다. 워크아웃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말을 듣지 않는 기업을 망하게 하거나, 빼앗았습니다. 빼앗은 기업은 식솔들에 나누어주었습니다. 기업의 살생부까지 만들어 가면서 겁을 주었습니다. 기업의 운명을 거머쥔 실세들에, 알아서 돈을 바치라는 신호였습니다. 기업은 앞을 다투며 저들에게 상납을 했습니다. 저들과 선이 닿는 연줄을 찾아 대표이사 자리에 앉혔습니다. 

벤처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이용해 사기도 쳤습니다. 청와대 식솔, 동교동 가신, 국정원, 조폭들이 총 동원되어 어린 벤처사장들과 사기 친 돈을 나눠 갖았습니다. 그야말로 난장판 놀이를 한 것입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복장이 터져 나갑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무서운 게 있습니다. 적화통일 음모입니다. 음모의 수장은 바로 이 나라 대통령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북한에 군자금을 대주었습니다. 남침 길을 활짝 열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국민에게는 온갖 거짓말로 환각제 주사를 놓았습니다. 

불순한 교사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그를 우상화시켰습니다. 청와대 비서가 김정일을 찬양했답니다. 월간조선 2000년 9월호에는 청와대 여비서가 했다는 말이 실려있습니다. "벌써부터 우리 장관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님께 잘 보이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을 뵙게 되었으니 저처럼 크나큰 영광을 지닌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2000년 8.11일, 대통령이 46개 언론사 사장들을 김정일에 보냈습니다. 그들은 국빈대접을 받으며 행복해 했습니다. 김정일의 술자리 매너에 반했습니다. 더러는 귀국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김정일을 찬양하고 다녔습니다. 그들은 상호비방 중지를 내용으로 하는 '남북언론합의문'을 교환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 대한 보도를 저들의 입맛에 맞추어 주었습니다.

그 때 김정일은 참으로 무서운 말을 했습니다. "통일은 내가 맘먹을 탓이다",
"내 힘은 군력에서 나온다".

그래도 언론사 사장들은 그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김정일의 이미지를 부각시켜 주었습니다. 그래서 김정일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9.7%나 된다 합니다. 초등학생의 90%가 김정일을 김대중보다 훨씬 더 위대한 사람이라 한답니다. 부인들 사회에도 김정일 오빠부대가 생겼다 합니다. 사회가 위험수위를 한참 넘은 것입니다.

한국인들이 이렇듯 환각상태에 있을 때 김정일은 무엇을 했습니까? 남북정상이 만난 직후에 김정일이 지시한 공문 내용을 보십시오. "나의 통일관은 무력통일관이다", "인민군대는 반미, 반일, 반괴뢰 구호를 더 높이 들고 계급의 총창을 보다 날카롭게 벼려야 한다", "원쑤들과 한 번은 싸워서 결판을 내야 한다"고 다그쳤습니다.

반면 우리의 대통령이란 사람은 무엇을 했습니까?

99년 9월, 김대중 대통령이 타임지에 말했습니다. "식사 때 음식이 남으면 북한 동포들의 얼굴이 떠올라 몹시 괴롭다. 충분히 돕고 싶지만 국민여론이 부정적이어서 애를 먹고 있다".

99년 2월. 그는 일본과의 어업협정에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3,000여 척의 어선이 졸지에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어민들은 슬퍼했지만 그는 아니었습니다. 기다렸듯는 듯이 그 다음날 어선들을 북한에 보내자 했습니다. 

같은 해 3월, 수많은 중소기업이 도산해서 슬퍼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니었습니다. 기계를 뜯어다 북한에 설치해주자 했습니다.

그는 어느 나라 대통령입니까?

중소기업과 농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황무지에 기름진 농토와 기계를 깔았습니다. 김대중대통령은 이를 깔아 죽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두 사람이 한 일을 비교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김대통령이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1960년까지 한국에는 일자리가 없었습니다. 박대통령은 느닷없이 기능학교를 많이 만들어 기능공을 양성했습니다. 기능공들은 국제기능올림픽에 나가 1, 2, 3등을 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기능공의 나라가 됐습니다. 특사들을 보내 선진 공장을 유치했습니다. 외국 기업들이 값싸고 질 좋은 기능공을 활용하기 위해 우후죽순으로 몰려왔습니다. 순식간에 일자리가 폭발한 것입니다.

선진국에서는 한물 간 기술도 들여왔습니다. 한국에는 그런 기술을 소화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외국에 나간 우리 과학기술자들을 대거 유치하여 기업을 가르쳤습니다. 너도나도 공장을 세워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서도 엄청난 일자리가 생겼습니다. 오늘날의 일자리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 졌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도로를 포함한 사회기반시설이 없었습니다. 여기에 많은 자금이 필요했지만 그 어느 선진국도 한국에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국군을 월남에 보냈습니다. 한국군의 활약상에 감동한 선진국들이 자진하여 돈을 꾸어주었습니다. 주월한국군 덕분에 월남에 진출한 건설사들이 노하우를 축적하여 개국이래 처음으로 중동 등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경부 고속도로는 정부가 떼어간 장병들의 전투수당으로 지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강의 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대통령을 보십시오. 일자리를 만들기는커녕 죽이기만 했습니다. 공공근로자들에게 돈을 배급해 주었습니다. 하루에 2만3천원을 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산에 가서 일하는 사람은 3만7천원을 받습니다. 술 마시고 낮 잠자는 사람들에게 공돈을 주는 것입니다. 놀면서 돈을 받는데 누가 밭일을 하고 공장 일을 하겠습니까? 공장을 망치고 농촌을 망치기로 작정하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박정희 대통령과 그를 비교해 보십시오. 한 사람은 나라를 일으킨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나라를 망치기로 작정한 사람입니다. 박대통령은 이 황무지에 기계를 깔았습니다. 김대통령은 그 기계들을 뜯어다 북한에 설치하자 했습니다.       

