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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사태의 진실규명을 위한 험한 여정 -하-(이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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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4-04-10 20:57 조회5,7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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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광주사태의 진실규명을 위한 험한 여정 -하-

 

광주의 5.18시위주동자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자유민주적 가치를 위해 봉기한 것이 아니라, 민족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조차) 용감하게 희생하려 했다.”

광주사태 6주전인 3월 27일에 나타난 성명서 중 하나인 <전용봉 학우 여러분께 드리는 글(반외세 투쟁선언)>을 살펴보면, 통일문제를 언급하는 바, “철저한 외세의 타도 없이 진정한 통일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하여 주한미군철수를 거론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민족통일을 방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반민족적인 적은 살인마 전두환을 정점으로 한 매판 군부세력, 매판 관료집단, 여기에 기생하는 국내 매판 독점자본가, 이들 집단을 이끄는 미·일을 정점으로 한 제국주의적·신식민지적 외세이다.”라고 단정하면서 ‘반민족적 외세의 타도를 통한 파쇼정권의 섬멸이 당면 과제’라고 지칭하면서 민중투쟁, 민중해방을 고무시키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유혈의 광주사태가 발생하기 전부터 이미 전두환은 ‘살인마’로 낙인이 찍혀있었다는 점이다.

광주사태의 발발 10일전인 5월 8일 전남대 총학생회의 성명서, <민족민주화 성회>를 보면 민족민주주의의 성격을 판단할 수 있다. “반민족적이고 반민주적인 세력의 척결을 위해 투쟁”할 것을 선언하고, “조국에 대한 외세의 간섭을 절대 배격하고” 나아가 “참다운 민족민주 세력이 역사적 주체가 되는데 저해되는 모든 세력에 대해 단결, 투쟁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광주사태가 발발하는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성명서의 투쟁수위는 더욱 강도가 높아진다. 5월 15일자 전남대 총학과 조선대 민주투쟁위, 그리고 기타 전남지역의 대학 학생회가 연합하여 만든 성명서, <제2 시국선언문>에서는 “반민주 반민족 세력과의 성전을 엄숙히 선포”하고 있다. 그것은 “통일 민주조국으로 가는 노정에” 마땅히 흘려야할 젊은 피라고 주장하면서 “민중이 역사의 주인 노릇을 하는 위대한 민중의 시대, 민족통일의 벅찬 시대가 열릴 때까지 모든 민주, 민족 세력은 온몸으로 투쟁해 나아갈 것”을 강조하면서 민중해방을 거론한다.

위의 3가지 성명서들은 모두 5월 17일에 감행된 김대중 등과 재야인사의 구속 훨씬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민족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족민주주의(National Democracy)는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하는 제3세계 공산주의자들이 민족민주주의 혁명단계에서 취하는 지도노선 또는 투쟁노선이다.” 즉 공산주의자들이 본격적인 사회주의화를 추진할 여건에 있지 않은 지역에서 그들의 사상적 정체를 분명히 드러내는 것을 피하면서 궁극적으로 비사회주의세력의 역량을 동원하여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하도록 할 수 있는 제3세계의 상황에 적합한 지도노선을 모색한 결과 나타난 것이 바로 민족민주주의이다.

 

IV

  한편, 노무현 정부이후 탈북자들이 2만명이 넘게 됨에 따라서 새로운 사실과 증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북한군 특수부대의 침투’ 주장이다. 탈북자들은 5.18이 북한수뇌부의 치밀한 대남공작에 의해 저질러진 謀略戰(모략전)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모략전의 達人(달인)이라는 것은 김용규의 <소리없는 전쟁>에서도 잘 드러난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74년에 있었던 동아일보 광고해약사태에서 간첩망이 몰래 개입해서 중앙정보부 요원으로 위장하여 광고주들을 불러 협박을 하여 중앙정보부에 대한 원성을 높이게 하여 유신체제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킨 경우가 그런 것이다.

한마디로, 북한군이 시민군과 국군으로 각각 위장을 하여 양쪽을 총질하면서 이간질시켜서 대량의 유혈충돌을 빚게 유도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5.18역사에 대한 ‘수정주의 해석’이 탄생하게 된다. 2006년부터 북한군 출신의 탈북자(임천용)들의 기자회견을 출발점으로 해서 크고 작은 증언과 이를 바탕으로 출간한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 그 이후 2012년 6월 ‘인민군영웅들의 렬사묘’를 사진을 찍어오는 데 성공하여 이를 밝힌 기자회견들까지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게 되었다. 탈북자들은 처음부터 국정원에서 증언할 때, 위증을 하면 자칫하면 간첩으로 몰리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이들 탈북자들이 주장하는 증언들을 “그럴 리가 없다. 믿을 수 없다”고 펄펄 뛰면서 부정만 할 것이 아니라 소중하게 여겨서 위증 여부를 재조사해야 광주문제의 의혹들이 말끔히 해소될 것이다.

