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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통령 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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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20 12:01 조회10,4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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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대통령 재가


6시 30분경, 전두환은 이학봉 수사1국장만 대동하고 대통령 공관으로 갔다. 수사1국장은 부속실에 대기했고, 대통령실에는 2사람만 있었다. 전두환은 정승화에 대한 혐의점을 요약하고 정승화를 합수부로 연행하여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했다. 순순히 재가를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예상을 깨고 최규하는 노재현 장관을 대통령 공관으로 오라고 지시했다. 이에 전두환은 당황했다. 전두환은 직보의 '관례'를 설명했지만 최규하는 끄떡도 하지 않고 노재현을 기다렸다. “과거에는 그랬는지 몰라도 나는 나의 방식대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한 치 앞이 캄캄했고, 대세가 누구에게 가느냐에 따라 책임을 지느냐 마느냐가 좌우되는 긴장과 불확실성의 시기였다. 이런 처지라 아마도 혼자서 서명하는 것보다는 노재현 국방장관의 건의 형식으로 서명하는 것이 후환이 없을 거라는 보신주의 때문이 아니었는가 싶다. 부결하려면 그 자리에서 얼마든지 부결의 뜻을 전했지, 구태여 국방장관을 찾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반면 이미 약속되어 있던 대로 정승화 공관에서는 체포 작전이 진행됐다. 7시 40분경 대통령 부속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학봉 수사1국장은 허화평 합수부 비서실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정승화를 수사분실에 연행했고, 연행과정에서 총격전이 벌어져 우경윤 대령이 부상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전화를 받은 이학봉은 즉시 접견실로 가서 보고 중에 있던 전두환에 알렸고, 전두환은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래도 대통령은 국방장관이 오기만을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이 시간에 국방장관은 직무를 팽개치고 단국대-육군본부-국방부-연합사를 오가며 피신에 피신을 거듭하면서 숨어 다니기에 바빴다. 답답한 전두환은 8시 20분경, 자기가 나가서 국방장관을 찾아보겠다고 건의를 하고 대통령 실을 나와 장군들이 기다리고 있던 30경비단으로 갔다.  


오후 7시 직후에는 세 가지 일이 거의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전두환 합수부장은 최규하 대통령 집무실에서 정승화 연행에 대한 재가를 청하다가 대통령이 노재현 국방장관을 부르기로 하면서 지연되어 기다리고 있었고, 정승화 연행조는 이미 약속해 놓은 대로 총장공관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으며, 30경비단에 전두환이 초청해 놓은 9명의 장군은 장태완으로부터 “너희들은 반란군이다. 모두 사살하겠다”는 협박성 전화를 받으면서 대통령실에 간 합수부장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군에서는 “정승화에 대한 조사를 해야 한다” “정승화는 최소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정서가 팽배해 있었고, 이러한 군내부의 정서는 일반 국민들의 정서보다 더욱 강열했다. 정승화 연행은 극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것이기 때문에 전두환은 연행 계획을 아무에게도 사전에 누설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보안을 유지하게 되면 나쁜 의도가 개입된 것으로 오해를 받아 고립될 수 있었다. 따라서 전두환은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동조자를 확보해야만 했을 것이다. 연행에 동조할 수 있는 철학을 가진 군의 여론 주도층에게 연행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하고 동조를 얻어내야만 했던 것이다. 그 빠른 시각이 바로 대통령 재가가 끝나는 시각이었다. 그래서 전두환은 수도권 가까이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8명의 장군들을 보안사로 초청해 놓았다. 하지만 보안사에는 눈이 많기 때문에 장소를 30경비단으로 옮긴 것이다.      


초청된 장성은 유학성(군수차관보), 차규헌(수도군단장), 황영시(1군단장), 노태우(9사단장), 박준병(20사단장), 박희도(1공수여단장), 최세창(3공수여단장), 장기오(5공수여단장), 백운택(71방위사단장), 이렇게 9명이었다. 여기에서 백운택 장군은 우연히 보안사에 들렸다가 합석을 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전두환에 대한 충성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박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이었고 단지 그 중심에 전두환이 있었던 것이다. 특히 유학성, 차규헌, 황영시는 정승화로부터도 높은 신임을 받고 있었다. 전두환이 대통령실에서 나와 30경비단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윤성민 참모차장이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고,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30경비단을 전차와 대포로 공격하겠다는 협박성 전화를 하고 있었다. 전두환은 답답한 심정을 이렇게 털어놨다. “대통령께 보안사령부의 특수성과 관례를 설명했지만,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장관님을 빨리 찾아야 할 텐데요.”


수경사령관은 병력과 포를 가지고 공격해 오겠다 압박을 가해오고, 참모차장을 중심으로 하는 반대세력은 거병을 하려하는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마당에 마냥 노재현이 나타나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는데 이들 장군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이에 유학성, 차규헌, 황영시, 백운택, 박희도 등 5명의 의협심 있는 장군들이 나서서 전두환과 함께 대통령실로 갔다. 9시 30분경이었다. 이들은 최규하 대통령 앞에 일렬로 서서 거수경례를 했고, 전두환은 이들 장군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통령에 소개했다. 이들은 대통령 하석에 앉아 ‘국방장관의 행방이 모연한 상태에 있으니 대통령이 대통령의 전권으로 전두환의 건의를 재가해 달라’는 취지의 건의를 정중하게 전했다. 10시 10분 경, 이들 장군들이 대통령 앞에 앉아 있을 때 연합사에 있던 노재현 장관과 대통령 사이에 전화통화가 이루어졌다. 대통령은 노재현에게 즉시 오라고 명령했고 노재현은 곧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 전화를 유학성 장군이 이어 받았다. 유학성은 노재현에게 정승화가 10.26 내란사건과 관련하여 합수부에 연행되었다는 내용을 곁들여 간단한 사정을 설명했다. 국방장관이 곧 오리라는 것을 확인한 장군들은 10시  30분경에 공관을 나왔다.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훗날 이 대목을 놓고 신군부가 권총을 차고 대통령을 협박하러 갔다고 비난한다. 심지어 당시의 일부 언론들은 전두환이 최규하에게 권총을 들이대고 겁박했다고도 했다. 1996년 5월 23일, 제9회 공판에서 전두환은 이렇게 진술했다.


변호인: 대통령과 면담을 하는 자리는 정승화 연행조사 뿐만 아니라 여타의 이러저러한 잡담을 나누는 극히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분위기기 아니었습니까?

전두환: 그 자리에는 신현확 총리와 비서실장 최광수, 의전수석 정동렬도 같이 배석을 해서 차를 마시면서 환담을 했습니다.(수사기록들을 보면 이는 사실이었다)

변호인: 22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비서실장이, ‘노재현 장관과 전화가 연결되었습니다’하는 보고를 대통령에게 했지요?

전두환: 그렇습니다.

변호인: 최규하 대통령이 노장관에게 “지금 어디 있소, 어떻게 된 것이오, 빨리 대통령 공관에 오시오” 이렇게 분부 말씀을 하셨지요?

전두환: 분명히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변호인: 이 지시에 노장관은 “곧 출두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한 것으로 알고 있지요?

전두환: “곧 온대”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변호인: 노장관에게 지시를 하신 최규하 대통령은 피고인과 장성들에게 “이제 곧 노재현 장관이 온다니 오면 정승화 연행 조사문제를 곧 결정해서 재가를 하겠다”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전두환: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변호인: 이 말씀을 듣고 더는 건의할 것이 없어 30분 정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10시 30분경에 공관을 나왔지요?

전두환: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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