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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간첩의 배후 조종 없는 소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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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09-12-29 17:56 조회4,3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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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간첩의 배후 조종 없는 소요는 없다


어느 사회에서든 불만세력은 있게 마련이다. 대남공작의 핵심은 남한 내에 일고 있는 불만을 부추기고, 불만의 표출 방법을 조직적으로 지도하여 민란으로 확대시킴으로써 북한의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시키려는 것이다. 북한을 연구하는 사람 치고 이를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북한의 대남 사업소들은 수십 개에 이른다. 각 사업부는 입신출세, 생존경쟁, 충성도 경쟁 등의 다양한 동기를 가지고 경쟁적으로 대남사업을 벌이기 때문에 한국사회에 남파된 간첩 거물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살피고, 기회를 만들어 사회소요를 획책해 왔다. 대한민국 역사는 대남공작 부서와 지하당 조직이 부추겨 일으킨 소요사태들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모든 소요 사태 치고, 지하당 조직의 개입 없는 사태는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믿음이다. 심지어는 4.19 학생 시위를 직접 지도했다고 증언한 사람이 두 사람이나 된다. 한 사람은 1946년 대구폭동을 주도했던 간첩 이석이고 다른 사람은 1960년대에 남파하여 15년간 거물간첩으로 활약해온 김용규씨다. 김용규씨는 그의 대남공작 비화 “소리 없는 전쟁”(1999. 원민) 81쪽에서 4.19를 이렇게 회상했다. "4.19 때에도 시위학생들이 가자 북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 이런 구호를 외치며 왁시글거리지 않았습니까? 그 때도 제가 서울에 있으면서 학생시위를 지도했습니다"  거물간첩 출신 김용규씨는 그의 저서“소리 없는 전쟁”에서 매우 강한 교훈을 일러주고 있다. 그는 호남출신 거물간첩이었으며, 15년간에 걸쳐 암약한 내용들을 실감 있게 정리했다. 우리에게 도움이 될 부분들만 아래와 같이 발췌-요약한다. 


1970 및 1980년대에 걸친 모든 기간에 걸쳐 나라의 안보를 위태롭게 했던 갖가지 극렬사태가 바로 북쪽의 공작에 의해 야기된 필연적 결과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도, 재론의 여지도 없는 것이다. . .민주화는 1960년대부터 북이 남한의 불만세력을 선동하기 위해 사용한 위장용어였고, 남한의 민주화운동은 북의 지령이었으며 남한에의 민주정부 수립은 김일성의 목표였다. 4.19를 북한에서는 4.19민중항쟁으로 부르고 실패한 통일기회로 기억한다. 5.18을 북한에서는 5.18민중항쟁으로 부른다. 4.19도 5.18도 북의 공작에 의해 야기된 필연적 결과였다. 김대중은 북이 키웠고, 호남은 적화통일의 전략적 거점이었다. . 일제 식민지 통치 시기의 광주학생사건, 6.10 만세운동은 차치하고, 해방 후 6.25 이전까지만 해도 호남지역은 여순반란 사건과 지리산 빨치산 투쟁으로 이승만 독재정권을 전율케 했던 전통적으로 좌익 성향이 강한 지역이 아닌가! 1967년, 공화당과 신민당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통혁당 조직원들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역전, 터미널, 사장 터 할 것 없이 찾아다니며‘이번 국회의원 선거는 목포가 죽느냐 사느냐 사활이 걸려있는 선거다. 목포시를 살리고 내가 살기위해서는 공화당을 낙선시켜야 한다’고 목이 터져라고 외쳤다.”(72쪽)


바로 이 대목이 매우 중요하다. 위에서 통혁당 간첩들이 1967년에 목포로 대거 내려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국회의원 선거에 뛰어들어 선거운동을 한 것은 바로 김대중을 당선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1967년 6월 4일 오후2시 목포역전 광장에서 김대중은 이렇게 유세연설을 했다. "여러분 내 눈을 똑바로 보세요. 내 얼굴을 똑똑히 보십시오. 나는 내 장래에 대해서 큰 포부가 있습니다. 나는 돈 몇 푼 받아 가지고 내 장래를 망칠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내 꿈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더러운 돈 같은 것은 아무리 고통스럽고 괴로워도 안중에 없다는 것을 명백히 해둡니다 여러분." 거물간첩 출신인 김용규씨의 증언대로 김대중은 김일성이 키운 사람이라는 것이 실감나는 대목인 것이다.


대학에도 못간 놈, 공부는 안 하고 무슨 권투선수가 되겠던 나의 친동생, 면사무소 말단 직원으로 있으면서 5.16 군사정권에 대해서는 남다른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나의 사촌 동생, 이들은 평양에 가서 뜨거운 포옹과 분에 넘치는 환대에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면서부터 사상과 혁명적 열정이 극으로 넘쳤다. 4.19 때, 너는 중학생이었지? . .그 때 우리가 조금만 더 잘했으면 벌써 통일이 됐을 텐데, 그 좋은 기회를 놓쳤거든. . .그래서 지금 많은 애국 투사들이 제2의 4.19를 준비하고 있는데 너도 거기에 동참해서 한 몫 해야지. . (82-84쪽). 혁명은 수백만 대중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고 조직 동원할 수 있는 탁월한 영도예술을 필요로 하고, 또 혁명에는 노동자, 농민뿐만 아니라 학생, 정치인, 지식인, 종교인, 교수, 박사 등 광범한 계급 계층이 다 참가하게 되는데 그들을 의식화, 조직화하는 그 역할을 어떤 사람이 담당해야 하겠나”(98쪽). 나도 4.19 때 학생 운동 해봤지만 그 때 얼마나 결렬했는지 아나? 5.16 쿠데타만 아니었다면 그 때 벌써 우리나라는 ‘민주화’가 열매를 맺고 통일의 문도 열렸을꺼야, 그런데 그 쿠데타를 막지 못했기 때문에 4.19의 열매가 군홧발에 짓밟히게 된 거지!(207쪽)”


