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으로 지켜온 5.18성역(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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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4-07-03 15:13 조회6,55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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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으로 지켜온 5.18성역(1)
2013년 5월 15일, 채널A가 잠자는 국민을 벌떡 일으켜 세우는 매우 충격적인 보도를 했다. 실제 북한특수군으로 광주에 참전했던 가명 김명국이 채널A에 나와 “내가 북한특수군으로 5.18광주 작전에 문제심 대장을 호위하고 왔던 사람이다. 문제심은 2006 내가 탈북할 당시 남한으로 말하지면 국방차관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증언했다. 이러한 내용은 2006년 그가 탈북했을 때 합동심리반에 진술했던 내용 그대로라 했다. 5.18광주특위와 광주검찰은 이 탈북자를 조사하라 서울검찰에 요구했지만 서울검찰은 출두 한번 시키지 않고 종결처리했다.
이로써 5.18작전에 북한특수군이 참전한 것은 이 증인에 의해 사실로 드러나게 되었다. 이뿐이 아니었다. 1997년 황장엽과 김덕홍이 당시 월간조선 기자 김용삼에 증언했던 사실들이 새롭게 방송되었다. “5.18은 북한이 주도하여 일으킨 후 남한에 덮어씌운 것이고, 사건이 끝난 다음 대남공작 부서인 통전부 친구들이 무더기로 훈장 받고 술 파티까지 했다.”
이후 종편방송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5.18의 진실 규명을 위해 5.18전문가들과 탈북자들을 방송에 초청했다. 방송 인기가 충천했다. 바로 이때 박근혜가 5.18조명 열기에 찬물을 부었다. 2013년 5월 18일, 박근혜가 광주로 날아가 5.18행사에 참석했다. 적색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때 태극기로 박자를 맞추며 호응했다. '5.18은 민주화 운동이니 딴 소리 말라'는 무언의 탄압이었다.
그가 5.18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2012년 7월 26일, 광주의 5.18묘지를 혼자 찾아간 사실에 잘 나타나 있다. 새누리당 비대위 위원장 시절, 박근혜는 “조용히” 이학재 비서실장 한 사람만 대동하고 5.18묘지를 찾아 비석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합동연설을 통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인간 박근혜로 돌아와 ‘광주의 마음’과 진심으로 마주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공식행사에 참석한 것과 혼자 조용히 찾아가, 개인적 애정과 개인적 추모의 마음을 바친 것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5.18에 대한 박근혜의 특별한 애정 표시에 고무된 광주 사람들, 2013년 6월 10일, 서울로 대거 몰려와 전두환의 집과 종편 방송국들에 들이닥쳐 폭력을 행사했다. 5.18의 명예를 훼손하는 방송들을 처벌하고, 전두환의 재산을 몰수하라며 폭력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이들이 이날 주장했던 모든 것들은 그 후 100% 이행됐다. 방송통신심의위는 만장일치로 두 종편방송 진행자들에게 강제로 사과방송을 하게 했고, 감봉이라는 중징계조치를 내렸으며, 검찰은 그들이 찾아낼 수 있는 모든 전두환 재산을 다 몰수했다. 광주인들이 요구하는 것들은 매우 어려운 것들이었음에도 박근혜 정부는 이 모두를 다 들어주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방통심의위의 조치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허무는 반-헌법적 폭력이었다는 사실이다.
5.18세력은 예나 지금이나 폭력을 유전자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보인다. 1980년 5.18폭동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난도의 폭력을 행사했고, 5.18의 성역을 지키는 오랜 과정에도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종류의 폭력을 다양하게 행사하였다. 광주 MBC가 공개한 5.18세력의 폭동 장면을 여기에 소개한다.
광주 MBC 촬영 뉴스
http://youtu.be/zvr6D8Go7HY
2014.7.3.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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