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재의 증언과 광주고법 판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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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5-11-09 13:32 조회4,28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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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의 증언과 광주고법 판결 사이
김경재는 순천 사람이다. 김대중 시절 평민당 국회의원이었고, 미국에서부터 김대중의 심복이 되어 1999. 12월 6일부터 14일까지 8박9일 동안 보좌관 1명과 목사 1명을 대동하고 북한을 방문했다고 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물밑 접촉을 위해 김대중의 비밀 밀사로 갔다고 한다. 북한에 가서 5.18에 대해 확인했다는 사실을 2023.5.10. 대한언론 Knews에 공개했다. 공개한 내용 중 일부를 그대로 발췌하여 이기한다.
김경재의 증언(2023.10.14.)
북한의 애국열사릉에 ‘광주5‧18 가담 北특수공작원묘역’이 조성돼 있으며, 北에서 ‘‘광주인민봉기’에 참가했다가 전사했다”고 주장하는 ‘애국열사들’의 묘(묘비)가 목격됐다고 김경재 전 한국자유총연맹 총재가 10일 밝혔다. 김 전 총재는 ‘광주5‧18’에 가담한 북한 요원은 북측에서 보면 ‘애국열사’이지만 우리 측에서 보면 ‘특수공작원’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애국열사릉에 ‘광주5.18“가담 북한 특수공작원들의 묘비가 목격됐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가히 충격적이다.
김 전 총재는 새정치국민회의 소속 국회의원 시절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밀사’자격으로 1999년 12월 6일부터 14일까지 8박 9일간 베이징(北京)을 거쳐 북한을 방문할 때 자신을 안내한 조선노동당 간부들의 끈질긴 요청으로 평양시 형제산 구역 신미동에 위치한 애국열사릉을 방문, 이들로부터 ‘5‧18가담 北특수군묘역’이 가묘로 조성돼 있다는 설명과 함께 10개 내외(9-11개)의 묘비가 있음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광주 5‧18의 민감성 때문에 가만히 지내다 24년 만에 목격 사실을 처음으로 밝힌다”고 했다.
김 전 총재는 당시 방북에는 보좌관과 목사 등 2명이 동행했다며 이들도 北이 말하는 5‧18가담 북한군 무덤을 함께 목격했으며 모역은 애국열사릉 정문 입구에서 볼 때 왼쪽 코너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전 총재는 김경락의 지시에 따라 자신을 금수산기념궁전과 애국열사릉으로 안내한 사람은 2명으로 한 명은 조선인민군 축구단 풀백 출신의 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인 김학철과 또다른 한 명은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노동당 부장급의 또 다른 김씨였다고 했다. 두 사람은 모두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의 엘리트였으며 특히 이름을 밝히지 않은 김씨는 보천보악단 소속 미인 무용수를 부인으로 두고 있었다고 김 전 총재는 전했다.
김 전 총재는 이들에게 묘의 진위여부를 재차 물었을 때 한결같이 “광주 5‧18때 참전한 인민군 용사들이 맞습니다. 우리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의장님은 남조선 최고 명문 서울대를 졸업했고 우리도 공화국 최고의 김일성종합대학 나온 사람입니다. 의장님도 진솔하겠지만 우리도 진실한 사람입니다. 없는 걸 어찌 가짜로 만들겠습니까”며 오히려 화를 내는 듯 하길래 더 이상 심각하게 따지거나 얘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 전 총재는 충격적이고 소름까지 돋아 사진 한 장 찍지 못하고 허겁지겁 묘역을 빠져나왔다고 했다.
김 전 총재는 그러나 지금도 북한이 5‧18때 특수군을 보냈을까 의심하고 있다며 아마 당시 광주-전남 일원에서 활동했던 고첩들 같은 외부 불순세력이 가담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출처 CJ https://www.knews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99
광주고법 2025.10.31.자 판결문
<지만원이 조사한 상황일지 요약>
300명의 시위대가 20사단 차량부대의 이동계획을 입수하고, 하루 전에 ’군분교‘라는 매복지점에 중장비들을 동원하여 가두리장을 설치한 다음 5.21. 08시에 계획대로 광주톨게이트를 통과하는 20사단차량부대를 습격하여 사단장 지프차를 포함한 14대의 지프차를 빼앗아 인근에 있는 군용차량 제조사인 아시아자동차공장으로 향했고, 09시에는 또 다른 300명이 5대의 버스를 타고 아시아자동차공장에 접근하여, 총 600명이 공장을 점령한 후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400대를 탈취하자마자 곧바로 전남 17개 군에 위장돼있는 44개 무기고를 불과 4시간 만에 털어 5,403정의 총기와 8톤 분량의 TNT를 탈취해가지고 전남도청에 2,100발의 폭탄을 조립해놓고, 그날밤부터 광주교도소를 다섯 차례나 야간공격했다”
권영해 전 안기부장의 증언
2024.6-7월, 권영해 전 안기부장-최명재 안기부1차장-대북공작원으로 구성된 3인의 안기부 팀이 일간지 스카이데일리에 2회에 걸쳐 증언한 내용이 있다. .
