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가 해체되자 제2연대는 8월 13일, 제주도 경비 임무를 독립제1유격대대에 인계하고 인천으로 이동했다. 이는 육본이 ‘제주도 공비의 대부분이 섬멸되고 작은 불씨만 남아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때의 잔여공비는 불과 100명 정도인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 100명의 공비는 9연대에서 탈주한 고승옥이 지휘했고, 무기가 부족해 무장 1명, 비무장 2명의 3명 1개조로 움직였다.
하지만 공비는 매우 끈질겼다. 이들은 한라산 중턱을 연결하는 순환도로(일명 머리띠 도로)를 중심으로 도서남북 4개의 위병소를 설치하고 도처에서 경찰서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하고 양민을 학살하고 약탈, 방화를 계속했다. 이에 정부는 진주에 주둔하면서 4개월간 공비소탕작전을 펴고 있던 해병대 사령부(사령관 신현준 대령)를 제주도에 보냈다. 상황판단이 왔다 갔다하면서 정부의 대응도 헷갈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