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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첩보부대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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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aester 작성일14-11-19 13:58 조회9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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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해군 첩보부대 추모식

 

'해군첩보부대 추모식' 인천중구 월미공원 충혼탑에서.

 

"어둠에서 밝은 세상으로 나오는데 63년이 걸렸습니다."

 

해군첩보부대충혼탑 제막식이 2013년 6월 10일 오전11시 인천 중구 월미공원 충혼탑 광장에서 열렸다. 우뚝 솟은 충혼탑 앞에서 함명수(87) 전 해군참모총장이 눈물을 터뜨렸다. 63년전 한국전쟁 당시 숨진 부하 2명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박상은 의원 [해군장교중앙회(OSC)명예회장]은 추모사에서 "1948년 창설 이후 정보누설의 우려 등으로 항상 어둠 속에만 있었던 첩보부대원의 모습이 드디어 세상 밖에 나왔다"며 "변변한 묘지 하나 없이 나라를 위해 죽어간 선배들이 저 세상에서라도 편하게 쉬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박 의원은 "전쟁의 참상을 널리 알리는 한편, 동시에 평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이곳 인천 월미도에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을 건립할 것"을 약속했다.

 

1950년 8월 18일 부산자갈치 시장에서 당시 해군첩보부대장인 함명수 전 총장의 한 마디에 16명의 부대원이 아무 말 없이 그를 따랐다.

 

작전명 '크로마이트(인천상륙작전)'에 앞서 북한군의 동태를 파악하는게 이들의 임무였다. 그와 부대원은 어선을 개조한 첩보선에 몸을 싣고 부산을 떠난 지 6일만인 8월 24일 인천 영흥도에 도착했다.

 

부대원을 3개 팀으로 나눈 뒤 북한군과 공사장 인부 등으로 위장한 뒤 인천, 수원, 서울 등지에 잠입해 정보수집 활동을 펼쳤다.

 

인천상륙작전 하루전인 9월14일 인천, 수원, 서울의 병력규모를 파악한 뒤 영흥도에 모인 부대원에게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철수는 쉽지 않았다. 뒤늦게 이들의 행적을 감지한 북한군 대대급 병력이 공격을 가해오기 시작했다. 부대원의 안전한 철수를 지원하기 위해 임병래 소위와 홍시욱 이등병이 남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하던 이들은 사로잡힐 경우 정보가 누출될 것을 우려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충혼탑 앞에 서자 63년전 사선을 넘나들었던 부대원들의 활약상이 생생히 떠오르면서 함명수 전 총장의 눈에서 저절로 굵은 눈물이 흘러내린 것이다. 충혼탑이 위로하는 사망자는 비단 이들만이 아니다. 전쟁은 중단됐지만 그간 북을 오가면서 죽어간 수많은 첩보부대원들도 충혼탑을 통해 위로받고 있다. 현재까지 정부가 파악한 해군첩보부대 사망자는 7천726명. 비록 시신은 수습되지 못했지만, 대신 명단이나마 충혼탑 밑에 묻혀 있다.

 

출처 : 인천일보 news.itimes.co.kr

 

1950년 9월 15일, 인천 앞 해상에는 유엔 해군 제7합동상륙기동부대 261척의 함정들로 가득 차 월미도와 인천시가지를 향해 함포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이 함정들은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 발악적인 8월과 9월의 총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으로 전환한 미 제10군단을 인천으로 상륙시키기 위해 동원된 것이었다.

 

한국전쟁의 전세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을 뿐 아니라 세계전사에서도 노르망디상륙작전과 함께 대표적인 상륙작전으로 손꼽히는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러한 대작전의 이면에는 대한민국 해군첩보대의 헌신적인 활약이 숨겨져 있었다.

 

'영흥도 첩보전' 일명 X-RAY작전으로 명명된 이 작전은 당시 해군정보국 예하의 첩보대가 인천 앞바다에 위치한 영흥도를 거점으로 인천에 잠입하여 수원과 서울 등지에서 인천상륙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하고 있었다.

