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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B-2 벙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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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20 12:17 조회13,17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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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B-2 벙커


육군본부 B-2벙커는 국방부 청사 지하에 구축돼 있다. 8시 05분, B-2벙커 상황실에 도착한 정승화는 당직사령에게 김재규와 김정섭을 총장실로 안내하고, 스스로는 쏜살같이 상황실로 들어갔다. 그는 상황장교를 부릴 틈도 없이 그 스스로가 전화기를 들고 전광석화의 속도로 계엄선포를 위한 예비조치들을 취했다. 국방장관, 합참의장, 연합사부사령관, 각군총장, 참모차장, 정보참모, 작전참모, 본부사령, 헌병감, 그리고 수경사령관을 호출했다. 이들을 비상 호출하려면 먼저 노재현 국방장관으로부터 허락을 득해야 했다. 그러나 정승화는 계통을 무시했고, 국방장관을 무시했다. 8시 10분경, 정승화는 수도권의 주요 부대들(4개)의 동정을 체크하는 일이었다. 체크하는 부대마다 다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았다. 핵심을 체크하기 전에 외곽부터 조심스럽게 체크한 것이다. 외곽부대들에 이상 징후가 없자 그는 드디어 차지철만이 지휘할 수 있는 핵심부대인 수경사의 사령관 전성각에 전화를 걸어 “부대 이상 없느냐, 병력은 장악하고 있느냐”하고 물었고, 이상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정승화는 곧바로  3가지 지시를 내렸다. 1)앞으로 총장의 명령만 받을 것, 2)지금 즉시 출동준비를 할 것, 3)사령관은 즉시 B-2벙커로 올 것 들이었다. 치지철이 지휘하는 수경사를 장악했던 것이다. 이는 차지철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고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월권적 행위였다. 부대에 ‘이상이 없다’는 것은 차지철이 쿠데타를 위해 대통령을 살해한 범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만일 차지철이 쿠데타를 일으켰다면 맨 먼저 수경사 병력이 쿠데타 주도세력이 되어 비상목표들에 출동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승화가 1996년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진술한 부분 즉 “12월 26일 밤 11시 40분경, 김계원이 노재현과 정승화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순간까지 차지철이 범인이라고 의심했다”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 거짓말인 것이고, 이 말이 옳다고 판시한 판사들은 이상한 오판을 한 것이 된다. 정승화는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것을 차 안에서 간지러운 질문을 던지는 순간에 알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8시 20분‘차지철만이 지휘할 수 있는 근위대 수경사’를 장악하기 직전에는 100% 알았을 것이다. 8시 30분, 노재현 국방장관이 벙커로 달려왔다. 그런데도 정승화는 노재현을 무시하고 오직 김재규가 요청한 계엄선포 준비 작업에만 몰두했다. 1980년 3월 7일 정승화내란방조사건 제2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노재현은 그 순간을 이렇게 진술했다.


변호인: 전화로 비상소집 연락을 받을 때 무슨 이유인지 들었습니까?

노재현: 못 들었습니다. 총장의 음성이 보통 때와는 달리 상당히 당황한 음성이었습니다. “장관님 빨리 나오십시오”해서 “어디요”했더니 “육본 벙커로 나오셔야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변호인: 총장실로는 정총장이 안내했습니까?

노재현: 정총장이 안내해서 바로 옆방으로 갔는데 총장실이 아니어서 다시 나와 총장실로 갔습니다.(주: 총장실이 아닌 옆방으로 안내한 것은 정승화가 노재현과 김재규를 한방에 넣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아마도 김재규의 말실수가 염려됐을 것이다.)

변호인: 총장실에 김정섭이 있었습니까?

노재현: 김정섭과 김재규가 앉아 있었습니다.

변호인: 그때 각하가 청와대 만찬석에서 돌아가셨다는 말은 없었습니까?

노재현: 그냥 “돌아가셨다”고만 했습니다.

변호인:어떻게 돌아가셨나”고 자세히 물은 적은 있습니까?

