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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돌고개의 유래와 80년 당시 항공사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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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머스 작성일22-07-31 12:47 조회13,002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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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개

서구문화원

날짜 2018-06-16 11:24

서구 경열로(양동.농성동)

 

돌고개는 서구와 남구의 경계에 놓여있다. 월산동과 농성동, 그리고 양동의 경계에 자리한 돌고개는 지금은 그저 그만한 곳이 됐지만 개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어엿한 고개로 기능했다. 고개라고 불리는 것 자체가 일정높이를 담보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더라면 굳이 고개라 했을리 만무하다. 우선 이 지역의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돌고개는 까치고개를 먼저 이해해야 접근이 용이하다.

광주시 남구 백운동 까치고개를 거쳐 수박등(105m)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광주문화방송이 자리한 덕림산 자락 끝자락이다. 이 끝자락에 놓인 고개가 돌고개이기 때문이다. 돌고개의 한 쪽면이 덕림산이고, 또 한 쪽면이 양동초등학교가 있는 제봉산이다.

덕림산은 과거 산으로의 위상을 잃어버렸다. 산이 개발된 후 도시빈민촌 등을 수용하는 공간이 됐고, 지금은 많은 아파트와 빌라, 주택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도심지로 탈바꿈됐다. 제봉산은 옛 광주서부경찰서가 자리한 곳이었다. 서부경찰서는 1970년 1월4일 개소했으며, 1973년 7월 14일 광주서부경찰서로 변경됐다. 그러다 2006년 11월27일 광주시 서구 치평동 1161-4번지로 이전하면서 돌고개 시대를 마감했다.

옛 경찰서 부지는 결국 아파트가 들어섰다. 돌고개 인근에는 경찰서 외에도 광주시 서구청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은 지방자치시대가 열리면서 서구의회도 자리 잡았다. 광주 최대의 재래시장인 양동시장이 능선 아래쪽에 자리잡아 돌고개는 상무지구나 금호지구 등이 들어서기 전에는 서구의 중심 역할을 수행했다.

초등학교도 양동초등학교와 농성초등학교, 월산초등학교 등 이 세 학교가 돌고개를 중심으로 위치해 있다. 현재 광주 도시철도 1호선의 지하철역인 돌고개역이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돌고개 남서쪽에 농성보가 자리했는데 보성군수 정화가 막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수리안전답으로 농토가 변해 농사가 잘 되자 농성보의 이름을 빌려 농성이라 했다. 농성동은 조선 후기 광주군 군익면에, 구한말에는 광주군 군익면 연례리와 신흥리에, 1914년 광주군 극락면 신례리에 각각 속했다. 1935년 광주부 농성정으로, 1946년 근농동으로 개칭됐다가 1947년 다시 농성동으로 확정됐다. 1973년 농성동은 서부관할에 속해 있다가 1983년 농성1, 2동으로 분동됐고, 1995년 광주광역시 서구 농성동이 됐다는 기록이 보인다.

돌고개라는 명칭은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돼 있다. ‘돌고개’는 ‘돌’과 ‘고개’의 합성어다. 한자 지명 ‘석현石峴’과 함께 쓰여 대부분 ‘돌[石]과 관련되는 곳으로, ‘돌이 많은 고개’를 의미한다. ‘석령石嶺’으로도 불린다.

광주 돌고개는 지리학자 김경수씨(前 전남대 사대부고 지리교사.향토지리연구소장)가 집필한 ‘광주지리지-풍수 지리와 대동여지도를 중심으로 광주 땅 이야기’(도서출판 향지사)에 보면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이 책 101쪽에는 ‘돌고개’는 ‘석치石峙’라는 의미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나, 높드리 넘이란 뜻인 ‘달고개’가 변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기술되고 있다.

돌고개라는 명칭은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돼 있으나 광주의 돌고개는 광주만의 돌고개라 할 수 있다.

 

 

 

서부경찰서의 "좌측 서"자 밑 위치가 "돌고개", 좌측 경찰마크 밑의 사거리가 현재의 지하철 역사 "돌고개역"입니다. 좌측 주택은행의 "행"옆 12시방향에서 5시방향으로 세로로 뻗은 길은 80년 당시는 하천이었으며, 현재는 복개도로로서 군분2로(상), 군분대로(하) 입니다. 그 하천과 만나는 도로상에 송정리와 시내를 이어주는 "군분교"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