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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 각인된 영원한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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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1-01-30 22:12 조회7,3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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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에 각인된 영원한 그리움


야간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용두동에는 청계천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가 하나 있었다. 물에 썩지 말라고 검은 콜타르를 발라 놓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검정다리라 불렀다. 다리 밑에는 염색 업자들과 양아치라 불리는 넝마주이들이 어우러져 살았다. 다리 밑을 빼곡히 메운 육중한 가마솥들에서는 언제나 퀴퀴한 수증기 냄새가 인근 마을에까지 퍼져나갔고, 각목으로 묶여진 건조물에는 염색된 천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남 보기엔 초라하고 불행해 보이지만 밤이 되면 이들이 살고 있는 거적때기 집들에서는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끊기 질 않았다. 용두동 일대의 길바닥은 검고 미세한 흙먼지로 다져져 있어서 바람이 불 때마다 검은 먼지들이 길바닥 위에 얕게 깔려 구름처럼 이리저리 떼 지어 날아다녔고,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사람들의 뒤꿈치에는 검은 얼룩이 덕지덕지 올라붙었다.

한식이네 옆집에는 이십칠 세의 여인이 어린 두 남매를 데리고 살면서 한 식구처럼 지내고 있었다. 원산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월남하여 결혼을 했지만 불과 5년 만에 남편을 잃고, 일곱 살 난 딸아이와 다섯 살 난 사내아이를 데리고 셋집에 살고 있었다. 돈 많은 고무신 공장 사장을 만나 팔자를 고친 한식이 어머니는 말투에서부터 무식함이 풍겼지만 이 27세의 여인에는 어딘가 귀티가 배어 있었다.

내가 공부를 가르칠 때마다 그녀는 거의 매일 같이 학습과정을 지켜보면서 한식이에게 보충설명을 해주기도 했고, 한식이가 장난을 칠 때마다 주의를 주기도 했다. 그녀가 매일 같이 학습과정을 지켜본 것은 어린애처럼 보이는 내가 우악스런 한식이에게 놀림을 당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그 여인은 또한 한식이에게 학습효과가 없으면 나의 일자리도 끝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내가 설명해주는 내용을 다른 방법으로 한식이에게 아주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이런 가정교사 자리도 겨우 6개월 만에 끝이 났다. 한식이네가 더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식이를 휘어잡을 수 있는 나이든 가정교사를 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먹고 자는 문제를 한식이네 집에서 해결해오던 나는 갑자기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다.

난감해 하는 내게 그 여인은 정성껏 저녁밥을 차려주었다. 맛있게 먹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마음 아파해 하는 눈치였다.

"얘, 만원아. 밥과 빨래는 내가 해주고 싶다. 당분간 학비까지도 대줄 수 있다. 하지만 잠자리만은 어찌 해볼 도리가 없구나. 어떻게 하면 좋겠니?"

의외의 따뜻한 말에 너무나 고마워서 눈물이 핑 돌았다.

"고맙습니다. 정말로요"

"당장 오늘밤은 어디서 잘래?"

"문제없어요. 학교 교실에 가서 자면 돼요. 선배들이 불을 켜놓고 밤새워 공부를 하는 것 같던데요"

"너 정말 그럴 수 있겠니?"

"그럼요. 그런 것쯤은 문제도 없어요"

내가 다니던 한영고등학교 야간반은 용두동 미나리 밭 한 가운데 지어진 판자 집 건물이었다. 판자 집은 비가와도 썩지 말라고 검은 콜타르를 발라 우중충해 보였다.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하면 미나리 밭에는 검고 음산한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고 그 음산한 기운은 마치 이 검은 판자 집에서부터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바로 그 건물에, 세 명의 학교선배들이 교실 하나를 차지하여 입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교실 앞을 지나가자 선배들이 나를 불러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너 벌써부터 입시 공부를 시작하는구나? 참 착실하다 야. 그래, 그래야 돼"

나는 유난히 무서움을 타기 때문에 선배들이 있는 바로 옆 교실을 선택했다. 멀리 가로등에서 힘겹게 비쳐오는 엷은 불빛이 또 하나의 위안이 됐다. 불 꺼진 교실. 검은 색이 칠해진 네 개의 책상을 이어놓고 책가방을 베개 삼아 고단한 몸을 의탁했다. 선배들이 옆방에 계속해서 있어 주리라 믿으면서! 교실 바닥은 딱딱하게 마른 진흙이었고, 앉을 때마다 이리 저리 움직이는 책걸상 다리에 패여 마치 바다 수면을 정지시켜 놓은 것처럼 울퉁불퉁해서 몸을 뒤척일 때마다 책상이 기우뚱거렸다.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의 엄마는 나를 47세에 막내로 낳으셨고, 그래서인지 나를 바라볼 때면 내 얼굴 전체를 온통 엄마의 눈에 담으려는 듯한 눈길이었고, 그 눈길에서는 언제나 애정이라는 따뜻한 안개가 소복히 뿜어져 나와 나를 한 없이 어리광이로 만들었다.