노재현: “아니 이게 무슨 소리요? 어떻게 된거요?” 물었더니 정승화 총장은 아무 말이 없었고, 옆에 있던 김재규가 나서서 “차차 알게 된다, 우선 보안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당위성 측면에서 보면 정승화는 바로 이때 국방장관에게, 김재규로부터 전화를 받고 궁정동에 가서 식사를 했던 사실, 김재규와 함께 차를 타고 오면서 있었던 행동들에 대해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정승화는 그런 사실을 숨겼다. 위 사실을 상급자인 국방장관에게 보고하는 것은, 군에서 일생을 보낸 육군총장으로서는 생리와 같은 의무였다. 생리를 자제하면서까지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의도적으로 속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고위직에 있을수록 그래서 행동은 투명해야 하며, 투명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서는 억울하더라도 의심과 의혹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8시 40분, 합참의장, 연합사 부사령관, 공군총장, 해군총장 등이 도착하자 김재규가 나섰다. “대통령이 유고이니 이 사실을 3일간 비밀에 부치고 즉각 계엄을 선포해야 합니다.”정승화는 이들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상황처리에만 몰두했다. 군 수뇌들을 호출한 것은 육군총장이고, 수뇌들에게 “비밀을 지키고 계엄을 선포해야 한다”는 지시를 한 사람은 김재규인 것이다. 이때의 정승화의 얼굴 표정은 어떠했을까? 어둡고 무거워 보였을 것이다. 정승화와 김재규의 모습들을 지켜본 군 수뇌들은 무엇을 직감했을까? “아니, 웬 중앙정보부장이?” 이런 의문과 함께 아마도 정승화와 김재규가 콤비가 되어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9시경, 김재규는 박흥주를 시켜 김계원에게 전화를 대라고 하였다. 박흥주가 여러 가지 통로로 전화연결을 시도하여 김계원과 통화를 했다.


김계원: 큰 영애가 아버지는 어디 계시냐고 묻기에 다른데 계신다고 얼버무렸는데 또 물으면 뭐라고 하지?

김재규: 잘했오


평소와는 다른 고압적인 말투였다.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하는 이 반말은 청와대에서 전화를 받는 김계원에게나 총장실에 있는 군수뇌들에게나 다 같이 강한 메시지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얼마 후에 김재규는 정승화를 시켜 김계원과 다시 통화를 했다.


김재규: 여기 국방장관과 각군 총장이 다 모여 있으니 이리로 오시오.

김계원: 총리께서도 여기 계시니 이리로 오시오.

김재규: 안됩니다. 국무총리를 모시고 실장께서 이리로 오시오.


김계원이 잠깐 멈칫하는 것 같더니 “알겠오 내가 그곳으로 가겠오” 하고 결심을 했다. 김재규의 승리였다. 김계원이 “김재규가 국방부로 오라 합니다” 하고 말하자 최규하 총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말 없는 총리에게 김계원이 또 이렇게 말했다. “김재규가 청와대 경호실이 무서워 못 오는 것 같습니다. 빨리 계엄부터 선포하여 치안을 유지해야 하니 그리로 가시지요” 이 말에 총리와 장관들이 따라 나섰다.“김재규가 청와대 경호실이 무서워 못 오는 것 같습니다.” 이 말 속에는 무슨 의미가 들어 있는가? ‘김재규가 대통령을 시해한 범인’이라는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 대통령을 살해했기에 청와대 경호실이 무섭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시점에서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김재규가 대통령과 차지철을 모두 살해했다’는 것을 재차 확인했을 것이다.   


