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재판부를 재판한다(38) > 나의산책

본문 바로가기

System Club 지만원

나의산책 목록

대한민국재판부를 재판한다(38)

페이지 정보

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4-01-31 23:03 조회5,043회 댓글0건

본문

                          삼성동 강남교회 김성광 목사로부터 받는 협박


2006년 10월 9일, 젊은 목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강남교회 김성광 목사가 나와 점심을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강남교회 옆의 일식집, 김목사는 초밥을 시켜놓고 본색을 드러냈다.

김성광 목사: 선생의 책을 읽어보니 박근혜를 적극 밀고 있는 것 같더군요

지만원: 손학규나 이명박은 좌익성향의 행보를 보였고, 그들에 얽힌 사람들이 좌익들입니다. 그러나 박근혜에게는 그런 좌익성향의 행보가 없습니다.

목사: 지금은 경제가 가장 중요합니다. 경제를 살릴 사람은 이명박 밖에 없습니다. 모두가 빨갱이라면 경제라도 살릴 수 있는 빨갱이가 낫지 않습니까?

나: 저는 이명박이 대통령 되는 것을 적극 저지할 것입니다. 내가 당을 만들고 대통령에 출마해서라도 이명박의 가면은 반드시 벗길 것입니다. 대통령이 되려고 나가는 게 아니라 국민 앞에서 빨갱이들의 가면을 벗겨 보이기 위해 나가는 것입니다.

목사: 위험할 텐데요. 박근혜 당하는 것(목에 면도칼 공격 당한 것)을 보셨지요? 386주사파들이 한 짓이라고 봅니다. 그들에겐 박정희가 원수거든요. 이명박은 대세입니다. 김정일도 이명박을 지지한다 합니다. 김정일은 북한의 경제를 살리고 남한 경제도 3만 달러 시대로 끌어 올린 사람이 이명박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합니다.

나: 이명박은 막말로 노가다 건설회사 CEO를 했습니다. 정부로부터 프로젝트를 따내는 실력이 바로 당시 노가다 회사 CEO의 본질입니다. 편법과 로비에 익숙해 있는 사람입니다. 만일 저와 함께 경제건설 및 국가경영에 대한 토론을 하면 단 10분을 견디지 못해 바닥이 날 그런 사람일거라고 생각합니다. 경제건설은 학문적 이론으로 되는 것이지 노가다 세계의 편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빨갱이가 되느니 설사 무능하다 해도 박근혜가 되는 것이 백배 낫습니다.

목사: 황장엽씨가 10년 전에 말했지요. 남한에 최소한 5만의 간첩이 있다고요. 이들이 사람 하나 죽이려면 식은 죽 먹기입니다. 노무현 탄핵을 심판하던 헌법재판소 판사들, 그들이 왜 노무현을 살려주었는지 아십니까? 간첩들로부터 협박을 당했다 합니다. "당신 죽고 싶어. 당신 자식들 여기 여기 있는데, 모두 해치울 수 있어. 정몽헌, 그 사람 우리가 죽인거야", 알만한 이름을 더 대면서 그 사람들 다 우리가 해치웠다는 식으로 협박했다고 합니다. 이런 협박에 당해낼 사람 어디 있습니까? 서울역에서 장군들이 시위에 나왔지요? 그 장군들 중에서 힘이 좀 있는 장군에게 접근해서 ‘당신 아들들 여기 여기 있지요’ 하면서 입 다물라 협박합니다. 자기를 죽인다면 그래 죽여봐라 하고 대들겠지만 아들들을 죽인다는 데야 손을 안 들 수 없다는 군요. 왜 전자개표기 사용할 때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매수된 듯한 행동을 보였지요? 한 사람당 5억을 주었다 합니다. 그리고 매수에 저항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누구가 이렇게 죽었는데 너도 죽을래 아니면 침묵할래, 이렇게 해서 매수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선생도 몸조심해야 할 겁니다.