고 2때도 엄마가 너무 보고 싶으면 무임승차를 해서 중앙선 구둔 역에 내렸다. 눈이 커서 무서움을 잘 탄다는 놀림을 받아온 나는 기차에서 내리는 그 어둠의 순간이 공포의 순간이기도 하고 희망의 순간이기도 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큰 동네를 지나기까지는 걱정이 없었다. 큰 동네의 변두리를 지나 외딴곳에 자리한 집까지 가는 것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더구나 그 외딴 집은 고래산이라고 하는, 그 일대에서 가장 높고 가파른 산자락에 있었다.

가장 먼저 검은 마귀 할멈이라 불리는 위압적인 고목나무 밑을 지나야 했다. 이어서 개울을 건너고 언덕진 검은 소로를 한동안 걸었다. 머리끝이 하늘로 빨려 올라가는 듯한 무서움을 느끼면서도 따뜻한 엄마의 품이 너무 그리워 그 무서움을 극복했다. 나의 엄마는 논물에서 물방개라는 미니 거북 같이 생긴 생물도 잡아 구워가지고 조금씩 떼어서 먹여주셨고, 메뚜기와 방가치, 심지어는 매미까지 잡아다 살을 조금씩 떼어내 내 입에 넣어주시면서 먹는 모습을 눈 안에 가득 담으려 하셨다.

주르륵! 뜨거운 눈물이 눈가로 흘러내렸다. 마치 여러 시간을 울고 난 어린아이처럼 온몸으로 흐느꼈다. 어느덧, 긴장했던 신경들이 파르르 떨면서 한 올씩 한 올씩 풀어졌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나의 육신에 어느 듯 몽롱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밤중이었다. 요란한 비바람이 창문을 두드렸다. 세찬 바람이 귀신 소리를 내면서 창 틈 사이로 들어와 교실 바닥을 맴돌았고, 교실 안에 있는 책상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덜거덕거렸다. 귀신이 눈치를 채지 못하게 눈을 최소한으로 가늘게 떴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할 만큼 온몸이 경직됐다. 움츠릴수록 무서움이 더 크게 엄습해왔다. 이렇게는 도저히 새벽까지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급하게 궁리를 했다. 어느 창문을 열어야 단번에 열릴까? 만일 시도했던 창문이 단번에 열리지 않으면 귀신이 덤벼들지도 몰랐다. 이를 악물고 온힘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쏜살같이 창문으로 다가가, 미닫이 창문을 열어 젖혔다. 창틀이 빗물에 불어 움직이지 않았다. 필사적인 힘으로 다른 창문을 열어 젖혔다. 어디로 뛰는지 나도 몰랐다. 가로등 불빛에 은가루처럼 휘날리는 빗줄기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그 빗줄기는 구원의 광채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가로등 아래는 오래 머물 곳이 못 되었다. 다시 뛰었다. 어둠 속에서는 무서워서 속력을 다해 뛰었고, 가로등 이 나타나면 그 밑에서는 비를 맞고 한참씩 쉬었다. 그것이 위안이고 휴식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다. 나는 그 여인의 어린 남매와 나란히 누워 있었다. 그녀의 셋방에는 연탄 식 부뚜막이 설치돼있었고, 그 부뚜막 위에는 물이 담긴 양은솥이, 화력이 약한 연탄불 위에 걸려있었다. 나는 그 부뚜막 위에 잠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나를 보내놓고 마음이 놓이지 않던 그 여인 역시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치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한밤중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혹시나 하고 쪽문을 열어보니 내가 양은솥 옆에 새우처럼 몸을 움츠리고 잠들어 있었다고 했다. 그 여인은 나를 옆에 뉘여 놓고 눈이 붓도록 울었다 했다. 무의식중에라도 내가 그 여인의 집으로 달려온 것은 나의 무의식 속에 이미 그녀에 대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어서였을 것이다.

그 충격이 컸던지 나는 밤마다 가위에 눌렸다. 식은땀을 너무 많이 흘려 속옷이 물에 담근 것처럼 흥건하게 젖었다. 그녀는 동네 엿 공장에서 매일 같이 엿을 사다 주면서 꿀 대신 엿이라도 먹고 빨리 회복하라고 했다. 누우면 온몸이 방바닥에 착 달라붙었고, 한 번 잠들면 송장처럼 늘어졌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자 그녀는 내게 다락방 하나를 얻어 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담임선생님의 주선으로 을지로 3가에 있는 어느 무역회사에 급사로 취직해 사무실에서 잠을 잘 수 있게 됐다.

스산한 어느 가을날의 하교시간, 비가 주룩 주룩 내리고 있었다. 울타리도 없는 학교였지만 운동장 한 끝으로 연결된 길목에 그 여인이 우산과 반장화를 들고 서있었다. 콧날이 시큰할 만큼 행복했고, 이제 나도 외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지만원, 이것 좀 신어봐, 맞을까 모르겠다."

"응, 꼭 맞아 누나, 돈도 없는데 왜 이런 걸 다 사왔어?"