이때 정승화는 1군 및 3군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진돗개2를 발령했다. 20사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육사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9공수여단장에게는 육군본부로 출동하라 명령했다. 이렇게 해놓고 그는 상황실을 나와 김재규가 있는 총장실로 가서 그가 취한 조치들을 설명해주고 계엄군이 점령해야 할 특별한 목표라도 따로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계엄군이 점령해야 할 목표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정섭이 방송국, 변전소, 상수도, 은행 등이라고 불러주자 이를 메모했다. 김재규는 군통수권 선상에 있는 사람이 아니며 따라서 정승화의 직속상관이 아니다. 정승화의 직속상관은 노재현 장관이며 노재현은 그때 정승화 옆에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국방장관은 무시한 채 김재규의 지시에 따라 병력을 동원해 놓고, 다른 방으로 건너가 그가 취한 조치내용을 보고하면서 계엄군 배치에 대한 지시를 내려달라 했다. 이는 정승화가 이미 국방장관을 돌려놓고 김재규를 군통수권자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9시 10분, 정승화의 호출을 받은 수경사 사령관 전성각 소장이 벙커로 들어왔다. 정승화가 호출한지 한 시간이 경과한 시각이었다. 정승화는 전성각 사령관에게 청와대 외곽을 포위하라고 지시했다. 이어서 청와대 경호실차장 이재전 중장에게 전화를 걸어 “수경사 병력이 청와대 외곽을 포위할 것이니, 일체의 경호실 병력을 동결하라, 앞으로는 내 지시만 따르라”고 명령했다. 이 명령으로 청와대 밖인 궁정동 안가의 총성 사태를 조사하기 위해 출동했던 경호실 요원들이 철수하고 말았다. 궁정동 안가는 청와대 울타리 밖에 있었다. 이 포위명령은 청와대 내의 경호실 병력이 청와대 외부에 위치한 궁정동 안가 현장으로 접근하는 것을 2중으로 차단하는 것이었다. 이재전 경호실차장에게‘경호병력 동결’을 지시할 때의 정승화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혹시나 이재전이 ‘경호병력 동결’ 지시에 불복할 수도 있겠다 하는 의심을 했을 것이다. 이런 그에게 ‘수경사 병력이 청와대 외곽을 포위할 것’이라고 알려준 것은‘경호병력이 이미 포위되어 있으니 다른 마음을 먹지 말라’는 묵시적 압력이었을 것이다. 안전조치를 2중으로 취한 것이다. 이에 이재전은 총장이 이미 수경사 병력까지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을 것이다. 이는 무슨 뜻인가? 정승화가 실세라는 뜻이다.


정승화는 청와대에 있는 김계원과 아주 똑같은 조치를 취했다. 첫째는 경호실 병력이 범죄 현장으로 가는 것을 막아 진실규명의 길을 차단한 것이고, 둘째는 범인 김재규를 은닉시킨 것이다. 만일 정승화가 청와대 경호병력을 동결시키지 않았다면? 시해현장을 향해 출동했던 경호실 병력이 현장으로 갔을 것이고, 거기에 남아 있던 중정(중앙정보부) 총잡이들과 한판 전투를 벌였을 것이다. 중정 총잡이들이 사살됐거나 또는 체포됐을 것이고, 그랬다면 김재규와 정승화의 행적이 만천하에 드러났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김재규-김계원-정승화가 번개 같은 속도로 체포됐을 것이다. 수경사는 총장의 지휘를 받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차지철만의 지휘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경호실 병력 역시 차지철만이 지휘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정승화는 수경사령관과 경호실 차장 모두에게 총장의 지시 이외에는 그 어떤 지시도 받지 말라고 쐐기를 박았다. 서슬 퍼런 차지철이 살아있다면 언감 생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월권행위였던 것이다. 이때의 정승화 마음속엔 차지철이 이미 죽고 없었던 것이다. 차지철과 대통령이 함께 식사를 하다가 대통령이 살해됐다면 차지철도 살해됐을 것이라고 믿는 게 상식이다. 그렇다면 맨 먼저 의심이 가는 대상이 대통령과 함께 식사를 했던 김재규일 것이다. 이런 의심이 수경사령관과 경호실차장으로부터‘부대 이상 없음’이라는 말로 확인됐고, 이를 확인한 정승화는 차지철이 지휘하는 두 사람, 즉 경호실차장과 수경사령관에게 직접 명령을 내렸고, 그 명령은 김재규를 보호하는 명령이었다. 정승화는 아마도 김재규와 “한 배”를 탔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의리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자신이 살아남으려면 김재규를 살려내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면 정승화가 감히 그렇게 빨리 경호실 병력을 동결하는 조치까지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1979년 12월 22일자 전성각의 진술조서에는 정승화 총장의 월권행위가 잘 드러나 있다.