2007년 3월 8일, 강남교회가 운영한다는 홈페이지, '굿뉴스강남'(http://www.gnkn.net/sub/sub1_read.asp?accountid=4521§code=4)에 실린 이명박에 대한 적극적 옹호의 글이 게시돼 있었다. 글은 아래와 같았다.


                        
   이명박이 좌파 아닌 6가지 이유!(김성광 목사의 주장)


최근 일부 급진 보수세력들은 이명박 전 시장을 좌파 세력이라 몰아세우며 소위 ‘MB 흠집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한 검증이라고 보기엔 도를 지나칠 정도로 MB 흑색선전에 너도나도 올인 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 MB에 대한 검증의 발단은 어디인가? 먼저, 지만원 박사가 주장한 ‘이명박은 운동권 출신의 좌파’라는 논리가 펼쳐졌고, 뒤를 이어 이명박에 대한 검증론이 상대후보에 의해 제기되었으며, 특히 김유찬씨의 등장은 검증비방의 절정을 이루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MB가 좌파라는 인식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더 이상의 친북좌파 정권을 용납하지 않기 위해서 운동권출신의 좌파출신 후보를 애초에 배척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MB 상대 진영들이 주장하는 내용만을 가지고 MB가 좌파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국 내의 친북좌파 단체는 법원의 판결을 토대로 다음 3가지의 공통된 목표를 가진다.

첫째, 보안법철폐, 둘째, 미군철수, 셋째, 연방제이다. 이 세 가지 주제는 좌파 전문기자 김성욱씨의 "대한민국 적화보고서"에서도 지적했듯이 친북좌파 단체들의 공통적인 목표이다. 먼저 그의 보안법에 관해 살펴본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찌기 "보안법은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며 보안법을 사문화시켰다. 그리고 일심회 간첩수사 잘 하는 김승규 국정원장을 경질(?)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손학규 후보도 "보안법은 맹장과 같은 것으로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MB는 "사문화된 것을 철폐할 필요가 있는가?" 하며 보안법 철폐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했다. 보안법이 중요한 것은 간첩들이 시민단체를 가장해서 미군철수, 여론조장을 통해 연방제의 분위기를 띄울 수 있기 때문이다. 2004년 12월에는 그가 "북한 인민은 사랑해야할 대상이지만 북한 정권은 우리의 주적"이라며 "우리 장병들도 이를 명확히 알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둘째 미군철수의 부분이다. MB는 이전에 전작권 이양 문제를 차기 정권에서 재논의 해야 한다고 피력 했으며, 미국 정부도 이러한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전작권이야 말로 한미동맹과 안보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지난 2월 8일 국제 관계 전문가인 돈 오버도퍼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교수에게 MB는 “한국에서 정권이 바뀌면 양국 관계가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미면 어떤가?"했던 노무현 대통령과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셋째, 연방제에 관한 논의이다. 남북 연방제는 김정일에 종속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연방제가 이루어지면 북한 군인이 남한으로 내려올 수가 있고 위장 폭도들을 대거 남하시킬 수 있다. 간첩들이 남한의 우익인사를 암살하기도 쉽고, 좌파언론과 전교조 등의 교육으로 국민투표에 의한 합법적 사회주의 전환이 가능하다. 그러나 MB는 김정일에 대하여 "장기 독재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친김정일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지난 2월 2일 “지금은 비록 이상한 사람들이 나와 나라를 흔들고 있지만 다수 국민은 건전한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모든 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바탕 위에 이뤄져야 하고 이것은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이명박 당선을 반대하고 있다는 것도 그가 좌파가 아니라는 중요한 근거이다. 3월초 북한언론 조평통은 담화에서 "지금 한나라당 안에는 악명 높은 유신 독재의 후예들과 파쇼 법관, 고문 전문가, 학살범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제 세상처럼 활개를 치며 돌아가고 있으며, 심지어 대통령 자리까지 내다보고 있다"며 MB와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하여 비난했다.

