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학문분석과 재래식 분석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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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5-05-10 20:52 조회2,47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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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학문적 분석이 5.18당시 재래식 분석과 다른 점
5.18 관련 [군 상황일지]는 당시의 계엄당국과 보안사 및 국정원 분석가들이 모두 다 다루었지만 이들 모두가 수학적 마인드와 게릴라전의 본질을 알지 못했던 관계로 북한군의 존재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5.18 상황에 대해서는 ’무기고가 많이 털렸고, 총기가 많이 피탈당했다‘는 정도로 정리하고 말았다. 하지만 통계학자인 필자는 당시 정보당국이 늘어만 놓은 자료를 통계처리하여 아래와 같이 상황을 정리하였다.
“300명의 시위대가, 5월 21일 오전 08시에 20사단 지휘부 차량부대가 광주톨게이트를 통과한다는 극비정보를 입수하고, 하루 전날에 [군분교]라는 작은 교량을 중심으로 하는 매복지점에 중장비들을 동원하여 가두리장을 설치한 다음 5.21.08시에 계획대로 톨게이트를 통과하는 20사단 차량부대를 습격하여 사단장 지프차를 포함한 14대의 지프차를 빼앗아 인근에 있는 군용차량 제조사인 아시아자동차 공장으로 향했고, 09시에는 또 다른 300명이 5대의 버스를 타고 아시아자동차 공장에 접근하여, 총 600명이 공장을 점령한 후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400대를 탈취하자마자 마치 예행연습을 한 사람들처럼 곧장 전남 17개 군에 위장돼있는 44개 무기고를 불과 4시간 만에 털어 5,403정의 총기와 8톤 분량의 TNT를 탈취해가지고 전남도청에 2,100발의 폭탄을 조립해놓고, 그날 밤부터 광주교도소를 5차례 야간공격했다.”
이렇게 통계학적으로 정리해놓으니까 비로소 방송국 남녀진행자들까지도 “그것은 광주 사람들이 할 수 없는 특수군의 소행”이라는 반응들을 내놓았다. 이와 같이 [북한 개입] 표현은 필자가 정리해놓은 위 요약문에 대한 세간의 [평가]이자 필자의 평가였지, 결코 [허위사실의 적시]가 될 수 없었다. 이런 평가를 가능케 했던 또 다른 사실들이 북한 노동당이 출판한 2개의 대남공작 역사책에도 묘사돼 있고, 북한의 ’조선영화촬영소‘가 1980년에 내놓은 5.18기록영화에도 묘사돼 있다.
2025.5.10.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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