‘누나’라는 호칭은 그녀가 내게 준 선물이었다. “나, 아줌마 아니야, 이제부터 네 누나야” 아스팔트가 없었던 흙탕 길, 여기 저기 파여진 곳마다 회색빛 빗물이 고여 있었다. 둘이는 비닐우산을 함께 받쳐 들고 이리 저리 발걸음을 골라가며 걸었다. 몸을 밀착시키기 위해 나는 그녀의 허리를 감았다. 스커트 벨트 위로 밀려난 연한 살집이 너무나 감미로웠고, 손가락에서 솟아나기 시작한 행복감이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이렇게 허리를 감고 걸을 수 있는 누나, 우산과 장화를 가지고 와서 버스 정류장에까지 데려다 주는 누나가 있다는 것이 처음에는 믿겨지지가 않았다. 계란형으로 조각된 고운 얼굴, 가늘게 흘러내린 목선, 투명하고 뽀얀 피부, 잔잔히 배어 나오는 윤기, 이렇게 황홀하고 매력적인 여인을 누나로 둔 것도 오직 꿈에서나 가능할 일이었다. 그녀가 없었던 어제는 지옥이었고, 그녀가 있는 오늘은 천국이었다. 그녀가 곧 나의 정신적 신분이 된 것이다.

"누나, 오늘 학교에 멋쟁이 화학선생님이 새로 오셨는데 그 선생님이 나 보고 알프스 소년 같대, 알프스 소년이 뭐야?".

"응, 너처럼 얼굴도 희고 눈도 크고 해맑은 소년이지. 어쩌면 너는 어린 나이에, 눈 없으면 코 베 간다는 서울에 혼자 올라올 생각을 다 했니?"

"셋째형이 나보다 열 살이 더 많거든, 둘째형이 가사를 꾸려갈 때에는 나보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 했는데, 둘째형이 객지로 나가고 셋째형이 가사를 꾸려가면서부터는 나에게 곡괭이를 들려주는 거야. 화전 밭을 파라고"

"그래서?"

"화전 밭을 파고 있는데 앞 동네 학교 스피커에서 국회의원 후보들이 연설을 한다고 방송을 하는 거야, 셋째형에게 잠깐만 갔다 온다고 했더니, 허파에 바람이 들면 안 된다며 못 가게 하는 거야, 아버지는 늙으시니까 형이 시키는 일에 반대는 못하시고 한숨만 땅이 꺼져라 쉬시는 거야, 곡괭이질을 몇 번 밖에 하지 않았는데 손바닥에 물집이 생기지 뭐야, 쓰라리니까 곡괭이 자루를 잡을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형에게 손바닥을 보여주며 더는 못하겠다고 했어, 그런데 형이 뭐라고 말했는지 알아?"

"뭐래?"

"아파도 참고 계속 일을 해야 구덕 살이 잡혀 농부가 될 수 있대"

그녀가 가엽다는 듯이 나를 꼬옥 끌어 당겼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에 다짐했지, 형으로부터 탈출해야겠다고"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 여인은 한숨을 쉬기도 했고, 대견스럽다는 듯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달빛이 얇은 유리창을 향해 여과 없이 들어왔다. 유리창에 묻은 먼지가 누나의 해맑은 얼굴에 아름다운 점을 그렸다,

"엄마가 많이 보고 싶니?"

"얼마 전까지도 그랬는데 지금은 학교에 가서도 누나만 보고 싶어져“

"정말?"

그녀는 어둠 속에서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말 대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안암동에서 나오는 물길, 그 물길의 둑을 따라 을지로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한참을 걸어야 했다. 누나와 나는 매일 학교 앞에서 용두동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다. 비가 오지 않아도 매일 밤 하교시간이 되면 자동적으로 누나가 길목에 나와 있었다.

학교에서 버스 정류장에까지 가는 데에는 20분이면 되었지만 두 사람은 일부러 둑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여러 대의 을지로 행 버스가 앞에 와 섰지만 그냥 보냈다. 등을 떠밀어야 버스를 탔고, 버스에 오를 때마다 그녀는 언제나 엿 봉지를 건네주었다. “잘 가” 버스에 오르면,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가지 뒤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흐느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영혼의 얼굴이 바로 그 여인의 얼굴이었다.

사관학교에 들어 간 이후 소식이 끊겼던 누나, 얼마 전 내게 딱 한번 찾아왔다. 꿈 속에서! 누나는 초라한 봉당에 걸터앉은 나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며 악수하듯 내 손을 조금 잡아주고는 이내 그림자처럼 가버렸다. 아마도!

오늘 수북하게 쌓인 눈길을 따라 산보를 했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세상, 도화강변에 나부껴 우는 꽃, 꽃은 피어서 만발이 되건만, 우리의 갈 길은 죽음의 길이다"

이바노비치의 ‘다뉴브강의 잔물결’에 얹혀 진 가사였다. 이 노래 속에는 사랑하지만 이루지 못했던 어느 청춘남녀의 슬픈 최후가 담겨있다고 했다. 그 여인이 내게 가르쳐 준 이 노래에는 그 누나를 향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뜨거운 감사와 깊은 추억이 모두 다 함께 함축돼 있다.


2011.1.30.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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