왜, 나라고 민주화운동 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 유신체제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다 해야지. . 민주화운동 하는데 타입이 어디 있어! 오늘도 흥사단 사무실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백기완씨도 나오고 . .  이번 개헌청원 서명운동도 백기완씨, 장준하씨, 그리고 지학순 주교를 비롯해 내로라하는 재야인사들이 주도하고 있는데 . . .지금 김대중 선생 구출 투쟁위원회가 결성돼 가지고 활동을 개시했는데 처음부터 자금난에 부딪혔거든. . 그래서 집행부에서는 국내에서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벌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총련을 비롯한 해외교포단체에 지원요청도 하고. . .(247쪽) 이런 저명인사들까지도 이미 북하고 선이 연결돼 있었습니까? 정말 꿈에도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 . .뭐 그 정도에 놀라는가. . 그보다 더 중요한 권력 핵심부에까지도 포진돼 있다는 사실을 알면 뒤로 벌렁 자빠지겠네!. . 형님 말씀 듣고 보니까 더욱 힘이 생깁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인사들이 . . 그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299족).


1974.4월 초, 김대중 납치사건을 주도했던 이후락이 해외에 나갔다가 귀국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갑자기 이후락을 납치해 오라는 공작 임무가 부여됐다. . . 모의 훈련까지 하고 나서 특공조 30명이 공작선 2척에 분승하여 양자강 하구에 이르자 갑자기 작전중지 명령이 내려왔다. 이후락이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었다”(323-328쪽). 1974.8.15 저녁 경희루 경축파티에서 라디오 폭파(무선원격조정)에 의해 박대통령을 암살하려 했지만 낮에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재일교포 문세광이 일을 그르쳐 육영수 여사와 여학생이 숨지게 하는 사고로 경희루 행사는 그대로 무산돼 버렸다”(325-326) 원주 치악산 기슭에 5만평 규모의 임야를 사 가지고 밀봉초대소(수련장)을 만들었다. 주변은 과수원으로 위장하고 외부와의 연계를 일체 차단한 채, 한번 교육을 받고 나온 수련생들도 다시 찾아올 수 없을 정도로 비밀단속을 철저히 했다. 1기에 5명씩이었다. 제1기에는 서울대, 한양대, 동아대, 조선대, 신학대에서 각기 1명씩 선발된 ‘학생회장 감’으로 모두 다 나무랄 데 없는 투사들이었다. 회장은 학생들의 손을 굳게 잡아주면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지금 우리 청년학생들은 유신독재를 반대하여 아주 잘 싸우고 있습니다. 전국이 반 박정희  투쟁의 도가니로 들끓고 있습니다. 어제도 고려대에서 1,500여명의 학생들이 성토대회를 가졌고, 4,000여 명의 이대생들은 결의문을 채택한 후 교내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러한 투쟁이 전국 각 대학에서 매일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대적투쟁전술에 정통한 학생운동 지도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응분의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신독재를 까부수려면 우선 반공법, 국가보안법과 같은 악법을 철폐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현 위정자들이 철폐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한 타격을 안겨야 하는데 학생들은 대학단위로 산만하게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 .각 대학별로는 학생회를 장악해야 하고 전국의 대학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하나의 유력한 조직으로 결속돼야 하며 후배들을 부단히 육성해야 합니다”(358-359).    


그물에 걸린 대령 포섭작전 대성공, 나는 낚시를 좋아하는 나의 형인 대령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군의 고위직만이 드나들 수 있는 통제구역인 구만리 발전소 저수지에 텐트를 치고 합법적 신분으로 귀빈대접을 받고 있는 동생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비역 대령인 형에게 직장도 마련해 주었다. 형은 육사출신이었다. 형(정대령)은 너그럽게 돈을 쓰면서 군 인사들에 영향력을 발휘해 나갔다. 형이 평양행을 위해 출국준비를 하는 사이에도 당 지도부의 관심을 끄는 사건들이 수없이 나타났다. 민주회복국민회의창립, 백낙청 교수 파면, 오글 목사 추방에 이어 동아일보광고해약사태가 발생했다”(366-398쪽). 그 후 노동당 연락부는 이 같은 교시에 따라 국회침투를 포함한 거물급 공작을 집요하게 벌여왔다. 1967년 국회의원 김규남 사건을 비롯하여 대통령 경호실장 비서로 잠입했던 김옥희 사건, 청와대 비서관으로 침투를 기도했던 박노수 사건 등은 대남사업이 이미 상층부를 향해 치닫고 있음을 증명해 준다”(413쪽)(주: 당시 공화당 국회의원이었던 김규남과 법학자인 박노수가 간첩으로 몰려 사형을 당했다) 돌이켜 볼 때, 1970 및 1980년대 전 기간에 걸쳐 나라의 안보를 위태롭게 했던 갖가지 극렬사태가 바로 북쪽의 공작에 의해 야기된 필연적 결과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도, 재론의 여지도 없는 것이다.(4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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