예를 들어, 무기탈취의 계획 시점에서 윤한봉의 구술녹취록은 탈북자들의 증언록,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에 나타난 증언과 일치하는 대목이 나타난다. 5.18측은 무장시위대가 21일 오후에 무기탈취 구상을 시작했다고 무기탈취를 정당화했다. 그런데 윤한봉의 구술녹취록을 보면, 5월 1일 훨씬 이전에 무기고 위치를 파악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도청을 장악을 하고 끝까지 항쟁을 해야 한다 그것이 내 지론이고 깨지더라도 정치적으로는 승리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차피 저놈들이 군분데, 무기를 발포를 할 건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이쪽에서도 무장을 할 수 밖에 없다. 무장을 하기 위해서는 이제 총, 다이너마이트 이런 무기들이 필요하지 않냐. 그러니까 예비군 무기고가 어디가 있고 이, 다이너마이트는 어디에 있구나 이런 것들 좀 파악하고 도청을 어떻게 점거하기 위해서 도정 주변의 도로를 어떻게 어디 쪽으로 몰려들고 포위를 해야 하고 등등 고런 작전도 세우고 좀 그래야겠는데. 그래서 이제 지도를 구한 거예요. 지도를 구해가지고 이를테면 지원도, 지금은 소태동 쪽인데 거기 나가다보면 거가 채석장이 있었어요. 다이너마이트 창고도 있고. 현장 답사도 하고. 양림동 파출소 뒤에 있는 무기고부터. 이런 것들을 확인하고 다니면서 ...(중략).. 그래서 이러이러한 내용으로 혼자서 준비하고 다녀요. 그러다가 5월 1일 날 지금은 그 양반이 아바타 쪽...”

이것은 탈북자들의 증언과 일치한다. 전라도의 무기고 위치 파악을 총지휘하였던 북한군 안창식 대위의 내연의 처에 따르면, 이미 2월말에 무기고의 위치 파악 작업이 끝났다.

“그들이 남조선 전라도 지역에 침투하여 처음으로 착수한 일은 무장폭동을 준비하는데서 관건인 무기를 확보하기 위한 사업이었다. 북한의 계획대로라면 원래 광주폭동이 정상적으로 시작되어야하는 날짜는 1980년 3월경이었다고 한다. ...(중략)...

미리 침투해 있던 7명의 인원들과 합류한 안창식을 비롯한 11명의 인원들은 여러 개의 소조로 분산되어 전라도 현지에서 북한의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조직들이 사전에 확보해놓은 무기고들의 위치를 재확인하는 한편 새로운 무기고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3개월여 동안 전라도 전 지역에 대한 정찰을 이 잡듯이 샅샅이 진행하였다고 한다. 1980년 2월말을 넘기면서 폭동이 전개되면 임의의 시기에 무기탈취가 원만히 진행될 수 있도록 전라도 지역에 포진되어 있는 무기고들에 대한 사전 파악과 요해 사업이 성과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위의 탈북자 증언 중 밑줄에서 언급된 “전라도 현지에서 북한의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조직들”이란 윤한봉의 조직을 말하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그렇다면 윤한봉의 구술녹취록과 탈북자 증언을 합치면, 최소한 윤한봉과 북한 사이에 간접적인 커넥션이 있었다고 판단이 된다.

정리해 본다면, 5월 17일 전국비상계엄조치를 내리면서 김대중 등 정치인과 재야인사들이 연행되기 최소한 두 달 전에 윤한봉을 중심으로 한 광주운동권 조직이 주도하여 도청점령 및 무기고 습격 등의 치밀한 무장봉기 계획이 이루어졌기에 5.18이후의 사태진척은 김대중의 연행이 광주의 대중동원을 강화시킨 점은 있지만 직접적 연관성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그들의 신봉하는 이념은 민족민주주의로서 제3세계 공산주의자들이 비사회주의세력을 동원하여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할 수 있도록 제3세계에 적합한 지도노선을 모색한 것으로서 이는 자유민주주의와는 다른 형태였다는 것이다.

