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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역사의 증언자 정상용, 허규정, 박남선(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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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4-08-06 21:30 조회6,6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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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역사의 증언자 정상용, 허규정, 박남선(끝)



광주민주화운동 자료총서 17권 65쪽에는 5.18 주역이자 평민당국회의원이었던 정상용(당시 30. 사원, 무기형)의 회고가 들어 있다.


“5.18의 기동타격대 구성원은 그 80%가 17살에서 22살 사이의 청년이었고, 대부분이 학생이 아닌 도시근로자, 노동자, 점원, 실직자, 구두닦이, 품팔이, 식당 종업원 등 소외받고 억눌려왔던 기층민중이며 이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싸웠다. 지금까지는 광주민중항쟁이라는 말을 썼지만 나는 5월혁명이라고 부르고 싶다”


군은 광주사태 관련자 2,518명을 조사한 결과 1,957명은 훈방조치하고 561명이 검찰로 송치되었다. 제1심 피고인 수는 모두 357명, 이중 252명만이 집행유예 이상의 형을 받았다. 그런데 이 357명을 연령별로 보면 10대가 71명으로 20%, 20대가 216명으로 61%를 차지했다. 10-20대가 81%를 차지한 것이다. 나머지는 30대 36명, 40대 23명, 50대 6명, 60대 5명으로 집계된다.


이들 357명중 학생은 80명으로 23%에 해당했다. 학생 80명을 뜯어보면 10대 고교생이 16명, 20대 대학생이 60명, 30대 복학생이 4명이었다. 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들의 직업을 보면 참으로 다양하다. 이들의 직업은 주로 하층 계의 직업들로 무려 59종에 이르며 직업별 구체적인 숫자는 아래와 같다,  


학생80 농업30 무직27 운전수24 종업원21 노동13 방위병13 교수11 목공11 상업9 공업7 회사원6 양화공5 용접공5 행상4 미장공4 광부4 목수4 선원4 교사3 변호사3 재수생3 보일러공3 교직원3 인쇄업3 조수3 운수업2 샤시공2 제과공2 석공2 신부2 자개공2 가구공2 회사이사2 재봉사2 정비공2 실내장식1 약사1 개찰원1 다방1 전기공1 변호사사무장1 서적판매원1 세공1 도자기공1 의사1 이발사1 양복점1 엿장수1 건재상1 신문보급소1 당원1 청과물상1 불럭공1 매점1 대학이사1 회장1 화가1 가톨릭회장1(서경원)


1심재판늘 받은 357명의 90% 정도가 10대와 20대 그리고 하층계급(민주화 측 용어로는 기층세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멋모르는 아이들과 소외받고 천대받던 최하층 사람들, 언제나 한번 세상 뒤집혀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런 계급들이었다.


제1심에서 사형을 받은 사람은 정동년(37, 복학생), 배용수(34,운전수), 박노정(28,인쇄업), 박남선(26, 트럭운전수 운수업), 김종배(26,학생)이고, 무기징역을 받은 사람은 윤석루(20,구두공) 허규정(27,학생) 정상용(30,회사원) 하영열(31,공원) 윤재근(28,공원) 서만석(36,상업) 홍남순(67,변호사)였다. 제2심에서는 박남선과 김종배가 무기로 감형됐다.


이하 “5.18항쟁 증언 자료집 I"에 실린 정상용의 증언을 소개한다.


                                                정상용의 증언


당시 30세로 회사원이었고,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받았다. ‘항쟁지도부’의 부위원장 겸 외무위원장이었다. 나와 김종배 허규정은 수습대책위원이었고, 나중에 YWCA로부터 영입된 윤상원 등과 합쳐 ‘항쟁지도부’를 출범시켰다. 김종배가 김창길이 이끌었던 수습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었기 때문에, 그가 위원장을 하고 나는 대외관계를 맡는 외무를 맡고 허규정이 내무를 맡았다.


‘항쟁지도부’라는 것은 낯모르는 사람들 끌어 모아 임시방편으로 만든 임시조직이었다. 윤상원, 나, 이강현, 윤강옥 이렇게 넷이서 주로 대책을 의논했다. 25일 이후에 도청에 모인 사람들은 겨우 70-80명 수준이었다. 그나마 얼굴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온건파인 김창길 등을 몰아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박남선이었다. 그가 권총을 소며 무섭게 해서 몰아냈다.