한전이 그의 뜻을 따랐습니다. 연간 5조의 적자를 내면서도 북한이 그 기계들을 돌려야 한다며 5,000억원을 들여 발전소를 지어주고, 송전선을 세워, 남한 전기를 보내겠다 복명했습니다.

2000년 10월. 60만톤의 식량을 날치기로 보냈습니다. 3,120억원어치였습니다.

98년4월부터 현재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104만톤의 비료가 갔습니다. 4,660억원어치였습니다.

2001년10월, 전국 보건소에 있는 결핵 백신을 한 병도 남기지 않고 싹 쓸어다가 북한에 주었습니다. 30만명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보건소에는 입단속을 시켰습니다.

이는 어느 나라 정부입니까?

2000년, 러시아 대통령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러시아에서 받을 14억 7천만 달러를 받지 않을 테니, 러시아도 북한에서 받을 50억 달러를 받지 말아달라는 제안이었습니다.

정부가 사용한 남북 협력기금이 매년 5,000억 이상입니다. 최초 2년간만 해도 1조 864억원이 집행됐습니다.

현대에 이어 다른 재벌들도 망치려 했습니다. 재벌들을 닥달하여 북한에 투자 명목으로 퍼준 돈이 5.960억 원이었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북한에 간 돈은 2조 5,500억원입니다. 

금강산 사업입니다. 금강산 사업은 사업이 아니라 적장에게 군자금을 대주기 위한 위장망이라는 사실을 국민이 모르고 있습니다. 금강산을 통해 10억 달러가 이미 갔습니다.

여기에 더해 몰래 준 돈도 있습니다. 얼마의 공적자금이 비밀자금으로 둔갑되어 갔는지, 누구도 모릅니다. 단지 이번에 미국이 그 중 4억 달러를 찾아냈을 뿐입니다. 적장은 이를 가지고 남침용 무기를 구매했다고 미국이 발표했습니다. 미국이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이는 분명한 이적행위입니다.

국민은 금강산 사업의 속임수를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한 사람이 하루 입산하는 데 100달러를 바쳐야 합니다. 3일 코스에 300달러입니다. 이런 예는 지구상에 없습니다. 이에 비하면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더욱 기막힌 것은 관광객이 있으나 없으나 무조건 연간 50만명이 간 것으로 쳐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연간 1억5천만 달러를 자동으로 주는 것입니다. 지난 3년간 금강산에 간 사람은 모두 42만명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150만명이 간 것으로 계산해서 4억5천만 달러를 주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99년부터 2004년까지 6년에 걸쳐 '존재하지도 않는 독점사업권'을 명분으로 하여 9억4,200만 달러를 줍니다. 연간 1억5,700만 달러입니다.

앞으로 2년 후인 2004년 말이면 입산료와 독점권 명목으로 18억 6,200만 달러가 갑니다. 2조 5천억입니다.

그 돈을 주고 우리 관광객들은 어떤 관광을 했습니까? 바위를 손가락으로 가리켜도 안되며, 카메라를 빼앗기고, 민 여인처럼 감금되어 문초를 받았습니다. "한국"과 "대한"은 북한에서 용납될 수 없다는 이유로 한국일보 기자는 "한국"이라는 낱말 때문에 H일보라는 명찰을, 대한매일은 "대한"이라는 낱말 때문에 D일보라는 명찰을 달아야 했습니다.

이게 관광입니까 굴욕입니까.

관광에 대한 악 소문이 퍼지면서 관광객 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관광객이 없어도 북한에는 자동적으로 매년 3억7백만 달러가 나갑니다. 관광객이 없는데 이렇게 많은 돈을 주면 비난이 쏟아집니다. 저들은 어떻게든 관광객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가공할 국민 총동원령입니다. 인구의 3분의1인1,300만을 동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3년간 겨우 42만명이 금강산을 다녀왔습니다. 42만명과 1,300만명을 비교해 보십시오. 여기에 지원되는 국가 예산만 정확히 4조입니다. 정부가 4조, 국민이 2조, 합해서 6조를 금강산에 바치는 것입니다. 금강산은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등극하는  반면 설악산과 한라산은 초라하게 허물리고 있습니다. 산을 가진 우리 지역경제가 망가지고 있습니다. 북한 땅이 성지가 되고, 북한정권이 상전으로 탈바꿈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준 돈이 무려 5조였습니다. 북한은 이 엄청난 돈을 가지고 무얼 했습니까? 카자흐스탄으로부터 신예전투기 50대를 구입했습니다. 스커드를 500기에서 600기로 늘렸습니다. 휴전선 대포를 25% 증강했습니다. 전차와 화학무기도 전방으로 추진했습니다. 휴전선에 전진배치된 군사력을 65%에서 70%로 늘렸습니다. 땅굴도 팠습니다. 10년이래 최대 규모의 훈련도 했습니다. 우리를 곧 군사력으로 먹겠다는 말입니다. 이런 기막힌 정보는 미국이 알려주었습니다. 우리 정부는 쉬쉬했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현정부가 북한에 남침용 군자금을 대주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퍼주는 우리에게 북한은 고마워하던가요? 북한은 우리가 준 돈으로 최근 북한강 상류와 임진강 상류에 8개의 댐을 건설했습니다. 태백산맥을 관통하는 총 100㎞의 "지하수로"를 만들어 우리에게 흘러와야 할 물을 머나 먼 원산 앞 바다로 빼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북한강 상류에 유입되는 수량이 5분의 1 정도로 줄었고, 앞으로 수도권은 더욱 더 심한 식수난을 겪을 것이라 합니다.

