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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역사의 증인 김창길과 김종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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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4-08-06 15:15 조회8,6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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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역사의 증인 김창길과 김종배


5월 27일, 새벽 광주진압작전에서 광주시민 17명이 사망했다. 이 사망자들은 김창길이 학생수습대책위 위원장을 끝까지 맡았더라면 발생할 수 없는 죽음들이었다. 김창길은 5월 22일 형성된 학생수습위원회에서 호선된 학생 위원장이다. 그는 무기를 반납하자 했고, 더 이상 희생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며 광주계엄사와 접촉하고 협상했다.


가장 큰 기여는 전남도청에 폭발물로 조립된 TNT 폭탄을 해체시킨 것이다. 김창길이 계엄사 전라분소에 찾아가 TNT폭탄의 존재를 알리고 제발 이를 해체해 달라며 부탁했다. 계엄사는 5급갑의 배승일 기술문관을 2일간(25,26) 파견해 목숨 걸고 해체하도록 조치했고, 김창길이 이끄는 학생들은 이들 기술자들의 작업과정을 엄호했다.


문제는 김종배-윤상원-박남선-정상용 등 강경파의 등장이었다. 이들은 25일 밤에 김창길이 이끄는 온건파 학생들을 물리력으로 내쫓고, 광주 원로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수습위의 이름을 ‘시민학생투쟁위원회’(내부적으로는 항쟁지도부)로 개칭했다. 계엄사는 과격한 강경파 학생들이 끝까지 싸우겠다고 하자 부득이 재진입작전을 감행했다. 이들 강경파 젊은이들이 이처럼 나대지 않았다면 17명의 시민이 죽고 10여명의 계엄군이 사상당하는 피해가 없었을 것이다.


                                                   김창길의 증언


22일 형성된 학생수습위원회의 위원장은 나였고, 부위원장 겸 장례위원장은 김종배였다.  그 후 박남선, 윤석루, 김화성, 황금선, 노수남, 구성주 이런 사람들이 들어왔다. 학생수습위원회라고는 이름 지었지만, 학생들은 서너면 밖에 안 남고 나머지는 다 일반시민이었다. 학생들은 다 도망가 버렸다. 이들 모두는 어떤 조직으로 묶여 있었던 게 아니라 뿔뿔이 여기저기에서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여기 도청에 있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조직은 없었다.


도청에 몰려든 사람들이 23일부터 무기회수에 나섰다. 무기는 광주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발사고만 날 수 있었다. 무기에 대해 알고 있던 사람은 군에 다녀온 노수남, 고재왕, 황금선 정도였고, 이들이 무기 회수를 주도했다. 5월 24일은 김재규가 처형된 날이었다. 날씨도 을씨년스러웠다. 당시 시청 지하실에 쌓인 다이너마이트 관리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것이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시민수습위원회(주:원로모임) 어른들이 도청 2층 도지사실에서 아침에 넥타이 매고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했다. 신부 목사들이란 어른들한테 나는 욕설을 했다. 탁상공론 하지 말고 무언가 실질적으로 도와달라고. 조비오, 김성룡 신부가 나타나 YWCA 소속의 사람들을 동원해 주겠다고 했다. 주로 고등학생들과 대학생 일부 데리고 와서 그 인원으로 무기고와 다이너마이트 보관실을 지키게 했다. 윤상원, 정상용, 박효선, 윤강옥은 24일 오후에야 도청에 들어왔다.


강경파가 이끄는 항쟁지도부는 26일 아침부터 가동됐다. 김종배가 항쟁지도부 항쟁위원장이 된 것이다. 나는 25일 저녁에 자리를 내놓았다.   


                                                 김종배의 증언


87년에 복학했다. 제13대 국민회의 국회의원을 했다. 5월 25일, 윤상원, 정상용, 김종배 이렇게 셋이서 투쟁위원회를 짰다. 김창길의 수습위원회에 재야청년들을 더 영입했다. 당시 정상용과 윤강옥 김영철 정해직 등은 학생이 아니었다. 이들이 재야청년들인 셈이다. 윤상원이 대변인을 했다. 내가 총위원장이었고, 두 사람의 부위원장이 각기 외무위원장, 내무위원장을 맡고, 예비군까지 동원하려 했다. 하지만 동원은 못했다.


당시 미항공모함이 왔다. 조금만 더 버티면 미국이 우리를 도와줄 줄 알았다. 28일에 시민장을 계획했었다. 기동타격대를 구성했는데 대장은 윤석루(무기징역 선고)가 맡았다. 사실 윤석루는 그때 뭘 모르는 어린아이였다.


21일 발포 이후인 저녁에 총이 나왔다. 그런데 그 다음날 수습대책위원회가 설치되어 무기반납을 추진했다. 나는 도청 분수대에 뛰어 올라 마이크를 뺏어가지고 ‘사람이 많이 죽었는데 무슨 수습이고 무슨 무기반납이냐 소리쳤다. 각 병원에 있는 시체들을 모두 도청 앞에 집결시켜가지고 시민들을 흥분시켰다.   


26일, 우리는 참 외로웠다. 계엄군은 들어온다 하지, 사람들은 계속 빠지고 있지, 이런 상태에서 계엄군과 싸운다는 건 자살행위였다. 나중에 보니 17명이 사망했더라. 감창길이 도청에 들어와 계엄군이 곧 들어온다며 밥해주던 여자들을 다 내보냈다. 많은 사람들이 도청을 빠져나갔다. 나는 박남선과 같이 도청 전투배치를 지휘했다. 박남선(투쟁위원회의 상활실장, 화려한 휴가의 안성기 역)은 평시에 알던 사람이 아니라 도청에서 처음 만났다. 도청에서 최후까지 싸운 사람들은 거의 다 모르는 얼굴들이었다.



                                             
두 사람의 증언을 읽고


이 두 사람의 증언은 이미 본 홈페이지에서도 다루어졌고,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에서 다루어졌다. 5월 21일 오후 계엄군이 광주를 폭도들에 내주고 가까스로 외곽으로 철수했다. 계엄군이 시외로 철수하니 그 열광하던 전투가 사라졌다. 전투는 계엄군이 호를 파고 있는 외곽들에서 분산되어 벌어졌고, 교도소 쟁탈전도 6차례나 있었다. 그런데 소위 ‘항쟁지도부’(?)를 구성한 강경파 사람들은 5월 18일부터 21일까지  무엇을 했는지 그 증언이 없다. 무기를 누가 털었는지에 대한 증언이 일체 없다. 그냥 무기가 21일 오후에 생겼다는 말만 있다.


전문 운동권은 체포되고 도망가고 폭동 현장에 없었다. 불과 몇 명의 학생 그것도 제적당한 학생들과 20대 청년들이 5월 26일 아침에야 미항공모함이 자기들을 도와줄 것이라는 허망한 환상에 젖어 경거망동하다가 5월 27일 새벽에 많은 사상자를 냈다. 이들은 그들로 인해 발생한 희생자들의 피를 딛고 5월 26일에 급조된 ‘항쟁지도부’라는 이름을 내걸고 국회의원이 되고 영웅 대접을 받아온 것이다. 지금도 일반 국민들은 5.18에서 계엄군과 가장 치열한 전투를 치른 존재가 이 "항쟁지도부“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2014.8.6.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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