또 윤한봉의 녹취록과 탈북자의 증언록, 그리고 자유노트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윤한봉이 주도한 5.18무장봉기가 북한과의 어떤 식으로든지 연계가 되었을 것으로 판단이 된다. 그 이유로서 윤한봉이 미국에 망명한 이후 반한인사, 친북인사로서 친북-반정부행동을 전개한 점에 주목해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윤 씨는 반한조직인 한청연을 결성하여 청소년들에게 좌경의식화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는 한편, 임수경과 문규현의 밀입북을 배후조종한 것으로 조사결과에 나타났는데, 이런 일은 윤 씨에 대한 북한당국의 신뢰와 협조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1979년 10.26부터 80년 5.18까지 남한의 극도의 혼란상태를 바라보면서 점잖게 팔짱만 끼고 대한민국이 잘되기만을 기원하는 선량한 지도자들이었던가? 아니 오히려 정 반대였다. 5.18 당시 북한은 한반도 통일이 무르익었음을 예고하는 축제분위기였다. 북한군이 남한으로 밀고 내려가 광주의 인민봉기세력과 연합해서 남조선을 해방한다는 화제꺼리로 民-軍할 것 없이 사회전체가 흥분상태로 들떠 있었다.

5월 19일, 북한 인민군 고위사절단은 중국을 방문하여 모종의 비밀회동을 가졌다. 그리고 북한 전역에 비상사태가 선포되었으며, 군인들은 밤잠도 제대로 잘 수 없을 정도로 비상근무에 돌입했다. 5월 18일 “나는 두 개의 조선을 반대한다. 금년 내에는 반드시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루마니아 서기장에게 말했다. 김일성이 직접 5.18교시에서, “연락부에서는 이 사태가 수습되기 전에 손을 써야 합니다. 남조선의 모든 혁명 역량을 총동원하여 전 민중봉기를 일으킬 수 있도록 적극 유도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언급했다. 김일성은 5.18광주사태가 급기야 2주만에 진압되자, 땅을 치면서 안타까워했다는 후문이다.

6.25때 인민의용군으로 북으로 끌러가서 북한의 대남공작원(1967년부터 1976년)으로 10년동안 암약했지만 전향한 간첩 故(고) 김용규씨는 남한의 거의 모든 대형 사건사고에 어떤 식으로든지 북한이 개입하고 사태를 악화시켰음을 강조했다. 김용규의 『리없는 전쟁』은 북한의 대남공작 비화를 소설형식으로 소개한 것으로 충격적 내용이 많이 있다.

74년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에는 국내 간첩망이 있었고, 감옥소에 간 학생들 가족들을 포섭하기 위해 생활비를 주면서 관리대상으로 삼았으며, 70년대에 이미 100여명이 북한을 밀입국하여 주사파로서 교육을 받았다고 증언한다. 그렇다면 80년대에 대학가 총학에서 우후죽순처럼 대량생산된 主思派(주사파)는 자생조직이 아니라 자생조직처럼 보이도록 위장된 것이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그렇다면 80년대에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밀입북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1999년에 『소리 없는 전쟁』을 저술하면서 국내에 암약하는 간첩망의 위험을 알리면서 贖罪(속죄)의 길을 걸은 김용규는 70년대 대부분의 운동권 단체들이 북한 자금 지원을 받거나 북한의 지도를 받고 있었다고 기록하는바, 그 대표적인 단체가 인혁당이었다. 윤한봉도 여정남의 인혁당 동지들을 북한이 대남방송으로 배후조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녹취록에서 증언한 바 있다:

“뒤에서 이 그룹에 여정남씨가 연결이 된 거지. 조직으로 조직원으로 가입을 한 것이 아니라, 그쪽에서는 인자 아끼는 후배가 된 거지, 쓸만한 후배. 그란디 요 사람들이 결정적으로 인혁당 재건사건에서 곤란했던 게 이 분들 중에서 한 분이 대남방송을 라디오 단파 듣고 노트에 메모하고 그놈을 돌려 본 것이 나왔어. 고것이 인제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된 거지. 어쨌든 간에 여정남 선배가 인자 학생운동 쪽 후배들이 이철, 유인택 요쪽 그룹들하고 또 관계를 가졌거든.”