북한에 홍수가 나서 수문을 열면 수도권 지역이 물바다가 된다 합니다.  저들은 우리가 준 돈으로 수도권을 물바다로 만들 수 있는 엄청난 무기를 설치한 것
입니다. 배은망덕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국제법상으로 보면 임진강과 북한강은 남·북한이 함께 사용하는 공유하천입니다. 당사국의 동의 없이는 물길을 돌릴 수 없게 돼 있습니다. 이민족간에도 이런 일은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북한을 국제재판에 회부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동포가 한 일이라며 감싸주기만 합니다. 

북한에는 이렇게 관대하게 하면서 남한에는 어떻게 했습니까? 안보의식과 안보시스템을 통째로 허물었습니다. 무지비한 방법으로 언론을 탄압합니다.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의 가족을 해코지합니다. 전쟁은 없다며 안보 경각심을 허물었습니다.

병사들에게 총을 놓으라는 말입니다. 간첩도 잡지 말라는 말입니다. 주한미군의 용도가 폐기됐다는 말입니다. 주한미군 철수를 대통령이 부축인 것입니다. 

제1의 주접근로에 깔린 지뢰를 깨끗이 제거해 주었습니다. 경의선과 고속도로를 개통하여 서울로 직결되는 남침로를 활짝 열어 주었습니다.

법정에서 사실상의 땅굴로 인정된 연천 제5땅굴을 조사도 해보지 않고, 대통령이 황급히 나서서 자연동굴이라고 못박았습니다.

2001년 6월, 북한 상선들이 제주해협을 유린했습니다. 대통령이 UN사 자동교전규칙을 박탈하여 우리 해군의 손발을 묶었습니다. 북한 선박 한 척에 우리 함정 6척이 31시간이나 따라다니며 제발 좀 나가달라고 애걸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북한에게 무해통항권을 인정해 주자 했습니다. 바다의 휴전선인 북방한계선이 너무 넓으니 일부를 북한에 양보하자 했습니다. 우리의 군을 적장 앞에 굴복시키고, 우리 영해를 적장에게 바치려 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어찌 우리 대통령 자리에 앉아있어야 합니까?

국보법을 철폐하여 좌익활동을 자유롭게 보장해 주려 했습니다. 반미. 반일 감정을 선동하여 쇄국주의와 주체사상을 식목하고 있습니다. 주한미군과 한국군을 살인집단으로 매도했습니다.

용공세력을 비호하고 용공주의자들을 요직에 중용하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에 걸려 8년간 옥살이를 했던 전직 국회의원이 버젓이 국회에 다니며 무기구매에 간여하고 있습니다. 간첩죄로 사형을 선고받아 옥에 갇혀있던 사람을 끄집어내서 장관을 시키고 있습니다. 노동당 창당 55주년 기념행사에 가서 축사를 읽고, 파주에 있는 인민군 묘소에 가서 참배를 한 사람들이 부총리가 되고, 장관이 되고, 대학총장을 합니다.

그의 분신, 임동원은 누구입니까? 대법원에서 반국가단체로 판결난 범민련을 대북 연락창구로 이용했습니다. 평양에서 열린 적화통일 행사에 311명의 방문단을 날치기식으로 보냈습니다. 그 중 100여명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난 해 9. 3일, 국회에서 탄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회와 국민을 비웃기라도 하듯, 불과 1주일 만인 9.11일에 직제에도 없는 장관급 자리를 청와대에 만들어 놓고, 그를 앉혔습니다. 그는 남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의심스러운 행동을 계속합니다. 

학교들이 마치 1917년 프로레타리아 혁명을 방불케 하는 폭력으로 강탈되여 이념교육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를 막아야 할 공권력이 오히려 비호합니다.

전교조가 초-중-고 학생들에게 이념교육을 시키기 위해 불법 교과서를 내놓고 가르칩니다. 책에는 '인민군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통일사회'가 그림으로 영상화돼 있습니다. 북한은 불쌍한 우리 동포이고, 우리의 주적은 외세와 여기에 계신 냉전세력이라고 가르칩니다. 개인의 삶에 불편을 주는 국가안보는 부정돼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헌법과 국보법을 부정하는 이 엄청난 운동을 정부는 10개월 째 방치하고 있습니다.