지난 광복 60주년을 맞아 서울시가 시청본관을 태극기로 뒤덮어 시민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받은 것도 MB의 아이디어임을 기억해야 한다. 연방제를 지향하는 좌파는 태극기보다 한반도기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좌파들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먼저 MB의 대북정책을 보자

MB는 대책없는 퍼주기식 햇볕정책이 아니다. MB의 북한경제 지원은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고 있다. 북핵 포기하지 않는 한 햇볕정책도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인다. "달라는 대로 줘도 남는 장사다."라는 노무현 대통령과 비교하면 분명한 대북관을 가진다. 또한 군복무기간 단축 논란과 관련 “가능하면 줄일 수 있으면 줄이면 좋겠지만 이것은 신중해야 한다”면서 “이는 단순히 부동산 정책과 달라서 국가 보안과 관련한 문제이기에 혹시 ‘국가보안에 누수가 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걱정이 있다”고 신중론을 폈다. MB는 좌파가 아닌 온건보수임을 스스로 밝혔다. . . .

          
                        이명박으로부터 드디어 고발이 들어오다


나는 이명박에 대해 세 가지 종류의 글을 썼다. 하나는 이명박이 빨갱이라고 단정 지은 글이고, 다른 하나는 이명박의 출생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명박의 병역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글이다. 2007년 3월 6일, 서울지검 윤웅걸 검사실로부터 출두요구가 들어 왔다. "이명박 진영으로부터 고발이 들어 왔으니 검찰에 와서 조사를 받으라. 고발인은 이명박을 대리하는 조봉규 변호사, 서정규 변호사"라 했다. 인터넷에 떠 있는 글을 요약했느냐는 것이 키포인트였다. 나는 이명박에 대한 글을 쓸 때에 명예훼손을 늘 생각하면서 썼다. 공인에 대한 의혹제기는 당연히 해명돼야 할 대상이지 고소-고발의 대상이 아니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철학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한심한 고소에 대해 나는 3월 12일에 곧바로 맞고소를 했다.


                    
        이 명박이 2006년 3월에 고소한 나의 게시 글 

제목: 이명박, 풀리지 않는 의혹들
게시일자:2006년 10월 22일.

인터넷에는 이명박에 대한 의혹들이 몇 개 있다. 이를 정리해 보면 대략 이렇다.  

출생 의혹 

첫째, 출생에 관한 의혹이다. 김대중의 출생비밀은 아버지가 제갈씨냐, 윤씨냐에 대한 것이다. 1980.5.18일자 경향신문에 나타난 김대중의 출생비밀은 아래와 같다. “김대중의 생모는 장노도 여인(71년5월 9일 사망), 1911년 제갈성조와 결혼했다가 사별했고, 1920년에 윤창언의 셋째 첩으로 입적했으나 역시 사별했다. 그 후 본 남편 제갈성조의 친형인 시숙 제갈성복의 도움으로 주점을 경영하다가 김대중을 임신한 상태에서, 전남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에 사는 김운식의 첩으로 들어가 1924년 11월 16일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서 김대중을 낳았다.” 

한마디로 김대중은 근본 없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이 나라를 패망의 길로 안내한 반역이 되었다. 노무현 역시 근본이 없다. 조부는 일제앞잡이, 아버지와 장인은 모두 빨치산이었으며 동네로부터 멸시를 받으면서 한국사회를 증오해온 사람이다. 이 사람 때문에 지금 국가는 패망 직전으로 달리고 있다. 근본 없는 이 두 사람 때문에 지금 국가는 비틀거리고 있어 또 다른 ‘근본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단 한방의 펀치로 국가운명을 마감시킬 수 있다. 그만큼 당했으면 ‘근본 없는 출생’들에 대한 노이로제가 있을 법 하지만 한국사회는 두뇌 없이 굴러가는 덩어리와 같다. 독서가 없고, 분석이 없고, 제 몸만 중하지 사회는 중하지 않은 사람들로 뭉쳐진 사회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뜬 자료 