 

한국전쟁의 영웅인 맥아더 원수는 극히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는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인천상륙작전을 결행하기로 작정했다. 이에 따라 동경에 주둔하고 있던 극동군사령부는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하면서 필요한 정보수집을 위해 미군 첩보부대를 투입하는 것을 고려하였으나, 언어장벽과 지리에 밝지 못한 점 등을 고려하여 대한민국 해군정보국에 이 임무를 일임하기로 하고 대한민국 해군파견 고문단장 워너 대령을 통해 대한민국 해군 총참모장 손원일(孫元一) 제독에게 인천상륙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여 제공해 주도록 요청하였다.

 

손 제독은 극동군사령부 맥아더 사령관의 이러한 요청을 기꺼이 수락하고, 해군 정보국장인 함명수(咸明守) 소령을 불러 극비리에 인천상륙작전에 필요한 제반 정보수집 임무를 지시하였다. 총참모장으로부터 공작임무를 부여받은 함 소령은 자신의 두 어깨에 나라의 운명이 달려있다는 책임의 막중함을 절감하고 임무수행에 필요한 첩보공작요원 선발에 착수하여 비밀리에 자신을 포함한 총 17명의 요원을 선발하였다. 이 첩보공작대는 김순기, 장정택, 임병래 중위 등 정보장교와 김남규, 정성원, 박원풍, 차성환, 한유만, 홍시욱 등 정보국 소속 사병 6명, 그리고 7명의 민간인으로 구성되었다.

 

요원선발이 완료되자, 필요한 장비 및 물자 등 제반 준비사항을 확인 점검하고, 8월 18일 01시에 미리 준비된 첩보선 백구호에 승선하여 보조선 수양산호와 함께 인천으로부터 남서쪽 12마일 해상에 위치한 영흥도를 향해 출항하였다.

 

함명수 대장은 출항 직전, 항해 도중 북한함정에 의한 납치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비밀리에 선체의 밑바닥에 시한폭탄을 장치하고 유사시 자폭을 대비하고 있었다. 부산을 출항할 때까지도 대원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기 위해 선발되었는지 그리고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를 만큼 철저히 비밀을 유지하였다.

 

첩보대원들을 실은 백구호가 첩보훈련을 하면서 부산항을 출항한 지 6일째 되던 날 목적지인 영흥도 근해에 이르자, 김순기 중위가 비로소 대원들을 모아놓고 첩보대의 임무와 활동내용을 발표하였다. 모두 긴장된 모습들이었으나 숙연한 자세로 발표내용을 듣고 있었으며, 반드시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여 조국을 구하겠다는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1950년 8월 24일 01시 30분! 밤의 적막을 가르고 영흥도 북쪽 해안 십리포에 닻을 내린 백구호는 소리 없이 민첩한 행동으로 17명의 첩보대원들을 하선시키고 닻을 거두었다. 영흥도는 북한군의 수중에 있었으나, 이희정(李熙晶) 중령의 해군 제702함을 비롯한 7척의 함정요원으로 구성된 육전중대(중대장 장근섭 중위)가 8월 20일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8월 22일 탈환함으로써 당시로서는 최전방에 위치한 해군기지였다.

 

이날 영흥도에 상륙한 첩보대는 즉시 영흥도를 거점으로 하여 첩보공작임무에 착수하였으며, 함명수 첩보대장은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대원들을 3개조로 편성하여 장정택 중위조는 통신, 경비, 정보분석 등 일반사항에 관한 임무를, 김순기 중위조와 임병래 중위조는 이천 등지로 잠입하여 정보수집을 하도록 각각 임무를 부여하였다.

 

이에 따라 김순기, 임병래 중위조는 북한군 복장과 민간인 복장 등으로 위장하고 무기와 북한 화폐를 소지한 다음 덕적도에서 징발한 범선을 이용하여 야음을 틈타 해안의 돌출지점으로 상륙, 인천시내로 잠입하였다. 당시 인천지구에는 북한군 정규병력이 주둔하고 있었으며, 각종 정보기관의 활동과 함께 삼엄한 경비가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인천시내에 잠입한 대원들은 6·25전 해군정보국의 지하조직요원으로 활동하던 성명 미상의 김모, 권모 씨와 접선하여 이들을 정보원으로 확보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들 중 김모씨는 북한군 보안서원으로 활동하고 있었으나 그것은 적 치하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일 뿐 사실은 반공정신이 투철한 애국자였다.