4.3 사건, 여수-순천 반란사건, 수많은 반정부 데모 사건; 좌익분자들에 의해 자행된 이 국가전복 사건들은 민주화운동으로 둔갑시키는 반면, 정작 국가의 부름을 받고 나가 싸운 정부군을 박대하고 멸시합니다.

그 어느 나라 국민이 국가의 부름을 받고 나가 싸운 정부군을 용병이요 살인마라고 공격합니까? 이러한 인구는 분명 이 나라 국민이 아닙니다. 이를 처벌해야 할 대통령이 저들을 비호했습니다. 주월한국군의 적장이었던 사람에게 대통령이 사과를 했습니다. 월남전을 민족해방전쟁으로 보는 것입니다.

2001년 국군의 날 행사에서 그는 6.25를 '실패한 통일 노력'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전 역시 민족해방전쟁이었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국가의 정통성을 통채로 부정하면서, 북한 정권에 새로운 정통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분명, 이 나라 사람이 아닙니다. 가면을 쓴 북한 사람입니다.   

한반도에 또 다른 전쟁이 예정돼 있습니다. 9.11 테러 이후 북한은 미국의 주적으로 떠올라 있습니다. 북한은 세계에서 테러기술과 테러무기를 가장 많이 가진 불법무기 소지자가 됐습니다. 미국은 세계 각국을 향해 미국편에 서든지 테러편에 서든지 태도를 확실히 하라 했습니다. 그런데 현정부는 주저 없이 북한 편에 섰습니다.

북한과 한 편이 된 정부는 "전쟁이 나면 큰일이다.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구실로 북한과 내통할 수 있습니다. 기습적으로 '평화선언'을 선포하면서 연방제 통일을 획책할 수 있습니다. "전쟁을 막으려면 이 길밖에 없다. 이것이 전쟁보다야 훨씬 낫지 않느냐" 하면서 국민을 선동할 수 있습니다.

4월3일부터 3박4일간 임동원 특사가 평양을 다녀왔습니다. 갈 때에는  대량살상무기로 인한 미북간의 전쟁을 막으러 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그는 전혀 다른 것을 내놓았습니다. 쌀 50만톤, 비료 30만톤을 주겠다 합니다. 경원선과 동해선을 개통하여 철의 실크로드로 연결하겠다 합니다. "철로연결"이 가장 큰 성과라고 했습니다.

2002.4.8일자 도쿄 신문은 러시아철도 기술연구소가 북한 철도의 안전성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두만강에서 원산. 평강을 잇는 동해안철도 7백km의 전 구간이 위험한 상태이며 터널 130군데, 교량742군데의 보수가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경원선은 어떻습니까. 철로지반이 약해 7대의 화차만 답니다. 전기가 불충분하여 가다서다를 반복합니다. 남한에서 1시간에 가는 거리를 3-4일간 갑니다. 대통령이 그토록 선전했던 실크로드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거짓말입니다. 남침 길을 열어주겠다는 수작입니다.

이번 방문을 통해 임동원 특사는 아리랑 행사, 이산가족 재회, 당국간 대화 등
얄팍한 이벤트들을 많이 만들어 냈습니다. 남북관계가 활발하게 잘 돼가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기에 미국이 재를 뿌리는 일을 하면 곧바로 반미감정으로 치닫게 됩니다. 여기에 반대하는 남한의 반공 세력을 냉전세력으로 몰고 가려는 술책일 수 있습니다. 전쟁을 막으러 간 게 아니라 북한과 공조전략을 짜러 간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다음 정권이 보수진영으로 바뀌면 저들은 이적죄로 처벌될 것입니다.  그의 가족과 그의 편에 섰던 무리들이 국법으로 처벌될 운명을 맞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에게 엄청난 악몽입니다. 사는 길은 김정일에게 나라를 바치는 길뿐이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조선민주연합국이 들어서고 천만이 죽고 천만이 보트를 타고 탈출하는 사태를 맞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싸워도 죽고 얌전히 있어도 죽습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이 내통질을 막아야만 합니다.

잠시 월남 멸망의 날을 보십시오. 정부가 부패했습니다. 병사들은 부패한 정권을 위해 왜 목숨을 바쳐야 하느냐며 싸우기를 싫어했습니다. 종교지도자, 학생들이 연일 데모를 했습니다. 간첩들이 대통령실과 정보기관에까지 속속 침투해 있었습니다.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미국은 스스로를 지키려 하지 않는 국민을 위해 왜 목숨을 바쳐야 하느냐며 싸우기를 거절했습니다.

싸움에 패해야 하는 쪽은 월맹이었습니다. 북폭과 경제봉쇄로 월맹은 피폐할 대로 피폐했고, 병사들을 끼니를 굶었습니다. 소금으로 두끼를 때웠습니다. 팬티도 없었습니다. 타이어 조각을 발에 동여맨 것이 군화였습니다.

반면 58만 월남 대군은 미국이 넘겨준 최첨단 무기로 무장되어 세계 제4대 군사력이 돼 있었습니다. 군사력으로 보면 상대조차 안됐지만 월남군은 총 한번 소지 못한 채 1975. 4. 30일 완전 점령되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까? 저들의 속임수와 내적들과 안이한 평화무드 때문이었습니다. 1973년에 미국과 월맹간에 평화협정이 맺어졌습니다. 전쟁에 지친 국민들이 평화무드에 들떠 있었습니다. 국방과 안보를 강조하는 사람은 전쟁에 미친 사람이거나, 정신나간 사람으로 취급됐습니다. 우리 한국도 바로 이와 똑같습니다.

