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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재판부를 재판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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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3-12-08 15:56 조회3,4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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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적으로 얻은 명예와 삶의 발판 마구 버려

나는 강원도 산골 화전 밭을 가꾸는 부모에서 태어나 지극한 사랑은 받았지만 13세에 홀로 서울에 올라와 신문도 돌리고, 목재도 나르고, 서비스공장에서 막일도 하고, 가정교사도 하면서 부초처럼 떠돌아다니다 나이 19세가 되었다. 중학교 졸업장은 없고, 고등학교 졸업장은 한영고등학교 야간반을 다니면서 땄다.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이것이 19세까지 축적한 이력의 전부였다.  

내 인생의 어엿한 프로필은 육사로부터 시작됐다. 육사를 들어갈 때 나는 키가 모자랐고, 이어서 몸무게가 모자랐다. 그럴 때마다 생면부지의 소령과 대령이 나타나 나를 구해주었다. 육사에 간 것은 순전히 운명이었다. 어찌 막다른 골목에서 소령이 나타나고 대령이 나타나 나락으로 떨어지는 나를 구출해줄 수 있다는 말인가? 제가 육사에 입교한 것도 기적이었고, 이렇듯 턱없이 부족한 체력으로 그 고된 훈련에서 낙오하지 않고 졸업을 하게 된 것도 기적이었다.  

이렇게 아무런 기반도 없는 한 소년이, 당시에는 사회가 알아주는 육사출신 소위가 되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요 축복이요 기적 그 자체였다. 이렇게 귀하게 얻은 것이었기에 그 존재는, 행여 금이라도 갈까 소중히 다루어야 할 ‘인생의 금은보화’였다.  

그런데! 나는 신이 주신 이 유일한 자산을 초개와 같이 버린 적이 많았다. 소위로 임관하고 유격훈련 등을 마친 후 1966년 가을에 나는 양평에 주둔하는 32사단 포병에 배치됐다. 그리고 겨울, 바쁜 훈련기를 맞았다. 훈련의 총사령관은 작전장교였다, 나의 부대 작전장교는 고참 대위였는데 사실상 넘버 투 맨이었고, 대대장님은 마음씨가 착해 대대는 온통 그의 천하가 되어 있었다. 그의 비위를 건드리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고참대위인 그 작전장교는 술을 마시고 툭하면 살을 에이는 추운 겨울에 강가에 나가 포대훈련에 열중하는 하사관들에 가서 자기에게 선물을 사오지 않는다며 마구 구타를 한다는 불만들이 대대 내에 팽배했다. 하루는 7-8명의 하사관들이 나를 PX에 초대하여 막걸리를 권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당한 구타 부위를 보여주었다.  

나는 공분을 이기지 못해 그만 그 대위의 숙소로 찾아가 서울에서 온 애인과 희희낙락 해 있던 그 고참 대위의 방문을 열었다. 성질이 급하기로 소문난 그는 나를 보는 순간 “야, 이 개새끼 봐라”하면서 방에서 총알처럼 튀어나오며 나의 얼굴을 가격했다. 그 순간부터 그와 뒤엉켜 그의 얼굴에 많은 상처를 냈다. 대대장은 이를 무마했지만 그는 사단 헌병대에 고소를 했다. 대대장은 나를 보호해주는 반면 그 대위를 멀리 전근보냈다. 사단 헌병참모는 나에게 다시는 이런 위험한 일 저지르지 말고 자중자애 하라 타일렀다. 자기를 만난 것이 천운인줄 알라고 했다.  

                              월남에서는 중위로 미군소령에 하극상  

곧바로 명령이 나 7만톤짜리 미군 수송선을 타고 월남전에 파병됐다. 갓 중위가 되었지만, 나는 대대포병을 사실상 통제하는 매우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어느 날 미군 포병 대대장 중령이 상황실을 찾아왔다. 고참 소령인 대대작전 장교를 만나러 왔지만 통역은 내가 했다. 미군 중령의 요청사항은 이러했다. “101 공중기마부대가 월맹 국경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105미리 포병을 그리로 공수하고 싶다. CH-47, 시누크 헬기로 105미리 포를 운반하는 시범을 장군들을 상대로 하고 싶은데 포병 1개 반만 투이호아 공군비행장으로 몇 날 몇 시에 보내줄 수 있는가”였다.  

작전장교는 이를 대대장에 보고했고, 대대장은 지중위를 인솔자로 하라고 명령했다, 나는 포병 1개 분대를 인솔하여 미공군비행장 좌표 지점으로 갔다. 갔더니 그 중령은 나오지 않고 배가 부른 미군 소령이 나왔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그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들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그 소령은 나를 보자마자 “트럭에 타고 있는 병사들을 내려오게 하며 소령 앞에 정렬시키라” 명했다. 나는 이 말에 비위가 상했다. “나는 당신의 대대장의 협조요청을 받고 호의를 베푸는 입장에서 여기 나왔다. 나는 너한테 검열을 받으러 온 게 아니다”  

이에 미군 소령은 나를 노려보면서 화를 냈다. “너 처벌받고 싶으냐, 너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나는 한국에서 고문관을 했다. 한국장군들이 내 말에 절절 맸다. 너 감히 내게 항명하는 것이냐” 한국군 장군을 멸시하는 이 자를 용서할 수 없었다. 목소리를 내려 깔고 트럭 위에 있는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야 이 자가 우리를 벌레처럼 보고 무리한 요구를 한다. 이 자가 한국에서는 장군들을 호령했다며 내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한다. 너희들더러 트럭에서 내려와 자기 검열을 받으래, 오늘 이 인간 혼 좀 내주자. 이 인간 발밑 1m 뒤에 조준사격하여 각자 10발씩 쏜다. 준비되는 대로 발사”  

배가 물주머니처럼 출렁이던 그 소령, 참으로 빨랐다. 나의 직속 상관인 고참 소령이 “당신 정신이 있소, 없소” 큰일을 냈다며 겁을 주고 걱정을 많이 했다. 소령의 말로는 군법회의 감이었다. 나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만에 오히려 미군 중령이 선물을 사들고 내게 찾아와 사과를 했다. 그리고 그 미군 중령은 ‘그 소령은 문제가 많아 다른 곳으로 보냈다. 앞으로 포병사격 협조를 잘 부탁한다’며 미군 병사 1명을 나와 함께 상황실에서 근무하도록 파견해주었다.  