“5.18은 북한이 통일차원에서 주도한 군사작전이었고, 그 과정에서 북한특수군 490명이 광주에서 사살됐다. 490명에 대한 명단이, 생년월인, 출생지, 소속부대, 계급, 사망일(1980.9.16.) 항목으로 작성돼 있고, 시중에 명단이 발행돼 유통되고 있다”
5.18시 계엄군이 사용한 실탄 소모량; 484,484발(경향신분 2017.8.29.)
계엄군에게 실탄이 지급된 시점은 5월 21일 오후 5시이고, 사용된 48만 여발의 실탄은 광주교도소를 5회 야간 공격하는 데 대부분 사용됐을 것이다. 시체는 기도비긳을 위해 야간에 치워졌을 것이고, 권연해 부장이 증언하는 490구의 시체 중 430명이 청주에서 1m 깊이에 일련번호를 달고 똑 같은 구격의 나무판에 하얀 비닐로 둘둘 말려 있는 상태로 2014.5.13.에 발견된 그 시체들이라는 것이 지만원 저 도서들에 추적돼 있다.
광주고법 판결 내용의 의미
이 사건은 5.18 저서 [5.18작전 북한이 수행한 결정적 증거 42개]에 대한 재판사건이다. 광주 고등법원은 출처가 명기돼 있는 42개 사실증거 모두를 묵살했다. 그리고 2024.6-7월 스카이데일리에 권영해 전 안기부장과 1차장 등이 공동으로 증언한 내용도, 황장엽의 증언 내용도 모두 무시했다. 극렬분자들이 550명이고 이들이 인민재판을 열어 즉결처분까지 단행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CIA보고서도 묵살했다. 이에 피고가 최후 발악하듯이 “왜 광주법원은 대법원 판례도 무시하고, 피고의 주장을 판결서 [피고의 주장] 난에 기록하지 않고 야비하게 판결을 회피하느냐, 광주법원 참으로 간교하고 야비하다”는 원섹적 언어로 날선 공격을 연속했다. 그래서인지 딱 한 개 증언, 순천 사람이자 김대중 심복인 김경재의 증언 하나만 인용하여 [5.18에 소수의 공작원이나 고첩은 개입했다고 볼 수 있다]는 판결을 했다. 이는 광주와 빨갱이 세력이 그동안 철통같이 단단히 지켜온 5.18성역의 문을 열어준 엄청난 [돌파구]다. 일단 돌파구가 뚫라면 확대되는 것은 시간 분제다.
[소수의 북한 공작원 또는 고첩이 광주에서 활동하였다고 볼 수는 있다]는 광주고법 판결은 곧 [수백 명 공작원을 의미]
① 광주고법의 판결로 인해 이제 [북한군 개입] 표현은 사실 표현이 됐다. 그 반대로 [북한군 불개입] 표현이 허위사실 적시가 된 것이다. 5.18특별법 제8조1항에 의해 처벌되는 표현은 이제 [북한군 불개입] 표현이다.
② 일단 [북한군 개입]이 사실로 인정됐다면 그 수에 대한 판단은 판단자의 자유공간이다. 판사가 수를 판단하는 것과 군사전문가가 수를 판단하는 것은 당연히 다르다. 숫자에 대한 학자 및 군사평론가의 판단이 판사의 판단과 다르다 해서 위법하다는 것은 코미디다.
숫자를 판단하는 근거는 김경재가, 노동당 간부의 강요에 의해 보기 싫은 것을 억질 본 관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광주현장 사진에 있다. 광주고법이 일단 광주에 투입된 공작원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이상 광주현장 사진에서 광주인이라고 볼 수 없는 행위를 한 괴한들의 어깨들만 세어봐도 수백 명이다.
한마디로 북한군이 광주에 와서 활동했다는 것까지는 수긍이 가지만 그 숫자는 소수이지, 600명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숫자에 대해서만 [학설]과 [법설]이 다른 것이다. 학자의 판단이 [학설]이라면 광주고법의 판단은 [법설]이라 할 수 있다. 학자의 [학설]은 600명, 법관의 [법설]은 소수라 한다. 북한군 숫자 600명이 김경재의 숫자와 다르기 때문에 학자는 광주에 9천만 원의 위자료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 광주고법의 판단이다. 이제까지 채권자는 [북한군 개입] 표현이 광주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해왔고, 그간의 모든 광주법원의 판결은 [북한군 개입] 표현 자체만으로 5.18의 명예를 훼손시켰다고 판결해왔다.아래에 [학설]과 [법설]이 어떻게 다른지를 대조시키고자 한다.