19일에 나는 녹두서점에 있었다. 거기서 윤상원을 만나 대책을 의논하다가 21일 총격전이 벌어지자 흩어졌다. 녹두서점에 있었던 사람들이 ‘각자 처신하자’며 다 해산해 뿔뿔이 헤어졌다. 22일 다시 녹두서점에 모였다. 그리고 녹두서점이 비좁아 본부를 YWCA로 옮겼다. 김종배(총사령관역역)와 허규정(내무위원장)은 여기에서 처음 만났다. 이 두 사람은 조선대 학생이었고, 운동권이 아니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거기에서 생전 처음 만난 거다. 윤상원의 투쟁 감각이 나보다 앞서 있었다. 김종배를 찾아낸 것도 윤상원이었다. 27일, 윤상원 등 여러 명이 도청건물 회의실에 있었다. 회의실에 있었던 사람들이 거의 다 죽었다. 전망이 좋은 2층 복도에 있던 사람들은 별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제압당했다. 계엄군이 의표를 찔러 후방으로부터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허규정의 증언


나는 5월 26일 출범한 투쟁위원회의 내무위원장을 맡았다. 우연히 지나다가 공수부대 요원들이 젊은 학생들을 따라다니며 때리는 것을 보고 분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가 나도 공수부대에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됐다. 운동권에 속했던 것도 아니고 순전히 개인지격으로 휩쓸렸다. 시민들 하고 이리저리 밀려다니기만 했다. 그 시위는 누가 주도하는 사람도 없고 리더도 없었다. 경찰도 공수부대를 욕하고 우리더러는 들어가라며 보호해주려 했다.


21일 누군가가 도청을 탈환했다. 이걸 장악한 사람들이 있을 거 아닌가? 도청을 장악한 사람들은 따로 있고, 우리는 사태를 수습하려고 도청으로 간 거다. 장악한 사람들이은 위엄 있는 높은 관료 정도로 보이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우리에게 ‘곧 계엄군이 들어올 것이니 학생들은 나가라’고 말했다.


종교계 지도자, 재야인사만 들어가고 학생들은 들어오지 말고 나가라 했다. 계엄군이 곧 들어온다 하니까 누구든 책임감 없이 나와 버렸다. 종교지도자들도 나갔고, 일반 시민들도 다 나갔다. 도망 나온 거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멀리 안 가고, 근처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그런데 일부 시민들이 도청에 들어갔다는 말이 들렸다. 나도 다시 도청에 갔다. 갔더니 시국수습대책위원회가 구성돼 있었다. 높아 보이는 사람들은 안 보였다.


어른들은 시국수습대책위원회, 젊은 사람들은 학생수습위원회, 어른 청년이 각각 위원회 만들어 가지고 서로 말이 다르고 통제가 안 되었다. 조직이 움직이지 않고 엉망이었다. 그런데 윤석루가 나이도 굉장히 어린데 기백이 있어서 기동타격대를 장악했다. 윤석루는 학생도 아니었다. 특별한 방법은 안 나오고 맨날 회의만 했다. 운동권 간부들은 모두 다 예비검속으로 미리 잡혀 가버렸고,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개념 없는 사람들뿐이었다. 


23일의 이런 모습을 본 위엄 있는 ‘국장급 공무원들’이 24일부터는 보이지 않았다. 남는 사람들은 오직 종교지도자들, 교수들 그리고 젊은 사람들뿐이었다. 이들은 모두 사태를 여기서 끝내고 시국을 수습하지고 했다. 나도 멋모르고 참여해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내무위원장이 된 거다.


                                                박남선의 증언


박남선의 프로필: 당시 26세의 골재채취화물차 운전기사, 5.16부타 출범한 ‘항쟁위원회’의 상황실장. 영화 화려한휴가의 박남선 역. 당시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나의 집이 31사단 앞이었다. 5월 18일, 전대 앞 데모를 봤다. 근무하는데 둘째 동생한테서 또 다른 동생이 계엄군에 맞았다는 전화가 왔다. 전대 병원에 가니 동생이 다리가 부러져 있었다. 친구들과 조를 짜서 낙오한 계엄군을 돌과 각목으로 패기 시작했다. 차에다 몽둥이를 실었다. 당시는 아스팔트 위에 돌멩이 보다 총이 더 나뒹굴었다. 내 통제 하에 있는 사람들이 가진 총 말고는 다 회수하도록 지시했다.