인터넷에 제기된 이명박에 관한 출생의혹들은 이렇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상득과 이명박은 배다른 형제이고, 두 사람 다 일본에서 출생했다. 이상득은 1935년생이고, 이명박은 1941년생이며,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했다. 두 형제에는 6년의 연령차가 있다. 이상득은 한국식 이름이고, 이명박은 한국에는 거의 없는 일본식 이름이다. 이명박의 ‘박’자는 이등박문의 ‘박’자와 같고, 이 ‘박’자 이름은 한국의 영이, 철수 등과 같이 일본에서는 당시 아주 흔한 이름이라 한다. 배다른 형인 이상득의 이름이 한국식 이름이고, 이명박의 이름이 일본식 이름인데 대해 인터넷 의혹은 이렇게 제기되고 있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무엇을 했는가? 일본에서 여인을 바꾸었거나, 두 여인을 동시에 두고 살았다면 아주 미천한 처지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아버지에 대해 소개 좀 해 달라는 것이다. 이명박을 낳은 어머니가 한국 여성이었다면 10중 8,9 한국식 이름을 지었을텐데 일본식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아 이명박을 낳은 여인은 일본 여성이 아닌가, 이에 대해 설명 좀 해달라는 것이다.  

인터넷에 뜬 이명박 자서전  

이명박은 1941. 12. 19. 경북 영일군(현 포항시)의 한 시골 가난한 농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6 25때 누나와 막내 동생을 눈앞에서 잃는 아픔을 겪었고, 초등학생 때부터 김밥을 팔면서 학교를 다녀야 했다. 낮에는 풀빵을 구워 팔아가며, 고학으로 동지상업고등학교 야간부를 졸업하였다. 

병역에 대한 인터넷 의혹  

이명박씨가 현대에 입사한 것은 1965년 7.1일이라 한다. 인터넷이 제기한 의혹에 의하면 이명박씨는 폐결핵 기관지 확장으로 병역을 면제받고 불과 몇 개월 만에 현대에 입사하여 술도 많이 마시고 일도 열심히 했다고 한다. 당시 폐결핵은 중환자인데 그런 몸으로 어떻게 현대건설 강릉 경포대 신입사원 수련회에서 있었던 술대작 현장에서 정주영과 모든 사원들이 다 취해서 쓰러졌는데 이명박 혼자 남았는가. 중환자가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해도 그 자체로 이해가 되지 않는데 이런 폭음 대회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대략 이정도의 의혹이다. 몸이 이정도로 튼튼하다면 이병박씨는 병역을 면제받기 위해 회 가루를 마셔 폐결핵으로 판정받은 게 아닌가. 이런 의혹도 제기돼 있다.  

병역에 대한 이명박의 자서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왔다. 청계천 헌책방 주인이 거의 공짜로 준 책을 얻어 공부하여 1961년 고려대학교 상과대학에 입학하였다. 대학 2학년(1962) 1학기를 마치고 자원입대 하였으나, "쯧, 너 임마, 이런 몸은 군대에서도 안 받아 줘"라는 말과 함께 기관지 확장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논산 훈련소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아 쫓겨 나왔다. 

1964년 굴욕적인 한일 국교 정상화를 반대하는 6.3 시위를 주도하여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아, 반년간 복역하고 풀려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작은 규모의 중소기업이었던 현대건설에 공채로 입사하였다. 40°C 를 넘나드는 태국의 밀림을 헤치고, 실눈조차 뜰 수 없는 중동의 뜨거운 모래바람을 온 몸으로 맞서며 전세계 해외건설 현장에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내며, 1인당 국민소득 80달러에서 8,000달러가 될 때까지 나라경제를 키우는 데 큰 일익을 담당하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해외와 국내의 현장에서 일한 그는 입사 5년 만에 이사직에 오르고, 12년 만인 서른다섯 나이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현대건설의 최고 경영자(CEO)로 취임, 세상은 그를 '샐러리맨의 신화'라 불렀다. 네티즌들이 위와 같은 의혹을 제기한 것에 대해 이명박은 지난 6월에 4명을 형사고발한 모양이다.  