월남은 무엇 때문에 망했습니까? 의심할 줄 몰랐기 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그래도 당시 티우 대통령은 확실한 반공주의자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대통령은 절대로 반공주위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반공전선의 파괴자입니다.

안보는 의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의심이 없으면 안보도 없습니다. 적을 의심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적을 의심하지 않으면 바로 그가 의심을 받아야 합니다. 대통령이 저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는 국민에게 북한을 의심하지 말라 합니다. 지난 4월6일, 임동원 특사가 말했습니다. "김정일 정권을 의심하지 말자, 의심하면 될 일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성주가 성문을 열어주려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들이 우리의 목을 조르는 사람들입니다.

공산 월맹에 의한 통일이 이루어진 후 거기는 어떻게 됐습니까? 106만명의 난민이 보트를 타고 도망가다가 11만명이 빠져 죽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자세한 통계는 없지만 700만에 이르는 이들이 처형되고 이 중에는 어린 아기들까지도 포함된 것으로 회자됩니다. 통일 후 8년간 세계에 문을 닫고 암흑정치와 공포정치를 해서 자유에 물들었던 사람들을 때려죽이고 굶겨 죽였습니다.   

애국동지 여러분, 1975년도의 월남과 지금의 한국이 어쩌면 이렇게도 닮았습니까? 지금은 분명, 비상시기입니다. 우리의 성주가 적과 내통하고 있다는 심증이 깊습니다. 우리는 이를 더 이상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간이 가면 우리는 죽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는 그들의 행적에 의해 이미 평가됐습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가난하고 의로운 길을 걸어온 애국자들입니다. 이런 우리를 저들은 냉전세력이라고 부르며 타도하겠다 합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공권력이 되어 자유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저들이 공권력이 되어 우리의 자유와 생명을 빼앗아 김정일에 바치려 합니다.

그런데도 이 나라의 건전한 보수들은 월남의 부자들처럼 눈치만 보면서, 나서려 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나서지 않으면 누군가가 나서야 합니다. 바로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십니다.



                        2002. 4. 26

                        지 만 원

흐훗님의 댓글

흐훗 작성일

이제는 나서야 한다(지만원 박사)에 대한 댓글
형사반장 10-01-28 11:56 
 
김대중이는  김일성이보다  더악랄한놈이고,,, 광주 전남사람들은 아직도 김대중이한테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입니다...나는 보수가 우파가 뭔지 모르지만  김대중이 한테속고 거짓말에 농간당하고 어떻게 그런인간이 대통령까지 했다는건 우리 국민 수준이 문제가 있는건지,,,???하루라도 빨리 괴수놈을 파내어서 북으로 돌려 보냈으면 원도 한도 없겠슴,,,광주 폭동이 벌어지기 몇개월전(약45일 전후) 광주 전남 쪽의 부유층 자제들은 대부분 흑산도에 피신와 있었음(약100-150명정도),너희들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왈  대학생 들이라고 대답하길래 여기뭐하러 왔냐고 물었더니 부모들이 가있으라고 해서 영문도 모른체 왔다고 대답합디다...저는당시 소속은 현역이 였읍니다,

------  골수 김대중 측근들은 광주에 미증유의 폭동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군요. 

미ː―증유
(未曾有)【명사】【~하다|형용사】 지금까지 한 번도 있어 본 일이 없음.
¶ ∼의 대참사.

심심도사님의 댓글

심심도사 작성일

허 거참!!!
선거때만 되면 꼭 이상한 사람들이 나타나더라??????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려고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낯선 이름들이 선거때만 되면 꼭 나타나서 글을 올리시는 데.....
윤의성님!!!
그러지 마시고 그분들을 이리로 모시고 오시지요.
댓글이라면 저도 한 글 하니까....

北傀軍搏滅님의 댓글

北傀軍搏滅 작성일

야이 씹팔놈아.

어서 자살해.

이 병신새끼가 오물을 투척하는 더러운 짓을 아직도 하니!

이 씨발놈아 자살해.

오뚜기님의 댓글

오뚜기 작성일

웃기는소리 하고 앉아있네    야/////

개 말 뼉다구 썩는소리 하고 있네자슥

개소리 까지말고  위에 써있는 사항을 구구절절 이해가게 설명해봐 응

한쪽으로 늘어져 자슥아  삶은국수 가닥처럼

흐훗님의 댓글

흐훗 작성일

Name   
  송영인 
 
 
Subject 
  국정원 강제해직자 581명 이렇게 쫓겨났다.
 
 
<좌파정권 국정원 강제해직 진상조사>
국정원 강제해직자 581명 이렇게 쫓겨났다
    김성호 전원장 “해직자체 불법, 관여직원 사법처리대상”
    어느 선까지 사법처리, 최고 지령자 법정에 세워야하나 정국뇌관

좌파정권에 의한 국정원 강제해직 진상조사를 했던 김성호 전 국정원장이 퇴임 하면서 “DJ (김대중 전 대통령)정권시절 감행했던 강제퇴직 사건을 조사해 보니 상당히 불법적인 사실이 드러나서 당시 관여했던 직원들 여러 명 사법처리를 받을 대상”이라고 발설한 것을 놓고, 법조계출신인 원장이 법적 하자를 인정하고, 사법대상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나서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지난 3월 17일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 프로 요청으로 국사모(국가사랑모임) 송영인 회장과의 대담이 있었다.