 

임병래 중위는 김씨 집에 유숙하면서 김씨를 통해 서울과 수원 등지로 왕래할 수 있는 통행증까지 발급받아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었다. 인천지방에 활동거점을 확보하고 우선 인천 해안포대의 위치, 병력배치 상황, 인천시내 주둔병력의 규모와 화력 등을 파악하는 작업에 착수한 첩보팀은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월미도의 해안방어태세를 확인하기 위해 작업인부로 가장하고 월미도에 접근하였다. 그들은 마치 느긋하게 해이된 북한 군관 2명을 발견하고 그들을 납치하여 이들로부터 월미도에 있는 병력규모와 해안포대의 위치 등을 확인하고 처치하였다.

 

첩보대원이 활동을 개시한 후 1주일이 경과하면서 미처 철수하지 못한 상당수의 해군정보국 지하조직을 찾아내고 새로운 공작원을 포섭하였다. 첩보대원들은 서울과 수원 등지를 자유로이 왕래하면서 신출귀몰한 방법으로 적 병력, 장비, 기타 군사기밀을 탐지해냈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1950년 9월 1일 영흥도에 은밀히 상륙한 미극동군사령부 정보국 소속 클라크 해군 대위가 이끄는 팀을 통해 직접 극동군사령부로 송신되었다. 이와 같이 해군의 첩보대와 클라크 대위가 정보수집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영흥도 주민의 헌신적인 협조와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한편, 해군은 이 섬을 탈환한 후, 20세 전후의 청소년들을 모아 해군 의용대를 조직하여 자치적으로 섬의 해안경비를 수행하게 하였다. 그러던 9월 14일,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모든 준비가 완료된 극동군사령부는 인천상륙작전 D-DAY가 임박함에 따라 영흥도 첩보기지에 '모든 임무를 끝내고 철수하라'는 명령을 하달하였다.

 

새벽 2시 철수준비를 서두르고 있던 첩보대는 이웃하고 있는 대부도로부터 북한군 1개 대대가 영흥도로 기습해오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북한군은 이날에서야 비로소 영흥도에 미군이 상륙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대부도에 병력을 집결, 증강된 1개 대대규모의 병력으로 영흥도 앞 1㎞에 위치한 선재도를 거쳐 전마선을 이용해 영흥도 진두리로 침공해왔다.

 

클라크 대위 팀은 해군 의용대에 섬을 사수하라는 말을 남기고 영흥도를 탈출하였다. 영흥도에는 임병래 중위를 비롯한 해군 첩보대원 9명과 해군 의용대원 30여 명 등 40여 명만이 남아 임병래 중위의 지휘 아래 상륙하는 적군을 맞아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해군 첩보대 및 민간 의용군은 중과부적이어서 밀리고 또 밀려 일부는 십리포에 정박해 있던 소형 선박을 이용해 탈출하였으나, 임병래 중위를 비롯한 6명의 해군 첩보대원들은 퇴로가 차단된 채 적으로부터 포위될 위기에 직면하였다. 이 때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3조가 위험을 무릅쓰고 적의 공격을 차단함으로써 나머지 대원들은 십리포에 정박시켜 놓았던 보트에 승선해 탈출할 수 있었으나, 두 대원들은 끝내 탈출에 실패하고 적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체포될 경우, 첩보공작 임무에 대한 기밀유지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 홍시욱 3조가 먼저 M1 소총으로 6명의 적을 사살하고 마침내 마지막으로 남은 한 발의 총탄으로 자결하였다. 이를 본 임병래 중위는 적개심에 불타는 눈으로 적을 응시하며 한 명이라도 더 죽이겠다는 각오로 45구경 권총을 침착하게 발사하며 3명의 적을 쓰러뜨린 다음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권총을 자신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겨 자결하고 말았다. 이 때가 인천상륙작전을 불과 24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첩보대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첩보임무를 완수하고 침투해오는 공산군과 대적해 최후까지 용감히 싸우다 조국을 위해 스스로 장렬한 죽음을 택한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3조(현재 하사)는 군사기밀은 작전중일 때 곧 승패를 좌우하는 것이므로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가치라는 사실을 몸소 실천하였다.

 

자료정리

대한해외참전전우회 창원시지회 사무국장

겸, 보훈지킴이 창원시팀장

maester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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