이명박 자신이 해명해야 할 것들 

공인의 행적과 공인의 과대포장은 공론의 장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그가 오사카에서 태어났든, 포항 근교에서 태어났던 그건 문제가 아니다. 단지 이명박씨가 속였느냐, 아니냐가 문제인 것이다. 인터넷에 뜬 자료와 그의 자서전과는 너무나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정치인들에 늘 속아온 우리로서는 이명박의 자서전을 믿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인터넷 자료를 전적으로 믿을 수도 없다.  

그의 병역문제와 아들의 병역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구구한 이야기들이 떠돈다. 인터넷이 이런 일로 시끄러운 것을 보면 아직도 의혹들이 깨끗하게 해명돼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명박은 대학교 2학년 때인 1962년에 자진 입대했는가, 아니면 1965년 졸업 후에 징집이 됐는가? 대학교 2학년 때 폐결핵을 앓은 학생이 3학년 때 고대학생회장이 됐고, 4학년 때 간첩이 배후 조종한 6.3사태에 주역이 되었다면 이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다. 건강상으로 믿어지지 않고, 정부를 증오하던 학생이 자진 군대에 입대했었다는 것도 이해가지 않는다. 당시 폐결핵은 지금의 암 정도로 여겨졌던 난치병이었다. 필자의 집안에도 폐결핵으로 앓아 사망한 사람이 있어서 이건 잘 안다.  

이명박의 자서전을 보면 이명박은 구름 위의 거룩한 인물이다. 하지만 공식석상에 아들이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나왔고, 그런 아들을 히딩크와 함께 사진을 찍게 해준 자세는 그리 거룩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김구의 각색된 자서전을 보고 김구의 환상에 빠지듯이 이명박의 자서전에 빠진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이런 거품 때문에 대한민국이 망하고 있는 것이다. 
 

                                        위 글의 전체적인 요지


당시 구글에서 '이명박 명역의혹'을 검색하면 40여만 개의 글이 떴고, 검색어 '이명박 출생의혹'을 검색하면 50여만 개의 글이 떴다. 대통령은 뽑아야 하겠고, 의혹들은 이토록 난무하다보니 우리 회원님들이 정리 좀 해달라고 하여 비로소 인터넷을 검색해 서비스 차원에서 쓴 글이었다.

나는 인터넷에 제기된 수많은 의혹들의 핵심을 정리한 후, 그에 대비하는 이명박 자서전 내용을 소개하여 회원들로 하여금 비교하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이런 의혹을 제기하다 이명박으로부터 고소-고발당한 사람들이 4명이나 되니 이런 글 함부로 쓰지 말 것을 당부했고, 아울러 이명박에 대해서는 국민의 정당한 의혹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진솔하게 해명해야 할 것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제언을 곁들인 글이었다.

위 글은 2006년 10월 22일에 게시됐다. 그런데 나는 이로부터 무려 9개월 10일 만인 2008년 8월 3일에 구속됐다. 과연 위 글이 사전 구속돼야 할 대상의 글이며 징역 8월에 해당하는 글인지에 대해서는 실로 많은 법조인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을 건드리면 위험할 것이라는 김성광 목사의 경고가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음을 이제 느끼게 된다. 이후 이명박의 고대 후배들인 고대법대 출신 판검사들에 의한 파상 공격이 이어졌다.



2014.1.31.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 대표자 : 지만원 | Tel : 02-595-2563 | Fax : 02-595-2594
E-mail : j-m-y8282@hanmail.net / jmw327@gmail.com
Copyright ©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All rights reserved.  [ 관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