-김성호 전 국정원장이 최근 비공개 자리에서 있었던 발언 내용은?
“지난 2월 김성호 전 원장이 물러나면서 전직 직원의 모임인 양지회(회장 이상연 전 원장) 간부들과 회식이 있었다. 강제해직문제 진상조사가 있었는데 어떻게 되었는가? 고 물어 봤다. 그랬더니 김 전 원장은 조사해 봤더니 그게 상당히 불법적인 것이 드러나고, 그에 따라 그때 관여했던 직원들 상당수가 사법처리를 받을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이를 두고 법조인 출신인 김 전 원장이 강제해직 처리 때 불법이 자행된 것을 인정한 것으로 간주)

-앞으로 이 사안을 어떻게 처리돼야 하나?
“이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정부출범을 계기로 처음으로 당시 김성호 원장에게 강제해직 관련 진상조사를 지시하여 무려 90여 일 동안 베테랑급 감찰, 수사요원 연 인원 2,500여명이 투입돼, 명명백백히 밝혀냈다. 그런데 그 진상조사 내용을 김 전 원장도 발표하지 않고 떠났고, 후임 원세훈 현 원장도 취임 100여일이 지났는데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이 것은 법조인 출신 김 전 원장이 말했듯이 당시 강제해직에 역할 했던 사람들의 불법행위와 그 사람들이 사법처리가 되면 그 파장이 심각할 수밖에 없어 쉽게 발표하지 않고 얼버무리고 있다고 본다.”

-조사한 내용은 어떻다고 보나?
“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들었다. 그 내용은 확실하게 다 밝혀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나?
“조사내용을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관련자들을 의법조치한 후 강제해직자들의 명예를 시급히 회복시켜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대통령에게 즉각 그대로 보고하고 국민들에게 그 진상을 공개해야 할 것이다.”
 
국정원 강제해직 진상을 조사했던 당사자들을 광범위하게 접촉(취재)한 결과 당시 해직경로가 뚜렷이 드러난다. 강제해직 작업은 국정원 정식 인사라인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강래 기조실장(민주당 국회의원․ 당시 국정원 1급․ 호남출신으로 DJ 측근) 지휘로 지난 98년 4월 1일자로 국정원 직원 581명을 강제 퇴직시켰다.
구체적으로 당시 정보기관의 특급 비밀에 속하는 노란색 대외비 인사카드(소위 옐로카드)를 송두리 체 대외(원외)로 반출시켜 비밀장소에서 선별작업을 했다.

선별기준은 ▷김대중 반대파  ▷한나라당 당직자들과의 친분 관계자  ▷이회창 지지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의 성분상 대부분이 경상도 출신이 대상자로 몰렸다.
국정원 인사카드가 외부로 유출시킨 것만도 미 정부의 외교관이 미 정보요원으로 위장했던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파면 당하는 등 美정가가 일대 소용돌이에 빠졌던 예를 비춰볼 때 한국 국정원의 비밀문서 외부유출 자체부터 불법이 자행됐다고 할 수 있다.
해직시킬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 인사카드를 원외로 유출시키는데 깊숙이 간여했던 사람은 국정원 직원 중 전라도 대부로까지 일컬었던 (인사 관계와는 동떨어진 전주출신) 엄모(당시 직책 북한차장․작고)씨가 깊이 간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초유의 국정원 대량 학살 작업이 시작됐을 때는 일부 반발하는 특정지역 현직 1급 부서장급 간부들을 지하실로 끌고 가 팬티까지 벗기는 등 인격말살의 가혹한 고문을 감행한 나머지 피해자 중에는 당시 충격에 실어증세까지 일으키는 등 중장해로 일생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집단해직의 행정상 수순으로 총무국 근무 명 재택근무란 전무후무한 비정상 조치를 단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국정원 주요인사 대량 해고는 DJ(김대중 대통령) 집권 33일만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대신 이들 자리에는 민변출신 변호사 등 500여명을 (검증․시험 절차 없이) 특채시켜 국정원 요직을 장악하게 했다.
결국 국정원 대량 해고(당사자는 학살이라고 주장) 최고 지령자는 정권책임자였음을 가늠케 한다. 이 같은 해고진상 조사는 비로소 보수정권 즉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후 대통령 특별지시로 08년 11월 초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팀이 구성, 감찰 ․수사 전문요원 30명으로 첫 출발하여 90여일 조사 끝에 금년 초까지 연인원 2,500여명을 투입 조사가 마무리됐다.

이번 조사에서 강제해직 작업에 직접 관여했던 사람은 당시 보임계장(인사담당)을 지내고 나중에 총무관리실장(1급)에 올랐던 박 모 씨는 끝까지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 바람에 무려 8번씩이나 끌고 당기는 실랑이를 처 조사를 지연시키기까지 했다.
결국 이 간부는 현 원세훈 원장이 부임 후 해직조치 되고 조사팀은 조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2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조사 자료를 작성, 지난 3월 초 마감됨으로써 해체됐다.