시민군은 모두 불루칼러들이었다, 식당종업원, 구두닦이 등 가장 밑바닥에서 사는 사람들이 가장 앞장섰다. 운동권들은 다 광주에서 도망갔다. 지식인들은 수습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얼굴 세울 궁리만 했다. 전남대? 5월 17일, 운동권 인물들 다 잡혀 갔다. 항쟁에 참여한 사람 거의 없다. 고등학생들, 총 들고 싸우겠다고 했는데 내가 26일 밤, 다 돌려보냈다.


무기를 탈취한 사람들은 광주가 통제해서 보낸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간 사람들이다.


                  

                                            종합 의견


1. 무기탈취를 주도한 사람들은 광주사람들이 아니었다.


2. 5월 21일 오후까지 비무장으로 전남 각 곳에서 계엄군과 싸워 계엄군을 교외로 몰아낸 사람들은 광주사람들이 아니었다.


3. 5월 18일부터 21일까지의 살벌한 전투를 지휘한 사람은 광주에 없다. 


4. 전남도청을 점령한 사람들은 5월 24일 도청을 떠났다. 구후의 도청은 어린학생들, 어린 청년, 양아치 등 불과 얼마 안 되는 YWCA 사람들과 밥을 해주는 여성들의 집합소였고, 이 지역은 운동권도 아니고 대학생들도 아닌 강경한 성격의 뜨내기들이 25일 야밤부터 장악했다. 그리고 어린 뜨내기들이 감히 계엄군에 엄포를 놓다가 애꿎은 17명의 민간인 인명을 절단냈다.


5. 광주와 기타 전남 지역을 이으려는 수많은 총격전, 교도소를 탈취하기 위한 6회의 총격전은 26일 새벽부터 가동한 ‘항쟁지도부’의 뜨내기 들이 지휘한 작전이 아니었다. 주력부대는 따로 있고, 뜨내기 아이들이 항쟁지도부를 사칭했다. 그리고 이들 뜨내기들은 진짜 주력부대가 어떤 부대인지 알지 못했다.  


6. 당시 국가는 5.18의 주범을 잡지 못했다. 당시 법원이 사형 및 무기 징역 등으로 처벌한 사람들은, ‘주로 5월 26일 새벽부터 도청을 점령하고 ‘항쟁지도부’라는 당치도 않은 이름으로 단지 강경발언들을 내 뱉은 이름 없고 주소 없는 꼬마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계엄군의 광주시 재진입작전을 강요한 중범죄들임에는 틀림 없다.


7. 1997년의 재판은 붉은 재판부에 의해 기획-연출된 이념적인 사기극이었고, 1981년의 재판은 ‘진짜 범인’인 북한특수군을 찾아내지 못하고, 엉뚱하게도 5월 26일 새벽부터 멋모르고 날뛴 조무래기들만 붙잡아 중죄를 준 불완전한 재판이었다고 생각한다.


8. 단지 ‘김대중의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재판은 이와는 별도의 재판으로 정당한 재판이라고 생각한다.


9. 5.18은 북한 특수군이 김대중과 야합하여 일으킨 적화통일 내란이라는 데 대해, 나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10. 앞에서의 모든 증언들이 북한특수군의 개입을 암시하고 있지 않던가? 1980년 당시의 상황일지에는 분명히 북한군만이 할 수 있는 업적들이 기록돼 있었다. 그런데 당시 보안사와 중앙정보부를 다 관장하고 있었던 전두환 또는 그의 부하들은 이런 정보분석을 외면했다. 그리고 북한특수군 대신 어린 사람들을 5.18의 주동자들로 몰았다. 광주작전의 꽃은 5월 19일부터 21일까지였다. 그런데 당시 재판부가 지목한 중범인들은 겨우 5월 25일 밤에 도청을 차지한 후, 계엄군과의 일전을 호언했던 어설픈 돈키호테들이었다. 


5.18! 참으로 연구할 것이 많은 곳이다.



2014.8.6.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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