<법설>
“소규모의 공작원 또는 고정간첩이 활동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는 있으나 피고가 주장하는 규모의 북한특수군 부대가 개입했다고 인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학설>
”소수의공작원 또는 고첩이 시위에 개입했을 수는 있다”는 말은 곧 북 특수군 수백 명이 왔을 수 있다는 판단과 동일하다“
<논리 전개>
[법설]은 소수의 북 공작원이 파견됐다고 볼 수는 있는데, 지만원이 주장하는 600명도 인정하기 어렵고, 권영해가 증언한 북 특수군 전사자 490명도 믿기 어렵다고 하였다. 황장엽의 증언은 북한이 5.18을 저질러놓고 그 책임을 남한에 전가시켰고, 5.18의 성공을 축하하는 총화를 열어 대남사업부 많은 간부들이 훈장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광주고법은 황장엽의 이 주장도 소수를 의미한다고 해석하였다. 과연 소수인지 아래에서 확인해 보자.
[뉴스와논단]는 극렬분자들이 도청을 장악하고 인민재판을 열어 즉결처분을 감행했다는 미CIA 보고서와 머스키 미 국무장관의 발언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 내용은 이사건 도서 168-172쪽 내용과 동등하다. 이 기사에는 미CIA보고서 내용의 진위를 추적하기 위해 4매의 사진이 소개돼 있습. 그 사진 <1>~<4>를 그대로 여기에 옮긴다.
사진<1> 내지 <4>에는 총을 소지한 어깨들이 군중이 보는 앞에서 광주사람들을 전남도청으로 끌고 가는 장면들이 있다. 기사는 끌려간 이들이 모두 사망하였다는 사실을 추적-확인하였다. 사진<1>은 해남군 군민 김인태가 도청 밖의 군중에 섞여 있다가 프락치로 의심받아 도청 정문을 향해 끌려가는 장면이고 <2>번 사진은 김인태가 도청 정문 안으로 이미 들어와 인민재판장으로 끌려가는 장면이다. 도청 밖의 어깨들과 도청 안의 어깨가 일부 중복은 되지만 사진 <1> <2>에 나타난 어깨들의 수는 모두 14명 정도로 보인다. 또한 사진 <3> <4>에서 광주시민을 끌고 가는 체포-연행조는 13명 정도로 보인다. 여기에 체포-연행되어 가는 광주시민이 한 사람 더 보태진다. 아래 사진<5>에서 끌려가는 사람은 당시 30세의 학원 강사 김중식이며 이 사람 역시 사망했다. 체포조는 7명으로 보이며 맨 좌측 사람은 도청 정문을 지키고 있는 요원으로 보인다.
이 체포조 34명은 최소한 광주사람일 수 없다. 광주사람들이 광주청년들을 도청으로 연행해가서 즉결처분을 하였겠는가? [학자]는 이 34명이 살인기계로 훈련되었다는 북 특수군으로 본다. 광주사람이 수많은 군중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감히 광주사람들을 연행하여 즉결처분을 했을까? 그리고 이 34명이 북 특수군의 전부일까? 김경재는 북한에 10개 내외의 [광주] 묘비를 보았다고 했다. 그러면 광주에 왔다가 살아 돌아간 공작원은 없을까? 상식적으로 보면 광주에 왔다가 죽은 사람이 10명이면 살아돌아간 사람들이 그 이상이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대령출신 학자는 생각한다. 4명의 광주 희생자들을 도청으로 끌고 가는 괴한 수가 34명이었다면, 도청을 지키는 사령부 경비부대원들이 따로 있었을 것이고, 도청 안에서 심문을 진행하는 전문 인력이 있었을 것이다. 적지의 후방 깊숙한 땅에 와서 감히 도청을 점령하려면 그 인력이 이들 34명밖에 없었겠는가? 도청 정도의 규모라면 최소한 100명 정도는 돼야 자체 방어가 될 것이다.
이들은 도청을 사수하던 최강의 공수부대 5개 대대(2,000명)를 포위 압박하여 광주시 외곽으로 추방시킨 엄청난 군사력입이었다. 이들 34명이 이런 엄청난 괴력을 발휘했겠는가? 일단 도청에서 공수부대를 퇴각시킨 후 그 도청을 점령해서 계엄군의 재진입을 막아야 하는데 그 소수로 가능했겠는가?도청 수호병력과 체포조를 합쳐도 134명 정도가 된다. 도청을 사령부로 사용한 집단은 광주사람들이었을까? 적지에 와서 유격작전-게릴라작전을 수행하는 북한군 최고의 보안 가치는 정체를 숨겨야만 하는 기도비닉이다. 그들은 북한군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고 의심되는 사람이라면 흔적 없이 처분해야만 했다. 광주사람과 북한 사람이 섞여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섞여 있으면 북한 말씨부터 들통난다. 따라서 100명이 됐던 얼마가 됐든 도청의 수비군은 북한군 일색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소수의 공작원]으로 가능하겠는가?
준비서면들에는 20개의 광주현장 사진들이 있다. 그 20매의 사진에 나타난 어깨들은 지휘체계를 갖추고, 무전기를 들고, 총을 소지하고, 전투준비를 하고 있다. 이 20매의 사진을 해석한 캡션을 아래에 다시 이ㄱ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