좌파정권에 의해 국정원 보수인맥이 잘려나가면서 국정원 뿐만 아니라 때를 같이 대공경찰 2,500여명,  기무사요원 900여명 등 국내 대공요원을 씨앗조차 남겨지지 않고 깡그리 쫓아내 우리나라 국가안보 시스템을 완전히 무력화시켰다는 것이 조사결론이다. 

하지만 국정원 요원의 강제해직 등 우리나라 대공요원의 무자비한 대량학살의 진상규명이 이루어진 오늘에도 그 진상조사 내용은 끝내 덮어진 체 국민들에게 공포되지 않고 미뤄지고 있다.
이는 아직껏 요소요소에 잔재하고 있는 좌파세력이 끈질기게 발목을 잡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 강제해직자들의 시각이다.
국내 우익세력들은 보수정권이 들어서서 10년 좌파정권이 저지른 안보말살 행각을 명명백백히 밝혀 놓고도 덮어버리는 것은 잔존 좌파세력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맹렬히 반발하고 있다.
 
이번 진상조사로 관여했던 역할이 밝혀짐에 따라 DJ시절 국정원에 검사로 파견돼 이강래 당시 기조실장과 함께 강제해직 작업에 핵심역할을 하다가 법무부로 옮겨 기획관리실장직에 올랐던 소 모씨는 이번 진상조사로 행적이 드러나자 결국 사표를 내고 물러갔다.
일부 국정원내 역할 자들도 인사이동에 따라 70%선이 정리됐다.
하지만 김만복 전 원장 직계로 보안법 철패를 주장했던 김 모 씨는 국정원의 요직 중의 요직인 수사국장자리에 승승장구하여 그대로 눌러 있는 등 요소요소에 좌파인맥은 여전히 포진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국정원 최근 인사에 카멜레온이 등장했다고 수군거린다.
알아보았더니 국내차장인 박 모 씨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입방아의 장본인인 박 씨는 권영해 전 부장시절 정보비서관으로 있다가 권 전 부장이 DJ에 의해 구속되자 자신이 본적이 인천인대도 전북의 원적을 찾아다 연명하다가 노무현 정부 때 일시 재벌회사 감사로 가 있다가 이명박 정부에 와서는 고려대 인맥(?)으로 국정원에 다시 픽업됐다는 구설로 시끄럽다. 국정원 인사의 내홍은 어디까지인지 조직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대두되고 있는 김성호 전 국정원장이 지적한 강제해직 관여 자들의 사법처리문제도 간단치 않은 사안이다. 결국 어느 선까지 처벌할 것이냐는 등 책임 한계가 명확하지 않을뿐더러 이들 역시 사실상 명령에 죽고 사는 정보기관의 속성상 하수인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최고 명령자를 처벌해야한다는 여론으로 압축되고 있다.
결국 정권차원으로 비화될 수 있는 민감한 정국의 뇌관으로 떠오른다. 국내보수단체에서는 좌파정권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계속 성명과 집회를 벌이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의 단안으로 국정원의 강제해직 사건의 진상조사가 이루어 졌는데도 국정원의 전 현직 원장이 이를 덮어두고 있는데 대해 두 원장의 자의인지, 아니면 윗선의 대통령의 의중인지를 국정원 강제퇴직 진상규명위는 이를 밝히라고 청원서를 내는 등 계속 반발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에 국민들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조 용 승 한국논단 편집위원>>

흐훗님의 댓글

흐훗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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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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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파정권하에서의 조작, 은폐한 연천 GP 북한군 포격사건의 진상을 밝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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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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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개혁주장은친북좌경반미세력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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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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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풍이 이보다 더 새빨갈 수 있단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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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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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국정원이 진실을 말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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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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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대학살만행의 진상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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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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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파언론단체들 10년째 정부 건물 무상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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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때문에 간첩이 많아졌다는 평이 있던데..

http://ask.nate.com/qna/view.html?n=8555206&sq=%B1%E8%B4%EB%C1%DF+%B3%EB%B9%AB%C7%F6%C0%C7+%B4%EB%B0%F8%B1%E2%B4%C9+%B8%BB%BB%EC+%B1%E2%B5%B5%2C+%B1%B9%C1%A4%BF%F8%2C+%B1%BA+%B1%E2%B9%AB%BB%E7%2C+%B0%CB%C2%FB%2C+%B0%E6%C2%FB

흐훗님의 댓글

흐훗 작성일

대통령-국정원장의 정체성 심히 의문

국정원 총무실장을 통해 본 국정원의 비신사성

2008년11월초, 송영인 국사모 회장은 국정원 앞에서 상복을 입고 국정원장에게 5분만이라도 만나 달라며 여러 날을 아침부터 밤까지 기다렸다. 그를 지지하는 500 여명의 시민들도 옆에서 그를 지지해 주었다. 이에 대해 국정원장 김성호는 끝까지 모른 체 했고, 대신 총무실장이라는 사람이 나서서 참으로 입밖에 내기조차 어려운 저질적 행동을 했다.

