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와 북괴가 데칼코미니(복사판)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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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5-11-24 11:47 조회5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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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와 북괴가 데칼코미니(복사판)인 이유
북괴와 광주는 김일성과 김정일 관계
북과 특수군 34명이 1980.5.23. 광주사람 4명을 도청
으로 끌어가 즉결처분했다. 이는 미CIA가 확인한 사실이고, 2024.5.12. 인터넷매체 [뉴스와논단]이 추적하여 사실로 확인한 사실이다. 북괴군이 얼마나 많이 왔기에 광주시를 완전 점령하고 그중 34명이 4명의 광주인을 도청으로 데려다가 즉결처분을 했을까? 이 한 가지만 보아도 5.18은 완전 북괴군 장사였다. 도청으로 끌려가는 4명의 광주인은 북한이 데려온 군중 속에 들어갔다가 북한 말씨를 들었다는 혐의를 받고 무조건 도청안에서 사살되었다.
지금의 광주는 어떤가? 지금의 광주는 5.18을 북한이 저질렀다는 말을 하는 국민 모두를 광주로 데려다가 즉결처분하듯이 아무런 논리 없이 처벌하고 천문학적 규모의 손해배상금을 물린다. 전두환대통령도 이렇게 당했다. 그런데 이변이 발생했다. 제주도 출신 조영범 판사가 광주법원에 근무할 때 그는 5.18관련 재판 관할권은 광주법원에 있지 않고, 피고의 거주지 관할법원에 있다는 판결을 내린 후 즉시 타 지역 법원으로 전근됐다. 대한민국 법을 무시하면서 광주법관들이 34명의 북한 특수군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뉴스와논단]이 증명한 북한 특수군 34명
1980년 5월 23일, 통제된 수백명 규모의 북한 민간인들이 광주시민인 것처럼 엑스트라 노릇을 했다. 북한 군중은 남녀노소 어린이까지 모두 다 동원되었다. 당시 광주시민은 거리에 나가면 날아다니는 총알에 맞는다며 대문을 잠그고 이불을 쓰고 있었다.
북한 민간인 집단은 예술가 집단, 영화배우집단, 도예 미술가 집단, 문학집단, 외교관집단 등 서로가 얼굴을 아는 사람들끼리 무리를 짓게 했다. 그 무리 속에 어쩌다 낯선 청년과 장년들이 들어갔다가, 북한 말씨를 들었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고 비밀보호를 위해 전남도청으로 끌려가 사살됐다.
이 장면이 미국 CIA에 포착돼 문서화됐다. “극렬주의자들은 광주시민을 인민재판하여 즉결처분을 하였다” 즉결처분을 집행하기 위해 도청안으로 끌려가는 광주사람 4명이 사진에 포착됐다. 이 4명을 도청 안으로 끌고 가는 괴한의 수는 34명이었다.
만일 이 34명이 광주사람이었다면, 이들 34명은 이미 법원에서 동족살인죄로 극형을 선고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34명을 재판하였다는 증거는 없다. 이들 34명은 북한 특수군이었다. 북한군 34명만 달랑 광주에 와서 대낮에 이런 살인행위를 보란 듯이 벌일 수는 없다. 이들 34명은 광주에 침투한 600명의 일부, 빙산의 일각이었다. 2004.5.12. [뉴스와논단]은 즉결처분된 3명을 추적하여 미CIA 보고서가 진실한 사실임을 밝혔다. 그리고 또 한 사람 김중식(학원교사)이 사망한 사실은 노담이 밝혔다.
증거:
518 광주와 인민재판의 여부
2025.11.2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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