김상윤과 더불어 윤한봉을 포섭한 조직은 인혁당 재건위인데 1973년 11~12월에 진행되었으며, 인혁당 재건위의 여정남과 광주운동권 사이에 이철이 중개인으로 끼어 있었다. 『正史5・18』에서는 민청학련 조직책 이철이 윤한봉과 김상윤을 포섭하는 과정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용규의 『소리없는 전쟁』에 의하면, 민청학련 사건으로 처음 두 명이 구속되었을 때 간첩단이 가족들에게 1인당 5만원씩 위로금을 전달해 주면서 포섭대상으로 삼았다. 후일을 위한 투자였고 그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VI

북한군 개입의 증언이 터져 나올 때 마다, 가장 앞장서서 전국을 순회하면서 맹렬하게 부인하는 인물이 조갑제 닷컴의 조갑제 대표다. 정승화 장군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전두환 군부세력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지녔던 그는 5.18에서 북한군 개입주장을 지지, 동조하는 우익인사들을 <조갑제의 광주사태>(2013)라는 자신이 쓴 책에서 ‘狂信者’라고 언급하고 있다. 필자가 이 책을 읽어보고 난 느낌은 “자신의 책(조갑제의 광주사태)을 읽어보고 더 이상 5.18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말라”는 知的(지적) 傲慢(오만)의 뉴앙스가 강하게 풍겼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 책에는 최근에 발간된 참고자료와 인용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95-97년도 김영삼 정부 시절의 5.18에 대한 인식에서 視野(시야)가 정지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책을 보면, 반 이상이 자신이 쓴 글이 아니다. 분량의 절반이 육군본부의 시민과 군인들의 수기들, 그리고 95년도 서울지방검찰청 수사기록 등을 편집한 것이다. 주장의 핵심은 공수부대의 투입판단이 잘못이었고, 전남대학생들의 과격시위로 공수부대원들이 돌에 맞아서 부상을 당하자, 화가 난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과잉진압이 사태를 악화시켰고, 이에 분개한 광주시민들이 가세하여 판이 커졌다.

시민들이 총 등의 무기를 든 것은 시민저항권 차원에서 정당했고, 공수부대도 총을 쏘았는데 정당방위 차원에서였다. 아이들 싸움이 어른들 패싸움으로 변질되어 악화되었다는 兩非論(양비론) 논리이다. 그의 논리에는 5.18의 거대한 배후 정치세력인 전두환 신군부세력과 김대중과 재야세력의 움직임이 빠져있는 것이다. 더구나 북한의 대남공작에 대해서는 전혀 분석이 없다.

조갑제 대표는 광주사태를 반공민주화운동이었다고 주장하는데,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유일한 구호는 "김일성은 오판 말라"는 구호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윤한봉은 자신의 구술녹취록에서 "김일성은 오판 말라"는 자기가 만들어낸 위장구호였다는 사실을 이렇게 증언한다.

“왜그냐면 인제 내가 쩐남대 선언문을 썼는데 거기에 어떤 대목이 나오냐면은 그때만 해도 인제 가능하면 들어가서 빨갱으로 안 몰리기 위해서 일부로 북을 좀 까는 내용들이 한줄씩 들어가고 그랬다고, 518직전에도 뭐 이 전남대 시위 때도, 북괴는 오판말라 이런 피켓도 들고 그랬는데, 근데 그게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북괴의 어쩌고 저쩌고 이런 대목들이 들어간다고.”

또 조갑제 대표는 전국에 계엄령을 내렸고 국군이 철통같이 광주일대를 에워싸고 있는데, “어느 누가 감히 침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점을 지적했다. 해안선도 모래가 있어서 발자국이 생기기에 침투가 어렵다는 논리다. 광주사태가 거의 종결될 무렵 광주를 방문하여 참혹한 시체를 보고 사태수습을 직접 목격한 기자로서의 용기는 칭찬 받아 마땅하다. 유병현 합참의장의 회고록과 그의 인터뷰에서도 “계엄군의 경비가 빈틈이 없었다”고 하여 조 대표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바다와 육지를 24시간 빈틈없이 밤낮으로 지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작년 철통같은 경비태세였던 휴전선 지역에서 어떻게 ‘노크 귀순’이 이루어졌으며, 광주사태 당시 광주무등산 계곡의 증심사에서 승려로 위장한 손성모의 정체와 활약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 황장엽씨를 “조선조 선비적인 인상과 자세를 갖춘” 인물로서 至誠(지성)의 知性(지성)으로 칭송하여 황 씨의 주체사상에 면죄부를 주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고, 김현희 등 수많은 탈북자의 소중한 증언을 깨알처럼 취재, 메모하여 자신의 현대사강좌와 칼럼에 최대한으로 활용한 조갑제 대기자!!! 그 분이 어떻게 황 씨와 탈북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자신의 목숨을 걸고 ‘북한군 개입’을 증언한 내용에서는 펜대를 꺾고 “그럴 리가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편향적’ 모습을 보일 수가 있는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상상을 초월하는 북한의 대남공작과 은밀하게 펼쳐진 특수전의 능력을 알게 된다면, 쉽게 “아니다”고 말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닐 것이다.

