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과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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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1-11-25 23:07 조회20,85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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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과의 전쟁
교과부가 ‘5.18민주화운동’을 중학교 교과서에서 빼내려 했다가 5.18단체, 광주, 빨갱이 세력들로부터 거친 항의를 받고 없었던 일로 했다. 하지만 교과부가 처음에 이를 시도하게 된 동기는 현대사학회로부터 상당한 조언을 받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500만 야전군은 5월 21-22일 양일간 6개 신문에 광고를 냈고, 어제(11.24)의 종묘공원 강연집회를 열고, ‘5.18은 반란이다’라는 40쪽 짜리 소책자를 배포하게 됐다.
특히 전라도는 동아일보를 많이 본다. 이로 인해 광주와 전라남도가 벌집을 쑤신 듯 들고 일어나는 모양이다. 전라도에서 한나라당을 한다는 분들도 5.18을 완전히 빨갱이들의 선동내용을 그대로 맹신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황석영이 쓴 소설을 굳게 믿고 있었다. 광주사태가 악화된 것은 부상자를 싣고 병원을 향해 달리고 있는 택시를 세워 공수부대가 부상자는 물론 택시 기사까지 때려죽인 사건으로부터 악화되기 시작했다고 믿고 있었다. 이 내용은 북한 책을 베껴 쓴 황석영의 책(1985년) '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의 5월 19일 사건기록 내용이다.
수사기록에 의하면 5월 19일 오후부터는 공수부대가 완전 수세에 몰려 매타작을 당하고 있었던 때다. 빨갱이 황석영이 쓴 5.18 소설은 이렇게 쓰여 있다.
“택시에 실려 병원으로 가는 것이 발견되면 부상자들을 다시 끌어내려 곤봉으로 난타하고 운전사까지 사정없이 난타했다. 로타리 부근 전투에서 머리가 으깨지고 팔이 부서진 부상자를 병원으로 옮기던 택시기사에게 공수대원이 내려놓으라고 명령했다. ‘당신이 보다시피 지금 곧 죽어가는 사람을 병원으로 운반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호소하자 그 공수대원은 차량의 유리창을 부수고 운전기사를 끌어내려 대검으로 무참하게 찔러 살해했다. 이런 식으로 최소한 3명의 기사가 살해당했다.”
“오후 5시 10분, 계림동 광주고교 앞 도로에서 충돌이 또 발생했다. 시민들은 광주고등학교와 계림파출소 사이 중앙로에서 장갑차를 기다렸다. 눈 역할을 하는 장갑차의 감시경을 깨버리기 위해 집중적으로 돌을 던졌다. 감시경이 깨지자 장갑차는 움직이지 못했다. 이 때 동아일보 기자가 이를 취재하자 장갑차 안에 포위되어 있던 공수부대 대위가 기자에게 군병력을 이리로 보내달라 전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부탁을 받은 취재기자가 군중사이로 지날 때 시민들은 취재차량에 발길질을 하고 욕설을 퍼붓고 돌을 던졌다. . .한 사람이 볏 짚단을 가져와 불을 질러 장갑차를 폭파시켜버리자고 하면서 짚단에 불을 붙여 바퀴부분에 던져 놓았다. 별로 효과가 없음을 알아차린 시민들은 장갑차의 뚜껑을 열고 그 속으로 집어넣으려 했으나 뚜껑이 열리지 않아 그대로 뚜껑 위에 올려놓았다. 잠시 후 안에 있던 공수대원이 뚜껑을 열고 M16을 내밀었다. 뜨거운 듯이 팔을 휘젓고 공중에 두 발을 쏘더니 이내 조준사격을 했다.”
11여단 소속 장갑차가 5월 19일 오후 5시, 폭도들에 포위되어 있을 때 폭도들이 장갑차 뚜껑에 불타는 짚단을 계속 올려놓고 그 안에 탄 군인들을 불고기로 만들려는 시도였다, 이때 뚜껑을 열고 나와 위협사격을 한 것이 광주에서의 첫 번째 발포였다. 여기에서 부상당한 폭도는 한 사람 있어도 사망자는 없었다. 그런데 황석영은 공수대원이 뚜껑을 열고 나와 처음에는 공중을 향해 위협사격을 한 후 곧 조준사격을 했다고 썼다. 조준사격을 했다면 여러 사람 죽었어야 했다. 조금만 파고 들어도 황석영의 말은 뻥이다. 황석영도 새 머리이고, 이를 믿는 광주사람들은 더 새머리다.
우리는 이제 인터넷을 통해 총 공격을 해야 할 때를 맞이한 것이다. 어제 종묘공원에서는 그야말로 살을 에이는 듯한 강추위에도 70세 전후의 수많은 어른들이 2시간 동안 자리를 뜨시지 않았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 중에는 오고 싶어도 추워서 오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노인들은 이 나라를 적으로부터 보호하고 잘살게 만든 산업의 역군들이었다. 그만큼 이 나라에 대해 애착이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각자의 역량에 따라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5.18의 역사로부터 바로 잡는 일에 몰두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어제 종묘공원에 오셔서 2시간 동안이나 떨고 가신 모든 분들께 참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고생을 시켜드린 것에 대해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시위 또는 행사를 대폭 줄여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행사에 오시는 분들은 늘 필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행사를 자주 하면 필자를 사랑하시는 분들만 괴롭힌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제 필자는 오신 모든 분들과 악수를 하고 1대1의 접촉을 하려고 애썼다.
어제 고생을 시켜드린 것이 오늘 하루 종일 마음 아팠다.
2011.11.25.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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