                       정인숙 집과 정일권 총리실에 찾아가 담판 

22개월의 월남근무를 마치고 나는 중위 계급을 달고 육군 본부에서 갓 장군으로 진급한 준장의 전속부관을 했다. 내 밑에서 함께 장군을 모시던 상병이 최고위직 가문의 자손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어느 날 그가 말썽을 부리면서 중령 보좌관의 말에도 대들고 내 말에도 픽 픽 웃으면서 조롱을 했다. 여러 차례 그를 훈계했지만 그럴수록 더 가관이었다. 나는 또 옷 벗을 각오를 하고 그를 팼다. 월남에서 22개월 동안 정글을 누빈 데다 음식이 맞지 않아 나는 겨우 47kg의 약체를 가지고 있었다. 얼굴은 검고 입술은 푸르고, 눈만 반들반들했다. 육군본부 아가씨들이 점심만 끝나면 부속실에 몰려왔다. 나는 나와 함께 근무하는 ‘미스 윤’의 인기가 좋아서 몰려오는 줄로 알았더니 ‘그 사무실에 베트콩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다’ 소문이 나서 구경하러 왔다고 했다.  

드디어 정일권 총리실에서 김계원 참모총장실로 전통(전언통신문)이 날아왔다. 병사를 무지하게 구타하는 지극히 몰지각한 장교가 있는바 엄중 문책하고 결과를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군법회의를 각오했다. 마지막으로 퇴근 후 서교동 그 병사의 집을 찾아갔다. 오후 6시부터 얼굴과 몸매가 깨끗해 보이는 그의 누나를 만나 밤 11시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가 정인숙이라는 사실은 그가 피살당하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알았다. 처음 한동안은 무언의 기 싸움이 지속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자기와 결판을 보자 했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오면 그 아버지와 결판을 보겠다며 줄다리기를 했다. 밤 11시가 되자 그녀는 자기와 담판하자고 했다. 나는 2층에 있던 정 상병을 앞에 불러 놓고, 그가 듣는 가운데 정인숙에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말해주었다.  

그의 남동생이 취했던 행동을 조목 조목 이야기 한 후 “누님 같으면 이럴 경우 어떻게 하셨겠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녀는 “나 같으면 다리를 분질러 버렸을 겁니다” 하면서 동생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기 이어졌다. “솔직히 나는 내 막내 동생을 엄청 사랑했습니다. 동생의 팔꿈치가 많이 부어오르도록 때린 장교는 경우도 없고, 몰상식하고, 힘이 아주 세고 몸집도 거대한 거친 장교인줄로만 알았습니다. 오늘 여러 시간 중위님을 대하고 보니 내 동생이 한없이 초라하고 나쁜 놈으로 보입니다. 이 자식 내일 사무실로 보내겠습니다. 장군님께 많이 혼내주라 부탁한다 전해 주십시오.”  

그녀는 큰길까지 나와서 택시까지 잡아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총리실에 연락하여 전통을 취소시키겠다 약속했다. 하지만 모레가 내 결혼식인데도 그 다음 날 그런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퇴근하면서 나는 그 전통문을 가지고 중앙청 국무총리실로 갔다. “이 전통문을 육군 총장실로 보낸 비서관 계신가요?” 목소리를 깔았다. 아무도 답이 없었습니다. 육군참모총장도 눈 아래 보이는 그들의 눈에 내 초라한 얼굴과 초라한 중위 계급장이 눈에나 찼겠는가? 하지만 나는 일부러 모션을 느리게 잡으면서 그 전통문을 한 비서 앞에 내놓았다.  

“내일 이 전통문을 언론에 공개합니다. 국무총리가 얼마나 할 일이 없으면 겨우 한 병사의 일에 개입하여 이런 전통문을 참모총장에 내릴 수 있느냐, 이렇게 호소할 겁니다. 당신들 눈에는 내가 하찮은 육군 중위로 보이겠지만 내 뒤에는 국민여론이라는 게 있습니다. 아무도 이 전통을 육본으로 내려 보내지 않았다면 언론에 부탁해서 당사자를 찾을 수밖에요”  

사무실을 나왔다, 그러자 한 비서관이 황급하게 나를 잡았다. “그 문서를 기안한 비서가 밖에 나갔는데 제가 책임지고 그 전통을 취소시키겠습니다. 걱정 말고 가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전통을 취소하라는 지시를 받아놓고 있었습니다.” 정일권 국무총리로부터 지시는 받았지만 차마 체면상 취소전통을 내릴 수 없어 미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지금 와서 생각해도 28세에 불과했던 중위의 행동치고는 너무나 당돌했다. 목숨 내놓고 전쟁을 치르다 보니 간이 많이 부었던 것 같다. 이런 유사한 사건들과 담판 사건들은 1987년 2월 스스로 대령계급을  떼 낼 때가지 실로 여러 차례 있었다.

 

2013.12.8.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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