정승화의 명령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수경사 상황실에 알아보니 안가 쪽에서 총성이 났다는 보고를 들었다. 이상하다 직감하면서 벙커로 갔다. 정총장의 모습이 초조하고 당황해 하는 것 같았다. 수경사의 지휘는 경호실장이 한다. 갑자기 총장이 지휘하는 것이 이상했다. 


병력출동에 대한 상황처리에서 정승화는 최초에 20사단과 9공수여단에게는 출동명령을 내렸었다. 그리고 나중에 생각하기를 그렇게 하면 사회가 소란스러워지게 되고 사회가 소란스러우면 김재규에 불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출동 명령을 취소시켰다. 이 역시 정승화가 김재규 편에 서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승화가 김재규와 한 편이 될 마음이 없었다면 그는 가장 먼저 국방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보고를 했어야 했다.“장관님, 금방 각하께서 총격을 받아 사망하셨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만나 뵙고 보고 올리겠습니다. 우선 제 생각으로는 1.3군에 진돗개2를 발령하고 군 핵심 수뇌들을 소집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어려운 일, 복잡한 일, 민감한 일을 할 때에는 책임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라도 여러 사람들과 의논하여 공개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고위직들의 생리다. 그런데 정승화는 모두를 따돌리고 혼자서 비밀스럽게 상황을 처리했다. 국방장관이 도착했을 때 그동안 자기가 겪었던 일들을 소상히 이야기 하고 처분을 기다렸어야 했다. 만일 이렇게 했다면 국방장관은 즉시 보안사령관을 불러 김재규-김계원-정승화를 모두 데려다 조사하라고 지시했을지 모른다. 아마도 정승화는 ‘비상국무회의’가 끝날 때까지만 잘 넘기면 막강한 계엄사령관이 될 텐데 여기에서 체포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계엄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를 맞이하여 군 병력의 동원이 없으면 공공의 질서가 유지될 수 없을 경우에 한하여 대통령이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선포하는 것이다. 정승화는 육해공군 3개 군 총장들 중에서 육군참모총장일 뿐이었다. 대통령 유고에 대한 상황처리의 주체는 국방장관과 최규하 총리였다. 국방장관이 핵심수뇌들 및 참모들과 함께 의논하고 의논한 결과를 비상국무회의에 반영시킨 후에 처리했어야 할 그런 중대한 사안을 정승화는 비상국무회의도 열리기 전에 그리고 국방장관과 총리를 배제한 채 불법적인 월권을 했던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아마도 정승화는 김재규가 차에서 그를 치켜 올릴 때 이미 계엄사령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들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는 김재규가 차에서 시킨 대로 비밀을 지키면서 묵묵히 그리고 재빠른 속도로 계엄을 선포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했다. 이에 더해 정승화는 벙커에 오자마자 경호실 병력을 동결시키는 명령을 내려 결과적으로 김재규가 저지른 사고현장을 보호하고, 범인이 누구인지 규명할 수 없도록 했다. 이 모두가 고위급 장군들에게는 합치된 상식이요 상황처리 공식에 속했던 것이다. 마치 농구나 축구선수들이 일일이 말로 하지 않고 순간순간의 눈치로 팀워크를 이루어 내듯이! 김재규, 김계원, 정승화 이 세 사람이 일치된 행위를 보인 것은 이 세 사람이 한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재규가 추진하고 있는 유혈혁명에 공조하는 것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목적이 같기에 두 사람이 취한 조치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을 주도한 법관들은 이러한 장군 세계의 상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승화가 이재전에게 경호병력을 동결하라 지시한 것이 김재규를 감싼 행위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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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머루님의 댓글

산머루 작성일

저런 허수아비가 한 나라의 국방장관이였으니 개탄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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