그는 송영인 회장이 상임대표로 있는 안보기능회복추진위의 핵심 간부 3명을 따로 만나 저녁과 술을 사면서 “송영인만 빠지게 하면 알아서 잘 해 주겠다”고 회유했다고 한다. 프리존뉴스는 11월 6일 송영인 대표의 분노를 이렇게 전했다. "국정원이 우리 대표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따로 예산 확보에서 돈 줄테니까 집회에 참석하지 말라'고 각개격파를 하고 있다. 국가정보기관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저질스럽고 악랄한 수법이다. 국정원측은 가부간의 답변도 없이 전직 국정원 간부들을 면회실에 14시간 동안 앉혀놓았다."

이런 해괴하고 저질적인 일을 꾸몄다는 현 총무실장은 1998년4월1일 김대중이 581명의 대공요원들을 학살할 때 보임계장으로 학살의 총을 쏘았던 사람이라 한다. 그렇다 해도 총무실장이면 국장급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도대체 이 무슨 해괴한 행동이란 말인가? 도대체 국정원장은 누구이고, 국정원은 어떤 기관인가?


우익이 차려놓은 밥상에 앉아 좌익에 윙크하는 대통령과 국정원장

1. 김대중-노무현의 대공요원 학살 실태

보안경찰 학살: 1997년에 4,500이었던 대공경찰은 2007년에 2,000명으로 감축,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도 200명 감축. 이에 더해 잔존 인력의 60%는 탈북자 관리에 투입하여 대공기능 사실상 말살

공안문제연구소 해체: 경찰의 대공수사활동에 이론을 지원하는 핵심연구소

국정원의 대공수사인력 초토화: 같은 기간에 46% 감축

대검 공안부 검사 축소: 공안연구관 같은 기간에 15명에서 4명으로 축소

기무사 30%로 축소: 같은 기간 중 3분의 2를 내보내고 3분의1만 남김

국보법위반 피검자수 거의 없어: 1997년에 877명, 2,000년에 237, 2001년 242, 2003년 173, 2004년 58. 2005년 33, 2006년 35명, 2007년 39명.

군 내부의 좌익사범 검거 거의 없어: 김영삼 정권 5년간 199명, 김대중 5년 43명, 노무현 5년 5명.

2. 이명박-김성호의 정체

2008년9월의 국정원 인사결과

1) 국보법 폐지 주장한 K씨를 대공수사의 총사령관인 수사국장에 임명: K씨는 2007년 김만복 시절에 부산지부 대공수사과장 직에 있으면서 공식석상에서 “국보법은 사실상 이미 폐지된 것 아니냐”며 반국가적 분위기를 띄웠다 한다.

2) 노무현이 기조실장에 기용한 김주성을 그 자리에 유임시켜: 이주성은 옛날에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이었고, 기업체 및 서울시 산하 기관장 등 국정원과는 사돈의 팔촌도 안 되는 판이한 분야에서 자란 사람을 노무현이 기조실장으로 중용해서 국정원에 말들이 무성했는데도 이번 인사에서 그 자리에 재임용.

3) 정보 업무와는 거리가 먼 노무현의 라인 전옥현 차장, 김희선 2차장도 그대로 유임시켜: 이 두 사람은 국정원은 고사하고 정보 분야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속에서 노무현이 등용시킨 사람들, 이들은 국정원에 차고 들어 와 청와대 라인이라며 국정원 안에 “핵심멤버비밀자문클럽7인회”를 만들어 행세를 해오던 인물들로 국정원 내외에서 많은 반발을 샀는데도 이명박-김성호가 이들을 그대로 그 자리에 중용했다.

4) 이 밖에도 국정원 안에서 인적쇄신의 대상으로 지목된 수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중용되고 있다.

5) 김대중-노무현 시대에 특채된 몇 명의 민변 출신 그대로 중용: 민변출신들, 국정원 법제관실의 법률자문기구에 특채된 채 버젓이 활동.

경찰, 국정원, 기무사, 검찰에서 쫓겨난 대공요원들은 엄청난 경험들을 가진 전문요원들이다. 이들은 설사 나이가 들었어도 다시 기용되어 새로운 전문가를 옆에서 지도하고 자문해야 할 것이다.

골수 좌익인 이재오를 최측근 동반자로 끌어안고 있는 데 대해서도 우리는 대통령의 정체성을 의심하고 있다. 이에 더해 국정원 내부에서 그리고 여러 대공전선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보면 대통령은 김대중과 노무현에 의해 초토화된 황무지를 계속 방치하는 것을 임무로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2008.11.14. 지만원

https://www.newstown.co.kr/newsbuilder/service/bbs/mess.asp?P_ID=bbs9&P_SearchKey=&P_SearchWord=&P_OrderKey=p.C_Class_N%20DESC,&P_Order=p.C_Order_N%20ASC&P_Page=20&P_Index=940

http://freectzn.cafe24.com/zeroboard/bbs/zboard.php?id=syucolum&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5&PHPSESSID=9bf748b9a1b87ce12e42a60ee8389e87

http://cafe.daum.net/anbo94/8DCO/375?docid=149sx|8DCO|375|20081114170932&q=%B1%BA++%B1%B9%C1%A4%BF%F8++%B0%CB%C2%FB++%B0%E6%C2%FB%C0%C7+%B4%EB%B0%F8+%B1%E2%B4%C9+%B8%BB%BB%EC&srchid=CCB149sx|8DCO|375|2008111417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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