이제 국가기관도 5.18관련 정보수집에 협조해야 할 것이다. 국정원은 황장엽과 탈북자 인터뷰 파일을 보관하고 있을 것이다. 우선 국정원에 ‘국민정보공개법’을 통해서 자료요청을 문의해 보면, 98년 황장엽씨와-김덕홍씨의 인터뷰 내용과 김명국(가명)이 5.18관련된 증언한 파일(2006.7)을 확인, 열람할 수 있을 것이다. NLL관련으로 인해 노-김 남북정상회담 파일도 내용이 공개되었다. 국정원은 5.18광주사태가 북의 대남공작과 國基(국기)에 관련된 중대 문제와 연관되어 있기에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공개해야할 것이다.

 

VII

우선 시급한 일은 첫째로, 66구 행불자의 신원을 재확인하여 탈북자들의 증언에서 희생당한 경우와 일치하는 지를 조사하고 암매장 장소여부를 수색·확인해야하고, 둘째로 북한군 특수부대 침투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 추진되어야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2만명에 이르는 탈북자에 대한 증언녹취를 다시 실시해야할 것이다. 셋째로, 국무총리 산하 ‘5.18광주진상재조사위원회’ 설치가 시급하다. 과거사위원회를 위시하여 수많은 위원회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쳐서 만들어졌지만 유독 ‘5.18진상재조사위원회’만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100년에 이미 공동묘지에 묻혀 백골이 된 친일파도 시민단체에서 ‘백년전쟁’을 선포하여 친일파인명사전을 만들면서 이를 잡듯이 잡아내는 판국인데도, 불과 34년전의 5.18사건을 왜 다시 조사하지 않는가?

이것은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이기에 5.18광주에서 희생된 분들의 명예를 훼손시키려는 의도가 전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싶다. 오히려 그분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진정한 화해나 용서는 진실위에 기초해야하거늘, 거짓과 위선위에 명예를 회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라, 군의 일선에서 명령만으로 목숨을 바쳤던 젊은 무명용사들의 명예도 회복시켜야하고 그들의 명복도 이제는 함께 빌어야할 것이다.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었나? 왜 그들은 죄인처럼 살아야하나? 상부의 진압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특히 정치권은 5.18광주사태의 영역이 법의 영역에서 학문의 영역으로 이관되었음을 똑바로 인식하고 정치적 중립성을 견지해야할 것이며, 만에 하나 지역정서를 선전선동하면서 특정 시민단체들을 政爭의 와중으로 끌어드리는 어리석음을 피해야 할 것임을 준엄하게 경고하는 바이다. 설상가상으로 국정원이나 국방부이 특정지역이나 특정시민단체의 손을 들면서 편파적으로 가세한다면, 이것은 바로 박근혜정부가 약속한 국민통합의 취지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며, 또한 5.18에 대한 역사적 진실규명 노력에 자물쇠를 채우는 어리석은 행위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5.18연구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과 학문연구를 사회가 보장해 주도록 해야 한다.

법원의 판결이 어떤 식으로 나왔던지 간에, 5.18에 대한 역사연구는 현재 마침표를 찍지 않은 진행형이다. 그 이유는 북한의 국가문헌기록보존소, 중앙당역사연구소 그리고 조선혁명박물관에서 전시된 자료가 공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자유민주적 통일이 오는 날, 5.18의 역사적 진실은 비로소 햇볕을 보게 된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기다려야 하는가?

어쨌든 이제 5.18광주에 대한 연구는 법의 영역에서 벗어나서, 역사의 영역으로 옮겨진 것이다. 여기서 역사의 영역이란 온 국민들이 지식을 공유하고 자유롭게 토론할 권리가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것이다.

  5.18의 진실규명에 대한 노력의 역사적 의미는 단순히 언론의 표현의 자유나 학문연구와 사상의 자유, 그리고 지역갈등의 해소와 국민통합의 차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좌경화 현상을 제어하면서 48년 건국이후부터 북한공산세력과 피를 흘려서 싸워 쟁취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여 동시에 자유민주적 통일을 달성할 토대를 튼튼히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바로미터라고 말 할 수 있다. 과연 ‘聖域化勢力’의 민주화운동이라는 거대한 5.18聖域을 깨고, 21세기에 새롭게 개막되는 ‘大衆獨裁의 길’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2014.4.10.  이주천
                원광대학교 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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